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여인의 마을 3권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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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570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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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쯔가와 다리

엔타로가 여자 내부의 열기와 경련을 처음 경험한 것은, 유리 선생도 게이도 기꾸도 아니었다. 그 경험은 나중에 나올 이야기이다.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해 여름, 그 징조가 엔타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낮이었다.
지난 밤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아침까지 계속되어, 우산을 쓰고도 걸어갈 수 없었다.
그 날은 엔타로도 노부오도 비옷에 우산을 쓰고 등교했다.
그땐 도미노 개울은 아직 이상이 없었다.
학교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비가 그쳤다.
점심 시간에는 구름 사이로 해가 비쳐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화단의 꽃과 잎도 곱게 보였다.
학교 운동장에는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겼다. 그래서 공놀이를 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창가에 모이거나 복도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다찌바나는 그 날 결석을 하였다.
그가 걱정하던 와까에의 임신 문제는 쓸데없는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임신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찌바나가 감기라도 들었나 보다, 엔타로는 생각했다.
엔타로는 자기 자리에 앉아, 오른쪽 자리에 앉은 '우에노'란 학생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평소에 말도 잘 하지 않는 사이였다.
이 우네노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사 계열 같은 성씨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조상 대대로 목수 집안이고, 지금은 이 지방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아버지를 두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우에노 회사 사장으로서, 천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이 친구는 그 집의 차남이었다. 장남인 형은 학교를 나와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에노는 어릴 때부터 군인을 동경했다. 검도를 좋아해 스스로 시내에 있는 도장에 나가고 있었다.
가업을 계승할 형은 우에노에게 무사의 아들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입히거나 하면서, 자기의 꿈을 대신 실현해 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 우네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제 저녁에 다찌바나를 만났어. 건강해 보이던데, 왜 갑자기 결석을 했을까?"
그때 엔타로는 요새 다찌바나가 자랑하던 말이 생각나서 이렇게 물었다.
"다찌바나의 아버지가 중이고, 후처들에게 매우 환영받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니?"
"글쎄, 난 잘 몰라. 우린 그쪽과 종파가 다르고, 집도 멀리 떨어져 있거든. 그보다도 말이야……."
우에노는 엔타로에게 바싹 다가왔다. 머리가 크고 둥근 소년이다. 그 큰 머리가 엔타로에게 닿을까 말까 했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말이야, 만일 돈 내고 색시집에 가자고 유혹하면 어떻게 하겠어?"
"거절하지."
엔타로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밤거리 여자는 병을 가지고 있어. 그 병이 우리처럼 면역이 없는 중학생에겐 반드시 전염되는 거야."
"그래서 말이야."
우에노는 괴로운 듯이 말했다.
"나를 유혹하고 있는 창녀집 주인으로서, 상대할 여자는 창녀와 기생의 중간인 모양이야."
"그럼 처녀야?"
"아니. 처음 온 아가씨들도 처녀는 거의 없는 것 같아. 그 아가씨들도 여러 번 남자 품에 안겼을 것이고, 내게 이것저것 가르쳐 줄 만큼의 경험은 있다고 해."
"그럼 상대는 이미 결정되어 있어?"
"그런 것 같아."
"그럼 승낙해라. 그리고 체험담을 내게 자세히 알려 줘."
"하지만 난 두려워. 아니, 여자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부모나 세상에 알려질까 봐 그것이 두려워. 그 여주인, 우리 아버지를 꾀려는 작전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거절해야지."
"하지만 이것은 좀처럼 얻기 어려운 기회야."
"부러운 고민이다. 그런데 너는 여자가 두렵지 않니?"
"오오, 두렵지 않아. 부끄러운 것을 참고 시키는 대로 하면 완수할 수 있잖아. 아아, 어떻게 하지?"
그 우에노의 둥근 얼굴에, 이쪽에서 부러워하고 있는 것을 즐기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엔타로는 큰 기침을 하고 가슴을 쭉 폈다.
이 녀석이 이와 같은 비밀을 지껄이는 것도 이상한 날씨 탓이라고 생각되었다.
"남에게 의논할 것 없어. 혼자 결정해. 난 모르겠다."
개었던 하늘이 다시 흐려지고, 아침과 같은 호우가 쏟아지기 사고한 것은 5교시 수업이 시작된 직후였다.
밖은 저녁때와 같은 어둠이어서 교실은 더욱 어두웠다. 그래서 얼굴을 교과서 가까이 가져가야 겨우 글씨가 보일 정도였다.
이렇게 되자 학교측에서는 수업을 5교시로 끝내고, 전교생에게 즉시 귀가 조치를 내렸다.
하천 둑이 무너지긴 그다지 쉽지 않으나, 그곳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이 범람할 우려가 있었다.
성을 에워싸고 있는 개울 수위도 갑자기 불어났다.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복도에 있는 학생이 엔타로를 불렀다.
바라보니 노부오가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즉시 돌아가라. 집까진 염려 없어. 나는 오늘 밤에 회합이 있어 성 안에 머문다."
"괜찮겠어요?"
"오늘 밤 내가 잘 곳은 회합장의 사찰이다. 밖엔 나가지 않아 걱정없다."
귀가 준비를 마친 엔타로는 2학년 사까이 교실에 갔다.
사까이도 중장비를 하고 금방 나왔다.
"자, 힘차게 가 보자."
학교 정문 앞 도로는 물바다가 되어, 누런 물이 개천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른 학생들과 섞여 길을 나섰다.
엔타로가 마가키 나미 아주머니를 만난 것은, 시내를 벗어난 서장교 근처에서였다.
한 여자를 앞질러 가다가 슬쩍 얼굴을 보니 나미 아주머니였다.
나까이 마을 서쪽에서 살며, 한 번 시집갔다가 돌아온 마음씨 좋은 여자였다.
언젠가 마을에서 만났을 때 껴안아 주었으며, 그때 '언제 한번 카스테라를 들고 가겠다'고 했었다.
만날 때마다 엔타로는,
'아직 재혼 안 했나?'
젊고 기량도 좋은데 왜 시집을 안 가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어? 아주머니!"
"어머, 엔타로!"
"이 비에 어쩐 일이죠?"
"낮엔 개었잖아. 그래서 안심하고 볼일 보러 왔지. 볼일은 마쳤는데 비 때문에 야단인걸."
엔타로는 사까이를 나미에게 소개하고, 길의 폭이 넓어 셋이 나란히 걸어갔다.
도미노 하전은 이제라도 하늘에 떠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상상될 정도로 물이 불어나, 무서운 기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지나 뿌리가 달린 나무들이 빙빙 돌며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 나와 떠내려가고 있었다.
누런 수면은 손이 닿을 정도로 높아졌다.
나미가 말했다.
"제방은 반드시 마을 근처에서 파괴되는 거야."
"그래요?"
사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큰 강은 염려 없어요. 문제는 둑이 낮은 작은 개울이죠. 물이 억수같이 산에서 흘러내려, 금방 개천이 넘칠 것 같아요."
그러고는 나미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나까이 마을까진 위험해요. 오늘은 이 마을에서 주무시고 가세요. 마땅한 데가 없으면 우리 집도 좋아요."
이 말을 듣고 엔타로가 말했다.
"사까이 선배님, 아주머니는 우리 하숙집으로 모시겠어요. 선배님께 신세지게 할 수 없어요."
"엔타로도 저 학생도 너무 고마워. 염려하지 마, 아직은 돌아갈 수 있겠지."
세 사람이 아까하라 마을까지 왔을 때, 주위는 좀 밝아졌지만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방앗간에서 웃통을 벗는 남자가 튀어나왔다. 우람한 몸통과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씨!"
사까이가 소리쳤다.
"대부분의 논은 아직 괜찮은 것 같은데요?"
"오오, 사까이. 마을 논은 이제부터야. 밤까지 비가 오면 못 쓰게 될 논이 나오지. 참, 위쪽으로 가지 못해. 다리 하나가 떠내려갔어."
"예?"
나미가 비명을 질렀다.
나까이로 가는 다리가 떠내려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리가 끊긴 개천은 하쯔가와로서, 도미노 하천에서 보아 북쪽에 솟아 있는 하쯔야마에 원류를 두고 있어 물결이 빠르고 개천이 짧다. 그 다리 이름이 하쯔가와 다리다. 조잡한 나무 다리였으며, 난간도 없었다. 그것이 떠내려갔으면 사람도 마차도 다닐 수 없는 것이다.
헤어질 때 엔타로는 사까이에게 말했다.
"사까이 선배님, 이 아주머니가 저희 집에 계시다고 아버지께 보고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바쁘신데,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 드릴 필요 없잖아요."
이때 엔타로의 머릿속에는 나미가 자고 갈 때 가슴 두근거리는 장면이 발생한다는 기대 심리는 조금도 없었다. 따라서 속인다는 마음도 없이, 무심코 사까이와 눈을 맞출 수가 있었다.
사까이도 가벼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럴 때는 우리 집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음을 졸이게 되지. 밤에도 비가 계속 내리면 큰일인데. 마을의 사활이 달린 문제야."
이렇게 해서 폭우가 쏟아지는 속에 엔타로는 나미를 하숙집까지 안내했다.
주인집은 조용하고, 뜰엔 닭 한 마리 없었다.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서 우선 비옷과 우산을 정리했다.
나미는 등에 진 짐을 내려놓고 숨을 크게 쉬었다.
머리에 쓴 갓과 수건을 벗자, 비로소 허옇게 다듬어진 얼굴 전체가 나타났다.
'오오, 이 얼굴을 웃통 벗었던 사내와 사까이에게 보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엔타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자기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엔타로는 나미를 우물가로 안내했다. 세숫대야와 마른 수건을 준비했다.
"자, 여기서 세수하고 발을 닦으세요."
엔타로 자신은 하의 차림으로 풍로에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숯이 빨갛게 되었을 때, 나미가 속옷 차림으로 나타났다.
여자의 그와 같은 모습은 엔타로에겐 일상적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나미의 부끄러운 듯한 표정과 몸매의 율동에, 엔타로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오늘 밤, 이 사람은 내게 여자로서 이 집에서 자고 간다. 노부오 형은 없다.'
그러나 즉시 그런 망상을 추방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럼 이번엔 제가 씻고 오겠어요. 어주머니는 젖은 옷을 이 철망에 걸어 놓으세요."
엔타로는 풍로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주위를 철망으로 에워쌌다. 그것은 옷 같은 것을 말리기를 위한 것이다.
엔타로는 우물에 가서 발가벗고 찬 우물물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썼다. 이어 벗은 팬티를 빨았다.
엔타로가 돌아와 보니 나미가 마루에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엔타로의 하의 차림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실은 나, 비가 안 와도 앞서의 약속대로 여기 올려고 했었어."
나미는 밥상 위에 놓은 기다란 흰 상자를 엔타로에게 내밀었다.
"이거, 약속했던 카스테라. 이것을 살 때는 해가 쨍쨍했었는데……."
물론 엔타로는 카스테라를 갖고 온다던 나미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인사치례로 하는 말이려니 생각하고 있었으며,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카스테라를 받고 보니 절로 입이 찢어졌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나는 카스테라를 너무너무 좋아해요."
"네 어머니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었지."
나미는 엔타로가 물빨래한 팬티를 보았다.
엔타로는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카스테라를 먹는 데는 차가 걸맞는 것이다.
"어머, 이것이 팬티야."
놀라는 나미의 목소리에 엔타로는 돌아보았다.
나미가 팬티를 두 손에 펴들고 서 있었다.
"엔타로, 이것을 입고 있어?"
"아니오, 그것은 한 개 뿐이에요. 나머지는 모두 가리개이지요. 지금 차고 있는 것도 가리개입니다."
"이거, 허리 둘레가 거북하지 않아?"
"거북하긴요. 습관이 돼서 괜찮아요. 신경 안 써요."
"그런데……."
말하려다가 나미는 갑자기 말문을 닫고 팬티를 줄에 걸었다.
'어디로 꺼내 소변을 보는지 그것을 물어 보고 싶은게다.'
그런 생각이 든 엔타로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 버렸다.
"노부오 형은 오늘 밤 안 돌아옵니다."
"어머,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는 나미에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엔타로는, 나미가 '그럼 여기서 자지 않겠어.' 하는 말을 할까 봐 걱정스러웠다.
나미가 말했다.
"중학생도 상급생으로 올라가면 바쁘겠네. 공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이 생겨서……."
나미는 노부오의 입장에 동주의를 나타낸 다음, 빙그레 웃었다.
"오늘 밤은 우리 두 사람뿐이네. 엔타로는 아무데도 가지 않지?"
"예, 가지 않습니다."
"서로 느긋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네. 나, 머리 좋은 엔타로와 여러 가지 이야기 한 번 들어 보고 싶었는데."
말하는 뒤끝에 가서는 긴장감이 돌며, 얼핏 쓸쓸한 그늘이 엿보였다.
"제게요?"
"그래, 나는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걸. 내 나이가 되면 아무에게나 물어 보고 싶은 말들이 많은 법이야. 나 같은 입장이 되면 더욱 그렇고……."
"저도 아주머니에게 여러 가지 좋은 말씀 듣고 싶어요."
주전자의 물이 끓기 시작했다.
엔타로는 그것을 가져오려고 마루로 나갔다. 벽에 걸려 있는 나미의 옷에 아직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비가 오기 때문에 서둘러 오느라 가격표를 떼는 것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미는 차를 마시며 카스테라를 먹는 엔타로의 얼굴 밝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엔타로도 훌륭한 젊은이가 되었구나."
감탄 섞인 말투였다.
"네가 태어났을 때, 처음 신사 참배 하려고 어머니 품에 안겨 빌러갔었거든. 그때 난 꽃다운 17세였어. 어쩌다 뽑혀서 깨끗한 옷을 입고 행렬의 선두에 서서 걸어갔었지."
집 안은 좀 어두웠다.
비 때문에 기온이 떨어져 둘은 풍로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 불길에 얼굴에 비쳐, 나미는 얼굴이 빨갛고 눈이 빛났다.
"마을에서는 그 해에 나이가 찬 처녀들이 몇 명 있었어. 그런데 엔타로 어머니는 날 지명해 주섰어.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처녀가 신사까지 안내해 주는 풍습이 있었거든. 지금은 사라져 가는 풍습이지만. 10년∼15년 전만 해도 반드시 지켜졌지. 그땐 정말 남자도 모르는 순진한 처녀로서, 순수한 마음으로 신사 경내에 들어섰었지."
엔타로도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습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요? 제가 아주머니께 인도되어 빌러 갔었어요? 이거, 고맙습니다."
엔타로는 머리를 숙여 예의를 표시했다.
근래에 와서 나미가 자기를 호의적으로 대하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엔타로는 '남자도 모르는 순진한 처녀'라고 한 말에 고맙다고 하는 것이 예의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자기가 이젠 순진한 어린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셈인 것이다.
"아주머니, 마을에서 제일 가는 아가씨였다는데, 어떻게 17세까지 처녀를 지킬 수 있었어요?"
"어머나, 엔타로."
자기가 문제를 제기했으면서도 나미는 갑자기 수줍음을 나타냈다.
"그때까지 아무도 내 곁에 다가온 총각이 없었어. 아버지는 까다로운 분이셔서, 나도 마음놓고 젊은이들과 사귈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지."
"모두들 아주머니를 높은 곳에 있는 아름다운 꽃으로 알고 단념했었겠지요. 틀림없어요."
"엔타로도 말솜씨가 대단해졌는데."
엔타로를 보는 나미의 눈에는 즐거운 빛이 나타나 있었다.
엔타로는 그 얼굴을 보고 처녀 시절의 나미를 상상하며,
"정말 부러울 정도로 예뻤겠어요."
하고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미인도 많고, 미인에는 여러 가지 형이 있다. 나미는 엔타로가 좋아하는 형으로서, 너그러운 마음씨의 여자다.
그와 같은 아련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내리고 있었다.
집 안팎에는 제법 저녁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여름이기 때문에 요즈막엔 저녁 식사까지 아침에 지어 놓는다. 따라서 아침 밥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노부오는 집에 안 온다 했으니 밥은 충분하다.
그러나 손님이 오셨는데, 비록 여름이라 하지만 찬밥을 내놓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다.
엔타로는 그런 생각에서 솥에 남은 밥을 그릇에 옮겨 담으려고 했다.
그러자 눈치 빠르게 그것을 본 나미가 다가와 물었다.
"그 밥을 어떻게 하려고?"
엔타로가 설명하자 나미는 손을 내저었다.
"그건 안 돼. 일부러 밥을 지으면 벌 받아요. 아침밥 먹는 게 좋아요. 그리고 내가 상을 차릴 테니 엔타로는 방에 들어가 공부해요."
"아니, 그래도……."
"그게 좋으니까 이 아주머니에게 맡겨요. 엔타로에게 큰 신세를 질 바엔 이 마을에도 친척집이 있으니 그 집에 가지. 좀더 마음편하게 묵어 가려고 이곳에 왔는걸."
"알았어요. 그럼 아주머니께 맡기겠어요."
엔타로는 나미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아주머니, 이 마을에 어떤 친척이 있어요?"
엔타로가 갑자기 생각난 듯 이렇게 물어 본 것은, 등불 밑에 마주앉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젓가락을 들었을 때였다.
나미 친정의 성씨는 마가키다.
이 마을에서 유리 선생이 세들고 있는 주인집도 마가키라는 성씨를 가진 집안이다.
그와 같은 성씨라는 것에 생각이 미쳐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그 집이 나미 아버지의 사촌형네 집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집에 놀러간 적이 있어요."
"어머, 어떻게?"
나미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엔타로는 나미에게 유리 이야기를 하였다. 그때 쓸데없이,
"마쯔다 아네 누나를 닮은 여자예요."
하고 덧붙였다.
이것은 유리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아레의 이름을 불러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엔타로는 아레가 그리웠던 것이다.
나미는 젓가락을 멈추고 엔타로를 바라보았다.
"너, 그 선생 좋아하니?"
표정이 굳어지고 부드러움이 사라졌다.
보통때 같으면 급소를 찔려 얼굴이 뻘개질 일이지만, 엔타로는 긴장했다.
아레를 닮았다고 했는데, 어째서 좋아하느냐고 묻는지, 나미의 논리에 오히려 마음이 파래지는 것 같았다.
엔타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상급생에게 이끌려 놀러간 것뿐이에요."
유리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을 시인하면, 아레에 대한 비밀을 공표하는 것에 연결된다.
그 불안이 엔타로를 구해 준 것이 되었다.
드디어 나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여자에게, 퍽 나이 어린 사람이 연상의 여자로서 좋아하는 상대가 되는 것은 비극이 되지 않아요. 엔타로처럼 누나나 아주머니들이 귀여워해 주고 싶어하는 총각은 연상의 사람을 피하면 안 돼요. 슬픈 연애 소설이 되고 말아요."
"그 여선생은요, 자기는 어른이고 난 어린애라고 정해 놓고 있는 걸요. 소설이 되지 않아요."
나미는 유리가 하숙하고 있는 마가키 친척집에 가지 않고 여기로 온 것은, 그 집에 신세지고 싶지 않아서라고 설명한 뒤,
"그 집에서 서로 불편한 것보다는, 엔타로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몇 배 더 즐겁지."
하고 말하며 웃었다.
식사 후 곧바로 나미는 설거지를 하고 내일 아침 준비를 했다. 또한 취사 도구를 전부 닦고 살림살이 위치도 정돈해 줘, 부엌이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야, 이거 노부오 형이 오면 놀라 자빠지겠다."
나미는 특히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기질이구나, 엔타로는 팔짱을 끼고 감탄했다.
이제 이것으로 나미가 할 일은 끝났다. 느긋하게 자면 되겠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한 말을 엔타로는 잊지 않고 있었다. 엔타로 자신도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듣고 싶었다.
마루에서 모기향 냄새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으로 모기를 피하면서 저녁 식사를 마쳤는데, 틈새로 모기는 습격해 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엔타로는 모기장을 칠 것을 제의했다.
그러자 나미가 말했다.
"먼저 이부자리를 깔아야지. 나중에 불편해져. 이부자리를 깔고 잠이 오면 잠드면 그만이야."
그런 말투로 보아, 나미는 같은 모기장 안에서 하룻밤을 지낼 마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할까, 아니면 노부오의 모기장을 쓰라고 할까, 말성이다가 방침이 정해졌다.
엔타로의 방에 따로 나란히 자리를 깔아 놓았다.
이 여름, 엔타로도 노부오도 돗자리를 사용하고 있다. 찜통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다.
엔타로는 자기가 누울 요에 돗자리를 펴고 나미를 보았다.
"아주머니, 노부오 형의 돗자리를 쓰시겠어요?"
"그래, 써도 되겠어?"
엔타로는 노부오의 벽장에서 베개와 돗자리를 가져왔다.
나미는 노부오의 돗자리를 펴고 나서 말했다.
"역시 남자 냄새가 나는군."
한숨이 나올 것은 목소리였다.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도 될까?"
나미는 엔타로의 의견을 물었다.
"좋을 대로 하세요."
"내일 아침엔 다시 깨끗하게 닦아 돌려 주지."
역시 나미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불륜을 용서하지 않고 돌아올 정도로 청결한 사람인 것 같았다.
보통 아주머니들은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나미와 엔타로는 함께 모기장 네 모퉁이를 편 다음, 돗자리를 마루에 갖고 나가 자기 수건에 물을 헹궈 정성들여 닦았다.
나미는 돗자리를 자기가 잘 요 위에 깔고, 다시 모기장 밖에 있는 엔타로 곁에 왔다.
"엔타로, 내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공부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니?"
"아니, 오늘 밤은 괜찮아요. 아주머니, 안에 들어가 촛불을 켜 주세요. 제가 등불을 끄고 들어갈게요."
비가 내리고 있어 덧문까지 닫아 놓은 상태였다. 촛불을 미리 켜놓고 있지 않으면, 등불을 끄면 캄캄해진다.
나미는 요 위에 잠옷 차림으로 앉아 촛불을 켰다.
그것을 확인한 후 엔하로는 등불을 껐다.
모기장 안에 들어가자, 바람에 불꽃이 흔들려 나미의 얼굴과 모습에 그늘이 생겼다.
여름철이다. 농부인 나미는 흰색 저고리 속옷과 분홍색 바지 속옷만으로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었다.
바지 속옷은 두 다리를 거의 가리고 있고 무릎 아래 부분만 보인다.
저고리 속옷은 반 정도 앞이 열려져, 가슴 중앙 부분이 촛불에 비친다.
그렇지만 젖꼭지는 보이지 않는다. 뭉실한 젖이 입체적 그늘을 짓고 있고, 브래지어는 차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엔타로는 나미의 가슴을 슬쩍 훔쳐보고는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자기 돗자리 위에 엎드려 베개를 끌어안았다.
나미도 엎드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촛불 켜 둘까?"
"아니, 그냥 끄죠."
촛불을 끄자 어둠이 밀려왔다. 엔타로에게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바람이 널판자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말이야……."
나미의 목소리가 앞서보다 가까이 들려 왔다. 숨소리도 들렸다.
"돈에 팔려 시집간 꼴이 됐어. 처음부터 가기 싫었고, 가서도 늘 이 집에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많았지."
다시 널판자가 바람에 운다. 아마도 비는 멎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남편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엔타로의 상식으로는, 선을 보았건 정략 결혼이건,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면 애정이 생겨 잘살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미의 경우는 일반적인 그와 같은 방정식이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일까?
"그래,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어. 엔타로가 만나도 역시 좋아지지 않을 남자야."
"아주머니, 시집가기 전에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어요?"
"엔하로, 좋은 질문 해 주었다."
"어떤 남자인데요?"
"엔타로가 태어난 그 다음해, 우리 마을에 선생으로 온 사람이지. 원심사에 하숙하고 있었고, 이름은 게이지로야. 앞서 우리 마을에서 너를 만났을 때, 눈 언저리가 그 게이지로와 꼭 닮았다는 것을 알았지.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그런 부끄러운 행동을 했었어. 미안해."
"아니에요. 저 그때 좀 어리벙벙했지만 기뻤어요."
엔타로의 대답은 어둠 속에서 다시 껴안아 줘도 좋다는 의사 표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 이 아주머니는 지금 옛날에 좋아했던 게이지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불행했던 결혼 생활은 생각조차 하기 싫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지로에 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끄집어 내는 것이 듣고 있는 사람의 역할이다.
그래서 엔타로는 이렇게 물었다.
"그분 나이는 어떻게 되셨어요?"
그러나 나미는 엔타로의 질문에 금방 응해 오지 않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정말 기쁘다고 생각했었어?"
나미는 이렇게 물으면서 손을 엔타로의 어깨에 얹었다.
"정말이에요."
엔타로는 의미를 가볍게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물었다.
"아주머니와 그분, 몇 살 차이였어요?"
"나보다 세 살 위……."
나미는 그처럼 간단하게 대답하고, 엔타로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래, 정말 싫지 않았어? 아아, 그랬었구나."
나미의 그와 같은 말에 엔타로는 기뻤다.
갑자기 엔타로는 대담해졌다.
몸을 나미에게 향했다.
그러자 나미의 팔이 엔타로의 등으로 뻗어 왔다.
"오늘 저녁에도 안기고 싶었어요."
엔타로가 이런 말을 했을 때는 나미의 오른팔이 엔타로의 등을 껴안고 있었다.
엔타로는 여자의 냄새에 휩싸였다.
나미의 가슴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해 주면 좋겠어?"
왼팔이 아래에서 뻗어와, 눈 깜짝할 사이에 엔타로의 상반신이 나미의 두 팔에 안겨졌다.
엔타로의 팔은 베개를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손에 유방이 눌려지게 되었다.
그 유방은 아레 누나의 것보다 두 배는 됨직했다. 뭉실뭉실한 감촉의 부드러움이 있고, 그 속에 탄력이 있었다.
엔타로는 숨이 가쁘고, 가슴의 고동이 높고 빨라졌다.
하지만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엔타로는 몸 전체가 얼어붙은 채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직 내 보물은 작아 있는 그대로다. 그래, 그대로 얌전히 있어 줘. 만일 네가 커지고 그것이 알려지면 대번에 미움을 받게 돼. 그러면 불쾌한 애로 인정받게 되는 거야.'
엔타로는 스스로 그렇게 타일렀다.
이때 나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엔타로는 정말 게이지로의 눈 언저리와 너무도 닮았어. 아아, 귀여워라."
나미는 노래를 부르든 듯한 목소리였다.
나미에게 안겨 여자 냄새에 휩싸인 엔타로는, 그녀의 달콤한 소리만 듣고 만족하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하고 반성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입을 열었다.
"세 살 차이라면 나이는 알맞는데……."
어른다운 감상을 숨김 없이 말하고는,
"그분은 아주머니께 걸맞는 미남이고, 냄새 피우는 선생이었겠네요."
하고 덧붙였다. 듣고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깊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였다.
밤이 되어 기온이 떨어졌으나, 껴안고 있어도 그다지 답지 않았다.
"그래, 멋진 남자축에 들지만 아주 미남은 아니야. 늘씬한 쾌남이라고 마을 청년이나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있었어."
이야기하면서 나미는 엔타로의 등을 쓰다듬었다.
"제가 태어난 다음해면 지금부터 13년 전이죠. 아주머니는 18세, 게이지로 선생은 21세이네."
"맞아. 내가 선생과 처음 말을 해 본 것은, 언니 딸 스즈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 가을에 스즈가 열 때문에 이틀 학교를 쉬게 되자 선생이 찾아왔었거든."
바로 요와 요가 깔려 있는 경계에서 엔타로는 끌어안겨 있었다.
돗자리의 가장자리가 몸에 눌려 위로 휘어 올라가 있었다. 그것이 팔이나 발에 거슬려 편하지 않았다.
"아주머니도 괴롭겠지.'
하지만 그 말을 하면 나미 이야기의 허리를 꺾는 격이 된다. 그래서 참기로 했다.
"처음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엔타로는 이렇게 물어 보았다.
스즈를 엔타로는 알고 있었다. 시잡간 것이 재작년이고, 나미를 닮아 예쁜 신부라는 평이 있었다. 마가키 가문은 미인이 태어나는 가문인 것이다.
"선생이 뜰에 들어섰을 때, 마침 나는 하루 동안 말린 벼를 한창 창고에 나르고 있던 중이었어. 게이지로 선생은 아직 뜰에 널어 놓은 벼를 손으로 떠서 들여다보더니, '참 잘 영근 벼입니다. 틀림없이 1등미예요.' 하는 거야.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덕분에 금년은 알곡이 굵습니다.' 하고 대답했을 뿐이지. 하지만 그가 학교 선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 먼 발치에서 여러 번 보았거든. 그런 옷차림의 젊은이는 마을에 아무도 없었어. 그 선생이 느닷없이 벼를 들여다보니 나는 놀랄 수밖에."
아무도 나미는 오랫동안 애인의 이야기를 할 상대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에 열을 올리며, 엔타로를 안고 있는 팔도 여러 가지 다채로운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농업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는 선생이었군요."
엔타로가 수긍했다.
"그래, 배웠다고 으스대며 남들을 얕보는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게이지로의 집안은 대대로 고향에서 시골이나 도시 사람의 병을 고쳐 주는 의사 가문이라는 것도 후에 알게 되었어. 그 사람은 농토를 갖고 있지 않은 의사의 차남이야. 농사꾼은 될 수 없고, 가업을 잇는 것도 무리여서 선생이 되었지. 하지만 벼농사, 밭농사에 많은 관심이 있었어. 친한 사이가 되고 나서도 농사에 관한 이야기만 했었어."
"아주머니……."
더 이상 참지 못해 엔타로는 나미에게 제안했다.
"여기 돗자리 끝이 찔려 좀더 이쪽, 제 돗자리로 오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그렇겠구나.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
엔타로는 물러나고, 그만큼 나미가 다가왔다.
나미의 왼팔은 베개와 엔타로의 어깨 사이를 관통했다. 나미도 엔타로의 잠자리로 옮겨갔다.
"그 후 자주 밀회를 계속하게 되었어요?"
"스즈를 보러 온 다음날, 나는 언니 심부름으로 원심사에 갔어. 게이지로에게 감자를 갖다 주러 간 거지. 왜냐하면 선생이 스즈에게 약을 갖다 주었거든. 스즈는 병원에 가지 않고 약방의 약을 먹고 있었는데, 선생이 준 약을 먹고 대번에 열이 내려, 죽을 세 공기나 먹었어. 모두가 너무너무 좋아했지. 그 답례로 감자를 드리게 된 거야."
"의사집 아들이어서 어느 정도 의학 상식이 있었군요. 그러니까 약을 가져왔겠죠."
"그래. 스즈뿐만 아니라 여러 학생들이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
"감자를 가져가서, 거기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여러 가지였지만, 주로 농사 이야기만 했어."
나미는 한숨을 쉬었다.
"게이지로는 농민 이상으로 농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어. 자기 주제도 모르고 나를 돈으로 사서 부인으로 데려간, 그 지긋지긋한 남자하고는 전혀 달라. 농민으로 농민의 심정을 모르는 난봉꾼이었으니까."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나미의 허연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덧문을 닫아 놓고 있지만, 밖에서 집 안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비 때문에 기온이 떨어져, 나미의 체온이 오히려 기분 좋게 느껴졌다.
엔타로는 느긋한 기분이 되었다.
"게이지로 선생도 대번에 아주머니에게 반했지요?"
"그런 말을 해 준 것은 정월 초하루였어. 학교에서 신년식을 마치고 선생은 곧바로 우리 집에 온 거야. 나는 창고에서 베틀을 짜고 있었는데, 내 앞에 불쑥 나타나 강한 어조로 말했어.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손발을 움츠리고 있었지."
"마주서서 큰 소리로 말한 것을 보면 아주 배짱 좋은 사람이네요."
엔타로는 감탄했다.
마을의 처녀 총각들은 말은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연 선생만이 '현대적'인 고백을 한 셈이었다.
"여자는 말이야……."
나미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과 가슴 사이에 낀 팔이 아파왔다.
엔타로는 몸을 움직여 자기 팔을 곧바로 아래로 뻗었다.
따라서 가슴과 가슴이 맞닿았으며, 엔타로는 나미의 유방의 탄력과 무게를 가슴에 느끼게 되었다.
나미는 자기의 동작을 느끼지 못하고 옛 생각에 젖어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속에만 담아 놓고 있어. 오로지 속을 태우기만 하지. 따라서 상대방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았을 때의 그 기쁨, 남자들은 결코 모를 거야. 엔타로도 좋은 여자가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고백하는 것이 좋아.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은 여자로서 족해."
"그래서 아주머니는 뭐라고 했어요?"
"다만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저도요, 저도요.'를 반복했을 뿐이야. 그래도 마음은 통했지. 다가선 게이지로는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고, 절에 꼭 놀러 오라고 했어. 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지. 아아, 그때는 나 자신을 분간할 수 없는 심정이었어."
그때 비로소 나미는, 자기 팔이 엔타로를 지나치게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리를 늦춰 주었다.
"미안, 미안…… 괴로웠지?"
"아니오."
나미의 들뜬 열기가 이쪽으로 전염되기라도 한 듯, 엔타로는 너그럽게 말했다.
"아주머니가 안아 주니 좋은 기분이에요. 조금도 괴롭지 않아요."
사실이긴 하지만, 보통때 같으면 부끄러워 하지 못할 말을 입 밖에 냈다.
"정말?"
이번엔 나미가 볼에 볼을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도 엔타로를 끌어안으니, 게이지로에게 안겼던 그때와 비슷한 심정이 돼."
"하지만 게이지로는 21세, 저는 14세…… 허리나 몸무게가 전혀 다르잖아요."
"그래도 그런 기분이 들어."
가슴과 가슴 사이가 어느 정도의 공간이 생겨, 엔타로는 왼손을 올려, 앞이 열려 있는 저고리 잠옷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언제 원심사에 놀러갔어요?"
젊은 처녀가 절에 하숙하는 청년을 찾아간다는 것은 사람들은 좋게 보지 않는다. 나미가 어떤 식으로 시끄러운 사람들의 눈을 속였는지, 엔타로는 몹시 궁금했다.
"나는 부모에게 거짓말을 했지. 옆동네 사는 친구 집에 간다는 구실을 붙인 거야. 다음날인 2일 오후, 나들이옷을 입고 몰래 원심사에 들어갔어. 사람에게 들켜도 할 수 없다고 각오를 단단히 했지."
"나들이옷을 입고요?"
"정월인데 뭐. 아무리 가난해도 정월에는 새옷을 입잖아."
남자를 만나러 간다. 나들이옷 차림으로 남자 앞에 나타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들이 옷으로 즐거운 밀회를 하겠다고 하니, 18세 소녀로서 그런 생각을 할 마음이 어떻게 생겼을까.
어쩌다 엔타로의 오른손 둘째 손가락이 나미의 젖꼭지에 닿았다.
어느새 속옷 앞자락이 많이 열렸고, 젖꼭지가 노출되어 있었다.
즉시 드러난 그 젖꼭지를 찾아, 엔타로의 손은 어둠 속을 더듬었다.
나미의 얼굴이나 가슴의 허연 윤곽은 어둠 속에서 잡히지만, 유두를 식별한 정도의 밝기는 아니다.
하지만 손끝은 금방 유두를 찾아내, 아레가 가르쳐 준 대로 손끝을 작게 그리고 빨리 율동하기 시작했다.
"아아……."
나미는 떨리는 소리로 신음했다.
"엔타로, 여자와 놀아나고 싶어?"
"아뇨."
"그럼 어머니 젖이 아직 그리워?"
엔타로가 의식적으로 유두를 만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나미는 어릴적 버릇으로 생각할 것인지, 아니면 남자로서 욕망의 행위인지 판단 내리기 힘든 입장인 것 같았다.
엔타로는 생각했다.
'이 아주머니는 지금 어린애의 감촉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남자의 애무를 느끼고 있을까? 이제는 내가 확실히 도박에 나설 때일 것이다.'
엔타로는 자기 자신을 격려하며 애써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어머니 젖이 아니고 아주머니 젖이기 때문에 즐거워요. 빨아 보고 싶어요."
엔타로는 손놀림을 강하게 했다.
"아아……."
나미는 신음 소리를 내며 가슴을 젖혔다.
"엔타로, 잘한다. 지금 젖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알지?"
"알고 있어요. 아아, 아주머니 젖이 점점 굳어지네."
"좋은 기분이야. 하지만 이제 그만해."
"예."
엔타로는 율동을 중지시켰다.
그 대신 이번에는 유방 전체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중량감 있는 유방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엔타로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게이지로 선생은 절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래, 나는 선생 방으로 들어갔어. 절 아주머니가 차를 놓고 나간 다음, 선생과 둘만 남게 되었지."
"인사를 하고 이럭저럭 하다가 결국 끌어안았겠지요?"
"그래. 온돌방에 들어가 30분 정도 지나 뒤로 돌아간 선생은, 두손을 어깨에 얹어 놓고,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그립소. 당신 생각에 책도 손에 잡히질 않아요.' 하면서 나를 끌어안았어."
"사랑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알지 못할 때는, 아무리 하려고 애써도 공부가 되지 않는 모양이죠?"
"엔타로도 그런 경험 있어?"
"없어요. 저는 아주머니가 좋아요. 아주머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기뻐요. 침착해지고 공부도 썩 잘돼요."
그것이 입으로 표현할 정도로 정확한 사실이 아닐지라도 대략 그러하다. 사랑에는 역시 이질적인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당사자인 나미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엔타로로서는 잘한 일이었다. 어둠 속이라는 것과 유방을 손으로 만지고 있다는 특별한 상황에 힘입은 바일 것이다.
"어머, 엔타로! 나 생각해 준 적이 있었어?"
"예, 하루에도 몇 번씩. 앞서 마을에서 오가다 안기고서 지금까지……."
"기쁘기도 해라."
나미는 다시 세게 엔타로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즉시 팔 힘을 늦추고 물었다.
"아레를 닮은 선생과 나, 누가 더 예뻐?"
나미의 입에서 생각지도 않은 아레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엔타로에게 아레 누나는 바꿀 수 없는 추억의 존재이고, 유리 선생은 사모하고 싶은 존재다.
하지만 미모의 순위를 묻는 데엔 어리둥절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아주머니죠. 아주머니는 우리 나까이 마을의 금강석이에요. 마을에 돌아와 줘서, 어른이나 학교 선생, 주지 스님도 모두 반가워하고 있을 겁니다."
이것은 엔타로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젊으나 늙으나 모든 남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다만 그 말을 당사자인 나미에게 직접 말했다는 것은, 역시 지금과 같은 이상한 상황에 힘입은 바가 큰 것이다.
"어머나, 기뻐라. 설령 사실이라 해도 수재인 엔타로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 하니 정말 살아난 기분이야."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그 맨 나중에 한 말이 엔타로를 놀라게 했다. 듣고 흘려 버릴 수가 없었다.
엔타로는 비비고 있던 유방을 세게 움켜잡았다.
"살아났다니요? 아주머니, 죽는 것을 생각했었어요?"
"그건 그래, 호호호호. 오늘 밤엔 천천히 뭐든지 말하고 싶어. 들어 봐."
"예, 들을게요. 게이지로 선생이 뒤에서 끌어안았다까지 말했어요 자, 아주머니. 그리고 어떻게 됐어요?"
"끌어안으면서 게이지로는 내 어깨를 턱으로 비비고……, 옆으로 돌아 볼에 볼을 비비고, 입과 입을 맞추었지."
"야……."
엔타로는 감동어린 소리를 냈다.
"아주머니, 처음 키스였지요?"
엔타로는 확인하는 식으로 그렇게 물어 보았다.
"응, 그래. 나는 피할 생각도, 거절할 생각도 전혀 없었어. 머리가 멍하고,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었어."
"잘하셨어요."
새로운 애인끼리의 탄생을, 엔타로는 마음 속으로 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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