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탑마생사화(塔魔生死花) 5. 기사회생(起死回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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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2,875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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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기사회생(起死回生)

  암흑(暗黑).......
  태초의 어둠처럼 주위는 칠흑과 같았다.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곳, 과연 이곳은 어디인가?
  그렇다고 해서 전혀 사위를 구별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어둠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으나 어느 한 곳만은 한 개
의 높다란 돌이 자리하고 있었다.
  원반형태를 이룬 돌, 백색으로 어스름하게 빛나 겨우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흰색의 원방형 석대, 그 위에는 한 갓난 아이가 누워 있다.
  장천홍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러면서도 비운의 운명에 빠져야 했던 아이였다. 태어나자
마자 죽음에 임해야 했던 아이.......
  미부의 죽음 때문에.......
  천왕탑마의 강기로 인해 허공에서부터 지면으로 떨어졌던 아
이였다.
  파랗게 질려 생명이 끊어졌을 아이였다. 헌데.......
  그러했떤 아이가 어떻게 이 어둠 속에 누워 있단 말인가?
  질식할 것만 같은 고요 속에서 장천홍은 움직임 하나 없이
누워 있었다.
  이때, 어디로부터인지는 몰라도 한 줄기 중후한 음성이 어둠
속에서 터져나왔다.
  "살 수 있겠는가?"
  누군가를 향해 던지는 질문.
  허다면 이곳은 한 명만이 있는 게 아니었음인가.
  전혀 다른 색조의 음성이 이어서 흘러나왔다.
  "죽지는 않을 것 같군."
  다시 예의 처음에 흘러나왔던 목소리가 들렸다.
  "무공은 익힐 수 있겠는가?"
  "흐음...... 일단은 살리고 나서 이야기 하세나."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대답으로 알아도 되겠나?"
  "아직은 속단할 수 없네."
  "으음......."
  "헌데 이처럼 다 죽어가는 아이를 뭣 때문에 어떤 목적으로
주워왔나?"
  "궁금한가?"
  "말하기 싫다면 구태여 듣고 싶지는 않네."
  "알고 싶지 않다니 더욱 말해주고 싶군. 흐흣......."
  "이런......."
  "난 내 꽃을 돌봐줄 아이가 필요해서일세. 허허헛......!"
  "실없긴...... 아마도 자넨 아직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게로군."
  "어린아이 하날 주워왔다고 날 그렇게 평가하는 건가?"
  "......."
  "아무튼 그 아이의 맥을 살펴보게나."
  "흐음......."
  어둠 속에서 무언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장
천홍의 오른팔이 허공으로 들려졌다.
  붙잡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어느 순간, 어둠 속에서 흠칫하는 기음이 터져나왔다.
  "이런......."
  "왜 무에가 잘못 되었나?"
  "구태여 잘못되었다기 보담은......."
  "어서 말해보게나."
  "이 아이의 심맥이 아주 기이한 수법에 의해 단절되었군."
  "기이한 수법이라니......?"
  맨 처음의 음성은 긴장된 색조를 띠고 급히 물어왔다.
  "어린 아이에게 이처럼 독랄한 수법을 쓴단 말인가?"
  이어서 한숨 비슷하게 대답이 터졌다.
  "좀더 살펴봐야 할 것 같으이."
  "어린 아이에게 살초를 쓰다니? 그래 그 외에 다른 점은 없는
가?"
  "으음...... 참으로 놀라우이."
  "무에가?"
  "이 아이는 천성적인 병신이로군."
  "천성적인 병신이라니?"
  "이미 어미 뱃속에서부터 삼 초에 손상을 입었어."
  "허다면......?"
  "앞으로 스무 살이 한계야."
  "허다면 스무 살까진 살 수 있단 말인가?"
  "장담은 못 하이. 허나 그렇게까지 살아도 한 가지 분명한 것
은 무공만은 익힐 수 없다는 거네."
  "무공을 익힐 수 없다......?"
  "그러니 제자로 삼을 생각이라면 지금이라도 포기하게. 단념
은 빠를수록 좋을게야."
  "으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일세."
  "날더러 살려만 달라는 겐가?"
  "그렇다네."
  "이런...... 자네 제자를 삼을 녀석을 왜 내가 살려야만 한단
말인가?"
  "지금은 농담할 기분이 아닐세."
  "이해할 수가 없군."
  "뭐가 말인가?"
  "차라리 죽음보다 못한 상태의 아이 하나를 가지고 자네가
이만한 애착을 가지는 게 말일세."
  "......."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겐가, 저 아이가......?"
  "......."
  두 번째의 음성은 더 이상 처음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다.
  어둠 속의 두 사람.......
  장천홍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었던 신비한 존재들.......
  과연 어떤 내력을 지닌 인물들인가?
  어둠 속에 누운 장천홍은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 아직은 회생할 가능성은 점칠 수가 없다!

  ― 설령 회생한다 해도 무공은 익힐 수가 없다.

  ― 살아나더라도 이십 세가 한계일세. 천성적인 병신이니까
.......

  너무나 벅찬 운명을 지닌 아이였다. 처음부터 뒤틀린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
  어떤 운명이 이보다 더욱 기구한가. 그렇게 모진 운명을 안
고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장천홍이었다.

                 *           *           *

  북경(北京).
  황도로써 손색이 없는 곳이었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행인들
은 화려하고, 위엄이 서린 고루전각들을 수없이 볼 수가 있다.
  뿐인가.
  예쁘게 분단장하고 거리를 오가는 미인과 높은 기품이 서린
고관대작들은 너무나 화려해 보인다.
  거리를 꽉 채우고 각자의 행로를 오가는 그들은 분명 선택받
은 자들이었다.
  북경의 동북쪽.
  유별나게 청명한 하늘아래 거대한 저택이 서 있었다.
  단청을 한 대문에는 경계를 선 종복들이 다소 따분한 표정으
로 서 있었다.
  저택.
  이곳을 어느 뉘 있어 모르겠는가.
  이곳이야말로 당금 조정에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는 자의
대저택이었으니.......

  병부시랑 위한림.
  일찍이 천하의 수재들 가운데서도 이미 황제의 신임과 총애
를 한몸에 받은 자였다.
  약관도 못 되는 십칠 세에 당당히 과거에 급제했고, 겨우 약
관에 대명의 병권을 한손에 거머쥔 병부의 제이인자에 이르렀
다.
  일신에 지닌 무공은 하늘을 찌를 듯했고, 그 영민함은 천하
의 석학들도 혀를 내두르는 문무겸전의 귀재였다.
  후원.
  한 채의 정자가 조형의 균형에 맞추어 인공호수가 있는 한
곳에 아취있게 서 있다.
  정자에는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한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었
다.
  미색비단옷에 머리를 위로 질끈 묶어 틀어올린 인물이었다.
반듯한 이마에 오관이 단정한 인물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기이
하게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딘가 함부로 하지 못할 기운이 그로 인해서 형성된 듯한
인상이었다.
  연치는 기껏해야 약관, 그럼에도 내쏘는 기도는 만인을 굽어
보는 듯하다.
  그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고개를 수그린 채.......
  그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바둑판이 있었다.
  바둑.
  홀로 수담을 두는 그는 누구인가?
  그야말로 당금 황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소장파 관료들
의 우두머리 행세를 하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영재로 여겨지는
병부시랑이자, 이 저택의 주인인 위한림이었다.
  홀로 수담을 두는 그의 얼굴에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초조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어쩌면 그는 그 초조함을 삭이고자 이렇게 홀로 바둑알을 쥐
여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바둑알을 집어서 바둑판에 옮기는 그의 얼굴은 사뭇 심
각하였다. 매수마다 신중하였다.
  이처럼 신중한 나 혼자만의 수담을 두는 자는 일찍이 없으리
라.
  어느 순간, 바둑알 하나를 쥐어 막 바둑판에 놓으려는 그의
귓가로 한 줄기 뾰족한 비명이 때렸다.
  여인의 비명이었다.
  툭.......
  동시에 바둑알을 쥔 오른손이 바둑판 위 허공에서 우뚝 멈추
고 말았다.
  "......!"
  그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긴장감이 거기에서 팽만하였다.
  초조함도 섞인 듯한 표정, 이때 다시금 전혀 다른 방향에서
여인의 비명이 또 들려왔다.
  아아악.......
  그것 역시 무언가를 쥐어 짜는 듯한 비명이었다.
  "이럴 수가...... 산고에 겨운 여인의 비명이 거의 동시에 터
져 나오다니......."
  그는 쥐고 있던 바둑알을 무심결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툭!
  떼구르르.......
  바둑알들이 흩어졌다.
  순간, 떨어진 바둑알로 인하여 지금까지 조화를 이루었던 흑
백의 진형들이 균형을 깨는 형세로 바뀌어지고 말았다.
  여인들의 비명, 산고에 겨워 터뜨리는 비명들은 서로 아주
상이하였다.
  높고 낮은 듯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비명이었다.
  "아아아악......."
  "흐흐으―!"
  그렇듯 사뭇 다른 두 줄기 비명을 들으며 위한림의 이마는
땀방울로 가득차 버렸다.
  바둑을 쥐었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주먹을 만들었다.
  "으아아앙......!"
  이어서 한 차례 고성이 다시금 그의 고막을 때렸다.
  두 개의 비명 중 한 개를 터뜨렸던 여인이 드디어 아이를 낳
았던 것이다.
  "후우......."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허나 그의 한숨이 끝나기도 전
에 뒤이이서 또다른 아기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산고와 출산, 시각으로 보아 그것은
차이가 거의 없는 동시다발적인 출생이었다.
  "......."
  그는 뒷짐을 지고 정자 안을 거닐었다. 전신에는 상당한 초
조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일다경을 앞뒤로 거닐었을까.......
  후원으로 통하는 중문이 열렸다.
  삐그덕.......
  그로부터 허겁지겁 모습을 보이는 시비차림의 계집아이...
....
  예쁘장한 그녀는 멀리서 서성이는 위한림을 발견했다. 그를
향해 그녀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주인님......!"
  "어떻게 되었으냐?"
  "마님께서......."
  "그래 마님께서?"
  "방금 아주 예쁜 공주님을 순산하셨습니다."
  "계집아이라고 했더냐?"
  "예......."
  "오오...... 잘 됐구나. 참으로 잘 되었어."
  "하지만 도련님이 아니어서 어떻게 하죠?"
  "허헛...... 사내면 어떻고 계집이면 어떻느냐? 모두가 내 자
식이거늘...... 아무튼 알려주어 고맙구나."
  "뭘요......."
  그녀 역시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같이 기뻐한다.
  이에 위한림이 등을 구부려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산월(山月)이는 어떻게 되었느냐?"
  "산월은......."
  "......?"
  "마님과 공주님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뛰어 오느라 그건 아
직 듣지 못했는데요."
  "이런......."
  그녀의 대답에 그는 실망스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금방 알아보고 올까요?"
  "되었다. 누군가가 오겠지."
  그는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           *           *

  정실.
  신발을 벗지도 않은 상태에서 위한림은 침상에 비스듬하게
엎드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방실방실 웃고 있는 아기에게 고정되었고, 그들
두 사람을 아리따운 그의 부인은 흐믓한 미소를 띠고 바라보았
다.
  위한림의 표정은 상당히 기묘했다.
  이제 갓태어난 핏덩이었다. 자신의 핏줄이었다.
  게다가 딸아이의 얼굴은 비록 아직 윤곽이 잡히지 않은 상태
라 하지만 상당한 미태여서 이후 곱게만 자라난다면, 강호에서
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미인이 될 성 싶은 아기였다.
  그럼에도 위한림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과 불신의 표정이 서
려 있었으니.......
  아기를 살펴보던 그는 짧막하게 기음을 토하며 놀라고 말았
다.
  "허억......!"
  아기는 웃고 있었다. 손을 빨면서 웃고 있었다.
  '아름다운 아기다...... 하지만 왜 이렇게 요기가 흐른단 말인
가?'
  그는 수긍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그러한 마음을.......
  왜?
  무슨 이유로 자신의 핏줄이 낯설게만 느껴지는지.......
  그리고 그 느낌으로 인해 그의 가슴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지.......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가슴이 답답한가?'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에 전해지는 이 통증은......?'
  그는 아내 모르게 살짝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어 쓸어내렸
다.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건만 내부의 통증은 사
라지지가 않았다. 그는 아기의 옆에 누워있는 부인을 바라보았
다.
  아내는 미소띤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오......!
  그녀는 바로 그와 혼인을 하고자 산중을 걷던 마차 안의 여
인이 아니던가!
  우연스러이 비를 피해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사인의 가마꾼들
에게 윤간을 당했던 여인.
  물론 강제와 자유가 절반씩 섞인 정사였지만 나름대로는 최
대의 극락을 맛보았던.......
  이어서 천왕탑마와도 치열한 정사를 벌였던 바로 그 여인이
아닌가!
  그랬다.
  실상 그녀는 당시 이미 위한림과 약혼한 몸이었고, 그를 만
나러 가던 길이었다.
  상황이 그랬으니 그녀가 위한림의 부인이 되었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따라서 전혀 당혹스럽거나 놀랄 만한 일은 아
니었다.
  허나 당시의 상황은 너무나 미묘했던 형국이었지 아니한가.
  아무튼 그녀는 이제 위한림의 부인이었고,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지상에서 자신을 제외하고는 단지 두 사람에 불과했다.
  천왕탑마와 자신의 여종.......
  그들 만이 비밀을 지킨다면 동혈에서의 일은 어느 누구도 모
를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위한림의 자식마저 낳았지 아니한
가.
  저토록 방실방실 웃는 너무나 어여쁜 딸아이를.......
  여인의 얼굴은 다소 수척하였다.
  출산이란 건강한 여인을 이토록 초췌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어딘가 어둡고 칙칙한 기운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
은 마치 죽음을 앞둔.......
  지극히 병적인 상태에 즈음한 병자의 모습과도 비슷한 생기
였다.
  하지만 살결에 흐르는 혈색은 산모치고는 고운편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시선을 받았다. 순간, 미소가 흐르던 그녀는
남편의 눈길에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당신......."
  "뭐...... 가 말이오?"
  "당신을 닮은 멋진 사내아이를 낳아 선사해드리고 싶었는데
......."
  "별말씀을 다하시오. 우리가 하루이틀 살다 죽을 몸이오?"
  그는 오히려 부인을 위로하면서 손으로 얼굴을 훔쳤다.
  손바닥으로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그는 손수건 하나를 들어
거기에 묻은 땀을 닦아냈다.
  여인은 다소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아기를 보는 남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아기는 여전히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다소 굳은 표정의 위한림이었다.
  "죄송해요. 여보......."
  여인은 참담한 어조로 다시 사과를 했다.
  위한림은 그녀를 바라보지 않은 상태에서 대꾸했다.
  "허허...... 괜찮다고 하는데...... 다음 번에는 아기를 낳지 않
을게요?"
  "아니에요...... 하지만......."
  마침내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사람도 참...... 아이가 손가락을 빠는 게 배가 고픈 모양이
니 젖이나 물리구려."
  "......."
  여인은 말없이 옷고름을 풀어헤쳤다. 희디흰 살결 속에서 분
홍색 유두가 꺼내어져 아기의 입에 물려졌다.
  '아아...... 당신에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아기에게 젖을 물린 그녀의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었다.
  남편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는 심경이었다.
  '그렇듯 무섭게 비가 쏟아지던날...... 그 동혈에서의 일만 아
니었다면...... 이렇듯 죄스럽지는 않았을텐데...... 낳고 싶지 않
았던 아기었건만.......'
  그녀는 참담했다.
  사실 누구의 씨앗인줄도 그녀 자신 역시 몰랐다.
  네 명의 가마꾼인지, 아니면 천하를 압도할만큼 장대했던 거
한의 핏줄인지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후 분명히 잉태를 했고, 위한림은 지금까지
철석처럼 자신의 아이를 기다려 왔었다.
  상념에 젖은 여인.......
  어쩌면 그녀의 한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기에 더욱 깊
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위한림은 문득 아내의 얼굴이 극도로 창백해지는 것을 발견
했다.
  "부인...... 왜 그러시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가 젖을 물린 산모를 급히 불렀다.
  "여보......."
  그녀가 처연하게 그를 불렀다.
  "말하지 말고 편히 누우시오."
  위한림은 아이로부터 젖을 떼게하고 그녀를 눕히고 싶었다.
  "......!"
  하지만 너무나 평화스러운 얼굴로 젖을 빠는 아이를 보자 차
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젖이 떼이면 금방이라도 울고 말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
문이었다.
  이때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고자 했다.
  "여보......."
  "......?"
  위한림은 호흡이 급해지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는 소스라치
게 놀라 소리쳤다.
  "부인, 의원을 부르리다. 조금만 참아요."
  "아니...... 그게 아니에요......."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얼굴에 떠오르는 검은 그림자, 분
명 그것은 죽음을 예고하는 징조였다.
  위한림이 어찌 그것을 모를 리가 있으리.
  그녀는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입술을 놀렸
다.
  "사실 전...... 전......."
  그녀가 아이를 감싸 안았다.
  이때, 여인의 눈동자는 위로 향했고 부릅뜬 눈에서는 서서히
광채가 사라지고 있었다.
  차츰 근육이 굳어져 가는 여인, 아이를 안았던 손이 추욱 쳐
지고 말았다.
  아기는 여전히 그녀의 젖을 빨아대고 있었다.
  '설마...... 아니야. 젖을 물리는 순간은 절대 아니다.'
  그는 아기와 부인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아기는 너무나 태평스러이 눈을 감고 젖을 빨았다. 반면, 여
인은 점차 사색으로 변해 이제는 완전히 눈을 뒤집은 상태로 접
어들고 말았다.
  "여보!"
  위한림은 소리쳐 그녀를 불렀다.
  여인의 몸은 이미 식어가고 있었다. 피부는 검게 변했고 뜨
거웠던 숨결은 희미해져 갔다.
  체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경련을 하던 그녀의 얼굴이 베개 위로 들려졌다가 다
시금 떨어졌다. 안간힘으로 그를 부르던 그녀.......
  삽시간에 죽음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한 마디 유언도 못 한
가운데 말이다.
  어미는 죽었어도 아기는 입을 바쁘게 놀리며 젖을 빨아댔다.
  위한림은 부르르 신형을 떨었다.

  ― 급작스러이 목숨을 달리한 아내의 죽음!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그는 도시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동시에 두 모녀를 바라보는 그의 전신으로는 알 수 없는, 너
무나 차가운 전율이 스치고 지나갔다.
  전율.......
  일평생 맛보지 못했던 너무나 치가 떨리는 전율이었다.
  이때, 아기는 젖이 잘 나오지 않는지 짜증스러워했다. 하지
만 참고 아무리 빨아도 젖은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기는 젖을 빨다가 칭얼거렸다.
  위한림은 아기를 산모로부터 떼어냈다.
  순간, 아기는 심하게 몸을 뒤틀며 울어댔다.
  "으앙...... 으앙......."
  아기는 아주 구슬프게 울었다. 이 세상에 가장 슬픈 일을 당
한 듯이.......
  위한림은 이렇게 슬프게 우는 아기를 본 기억이 없었다.
  방실방실 웃을 때는 그토록 고운 얼굴이었건만, 이제 우는
모습은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너무나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아기었다.
  위한림은 부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그 점만은 확실히 읽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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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몸조심하세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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