익명경험담 고마움...내가 잊지못할... 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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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2,171회 작성일 17-02-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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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님 이거 제 형 아이디인데요...
이 글 올려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형이 이런 이벤트가 있다고 하니까.. 괜히 한번 써보고 싶어서요..
형 아이디로 누출 됬다고 짤리면 저 형한테 죽거든요...
저 봐주시면 안될까요? 부탁드립니다^^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어서면 변한다고 했던가.. 그때 나에게 있어준 지금의 여자친구에게 정말 고맙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해준 한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8년이 넘는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유학생이라고 불릴만큼 자주 한국에 나왔다가 들어왔다가 하지만 난 지금도 정체성이란 것에 대해서 흔들릴때가 많다.
14살이란 어린 나이에 유학을 와서 22살까지..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다. 한국에선 한국말이 조금 어수룩 하다고 눈치 보이고 여기선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이곳 사람이 아닌.. 때로는 인종차별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때의 난 영어를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너무 일찍 시작하면 공부에 흥미를 잃을수 있다는 부모님의 뜻에따라 중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알파벳을 접했을 정도로 영어란걸 알지 못했던난... 알파벳을 떼고 약간의 단어를 알 무렵...유학을 왔다.

기숙사제 사립학교에 입학한 나는.. 이곳은 유학생이 있지도 않는 곳이었다. 학교에 유일한 외국이인이었던 나는.. 백인우월주위, 인종차별때문에 너무 너무 힘들었다.

첫 수업시간을 들어가자 마자 들은 소리는 선생님이란 사람이 교장을 부른후 자기는 영어도 못하는 옐로우 멍키에게 수업을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을 했었고, 난 들어갈 수 있는 수업이 없었다. 옐로우란 단어 멍키란 단어.... 우리가 껌둥이라 부르듯.. 그것보다 더 심각한 아주 심각한 인종차별적인 말이다. 노란 원숭이...

난 하지만 그땐 정확히 그게 무슨뜻인지도 몰랐고 어쨌든 내가 수업에 들어갈 수 없다는것만 알았다.
덩치도 작은데다 힘없는 나라에서 온 나에겐 학교란 곳은 너무나도 힘든 곳이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을때 한국이라고 대답하면 중국안쪽 구석이냐고 다른 애들은 일본 종속국이라고 그러면서 놀렸다.

교장이 나를 부르더니.. 날 가르칠 선생을 찾아보겠다고 했고.. 잠시후 한 선생님이 들어왔다. 이름은 밝힐수 없어서 Ms. B라고 하겠다.
영어 선생이었구.. 몇가지 과목을 더 가르치는 그런 선생이었다. 아주 젊은 선생님...

난 그녀의 수업으로 들어갔고, 나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고-정상 출근보다 1시간 30분이 빠른것이었다- 점심시간 그리고 오후시간까지 나에게 할애했다.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것이 알려지면 그녀도 좋지 않은 소문이 돌 수 있겠고 다른 선생님들이 내 성적을 인정하지 않을까봐 무척이나 신경써줬다.

외국인들에게 자기 시간을 그것도 무료로 봉사하는 것은 생각도 못할일일거다. 대부분 튜터라고 해서 학교 선생들 시간당.. 3-4만원받고 숙제 도와주는 사람들은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없다. 물런 Office hour라고 해서 공식적으로 질문받고 그러는 시간은 있지만 그 외에는 그렇지가 못하다. 물런 교사가 튜터 한다는건 비공식 적인거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혼자있는 내가 외로울까봐, 크리스 마스 이스터등의 휴가때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자신의 가족들과 어울리게까지 했던 그 런 선생님이셨다.

자존심이란 것 때문에 그렇게 힘이들어도 부모님에게 말도 못했었다. 항상 행복한척 다 잘하고 있는 척. 그 누구에게도 약한모습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그 선생님은 날 이해했다.

이곳에선 에세이 형식의 숙제들이 많다. 영어 숙제의 경우 문법같은곳에 많은 점수가 할당되고 말을 이해 하지도 못하는난.. 어림도 없었다.
숙제의 기간이 1주일이면.. 2-3일 전에 먼저 내게 해서 문법 체크를 해주고 내 말을 들어보고 어디가 어떻게 잘 못 됬는지 지적해 주시고 다시 제출하게 배려 해 줄 수 있던 선생님.

정말 많이 아퍼서 쓰러 졌을때, 다른사람들은 마약류 때문에 쓰러진걸꺼라면서 동양애들은 다 그런다고..알지도 못하면서.. 내 피를 채취하고 마약 검사를 해야 했을때 끝까지 나를 믿어주시고 병원에서 사흘동안 날 지켜주시던 선생님..

비록 이글을 읽으실 수는 없겠지만 선생님 감사 드립니다.

그 선생님이 있었기에.. 난 3등으로 졸업했다. 날 옐로우 멍키라고 불렀던 선생이 다음 해에 나를 가르치고, 그선생에게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졸업하는 날.. 졸업장을 전해주면서 그랬다. 이건 너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처음으로 난 그날 눈물을 흘렸고, 가장 멋진 복수를 한것이었다.
만약 내게 MS. B란 선생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지금의 나는 없었을것이다. 지금은 MRS로 바뀐 선생님... 지금도..많지는 않아두 일년에 한두번의 편지를 보내 주신는 선생님..바쁘다는 핑계로 답장한번 못해 드리고 그렇지만....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 열심히 할게요. 이번 이스트때는 찾아뵙겠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감사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멀리서, J.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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