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카인의 후예(20-24/80) 다시오립니다. 실수가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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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411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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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카인의 시작 #06

20
류지오는 가만히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러다 악몽에 시달렸는지 온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깨어난다. 류지오는 축축이 젖어 있는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마구 긁는다.
자기 방을 나와서는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간다. 도시에는 벌써 잠들어 있었다. 류지오는 침대 위에 올라가서는 잠들어 있는 어머니를 꼭 끌어안는다. 그러자 도시에가 잠에서 깨어난다.
"류지오...? 왜 그러니?"
"그냥... 여기서 자고 싶어요."
"다 큰 녀석이...!"
하지만 도시에는 아들의 몸이 얼음같이 차가운 것을 알고는 자신의 품으로 꼭 안아 준다.
어머니의 방에서 함께 잔 류지오는 일찍 일어나 빵을 굽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도시에가 출근할 준비를 하고 나오자 식탁에는 빵 두 조각과 우유 한 컵이 준비되어 있었다. 식빵은 계란을 발라 후라이팬에 굽어서 맛있어 보였다.
도시에는 두 조각 다 먹고 먼저 집을 나왔다.
"자. 이건 용돈."
도시에는 만엔 짜리 넉 장을 꺼내서 류지오에게 주었다.
쾌 많은 액수다.
"땡큐."
"저녁 먹기 전에는 들어와야 한다. 도꾸미와 함께 저녁 식사하는 건 어때?"
"그 앤 요즘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을 거예요."
"안됐구나. 그럼 엄마 간다."
"네."
류지오가 목욕을 하고 나오자 사도미가 2층에서 내려왔다.
"너 어제 이모 방에서 잤지?" "음."
"다 큰 녀석이 엄마 젖이나 만지고!" "어떻게 알았어?"
사도미는 대답은 않고 냉장고에서 우유 팩을 꺼내 한잔 따라 마셨다.
"넌 요즘 좋겠다. 오전 수업만 하고." "그래서 억울해?"
"음." "억울할 것은 없잖아. 너도 우리 학교에 왔으면 이런 시간을 가졌을 것 아냐?"
"아이! 정말 가기 싫어!"
"너무 늦지 않았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학교 가기 싫어!"
사도미는 욕실에 가서 씻고는 부다닥 다시 2층으로 올라가더니 책가방을 메가 내려온다.
"나간다!"
"원서 잘 써! 대학교에도 못 들어가면 우리 집안의 수치라고!" "너나 잘해! 시간만 보내지 말구!"
류지오는 도중에 선물 가게에 가서 목걸이 하나를 샀다.
초생달 모양의 은목걸이였다.
"글자도 새겨 주나요?"
"네."
가게 주인은 20대 후반의 귀여운 타입의 여자였다.
"뒷면에다 이렇게 적어 주세요. 사랑하는..."
"사랑하는... 누구요?"
여자는 빙긋이 웃어 보이며 물었다.
"잠시 생각해 보고요."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죠?"
류지오는 생각하느라고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후에에게."
"사랑하는... 후..에..에..게.."
여자는 예쁜 글씨로 정성스럽게 새겨 주었다.
"그리고 반지 좀 보여 주세요."
"후! 정말 선물할 사람이 많은가 봐!"
"장삿속 보이지 말고 싸게 해줘요. 선물할 사람이 수두룩하니까요!"
"알았어요! 손님!"
류지오는 그녀가 보여주는 반지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것처럼 이리저리 대충 둘러본다.
"아줌마가 끼고 있는 것은 안 팔아요?"
"어머! 이건 무척 비싸요."
"보석도 없는데 뭐가 비싸요?"
"흠! 이건 내 애인한테 선물 받은 거라구요!"
"남편한테요?"
"그래요. 장래의 남편한테요."
"그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기에 그렇게 흔해 빠진 은반지를 선물해요?"
"그래도 정성이 담긴 반지에요. 그 이가 직접 세공한 거니까요?" "그 사람 직업이 귀금속 세공업자인가요?"
"아니요. 은행원이에요."
"그럼 절대로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군요."
"이건 어때요?"
그녀가 꺼내 보이는 것은 역시 류지오가 마음에 두고 있는 그 반지였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만 비싸지 않을까요?"
"이런 실반지보다는 비싸지만... 날 더러 한번만 아가씨라고 불러 준다면 싸게 해 드릴게요."
"고마 와요. 아가씨! 그리고 이 반지 옆에다가도 글씨를 좀 새겨 주세요. 도꾸미에게.. 그리고 그 옆에도 L자를 적어 주세요." 류지오는 그 두개를 4만엔에 샀다. 류지오는 괜찮은 단골집을 하나 만난 셈이고 그녀는 기분 좋은 손님을 하나 만난 셈이었다.
학교에 도착해 보니 열 시였다. 원서 쓰느라고 모두들 바쁘게 움직였다. 대부분 부모들을 대동하고 왔다. 류지오는 고로히찌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넌 어디 냈냐?"
"난 아직. 그런데 넌?"
"우리 부모님은 동경대로 가라는데 난 황성으로 결정했어. 안전한 곳으로 가야지."
"지금 원서 쓰로 가는 거니?"
"그래."
"부모님은?"
"저기 있잖아."
"나 담배 하나 주라."
"임마! 미쳤냐? 우리 엄마가 보잖아!"
"빨리 줘!"
고로히찌는 자신의 가방 안에서 두 개피를 꺼낸다.
"하나만."
"자."
고로히찌는 몸을 가리고 류지오의 손에 담배 하나를 건네준다.
"불."
"짜식! 그럼 난?"
"나중에 하나 사줄게!"
"류지오. 너도! 황성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다가오자 고로히찌는 악수하는 척하면서 라이터를 건네준다.
류지오는 고로히찌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는 화장실로 바로 갔다. 그리고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그만두고 밖으로 나왔다.
원서를 쓰고 나면 대학 본고사를 치는 애들 외에는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필요가 없었다. 류지오는 자신의 고백을 담은 은목걸이를 후에 선생에게 줄 용기가 나지 않아 담배를 한대 피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류지오는 라이터와 담배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류지오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도꾸미는 류지오는 보더니 달려왔다.
"류지오!"
"왜 그래? 미친 망아지처럼!"
"너. 어디 갈 거야! 확실히 해! 난 네가 가는 데로 따라갈 거야!" "난 성진대에 갈려고 하는데 왜 그래?"
성진 대학교는 남자 공업 대학교였고 이미 그 곳은 원서 접수가 끝났다. 그런데 도꾸미는 그 학교가 남자 대학교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와 닿았다.
"안돼! 넌 황성 대학교에 가야 해!"
"싫어." "제발!"
"좋아. 대신 네 말대로 황성 대학교에 원서를 내면 앞으로 나한테 뭘 해 줄 거야?"
"널 하늘처럼 떠받들게!"
도꾸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류지오가 만약 싫다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울면서 붙잡을 것만 같았다.
"좋아." "정말?"
"음." 그 때 도꾸미의 어머니가 그녀를 찾았다.
"도꾸미. 손 내밀어 봐." "왜?"
"어서." "엄마! 곧 갈게요!"
도꾸미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류지오는 주머니에서 포장 꾸러미를 하나 꺼낸다. 도꾸미는 그게 무엇인지 대충 짐작하고는 무척이나 기뻐한다. 류지오는 도꾸미의 무명지에다 반지를 끼워 주었다.
"날 하늘처럼 떠받든다는 맹세 잊으면 안돼!"
"알았어."
도꾸미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지 아랫입술을 깨물어 보인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함께 원서 쓰로 교무실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원서를 써냈기 때문에 오전에 원서 쓰는 일이 거의 끝났다. 교무실에서는 이미 자리를 뜨는 선생도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가 지원한 학교에 원서를 넣으려고 떠나고 없었다.
"이 녀석!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옆에 있는 한 선생이 대뜸 화가 나서 소릴 쳤다.
"돈 벌러 간 모양이지!"
다시 다른 선생이 우스개 소리로 그 말을 받았다.
후에는 그 말을 듣고는 뜨끔했다. 류지오가 아직 안 왔기 때문이다. 후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교실로 가 보았다. 교실에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다. 교정에 가보니 유우끼찌와 호유도가 보였다.
"너희들 류지오 못 봤니?"
"우리도 류지오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정말?"
"네."
"어쩐다지?"
"왜 그래요. 선생님?"
"혹시 류지오가 대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그런 말하지 않던?" "아침에도 봤는데요!"
"그럼 어디 갔지?"
후에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유도관 건물 뒤에 류지오를 보았다.
"류지오!"
그런데 갑자기 인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후에는 그 쪽으로 달려간다. 유도관 건물 안쪽은 무척 어두웠다.
"류지오?"
후에는 어두운 곳을 살펴보았다.
"어머!"
갑자기 누가 팔을 잡는 바람에 후에는 기절할 정도로 놀란다.
"너. 이게 무슨 짓이니?"
후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류지오를 바라본다. 어두워서 그런지 류지오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가서 원서 써야지?"
"선생님. 잠깐만요."
후에는 다시 덜컥 겁이 났다. 류지오가 원서를 쓰지 않겠다는 건 아닐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부모님이 근래에 이혼을 했고 그 충격에 대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선생님. 눈을 감아 봐요."
후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류지오의 입술이 닿았다. 두 번째의 키스다. 석 달 전쯤 강변에서 키스를 한 적이 있었다. 후에는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입술을 벌리고 좀 더 깊이 받아들이려고 하자 류지오가 먼저 입술을 뗀다.
"아직 눈뜨지 말아요."
류지오는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낸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 걸어 준다. 목걸이는 아직 류지오의 온기가 남아 있어 따뜻했다. 후에는 류지오에게 선물을 받고 감격했는지 눈물을 흘리려고 글썽인다.
여자란 참으로 이상하다. 적당한 시기에 조그만 선물은 엄청난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선생님의 옆모습은 초생달을 닮았어요."
후에는 고개를 숙여 목걸이를 바라보면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 뒷면에 쓰인 단어들을 본 것이다.
류지오는 위선자를 가장 혐오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위선자이기에 자신이 가장 혐오스럽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이다.
후에는 류지오에게 두려움 비슷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후에 스스로의 깊은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후에는 류지오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고 관심을 가졌다.
류지오는 고로도 선생과 싶게 화해를 했다. 9월 달 고로도 선생의 교감 취임식 때 류지오와 고로도 선생이 서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후에는 류지오에 대해서 한층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후에는 류지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만약 류지오가 자신의 호의를 위선적인 행위로 간주해 버린다면 어쩌나 싶을 정도다. 그만큼 그를 대하는데 세심했고 싶게 흘리는 말 한마디도 주의했다.
후에는 류지오를 끌어안고 말한다.
"나를 사랑한다구? 바보같이 그럼 왜 이제 그걸 말해! 나도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류지오는 후에가 이렇게 흥분해 하며 기뻐하자 몹시 당황했다.
카인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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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카인의 시작 #06

21
후에는 류지오와 도꾸미, 고로히찌와 호유도를 황성 대학교까지 태워다 주었다. 뒷좌석에 덩치 큰 호유도와 함께 세 명이 앉자 비좁아 차가 터질 정도였다.
원서를 내고 돌아오면서 류지오는 레이꼬가 오후에 도장에서 만나자는 말이 생각났다. 물론 시간이 없다가 거절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거절해 놓고 도장에 한번 가 볼 생각이었다.
후에 선생이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럼 우리 짜장면 집에 가요."
류지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반점으로 들어간다.
"짜장면 곱빼기 세 개하고 보통 두개요."
류지오가 그렇게 시켰다.
"다들 짜장면 좋아하니?"
후에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류지오의 단독적인 행위에 다른 아이들이 반감을 가질 지도 모른다. 특히 도꾸미는 여자가 아닌가.
"싫으면 다른 거 시켜! 짜장면은 내가 다 먹을 테니까!" 류지오가 엄포를 놓았다. 도꾸미는 하늘같은 낭군님을 생각해서 꾹 참고 먹는다.
"도꾸미 맛있니?"
"음."
"내 것 좀 덜어 줄까?"
"싫어! 류지오! 이것도 억지로 먹는 건데!"
"정말? 그럼 내가 맛없는 걸 대신 먹어 줄까?"
"아니야. 맛있어."
류지오는 자기 그릇을 다 비웠다. 도꾸미가 끝내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후에도 남겼다. 후에는 학교 앞, 버스 정류소에 모두들 내려다 주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도꾸미는 학원에 안 가?" "벌써 늦었는걸..."
"오후에 뭐 할 거니?" "별로..."
도꾸미는 류지오와 함께 있고 싶었다.
"너희들 먼저 가!"
류지오는 고로히찌와 호유도에게 눈치를 준다.
"그래 너희 둘이서 잘 놀아라!"
류지오는 도꾸미를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아무도 없니?" "음."
"뭐 할 건데?" "그냥 들어가서 이야기나 하지."
"좋아."
도꾸미는 류지오의 집안에 들어가서는 집 구조를 둘러본다.
"와! 집이 참 멋지다!" "내 방, 한번 구경할래?"
"음."
도꾸미는 잔뜩 기대하고 류지오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도꾸미는 류지오의 방에 들어가서 신기한 듯 둘러본다.
"어때?"
"너무 호색적이야!"
"흐..."
도꾸미가 그런 표현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소녀의 대담성이 다시 발동하기 시작하는가 보다. 도꾸미는 벽에 붙어 있는 대형 누드 사진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건 무슨 테이프야?"
도꾸미는 류지오의 책꽂이에 잔뜩 꼽혀 있는 비디오 테이프를 가리킨다.
"빈 테이프야."
"음... 이런 걸 보면 너희 부모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니?" 도꾸미는 도색 잡지책을 손가락으로 눌러 가며 말한다.
"무슨 말?"
"이건 뭐야?"
드디어 도꾸미는 좀 더 성실한 책이 꽂혀 있는 커다란 책장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앨범첩을 가리키며 묻는다.
"사진첩."
"이렇게 많아!"
다섯 개의 두툼한 사진첩이 책꽂이의 한쪽 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봐도 돼?"
"안돼."
"보고 싶은데..."
류지오가 도꾸미의 양어깨를 뒤에서 잡자 도꾸미는 살짝이 피해 버린다.
"저 위에 있는 것은 네가 그린 거야?"
도꾸미는 천장에 있는 그리스 신화의 그림을 발견했다. 천장에다 직접 그린 것이었다. 그 그림을 에로스와 삼 미신이라고 류지오는 이름 붙였다.
"정말 아름다워!"
"도꾸미. 누워 봐."
도꾸미는 그 말에 겁을 먹고 류지오를 쳐다본다.
"보여 줄 것이 있어."
류지오는 두꺼운 커튼을 닫아 빛이 안 들어오게 했다.
"밤이면 좋을 텐데!"
"류지오...난..."
"자 어서 누워!"
이미 류지오에게 처녀성을 받친 몸이라 그런지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침대 위에 눕는다.
류지오가 불을 끈다. 낮이었지만 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딱 소리와 함께 천장에 빛이 들어오면서 그 신화의 그림만이 화려하게 떠오른다. 방의 네 모서리에 천장의 그림을 향해 비치도록 조그만 조명 장치를 해 놓았다. 도꾸미의 입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조명 장치로 인해서 방의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졌다.
어느새 류지오는 도꾸미의 어깨를 살짝이 누르고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온다. 도꾸미는 눈을 감는다. 류지오의 입술이 닿자 전율이 온 몸을 타고 흘러갔다. 류지오의 손이 도꾸미의 가슴으로 내려간다. 아주 작은 유방이었다.
류지오는 몇 번 더 키스를 하더니 말한다.
"우리 옷 벗을까?"
"부끄러워."
"옷이 너무 두꺼워서 애무할 수 없잖아."
도꾸미의 외투 단추를 풀었다. 도꾸미도 상체를 일으켜 외투를 벗는다. 안에는 여전히 교복을 입고 있었다. 시험을 치르고 나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복을 입고 다녔다. 교복을 입고 있는 도꾸미의 모습이 산뜻하게 보였다.
류지오는 도꾸미의 윗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도꾸미는 가만히 있다가 단추를 모두 풀자 팔을 뒤로해서 옷을 벗는다.
조그만 브래지어를 하고 있는 도꾸미의 모습은 앙징스러워 보일 정도다.
"추워."
도꾸미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고개만을 내밀고 류지오를 바라본다. 류지오는 재킷만 벗고는 침대 옆에 걸터앉는다. 두 명이 나란히 눕기에는 침대가 작았다.
"침대 안이 무척 따뜻해."
"나도 들어갈까?"
"안돼. 넌 그냥... 그대로 있어."
"도꾸미. 치마도 벗어."
류지오의 말에 도꾸미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이내 이불이 들썩였다. 그리고 자기 치마를 꺼내서 류지오에게 주었다.
류지오는 도꾸미의 치마를 곱게 개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팬티가 무슨 색깔이야?"
"맞춰 봐."
류지오는 이불 위로 손을 올려 도꾸미의 가슴 부위에 올려놓는다. 약간의 기복이 느껴진다.
"흰 색?" "아니."
"그럼 분홍색이겠구나?" "틀렸어?"
"그럼 하늘색?" "음."
"하늘색을 좋아하니?" "음. 깨끗해 보여."
류지오는 도꾸미의 가슴 밑까지 이불을 끌어내린다.
"브래지어도 벗어." "싫어."
"보고 싶어!"
도꾸미는 등뒤로 손을 넣어 직접 호크를 벗는다. 류지오가 왼쪽 어깨 끈을 내려 주자 도꾸미도 팔을 움직여 어깨 끈을 빼낸다. 오른쪽 어깨 끈은 자기가 직접 빼낸다. 류지오는 도꾸미의 가슴에 시선을 주지 않고 역시 브래지어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도꾸미는 가슴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이불도 그대로였다.
"예뻐."
류지오는 도꾸미의 조그마한 유방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다.
"작지?"
"지금은 작지만 그래도 귀엽고 예뻐."
류지오는 도꾸미의 유방을 자꾸 바라보면 부끄러워 할까 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팬티도 벗어." "싫어."
"보지 않을게. 그냥 벗기만 해." "약속해?"
도꾸미의 얼굴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굳어진 모습이다.
"약속해! 그 곳은 나중에 볼게."
나중이 언제인지는 몰랐지만 도꾸미는 이불을 다시 목까지 끌어올리고는 팬티를 벗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팬티를 내 주지 않는다.
"벗었어?" "음."
"정말?" "음!"
"그럼 팬티도 이리 줘." "안돼."
"어떤 팬티를 입고 있었는지 알고 싶어. 보여 줘." "놀리면 안돼!"
"그래."
도꾸미는 팬티를 내 주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삼각 팬티였다.
"도꾸미. 이거 다시 입어." "왜?"
"이걸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래." "아이! 싫어! 놀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도꾸미는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쓴다.
류지오는 팬티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기 옷을 벗기 시작한다. 팬티마저 벗어 버린다. 물건은 상당히 부풀어 있었다.
도꾸미는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류지오는 도꾸미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도꾸미와 피부가 닿았다.
"자, 내 팔을 베고 누워."
도꾸미의 목 밑으로 팔을 넣고는 오른쪽 어깨를 만진다. 도꾸미는 자기 가슴으로 팔을 오므리고는 류지오에게 안겨 든다.
"이대로 잠들면 어떡하지?"
"나 정말 잠 와..."
도꾸미는 눈을 감고 있었다.
"도꾸미, 손을 줘 봐."
도꾸미는 자기의 오른손을 류지오의 가슴 위로 내밀었다. 류지오는 도꾸미의 손을 잡고는 자기의 물건 아래로 가져갔다. 도꾸미는 잡지 안고 그대로 있었다.
"만져 봐."
"..."
도꾸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류지오는 도꾸미의 손을 펴도록 했다. 그러자 도꾸미는 류지오를 부드럽게 잡는다. 류지오는 다시 손을 올려 도꾸미의 뺨을 쓰다듬었다. 머리에 얼굴을 비비며 냄새를 맡아본다.
"무슨 샴푸야?"
"모르겠어."
도꾸미는 손을 움직여 조금 더 위를 잡았다. 귀두 바로 밑이었다.
"더 위를 잡아 봐."
도꾸미는 한참이나 가만히 있더니 귀두를 잡는다. 하지만 더듬지 않고 그대로 잡고만 있었다.
"그게 거북이 대가리야."
"어떻게 생긴 거야?"
"흐! 어떻게 생긴 건지 몰라?"
"음."
"그럼 한번 봐."
도꾸미도 유희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류지오의 물건을 보게 되면 자기의 그 곳도 보여 줘야 할 것 같았다. 도꾸미는 망설였다.
"어서 보라니까."
도꾸미는 지금 이 상태가 좋았다.
"안 볼래. 나중에 볼래."
"나중, 언제?"
"우리 둘 다 대학교에 가서."
류지오는 문득 잠이 들었다가 일곱 시쯤에야 깨어났다. 도꾸미의 손은 류지오의 배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것만 빼고는 잠들기 전과 똑 같았다.
도꾸미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류지오는 몸을 약간 틀어서 도꾸미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류지오의 움직임에 도꾸미도 잠에서 깬다.
"지금 몇 시야?"
모르겠어."
검은 색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고 있어서 날이 밝은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도꾸미는 고개를 들어 류지오의 눈을 바라본다. 서로의 입술이 상당히 가까워졌다. 류지오는 도꾸미와 입을 맞추면서 왼손으로 허리를 끌어안는다. 서로의 몸이 더욱 밀착된다.
류지오의 물건이 도꾸미의 허벅지에 닿는다. 도꾸미는 자신의 허벅다리에 부푼 물건이 지그시 눌러 왔지만 가만히 있었다.
류지오는 허리를 감고 있는 손으로 도꾸미의 전신을 더듬기 시작한다.
"안돼..."
류지오의 손이 삼각지로 들어오자 도꾸미는 저항하며 밀어낸다. 대신 류지오는 상체를 일으켜서는 도꾸미의 봉긋한 유방을 만진다. 도꾸미가 약간의 저항을 하는 동안 집안에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왔나 봐!"
"어머!"
도꾸미는 재빨리 일어나서 자기 옷을 찾기 시작한다. 류지오도 일어나서 불을 켠다. 형광등이 깜박깜박거리더니 곧 방안이 환해졌다. 도꾸미는 불이 켜지자 겨우 옷을 찾고는 팬티를 입으려는 중이었다.
"도꾸미. 어서 침대 밑에 들어가! 어머니가 올라오고 있어." "응!"
도꾸미는 두말하지도 않고 옷을 가지고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류지오는 침대 위로 올라가서 이불을 덮었다.
도시에는 노크도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도꾸미는 침대 밑에서 잔득 웅크리고 있었다.
"잤었니?"
"네."
"어제도... 악몽을 꿨니?"
"아니요... 그냥..."
"다 큰 녀석이 엄마 젖이나 만지고... 사도미가 웃겠다!" 류지오는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인다.
이제 도꾸미에게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나... 배고파요. 불고기 해 줘요."
"알았어. 하지만 샤워부터 하고 차려 줄게."
"네. 그럼 그 동안 내가 시장 봐 올게요."
"후후... 착한 것!"
도시에는 류지오의 볼을 잡고 흔든다. 도시에가 나가자 류지오는 재빨리 일어나서 바지를 껴입었다.
"도꾸미. 이제 나와."
"휴우!"
도꾸미는 기어 나와서는 한숨을 쉬었다. 도꾸미는 자기 옷으로 가슴을 가리고 류지오를 노려보았다.
"넌, 아직도 엄마 젖 만지니?"
"내 엄마 젖, 내가 만지는데 왜?"
"치! 마마보이!"
"마마보이가 어떤 건지 보여줄까?"
"하지마!"
류지오가 손을 뻗자 도꾸미를 얼른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도꾸미와 류지오는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왔다. 도꾸미는 자기 구두를 신발장 안에 곱게 넣어 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다시 쉬었다.
"류지오? 너 돈 있니?"
갑자기 도시에가 욕실에서 소리치자 도꾸미는 깜짝 놀라서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네. 있어요."
류지오와 도꾸미는 함께 시장에 가서 고기와 채소 등을 샀다. 함께 시장을 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도꾸미. 집에 다시 들어가서 함께 저녁 먹자."
"안돼. 너무 늦었어."
"집에다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되잖아?"
"좋아."
도꾸미는 공중 전화박스에서 집에다 전화를 하고 류지오와 함께 다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자 도시에가 막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도꾸미는 류지오의 어머니와 마주치자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했다.
"도꾸미도 왔구나! 너희 둘이 어디서 만난 거니? 류지오가 초대했니?"
"어머니는...! 초대는 무슨 초대요. 그냥 시장에서 만났어요." "그래? 도꾸미... 니네 집은 여기서 상당히 멀텐데?"
도시에는 류지오가 시장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눈치로 말했다. 그리고 도시에는 자기가 욕의 차림이라 도꾸미에게 실례가 될까 봐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류지오와 도꾸미는 주방에 나란히 서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맥이 없어 보이던 류지오였다. 하지만 오늘은 완전히 달라져 보였다.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류지오. 부엌에 환풍기 돌아가니?"
"네."
도시에는 거실의 창문을 열어 놓았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집안에 냄새가 배기는 것보다는 낫다 싶었다. 류지오는 도꾸미와 자신이 황성 대학교에 원서를 냈다고 말해 주었다. 아마 사도미도 황성에 원서를 냈을 것이다.

카인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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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카인의 시작 #06

22
류지오는 도꾸미를 정류소까지 데려다 주고는 도장으로 가 보았다. 원래는 오후에 레이꼬를 보러 도장에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도꾸미와 함께 잠들어 버려서 그만 못 갔었다. 지금 도장으로 향하는 것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일곱 시에서 여덟 시까지는 후센 사부가 직접 원생들을 가르쳐 준다. 그 시간이 끝나면 몇몇 사람은 남아서 혼자 연습하기도 한다.
지금은 거의 아홉 시가 다 되어 갔다. 아마 도장 문이 벌써 잠겨 있을 지도 모른다. 반년 전만 해도 류지오는 그 곳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다. 레이꼬와 함께 언제나 열 시나 되어야 도장을 나왔다. 그래서 언제나 도장 문을 잠그고 여는 것은 자신이 맡아서 하던 일이었다.
도장 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지만 불도 켜져 있었다. 류지오는 매트에 올라서기 전에 신발을 벗고 천천히 안을 살펴보았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간 사람이 문도 잠그지 않고 불도 끄지 않다니... ' 류지오는 화가 났다. 순간 자기의 오른손이 뒤로 낚아채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류지오는 느꼈다고 생각하기도 이전에 반응했다. 류지오의 반사 신경은 그 누구보다도 빨랐다. 하지만 그 뒤의 조치는 정말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즉흥적이었다.
무엇이던지 뒤에서부터 잡히게 되면 본인은 앞으로 몸을 당기는 것이 당연한 처사였다. 류지오는 그 반대였다. 상체를 완전히 뒤로 젖히면서 몸을 비틀었다. 그러면서도 자유로운 팔로 상대방의 목덜미를 감는다. 이미 자신의 중심은 잃었지만 상대방의 중심에 의지할 수 있었다. 함께 넘어지면 자신은 팔이 부러질 것이고 상대방은 목이 부러질 것이다. 역시 상대방은 당황하고 잡았던 팔을 얼른 놓아주며 자신도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류지오의 수에 걸려 같이 넘어지고 있었다. 류지오는 상대방이 레이꼬라는 사실을 알고는 목을 감았던 팔을 얼른 풀어 주었지만 류지오 역시 중심이 흐트러져 쓰러진다. 레이꼬의 몸을 짓누를까 봐 재빨리 두 팔을 벌려서 매트를 짚었다. 매트가 깔려 있었지만 넘어지면서 레이꼬는 충격을 받았다.
레이꼬가 아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류지오는 빙긋이 웃는다.
"왜 왔어?"
레이꼬는 정말 화가 났는지 날카로운 음성으로 물었다.
"뒤에서 갑자기 공격하는 것은 누구한테 배웠지?"
류지오는 그녀에게 있어선 사부라 할 만한 사람이었다. 사실 류지오는 레이꼬에게 네 손가락이 꺾여들 때는 상당히 당혹감을 느꼈다.
"왜 지금 쓴 방법은 내게 가르쳐 주지 않은 거야?"
레이꼬는 류지오에게 당한 것이 억울한 듯 뾰루뚱하게 물었다.
"이제 알았으니 됐잖아?"
"왜 이제야 나타나는 거야?"
"내가 못 올 곳에 왔나?"
"나쁜 자식!"
레이꼬와 류지오는 쓰러질 때 그대로였다. 류지오가 레이꼬의 양어깨 옆으로 두 손을 짚고 있고 하체를 누르고 있어서 레이꼬로서는 류지오가 비키기 전에는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다. 예전에도 류지오와 함께 대련을 해 왔기 때문에 서로 몸이 접촉하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자세는 분명히 이상한 점이 많았다. 얼굴을 너무 가까이 되고 있어 상대방의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였고, 하체는 류지오에 의해서 꼭 눌려 있었다.
류지오는 얼굴을 다가가서 입술을 맞추었다. 그리고 가만히 입술만 맞추었다가 뗐다. 하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키스한 적은 없었다. 만약 장난스럽게 입을 맞추었더라면 당장에 뺨때기를 얻어맞았을 것이다. 예전에도 그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켜."
"싫은데?"
"빨리 비켜 줘!"
"예전 같으면 내 사타구니를 찾겠지?"
"기회만 있으면 꼭 차 버리고 말 거야!"
류지오는 빙긋이 웃으며 재빨리 일어났다. 레이꼬는 도복을 입고 있었고 안에는 흰 티셔츠를 받쳐입고 있었는데 이미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레이꼬는 도복을 벗고는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다. 하지만 류지오가 지켜보는 앞에서는 갈아입을 수 없어서 탈의실로 들어갔다. 탈의실이라고 해봐야 화장실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었다. 레이꼬는 류지오를 믿는 모양인지 문을 꼭 닫지 않았다.
류지오는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찬바람이 몹시 불었다.
잠시 뒤에 레이꼬가 나왔다. 분명히 할 말이 있어서 불렀을 테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류지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갔다. 분명히 좀 전의 키스 때문에 마음이 상한 모양이었다.
류지오는 뒤쫓아가서 레이꼬와 나란히 걸었다.
"왜 날 보자고 했어?"
"언제 널 보자고 했니?"
"어제 나더러 도장에 나오라며?"
"그래서 지금 나타나는 거니?"
"오늘 원서 쓰는 날이었어."
레이꼬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류지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류지오는 한쪽 눈썹의 끝을 떨어뜨리고는 그 다음 입술을 어리광스럽게 다물고 나서 왼쪽 눈썹의 끝을 치켜올렸다. 정말 남이 따라 못할 재주였다. 난처한 일을 당할 때나 한심한 것을 봤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표정만으로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상당한 재주였다.
레이꼬는 류지오와 함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레이꼬는 커피 두 잔을 마음대로 시켜 놓고는 종일 앉아 있을 심산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커피잔 안에 스푼을 넣고 물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왜 그래?"
"나 어느 대학교에 가지?"
"아 그러고 보니! 대학 진학 때문에 그러는구나!"
"난 말야..."
"내가 뭐랬어? 싸움질은 진작 하고 공부 좀 하라고 했지?" "그게 아냐... 난 결정을 할 수 없어."
"..."
"류지오. 내가 만약 내 부모님의 입장이라면 내가 지금 다니는 대학을 포기하고 경찰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니?" "아! 그러고 보니! 경찰대에 가려고 하는구나!"
류지오의 말투는 마치 장난하는 것 같았다.
난 지금 심각해!"
"싸움질하는 것이 그렇게 재밌어?"
"류지오!"
"알았어. 화내지마. 미안해."
류지오는 잠시 자숙하더니 말을 이었다.
"요즘 여자들에게도 경찰대가 인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잖아? 누나가 경찰이 되고 싶다면 그 곳에 가야지.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야.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야."
그녀를 누나라고 호칭할 정도로 류지오는 진지하게 말했다.
"고마워."
레이꼬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레이꼬가 경찰 대학교에 가려고 하는 것도 류지오의 영향이 없잖아 있었다. 레이꼬가 단순히 호신술용으로 무술을 배우는 데 그쳤다면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꼬는 승부욕이 상당한 여자였다. 레이꼬는 류지오에게 3년여 동안 무술을 배우며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던 레이꼬가 경찰 대학교에 가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고 설사 입학하기 되더라도 견디어 내기 힘든 생활일 것이 분명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언제나 자신감을 가져야 해."
류지오는 그 말을 해주고는 레이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가자고 했다. 레이꼬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걷기는 처음이었다. 레이꼬의 집까지 와서야 서로 헤어졌다.
"잘 가!"
"음."
레이꼬는 자기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류지오를 한번 돌아본다. 몇 개의 그림자가 류지오의 발밑에서부터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류지오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엄마의 방에서 잘 모양인지 도시에의 방문을 열었다. 도시에는 담배를 피고 있었다. 도시에는 당황하며 담배 불을 끄려고 했지만 마땅하지 않았다. 휴지 한 조각을 뜯어 놓고 그 곳에다 담배 재를 털고 있었던 것이다.
류지오는 자신의 어머니가 담배 피는 것을 처음 봤다. 류지오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도시에는 상당히 난처해하고 있었다.
류지오는 빙긋이 웃으며 도시에 곁으로 다가갔다. 류지오는 자신의 어머니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담배를 빼냈다. 담배는 3분의 2정도가 남아 있었다. 도시에는 자기가 담배를 피운 것에 상당히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류지오는 대담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 한 모금 빨았다.
"넌... 피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도시에는 모기 소리처럼 작게 말했다. 류지오는 그 휴지 조각에다 담배 불을 비벼 껐다.
"엄마가 담배 피는 줄 몰랐어요!"
약간의 질책이 섞인 말이다. 류지오 역시 의외였다. 이혼한 것 때문에 담배를 피우게 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도시에는 이혼한 뒤 더욱 활기에 차 있었다. 어색한 시간이 계속 흘렀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류지오였다.
"엄마, 우리 데이트할까요?"
류지오는 성인 나이트클럽 앞에 들어섰다.
"이런덴 아직 못 들어가..."
류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시에의 손목을 잡고 들어섰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내가 특유의 억양으로 꾸벅 인사를 할 뿐 류지오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도시에는 자신의 아들의 나이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 도어 보이는 류지오가 중년 부인을 하나 낚은 젊은 제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들과 어머니가 손을 마주잡고 이런 곳에 올 리 없었다. 다만 이들은 예외이지만 말이다.
요란스런 음악 소리와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조명이 사람의 정신을 나가게 만들었다. 류지오는 이런 곳에 처음이었다.
뻔질나게 차려입은 웨이터가 자리를 안내해 준다.
"맥주 네 병하고 과일."
웨이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라졌다. 무대 위에는 여자 하나가 가릴 곳만 가리고는 몸을 흔들고 있었다.
"어때요?"
"정신없어!"
류지오는 맞은 편에 앉아 있다가 도시에의 옆자리로 옮겼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이런데 왜 오죠?"
"..."
음악이 끝나고 댄서의 춤도 끝난 것 같았다. 시끄럽고 요란스런 음악이 다시 귀를 때렸다. 무대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까 그 웨이터가 맥주 네 병과 안주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뒤로 두 명의 여자가 서 있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합석 좀 해도 될까요?"
류지오가 앉아 있는 테이블은 네 명이 앉을 수 있었다. 류지오가 대답이 없자, 웨이터는 다시 물었다.
"손님. 합석 좀 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웨이터의 말투는, 류지오가 나이가 어려 보여서 그런지 약간의 협박조가 섞여 있었다.
"안될 건 없지만... 너는 눈도 없냐?"
류지오가 대뜸 반말을 지껄였다. 도시에는 겁을 집어먹고 그 웨이터를 쳐다보았다. 웨이터의 날카로운 눈이 류지오를 노려보고 있었다.
"뭘 봐?"
류지오는 그렇게 말하며 특유의 표정을 짓는다. 워낙 어두워서 잘 보일 리는 없지만 마치 그의 태도에 울고 싶다는 것 같았다. 반면 웨이터는 샛소리를 내며 표정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주먹이 날아올 것 같은 기세였다. 그 때 그와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그 웨이터를 달래며 데려갔다.
"임마. 남 영업하는데 웬 방해야?"
"형님은... 누가 영업을 한다는 거요?"
도시에의 귀에 그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어렴풋이나마 들렸다.
나이트 클럽에서 맥주 네 병을 마시고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내가 운전하면 안될까요?"
"그건 안돼! 음주 운전으로 경찰관한테 걸리면 어떡하니?" "경찰관이 있으면 어때요? 나이트 클럽에 뽀이들도 나한테 겁먹는데 경찰관이 뭐가 무서워요."
"운전은 안돼."
자신도 맥주를 두 잔이나 마신 도시에는 단호하게 말하고 운전석에 앉았다. 술기운에 뺨이 조금 얼얼했다.
도시에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안되겠어. 차를 두고 택시나 타고 가자."
"왜 그래요? 술 챘어요?"
"그런가 봐..."
"자... 그러니 내가 몰고 가겠다니까요."
류지오는 내려서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자 어서 내려요."
도시에 역시 류지오의 말에 따랐다.
류지오의 운전 솜씨는 능숙했다. 류지오는 처음엔 자신의 아버지의 차를 몰래 꺼내 돌아다니며 운전을 배웠다. 그러다가 몇 번이나 차에 흠집을 내서 돌아왔다. 하지만 유우끼찌는 그런 일을 묵과해 주었다. 유우끼찌는 상당히 관대한 아버지인 셈이다. 게다가 정식으로 연수를 받게 하고 운전 면허증도 따도록 도와주었다.
도시에는 2년 전에 차를 구입했다. 류지오는 그 덕에 차 열쇠를 복사해서 어쩌다 어머니의 차가 차고에 쳐 박혀 있으면 차를 끌고 돌아다닌 것이었다. 하지만 운전 면허증을 가지고 있어도 차를 못 타게 하는 것이 도시에였다. 유우끼찌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도시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술에도 취하고 피곤한 모양이었다. 도시에가 문득 눈을 뜬 것은 경적 소리 때문이었다. 자기 차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다.
류지오는 액셀레이터를 끝까지 밟고 있었다.
"류지오 속력을 줄여!"
한 대의 오토바이가 차선을 넘어서 앞지르려고 했다. 편도 4차선 도로인 만큼 고속도로보다 더 잘 뻗어 있었다.
신호등이 빨간 색으로 바뀌었다. 류지오는 차를 멈추지 않고 바로 통과했다. 뒤에 오는 오토바이도 연달아 그냥 통과하고 있었다.
"류지오, 속력을 줄여!"
속도계는 이미 시속 200KM를 넘어서고 있었다. 도시에는 더 이상 류지오에게 속력을 줄이라는 말도 붙일 수 없었다. 두 번째 교차로에서는 빨간 불을 받지 않았다. 류지오는 더 이상 말썽을 피울 생각이 없는지 속력을 줄이더니 샛길로 빠져들었다.
골목길을 가면서 류지오는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본다. 도시에는 류지오를 쳐다보지 않는다. 화가 났거라 정신이 나간 모양이었다. 아마 둘 다 일지도 모른다.
골목길을 나와서 도로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말썽을 피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대의 오토바이가 골목길을 막고 서 있는 것이다.
"류지오 돌아가."
도시에는 위엄 있게 말했다.
류지오는 후진 기어를 넣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뒤쪽에서도 몇 대의 오토바이가 다시 나타나 길을 막았다.
이번에는 도시에가 류지오의 얼굴을 쳐다본다. 류지오는 전혀 당황하거나 난감한 기색이 아니었다. 간단하게 말해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흘리는 버릇이 있는 그로서는 상당히 심각해 있는 셈이다.
몇 명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다가왔다. 그리고는 차 유리에 침을 뱉고는 조롱하기 시작했다.
"류지오 가만히 있어. 나가면 안돼."
그들은 한결같이 검은 색 가죽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한 녀석이 겹칼을 꺼내더니 시퍼런 칼날을 꺼내 흔들어 댄다. 차를 긁어 놓을 모양이다.
류지오는 클러치를 밟고 거세게 몇 번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놓는다. 그러자 그 녀석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선다. 엔진의 공진하는 소리가 더욱 도시에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류지오는 네 번째 액셀레이터를 밟으며 클러치를 떼버린다. 그리고 앞에 있는 오토바이를 박아 버릴 생각인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몇몇 녀석들이 겁을 먹고 오토바이를 비킨다.
날카로운 쇠붙이의 마찰 소리가 들렸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는 몇 미터나 미끄러져서 여전히 피하지 않고 있는 오토바이의 발통과 거의 닿을 정도에서 멈추어 선다.
"둔한 녀석이군..."
류지오는 나직하게 혼자 중얼거렸다. 류지오는 다시 후진 기어를 넣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다시 1단 기어를 넣고는 앞으로 전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오토바이 역시 정면으로 달려온다.
"멈춰!"
도시에가 소릴 질렀다. 도시에의 외침에 류지오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나간다.
"안돼! 나가지마!"
하지만 류지오는 운전석에서 내려 차 문을 닫아 버리고 있었다. 차안과 밖의 온도차가 심했지만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검은 재킷을 걸치고 있는 녀석이 헬멧을 벗었다. 류지오는 그가 낯이 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 아래까지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 역시 말이다.
'붉은 모자.'
류지오는 그를 당구장에서 본 기억이 났다. 거기서 누구와 당구를 하고는 상대편의 손가락을 잘라 버린 그 사내를 여기서 만난 것이다.
"어린 녀석이 건방지군!"
그는 헬멧을 오토바이의 손잡이에 걸어 놓은 뒤, 내려서 다가왔다. 류지오보다 10센티미터는 더 커 보였다.
류지오는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다리를 두 손으로 막았다.
"제법인데."
류지오는 계속 그의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너도 공격해라!"
"만약 내가 당신한테 이겨 받자 저 사람들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바보 같은 자식! 그러니 한 명이라도 더 때려 눕혀야지 직성이 풀릴 거 아니냐?"
"나야 좋지만 내가 보호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마치 발차기 연습을 하는 것처럼 똑 같은 힘과 똑같은 방향으로 공격하고 류지오 역시 쉽게 방어만 했다.
"좋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녀석이군!"
"당구장에서 당신을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날 본 적이 있다구?"
"네. 상당히 잘 치더군요. 나와 실력이 비등하더군요." "흐흐! 이번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군!"
그런데 그의 공격은 더욱 사나워졌다. 이젠 손이 저리고 아파 왔다. 더 이상 손으로는 그의 발공격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오토바이 한대가 다가왔다.
"오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잠시 기다려!"
그의 공격은 더욱 날카롭고 강해졌다. 류지오는 고통을 무릅쓰고 그의 걷어차는 다리를 옆구리에 맞아 준다. 그리고 그의 발목을 겨드랑이에 꼈다. 다음 동작으로 이어져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을 테지만 그냥 놓아주었다.
"오빠! 어서 가잔 말야!"
여자는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알았어."
그는 류지오에게 다시 다리를 잡힐까 봐 공격하지 못했다.
"돌아가자!"
류지오는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상당히 아름다운 여자였다. 여자도 류지오를 한번 쳐다보더니 냉소를 짓고는 다시 헬멧을 쓰고는 돌아가 버린다.
그들이 모두 돌아가자 류지오는 차안으로 돌아왔다.
"엄마? 괜찮아요?"
도시에는 고개를 숙이고는 크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류지오는 어머니의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한다.
"다 갔어요... 이제 아무 일도 없다구요..."
"류지오 넌? 넌... 괜찮은 거야?"
류지오의 손목 부근은 구두굽에 긁혀 발갛게 그어진 선이 서로 얽혀 있었다.
"괜찮아요. 미안해요... 엄마."
"정말 넌 몹쓸 애구나! 흐윽!"
도시에는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류지오를 끌어안았다.

카인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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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카인의 시작 #07

23
류지오에게는 사도미 말고 에이꼬라는 이종 사촌이 한 명 더 있었다.
지난해에 동경대 경제학과에 원서를 냈다가 떨어져서 재수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에이꼬의 부모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도시에는 류지오에게 일러두었다.
"에이꼬가 우리 집으로 올라 온다는구나. 다른 데 가지 말고 집 지키고 있거라. 그리고 못된 장난하지 말구!"
류지오는 도시에에게 그런 명령을 받고는 종일 에이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꾸미에게 오전에 전화가 왔었다. 류지오는 자기 집에 이종 사촌이 온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는 만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고로히찌에게도 전화가 왔었다. 어제 저녁에 오토바이를 한대 훔쳤다는 것이다. 호유도와 같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역시 에이꼬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류지오는 나중에 다시 전화해 주기로 했다.
열두 시쯤 되어서 에이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을 못 찾겠다는 것이다. 못 찾는 것이 아니라 찾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역에 와 있으니 나와 달라는 것이다. 류지오는 역까지 그녀를 마중하러 나갔다.
류지오는 아주 어렸을 때 그녀를 한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자신은 어린애였고 그녀는 숙녀였었다. 유치원에 다녔던 류지오는 초등 학교에 다니는 모든 사람을 신사와 숙녀로 봤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류지오는 그녀에 대한 아주 약간의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류지오는 친가 쪽으로는 낯이 익지 않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유우끼찌는 친척들과 잘 만나지 않았다.
도시에는 두 명의 언니만 있을 뿐 오빠나 남동생은 없었다. 사도미는 작은 이모의 딸이다. 작은 이모와는 같이 도쿄에 사는 만큼 만날 기회가 많았다. 반면 큰 이모는 고베에 살았다. 고베에 사는 이모에게는 에이꼬와 류지오보다 네 살이나 적은 사토오가 있다.
류지오는 사토오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사토오는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다. 그는 인생의 반을 병원에서 지내야 할 운명인지도 몰랐다. 아들의 병치레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집안은 아직까지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고 긍긍전전하는 형편이었다.
어느새 역까지 도착했다.
전화박스 앞에서 얌전하게 서 있는 숙녀가 눈에 띄었다. 갈색 외투의 어깨 위로 짙은 흑색의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흰 털실 장갑을 끼고 작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 아직 에이꼬는 류지오를 알아보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류지오는 설레는 마음으로 에이꼬에게 다가갔다. 에이꼬도 류지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류지오?"
류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류지오는 그녀의 가방을 들어주었다. 토요일이라 전철 안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붐볐다.
"무슨 과에 원서를 낼 거예요?"
"경영학."
"무슨 대학요?"
"동경대."
"그래요? 동경대는 원서 접수가 끝나고 오늘 본고사를 치를텐데..."
"음... 오전에 벌써... 시험을 쳤어..."
"그래요? 잘 쳤어요?"
"응."
에이꼬는 정말 잘 쳤는지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일본 최고의 명문으로 자처하고 그렇게 인정해 주는 것이 동경 대학이다. 평균 경쟁률 6대 1, 여섯 명중에 다섯 명은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에이꼬와 류지오는 그 학교로 다시 와서 이리저리 교내를 돌아다녔다.
"이제 그만 가요. 앞으로 매일 이 학교에 다니며 지겹도록 볼텐데..."
"사실 난 자신 없어..."
"그렇지도 않겠는걸요. 누나 얼굴이 자신 만만한잖아요? 합격하면 나한테도 한턱 내야 해요."
류지오는 그녀가 이 학교에 합격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에이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울해 보였다.
"우리 여기서 점심 먹고 갈까요?"
"난 배 안 고파."
"난 배고픈데..."
에이꼬는 활짝이 미소를 지으며 류지오의 손을 잡는다. 손을 잡은 쪽은 에이꼬였지만 류지오가 가는 데로 졸졸 따라갔다. 류지오는 대학교 주변의 음식점에 들어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류지오는 집으로 돌아오며 가까운 비디오 대여점에 들어가서 비디오 테이프 두개를 빌렸다.
"비디오 본 적 없죠?"
"..."
"공부하느라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류지오는 비디오를 틀어 주고는 냉장고에서 오렌지 쥬스를 가져다주었다.
비디오만 보고 있자니 잠이 쏟아졌다.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르겠지만 일어나 보니 에이꼬가 보이지 않았다.
변기통에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에이꼬가 나왔다. 류지오는 여전히 자는 척했다. 에이꼬는 비디오를 보지 않고 집안 이곳 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었다. 대부분 류지오가 미술 학원에 다니면서 그린 것들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옆벽에는 작은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이른바 케리커쳐라는 인물 풍자화였다. 몇 달 전 연립 여당의 출범과 함께 수상이 된 호소다니의 케리커쳐도 걸려 있었다. 그 중에 도시에의 케리커쳐도 있었다. 에이꼬는 그제야 이것들이 류지오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이꼬는 2층으로 올라가서 방문을 열어 보았다. 향긋한 냄새가 났다. 사도미의 방이었다. 에이꼬는 사도미의 방을 닫고는 다시 류지오의 방문을 열어 보았다. 역시 사도미의 방에서 나는 향기가 조금 배여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유류성 물감 냄새가 짙게 났다. 류지오의 책상 위에는 커다란 그림 한 점이 미완성 된 채 올려져 있었다. 그 그림의 여인이 누굴까 하고 에이꼬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천장의 세 명의 미의 여신과 화살통을 어깨에 맨 큐피드도 보인다.
에이꼬는 갑작스럽게 환상 속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캐비닛을 열어 봐요."
에이꼬는 천장의 신화 그림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류지오의 소리에 깜짝 놀란다.
"어머!"
"어때요? 그림이."
"이상한 세계로 온 것같아."
류지오는 에이꼬가 상당히 감상적인 여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캐비닛 안에도 그림이 있어요."
류지오는 자물통을 열고는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류지오가 특별히 관심을 가진 것은 인물화였다. 아주 세밀한 곳까지 그린 나체상이 나오자 에이꼬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물론 천장에 그린 세 명의 미의 여신들도 나체였다. 하지만 이번 것은 상스러운 점이 많았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나체화의 가장자리를 둘러 가며 갖가지의 포즈를 취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계속 누드 그림만이 나왔다. 이 모든 그림은 류지오가 미술 학원에 가서 9년 간 배운 솜씨였다.
학원의 한달 수강료가 20만엔이다. 만엔 짜리 동네 학원과는 역시 질적으로 틀린 곳이었다. 각 분야의 전문적인 강사들부터, 다양한 종류의 기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 고액의 수강료는 모두 유우끼찌가 지불했다. 류지오는 국민학교 3학년부터 얼마 전까지 9년 가까이 다녔었다. 그 덕에 천황 미술전에서도 입상한 적이 있었다.
류지오는 그 곳 학원에 다니는 원생들의 동아리인 구름천이란 곳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구름천에서는 일년에 한번씩 소규모적인 갤러리를 가졌다. 류지오는 그 갤러리에서 누드 면에서는 자기의 작품으로만 채울 정도였다.
류지오는 커다란 캐비닛의 안쪽 면에다 세워 놓은 구름 속의 여자들이란 작품을 보여 주었다. 캐비닛에다가 억지로 끼어 넣어 둔 것을 다시 꺼내느라고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 앞에 자질구레한 그림들을 모두 치우고 약간 벌어진 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틀의 끝 부분을 잡고 잡아당기자 캐비닛과 나무틀이 긁히는 소리에 인상이 찌그러질 정도였다. 일곱 명의 여자들이 뒤엉켜 있는 군집 누드화였다. 구름천의 아리따운 누님들이 류지오에게 특별히 배려해서 모델을 서 준 것이었다.
"아마 이건 내 최고의 작품일 거예요."
류지오가 천황 미술전에서 2위로 입상한 뒤에 구름천에서는 일대 파티가 벌어 졌었다. 류지오는 그 파티에서 군집 누드를 그려보고 싶다는 포부를 말했고 일곱 명의 여자들이 흔쾌히 승낙한 것이었다. 구름천에서는 일곱 명의 여자 외에도 류지오와 두 명의 미대 남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일곱 명의 누님들은 류지오에게만 그 기회를 주고 두 명의 남자들에게는 입실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그림이 구름천에서 그린 마지막 작품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부탁에 따라 다른 곳에 출품하지 않고 이 곳 류지오의 수집 창고에 쳐 박혀 있었던 것이다.
"누나한테 자랑 좀 해도 돼요?"
에이꼬는 누드화들 때문에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음."
에이꼬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거실에 걸려 있는 것 있죠? 여자가 아기를 안고 있는 거요." "음. 봤어."
"작년 9월 달에 천황 미술전에서 2위로 입상한 거예요. 칭찬 좀 해 줘요!"
"그래! 정말 대단한데! 그런데 이 그림 말야... 직접 모델을 보고 그린 거니?"
"네. 그래요. 모델들이 옷 한번 벗는데 얼마씩 받는지 알아요?" "으음?"
에이꼬는 고개를 흔들었다. 류지오는 그녀가 옷 한번 벗으면 꽤나 받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자신을 꾸짖었다. 류지오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는 그녀도 싫어 할 것이다. 순결하다 못해 고귀해 보이는 여자와 옷이나 벗으러 다니는 여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류지오는 에이꼬에게 자신의 사진들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보여주어서는 안될 사진들이 많이 있었다. 저번에 바캉스에 가서 찍은 사진들만 하더라도 그 당사자들에게 심한 협박을 받았었다. 특히 레이요는 자신의 사진들을 남에게 보여줄 경우 죽을 때까지 저주하겠다는 협박을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녀와의 키스 장면을 찍었었다. 그것으로서 그녀와의 게임은 싱겁게 끝났지만 영원히 간직할 추억의 유물에 한가지 더 보태진 것이다.
류지오는 사진들을 연대별로 모아 두기 때문에 최초의 1권을 에이꼬에게 보여주어도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초기의 사진들은 그녀에게 별 흥미를 주지 못할 것이다.
류지오는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사 달라고 했었다. 그것도 최상품을 요구한 것이었다. 유우끼찌는 역시 류지오에게 있어선 하늘이 내려 준 아버지였다. 류지오는 그림만큼이나 사진에도 빠져들었다. 류지오에게 사진이란, 예술보다 하나의 추억을 보관하기 위한 도구였다. 에이꼬가 사진첩을 보는 동안 류지오는 다시 그림 창고를 정돈하고 있었다. 일곱 여자의 누드화를 다시 옷장 안에 끼어 넣으려고 낑낑거리며 애를 썼다.
에이꼬는 이미 다른 사진첩을 보고 있었다.
"누나. 그건 안돼요!"
그건 구름천의 누님들 사진이다. 류지오는 일곱 명의 여자들 중에 요꼬와 사시끼와 무척 친했다. 여자들의 질투심이란 남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 보다. 류지오가 요꼬의 사진을 조금 더 많이 찍는 것에 질투를 느꼈는지 사시끼가 엄청난 제안을 해 온 것이다. 류지오는 사시끼의 질투심에 그녀의 모든 것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요꼬는 우연히 사시끼의 미술책 속에 있는 그녀의 누드 사진을 보게 되었다. 물론 사시끼는 은근히 요꼬에게 알리고 싶어서 자기 미술책 속에 사진들을 가지고 다닌 것이었다. 그 바람에 요꼬도 류지오에게 자신의 알몸을 허락했다. 류지오는 그래서 요꼬와 사시끼의 나체 사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류지오는 에이꼬가 다시 한 장을 넘기기 전에 사진첩을 덮어 버렸다. 다행히 그녀가 요꼬와 사시끼의 나체 사진까지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진들은 뒤쪽에 있었기에 불행 중 다행이었다. 류지오는 그녀들의 나체 사진을 찍으면서도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이건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어요."
"미안해."
"누구랑 약속을 했걸랑요. 자기 사진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이해해 줘요. 이쁜 누나."
에이꼬는 자기를 이쁜 누나라고 부르자 방그레 웃어 보인다.
밑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시에가 온 것이었다.
"에이꼬. 몇 시에 왔니?" "열두 시에 도착했어요."
"시험은 잘 쳤니?" "네."
"합격하면 우리랑 같이 살아야겠구나? 우린 환영이란다. 그렇지 류지오?" "네. 그래요."
"어머니는 잘 계시니?" "네. 잘 계십니다."
"이리 오너라. 여기가 이제부터 네 방이 될 거야."
도시에는 유우끼찌가 쓰던 방을 보여 주었다. 유우끼찌가 쓰던 침대와 가구들, 책상들이 그대로 있었다.
"여긴...?"
'여긴 이모부님 방이 아니에요'라고 물어 보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모가 이혼한 사실을 알고는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긴 그 사람이 쓰던 방이야. 아주 넓고 좋잖니?" "네. 좋아요."
"사도미도 좀 있으면 올텐데... 오면 참 좋아하겠구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도미가 들어왔다.
"어머! 언니!"
사도미는 에이꼬를 알아보고는 달려가 껴안는다.
"언니. 어떻게 온 거야?" "본고사 치고 잠시 들린 거야."
"그래? 어느 대학교에?" "동경 대학교지!"
도시에가 마치 자신의 아들이 그 학교에 들어간 만큼이나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어머! 정말이야!" "음."
"참 좋겠다! 그럼 앞으로 여기에 와서 살겠네!" "합격하면..."
"꼭 합격할 거야! 신이시여. 언니가 꼭 합격하게 해주세요." 사도미는 눈을 감고 낭랑하게 외쳤다. 하지만 자신도 붙느냐 마느냐 하는 운명의 신 앞에 잣대를 맡기고 있었다.
"이제 우리 집이 꽉 차겠구나!"
네 명이서 탁자에 앉아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내가 받을게요."
류지오는 자기 전화일 것 같아서 먼저 가서 받았다.
"여보세요?"
한참 뒤에 여자 음성이 들렸다.
"그 기... 류지오니?"
"네. 그렇습니다만..."
"류지오구나. 나 고베에 이모야. 그 기 에이꼬 있니?" "네. 여기 왔습니다."
"음... 엄마는 잘 있니?"
"네. 잘 계십니다. 이모님은요?"
"여기도 잘 있다. 에이꼬 좀 바꿔 주겠니?"
"네. 잠깐만요."
류지오는 무선 전화기를 들고 에이꼬에게 가져다주었다.
"누나. 집에서 전화 왔어요."
류지오가 수화기를 건네주자 에이꼬는 얌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들고 거실로 갔다.
류지오는 식사를 하면서 그녀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죄송해요. 여기 며칠 있다가 갈게요."
아주 나직한 음성이 겨우 알아들을 정도로 들려 왔다. 결코 집에서 온 전화를 받고 기뻐하는 음성이 아니었다.
"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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