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혼자하는 즐거움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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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187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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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점성술
그녀가 점쟁이를 찾아간 것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험의 결과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일년 내내 책을 가까이 한 적이 별로 없는 그녀로서는 기적만 바랄 뿐이었다. 그럴 리 만무하지만, 혹시 기적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되면 시험 때까지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점쟁이는 시험결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엉뚱하게 그녀가 임신했다는 점괘를 집어냈다.

그날부터 그녀는 밤잠을 설쳤다. 최악의 경우였다.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그녀는 책장 속에 숨겨두었던 피임약 판을 꺼내 혹시 빼먹은 날이 없나 구멍을 세어보았다.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

일반적인 통계에 의하면 피임약을 먹고도 피임에 실패할 확률은 극히 미미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 극히 드문 예외에 속한다고 추론했다. 불운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자기한테 생길 수 있을까! 그녀는 피임약 판을 어머니의 손이 절대로 가지 않는 몽테뉴 전집 뒤에 다시 숨겨놓았다. 그리고 가족계획 상담소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화가 나더니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 보듯 뻔한 바카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 불합격 소식에 이어 임신 사실까지 부모님께서 아시게 되면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중세가 아니다. 낙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낙태는 후유증이 생기지 않게 적기에 적소에서 해야 한다. 친구들에게 물어 잘 처리하면 성공적으로 임신중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헌데, 정말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해야 하나!

장 루이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혼자 불행을 감당하며 고민했다. 신경이 곤두서고 긴장이 되어서 사랑을 나눌 때도 입술 외에 다른 기관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장 루이는 다 이해한다는 듯 그녀를 위로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운명의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학 졸업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아느냐, 양피지로 싼 학위증 없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대학 문 앞에도 가보지 않고 돈을 벌고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대학에 미련을 가질 수 있는 부류에 속하지는 않았다.

그의 위로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고, 그녀는 내내 악몽 속을 헤맸다. 산부인과 수술대에 매달려 다리 사이로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부드러운 색상의 유아용 털조끼를 짜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악몽 속에 번갈아 나타났다. 마침내 그녀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는 장 루이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다. 점 보러간 일, 임신했다는 점괘, 피임약 판 확인하기, 뜬눈으로 지샌 밤들, 불안, 공포....

그가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화를 내었다. 맙소사, 어쩌면 저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우선 점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이 바보짓이고, 점괘를 믿은 것하며, 혼자 공상 소설을 쓴 것, 자기한테 아무 얘기도 않은 것, 그 모두가 그를 화나게 했다. 며칠만 지나면 그녀가 얼마나 어리석었나를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잘한 일인지도 몰라. 좋은 교훈을 얻게 될 테니까."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장-루이는 날마다 물었다.

"어떻게 됐어?"

"기다려, 아직 사흘 더 있어야돼."

사흘 후에.

"소식 있니?"

"아니, 아무 소식도 없어."

"정상이야.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거야. 내일이면 뭔가 비칠 거야."

닷새 뒤에 우체국 앞 카페에서 만났을 때, 그가 훨씬 더 불안해했다.

"난 이해할 수가 없어."

그녀가 말했다.

"내가 그 여자 점쟁이를 찾아간 게 27일이고 약은 16일부터 먹기 시작했어. 자기가 한번 세어 봐."

그가 약판을 빼앗듯 가져갔다.

"열하나. 근데 어떻게 계산하는 거야?"

계산?

그가 말한 정신적 충격이 그때서야 찾아왔다.

점을 본 이후, 날마다 약판의 구멍과 약만 세고 또 세었지, 계속해서 약을 먹는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제, 점쟁이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멍청이 같은 장 루이!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다. 잠시 후 그녀는 갑자기 귓불이 뜨거워지면서 의자에서 미끄러졌다



13. 결별

오늘 저녁, 나는, 얼마 전부터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던 내 아파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느낌이다.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을 경우 나는 대체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이리저리 집안을 바삐 돌아다닌다. 혼자 있을 경우에는 전화기가 놓인 곳에서 창문께 까지 성큼성큼 걸으며 발걸음을 세고, 발걸음의 수에서 어떤 징후를 찾으려 애쓴다.

오늘 나는 아파트 내부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조화롭게 설치된 조명 아래 펼쳐지는 실내 풍경이 마음에 든다. 여기저기 명암이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고, 벽에 걸린 그림들이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도드라져 있으며, 화분에 심은 나무의 초록 잎들이 흰색 화분받침과 어우러지고, 나 혼자의 몸무게도 이기지 못하고 꺼져있는 소파는 감미롭기까지 하다. 혼자 사는 아파트의 쓸쓸함이 오늘 내게는 오히려 안락함으로 다가온다.

나는 벌써 두 잔의 위스키를 마셨다. 하지만 스테판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와 잔을 빼앗는 일이 없었다. 파트릭에게 병자 취급을 당하지 않고, 마리화나를 맛있게 한 대 피울 수도 있었다.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고 오디오를 들어도 크리스토퍼가 달려와 비난하듯 혀를 차며 볼륨을 줄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정말 신난다!

이번에야말로... 결심했다. 모두 꺼져라! 해방이다.

놈들의 표정이 볼만할 것이다.

맨 먼저 전화하는 놈이 가장 크게 당할 것이다.

어쨌든 내일이면 모두가 전화로 나의 결별 선언을 듣게 될 것이다. 오늘 저녁에 전화가 오지 않으면 제일 먼저 파트릭에게 전화를 해야지. 직접 전화를 받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지, 비서에게 메시지를 남길 테니까.

스테판은 참 출장중이랬지. 한달이 지나도록 말 한마디 없이, 전화 한 번 않고. 좋아, 오기만 해 봐라, 찬물을 끼얹어 줄 테다.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기 일쑤고, 귀찮게 굴기 시작하면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크리스토퍼 역시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이 마르틴느가 한번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표독해지는지 본때를 보여 줘야지.

그래도 열시까지는 참고 기다려 보자. 그 전에 전화하는 사람에게는 좀 덜 심하게 굴어야지.

왜 내가 항상 그들의 처분에 따라야 하나? 관리를 할 줄 알아야지. 자유란 그냥 얻어 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으로 쟁취하는 것일까? 그야 전화기 하나면 족하지. 너무 싱겁지 않아?

왜 내가 진작 이 생각을 못했을까? 그들이 선심을 베풀기만 기다리다가 퇴짜만 맞은 것이 무릇 몇 달 동안인가.

가정으로, 사랑하는 아내에게로, 회사로, 항상 그 개똥같은 것들에게로 돌아가야만 하는 사내들이여, 그대들도 바람 한번 맞아봐. 이건 농담이 아니야.

이제 나도 나만을 위해서 살아야지. 연주회가 끝나면 영화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든 내일이면 끝장이다. 왜냐하면 오늘 저녁 어느 누구도 내 공허함을 메워 줄 수 없었으니까. 지금이라도 전화가 걸려오면 봐 줘야지. 시한폭탄이 준비된 셈이다. 아유, 내 토끼, 이제 시작해 보지 그래.

벌써 열한시 삼십분! 오늘 저녁은 끝이다. 아무도 전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 눈까풀이 무거워지면서 눈이 감긴다. 그래도 자정까지는 기다려 봐야지. 마지막 시한이다.

얼마 후 나는 여느 때처럼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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