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첫경험 보고서(41~46/65) 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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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817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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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제목 : ▶첫경험 보고서◀ Ⅲ-09. 수중수음(水中手淫)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 속을 바다 삼아 고요함과 적막 속에서 심장 박동만을
음악으로 들으며 한 인간으로 성장해 간다.
그것은 더 이상 바랄 수도, 얻을 수도 없는 극도의 편안함이었다.

미세한 신경 세포 하나까지 열리며 오르가즘의 황홀경에 도달한 캐시는, 따뜻한
물 속에서 그런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르가즘의 잔잔한 여운이 몸과 마음을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끄는 것만
같았다.
신은 인간에게 섹스의 아름다움과 오르가즘의 짜릿함을 선물로 주었다.
그것은 짐승은 누릴 수 없는, 인간만의 특권이었다.

약속 장소에는 강 사장이 먼저 도착하여 캐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지 않은 수중수음(水中手淫)으로 늦어진 캐시는 멋쩍은 표정으로 강 사장에게
다가갔다.

"미안... 후후. 좀 늦었죠?"
"할 수 없지.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게 하는 습관으로 길들여졌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어?
괜찮아. 20분밖에 안 늦었어.
그래도 이렇게 나왔잖아."

캐시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듯 강 사장은 즐거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예정대로 백화점을 찾았다.
강 사장은 그녀를 보석 상점으로 이끌었고, 때아닌 보석 선물에 놀란 캐시는 그저
눈만 휘둥그레질 뿐이었다.

"예쁜 팔찌를 하나 사주려고 그러는데... 어때?"
"어머머! 고마워요! 자기 정말 멋있어! 선물도 할 줄 알고!
그런데 왜 하필 팔찌예요?"

"옛날에는 팔찌에 노예의 의미가 있었잖아. 뭐...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캐시를 내 노예로 삼는다는 듯이 아니라, 내 여자라는 의미로 해주고 싶었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것을 해도 괜찮아."
"아잉~! 아니에요! 자기가 사주는 거면 뭐든 받을께요. 후후후..."

캐시는 18K 금팔찌에 블루 사파이어와 큐빅이 현란한 빛을 내뿜는 것을 골랐다.
그러나 강 사장은 그런 모조 다이아몬드보다는 진짜 다이아몬드를 원하고 있었다.
캐시는 강사장이 팔찌에 박혀 있는 큐빅을 다이아몬드로 모두 바꿔달라는 주문을
하는 것에 놀라 말을 잇지 못하고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자, 자기! 다, 다이아몬드? 그, 그건 너무..."
"비싸다고? 괜찮아! 기왕 하는 거면 다이아몬드로 하지,
뭐하러 큐빅으로 해? 신경 쓰지마! 어제 일도 미안하고...
작지만 보답하고 싶었어."

캐시는 거액을 지불하는 강 사장의 팔에 몸을 밀착시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주문표와 영수증을 받은 강 사장은 의류 매장으로 캐시를 이끌었다.

"이거, 사모님께 너무 잘 어울립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꼭 오십시오.
흠 없이 깔끔하게 세공해서 가져다 놓겠습니다!"
"돈이 최고야. 사람이 금방 저렇게 달라지잖아. 후후..."

허리를 굽혀 깎듯이 인사하는 점원을 바라보며 강 사장이 속삭였다.

"이제 옷을 골라. 팔찌와 잘 어울리는 것으로..."

강 사장은 의류 매장에서도 일류 디자이너들이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판매원 아가씨는 첫눈에 돈이 많은 고객임을 알아보았는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을 환대하고 있었다.

"이 검정색 원피스가 좋겠어요.
사모님께서 정말 아름다 우시네요.
군살 없이 몸매가 너무 좋으세요.
관리를 잘 하시나봐요. 입어 보시겠어요?"

점원의 말에 캐시는 옷을 갈아입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의 전신 거울에 모습을 비춰본 캐시는 옷이 자신에게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캐시... 아직 멀었어? 다 입었으면 나와 봐!"

문 밖에서 강 사장이 지루함을 담아 말했다.
순간, 캐시는 장난 끼가 발동했다.

"자기, 잠깐 들어와 봐! 좀 도와줘야겠어요!"
"내가? 그냥 점원 아가씨 들여보낼까?"

"아니, 그냥 자기가 좀 와줘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좁은 공간으로 들어선 강 사장은 넋을 빼앗긴 듯 뜨악한
표정으로 캐시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정말 예쁘다. 너한테 너무..."

강 사장은 말을 끝내 잇지 못했다.
캐시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맞춤을 했기 때문이다.
강 사장의 몸에 캐시의 몸이 밀착되어 봉긋한 젖가슴이 닿았다.

"이, 이러면 안돼! 여긴..."
"쉿~! 밖에서 들어요! 그냥 조용히 있어요! 후후..."

캐시의 눈이 반짝이며 뇌살적인 광채가 흘렀다.
욕망이 흐르는 눈빛이었다.
캐시는 강 사장의 목에 한쪽 팔을 두른뒤 다른 한 손을 사타구니로 가져갔다.

"어, 어멋! 자 기이!"

이상한 일이었다.
강 사장의 그것이 단 한번의 키스만으로 잔뜩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것은 강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이럴 리가 없는데?"

캐시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30분 이상 오럴을 해줘야만 발기되던 강 사장의 페니스가 어떻게 단 한번의 키스로
잔뜩 부풀어오를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가요.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두 번의 섹스로 발기불능이 고쳐진 것은 아닐텐데?"
"그게 어디 섹스를 한 건가? 하다가 실패했잖아."

강 사장도 자신의 페니스가 발기된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남자는 누구나 성욕을 느끼면 페니스가 발기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건만, 정작
강 사장은 자신의 몸에 나타난 반응에 대해 원인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아... 난... 알 것 같아요.
자기가 왜 쉽게 발기됐는지.
훗, 생각보다 쉽게 자기의 병을 고칠 수 있겠어요."

캐시는 마음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에 강한 확신을 갖게된 캐시는 강 사장의 손을 잡고 부리나케 밖으로
나왔다.

영문을 모른 채 서둘러 옷값을 지불하는 강 사장은 판매원 아가씨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는 부끄러운 나머지 뒤로 돌아섰다.
강 사장의 입술에는 캐시와의 키스로 번진 립스틱이 묻어 있었고, 불룩해진
아랫도리가 그녀의 시선을 끌었던 것이다.

"가요!"
"어딜?"

어디긴요? 당연히 호텔이죠! 빨리 가요! 이제 알았어요!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해결 법이 무엇인지 이제 알겠어요!
오늘은 우리 성공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빨리 가요!"

주차장에 세워진 강 사장의 승용차에 올라타며 캐시가 말했다.
강 사장은 끝내 원인을 모르는 듯 했고, 다만 캐시의 말에 감격할 뿐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삼십여분 후, 인근에 위치한 호텔 방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42] 제목 : ▶첫경험 보고서◀ Ⅲ-10. 제 2의 빨간 마후라

캐시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지만 나 역시 그녀가 무엇을 알아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영문을 몰라 갸우뚱거리는 내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정말 모르겠죠?
하지만 우린 성공했어요.
결국 내가 그 원인을 너무도 쉽게, 우연히 찾아낸 거죠!"
"훗, 어떻게 하셨는지 무척 궁금하군요."

그제야, 지난번 인터뷰를 끝내고 강 사장과 캐시가 모텔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던졌던 질문에 대한 해답이 정해졌다.
그들은 그날 분명히 성공했을 것이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만약 실패했다면 캐시가 이런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강 사장이 나를 만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인터뷰는 처음부터 '성공'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축하드리는 것이 옳겠죠? 후후... 진심이에요. 정말 축하 드립니다."
"그럼요, 축하할 일이죠. 저 보다는 강 사장님이 축하 받을 일이지요.
어쨌거나 그 이가 그 날 이후 행복해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새로 태어난 기분이래요.
남자들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봐요.
하긴... 여자도 마찬가지겠지만.
만약 제가 불감증이었다면 무척 힘들었겠죠?
더구나 남자들은 그것을 남성의 상징으로 보는데...
그게 불능이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일이 해결된 후, 그 사람 마음이 이해가 가더군요."

"저는 솔직히 아직 이해가 안가요.
오십대의 아저씨라면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그런 나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혹시 삼십대나, 사십대라면 중요하겠지만..."
"훗, 미연씨가 모르셔서 하는 말이죠.
남자들은 문턱 넘어갈 힘만 있으면 백발 노인네라도 여자에게 침을 흘린 대요.
후후후...
남자에게 있어 그것은 생존 본능이나, 종족 번식의 본능과는 달라요.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제가 알기로는 남자라는 존재가 지탱하는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흔히 옛날부터 쓰는 말이 있잖아요.
남자 구실 못하는 남자..."

"..."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보통의 남자들은 남자라고 당연히 인정받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소위 '고자'인
사람들은 '남자 구실'을 못한다고 해서 사람 취급도 못하고 손가락질 당했지요.
결국 남자의 '성교 가능'여부 즉, '발기'가 되고 안되고의 문제, 혹은 발기가
되더라도 수태의 가능성 여부가 인간으로써가 아닌, 남자로써의 존재 의미를
가능케 해 준다고 봐요.
제가 너무 억측을 부리는 걸까요?"

"아뇨. 맞는 말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남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런 문제가 남자의 자존심과 분명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해요.
뭐, 기죽는 남자, 고개 숙인 남자...
우회적인 표현이지만 결국 그런 의미 아닐까요?'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이 일치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인터뷰임이 틀림없었다.
지니와의 인터뷰는 우울함과 연민이 가득했었고, 사이버 맨 김준석과의 인터뷰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고싶은 않을 정도였다.

*

강 사장을 거의 끌다시피 하여 인근의 호텔로 들어선 캐시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세워놓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어, 정은이니? 나 캐시야! 너 지금 한가하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겠니?
아니, 바쁜 일이 있어도 무조건 달려와줘!
여기 신촌에 XXX호텔이야."

강 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녀가 호텔로 들어온다는 것은 뻔한 일인데, 친구를 불렀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캐시! 왜 친구를 부르는 거지?"
"이제 곧 알게 되요.
제가 시키는 대로 따라주면 돼요.
오늘 자기는 젊음을 되찾게 될 거예요."

"설마... 이렇게 빨리? 난 믿어지지 않아."
"그렇겠죠. 하지만 제 말이 틀림없어요.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 한가지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요. 알았죠?"

강 사장은 캐시가 말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인 계획이야 캐시의 친구가 도착되어야만 알 수 있겠지만, 확신을 갖고
말하는 그녀를 믿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캐시의 친구인 정은이 도착한 것은 한 시간 가량이 지나서였다.
그녀는 요란스럽게 초인종을 누른 뒤, 방안으로 들어서면서도 호들갑을 떨었다.
화사한 정장 차림의 그녀가 들고 있는 쇼핑 백이 눈에 들어왔다.

"어휴, 기집애! 대체 뭔 일이길래 호텔까지 불러내고 난리야?"
"호호, 인사부터 해! 이쪽은 강 사장님이셔. 우리 애인이야. 호호호..."

정은은 강 사장을 알아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긴 생머리를 하나로 질끈 동여맨 그녀는 캐시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듯 했지만,
두 사람이 나누는 말투로 보아 친구임이 분명했다.

"이거 참,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아아... 누구신지 알겠네요. 강공태 사장님... 맞죠?
대한 물산의... 사장님이시라는."

"허허허... 이거 정말 쑥스럽네요. 제가 벌써 소문의 대상이 된 겁니까?"

세 사람은 의외의 편안한 마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뜻 밖의 상황에서 마주하게된 것이 새삼스레 어색하고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정은아, 부탁 좀 들어줘."
"뭔데?"

부탁이라는 말에 정은이 호기심 띤 얼굴로 물었다.
강 사장은 곁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너, 내가 부탁한 것 같고 왔어?"
"응, 가져왔는데... 대체 이 캠코더로 뭘 하려고?"

정은은 들고 있던 쇼핑 백을 캐시에게 건네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쇼핑 백에는 액정 모니터가 달린 8밀리 캠코더가 들어 있었다.

"후훗, 고마워! 내가 이거 일주일 정도 쓰고 줄게. 괜찮지?
안되면 할 수 없지만...
부탁이니까 좀 들어줘. 대신 술 한잔 거나하게 살게!"

캐시와 강 사장은 캠코더를 건네준 정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뒤, 한사코
마다하는 그녀를 호텔 로비까지 따라가 배웅했다.

"그래, 이제 말해봐. 대체 해결책이 뭔지... 궁금해 죽겠어!"

룸으로 다시 들어서자마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강 사장이 말했다.
캐시는 장난스레 웃으며 드디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기, 궁금했죠? 후훗,
사실... 섹스라는 것이 성적인 욕구를 느껴야만 가능한 건데, 그게 마음뿐이고
몸이 그것에 길들여져 있으면 별 느낌을 갖지 못하거든요.
음... 뭐에 비유를 해야만 좋을까?
그러니까... 바나나가 우리들 어렸을 때는 귀하고 귀해서 1년에 한번 먹을까
말까였고, 그래서 더 맛있었던 건지도 몰라요.
하지만 요즘 너무 흔해지니까 그 맛에 길들여져서 이젠 맛있는 줄을 모르잖아요.
그렇죠?"
"으음..."

"강 사장님은 한동안 섹스를 즐기지 않은 것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젊었을 때 자칭
섹스 매니아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성적 자극에는 길들여져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처럼 나이든 후에는 평범한 자극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어떤 충격이 필요해요.
아주 쇼킹한 것일수록 좋죠."

"그, 그게 뭐지?"
"훗, 아까 백화점에서 옷 갈아입는 방... 기억하죠?"

"응, 기억하고 말고!"
"그땐 키스만으로도 발기했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그런 특수한 상황이 되어야만 해요.
누군가 지켜보는 앞에서 행위를 한다거나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어도 좋고...
이를테면 공개된 장소 같은 곳."

"그럼 왜 캐시가 일하는 그 룸싸롱에선 안됐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 사장이 되물었다.
그러나 캐시의 표정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그거야 뻔하죠.
어차피 술집의 밀실은 그런 일들이 비일 비재한 곳이고 남녀 단둘이 있을 경우,
일부러 부르기 전에는 누가 들어오지도 않잖아요.
그리고 사업하시는 분이니 그런 분위기의 접대 자리가 오죽 많았겠어요?"
"흐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아. 그래서 이제 어쩔거지?"

"빨간 마후라 기억해요?
오늘은 이 캠코더로 강 사장님과 저의 섹스 장면을 촬영할 거예요.
제 2의 빨간 마후라죠. 후후...
단, 촬영한 후에 필름은 파기하기로 해요.
나중에 찜찜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영상을 확인한 다음에 그래야겠죠? 후후..."

강 사장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두 사람의 섹스 장면을 촬영할 것이라는 캐시의 말만으로도 그는 벌써 흥분하고
있었다.

[43] 제목 : ▶첫경험 보고서◀ Ⅲ-11. 포르노 배우가 된 여자

캠코더가 침대 위를 제대로 비추도록 조정한 캐시는 적당한 위치를 잡아 강 사장과
마주섰다.
강 사장은 자신이 이미 흥분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후후... 자기 벌써 흥분하고 있죠?"
"으응... 느낌이 새로워. 역시 널 선택하길 잘한 것 같아."

캠코더에 달린 액정 모니터에 두 사람의 나신이 그대로 나타났다.
강 사장은 액정 모니터의 영상을 살피고는 뜻밖의 짜릿함에 더욱 달아오르는
자신에 놀라고 있었다.

"봐요! 자기 것이 단단하게 섰어! 후훗..."

나신이 된 강 사장의 아랫도리는 묵직하다 싶을 정도로 부풀어올라 젊었을 때의
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캐시는 그것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며 무릎을 꿇었다.
강 사장은 캐시가 자신의 페니스를 쓰다듬는 영상이 비춰지는 액정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혹시라도 흥분이 사라질까봐 염려스러웠다.

모니터 속의 캐시는 강 사장의 그것을 입 속으로 천천히 밀어 넣고 있었다.
캐시의 따뜻하고 축축한 혀가 페니스의 기둥을 휘감아 삼켜버리자 강 사장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 몸의 솜털들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헉~!@# 너, 너무 긴장돼!"

액정 모니터에 나타나는 영상은 하드 코아 포르노 그 자체였다.
자신이 주인공이 된 포르노 영상을 바라본다는 느낌에 강 사장의 흥분은 더욱
고조되었다.

강 사장은 캐시의 입 속으로 자신의 페니스가 쉴새 없이 넘나드는 장면으로부터
여전히 눈을 뗄 수 없었다.
영상 속의 남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박고있는 캐시의 머리칼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몸을 떨었다.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몸을 떨던 강 사장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캐시를 일으켜
침대 위로 떠밀었다.
캐시의 몸이 나무가 쓰러지듯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졌고, 강 사장이 그녀의
몸 위로 뛰어들어 성급하게 동굴 입구를 찾아 헤맸다.

"허억~!@#"

캐시의 입이 벌어지며 외마디 비명이 흘러 나왔다.
묵직한 고통이 캐시의 아랫도리로부터 온 몸으로 파도쳤다.
강 사장의 페니스가 완전히 발기되자 여느 남자들처럼 직선형이 아니라 약간
굽어진 형태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캐시의 몸 속으로 밀려들어와 빈 공간을 가득 채우며, 지금까지 느껴본
자극과는 다른 특별한 쾌감을 전해주었다.
보통의 남자들이라면 동굴 전면의 벽이나, 반대쪽이 공격당하겠지만, 강 사장의
그것은 전면을 향해 돌진하면서도 어느 순간 측면의 한 쪽을 스치며 질 속의
중요한 성감대를 자극했다.

강 사장은 캐시가 느끼는 쾌락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그 동안 풀어내지 못했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 몸을 뒤틀어가며 용트림했다.

"헉헉~! 캐, 캐시! 최고야! 저... 정말... 오랜만에... 느, 느끼는 거야...
헉~! 허억~!"

캐시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강 사장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해일 속에서 이성을 잃은 나약한 인간처럼 쾌락으로 몸이
떨려와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자, 자기이... 하아~! 하아~! 자기... 이제, 서, 성공 하, 한거...야?
하아~! 하아~!"
"헉~! 헉~! 그래! 서, 성공한 거야! 헉헉헉..."

피스톤 운동으로 파도처럼 출렁이는 캐시의 유방을 움켜쥐며 말했다.
보랏빛의 작고 단단한 유두가 만져졌다.
깨물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강 사장의 입술이 그것을 비틀자 캐시의 얼굴이 쾌감으로 일그러졌다.
캐시의 그런 모습은 강 사장의 욕망을 더욱 부채질했다.

"아아아악~!@#"

허공을 가르는 캐시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며 강 사장의 육중한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그의 페니스가 캐시의 몸 속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엄청난 양의 뜨거운 액체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캐시는 자신의 다리 사이로 축축한 그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강 사장은 오랜만에 이루어진 절정을 만끽하며 캐시의 몸 위에서 일어날 줄
몰랐다.
그녀는 그의 등을 따스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축하해요. 자기는 이제 원하던 것을 얻었어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캐시를 내려다보는 강 사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왜, 왜 그래요?"
"감격해서 그래.
나, 사정한 거 5년만이야.
사십대 후반부터는 거의 하지 못했어.
내 나이가 이제 쉰이 넘었는데 그 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했을지 생각해봐.
그래서 일에만 매달려 살았어.
하다못해 여자를 돈을 주고 사봤지만 다 소용 없었어."

"..."
"여자들은 몇 번 시도해보곤 안되니까 나중엔 짜증만 부렸고, 아예 병신 취급했어.
그게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
그런데... 너를 만나서 이렇게 쉽게 할 수 있었다니...
그 동안 고민하며 마음 고생한 일들이 너무도 속상해..."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는 강 사장의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졌다.
동정 따위는 아니었다.
캐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그의 몸을 따스하게 안아 주었다.
그가 얼마나 기뻐 하는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

캐시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 또한 강 사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에게 있어 '능력'과 '가치'가 될지도 모를 '성능력'이 상실되었다가
되살아났을 때 새 생명을 얻은 것처럼 기뻤을 것이다.

"그랬군요. 강 사장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자가 되어보진 못해서... 100%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전,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술집에서 남자들을 상대한 것이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뭣할 정도로 오래되
었지만...
솔직히 남자들과 외박을 나갔을 때 섹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병신
취급하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나이 많은 아저씨들은 도중에 꺼지는 경우도 다반사예요.
그뿐인가요?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은 젊은 사람이라도 발기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술집 아가씨들은 그런걸 짜증내고 싫어 해요.
어떻게 해서라도 행위를 마쳐야만 그 자리를 빠져 나올 수 있고... 또 시간이
돈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끝내려고 하다보니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말을 마친 캐시는 무거운 얼굴 표정을 지으며 새로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짙은 담배 연기 속에 그녀의 오랜 세월이 묻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일순간 그녀가 술집 여자가 아닌, 세상을 달 통한 여인처럼 보여졌다.

"그런데... 그때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는 어떻게 하셨죠?"
"뭐... 강 사장님과 제가 포르노 배우가 된 거죠. 후후후..."

나의 질문에 캐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나를 빙긋이 바라보고는 탁자 위에 놓여진 리모컨을 들어 VTR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원이 켜진 텔레비전에서 남녀가 한데 엉킨 영상과 함께 거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44] 제목 : ▶첫경험 보고서◀ Ⅲ-12. 섹스의 의미

남자와 여자가 뒤엉켜 격렬한 정사를 나누고 있는 비디오 영상에 나는 숨이
멈추었다.
그녀가 나에게 자신의 정사 장면을 보여주는 의도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그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파기하지 않았군요."
"당연하죠! 이걸 왜 파기해요?
저에게 엄청난 부(富)를 제공하는 밑천인대요. 호호호..."

나는 그녀의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히 파기 되었어야할 비디오 테이프가 자신에게 부(富)를 제공하는 밑천이
된다는 것은, 그녀는 자신과 강 사장의 정사 장면을 세인들에게 팔아 넘기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엄연히 불법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요?
이런 비디오 테이프가 암암리에 시중에 나돌고 있다는 것 모르셨어요?"
"하,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강 사장도 알고 있어요.
지금 이 테이프는 원본이니까 우리들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기술자를 통해서
약간의 편집을 했어요.
얼굴을 알아 볼 수 없도록 모자이크 처리를 했죠. 후후...
하지만, 강 사장의 얼굴에만 그렇게 했어요. 전 그냥 내버려뒀죠."

그녀의 그런 의도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자신의 얼굴이 암암리에 공개가 될텐데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남자들은 쾌감으로 찡그리는 여자의 얼굴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내 얼굴이 안 보인다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저런 피스톤 운동이나 페팅쯤이야 누구나 하는 것인데... 후후."
"뭐... 그런 것과 상관없이 강 사장님의 문제를 쉽게 해결 해주셨으니 약속하신
대로 거래를 끝내셨겠군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와 강 사장은 약속한 거래를 충실하게 이행했고 서로를 배신하거나 누를
끼치지도 않았다.
그녀가 비디오 테이프를 암시장에 내다 파는 것 또한 강 사장의 이해가 작용한
것이었으니까.

"그는 내가 하는 일이면 이제 절대 반대 안해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삶의 은인인 저를 홀대하겠어요?
그는 나에게 너무도 잘해줘요.
사랑하는 것 과는 좀 다르지만..."
"사랑이 아니라면... 어떤...?"

"뭐, 모르겠어요?
그냥 일종의 거래 관계로 이루어졌던, 그래서 거래가 끝난 뒤에 친구로 남는 그런
관계죠.
그는 요즘 다른 여자와 어울려요.
재혼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아주 젊은 여자와... 후후"

강 사장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새로운 인생을 즐기게 된 것이었다.
그것으로써 섹스를 거래 대상으로 삼았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고
기준은 유감스럽게도 나에게 없었다.
나는 그들의 그런 모종의 거래가 낳은 결과만을 바라보고 싶었다.

남자에게 있어 존재의 의미와 가치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중요한 성능력의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길었던 마음 고생에서 빠져나온 그가 느꼈을 무한한 자유와
행복감만을 알아주고 싶다.
그것은 인터뷰 과정에서 들었던 그의 방황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발기가 되지 않는다고 병신 취급을 받는 남자들과 임신을 하지 못한다고 버림받는
여자들은 결국 같은 패배자이다.
사람의 존재 가치는 결코 '성능력'으로 판정될 수 없음에도 인간으로써 어디 한 곳
빠지는 부분이 있다고 무시당하거나 천대받을 수는 없다.

"강 사장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자의 입장과 비교한다면 임신을 할 수 없었던 여성이 기적적으로 임신한 것과
마찬가지인 기쁨을 누렸을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그 사람의 삶 전체가 뒤바뀌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 에요.
무능력한 노인으로 남아 있다가 이제 혈기 왕성한 중년 남자로 돌아간 거죠.
사업하는 자세도 달라졌어요.
전보다 더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일하고 있대요.
얼마 전에 회사 남자직원들을 데리고 우리 가게에서 회식을 했었는데...
그때 그가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얼마나 존경받고 있는지 알수 있었죠.
직원들은 그를 마치 친구 대하듯 했어요.
이해가 돼요? 삼십대 사십대의 직원들이 아버지뻘 되는 오십대 사장과 친구처럼
어울리는 것이?"

남자들의 세계를 여자들이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자들의 세계를 남자들도 100%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서로 공통적인 아픔으로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언제 어디서 누구라는 조건만을 제외한다면 우리들은 저마다 한번쯤 겪게 되는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도 찾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사람은 누구나 내가 안고 있는 고통이 가장 극렬하고 지독한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캐시는 강 사장의 용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발기불능을 기어이 뛰어넘지 않았다면 지금쯤 오십대 노인으로
인생의 황혼기에만 젖어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한낮의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정열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섹스라는 것은, 지나치면 자신에게 해가 되겠지만 그 독한 마약성 뒤에 감춰진
모습은 인간의 삶을 즐겁고 생기 있게 해준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무엇이든지 '적당한 것'은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 인터뷰를 끝내고 현관을 나서는데 캐시가 불현듯 봉투를 내밀어 나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게 뭐죠?"
"원래 약속된 금액과는 달라요. 이건 강 사장님이 주신 거예요."

"이러실 필요 없어요.
전 이런 봉투 받지 않아도 강 사장님에 대해 솔직하고 담백하게 쓸 참이에요.
그분의 요구를 들어 들이는 게 아니라, 제가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알아요. 저도 믿고 있어요.
하지만 이건 글 속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 달라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이 미연씨에게 표시하는 조그마한 성의일 뿐인 걸요. 받으세요.
별로 큰 액수는 아니니까 부담되지 않을 거예요.
옷 한 벌 사 입으시래요.
그래서 좋은 남자 만나 데이트하래요. 후후후..."

캐시는 어색하게 받아 쥔 하얀 봉투를 내 대신 가방 속에 밀어 넣어 주었다.

"고, 고마워요. 이런 일은 제가 바란 것이 아닌데..."
"뭘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강 사장님이 언제 시간 되시면 자기의 자서전도 부탁하고 싶대요.
맨몸으로 지금의 사업체를 일으키고 수많은 역경을 이겨냈던 자신의 이야기를 생을
돌아보는 뜻으로 엮어 보고 싶다더군요."

나는 그녀가 건네주는 강 사장의 명함을 받고는 거듭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인터뷰였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가지만 나름대로 노력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삶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45] 제목 : ▶첫경험 보고서◀ Ⅳ-01. 씨받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차분하고 조용해 보였던 그녀의 이름은
민혜영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올해 서른 둘.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에서 살아온 날들만큼의 성숙한 여유가 느껴졌다.

"이렇게 집으로 오시라고 한 것이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뇨. 오히려 말씀하시기에 도움이 될 겁니다.
다른 낯선 곳에서는 오래 이야기 나눌 수도 없고요."

그녀를 만난 시간은 오후 2시쯤이었다.
따뜻한 홍차에 우유를 섞은 밀크 티를 내놓은 그녀는 아직 할 일이 남았는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일하기에 바빴다.

"미안해요. 곧 아이가 올 시간이라서요.
간식이라도 준비 해놓아야 짜증을 안 부려요.
오늘은 놀아주지도 못하니까... 특별 메뉴라도 준비해야겠어요. 잠깐이면 돼요."

그러고 보니 아담한 거실 이곳저곳에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이 놓여져 있었다.
아이는 4살이나 5살 정도 되어 보였고, 노란 모자를 눌러쓰고 노란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보아 다니고 있는 유치원에서 찍은 사진인 듯 했다.

"아이가 참 예쁘네요. 여자 아이 맞죠?"
"네에. 유림이에요. 민유림.
제 성을 따서 민유림이라고 했어요.
이제 곧 숨차게 뛰어 들어 올꺼예요.
아마 지금쯤 아파트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뛰고 있을걸요? 후후..."

그녀의 양어깨에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딸 유림이에 얽힌 사연이 가득함을 알았다.
아마도 그녀가 시작할 이야기는 유림이와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다.

"유림이는 몇 살이죠? 여섯 살?"
"아뇨. 다섯 살인데... 아이가 좀 조숙해요.
아빠 없이 혼자 자라서 눈치가 빠른 것 같아요.
혼자서도 뭐든 열심히 하려고 들고, 또래의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욕심도
대단해요.
선생님이 다른 아이를 칭찬하면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릴 정도예요."

자신의 아이를 자랑하는 엄마의 심정이 되어보진 않았지만 어린 딸의 자랑을
늘어놓으며 즐거워하는 그녀의 표정으로는 마냥 행복하게 보였다.

쾅! 쾅! 쾅!
딩동 딩동...

"엄마! 엄마아아!!"

요란하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초인종 소리가 번갈아 들리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것보라는 듯이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현관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자 잔뜩 볼멘 표정으로 어린 꼬마 숙녀가 들어왔다.

"오늘은 또 왜 이렇게 화가 나셨을까?"
"영철이가 아빠랑 여행 간다고 막 자랑하잖아.
엄마! 우리두 제주도 가여.
거긴 비행기만 타구 간대.
영철이는 엄마랑 아빠랑 셋이서 제주도 간다구 자랑했어.
엄마, 제주도가 어디야?"

아이를 달래는 김혜영의 얼굴이 어두웠다.
아이에게 없는 아빠를 의식한 탓이 분명했다.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꼬마 숙녀 유림이의 얼굴을 살폈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빼다 박았지만 닮지 않은 눈매와 콧날은 아버지를 닮은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유림아. 여기 이모에게 인사해. 그래야 착한 아이지?"

꼬마 숙녀 유림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 속에 맺힌 슬픔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아 가슴이 찌르르
쓰려왔다.

"유림이 안녕? 제주도 가고 싶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도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도 모르면서, 친구가 아빠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자랑에 속이 상해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중에, 이 다음에... 엄마랑 이모랑 함께 가자.
지금은 엄마가 바쁘시거든.
유림이는 착하니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함께 가자는 약속을 했음에도 아이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달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모가 말하는데... 대답도 안하고, 인사도 안하고...
유림이 정말 나쁜 아이구나?"

엄마인 혜영의 얕은 꾸중에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아이는 그 작은 입술을 달그락거리며 울먹였다.

"엄마 미워! 나도 아빠랑 가고 싶어! 왜 나만 아빠가 없는 거야!
영철이도 아빠 있고, 정미도 아빠 있어!
내 친구들 전부다 아빠 있는데 왜 나만 없는 거야... 앙앙앙..."

혜영의 눈가에 물기가 번졌다.
그녀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당황한 나머지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유림아..."

그녀는 아이를 끌어안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거실로 나온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울음 끝에 지쳐 잠이 든 듯 했고,
혜영의 표정은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오십대 중반의 여인은 거의 무표정하다시피 굳어진
얼굴이었다.
저고리 앞섶에 매달린 브로우치는 사파이어와 루비가 박힌 값나가는 물건이었다.
오십대 중반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단정한 그녀의 모습에 혜영은 벌써부터
질리고 있었다.

"뭐... 자세한 내막이야 아가씨도 알 테고,
그래요. 알고 왔으니까 본론부터 말할께요.
우린 아이가 필요해요.
우리 아들이 5대 독자인데... 결혼한지 3년이 지나도 영 소식이 없어요.
병원에서는 아들 내외 모두에게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어미 된 마음으로써는
이 방법이라도 써서 빨리 대를 잇고 싶어요."

조목조목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에게 있어 혜영은 도구일 뿐이었다.
혜영은 이제부터 자신에게 벌어질 일들에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어디 아픈 곳은 없죠?
보아하니 몸은 튼실해 보이는구먼.
얼굴도 그만하면 빠지지 않는 것 같고...
성격이 좋아 보여 마음에 들어요.
어쨌거나 엄마의 모습을 조금은 닮을 테니까..."
"아픈 곳은 없습니다. 잔병치레도 거의 하지 않아요."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혜영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녀가 갑작스레 다정한 태도를 보이자 혜영은 오히려 당황하고 있었다.

"아가씨... 부탁해요. 아들 하나만 낳아 줘. 응?
아들만 낳아주면 사례는 심심지 않게 할께요.
이 노인네 소원이라우.
죽기 전에 아들놈 손주 안아 보고 싶어요. 제발 부탁해요."

혜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여인은 그녀의 손을 놓고는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어 건네주었다.

"이것은 계약서와 계약금을 넣은 아가씨 명의의 통장이에요.
아들만 낳아준다면 나머지 잔금과 함께 이 아파트는 아가씨 것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알겠지만 일단 출산할 때 까지는 이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것은
자유롭지 못해요.
나갈 때는 꼭 가정부와 함께 가도록 해요.
특별한 일 아니면 가급적 외출하지 말도록 하고...
이따 아들 녀석이 퇴근해서 올 테니 준비하길 바래요."

여인이 건네준 통장에는 계약금 천만원이 들어 있었다.
나머지 잔금은 2천만원. 아들을 낳으면 싯가 1억 5천만원인 이 아파트가 혜영의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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