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고독사랑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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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671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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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검부 안은 사면으로 둘러싸인 단애 때문인지 항시 온화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월은 유수와도 같이 흐른다.
일 년 동안의 백옥상은 지옥에서의 생활이었다.
천귀신갑!
뜻밖에도 그 안에는 만년화룡(萬年火龍)의 정단(精丹)이 있었고, 그것을 복용한 백옥상을 절대삼자가 번갈아가며 두둘겨 팼다. 물론, 이유야 좋았다.
천지현관(天地玄關)을 만년화룡의 정단열화기(精丹熱火氣)로 녹여 뚫으며 경혈을 타동시킨다는 것에는 백옥상으로서도 하등의 반박할 구실이 없었다.
전신을 송곳으로 찔러대는 듯한 고통의 연속은 백옥상으로서도 참기 힘든 것이었다. 허나, 백옥상은 이를 악물고 감내했다.

――나는 한 마리의 버러지다. 약(弱)의 껍질을 벗어던지기 위해선 지옥의 유황불에도 뛰어들리라!
강자존의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진정한 유일강자(唯一强者)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천강비검결(天剛飛劍訣).>
<은형잠밀보(隱形潛密譜).>
<태극비해(太極秘解).>

절대삼자의 모든 것이었다.
비록, 패배한 무학이나 그것들은 각기 한 방면에서 독보적인 절학들이었다.
검(劒)에서, 잠은술(潛隱術)과 경공신법, 기환술(奇幻術)과 열 두 겹으로 두를 수 있는 강기심공(剛氣心功)이 만일 하나로 합일(合一)된다면 그 파천황의 거력을 누가 감당하랴?
그것은 새로운 초인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또다시 육 개월의 시공이 흘러갔다.
일수천발검을 필두로, 무흔무영인과 청학자가 모두 이승을 하직했다. 허나, 그들은 모두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죽어갔다. 바로 백옥상이 있었기에……
인생사(人生事)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가 아니던가?

"……!"
구리빛 살결에 메마른 표정의 청년은 백옥상이었다.
그의 눈 깊숙이 침잠되어 있는 잿빛의 동공 안에는 아무런 감정의 표출도, 생명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동공은 죽어 있는 회색의 눈빛을 발할 뿐이었다.
우뚝 솟은 콧날 아래에 다물려진 입술가에는 늘 잔혹하면서도 삭막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세월은 그의 겉모습을 바꾸었을지언정 내면의 그것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앉거라!"
담담하게 흐르는 한 마디의 말에 백옥상은 정면을 응시하며 자리에 앉았다.
혈전일견살 비뢰는 눈에 띄게 변해 있었다.
흑발이었던 그의 머리카락은 반백이 되어 희끗희끗 해졌으며, 얼굴에 패인 주름은 더욱 깊어져 있었다.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병자의 몰골처럼 그의 모습은 늙고 허약해져 있었다.
고저없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딱딱한 말투였지만 그의 시선 깊은 곳에서는 따스한 정감이 흐르고 있었다.
"……!"
착각이었을까?
백옥상의 동공 저 깊은 곳에서 한 줄기 슬픔의 격랑이 일었음은?
'많이 약해지셨다! 내게 남은 마지막 친인(親人)께서……'
백옥상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비뢰의 내면에 흐르는 따스한 정(情)과 그의 생명의 한계를……
문득, 비뢰는 품 속에서 하나의 옥갑을 꺼내들었다.
옥갑이 열리자 시뻘건 혈광이 뻗어나왔다. 허나, 그것이 이내 씻은 듯이 사라졌고, 칙칙하고 볼품없는 철환(鐵環) 하나가 비뢰의 손에 들려졌다.
"이것은 철혈풍이라는 것이다!"
"철혈풍(鐵血風)!"
백옥상은 어떤 운명감을 느끼며 철환을 받아들었다. 아무런 특징조차 없는 평범한 쇠팔찌였다.
"그것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허나, 거기엔 한 가지 비밀이 담겨 있다! 그 비밀을 푼다면 고금에 다시없는 불새출의 무적검왕(無敵劍王)이 될 수 있다고한다."
"무적검왕?"
백옥상은 새삼스레 손 안의 철환을 내려다 보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비뢰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것엔 하나의 검학(劍學)이 들어 있다!"
비뢰는 한 장의 낡은 양피지를 백옥상에게 던져 주었다.
"철혈(鐵血)…… 무적군림천강(無敵君臨天强)!"
양피지를 집어들어 내용을 일별한 백옥상의 두 눈이 경악으로 치떠졌다.
철혈무적군림천강!
철혈풍(鐵血風)으로만 펼칠 수 있는 무적의 검풍강(劍風剛)!
십갑자의 내공을 주입시켜 떨치면 방원 일천 장 이내의 거치는 모든 것을 박살내 버릴 수 있는 전율스런 검학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초인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었다.
"나를 비롯한 절대삼자 어른들께서 너에게 한 가지를 부탁하마!"
"……"
"고독검문(孤獨劍門)! 그 이름을 네 아래에 두어라! 그것만을 원한다! 다른 것은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분노와 회오의 빛이 감도는 처절한 혈안(血眼)의 안광!
"너는 최하의 벌레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부터 너는 벌레가 아니다! 너의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너의 발밑에 있다!"
"……!"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말아라! 너는 이제 최고의 인간이 되었으니까!"
'최고의 인간?'
백옥상의 뇌리에 일순 굉렬한 폭음이 작렬했다.
그것은 아득한 이상에의 현실감이었다.


또다시 반 년의 세월이 흘렀다.
백옥상이 철혈검부로 들어온 지 이 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뇌극철산의 정봉(頂峯),
그곳은 산허리와는 달리 청명한 창공(蒼空)이 누리에 햇살을 흩뿌리고 있었다.
네 개의 무덤이 가지런히 만들어져 있다.
백옥상은 마치 석상인 양 묵묵히 서서 무덤을 응시하고 있었다.
"네 분의 소원대로 고독검문을 나의 발 아래 둘 것입니다!"
백옥상의 음성에는 한 줌의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무미건조한 회색의 동공이었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이홉 번의 대례를 올린 백옥상은 천천히 신형을 돌렸다.

――간다. 네 분의 패배자로 낙인찍힌 그 분들의 한(恨)과 나의 한(恨)을 지고서……
배우지 못했기에, 가난했기에 하천한 도부수가 되었으나, 그 누구보다도 순백하고 성실했던 나의 부친이셨다.
하천한 도부수라는 이유 때문에 이유 없이 굽실거려야 했고, 처자식을 위해 모멸과 굴욕의 냉대도 감수했던, 누구보다도 인간다우셨던 부친이셨다. 단지, 전날의 상전이었던 이유로 가족의 생명을 도외시하며 은혜를 베풀었건만, 미천한 도부수라는 이유 하나로 너희들은 한 조각의 단심(丹心)마저도 무참히 짓밟았다. 그대들의 오만과 명예가 하늘을 찌를지라도 한 인간의 증오와 한이 얼마나 사무쳤다는 것을 알게 해주리라.

――산천이 피로 물들고, 천하가 혈향(血香)으로 차오를 때, 암흑의 저주가 울려퍼지리라. 증오의 검(劍)이 피(血)를 부르고, 저주의 검날이 허위와 가식을 벨 것이다.
한 자루의 녹슨 철검(鐵劍)이 울부짖을 때, 검(劍)의 한(恨)이 천중(天中)을 피로 물들이고, 복수의 검인(劍刃)은 너희들의 혼백마저 으스러뜨릴 것이다.
백옥상! 무정한 고독인(孤獨人)에 의해서……

"……"
백옥상의 시선은 천공을 향했다.
이 가슴은 갈기갈기 찢겨 버린 가슴이다.
한 조각의 편린마저도 부서져 나간 백옥상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갑게 냉각되어 갔고, 그의 동공은 잿빛의 무심(無心)으로 침잠되어 갔다.
혈룡(血龍)은 피구름(血雲)을 타고 등천(騰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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