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마수록 1권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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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153회 작성일 17-02-12 11:26

본문

그들이 어디까지 호스케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아마 비쿠와 그다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오다와
라 해안에서 겐사이가 말한 '세 명의 남자'란 조금 전에 만난 그
들이 틀림없었다, 겐사이가 말한 턱에 상처가 있는 남자가 그들
중에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확실하다.
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을 보면, 어딘가에 캠프를 정하고 그
곳을 베이스로 하여 호스케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말고도 일행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들이 토끼와 호스케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어떤가이다. 그것은 어느 쪽이라고도 단언할 수 없었다.
비쿠는 자신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던 이바의 차가운 시선을
상기했다. 그 남자라면 역시 토끼 덫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모
른다. 또한 비쿠에 대해서도 어떤 의문을 안고 있을 것이다. 둥산
로에서 벗어난 장소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비쿠를 단순한 둥산
객이라고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그것은 그들 쪽에서도 비쿠에 대하여 갖고 있는 의문일 것이
다. 그들이 호스케를 찾고 있는 것을 비쿠는 알고 있다. 그러나
비쿠 역시 호스케를 찾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적어
도 그 부분만큼은 비쿠가 우위에 서 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 때문에 호스케를 찾고 있는 것일까.
추측은 간다.
그들도 비쿠와 마찬가지로 호스케에게 일을 의뢰하러 왔을 것
이다. 면허는 없지만 호스케는 몇 안되는 최고 다이버인 것이다.
비탈길에는 석남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비탈길이 점차로 완만
해졌다.
그리고 거기서 비쿠는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그루 석남화 가지에 토끼 한 마리가 걸려 있었다. 토끼 목
에 굵은 낚싯줄 고리가 파고들어가 있었다.
'드디어 만나게 되겠군.'
비쿠의 붉은 입술에 요염함이 담긴 미소가 떠올랐다.
이시다와 에이미는 아무 말 없이 좁은 길을 오르고 있었다.
둘 다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
었다. 여자가 앞에 걷고 그 바로 뒤를 이시다가 걷고 있었다.
서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말로 하게 되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분명히 언급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 화제를 제외한 다른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도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더 낫다.
둥성이가 낮다.
완만한 커브를 돈다.
갑자기 에이미가 멈춰 섰다. 쥐어짜는 듯한 가는 비명을 에이
미는 목 안으로 삼켰다.
이시다도 곧 그 원인을 알았다.
바로 앞의 바위 위에 한 남자가 위풍 당당하게 서 있었던 것이
다. 이바였다.
'미안하군.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거든.'
그때 이시다의 배낭이 툭 하고 뭔가에 부딪폈다.
'윽 !'
이시다가 낮은 소리를 질렀다.
언제 왔는지 이시다의 바로 뒤에 거대한 인간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키가 2미터는 족히 될 것 같았다. 그 거인은 온몸을 검
은 옷으로 감싸고 있었다. 부푼 근육의 두께가 그 옷을 밑에서부
터 밀어올리고 있었다.
기분 나쁜, 끝을 알 수 없는 박력을 숨긴 육체였다. 흩어진 머
리칼 너머로 짐승의 눈이 이시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도망치려던 이시다의 기력이 완전히 시들어버렸다.
이바가 바위에서 내려섰다. 그와 동시비 좌우의 풀숲에서 세
사람이 나왔다. 그중 두 사람은 야지마와 히로시였다. 남은 한 사
람은 여자처럼 보였다. 그 여자는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있
었다. 검은 천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고 있었다.
아름다운 눈이었다.
여자는 이시다 등뒤에 서 있는 남자처럼 검은 색 옷을 입고 있
었다. 검은 긴소매 셔츠에 검은 진 바지였다. 그 몸집과 가슴의
천을 밀어올리고 있는 두 개의 융기로부터 여자인 것을 알 수 있
었다.
여자는 온몸에서 이상한 향을 발산하고 있었다.허리선이 요염
하다.
'무슨 일입니까"
이시다가 물었다.
'아까 그 남자는 누구지 우리가 가고 나서 뭔가 이야기를 하
지 않았나 그것을 말해봐.'
이바가 말했다.
'그, 그건.......'
이시다는 말을 더듬거리며 에이미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 어
깨가 떨리고 있었다. 어깨에 놓인 이시다의 손을 강한 힘으로 에
이미가 쥐어왔다.
'그 사람도 당신들처럼 호스케라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
것뿐입니다. 이야기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더 있을 텐데."
이바가 낮게 말했다.
야지마의 노여운 목소리와는 사믓 다른 무서운 목소리였다.
'토, 토끼입니다. 그 사람은 토끼 딪을 만든 사람이 호스케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역시 .......'
지독히 낮은 목소리로 이바가 중얼거렸다.
'히히히 .. .....'
야지마가 또다시 에이미에게 끈끈한 시선을 던지면서 비열하
게 웃었다.
놀란 에이미는 이시다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딜 도망쳐!.'
히로시가 에이미의 발에 자신의 발을 얽었다.
에이미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머리가 바위에 정
통으로 부딪쳤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대로 여자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에이미 !'
이시다가 비통한 목소리로 소리겼다.
달려들려는 이시다를 거인이 등뒤에서 낚아됐다. 굉장한 힘이
었다.
히로시가 여자 위에 걸터앉았다가 천천히 일어서면서 엷은 웃
음을 띄웠다.
'쳇 ! 벌써 한판 한 것처럼 녹초가 되버렸군.'
'뭐라고 닙'
뻗어버렸어 . 이 여자.'
'이 살인마 !"
이시다는 울부짖었다.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감이군."
이바가 한마디 툭 내맬었다.
'이제 당신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걸.'
이바의 그 말과 동시에 이시다의 머리를 등뒤에 있던 거인이
손으로 잡았다. 너무도 심한 퉁증이 덮쳐왔다. 거인의 손톱이 관
자놀이 깊숙이로 들어간 것이다.
'안심해 . 여자와 함께 묻어줄 테니."
이바의 입술 끝에 소름끼치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시다가 절규했다.
그 비명은 곧 그켰다.
거인이 이시다의 머리를 잡은 채로 그대로 비튼 것이다.
소름끼치는 소리가 나고 이시다의 머리는 정확히 뒤를 향하게
되었다. 몸은 앞쪽으로 향해 있고 우는 듯한 이시다의 얼굴은 거
인의 가슴 쪽으로 돌려져 있었다.
밤이 되어 바람이 바뀌었다.
바위와 눈의 향기 속에서 미약하게 눈잣나무 냄새가 섞여왔다.
비쿠는 커피를 다 마시고 코펠을 내려놓았다. 불에 구워진 토끼
고기가 향기로운 냄새를 풍겼다. 고기가 끼워진 꼬치를 하나 집
어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고기는 적당히 익어 있었다. 조미료는
거의 쓰지 않았다. 소금만 조금 뿌렸을 뿐이다.
7월 초순 비쿠가 있는 골짜기에는 아직 석남화가피어있
었다.
이곳에서는 지금이 초여름이다.
해발 2,000미터를 넘어버리면 생물이 가진 생존을 위한 배타
심은 희박해진다. 있는 그대로의 투명함이 오롯이 드러나는 것이
다. 서로의 생명을 탐하는 기색이 전혀 없어지는 것이다.
한여름에도 남아 있는 눈이야말로 비릿한 피와 점액보다는 높
은 산에 훨씬 잘 어울린다.
비쿠의 횐 볼에 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납세공을 생각하게 하는 횐 피부였다.
용모의 선이 가늘다. 게다가 우아하다. 여장을 시키면 완벽한
여자처럼 보여 남자가 침을 흘릴 정도일 것이다. 비쿠의 용모는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는, 인간 이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요염하고 악마적인 요소가 있었다.
비쿠의 젖은 검은 눈동자에 오렌지색 불꽃이 비치고 있었다.
불꽃을 응시하면서 비쿠는 기다리고 있다. 얼마 후면 당연히 호
스케가 올 것이다.
비쿠가 불을 피우고 있는 곳은 호스케가 쳐놓은 딪에 토끼가
걸려든 장소이다. 그 토끼를 비쿠는 먹고 있는 것이다.
호스케가 어떻게 나타날까.
묘한 기대가 생겼다.
언제든지 와도 좋다. 준비는 되어 있다.
비쿠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이 반경 0미터의 켤계가 펼쳐
져 있었다.
비쿠 자신이 펼쳐놓은 것이다. 0미터 앞의 동서남북 4개 지
점에 비쿠는 자신의 머리털을 놓아두었다. 그 머리털을 지점으로
해서 정신의 둥지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비쿠를 중심으로 만들
어져 있는 것이다.
인간이 그 결계 안에 진입하면 곧 그것을 알 수 있다.
비쿠는 기다렸다.
머리 위 어둠에서 자작나무 우듬지가 바람에 울고 있었다.
또다른 토끼 고치에 손을 뻗다가 비쿠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
오른쪽에 누군가가 서 있는 듯했다.
그 순간 비쿠의 등줄기를 타고 공포가 흄었다. 공포는 곧 사라
졌다. 비쿠가 누군가로부터 살기를 느낀 것은 비쿠 자신이 펼쳐
놓은 결계를 순간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비쿠의 살기는 그 누
군가에게 반사되어 비쿠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비쿠는 자신의 그
림자에 공포를 느낀 것이다.
완전히 허를 찔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비쿠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존재하지 않던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는 비쿠가 펼쳐놓은 결계에 땋지 않고 가까이까지 온 것이
다.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비쿠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랬군.
비쿠는 자신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그림자가 서 있는 쪽은 북동 방향이었다. 북동은 귀문(
)이다. 비쿠가 펼쳐놓은 결계의 유일한 맹점이라고도 할 수 있
는 방위가 그 북동쪽이었다. 그곳에는 어른이 양손을 벌리고 지
날 수 있을 정도의 통로가 있는 것이다. 검은 그림자는 귀문의 방
위에 있는 그 통로를 통해서 들어온 것이다.
그 통로를 막기 위해서는 귀문의 방위, 북동쪽에도 자신의 머
리털을 놓아야만 했었다.
비쿠는 그것을 게을리했던 것이다.
교토의 북동쪽에 있는 히에이 산에 엔랴쿠 절이 세워진 것도
이런 뜻에서였다. 그 당시의 조정을 귀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인 것이다.
그러나 비쿠가 펼쳐놓은 결계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곳까지 올 수는 없다. 먹러 가지 장
해물이 있는 산속의 좁은 통로를, 더구나 깊은 밤에 결계에 땋지
않고서 미터나 되는 거리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우연이라
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우연이 일어났다는 것인가.
아니다. 우연이 아니다.
비쿠는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검은 그림자는 자신의 힘으로 그 통로를 걸어온 것이다.
'호스케 씨이군요."
비쿠가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검은 그림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어둠 속에서
머석버석 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검은 그림자는 자신의 머리를 긁고 있는 것 같
았다.
그림자가 느릿느릿 가까이 다가왔다.모닥불 가까이까지 걸어
와 거기에 멈추어 섰다.
불멎 속에 조금 지저분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비쿠와 거의 같은 178센티미터 정도의 키였다.그러나 몸집은
비쿠보다도 훨씬 강인한 것 같았다.
남자는 약간 등을 구부리고 있었다. 30세 전후의, 어느 광산
합숙소에나 늘 한 사람은 있을 것 같은 육체노동자 그런모
습이었다.
그러나 비쿠를 응시하는 눈에는 남다른 빛이 있었다.
얼굴은 온통 수염으로 덮여 있었다. 산에 들어오고 나서 한 번
도 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옷에서부터 육체의 깊은 내면에까지 산 냄새가 스며들어 있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산속을 혜맨 조난자처럼도 보이지만 지친
꼬습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온몸으로부터 이상한 정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기는 짐승의 그것이 아니디. 그것은 무
취성 (확떤)이었다. 산의 일부를 아무데서나 한풀 베어내서 사
람의 모습으로 만든 것 같은 남자였다.
비쿠는 남자를 향해서 마음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남자의 낌새
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은형(}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산의 기{)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산의 대기 그 자체처
럼 괌자의 기는 투명했다.
이 남자를 어둠 속에서 분명히 느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이다.
호스케 씨이군요.'
비쿠는 또 한번 말했다.
남자가 끄덕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불꽃을 끼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호스케의 눈동자는 마치 투명한 심연 같았다. 웃고 있다고도,
화를 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모호한 표정을 호스케는 짓고
있었다
. 당신이었군. 나를 쫓고 있는 자가.'
호스케의 눈이 순간 무섭게 번쩍였다.
'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비쿠가 대답했다.
'9일 걸렸습니다.'
'흠.'
호스케는 모닥불 가까이에 응크리고 앉더니 불 위의 꼬치에 손
을 뻗었다.
'여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야.'
호스케는 흔잣말로 중얼거리고 고기를 덥석 물어뜯었다. 무척
이나 건강해보이는 이빨이었다.
고기를 삼키고 손가락을 탈으면서 호스케는 천천히 주위를 둘
러보았다.
'그런데 이놈도 당신 소행인가'
비쿠가 펼쳐놓은 결계를 말하는 것 같았다.
'역시 알아차리셨군요,"
'대단하군."
감탄한 듯이 호스케가 말했다
그러나 그 결계의 맹점을 산뜻하게 뚫고 온 이 호스케라는 남
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때 두 사람은 동시에 깨달았다.
뭔가가 온다.
어둠 속에서 뭔가 다가오고 있었다,
무거운 것이 풀을 밟을 때 나는 미약한 소리-거대한 짐숭
의 털이 석남화 밑둥지를 문지르고 있었다. 문지르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강한 짐승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곰이군요."
비쿠는 앉은 채로 태연히 말했다.
코펠에 커피를 따라 호스케 앞에 놓았다.
'어떻습니까"
더듬는 것 같은 시선을 호스케에게 향했다.
곰이 무섭지 않습니까라는 의미도. 커피를 마시겠습니까라는
의미도 될 수 있는 말이었다.
이 기묘한 남자가 이 사태에 어떤 반웅을 보일까. 그것에 의해
서 비쿠는 이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볼 작정이었다.
'마시지.'
호스케가 코펠에 손을 댔다.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곰이군 하는 지극히 평범한 표정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곰이
라는 말만 들어도 얼굴빛이 변할 것이다.
'맛이 좋군.'
호스케는 커피를 훌깩훌쩍 마시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마셔보는군.'
비쿠는 말없이 호스케를 보았다.
수염으로 덮인 입가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사람도 나를 시험하려고 하는 것인가라고 비쿠는 생각했다.
비쿠가 곰에 의해서 호스케의 기량을 보려고 하듯이 그 또한 비
쿠의 기량을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재미있군.
비쿠는 입가에 미소를 띄왔다.
붉은 입술이 쓰윽 옆으로 올라갔다. 소름이 끼치는 미소였다
차가움과 요염함이 섞인 미소였다. 드물게 그러한 표정의 불상을
보는 일이 있다. 허투로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짐승이 내는 소리가 차츰 어둠 속에서 가까이 다가왔다.
'이상하군요."
비쿠가 말했다.
'정말 그렇군.'
호스케는 느긋하게 커피를 훌쩍훌쩍 마시면서 말했닥
두 사람이 '이상하다'라고 말한 데에는 의미가 있다.
보통 곰이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곰뿐만이 아니라 동물은 본능적으로 인간을 싫어한다. 대부
분의 경우 먼저 의 짐승 쪽에서 인간을 피한다.
곰이 인간을 덮치는 것은 대부분 만나자마자 바로 그 순간이
다. 쌍방이 서로 그것을 모르고 가까이 다가간 경우뿐이다. 설령
만나더라도 거리가 있으면 곰이 엉덩이를 돌려 피한다. 더 가까
운 거리의 경우에는 서로 주시하게 된다. 이때조차 기회를 보아
피하는 것은 곰 쪽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만났
을 때, 곰이 새끼를 데리고 있을 때, 인간이 큰 소리를 내어 상대
를 놀라게 했을 때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혼슈의 곰 곰이 인간을 습격한다는 것은 인간 쪽에원인
이 있는 경우가 많다. 산은 그들의 영역인 것이다. 침입자는 인간
쪽이다. 짐승 쪽이 침입자인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다.
그 곰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상하다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이다.
곰이 두 사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불까지 피워
놓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우선 곰이 매우 배가 고픈 경우이다.
먹이를 구하기가 어렴게 된 늙은 곰이 고기 냄새에 이끌려 온
경우는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둥산객이 있는 텐트에 곰이 콧둥을
들이대고 먹을것을 흠쳐갔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또 한 가지 경우는 곰이 상처를 입은 경우이다. 밀렵자가 산에
들어와 총으로 곰을 쏜다. 탄환이 급소를 스쳐 몸 안에 남는다.
그 탄환이 항상 곰의 신경을 압박하고 있으면 곰은 당연히 항상
그 아픔을 기억하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아픔이 곰의 정상적인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그 상처 때문에 먹이도 생각대로 손에
넣을 수 없다.
배가 고프고, 상처를 입고, 게다가 인간을 미워하고 있다.
산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생물이 이때 탄생한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그런 곰이라면 대단히 위험한 사태를 예
견할 수 있다.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먼저 비쿠가 말했다.
완전히 구경할 마음이 되어 있었다.
호스케가 북북 소리내어 머리를 긁었다.
이윽고 검은 짐승의 거대한 체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로부터 거친 숨을 내뱉으며 어둠 속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었
다. 그 검은 윤곽이 불빛에 희미하게 잡혔다.
호스케가 느릿느릿 일어섰다.
그 손에 불 위에 올려져 있던 꼬치 전부와 요리하고 남은 토끼
의 잔해가 들려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누르듯이 살짝 호스케가 걸음을 내딛
었다. 곰이 있는 쪽이 아니라 그보다 몇 미터 벗어난 방향이다.
곰이 목 깊이에서 쥐어짜는 듯한 소리를 질렀다.
듣기에 따라서는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도 들렸다. 적어도 명백
히 공격적인 것이 아니었다,
호스케는 곰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 이르러 낮게 엎드
렸다. 그리고는 팔꿈치로 상체를 일으켜 곰에게 시선을 주었다.
짐승끼리의 투쟁에 있어서는 서로의 눈 높이가 중요한 포
인트가 된다. 상대보다도 높은 위치에서 그놈의 눈을 주시하는
것은 명백한 도전의 의사 표시이다.
호스케는 몸 전체를 상대보다도 낮은 장소에 두었다. 가지고
있던 고기를 살며시 곰과 자신 사이에 놓았다.
무거운 목소리가 낮게 곰의 목에서 얽혔다. 좌우로 몸을 흔들
고 있는 것은 분명히 경계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곰이 천천히 호스케에게로 다가갔다.
어둠에서 온 사나이 ,
비쿠가 있는 곳에서는 분명히 들을 수 없었지만, 호스케는 낮
은 소리로 아까부터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곰이 호스케의 바로 눈앞에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스르륵
호스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곰의 오른쪽 앞다리를 쓰다듬었
다. 곰이 무겁게 신음하면서 앞다리를 흔들었다. 호스케가 손을
뒤로 쨌다.
이윽고 고기를 다 먹은 곰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제서야 느릿느릿 호스케가 일어서 머리를 시원스럽
게 긁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되돌아온 호스케에게 비쿠가 물었다.
'당신은 곰의 말을 압니까'
아니."
호스케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건 일본어야.'
'무슨 말을 했습니까'
'염불을 하고 있던 거야. 자장가야.'
'그래서 곰이 그냥 간 것입니까'
'그것도 모르나.'
귀찮다는 듯이 호스케가 툭 내뱉었다.
호스케는 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까지
깨끗이 없어져 있었다.
'고기가 하나도 없어.'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호스케가 말했다. 있던 토끼 고기가
'다른 것을 드릴까요"
'아냐."
호스케는 짧게 대답하며 자신의 품안으로 손을 넣어 토끼 꼬치
를 하나 =냈다.
'꼬치 한 개는 허락받았어.'
처음으로 웃는 얼굴올 보였다.
홀딱 반할 정도의 웃는 얼굴이었다.
이 남자의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간파할
수가 없었다.
'그 곰한테서.'
호스케가 고기를 입에 넣은 채로 중얼거렸다.
'앞다리에 엽총에 맞은 상처가 나 있었어.그것은 작년에 입은
상처일 거야."
호스케가 고기를 다 먹었을 때 비쿠가 쑥 고개를 들었다.
'손님이군요.'
비쿠가 말했다.
그런 것 같군."
호스케가 중얼거렸다.
처음에 보인 것은 손전등 불멎이었다.
세 개의 불이 나무 사이로 가까이 다가왔다. 모습을 나타낸
것은 세 사람의 남자였다. 세 사람 모두 이미 비쿠가 아는 얼굴이
었다. 이바, 야지마, 그리고 히로시 세 사람이었다.
세 사람이 손전등을 꼈다.
모닥불 속으로 세 사람의 남자가 부각되었다. 이바가 중앙에,
그 오른쪽에 히로시, 왼쪽에 야지마가 서 있었다.
그리고 약간 늦게 세 사람의 등뒤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엄청나게 큰 남자였다. 손전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밤눈이 밝은 것 같다.
양팔로 가슴에 여자를 안고 있었다. 남자도 여자도 검은 옷차
림이었다. 여자는 머리에 검은 천을 쓰고 있었다. 중근동의 이슬
람교 여자가 남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쓰는 것과 비슷했
다. 눈 주위만 드러내놓고 있었다.
남자는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차분하게 세 사람 뒤에
서서 여자를 내려놓았다. 여자는 거인에게 바싹 달라붙어 섰다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여자가 비쿠와 호스케에게 눈길을 향했다.
검고 젖은 눈동자에서 수상한 불꽃 색깔이 내비치고 있었다.
'역시 당신들이었습니까"
앉은 채로 비쿠가 말했다.
'또 만났군.'
이바가 낮게 말했다. 이바와 양쪽에 서 있던 야지마와 히로시
가 비열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반짝반짝 눈이 빛나고 있다. 흥
분 때문에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좋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더니 바로 이것이었군그래."
히로시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그쪽 분이 호스케 씨군요."
이바가 말했다.
'그렇소.'
호스케가 수긍했다.
'다행이군요. 이쪽 분에게 선수를 빼앗긴 게 아닌가 생각했습
니다. 호스케 씨를 만나기 전에 이쪽 분과는 먼저 만났습니다. 호
스케 씨를 모셔갈 것이라고 생각하자 식은땀이 흐르더군요. 애써
찾은 보람이 있군요.'
비쿠가 호스케를 찾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투였
다.
'또 만났나, 그 두 사람과"
비쿠가 물었다.
이바는 대답하지 않았다.비쿠의 말을 긍정하는 침묵이었다.
어쩌면 도중에서 잠복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이바 역시 비쿠를
의심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아주 산뜻하게 물러난 것이었
다. 두 사람과 비쿠가 헤어진 뒤 다시 두 사람을 붙잡아 비쿠에
대해서 물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들도 비쿠가 호스케를 찾고 있는 것을 그 두 사람으로부터
알아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이 남자들이 좋게 그 두 사람을 돌
려보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여자가 두 사람의 남자에게
범해지고 있던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두 사람을 어떻게 했나'
'헤헤.'
히로시와 야지마가 경련이 이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죽였군."
비쿠가 말했다.
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듬에서 온 사나이
'그런데,'
라고 이바가 호스케를 향해서 화제를 돌렸다
'이야기는 벌써 끝나버린 겁니까"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군요."
이바가 차갑게 미소지었다.
이바 뒤에 있는 두 남녀는 뚫어져라 그 상황을 웅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커다란 남자의 몸에서는 아까부터 예사롭지 않은 정
기가 방출되고 있었다. 꼼짝하지 않고 있는데도 몸 안에서부터
넘쳐오르는 정기를 세포에 담아두지 못하고 밖으로 뿜어내고 있
는 것 같았다. 이 남자의 힘이 전부 개방된다면 도저히 보통 인간
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먼저 호스케 씨를 만났다는 걸 주장해도 소용없을 것 같
군요.'
비쿠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
호스케가 사태를 간파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들,나한테 '잠수'를 부탁하러 왔군."
'그렇습니다.' 중얼거렸다.
이바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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