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고독사랑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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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194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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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사자!

그가 아닌가?
모란서시 상관약연의 추적명령을 받고 백옥상을 찾아나섰던 철사자가 드디어 백옥상과 마주쳤던 것이다.
'이제까지의 인물 중 최강이다!'
철사자를 일별한 후 백옥상의 뇌리로 스친 최초의 생각이었다.
어떤 동류의식마저 느낄 수 있는 인물임을 그의 본능은 무의식중에 감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철사자는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철사자(鐵獅子)라 하오! 지나다가 호기심에 와 봤을 뿐이오."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말이었다.
'무언가 감추고 있군!'
백옥상은 한 줄기 의혹을 느꼈으나 그대로 신형을 돌렸다.
어둠을 부수며 사라져 가는 백옥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철사자의 눈은 경이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실로 가공할 초극검예로군. 특히 그의 좌수에 차인 철환은 공포스럽기조차 했다. 나로서도 감당치 못할 정도로!"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신형을 돌렸다.
'소군주의 태도로 보아 저 자와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것도 같은데,'
철사자는 고개를 흔들며 암흑 속으로 묻혀갔다.

장내는 고요의 정적으로 휘감기고, 돌연 두 줄기 인영이 가볍게 장내로 날아내렸다.
신비의 인물 영호문의 옆에는 길게 양옆으로 머리를 땋은 귀여운 소녀가 서 있었다.
움푹 패인 보조개에 장난기마저 어린 소녀의 옥용은 신선한 미감을 던져 주고 있었다. 문득, 댕기소녀는 앙증맞은 입술을 달싹였다.
"언니. 그 사람은 정말 무서운데?"
댕기머리의 소녀는 흑진주를 박은 듯이 크고 영롱한 눈을 빛내며 영호문을 올려다 보았다.
언니라니?
그렇다면 영호문이 여인이란 말인가?
영호문은 심각한 표정으로 널려 있는 시신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깨끗하다 못해 완벽한 검흔(劍痕)은 차라리 아름답기조차 했다.
'이 수법은 분명 백 년 전에 사라졌던 일수천발검의 초극비검술이다.'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것보다는 더욱 완벽한 검예다! 전설의 초극검예!'
남장 여인 영호문은 한 눈에 백옥상의 무학근원을 파헤치는 것이 아닌가?
대체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여인은 신형을 일으켰다.
'고독검신 이후 새로운 초인이 탄생할 것 같아.'
그녀의 봉목으로 서늘한 기광이 스쳐갔다.
'그의 모든 것을 알려면 그의 뒤를 쫓아야 겠지?'
생각을 마친 그녀는 댕기머리 소녀를 잡았다.
"가자!"
"응. 언니."
두 여인은 손을 맞잡고 교구를 날렸다. 마치, 꺼지듯 여인들의 몸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숲 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잔월(殘月)은 교교한 은하(銀河)의 물결로 대지(大地)로 비춘다.


황하(黃河)의 물결 위로 한 척의 범선이 미끄러지듯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선실에서 황금독효 금하림은 굳어진 표정으로 노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니 그래, 연판장은 고사하고 찾으러 갔던 자들이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단 말인가?"
그의 정면엔 은면(銀面)을 쓴 인물과 동면(銅面)을 쓴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은면인의 입에서 떨리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태상! 그 자의 검법은 당세의 중원유일의 초인(超人)이라고 불리우는 고독검신 황자등에 못지 않은 쾌검의 고수였읍니다. 황룡마군 등 일부의 고수들의 시신을 수거해서 검토한 결과, 황룡마군조차 단 일초에 당했읍니다. 현재 철령주(鐵令主)가 그를 쫓고 있기는 하나 아무래도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일 것 같읍니다."
황금독효 금하림은 벌떡 일어서 뒷짐을 지고 선실을 한 바퀴 돌았다.
"이 년 전에도 한 가지 실수로 대업(大業)을 늦추었는데 지금 또……!"
나직이 독백하는 그의 눈빛은 분노에 이글거리고 있었다.
일순, 그는 걸음을 멈추고 은면인을 지그시 응시했다.
"만약 연판장이 취옥궁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끝장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연판장은 회수해야만 되오. 그 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동면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그 자는 웬일인지 취옥궁이 있는 하북(河北)으로 가지 않고 절강성(浙江省)으로 가고 있읍니다. 현재 그의 뒤를 쫓고 있는 강호인들로는 살인총과 취옥궁, 그리고 몇명의 신비인들이 은밀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읍니다."
황금독효 금하림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자는 자신의 행적을 감추지 않고 다닌다는 말인가?"
"글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그 자는 하루에 십리도 걷지 않고 산천을 유람이라도 하는 서생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있읍니다. 살인총에서 몇 명의 고수들이 그 자와 충돌했으나 모조리 죽음을 당하고 취옥궁의 천풍신도(天風神刀) 호가명이 그에게 연판장을 요구하다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한 후로 아무도 그에게 접근을 못하고 그의 뒤만 따르고 있읍니다."
동면인의 설명에 금하림의 표정은 침중해졌다.

천풍신도(天風神刀) 호가명!

도극 초경(刀極超境)에 이른 도문제일존(刀門第一尊).
그런 인물도 그냥 물러났다면?
"동령주, 천변귀마 상노인과 풍운혈전군을 대동하고 천령주를 도와 연판장을 회수하도록!"
동면인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존명(尊命)! 그들과 함께라면 설사 고독검신 황자등이라도 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태상!"

풍운혈전군(風雲血戰軍)!

신비회의 정예고수들 중 추리고 추린 일급고수들은 모두 이십 사 인(二十四人)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합친다면 능히 고독검신 황자등이라도 막기 힘든 고수들이었다.


새벽의 여명, 찬란한 햇살이 어둠을 밝혔다.
절강성을 눈앞에 둔 회운령(廻雲嶺)의 능선은 초목과 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영롱한 이슬이 맺힌 잡초가 으스러졌다.
백옥상은 눈앞에 보이는 허름한 한 채의 장원을 응시하며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
"이곳인가? 과거 할아버님께 죄를 지었던 사 인(四人) 중 한 명이 숨어 있는 곳이?"
장원은 백여 평의 대지에 두 채의 건물로 세워져 있었으나 오랫 동안 제대로 손질을 하지 않아 피폐해져 있었다.
백옥상은 빛바랜 대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한동안 두드렸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고 상원은 고요한 정막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다.
"……!"
백옥상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몸을 훌쩍 날렸다.
장원 안은 겉보기와는 달리 깨끗이 정돈되어 이름모를 꽃들이 향기로운 내음을 풍겼다. 그러나 장원은 고요하고 적막하여 스산한 느낌을 주었다.
백옥상은 천천히 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안채에 접어들자 긴 회랑이 나타나고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신데 남의 집에 함부로……"
이제 이십 세 가량의 청년이었다. 등 뒤에 지게를 지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의 순박한 청년의 얼굴이었다.
"이곳에 사는 탈명비도(奪命飛刀) 진륭(陣隆)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다."
청년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에 진대인이 살고 있기는 하나 그 분의 함자가 틀린데요."
한 명의 자삼 노인이 천천히 걸어나오며 말했다.
"너는 빨리 돌아가거라. 이분은 내가 모시겠다."
백옥상을 주시하는 그의 시선에는 침중한 빛이 어려 있었다.
"……"
청년이 완전히 사라지자 자삼노인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젊은이. 누구에게 진륭이란 이름을 들었는가?"
백옥상은 그 말에 거침없이 반문했다.
"당신이 탈명비도 진륭이요?"
순간 자삼노인의 짙은 눈썹이 팔자로 찌푸러졌다.
"젊은이! 말투가 너무 무례하군."
백옥상은 한 점의 동요도 없이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은 아직 내 말에 답변을 하지 않았소."
자삼노인은 불현듯 울화가 치밀었다.
"내가 진륭이다. 그래 그 이름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느냐?"
"곧 땅 속에 묻힐 이름인데 아까울 것이 없지."
진륭은 나직한 백옥상의 조롱섞인 독백에 두 눈에서 무서운 안광이 폭사되었다.
"실로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군. 누가 네놈을 이곳으로 보냈느냐?"
백옥상은 스산하게 말했다.
"진노인, 비뢰라는 이름은 그렇게 낮설지는 않을 것이오."
"헉! 어. 어떻게?"
순간 진륭의 표정은 희다 못해 밀랍처럼 굳어졌다.
턱밑의 수염이 가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그가 얼마나 격동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탈명비도(奪命飛刀) 진륭(陣隆)!

도법(刀法)의 명인이자 무림의 명숙으로 그의 탈명비도술(奪命飛刀術)은 당금 무림에서 천하제일도(天下第一刀)라고도 불리운다.
그러나, 칠 년 전 고독검신 황자등과 부딪친 그는 강호에서 사라져 버렸다.
고독검신 황자등에게 패한 그로서는 더 이상 강호에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뢰의 제자이냐?"
백옥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분은 나의 할아버지임과 동시 사부님이라고도 할 수 있소."
진륭은 허무한 신색으로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언제인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석년에 나의 잘못이 있었다고 하나 그냥 생명을 버릴 수는 없지. 따라오게."
그는 이내 몸을 돌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을 굽이돌아 하나의 공터가 나타났다.
진륭은 마치 깃털을 합쳐 만든 것 같은 기형의 도를 들고 신중한 표정으로 섰다.
"승패가 어떻게 나든간에 그 날의 일을 먼저 말해 주겠네."
백옥상은 묵묵히 선 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 일의 발단은 한 장의 양피지로 인해 싸움이 벌어진 것이네. 그것은 한 장의 지도로 삼백 년 전 강호를 위진시켰던 비룡천군(飛龍天君)의 유품이 명시된 비천용운도(飛天龍雲圖)였네."
진륭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스쳐지났다.
"결국 한 장의 지도 때문에 그 분을 암습했다는 말이오?"
"그런 셈이지. 당시 세 명이 나와 함께 그를 추적했지만 나는 종내 아무것도 얻지 못했네."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은 당신과 혈사제(血邪帝) 뿐이오. 다른 두 명은 누구요?"
진륭은 체념의 표정으로 담담히 말했다.
"한 명은 금룡천신(金龍天神) 갈유숭(葛有崇)이고 또 한 명의 내력은 나도 모르네. 그 자는 언제나 복면을 한 채 행동을 했고 그의 무예는 기괴하기 짝이 없어 도저히 신분을 알수 없었네."
"……!"
백옥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더 이상 할말이 없으면 준비하시오."
백옥상은 느릿하게 검을 어깨에서 떼고 검자루를 땅에다 붙였다.
'자세가 괴이하기 짝이 없군.'
백옥상의 자세는 보통 검수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매우 허술한 듯 했지만 진륭은 시간이 흐를 수록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백옥상의 자세는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질식할 듯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문득, 탈명비도 진륭의 칼날이 천천히 반원을 그렸다.
백옥상의 자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의 두 눈은 무심히 그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백옥상의 눈빛은 어둠의 심연처럼 고요하게 침잠되어 있었고 그의 전신에 아무런 기운도 발산되지 않았다.
'과연 천하제일도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군. 도에서 뻗치는 예기가 전신을 압박하니……'
그때, 탈명비도 진륭의 도가 중상단을 가리켰다.
서릿발 같은 도기가 독사의 혓바닥처럼 서릿발 같은 살기를 품고 짓쳐들었다.
"……!"
백옥상의 두 눈에서 일순 싸늘한 한광(寒光)이 폭사되었다.
돌연, 탈명비도 진륭의 청우신도가 환상처럼 원을 그렸다.
마치 수천 개의 깃털이 일시에 사방으로 작렬하듯 도광(刀光)이 벼락처럼 햇살을 갈랐다.
순간, 백옥상의 철검이 검집을 빠져나와 섬광을 작렬시켰다.
"타앗!"
백옥상의 검은 마치 번갯불처럼 빨랐다.
검광과 도광이 뒤엉키고 불꽃이 퉁겼다. 두 사람의 신형이 환영같이 스치고 위치를 바꾸어 내려섰다.
두 사람의 신형이 천천히 돌아섰다.
백옥상의 검은 검자루에 반쯤 들어가 있었고 진륭의 청우신도는 칼날의 이가 빠져 있었다.
백옥상의 눈빛이 음울하게 번들거렸다.
"탈명비도술은 모두 사십 구초로 이루어져 있다고 들었소. 방금 네합의 순간 이십 팔초가 시전되었으니 이제 삼합이 남았군."
"……!"
탈명비도 진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 전신의 공력을 집중하고 있는 그에게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탈명진천하(奪命震天下)!"
진륭은 한 순간 버럭 고갈일성을 토하며 청우신도를 좌우로 후려쳤다.
백옥상의 검은 느릿하게 검집을 빠져나왔다.
진륭은 백옥상의 자세에 더욱 속도를 가속시켰다.
"헉!"
갑자기 탈명비도 진륭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그의 청우신도가 백옥상의 어깨를 자르는 찰나 어느 새 백옥상의 검이 그의 맥문을 찌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럴 수가…… 너무도 빠르다!'
생각은 느리고 동작은 빨랐다. 재빨리 도를 거두며 손목을 비틀었다. 순간 팔목을 찔러오던 검이 벼락같이 위로 솟아올랐다.
"크흑!"
탈명비도 진륭은 나직한 비명을 흘리며 퉁기듯이 뒤로 일 장이나 물러섰다.
"으으…… 초극검예를 완성했군."
목구멍에 자갈이라도 박힌 듯 더듬거리는 그의 목줄기에 가느다란 핏물이 번졌다.
옷자락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청우신도에 몸을 의지했으나 이내 무릎을 꿇었다.
"그 나이 에 초극검예를 완성하다니……"
"……!"
탈명비도 진륭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불현듯 죽은 아내의 영상이 선명히 떠올랐다.
'여보 나도 당신을 따라……'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청우신도는 땅에 스러지고 그의 몸도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백옥상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금룡천신(金龍天神)이라?'
그는 허탈해진 듯 두 어깨를 끌어당겼다.
"……!"
그는 음울한 눈빛으로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
그는 한동안 탈명비도 진륭의 시체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신형은 연기처럼 흐릿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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