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매거진WS 건축과 미술을 거쳐 패션으로, 김재현 -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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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17회 작성일 16-02-13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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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와 모자 위에 새침하게 내려앉은 올빼미 한 마리. 이미 너무나 유명해진 올빼미 프린트는 ‘럭키슈에뜨’의 시그너처 마크다. 이 브랜드를 탄생시킨 디자이너 김재현은 올빼미만큼이나 시크하며 동시에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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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무언가를 발견한 프랑스인은 이렇게 외친다. “셋 슈에트!(C’est chouette!)”

프랑스어인 ‘셋 슈에트’는 ‘참 멋지다’, ‘귀엽다’는 뜻으로, 프랑스에서 흔히 사용되는 감탄사다. 이때 ‘슈에트’가 다름 아닌 올빼미다. 유럽에서는 올빼미가 ‘멋지다’는 의미로 통용될 정도로 행운의 새다. 우리나라의 까치 정도랄까?

우리나라 대표 패션 디자이너이자 (주)코오롱인더스트리 이사로 재직하는 김재현. 그녀가 유학 시절 접한 “셋 슈에트!”는 이국적인 무언가가 함축된 낯선 말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나 상쾌해 ‘언젠가 브랜드를 만들 때 슈에트란 낱말을 이용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론칭한 패션 브랜드 ‘쟈뎅 드 슈에뜨(올빼미의 정원)’와 이를 좀 더 대중화시킨 ‘럭키슈에뜨(행운의 올빼미)’의 브랜드 네임은 이렇게 탄생했다. 두 브랜드의 시그너처 마크인 올빼미는 ‘멋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올빼미 프린트로 알려진 ‘럭키슈에뜨’와 ‘쟈뎅 드 슈에뜨’는 공효진, 장윤주, 채정안, 이혜영 등 연예계 패션 아이콘들이 애용해 더 유명해졌다. ‘연예인이 먼저 찾는 브랜드’라 불릴 정도다. 모던 클래식을 기본으로, 위트 있는 감각을 더해 독특한 분위기를 선보이는 것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쟈뎅 드 슈에뜨’는 여성스러우며 우아한 감성을, ‘럭키슈에뜨’는 그보다 젊은 느낌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무심하고 시크한 스타일의 비결이 무엇인지 묻는데…, 제 성격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성격 자체가 무심한 편이니까, 옷을 입었을 때 나다워야 하거든요.” 럭키슈에뜨를 비롯해 김재현이 론칭한 모든 브랜드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가 걸어온 길을 살펴봐야 한다. 건축과 미술 그리고 파리에 대한 이야기부터.




내가 좋아해야 남들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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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은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지는 않았다. 막연히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건축과’를 가기 위해 선택한 ‘이과’는 적성에 맞지 않았고, 차선책으로 눈을 돌리게 된 분야가 바로 미술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미적 감각과 손재주는 타고났으니, 차선은 곧 최선이 됐다. 이과에서 예체능 반으로 옮긴 뒤 그녀는 무난히 이화여대 조소과에 합격해 미술학도가 됐다.

“대학 시절에는 정말 신나게 놀았어요. 지금 대학생들과는 다르게 ‘대학 가면 놀아야지!’ 하던 때였으니까요. 고등학교 때까지 못했던 것들을 누리면서 일탈을 즐겼죠. 비록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후회는 없어요.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맘껏 해보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그렇다고 김재현이 건축에 대한 관심을 놓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프레리 하우스(초원 주택)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과 독일의 조형학교 ‘바우하우스’가 추구하던 스타일을 동경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스타일처럼 반듯반듯하고, 바우하우스처럼 실용적이면서도 디테일이 깔끔한 것이 좋았어요. 디테일이 있더라도 조화롭게 맞아 떨어진다면 맘에 들고요. 뭐든 완성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녀는 대학 졸업 후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파리가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리 여행을 갔을 때, ‘나중에 꼭 파리에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어렸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로웠죠. 파리는 우리나라와 너무 달랐어요. 음식부터 생활 패턴까지…. 그때는 다 쓰러져가는 건물마저 좋아 보였죠.”

김재현은 파리에서 패션 공부를 시작했다. 본래 전공인 미술보다 패션이 더 적성에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옷에 대한 관심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지만, 그게 직업으로 이어질 줄은 그녀 자신도 몰랐다.

“‘졸업하면 디스플레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에 관련 학원에 다닌 적은 있지만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파리는 패션의 도시잖아요. 파리에 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패션에서 영감을 받았고,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이 제게 미술 대신 패션을 하라고 추천했어요. 미술 공부에 한계를 느낄 때였거든요. 바로 패션 스쿨 에스모드에 입학했죠.”

김재현은 매 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새로운 길이 생겼고, 의심 없이 그 길을 따라가곤 했다. 그녀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안 되는 걸 붙잡고 힘들게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건축을 사랑했던 그녀는 디자이너가 된 지금도 여전히 건축가들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세 번째 선택은 탁월했다. 그녀는 패션에서 재능을 보였고, 결국 에스모드를 1등으로 졸업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한번은 억울한 일도 겪었다.

“에스모드를 다닐 때 숙제가 정말 많았어요. 모두 재봉틀로 해야 하는 작업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새벽 5시쯤에 경찰관 다섯 명이 저희 집에 들이닥쳐 집 안을 막 뒤지는 거예요. 중국인이 운영하는 불법 공장이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고 하면서요. 알고 보니 아래층 프랑스인이 시끄럽다고 허위 신고를 한 거였죠. 재봉틀이 작아 소음이 크지 않았는데도… 정말 억울했어요.”

낯선 나라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기는 쉽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동양인에 대한 차별도 겪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체류증을 내야 했어요. 체류증을 내야 하는 나라가 몇 안 돼요(그만큼 약소국 취급을 받은 거죠). 집에서 돈을 보내준다는 은행 증명서, 학교 재학 증명서 등 구비해야 하는 서류가 꽤 많아서 엄청나게 귀찮아요. 그것 때문에 귀국하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어쨌든 어린 나이에 혼자 집을 구하고, 이사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파리에서 살았어요. 그때 많이 컸죠.”

에스모드 졸업 후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바바라부이’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귀국해서는 한섬에 취직해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그녀가 맡은 브랜드는 ‘시스템’. 3년 후에는 신세계인터내셔널 ‘분더샵’으로 이직해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돌체앤가바나와 같은 브랜드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분더샵’에서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을 들여온다고 해서 신났죠. 디자이너 섭외부터 스타일리스트, 디스플레이까지 다양한 일을 했어요. 재미있었죠.”

신나서 하던 일은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흥미를 잃어갔다. 그녀는 일 년간의 분더샵 생활을 정리하고 과감히 독립했다. 압구정동에 10평짜리 작은 가게를 얻어 그녀의 첫 브랜드인 ‘제인 에 알리스’를 론칭한 것. 이 브랜드를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쟈뎅 드 슈에뜨’다.




구려!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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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뎅 드 슈에뜨와 럭키슈에뜨는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2012년에는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인수됐다. 인수된 이후 변화는 그녀가 ‘이사’라는 직함을 달았다는 것이고, ‘쟈뎅 드 슈에뜨’보다 대중적인 ‘럭키슈에뜨’를 전면에 내세우게 됐다는 점이다. 매출 규모도 해마다 커졌다. 인수 당시 10억 정도에 불과했지만, 코오롱에 인수된 지 3년 만에 4백억을 훌쩍 넘겼다. 김재현의 독특한 감성과 대기업 특유의 체계적인 마케팅과 판매 시스템이 만나 이루어낸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럭키슈에뜨는 이제 액세서리 등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별도 매장을 오픈할 정도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중국 온라인 마켓을 오픈하는 등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도 활발하다.

“일단 돈 생각 안 하고 옷을 만들 수 있고 인원도 많아졌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죠. 대신 회사와 조율해야 하는 일들이 생겨요. 입장이 서로 다를 수 있거든요. 처음에는 그런 일들이 스트레스였는데,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편이에요. 과연 좋은 건가 싶지만,(웃음) 브랜드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꼭 풀어야 할 과제니까요.”

럭키슈에뜨를 이야기할 때 ‘소재’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김재현은 잠수복 소재의 네오프렌을 과감히 사용해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예전에 쟈뎅 드 슈에뜨에서 모 회사 휴대폰과 컬래버레이션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네오프렌을 사용했어요. 정말 예쁘더라고요. 반응도 좋았고요. 그래서 옷에 적용해봤죠. 원단 선택은 쉽지 않아요. 좋은 원단은 얼마든지 있지만 원가가 비싸니까요.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거운 원단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무거운 원단이 주는 독특한 느낌이 있지만, 입지 않으려고 하면 소용없거든요. 저는 실크도 선호하는데 세탁하기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어요. 그러니 원단 선택에 한계가 생기죠.”

그녀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어야 남도 입고 싶어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 어린 시절 좋아했던 아이비리그 로고나 미키마우스가 프린트된 스웨트 셔츠를 떠올렸고 올빼미가 그려진 스웨트 셔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정말 좋아해야 뭔가 되는 것 같아요.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겠죠. 트렌드를 반영해 비싼 연예인을 써서 마케팅하면 된다? 그런 건 잠시 반짝할 수 있지만 오래가지 못해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거든요. 요즘 고객들은 히스토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에 스토리가 있길 원하고, 일본처럼 마니아도 많이 생기는 편이에요. 옷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처럼 유명 연예인이 입었다고 다들 우르르 입던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브랜드에서는 다양한 시도도 한다. 연예인과의 컬래버레이션이 그중 하나다. 지난해 겨울 시즌에 배우 채정안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내놓은 마드모아젤 라인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진되기도 했다. 성공의 비결은 다름 아닌 김재현 이사와 채정안의 오랜 친분이다.

“(채)정안이와는 2001년부터 알고 지냈어요. 당시 정안이는 가수로 3집 앨범 출시를 앞두고 있었고, 저는 ‘제인 에 알리스’를 처음 론칭했을 때죠. 메이크업 하는 지인이 제게 정안이의 3집 앨범에 필요한 옷을 해달라고 해서 처음 만났어요. 정안이가 20대 초반이었고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그동안 서로 성장 과정을 지켜본 셈이죠.”

김재현은 “정안이 참 예쁘지 않나요?” 하면서 오랜 친구의 패션에 대해 견해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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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이가 꽤 (패션에 대해) 까다로워요. 지금은 굉장히 많이 변했지만 예전엔 보수적이었어요. 다행히 좋아하는 스타일이 럭키슈에뜨나 쟈뎅 드 슈에뜨였어요. 잘 어울렸죠. 젊고 귀여운 스타일보다는 페미닌하고 우아한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최근 김재현은 자극을 받을 만한 작은 사건을 겪었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악플’을 발견한 것.

“여성복을 만들지만 쇼의 재미를 위해 가끔 남성복도 제작해요. 누군가 쇼 사진을 게시판에 올렸는데, 그 사진을 보고 나쁘게 평가하는 댓글을 봤어요. ‘럭키에서 남성복도 만드나? 구려!’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그러고 보니 처음 느낌과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바로 소재를 다시 가져오게 해서 꼼꼼히 살폈죠.”

그녀가 옷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내 주변에 누가 입을 수 있을까?’라고 한다. 예쁘지만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옷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옷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매출이 많다고 성공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매출이 없으면 존재 가치가 없죠. 브랜드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대단한 아티스트’로 인정받지는 못하겠지만 제 옷을 입었을 때 ‘아, 입을 만하다’ 하면 되는 것 같아요. 남이 우리 디자인을 카피한다고 ‘페어(fair)’하지 않다고 짜증 내면 뭐해요. 남들이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할 뿐이죠.”

김재현에게 옷 잘 입는 법을 물었다. 그녀가 전수해준 방법은 그저 즐기라는 것!

“요즘 ‘패피(패션 피플)’라고 부르는데, 패피가 뭐라고 생각해요? 옷을 좋아하는 사람? 잘 입는 사람? 옷을 좋아하지만 못 입는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옷이 사람을 괴롭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즐기는 거죠. 발품만 잘 팔면 적은 돈으로도 예쁘게 입을 수 있어요. 우울한 날에는 모자로 얼굴을 가릴 수 있고, 또 반대로 예쁘게 입어서 기분 전환을 할 수도 있죠. 그렇게 즐기는 거예요.”

그녀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 5~6시에 일어나 7시면 운동을 한다. 그녀가 운동을 하루라도 빼먹지 않는 것은 ‘디자이너는 살이 찌면 안 된다’는 철칙 때문이다.

“살찌면 일단 욕구가 없어지거든요. 입고 싶은 옷도 없어지고 먹는 생각만 하게 돼요.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싫어져요. 그래서 저는 저희 디자이너들에게 늘 살 빼라고 해요. 살이 찌고 욕구가 없으면 흐름(트렌드)을 탈 수 없거든요. 디자이너는 사무실에만 있어도 안 돼요. 세상이 바뀌었으니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봐야 하죠. 그들이 ‘구려!’ 하면 안 되니까요.”



기획
정지혜 기자

취재
두경아(프리랜서)

사진
박원민



발행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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