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외설 구운몽 10장 - 용궁의 호색한 (1)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407회 작성일 17-02-12 11:26

본문

스포츠 굿데이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관리자님 저작권에 문제가 있으시면 자진 삭제하겠사오니 문제가 되면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10장 - 용궁의 호색한


백화곡 어귀에서 두 자매와 헤어진 성진은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연화봉을 떠난 이래 며칠 동안 계속 세속의 추악한 모습만 보았으나, 이번에는 좋은 결말을 보게 되었다. 수행승으로서 세속을 제도하는 첫걸음을 디딘 셈이기도 했다.
근 이백리 길을 한달음에 달려가니 문득 길이 끊기며 푸른 물결이 앞을 가로막았다. 동정호였다. 말이 호수지 성진의 눈에는 바다처럼 보였다.
바닷가처럼 해안을 따라 늘어선 백사장에는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가곤 했다. 성진은 처음 보는 풍경에 넋을 잃고 동심으로 돌아갔다.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밀려오는 물결에 발을 담갔다. 물결이 빠져나가며 발 주위의 모래를 휩쓸어 갔다. 발바닥 밑에만 남아 봉긋이 솟아오른 부드러운 모래 턱이 성진의 발을 간지럽혔다. 여인의 유방을 만질 때의 감촉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색정이라고는 모르던 성진이 달포 사이에 여러 명의 여자를 겪었다.
성진은 지긋이 눈을 감고 발바닥의 감촉을 음미했다. 보드라운 유방으로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듯 여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용왕의 딸이 자신의 등에 업혔을 때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 탱글탱글한 탄력과 매끄러운 감촉이라니…. 손미령이 벌거벗고 육탄공세를 벌일 때의 그 당혹스러우면서도 설레던 느낌도 이랬지.
"혹시 연화봉에서 오신 스님이 아니신지요?"
문득 등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성진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시종 무관 차림을 한 중년의 사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음란한 속마음을 들킨 듯싶어 성진은 허겁지겁 신을 찾아 신었다.
"산에서만 사시다 보니 강변이 신기하신 모양이십니다. 육관대사님의 문도답게 어쩜 그리 천진무구하실꼬. 지켜보는 제가 다 흐뭇해집니다 그려."
무관의 따뜻한 말 대접도 왠지 비꼬는 것만 같아 성진의 귓불이 붉어졌다. 역시 사람은 죄짓고는 못사는 법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셈이다.
"그럼…. 용궁에서 나오셨습니까?"
"예. 왜 아니겠습니까. 귀한 손님이 오시니 잘 모시고 오라는 분부를 받잡고 왔사옵니다. 어여 가시지요."
사내의 말투가 꼭 승려 같다. 그러고 보니 풍채도 좋고 얼굴도 온화한 게 무관이라기보다는 스님이 제격이다. 사내의 나이도 중년이고 보니, 산문에서 내려온 뒤로 아직 어리벙벙한 열 여덟 살의 풋내기 성진과는 서로 주객이 전도된 형국이다. 성진이 문사의 복장인데도 금세 알아보는 것을 보면 용궁 식구들의 공력도 만만치는 않겠다.
용궁 무관이 손을 한번 흔들자 강물이 출렁거렸다.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 부글부글 끓더니 마치 기의 장막처럼 물보라가 두 사람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장막 속으로 동굴 같은 길이 생겼다. 무관의 뒤를 따라 들어가며 성진은 왠지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명색이 연화봉 육관대사를 대신해서 온 몸인데 정신을 차려야지. 평상심을 잃지 말자.'
성진은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바닷속 풍경에 성진은 넋을 잃고 말았다.
통로에서 발산되는 빛이 어두운 바닷속을 어슴푸레 비추고 있었다.
갑자기 상어 한 마리가 불쑥 다가와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는 통에 성진은 깜짝 놀랐다. 다행히 통로의 장막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했다.
"놀라셨소이까. 이 통로는 안전하니 어서 가시지요."
무관이 귀신같이 알고 뒤를 돌아보며 재촉했다. 성진은 정색을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물속 길을 한 시진이나 갔을까. 저 아래로 호화찬란한 궁궐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정호가 참 깊다더니 허언은 아닌 성싶었다. 아무튼 이제 곧 용궁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새삼 긴장이 되었다.
'아니 저것은?'
성진은 깜짝 놀랐다. 웬 사람이 저만치 서 물 속을 유영하는 게 보였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벌거벗은 여인이었다. 긴 머리가 풀어헤쳐져 너울거리고 순백의 나신은 인어처럼 흐느적거렸다. 팔을 젓거나 다리를 차지도 않고 오직 허리의 탄력만으로 재빠르게 물 속을 헤쳐나갔다. 물 속을 헤쳐나간다기보다 꼭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였다. 벌거벗은 여인의 몸매를 본다는 당혹감 보다는 그저 신기하다는 감탄만이 나왔다.
여인이 옆으로 눕듯이 부드럽게 몸을 제치자 그녀의 전면이 이쪽으로 향했다.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굴곡진 엉덩이와 미끈한 허벅지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물기에 어린 피부가 채색기름처럼 아롱거리는 게 탄력적인 느낌을 주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듯한 신비감마저 느껴졌다. 허벅지 위의 검은 숲은 산호처럼 너울거렸다.
'아니 저 사람은!'
그녀의 얼굴로 시선을 돌린 성진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얼마 전, 연화봉을 찾아왔던 용왕의 딸이었다. 그녀도 성진을 발견한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손을 흔들며 방긋 웃음을 띠었다.
벌거벗은 몸을 가릴 생각도 않고 천진난만하게 구는 모양을 보고는 성진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연화봉에서 그녀와 벌인, 유쾌하면서도 가슴 두근두근한 소동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녀를 향해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머금던 성진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연화봉의 악동인 소전 패거리가 그녀를 겁간하려다 무시무시한 봉변을 당한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그녀의 뒤로 한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역시 알몸인 사내였다. 유연하게 유영하는 용왕의 딸과는 달리 그는 두 팔과 다리로 물을 가르며 마치 상어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사내는 쏜살같이 다가와 용왕의 딸을 등뒤에서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대뜸 그녀의 가슴과 계곡을 쥐었다. 두 발로는 그녀의 다리를 휘감아 꼼짝 못하게 했다. 발가벗은 두 남녀는 그렇게 물 속에서 기묘하게 얽혀 버렸다. 마치 은밀한 안방의 방중사를 보는 듯했다.
그들은 사내가 달려들던 관성 때문에 그 자세 그대로 수중 통로를 향해 부유해 왔다. 망측한 자세로 얽혀 둥둥 떠밀려 오는 두 남녀의 모습이 너무나 색정적이었다. 느릿느릿 공중에 떠서 성교를 하는 듯 너무나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다가오는 용왕의 딸을 보면서 성진은 자기가 그 사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연화봉에서 그녀를 등에 업고 느꼈던 젖가슴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그녀의 봉긋한 젖무덤이 성진의 등짝에 뭉클 부딪치는 것만 같았다.
'크지는 않지만 단단한 살집이 느껴지는 젖가슴이었지.'
앵두처럼 봉긋 솟아오른 도톰한 젖꼭지의 느낌이 상기되어 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발가벗은 채 그녀의 뒤에 바짝 붙은 사내의 모습을 보자 그녀의 엉덩이가 자신의 하복부를 자극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주 아담한 엉덩이였어.'
푹신하면서도 탄력이 넘쳤던 느낌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녀의 은밀한 계곡을 쥐고 있는 사내의 손이 마침내 성진에게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을 몰고 왔다. 그녀의 동굴에 자신의 손가락이 빠져 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그때 그녀와 나의 자세는 저보다 더 기이했지.'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난 두 줄기 나지막하고 기다란 언덕이 성진의 손가락 사이에 잡혔던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했다.
'그녀의 계곡 언저리가 매맞은 종아리처럼 부어오른 것 같았어. 화들짝 놀라 손가락을 옮기려다 갑자기 손가락에 느껴지던 살집의 감촉이 사라졌었지. 우물에 빠진 장대처럼 가운데 손가락이 그녀의 계곡 사이로 쑥 들어갔을 때의 묘한 느낌이란…. 촉촉하면서도 오톨도톨한 계곡의 벽면이 손가락에 바로 느껴졌지.'
성진의 등에 업혔던 그녀는 그 충격으로 뒤로 까무러쳐 엎어졌다. 그 때문에 손가락이 더 깊이 그녀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두 사람의 민망한 자세가 연출되었다.
'마치 수직으로 세워진 가위 같았어. 그 가위의 한가운데 교차점에 그녀의 동굴이 있고, 그곳에 박힌 압정이 내 손가락인 셈이었지. 그 압정을 뽑는 순간 가위는 두 동강이 나 땅바닥에 처박힐 것이 분명했지.'
그녀를 내려놓을 수도, 그냥 그렇게 버티고 있을 수도 없는 망연한 순간이었다. 그때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 다시 떠올리니 묘한 흥분이 엉치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더구나 그녀는 바로 눈앞에서 발가벗고 웬 사내에게 얽힌 채 수중을 떠돌고 있지 않은가. 자기도 모르게 하초가 불끈 서는 것 같았다.
"아니, 저 놈이!"
문득 길을 안내하던 용궁의 시종 무관이 소리를 질렀다.
무관은 수중 통로의 장막 바깥을 노려보고 있었다.
뭔가 물 속의 사내에 대해 적의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성진을 보고 고함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핫핫핫! 내 그럴 줄 알았어!"
무관이 별안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장막 밖을 보니 용왕의 딸이 사내를 뿌리치고 잽싸게 달아나고 있었다. 어쩜 그리도 유연하게 허리의 반동으로만 속력을 내는지, 성진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맴돌았다.
그녀가 또 무슨 술법을 부렸는지 사내는 귀를 막은 채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제대로 차린 성진은 용궁의 코앞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일에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영접하러 나온 무관에게 시시콜콜 물어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알몸으로 유영하는 용왕의 딸을 보며 음탕한 회상에 잠겼던 터라 내심 찔리기도 했다. 그저 발길을 재촉해 용궁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시오. 과인이 고명하신 육관대사의 경문을 듣고자 찾아간 것뿐인데, 이렇게 제자를 보내시어 치사하니 오히려 폐만 되었구려."
"대사께서 용왕님께 참으로 감사하다는 뜻을 전해 달라고 당부하셨사옵니다. 누추한 인간계의 산사에까지 왕림해 주신 큰 은혜에 저희 문도가 모두 몸둘 바를 몰라하고 있사옵니다."
"허허. '변복을 하고 가면 모르겠지'라고 생각한 게 과인의 좁은 소견이오. 도력 높은 대사가 모를 리 없거늘. 아무튼 예까지 오셨으니 푹 쉬다 가시구려. 불도의 수행에 좀 고단하시겠소. 뭐, 쉬다 보면 혹시 스님의 도력을 빌릴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오." 
의례적인 인사가 오고 갔지만 성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진의 의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성진이 문사의 복장으로 변복한 사연을 용왕이 묻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복장은 육관대사가 별다른 까닭 없이 명령한 것이다. 뭔가 용왕과 육관대사가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또 하나는, 온화한 목소리와는 달리 용왕의 안색이 매우 어둡다는 것이었다. 무슨 수심이 있는 것만 같았다. 용왕의 말끝에 도력을 빌릴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 게 마음에 좀 걸리기도 하고 납득이 가지 않기도 했다.
용궁 식구들의 공력은 이미 소문이 자자한 터이고, 이는 아까 자신을 안내한 시종 무관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굳이 자신에게 무슨 도력을 청할 것이 있을까 싶었다.  
아무튼 성진은 시종 무관을 따라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무관이 안내한 방은 육지의 객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창문이 둥글고 창호지 대신 투명하고 단단한 막 같은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조금 색달랐다. 창 밖으로 물 속 풍경이 환히 내다보였다.
무관이 나가자 성진은 목을 축이기 위해 탁자에 놓인 물병을 기울여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약간 짭짜름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나는 게 목이 확 틔는 것 같았다.
"호호, 맛이 어떠세요?"
문 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화봉으로 찾아왔던 용왕의 딸이었다.
"아가씨!"
성진은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덥석 그녀의 손을 쥐었다. 수십 리 물길 속 낯선 용궁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머, 그새 숫기가 많이 생기셨나 봐요. 연화봉에서는 참 부끄러워하시더니…. 호호홋!"
그녀의 놀리는 듯한 말에 성진은 퍼뜩 손을 놓았다.
"아이 참.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 우린 별별 일을 다 겪은 사이잖아요?"
그녀가 슬그머니 손을 뻗어 성진의 손을 잡았다.
"그…그런 말씀을."
연화봉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성진의 두 볼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스님은 그렇게 순진한 모습이 매력적인 거 아세요? 흥, 그 못된 소전인가 뭔가 하는 땡추랑은 참 다르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그녀의 손이 슬그머니 성진의 어깨로 올라갔다. 영락없이 그에게 안기려는 형국이었다. 성진이 깜짝 놀라 그녀를 밀쳐 내려다가 가슴에 손을 대고 말았다. 낯익은 느낌이었다. 탄력이 있으면서도 보드라운 감촉에 성진의 손은 그만 자석에 붙은 쇠처럼 멈춰 버렸다.
"호홍. 순진한 척하면서 할 것은 다 하시는 게 여전하네요. 후훗!"
그녀의 놀리는 듯한 말투에 성진은 더욱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아가씨. 무슨 말씀을 그렇게…."
"제 이름은 연홍이에요. 앞으로는 이름을 불러 주세요. 동정 용왕의 딸인데 그렇게 길가는 처자 부르듯 하지 말고요."
"아…알았습니다, 아가씨."
"아이 참, 연홍 아가씨!"
"아 예. 연홍 아가씨."
쩔쩔매는 성진이 재미있다는 듯 연홍이 깔깔거렸다. 성진은 화제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맹랑한 아가씨에게 더 이상 말려들면 곤란할 듯싶었다.

"그런데 연홍 아가씨."
"호홍. 왜 그리 다정하게 부르시죠?"
"아까 물 속에서 아가씨를 덮치던 남자는 누군가요?"
"뭐라고욧!"
갑자기 연홍이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앙칼지게 높였다. 이크, 이거 혹 떼려다가 혹 붙이는 꼴이 아닐까 싶어 성진이 변명을 했다.
"아니, 뭐 물 속에서 유영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그냥…."
"흥! 보기보다 음흉하네요. 말을 돌리려고 남의 약점을 찌른다? 땡추인 소전과 다름없는 사람이군요. 육관대사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그런가 보죠."
연기전 화살을 쏘아대듯이 퍼부은 연홍은 홱 돌아서더니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아가씨였다. 천진한 개구쟁이 소녀 같다가도 어느 순간 성숙한 여인의 체취를 풍기고, 그런가 하면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할멈처럼 남의 속을 꿰뚫어 본다. 문득 연화봉에서 그녀를 윤간하려던 소전 패거리가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던 일이 생각나 성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나저나 자칫하다가는 용왕께 사례는커녕 스승의 위신에 먹칠만 할 판이었다. 성진이 어쩔 줄 몰라 방안을 서성이고 있는데 시녀 하나가 주찬을 들고 들어왔다.
초조해진 성진은 시녀라도 붙들고 상황 파악을 하려고 했다.
"하문하시옵소서. 소녀는 스님의 시중을 극진히 하라는 명을 받았사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아, 뭐 별다른 것은 아니고…. 아까 수중통로를 지나오다가 연홍 아가씨를 괴롭히는 사내를 보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요.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저희 연화봉을 방문하셨던 용왕 따님의 일이니 저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뜻밖에도 대답은 문간에서 나왔다.
"흥! 왜 그것을 당신이 알아야 하죠! 당신이 내 정혼자라도 되나요?"
연홍이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비단옷만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의 눈짓에 시녀가 황급히 방을 나갔다.
"남이야 발가벗고 헤엄을 치든 말든 그게 댁과 무슨 상관이죠?"
연홍이 미간을 찌푸리며 성진을 향해 쏘아붙였다. 하지만 독기가 서린 어조는 아니었다. 오라버니에게 괜스레 투정을 부리는 소녀 같은 말투였다. 그보다는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비단옷 속의 선정적인 몸매가 성진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이미 연화봉에서 그녀가 윤간을 당할 뻔할 때 알몸을 훔쳐보았던 성진이다. 하지만 이렇게 좁은 방에서 맞닥뜨리니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역시 종잡을 수 없는 처녀였다. 평소에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가도 한순간에 요염한 색녀의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가. 그녀의 봉곳한 가슴이 손에 잡힐 듯 도드라졌다. 매끈한 허벅지의 살색이 선연히 눈에 들어왔다.
"뭘 보는 거예욧!"
연홍의 외마디에 성진이 황급히 눈길을 돌렸다.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여자다. 이랬다 저랬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곤혹스럽기만 하다. 보는 게 싫으면 애당초 그런 옷을 입고 나타나지를 말아야 하는 법 아닌가. 그렇다고 용궁에 손님으로 와서 용왕의 딸에게 훈계를 할 수도 없고 해서 성진은 참 난감하기만 했다.
"아니, 저는 그냥 그 남자가 아가씨를 괴롭히는 것 같아서…."
"이름을 부르랬잖아욧! 연홍!"
또 한방 먹인다. 어설픈 변명 따위는 씨도 안 먹힌다. 성진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산사에서 수행만 하던 그로서는 너무 버거운 상대다.
"아, 네. 연홍 아가씨."
"좋아요. 그렇게 이름을 부르니까 얼마나 친근해요. 그렇죠?"
이번에는 생글생글 웃음까지 머금고는 성진에게 다가온다. 성진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진의 코앞으로 바싹 다가선 연홍이 그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솔직히 말해요. 저를 안고 싶은 거죠?"
이게 무슨 소린가. 철없는 여자애란 이렇게 맹랑하다 못해 무서워지기도 하는 것일까.
"그게 무슨…."
대답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연홍이 성진의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쓸데없는 변명일랑 집어치우라는 몸짓이 틀림없었다. 그러고는 그만이었다.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연홍은 가만히 그 자세로 서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성진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입술을 누르는 손가락의 감촉이 이렇게 자극적일 줄은 미처 몰랐다. 얇은 비단 한 겹에 둘러싸인 연홍의 육체가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 팽팽히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 성진의 몸이 긴장하고 있다는 게 맞으리라.
연홍의 살 냄새가 성진의 코를 자극했다. 아무런 인공의 분내가 묻어 있지 않은 싱그러운 체취였다. 성진은 자기도 모르게 연홍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속이 비친다고는 해도 옷은 옷이다. 벌어진 옷자락 사이로 연홍의 가슴 계곡이 뚜렷하게 보이자 성진의 가슴이 주먹으로 맞은 듯 멍해졌다.
코앞에서 빤히 성진을 올려다보던 연홍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성진은 아득한 심연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티없이 맑은 흰자위 가운데 순진무구하게 빛나는 까만 눈동자는 어린 총각의 혼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맞잖아요. 난 다 안 다고요. 저랑 자고 싶어하는 거…."
연홍이 수줍은 낯빛으로 속삭였다. 성진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한자리에서 천진한 소녀와 뇌쇄적인 색녀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이 여자의 진면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저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이렇게 도발적인 유혹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런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입술을 가로막고 있던 연홍의 검지손가락이 슬그머니 멀어지더니 그의 가슴을 긁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톱이 맨 가슴에 닿은 것처럼 짜릿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