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펀글]아하루전(5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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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217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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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9화 다가오는 그림자(1)
칼버린 기사단의 단장 베이오트 후작이 탁자에 있던 서류를 손에 쥐는 대로 집어들고는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어 던졌다.
"도대체 이걸 변명이라고 하나?"
베이오트 후작 앞에서 고개만 숙이고 있는 사내들은 모두 다섯. 허나 그중 누구도 감히 베이오트 후작의 말에 일언반구 대꾸하는 이가 없었다.
그들이 고개만 숙이고 있자 베이오트 후작은 더욱 열이 뻗치는지 그 중 한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래, 아미란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름이 불리운 사내가 흠칫 놀라더니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슨말이든 해야했다.
"제 생각에는.."
"그래 자네 생각은 뭐야?"
베이오트 후작의 비꼬는 말에 아미란이 더욱 움츠러 들었다. 곁에 있는 사내들의 표정은 안됐다는 듯 동정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으로 봐선..."
베이오트 후작이 다시 책상위에 잇는 것들중 손에 집히는대로 아미란에게 던졌다.
'빡' 소리가 나며 아미란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아미란은 감히 상처를 만질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잠시 휘청이던 몸을 바로 했다.
"빨랑 말해 새끼야"
베이오트 후작의 입에서 급기야 쌍소리까지 튀어나오자 아미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내들의 동작도 더욱 굳어졌다.
아미란은 그 짧은 시간에 더욱 빨리 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어진 자료로는 판단내리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넷. 현재까지 놈들은 루운야에서 동쪽 방향으로 간걸로 판단 됩니다. 그곳에 있는 영지는 총 127개 영지가 있습니다. 각 영지에 협조 요청을 보내서..."
'퍽'
베이오트 후작이 다시금 눈 앞에 잇던 물건을 집어 던졌다. 다행이도 이번에는 아까처럼 얼굴에 맞지는 않았는지 아미란에게 던져진 물체는 아미란의 가슴쪽에 부딪치고는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은으로 만든 수공예 품이었다.
아미란은 비록 내색은 안했지만 맞은 상처로 인해 숨조차 제대로 쉴수 없을 정도 였다.
"새끼, 그래 참모부란 새끼가 고작 의견이 그따위야? 야 이새끼야, 최대한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튀나지 않게하란 공작지시도 못들었어? 엉? 너 같은 놈들이 있으니 우리 기사단이 고작 용병들에게 깨지지 이 새끼야."
베이오트 후작이 다시 다른 희생양을 찾아 눈을 번뜩이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누구야"
베이오트가 언성을 높이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를 쳐다 보았다.
"어? 전대요?"
얼빠진 대답에 베이오트 후작의 표정이 잠시 멍 해지더니 다시 있는대로 고성을 질렀다.
"저가 누구야. 새끼야. 당장 얼굴 비춰봐"
베이오트 후작의 말에 베이오트 앞에 선 사내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누군지 얼굴을 확인한 베이오트 후작의 얼굴이 구겨졌다.
"끙, 미듀린이군 그래 무슨일인가?"
베이오트 후작이 자신의 화를 간신히 참으며 애써 태연한 얼굴로 용건을 물었다.
"아, 네, 오늘 회의 한다고 하셔서..."
베이오트 후작이 자리에 털석 앉아 잠시 머리를 움켜쥐었다.
"우후, 자비와 자애의 여신이신 아크레온이시여 이 몸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지만 정작 베이오트 후작 앞에선 사내들은 오래 전부터 아크래온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베이오트의 나직한 한마디였다.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은 베이오트가 굳은 얼굴로 미듀린을 쳐다보았다.
"그래 여기온 용건이 그게 단가?"
딴에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나직히 씹어먹을 듯이 말을 내뱉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 없는 미듀란도 온 몸으로 느꼈는지 재빨리 품에 있던 서류를 꺼내들고는 베이오트에게 내밀었다.
"사실은 이것을 가져오느라 늦엇습니다."
베이오트는 눈 앞에 내민 서류와 미듀란을 잠시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서류를 집어들었다. 서류를 읽어 가는 동안 베이오트의 안색은 언제 화냈냐는 듯 점차 환해지기 시작했다.
서류를 다 읽은 베이오트의 얼굴이 환하게 펴져있자 아까부터 기슴 졸이고 있던 사내들의 얼굴도 같이 펴졌다.
"수고했네, 역시 미듀란 자네 밖에 없어"
베이오트의 입에서 이런 칭찬의 말이 나오자 미듀란의 얼굴이 웃음으로 헤벌쭉 해졌다.
"헤헤, 감사합니다."
베이오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말했다.
"그래, 그럼 가서 쉬도록 하게"
미듀란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더니 천천히 문을 나섰다. 미듀란이 문을 닫고 나간 것을 확인한 베이오트의 눈매가 다시금 사나워졌다.
"부하란 것들이 기껏 공작의 후견으로 들어온 저 덜떨어진 미듀란보다도 못하니 에잉"
공작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차고는 서류를 아미란에게 건넸다. 그러자 아미란이 서류를 받아들고는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방금 미듀란이 가져온 서류에 의하면 놈들은 하베이도로 간 걸로 나오 있습니다."
사내들이 잠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미란은 사내들이 웅성거리게 잠시 놔두고는 서류를 계속 읽어 나갔다.
"놈들은 검사로 추정되는 남자 두명과 치료술사 여자 한명 그리고 노예 두명이다. 남자중 한명은 하베이도 남작의 아들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아미란이 서류를 덮자 베이오트가 다른 사내에게 턱짓으로 지적했다.
"두어슨, 하베이도가 도대체 어디야? 찾아봐"
그러자 사내 중 한명이 재빨리 어디론가 나깠다가 잠시후 돌아왔다. 그는 지도를 한웅큼 들고 오더니 그중 하나를 한쪽에 놓인 테이블 위에 펼쳤다.
베이오트가 자리를 옮겨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두어슨이 베이오트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베이오트가 자리에 앉자 자신이 찾은 하베이도를 손으로 짚었다.
"하베이도 영지는 테실리아 산맥 인근에 있는 작은 영지 중 하나입니다. 여기 바로 이곳입니다."
두어슨이 손으로 짚은 곳은 복잡한 선들이 교차해 있었고 그 주위로 빽빽이 나무를 넓게 표기해 놓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쯤 오목하면서 들어간 빈 공간이 있었다. 그곳엔 자그마한 글씨로 하베이도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자잘하게 하베이도 영지에 관한 자그마한 정보들이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두어슨이 그 정보들을 소리내어 읽어 내려갔다.
"마을은 두 개가 존재하며, 인구는 총 2300명 정도입니다. 병사는 총 150명 정도이고 그중 상비병은 고작 20명 정도입니다.
관도는 아직 뚫리지 않았으며, 기타 신관이나, 역참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어슨의 말에 베이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각기 방책을 마련해 보게"
그러자 한 사내가 앞으로 한 발짝 나와선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저희 2전대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까짓 조그만 영지 반나절도 안돼 초토화 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사내의 자신있는 말에도 불구하고 베이오트의 안색이 그리 펴지지 않았다. 잠시 가만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돼, 저번에 3전대를 빼는 것도 엄청난 고생을 했던 것 기억 안나? 이번에 또 그짓을 하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설혹 그 짓을 하더라도 시간에 맞춰질지 의문이야. 다른 의견 없나?"
베이오트의 말에 앞으로 나섰던 사내는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이번에 다시 아미란이 앞으로 나섰다.
"각하 현재 이 근처에 신전 사찰단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베이오트가 눈을 빛냈다.
"신관 사찰단? 어떤 놈이 맡고 있지?"
"예, 라디엔이라고 펠리온을 모시는 신관으로서 이 지역 부교구장 입니다."
"라디엔이라 믿을수 있는 자인가?"
베이오트의 질문에 아미란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일전에 있었던 '들개 소탕' 작전을 같이 진행한 신관입니다."
아미란의 말에 베이오트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오호? 그래? 그럼 그 신전 사찰단이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아미란이 잠시 지도를 살펴보며 말했다.
"현재 이곳 '미레보'영지에서 신전의 운영과 영지민의 신앙심을 감찰하고 있다고 합니다."
베이오트가 지도를 살펴보았다. 미레보에서 하베이도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베이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것이야 말로 소데온의 가호이군, 좋아 아미란 자네가 직접 작전을 짜보도록 하게 그리고..."
베이오트가 좌중을 한번 둘러보더니 한 사내에게 시선이 떨어졌다. 시선이 떨어진 사내가 황급히 부동자세를 취했다.
"마론경 자네의 4전대가 수고해 주게, 일단 보병들은 됐고, 기병들을 골라서 지원하도록 하게"
마론이 차렷자세를 하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넷, 알겠습니다."
베이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리고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케인경을 다시 한번 보고 가도록 하게"
베이오트의 눈빛에 아미란과 마론의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명심하겠습니다."
"임무를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베이오트가 그런 둘의 각오가 맘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아미란 자네가 이번 작전의 사령을 맡게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다. 알겟나?"
"넷"
"넷"
"가보게"
베이오트의 허락이 떨어지자 둘 뿐 아니라 다른 사내들도 발걸음을 옮겨 방을 빠져 나갔다.
방을 나선 그들의 얼굴은 사지에서 벗어난 듯 안도의 표정이 가득했다. 몇사람이 품을 뒤져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들이 건물에서 나오자 멀리서 훈련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널따란 연병장 사이 사이에 커다란 막대가 세워져 있는 것도 한눈에 들어왔다.
그 막대를 보는 사내들의 얼굴은 다시금 어두워졌다. 문득 그들의 귓가에 신음소리가 들렸다.
사내중 하나가 물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버리곤 발로 비벼버렸다. 그리고 잠시 안쓰러운 눈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관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양 옆 기다란 장대에는 그들도 잘 알고 있는 케인 백작과 아츠 자작이 높이 달려 잇었다. 방금전의 신음 소리는 케인 자작이 낸 것이었다. 아츠 자작은 벌써 죽었는지 파리들이 그의 시체 주위를 윙윙 거리며 맴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널따란 연병장 주위로 빼곡이 가득차 있는 장대들 위에도 각기 한사람씩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저번 전투에서 명령없이 함부로 후퇴한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특히 마론과 아미란의 얼굴은 더욱 굳어져 갔다.


57. 9화 다가오는 그림자(2)
처벅 처벅
횃불이 잠시 일렁이면서 음침 복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한번 휘청이게 만들었다. 복도 가득 낮은 신음 소리와 비명소리가 가득차 있어서 절로 사람의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더욱이 그 소리는 어둠침침한 복도를 더욱 음산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서 맘 약한 사람은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같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듣는 이로 하여금 머릴를 쭈뼛하게 서게끔 만들었다.
긴 통로가 끝나자 복도 끝에는 낡고 녹이 잔뜩 슬은 철문이 복도를 가로 막고 있었다.
횃불은 그 철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더니 낡은 굉음과 함께 서서히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문이 열림과 동시에 매케하고, 참기 힘든 살이 썩어가는 냄새와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 나왔다.
철문이 다 열리자 아미란과 마론이 구역질 난다는 듯 황급히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는 철문 앞 계단을 따라서 내려갔다.
비명소리와 탄식소리 그리고 낮은 신음소리가 한층더 강하게 울려 퍼졌다.
마론이 낮게 중얼거렸다.
"미친놈"
그러자 황급히 아미란이 그런 마론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들이 계단을 다 내려가자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은 처참한 것이었다.
바닥은 온통 피와 오물들로 질퍽거렸고, 허공 중에는 쇠사슬에 손목이 꿰힌 사람들이 고기 널리듯이 널려져 잇었다.
또한 벽에는 온통 사람들이 발가 벗기워진체 묶여 잇었고 그 앞에서 하얀 복면을 쓴 사람들이 한껏 달구워진 부짓갱이로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의 몸을 지지고 잇었다.
한쪽에서는 날카롭게 날이선 평균대처럼 생긴 대 위에 여자의 발목과 손목을 묶어 놓고 목부분을 공중에서 늘인 쇠사슬에 묶어 놓은 체 발가벗긴 여자를 올려 놓았다. 그 위에 앉은 여자의 하복부에서는 연신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다른 쪽에서는 뾰족한 쇠꼬창이가 가득 박힌 커다란 바퀴에 사람을 매달아 놓고 밑에 끓는 물 쪽으로 사람의 머리가 먼저 들어가게끔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
고문 당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비명 지를 힘도 없는지 낮은 신음 소리만 겨우 겨우 토해내고 있었다.
"네 이년, 그래도 바른 대로 말하지 않겠느냐?"
한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나왔다.
아미란과 마론이 소리가 나온 쪽으로 잠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복면을 쓴 사람이 발가 벗기운 여인의 손을 맷돌아래에 넣고는 뭔가 윽박지르고 있었다.
여인이 뭐라고 말하자 그 복면인이 크게 소리쳤다.
"이년이 아직 정신을 못차렸구나. 돌려라"
그러자 맷돌을 잡고 잇던 다른 복면인이 서서히 맷돌을 돌리기 시작했다. 맷돌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여인의 한쪽 팔을 산채로 갈아대기 시작했다.
여인은 목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질러댔다.
아미란과 마론이 참담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몇몇 복면인들이 그들을 힐끔 쳐다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아미란과 마론이 도착한 곳은 다시 철문이 가로 막고 있는 방 앞이었다. 그곳은 쇠창살로 안이 훤히 보였다.
안에는 한 사제가 발가 벗기운 여인을 탁자에 눕혀 놓고는 심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여인의 주위는 검무튀튀한 피가 가득차 있는 통들이 주위에 잔뜩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통안에는 군데 군데 몸 안의 조각들인 것으로 보이는 살점들과 그 살점들에 기생하는 듯한 하얀 구더기들이 꾸물 꾸물 거리고 있었다.
"자 자매님 이제 바른 대로 말씀 하시지요"
사제가 말하자 여인은 몸을 부들 부들 떨어대며 애처로운 눈길로 사제를 바라보았다.
"오, 신관님 저는 결코 베다교인이 아닙니다. 저는 베다교가 어떤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자매여 여러 증인들과 여러 증거물들이 당신이 베다교인이었음을 증명하고 잇습니다. 어서 속히 그런 사악한 신의 마수에서 벗어나 광명과 정의의 펠리온의 품안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사제님 믿어 주십시오. 광명과 정의의 펠리온에 맹세코 전 정말 베다교가 뭔지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여인이 그렇게 말하자 사제가 벌컥 화를 내었다.
"이런 발칙한 것 같은니, 감히 네 입에서 어찌 위대한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느냐 이런 참람한 짓을 네가 어찌 이리 쉽게 저지르느냐"
사제가 이렇듯 화를 내며 곁에 잇던 사람에게 눈짓을 하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에 가즉찬 피를 한바가지 퍼내고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여인이 다가오는 복면인을 보자 얼굴을 하얗게 질린체 고개를 저었지만 다른 사내가 여인의 머리쪽에 잇던 막대를 조여대더니 여인의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여인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는 곁에 있던 커다란 깔대기를 여인의 입에 단단히 씌었다.
그러자 복면인이 그 깔대기에다 가지고 온 피를 내리 부었다. 깔대기 하나 가득 피가 가득 고이고 그 안에서 파랗고 벌건 살점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하얀 구데기들이 깔데기에서 벗어나려는 듯 이리저리 꼬물 꼬물 거리며 깔데기 주변을 기어다녔다.
여인이 핏물을 삼키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자 사내가 여인의 머리를 잡고는 코를 세게 쥐었다. 숨이 막힌 여인의 입안으로 깔대기 가득 차있던 피가 꿀꺽 꿀꺽 하고 들어갔다.
여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핏물이 줄어들면서 피에 절은 구데기 들이 깔데기 주변을 기어다니다 피속에 잠겨 같이 빨려들어갔다.
하지만 사제는 그것으로도 모자라는지 책상 옆에 있던 쇠로된 갈코리가 박힌 장갑을 손에 끼었다.
피가 다들어간 여인이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사정했다.
"허억 허억, 신관님 제발, 아크레온의 자비를..."
하지만 여인이 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다시 여인의 입으로는 피가 가득 부어졌다.
사제는 활짝 벌려진 여인의 음부쪽으로 다가가더니 갈코리가 달린 장갑을 여인의 음부쪽으로 강하게 찔러댔다.
여인의 음부에서 확하고 피가 쏟아져 나왔다. 여인이 눈을 까뒤집고 몸을 격렬하게 움직엿으나 테이블에 강하게 고정된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사제는 그런 괴로워 하는 여인의 얼굴을 담담히 지켜 보면서 여인의 몸속 깊이 들어간 손을 살며시 비틀었다.
여인의 몸이 테이블 위에서 게속 퉁겨지듯 움찔 거렸다.
여인의 입에 박힌 깔대기 위에서는 계속 보글 보글 거리며 거품이 솟구쳐 올랏다.
사제가 여인의 음부 깊이 들어간 손을 확하고 빼냇다. 갈코리에 여인의 안에 있던 살점들이 여기저기 매달린체 같이 뜯겨져 나왔다. 그리고 여인의 음부에선 피가 샘솟듯 콸콸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피를 들이 붓던 복면인이 얼른 통을 가져다가 쏟아져 내리는 피를 받기 시작했다.
여인은 몇 번더 몸을 튕기더니 결국 몸을 부르르 떨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아미란과 마론은 고개를 떨구는 여인의 흰자위만 남은 눈과 마주치고는 온통 몸에 돋는 소름과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사제가 방구석에 잇는 피에 물든 줄을 당기자 몇사람이 아미란과 마론을 헤치고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여인의 축 늘어진 몸을 물건 다루듯이 거칠게 잡아가지고는 어디론가 끌고 나갔다.
사제는 그제서야 방 밖에 있던 아미란과 마론을 발겨나고는 환하게 웃었다. 사제는 방금전까지도 생생하게 살아잇던 여인의 피가 묻어 있는 갈코리가 달린 장갑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후 그들에게로 다가왓다.
"아니 이게 누군가요? 아미란 님 아니신가요? 주님의 광명이 항상 함께 하시길"
사제가 그들에게 다가오자 아미란이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광명의 주님이 항상 그대를 비추시길, 노고가 많으시군요. "
사제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아미란 곁에 있는 마론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론은 몸이 흠칫 거리는 것을 느꼈으나 겉으로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이분은?"
사제가 물어오자 아미란이 황급히 마론을 소개했다.
"이분은 저희 칼버린 기사단의 제 4전대를 맡고 계시는 마론 백작이십니다."
사제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넷다.
"그러시군요. 주님의 광명이 항상 함께 하시길, 미천한 주의 종 라디엔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얼른 마론이 답례를 했다.
"광명의 신 펠리온이 항상 그대를 비추시길,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마론 이라고 합니다."
사제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 베이오트 후작님께서는 평안 하시고요?"
마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후작님께서도 라디엔 사제님의 안부를 전하셨습니다."
그 말에 기꺼운 듯 라디엔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후작님께서 이렇듯 미천한 사제님을 기억해 주신다니 큰 영광입니다. 자자 그러지 마시고 제 임시 거처로 가셔서 계속 말씀을 나누도록 하십시다."
라디엔의 말에 얼른 이 곳을 벗어나고픈 맘이 가득한 아미란과 마론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피와 오물로 질척거리는 곳을 떠나 라디엔의 뒤를 황급히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벌써 몇 명이 죽었는지 다른 사람이 벌거벗기워진 시체를 옮기다 라디엔을 보고는 인사를 했다. 라디엔은 인자한 얼굴로 그 복면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철문을 빠져나갔다.
같이 철문을 빠져 나간 아미란과 마론은 마치 피로 목욕한듯한 찝찝함을 느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빠져 나갔다.
라디엔 사제의 방은 검소하면서도 간결했다. 라디엔은 아미란과 마론을 자리에 앉히고는 시종에게 차를 부탁했다.
그러자 시종이 향긋한 차와 약간의 다과를 함께 내왔다.
향긋한 차 내음을 음미하면서 라디엔이 말을 꺼냈다.
"광명의 펠리온의 미천한 종인 저를 굳이 찾으신 이유가 무엇이지요?"
아미란과 마론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란이 입에서 차를 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은 이번에 저희 후작님께서 라디엔 사제의 도움이 필요하십니다."
라디엔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니 고귀하신 후작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셔서 이 비천한 종을 필요로 하신겁니까?"
아미란이 소리를 죽여 나직히 말했다.
"이전의 들게 소탕과 같은 작전입니다."
들개 소탕이라는 말이 나오자 라디엔이 차를 삼키다가 다시 뱉고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아미란과 마론이 뜻밖이라는 얼굴로 라디엔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라디엔이 찾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일전에 그 일로 인해서 교단 내에서도 말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로 인해서 교단내의 입지가 많이 약화 되었구요. 물론 그까짓 교단내의 직위가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세상에 메인 몸이다 보니 저도 그런 헛된 명예에 집착하게 되는 군요. 그리고 그때 일은 아무리 공작님을 위한 일이었다손 치더라도 별로 유쾌한 기억이 되지 못했구요"
라디엔의 말에 아미란의 표정이 좀더 굳어 졌다.
"사제님의 말씀은 후작님의 명을 거역하시겠다는 건가요?"
라디엔이 처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어찌 후작님의 명에 거역할 수 잇겠습니까? 하지만 저도 저 나름의 고충이 잇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후작님의 명이라고 하셔도 제 신앙에 위배되는 일이라면 어쩔수 가 없겠지요"
마론이 얼굴에 분기를 띄우며 옆에 차고 잇던 칼을 뽑아 들며 외쳤다.
"감히 부교구장 주제에 후작 각하의 명을 거역하려 하다니 네가 삶을 포기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마론의 격한 몸짓에도 라디엔은 별 당황하는 기색이 없자 재빨리 아미란이 마론을 제지 했다.
"마론 백작 비록 직위는 부교구장이라 하나 세속을 떠난 사제의 신분이요, 어찌 세속의 지위와 동일시 할 수 있겠소? 또한 어찌 위대한 펠리온을 모시는 사제 앞에서 칼을 뽑아 드는 무레를 범하는 게요? 당장 사과하시오"
그러자 마론이 어쩔수 없다는 듯이 칼을 다시 꼽고는 머리를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아미란이 같이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론 백작이 워낙 성격이 급하다 보니 감히 무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노여워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자 라디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주군을 위해 칼을 뽑아드는 기사를 내 어찌 책할수 있겠소? 오히려 미천한 종이 귀하신 분을 화나게 만들었으니 오히려 제가 송구할 따름이지요"
아미란이 마론을 향해 앉으라고 눈짓을 하자 마론이 할수 없다는 듯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더 이상 라디엔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다른 곳을 응시했다.
아미란이 그런 마론을 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라디엔을 바라보았다.
"비록 저희가 지금 후작각하의 명을 받들고 잇지만 이 일은 실은 코즈히 공작님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분명코 이번일이 잘 풀리게 된다면 사제님의 이름이 공작님의 귀에 올라가시게 될겁니다."
그러자 라디엔이 흥미 잇다는 표정으로 아미란을 바라 보았다.
"호오? 공작님이?"
아미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장담컨대 이번 일이 잘 끝나면 결코 라디엔 사제님을 섭섭지 않게 대하실 겁니다."
아미란의 말에 라디안이 잠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번일은 전번 들개 소탕작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작님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미렌이 생각에 잠긴 라디엔의 결심을 촉구하고자 한번 더 재촉했다.
라디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번에도 분명코 같은 약속을 하지 않으셨소? 그런데 결국 제게 돌아온 것은 오욕 뿐이었지요"
아미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안에서 작은 수정구를 꺼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저희 후작님과 대면토록 하지요"
아미란이 수정구를 손으로 슬쩍 슬쩍 문질렀다. 그러자 수정구 안에서 한 사람이 나타낫다.
뚱한 얼굴을 하고 잇는 베이오트였다. 그러자 아미란과 마론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수정구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베이오트는 그런 아미란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 아미란입니다."
그러자 베이오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떻게 되었나?"
아미란이 수정구를 향해 다시 머리를 조아리더니 입을 열었다.
"사제님께서 직접 각하의 확답을 받고자 하십니다."
그러자 베이오트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겟다. 라미엔 사제를 바꿔봐라"
아미란이 수정구를 테이블에 놓고는 얼굴이 나오는 부분을 라디엔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라디엔이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더니 아미란과 마찬가지로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그대가 라디엔인가?"
라디엔이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깊이 조아리며 말했다.
"황송하옵니다. 신의 천한 종 라디엔이라 하옵니다. 주님의 광명이 항상 함께 하시길"
"됐다. 그래 그대가 직접 나의 확답을 듣고 싶어 한다고?"
약간 신경질 적인 베이오트의 말에 라디엔의 얼굴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황공하옵니다."
"좋아, 이번일을 잘 끝마치면 자네를 추기경으로 추대함과 동시에 후일 루운야의 신전관장의 자리가 비면 자네를 우선적으로 추대를 해줌세, 그리고 그 사실을 미리 공작각하께도 알려주겠네"
라디엔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황공하옵니다. 제 몸을 바쳐서 분부하신 것을 완수하겠나이다."
베이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모든 것은 아미란 경에게 맡겼으니 아미란 경의 지휘에 따르도록"
라디엔이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나이다."
베이오트가 그런 라디엔의 모습을 보면서 차갑게 웃었다.
"하지만 명심하도록 만일 일이 실패할 경우 자네는 물론 자네의 일가 친척 모두 게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겟네, 이것은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베이오트는 그 말을 남기고는 수정구에서 사라졌다. 고개를 드는 라디엔의 얼굴이 베이오트의 마지막 말에 하얗게 질렸다.
그런 라디엔을 보면서 아미란과 마론이 내심 고소를 지었다. 하지만 라디엔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앗다.
라디엔은 잠시 고민하기 시작햇다. 어느덧 라디엔의 안색은 침착함을 되찾아 가고 잇었다. 라디엔이 고개를 들어 아미란과 마론을 쳐다보았다.
"그래 내가 도와줄 일이 무엇이요? 그리고 일을 어떻게 하면 되겠소?"
아미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천천히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58. 9화 다가오는 그림자(3)
"목표는 하베이도 영지요"
아미란의 말에 전혀 모르겟다는 듯 라디엔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하베이도? 하베이도라?"
그런 라디엔의 모습을 보고 아미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설명을 했다.
"하긴 저도 이번일 때문에 지도를 통해서 겨우 알게 되었지요. 지도상 이곳 미레보에서 영지 하나를 통하면 나오는 곳이오"
라디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꽤 궁벽한 것인 가보군요"
라디엔의 얼굴에는 약간 실망감이 감돌았다. 그는 내심 이번 일이 끝난 후 얼마간의 부수입을 기대했었음이 틀림없었다.
아미란이 그런 라디엔의 기색을 눈치채고는 얼굴을 정색했다.
"그렇소, 비록 마을은 작지만 이번일의 중요성을 봐서 단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되오"
하지만 아직 라디엔은 그다지 긴장하는 기색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요, 이번 일은 우리 신전 감찰단의 호위 기사들만으로 충분할 겁니다. 두분은 이 자리에서 좋은 소식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러자 마론의 입에서 콧방귀가 뀌어졌다. 그리고 아미란은 호언 장담을 하는 라디엔에게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미란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을 위해서 특별히 여기 제4전대 대장님의 휘하 기사단 100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미란이 품안에서 서류를 한 장 꺼냈다. 그것은 베이오트의 서명이 들은 명령서였다.
"이곳 미레보 영지의 모든 병력을 차출할수 있는 명령서요. 이곳은 중급 도시이므로 현재 운용할 수 있는 숫자는 경비대 까지 모두 포함 한 400명은 차출 할수 있을 것이요. 그리고 신전 감찰단 호위 기사들 50명을 합치면 적어도 550명은 동원 가능 할거요. 그리고 도중에 있는 이 아피림 영지에서 다시 50명 정도는 차출 가능 할거요 그럼 합이 600명이 되는 셈이요"
아미란의 말에 라디엔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니 그렇게나 많이요?"
아미란이 라디엔의 말에 더욱 자조적인 웃음을 내보였다.
"맘 같아서는 주위 영지에서 병사들을 더 모집하고 싶습니다만은 시간이 촉박해서 이정도로 그치는 겁니다. 솔직히 많이 부족한 상태지요"
"설마 그곳에 아주 큰 도적 집단이나, 아니면 반란군이라도 있는 겁니까?"
마론이 화를 벌컥 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요."
아미란이 손을 들어 마론의 무릎에 얹었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젠 라디엔 부교구장도 우리와 한배를 탄 입장이요. 미리 맘의 준비를 해야 할것이요"
마론이 못마땅 한 듯 고개를 획 돌렸다. 그런 마론을 보며 아미란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라디엔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얼마전에 잇었던 쳄벌린 상인단의 기습사건을 아시오?"
라디엔의 얼굴에 흥미가 돌았다.
"글세요 풍문으로 약간 들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어떤 간 큰 도적단이 몇 개 연합해서 쳄벌린 상인단에 도전했다가 몰살당했다고 들었지요"
아미란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실은 그 도적단이 바로 우리 칼버린 기사단의 제 3전대 였소."
아미란의 말에 라디엔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정말입니까? 아니 그럼.."
마론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쳄벌린 상인단이 비록 아무런 항의도 안하고 있기에 우리도 잠잠히 사태를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이번일이 끝나면 쳄벌린의 이름은 이 땅에서 아주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이 치욕을 반드시 갚을 것이요"
라디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마음이요, 하지만 경도 알다시피 지금은 아니요."
마론을 다시 위로하고 난 아미란이 다시 천천히 라디엔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우리는 당시 3전대 인원 전원을 투입하였소, 초반에 작전은 거의 성공할 듯 싶었소, 하지만 막판에 3전대는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소"
라디엔이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군요. 아무리 1개 전대라고는 하지만 400이 넘는 인원일 텐데요, 고작 상인들에게 당하다니요"
아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우리도 처음 그 사실을 받아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소, 당시 쳄벌린 상인단엔 기껏해야 용병 나부랭이들이나 이제껏 칼 한번 제대로 쥐어보지 못했던 상인들이 거의 대부분 이었기 때문이었소, 그래서 약간의 피해는 있을지언정 완승을 거두리라고 낙관 하고 있었던 것이요, 하지만 정작 참패를 당하게 되니 칼버린 기사단의 사기가 많이 꺽이게 되었던 것이오"
라디엔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미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애써 그런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소, 어쨌든 그 참패로 인해 당시 부대를 지휘했던 케인 백작과 돌격대장이었던 아츠 자작은 아마 지금 이 시간까지도 높다란 장대에 매달려 앗을 것이오"
아미란의 눈에는 부대를 떠나오면서 보았던 아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높은 장대에 매달린체 이미 살은 여기 저기 날짐승들이 파먹어 버려 군데 군데 뼈다귀 마저 드러낫을 뿐 아니라 한쪽 눈은 파먹다 말았는지 얼굴에서 흘러나왓고, 머리는 혼통 파헤쳐진 살점들로 너저분하게 변해 있었다.
"예엣?"
라디엔의 기겁하는 비명에 마론이 끼어들었다.
"사실이오, 솔직히 고작 전투에 한번 실패했다고 그런 중형을 내린 처사에 대해 너무했다는 평판이 자자 했었오, 그리고 아직까지 어떠한 참패를 당했더라도 총사령관과 돌격대장, 그리고 그 휘하 병사들 까지 모조리 장대에 매달아 처형했던 전례가 없었소"
아미란이 그 말을 받앗다.
"나중에 그들의 처형을 직접 명령한 것이 코즈히 공작이었음을 알게되었소, 명심하시오, 만일 우리가 이번일을 실패하게 된다면 우리 역시 저 높디 높은 장대 꼭대기에 메달려 있게 될것이오. 아마 그때는 까마귀와 독수리만이 우리의 친구가 될것이오"
그제서야 사태의 무거움을 알고 라디엔의 얼굴이 한층 심각해 졌다.
"그런데 아직 이해가 안되는 군요? 어떻게 일개 상인단들이, 아니 용병들이 몇 가세했다곤 쳐도 그래도 이쪽은 정식 기사단 아닙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나요?"
아미란의 얼굴이 씁쓸하게 변했다.
"그건.."
마론이 뭐라고 반박하려다 아미란이 마론을 제지했다. 아미란이 큰 숨을 들이 마시고는 이미 식어 빠진 차를 한모금 마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흠, 우리 사이에 숨기는게 있다면 곤란하겠죠. 서로간의 신뢰가 우선일 테니 말입니다."
라디엔이 고개를 끄덕여 동감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우리는 그런 일 일이 있고 나서 접전 지역과 그리고 그때 전투에 참가했던 상인들 몇 명과 용병들 몇 명을 아주 은밀하게 잡아놓곤 엄중히 취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싸움 초반 제3전대가 너무 무리하게 작전을 운용하긴 했지만 그다지 힘든 상황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니 오히려 마지막 한번만 몰아치면 숫적으로나 사기면으로 낙승을 거둘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들에게 새로운 지휘관이 나타났습니다. 그놈 이름이..."
아미란이 말을 흐리자 곁에 잇던 마론이 얼른 보충해주었다.
"아하루요"
아미란이 간단히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마론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래, 아하루란 놈이었소, 갑자기 어디서 그런 놈이 튀어나왔는지는 몰라도 그 놈은 함정을 파놓고 3전대를 함정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 함정에 고스란히 빠진 3전대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결국 전투는 부대의 숫자보다 한 명의 지휘관이 그 역할이 더 크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겼죠"
라디엔이 대략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그렇군요. 하지만 아직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과 3전대가 괴멸당한 사건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라디엔의 말에 아미란과 마론이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방금전에 말한 아하루란 놈이 바로 하베이도 영지의 아들인 것이 밝혀졌소. 비록 하베이도 영지의 병사가 아무리 긁어 모아봐야 100명도 안돼는 영세한 곳이기는 하지만 혹여 있을지 모르는 불유쾌한 사태를 미리 방지하자는 뜻에서 말씀드리는 것이요"
그제서야 라디엔도 상황을 파악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래서 그렇군요"
"그렇소, 놈은 일전의 전투에서 봣듯이 놈은 아주 지략이 뛰어난 것으로 파악되엇소. 따라서 만일 우리의 계획이 사전에 발각된다면 놈을 잡기는 아주 힘이 들게 되오"
라디엔이 생각하기에도 아미란의 말에 일리가 잇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토록 영리한 놈이라면 충분히 그럴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따로 계획이 잇으신지요?"
아미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도에서 하베이도가 표시된 곳을 짚어 나갔다.
"다행이도 이곳 하베이도에서 빠져 나오는 길은 이곳 아피림 영지로 나오는 길 밖에 없소, 하지만 최악의 경우 놈들이 테실리아 숲쪽으로 도망칠 경우 그 숲의 넓이와 테실리아 산맥의 험준함을 생각해 볼 때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우를 범할지도 모르게 되오."
아미란이 주머니에서 동전들을 꺼내 하베이도 영지 주위를 포위했다.
"따라서 이곳 주위를 반드시 포위해야할 필요성이 생기오. 영지 자체가 그리 크지 않으므로 곁에 계신 마론경의 기사단 100명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되오. 그리고 부 교구장님과 이곳에서 모은 병사들은 일단 이곳 아피림에 집결하고 적당한 핑계를 대고는 일시에 하베이도를 급습하여야 할 것이오"
라디엔이 아미란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만일의 경우 전투가 벌어질 경우는 어찌 되는지요?"
아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이들은 정식 반란에 신성모독 죄를 적용시키게 되오, 전투가 일단 이들을 포위하고 있으면 추가로 이곳 미레보 옆 두 개 영지와 칼버린 기사단 나머지 전대가 동시에 출격할 것이오, 그렇다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 하더라도 결국 우리 손아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것이오"
"오, 현명하신 작전입니다. 아레온의 가호가 백작님과 함께하는 것 같군요"

미레보영지의 중심마을인 미렌은 지금은 비록 작은 도시에 불과 했으나 그 연혁은 결코 짧지 않았다. 기실 미렌은 이미 미레보 영지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던 도시였다.
과거 이곳은 국경을 통과하는 관문적인 도시였다. 덕분에 수 많은 상인들의 왕래에 힘입어 한때 번창햇던 도시이기도 햇었다.
허나 국경을 맞대고 있던 아레나가 전쟁에 패해 다룬제국에 복속된 이후로는 미렌은 관문도시로서의 그 기능이 상실되었고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는 도시가 되버렸다.
도시의 외곽은 그런 예날의 번영했던 모습들이 지금은 낡고 폐허가 되버린 모습으로 바뀐지 오래이고 비교적 도심부만이 영주가 거주하는 성이 잇기 때문인지 그럭 저럭 간신히 보수가 이루어지곤 했다.
가끔 주민들 중 몇몇은 과거의 번성했던 미렌의 이야기를 들먹이고는 하지만 이미 미렌은 역사속에서 사라져가는 퇴락한 도시일 뿐이었다.
하지만 과거 미렌시가 영화로웟던 시절의 길들은 아직도 그 유용성을 잃지 않은 덕분에 제법 잘 정비되어 있었다. 미렌시의 외곽에 보면 수 많은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단의 기병들이 그 길들중 제일 정비가 안되어 약간은 황페하다시피한 길로 말을 달렸다.
그들은 각기 대여섯 명씩 편을 나누어서는 인적이 거의 없는 테실리아 산맥 방면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들이 지나간 뒤로는 온통 뿌연 흙먼지가 가득 일어낫다가 차츰 가라 앉았다. 하지만 흙먼지가 채 갈 안기도 전에 또다른 일단의 기병들이 또 줄지어 먼저 간 기병들의 뒤를 쫓아 달려 나갔다.
인적이 거의 없어 늘 황폐하던 레소니와 아피림을 잇던 도로는 오늘따라 수 많은 기병들의 말달림으로 몸살을 앓았다.


59. 9화 다가오는 그림자(4)
아하루는 오래간만에 느긋하게 늦잠을 잘 수 있었다. 그동안 바쁜 여정에 쫓기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하루 하루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오니 누구도 아하루의 늦잠을 깨우는 사람도, 그리고 그것을 책망하는 사람도 없었다.
가끔 조카들이 잠자고 있는 아하루의 방에 왔다간 계속 잠만 자대는 아하루를 보고는 실망해서 다시 돌아가기만 반복했을 따름이었다.
한참을 달게 잤을까? 아하루는 온 몸이 노곤하면서 그동안 쌓인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한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
아하루가 채 뜨이지 않는 눈을 간신히 비비고 있을 때 살며시 문이 열리더니 어린 꼬마가 하나 들어왔다.
"삼촌, 일어났어?"
아하루가 흐릿한 인영을 보기위해 다시 눈을 비볐다. 큰 형의 아들 카리에 였다.
"응, 카리에 어서와"
"칫 삼촌은 잠꾸러기"
약간 삐진 듯한 카리에의 말에 아하루가 실소했다.
"삼촌은 잠꾸러기 아냐, 단지 여행 때문에 피곤 해서 그래"
카리에가 귀여운 고개를 잠시 갸웃 하더니 알겟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삼춘, 엄마가 점심 먹으러 내려오래"
아하루가 그 말에 놀라서 창을 가리고 잇던 커텐을 제쳤다. 따가운 태양 빛이 창을 통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흠, 벌써 이렇게 됐나?"
아하루는 내려가기를 재촉하는 조카 카리에의 손에 이끌려 허둥 지둥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방 박으로 나섰다. 방 밖에는 또 다른 조카 레이첼이 방을 나서는 아하루와 카리엔을 보면서 손가락을 입에 물고는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 레이첼이구나? 잘잤니?"
아하루가 빙긋이 웃자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린아이의 서툰 말투로 또박 또박 말하는 레이첼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아하루가 레이첼을 잡아서 품에 안았다. 그리곤 레이첼의 볼을 자신의 뺨으로 몇 번 비벼 댔다.
"아앙, 삼촌 따가워요"
레이첼이 아하루의 아직 손질되지 않은 수염이 못내 못마땅한지 자그마한 손으로 아하루의 얼굴을 밀어댔다.
아하루는 그런 레이첼의 손을 붙잡고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어머 도련님 깨어나셨어요?"
큰 형수인 리이가 아하루를 1층에서 반갑게 맞았다.
"안녕하셨어요? 다들 어디로 가셨죠?"
리이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잠시 닦고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그이는 지금 도련님과 같이 오신 카미야란 분과 잠시 대련 중이시고, 둘째 도련님은 서재에서 음... 훼리나라고 하셨던가요? 왜 그 머리카락이 약간 붉은 빛 나고 좀 갸름하게 생긴 분이요"
아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훼리나요"
"그래요, 그 훼리나 양과 서재에서 책에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잇어요. 그나저나 우리 도련님은 재주도 좋지. 어떻게 그렇게 아리따운 아가씨를 세명씩이나 데리고 다닐수 있죠?"
리이가 웃으며 말하자 아하루는 쑥쓰러운지 고개를 긁적였다.
아하루와 조카들이 계단을 다 내려오자 카리에와 레이첼이 얼른 엄마인 리이 품에 안겼다.
리이는 자신에게 안겨오는 카리에와 레이첼의 옷 매무새를 다시 매만져 주고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카리에 너는 삼촌한테 가서 식사하라고 말씀드리고 지금 당장 오시라고 해라. 그리고 레이첼 너는 아빠한테 가서 그만 대련하시고 엄마가 빨리 들어오시래요 하고 전해라?"
카리에와 레이첼이 '네'하고는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각자 찢어졌다.
"자 도련님 먼저 식당에 들어가시겠어요?"
아하루가 뭔가를 생각하다 리이의 말을 듣고는 정신을 차렸다.
"에? 아, 아뇨 잠시 뭐좀 가져올게 있어서요"
아하루가 기껏 내려왓던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그런 아하루의 뒤를 대고 리이가 말했다.
"뭔진 몰라도 지금 곧 내려오세요. 얼른 안오시면 오늘 점심은 없어요"
아하루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금 계단을 올라갔다.
아하루가 올라가는 모양을 지켜보던 리이가 다시 손을 앞치마에 닦아대고는 천천히 식당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탁은 전날 저녁보다는 조촐했지만 단란함은 더욱 넘쳤다. 그들은 각자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자 리이가 직접 하녀들을 지휘해서 식탁을 치우게 하더니 향이 좋은 차를 내왓다.
"그래, 아하루 이제 어디 들를 참이냐?"
아하루의 아버지인 라이만이 아하루에게 물었다.
"글세요? 딱히 생각나는 곳은 없는데요?"
그러자 트루발이 생각난 듯이 말했다.
"참 아피림에는 들렸느냐?"
트루발의 말에 곁에 있던 리이가 트루발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그제서야 트루발도 자신의 실수를 눈치 챘는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공기가 약간 어색해졌다.
아하루가 그런 분위기를 얼른 감지해내고는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아파림이요? 여기오기전에 들렀어요. 그곳에 계시는 삼촌이 아버님한테 안부전하던 데요?"
애써 웃음 짓는 아하루를 보고 다들 이미 아하루가 어느정도 눈치 챗음을 깨닳았다. 다들 침묵에 쌓인채 가만히 잇더니 라이만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래 네 생각은 어떠냐? 레소니를 포기할수 잇겠느냐?"
리이가 상황을 모르고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을 인솔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카미야와 르네등도 리이를 따라서 밖으로 빠져 나갔다.
그들이 빠져나간 것을 잠시 지켜보던 아하루가 입을 열었다.
"레소니가 행복해지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트루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떤 길이 레소니가 행복해 지는 길이겠느냐?"
아하루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릴 때 맺은 약속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아마 레소니는 어머니와 저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아버님과 의형제로 지내시던 두분의 관계도 결코 전처럼 소원할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네가 보는게 맞을 게다"
라이만이 잠시 눈을 감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눈을 떳다.
"아하루야 나한테는 카발리에도 소중하고 너도 소중하다. 하지만 나는 평생을 같이 해온 카발리에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구나. 만일 저쪽에서 파혼을 요청한다면 나는 그에 응할 작정이다. 이번 일은 네가 양보하도록 해야겠다."
아하루가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저도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입니다."
"그래, 오래간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안좋은 일이 생겨 안타깝구나"
트루발이 안타까운 듯 아하루를 위로했다.
"하하 괜찮아요. 혹시 알아요? 나중에 더 마음에 드는 연인이 생길지? 그건 그렇고 형님"
아하루가 애써 웃으며 안쓰러워 하는 트루발을 오히려 달래고는 캄포냐를 불렀다. 여태껏 가만히 잇던 캄포냐가 무슨일인가 싶어 아하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하루가 식탁 밑에 놔두었던 가방을 하나 꺼냈다. 가방을 펼치자 그곳엔 일전에 산 책들이 담겨 있었다.
"이건 이번 여행에서 산건데 루운야에서 미처 못팔고 왓어요. 일단 형님 방에다 맡아 두겟어요?"
다들 흥미롭다는 눈길로 아하루가 꺼낸 책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실소하고 말았다.
트루발이 그중 몇 권을 들어서 소리내어 읽었다.
"잉? 이게 뭐야? '빛나는 갑옷의 기사와 레이디 마르오', 훗 이것 봐라 '부드셀린의 사랑의 방랑기'라"
"오호라 오래 전에 유행했던 '아이솝과 호루스의 웃기는 사랑'도 있구나?"
라이만이 자신도 알고 있는 이야기를 찾아선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캄포냐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 책은 거의 300년전에 나왓던 책 아닌가요? 이제보니 우리 아하루가 고금의 모험 소설을 전부 모우고 잇던 중이었군요?"
아버지와 형들이 이렇듯 올려대자 아하루가 얼굴이 붉어지며 항변했다.
"이.. 아니예요. 이건 원래 루운야에서 팔건데 다 못팔고..."
트루발이 그런 아하루의 말을 중간에 잘랏다.
"알아 알아, 욘석이 어디서 그런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동행으로 꼬셨나 했더니. 매일 같이 이런 책으로 단련 했구먼?"
"형"
"큭큭큭, 어디 그뿐 인줄 아세요? 그중 한 아가씨 한테는 이녀석이 뭐라더라? '댈러웨이 부인의 은밀한 사랑'이라던가? 그런 요상한 책을 선물했지 뭡니까?"
"으하하하, 정말? 천생 샌님인줄 알앗던 아하루가 그런 바람둥이 행동을 하다니 수도에서 단단히 벼르고 왔구나"
라디안 마져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아하루의 얼굴이 구겨질대로 구겨졌다. 아하루가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어? 어디가니? 아하루?"
아하루가 갑자기 일어나자 아직도 킬킬 대며 트루반이 물었다.
"밖에요. 일행한테 이곳 구경시켜주기로 약속했단 말이에요"
아하루가 볼멘 목소리로 말하자 트루반이 다시 놀렸다.
"알았다. 그런데 소설하고 혼동해서 허튼짓을 하면 안된다?"
트루반의 말에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루가 얼굴을 구긴체 소리를 질렀다.
"저두 그쯤은 알아요. 어쨌든 캄포냐 형 형 서재가 제일 넓으니깐 형이 좀 맡아 줘요"
캄포냐가 웃느라 숨이 찬지 대답은 못하고 손만 알겠다는 듯이 까닥였다.
아하루가 그런 형들을 원망스런 눈초리로 잠시 째려보다가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 밖으로 횡하니 나가버렸다.
아하루가 문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서야 셋은 웃음을 그쳤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다지 괴로워 하는 것 같지는 않군요"
라이만이 고개를 저었다.
"글세 모르는 일이지. 저 아이는 어려서부터 늘 맘속에 담아두길 좋아하지 않았더냐. 너희들이 저 아이를 잘 달래도록 해라"
트루반과 캄포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선 아까 아하루를 놀리는 모습대신 진정으로 아하루를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와 형들의 모습만이 남았다.

아하루가 문 밖으로 나오자 문 밖에서 안의 분위기를 살피던 리이가 금새 아하루에게 다가왓다.
"도련님 안에서 무슨일이예요? 무슨 재미난 이야기라도 나눴어요?"
아하루가 잔뜩 구겨진 얼굴을 황급히 펴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별거 아니예요. 그냥 간만에 온 저를 못잡아 먹어서 저래요"
리이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도련님하고 형님들은 언제봐도 사이가 좋은 것 같아요"
아하루가 무슨 말이야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사이가 좋긴요 언제나 저를 못 놀려서 안달이 났는데요. 에휴~ 이제 집에 왓으니 한동안 또 얼마나 날 놀려 먹으려 들까?"
리이는 평소 점잖던 트루발과 캄포냐는 물론 늘 신중하고 무게있는 모습만 보이던 라이만 까지 아하루를 놀려대는 모습을 눈에 그리며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아하루가 그런 형수에게 눈을 찡그렸다.
"형수님, 이젠 형수님 마져 저를 배신하깁니까? 아 믿었던 형수님한테 마져 배신당하다니 오 아하루여 너의 청춘이 너무나 가련하구나"
아하루가 짐짓 무대의 배우처럼 그렇게 말하자 리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웃고 말았다.
"호호호호, 도련님 호호호, 더...."
리이가 한참을 말을 못잇고 웃어대더니 간신히 진정을 하고는 말을 이엇다.
"호호, 다른 분들이 밖에서... 기다려요"
아하루가 그런 형수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몸을 돌렸다.
"후~ 형수님 그럼 나가볼께요"
리이가 앞에 두른 앞치마에 손을 닦더니 얼른 말햇다.
"그래 근처를 놀러다니신다고요. 밖에 잇는 일행분들에게 간단한 요기거리를 드렸어요. 그렇다고 너무 멀리 나가지는 마세요?"
"고맙습니다."
아하루가 형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아~ 외로운 청춘이여. 네 쉴곳은 어디메뇨? 네 안식은 어디에 잇느뇨?"
아하루가 문을 나서며 다시 연극 배우 흉내를 내며 장탄식을 터뜨리며 말하자 조금 진정되었던 리이가 다시금 자지러졌다.
"도...도련님 그만이요..호호호호"
저택의 문에서는 카미야와 르네등이 아하루의 괴상한 말투를 듣고는 놀란 듯이 아하루를 쳐다보았다.
아하루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쑥쓰러움에 머리를 긁적였다.
"방금 무슨 말을 하신거죠?"
카미야가 이상하다는 듯이 묻자 아하루가 빙긋이 웃었다.
"별거아냐, 가족들이 내가 너무 걱정 안하고 잇다는 것을 보여준거야"
카미야는 그런 아하루의 말을 잘 이해가 가지 않앗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근데 이제 어디로 갈거죠?"
마리안의 말에 아하루가 잠시 고민하더니 눈을 빛냈다.
"좋아 이곳에서 우리가 왔던 길쪽으로 되돌아가다 보면 작은 언덕이 하나있거든? 그곳에서는 비교적 테실리아 산맥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지. 그곳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이번 기회에 르네도 말타는 연습을 할겸해서 말야"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서도 말을 타본 적이 없었던 르네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좋아요, 이번 기회에 말타는 것을 완전히 마스터 하겠어요"
그러자 곁에 있던 마리아가 혀를 내밀었다.
"어머 언니 말타는건 그리 쉽게 익혀지는게 아니라구요"
하지만 르네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마 이래뵈도 어릴 땐 동네에서 날 당할 사내들이 없었다구"
아하루가 그들을 마굿간으로 인도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각자 자신의 맘에 드는 말을 골라 올라탓다. 르네에게는 가장 온순하고 얌전한 말이 주어졌다. 하지만 르네가 정작 그 말을 올라타고 문을 빠져 나가기 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60. 9화 다가오는 그림자(5)
카발리에는 지금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인물들중 그가 쉽사리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번 아파림에서도 병사 50명 정도는 내어 주셔야 하겠소이다."
반백의 사제가 말을 마쳤다. 약간 헐렁한 사제복을 입고 얼굴에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사제였다. 하지만 카발리에는 눈 앞의 사제가 결코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그런 사제가 아님을 알고 잇었다.
그는 요 근래 자신의 이름앞에 새로운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 피의 사제 라디엔 이것이 그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또한 라디엔 옆에서 그를 호위하듯 카발리에를 압박하고 있는 인물들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칼버린 전대의 참모장 아미란 백작과 제 4전대장 마론 백작이었다. 카발리에는 과거의 전투에서 칼버린 기사단 휘하에 참가해서 싸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너무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비록 카발리에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카발리에가 부드러운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고명하신 사제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신도된 입장에서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궁굼한 것은 어째서 갑자기 하베이도까지 사역하러 가실려 하는 것인지 그게 궁굼할 따름입니다."
라디엔이 약간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남작, 그게 어인 말씀이오? 주의 종이 된 몸으로써 어찌 지역구 안에 있는 신도들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있겠소? 비록 하베이도가 궁벽한 곳이기는 하나 그곳도 엄연히 주님의 백성된자들이 있는곳 주의 종이 당연히 찾아가야지요"
라디엔의 말에 카발리에가 약간 씁쓸한 얼굴이 되어서 말했다.
"제가 어찌 사제님의 고충을 모르겠습니까만은 그렇다고 보기에는 사제분과 동행분이 너무 많은 듯 싶군요"
문득 카발리에의 머릿 속에서는 어제 일이 생각 났다.
수 많은 기병들이 은밀히 이곳 아파림을 지나갔다는 수많은 첩보에 깜짝 놀란 카발리에가 그들이 향하는 하베이도로 미처 전령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채 그런 행동을 하기도 전에 수 많은 무리들이 이미 아피림을 포위하듯 에워쌓다. 그리고 그들은 카발리에의 저택을 마치 여관인양 여기저기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지금 아내와 과년한 딸은 두려움에 질려 방안에만 쳐박혀 있는 중이었다. 아니 그뿐 아니라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군대의 기세에 질려서 일도 못나가가고 각기 집안에서 두려움에 떨며 힐끔 힐끔 그들의 행동을 주시할 뿐이었다.
군대는 그런 마을 주민들을 비웃으며 그들이 애써 가꿔 놓았던 논과 밭을 이리저리 마구 흩어 놓았다.
마을의 수비대도 그런 군대에 대항하지 못하고 수비대 건물에 틀어 박혀서 카발리에 남작의 지시를 기다리고 잇는 중이었다.
라디엔이 화를 벌컥 냈다.
"동행이 많고 적고는 남작이 상관할 바가 아니요. 내 더 이상 긴 말은 않겠소. 협조할 테요? 안할테요?"
라디엔이 노한 듯 말하자 카발리에가 더욱 부드럽게 웃으며 정중한 자세를 취했다.
"제가 어찌 협조를 안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라디엔의 얼굴에서 인자한 표정은 어느새 사라졌다.
"다만?"
카발리에가 그런 라디엔의 표정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이 옆 하베이도 영지의 자제와 제 딸이 어릴적부터 서로 약혼한 사이였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제가 어찌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라디엔이 그런 카발리에의 말에 잔뜩 경계심을 품고 말했다.
"그렇다면 귀하와 하베이도 영지간은 무척 친하겠구려?"
카발리에가 짐짓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그저 영지가 서로 붙어 있고 옛날부터 잦은 충돌이 많았던 지라 딸년을 시집보낸다 약조하면 충돌을 좀 덜어 볼까 해서였지요. 제가 워낙 골치 아픈 것은 싫어 하는 터라"
카발리에가 잠시 숨을 돌리고 계속 말했다.
"헌데 이번에 어찌 아셨는지 레히만 공작이 제 딸년을 좋게 보셔선 휘하의 귀족과 결혼을 제의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비록 맘에 내키지 않은 약혼이지만 저희가 먼저 함부로 파혼을 말했다가는 저쪽의 무뢰배 같은 놈들이 어찌 나올지 몰라 고민하던 참이었지요."
라디엔은 레히만 공작이란 말이 나오자 잠시 멈칫 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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