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경험담 [이벤트응모] 다시 봄은 찾아 왔는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2,108회 작성일 17-02-08 15:24

본문

계절이 바뀌어 어김없이 봄이 다시 찾아왔다.
나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계절이다.
봄이 시작하는 초입에 봄은 나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다가왔기 때문이다.

2000년 12월초.
친한 친구들 가족과 함께 일산에 있는 친구놈이 하는 일식집에서 송년모임을 재미있게 웃고 떠들며
그동안 밀린 술을 한꺼번에 먹어야만 되는 것처럼 모두들 많이 취하고 예전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 와이프 모두 11가족이니까 40여명이 시끌법석, 애들 노는소리 ...
아~ 이런게 살아가는 재미가 아닌던가.
즐거운 자리가 거의 끝나고 각자 집에 돌아 갈때쯤 집사람이 속이 좀 않좋다고 한다.
맛있는 회에다가 일식집 주인인 친구가 특별 정성으로 만들어준 음식들이 맛있어서 조금 과식을 해서
소화가 안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가끔 과식하면 속이 불편하다고 해서....

2000년 12월 중순.
노후대책으로 나와 집사람 그리고 애들 명의로 보험을 가입한게 좀 있어서
보험회사에서 종합건강진단 무료쿠폰이 나왔다고 한다.
난 작년에 받았으니까 당신이 이번에 검진받아 보라고 등을 밀다시피 보냈다.
피검사하고 엑스레이 찍고 초음파검사, 부인병검사등등....

"따르릉...."
며칠후 늦은 저녁시간에 집으로 전화가 왔다.
"검사결과 조금 이상한 것이 있는데 내일 아침 일찍 들려 달라"고 한다.
건강관리소장이 직접 전화를 해서 결과를 알려주는데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하다.

다음날 아침 집사람을 보내놓고 사무실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저녁에 집에와서 보니 엑스레이 촬영사진을 여러장 가지고 왔다.
건강관리소장이 엑스레이 판독결과 위에 종양같은게 보이니까 가능한 빨리 종합병원가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라고 한다.
이게 웬소리 !!
그동안 살아오면서 속쓰리고 아프다는 말 한번 없었는데.
다음날 아침 회사 근처 종합병원 내과에 진료예약을 해놓고 아내보고 나오라고 했다.
수면 위내시경검사를 하는데 담당 내과과장이 보호자도 들어오라고 한다.
나에게 모니터를 보여주면서 육안검사 소견으로 암같다고 한다.
맑은하늘에 청천병력같은 소리.
정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머리속이 하얗게 비어 버린것 같은 느낌.
그것도 상당히 진행되어서 시급한 단계라고 한다.
초특급으로 조직검사, CT촬영등 정밀검사를 하였다.
며칠후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내머리속은 온통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악성 위선암 4기"입니다.
4기?....4기가 뭐지?
암에 대해서 전혀 무지인 나로서는 선듯 이해가 가지 않는 말만했다.
당장 오늘 입원하고 모래쯤 수술하자고 한다.
외과팀장 의사선생님, 내과과장 의사선생님, 임상병리학 담당 의사선생님들이 함께 모여서
나와 같이 회의를 하더니 한시간이라도 빨리 수술하여야 한다고 결과를 알려준다.
아~ 이젠 어떻게 해야하나.
아내에겐 뭐라고 이야기해 주어야 하나.
지난번 내시경검사결과도 그냥 종양이라고 얼버무렸는데.....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마나.....머리가 지끈 아퍼온다.
병원에는 일단 집에가서 상의하고 내일 오겠다고 하고서 사무실로 돌아와서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한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위암 전문 병원이 어디고 어느 의사선생님이 제일 수술을 잘하시는지....
결국 을지로 백병원 "한국위암쎈타"의 김OO 원장선생님으로 추천을 받고 아는분의 추천을 통해서
다음날 아침 우선적으로 진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아내에게는 좀 더 큰병원으로 가서 유명한 의사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으러 가자고 하고서 휴가를 내고
같이 백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바로 입원후 즉시 수술.
아내에게는 그냥 종양수술이라고 말하고 수술실로 들여 보냈다.
암의 위치가 식도밑이라 결국 위전제술(위전체를 도려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도중 김OO 원장선생님께서 직접 환자의 수술부위라며 아내의 잘려진 위를 들고나와서
보호자인 나에게 보여주는데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눈물만 글썽글썽했다.
이제 내 아낸 위가 없다. 그럼 뭐 먹고 살지? 걱정이 태산같다는 말이 새삼 이해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든다.
수술후 3개월동안 항암치료 받고 항암제 먹고 거의 누워서 지냈다.
하루에 9번 입으로 꼭꼭 100번씩 씹어서 삼키면 바로 대장으로 들어가 천천히 소화가 되게끔 그런 식생활을
시작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간도 제대로 안한 음식을 입안에서 완전히 분해하여 먹는다는게 얼마나 고역인지
상상이 안가시면 여러분들께서 한번 실험해 보시면 아마 이해가 빠르리라 생각한다.

수술후 1년여 수술후유증으로 고생도 많이하고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어 결국 2002년 3월 9일 오후 1시 15분.
아직은 쌀쌀한 봄의 초입에 머나먼 길로 떠났다.
마지막 순간 내품에 꼭 안겨서 호흡곤란으로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렇게 먼길을 혼자 갔다.
서러워서 억울해서 애들 보고파서 어떻게 할려고 다 버리고 그냥 갔을까.
마지막이 오기전 정신이 있을때 예전에 가족들과 같이 자주 놀러갔던 동해안 정동진 앞바다에
뿌려달라고 해서 눈물을 흘리며 소원대로 해줬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물론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무심하게 찾아오겠지.
아픈가슴 다 도려내고 이젠 상처날 곳도 없는 빈 가슴에도 봄은 찾아 오겠지.

"오늘 지금 이순간 여러분이 그냥 보내는 이시간이 어제 먼길을 떠나간이에게는 그토록
갈망하던 희망의 내일입니다"

암병동 게시판에 적혀있는 이 글.
오늘도 시간의 중요함을 잊지 않기 위하여 난 뛴다.
나와 남겨진 우리 애들의 미래를 위하여 아픈 기억의 봄이와도 꾹 참고 뛰련다.



------ 아 내 ------



난 아내가 있다

아니 지금은 없다고 해야겠다.

아직 쌀쌀한 봄날 암이란 놈과 함께 멀리 떠나갔다.



소풍.

어떤시인이 인생을 소풍이라고 했는데

내 아낸 같이 소풍와서 먼저 집에 갔나보다.



스르르~

같이 소풍온 친구들에게

간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렇게 갔다.



집에 먼저 돌아가면

반갑게 반겨줄 사람이라도 있나?

같이 왔으면 같이 가야지.



지루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 게시판에 조금 걸맞지 않는 글이 아닐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런 글도 있구나하는 마음으로 읽어 주십사하고 올렸습니다.
넓으신 이해심으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