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와룡강] 광(狂) 1권 제2장 野獸 鐵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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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699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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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野獸 鐵覇

어두운 골목으로부터 하나의 커다란 그림자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야수 철패, 바로 그였다.
그의 험상 맞은 얼굴엔 하나 가득 흡족함이 서려 있었다.

"후후후……고 계집, 생각보다 더 명기더군, 천하가 인정하는 나 철패의 용물을 아예 잘라먹을 듯 조여오던 그 맛이란 정말……흐흐흐……죽여줬어!"

철패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바지 중앙보, 즉 허벅지와 허벅지 그 사이의 그곳을 툭 쳤다.

"이놈아, 오랜만에 기찬 동굴을 팠지? 일회용으로 한 번 맛보고 버리기엔 너무 아깝단 말이야……."

철패는 아직도 얼얼한 자신의 아랫도리를 왼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희희낙락했다.
그의 왼손이 칠 때마다 바지가 출렁였다.
헌데 저게 뭐지?
철패의 바지 중앙부는 실로 낯뜨거울 정도로 불룩 솟아있는게 아닌가?
바지 중앙부의 그 묵직하고 우둥퉁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란 흡사 사내가 아침에 깨어날 때면 의레 힘이 왕창 들어가 바지를 뚫고 나올 듯 솟구쳐 오르는 그것(?)의 그 힘을 그대로 느끼게 할 정도로 팽창되어 있었다.
더욱이 덩치가 큰 탓인지 몰라도 불룩 솟구쳐 오른 모양이 보통 큰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 팔뚝 하나가 바지 속에 들어가 있다고나 할까? 아니면 그것 대신 몽둥이를 매달고 다닌다고나 할까 싶을 정도로 무척 컸다.
가뜩이나 허리통만하게 굵은 허벅지인데도 그 정도로 우람함을 자랑한다는 것이 대체 얼마나 큰지 궁금증을 일게 하였다.
철패, 그는 자신의 자랑스런 용물을 툭툭 건드리는 장난을 치다가 힐끔시선을 오른손으로 가져갔다.
그는 솥뚜껑만한 손에는 전낭과 여인네들이 머리에 꽃는 나비 모양의 비녀, 옥접잠이 들려져 있었다.
철패는 오른손을 들었다.

"킁킁! 계집, 비녀로 거시기를 쑤셨나? 비녀에서 그 냄새가 나네……."

무슨 냄새일까?

"흐흐흐……내가 비녀를 가져왔으니 함부로 입방아를 찧지 못할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안전이 제일이다. 한 번 눌러 주고……그 계집 물건 하나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나중엔 커다란 무기가 되지……나에게 당했다고 떠들지 못하게 하는 그런 무기……."

철패는 골목에서 여인에게 몹쓸 짓을 하고는 그녀가 고발하지 못하게 그녀의 물건 하나를 가져온 것이다.
철패는 왼손으로 비녀를 잡아 가슴 속에 아무렇게나 집어넣고는 다시 두 손으로 전낭을 열어 보았다.
으스름한 달빛에 열려진 전낭 안에서 보광이 일렁였다.

"호오……제법 되는데……."

짤랑……짤랑……!
철패는 전낭 속의 은자를 손가락으로 세어 보았다.
"대강 잡아도 은자 백냥은 되겠다. 됐어! 이 정도면 천락도박장(天樂賭博場)에서 한 번 멋지게 땡길 수 있겠다! 수중에 돈이 떨어져 님도 보고 뽕도 딸 겸 한 탕 친 것이 적중했구나……흐흐흐……."
나쁜 놈!
결국 도박장에서 도박을 하기 위해 돈을 마련하고자 길 가던 부인을 겁탈하고 돈까지 뺏었다는 게 아닌가?
철패는 전낭을 공처럼 손바닥에서 가지고 놀면서 골목을 걸었다. 그의 입은 쫙 찢어져 있었다.
헌데 그가 막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서려할 때였다.

"크흐흑……으으……."

골목 한 구석, 높은 담과 담장 너머에 자란 커다란 소나무 때문에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그곳에서 미약한 신음이 들려 오는 게 아닌가?
(이 소리는……?)
철패는 안색이 변하며 급히 그곳을 쳐다보았다.

'으음……."

끊어질 듯 말 듯하면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가 아까보다 더 똑똑히 들려왔다. 그것은 분명히 고통에 겨워 신음하는 사람의 음성이었다.

"대체 어떤 새끼가 내 기분을 잡치고 있어! 한 탕 멋지게 치고 맛난 계집까지 덤으로 잡숫고 당당하게 도박장에 가는 이 야수대형 어르신께 돈 많이 따시라고 박수치고 환호해 주지 못할 망정 다 죽어 가는 소리를 꽥꽥 내지르고 지랄이야! 재수 없게시리……."

철패는 두 눈에 분노를 담으며 골목 그늘에 다가갔다.

숲 속에 피투성이의 한 노인이 바위에 기대앉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바로 복마환제가 아닌가!
지금 그의 안색은 희다 못해 완전히 잿빛을 띄우고 있었다.

"헉……헉……."

복마환제는 힘겹게 숨을 헐떡이며 초점 없는 시선을 밤하늘에 못박고 있었다.
이때, 철패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아니……?"

복마환제를 보는 순간 철패의 눈이 한껏 휘둥그래졌다.
(세상에……이토록 참혹한 상처를 입고도 살아 있다니…….)
웬만한 사람이라면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쳐도 골백번을 더 도망쳤을 끔찍한 모습이지만 그때 뿐 철패는 더욱 살기등등한 기세로 복마환제에게 다가갔다.

"늙은이! 죽으려면 조용히 찍소리 말고 죽을 것이지 감히 내 비윗장을 건드려!"

"……"

복마환제의 초점 없는 동공에 일순 어이없는 기색이 스쳐 지났다.
(천하에 노부 복마환제가 이 따위 잡배에게 늙은이 소리를 들다니……)
갑자기 회한이 밀려온다.
(어쩌다가 노부가……)
회한은 곧 분노로 바뀌어졌다.
(잡배! 노부를 본 것이 네놈의 죄라면 죄다! 화화교(花花敎)의 요녀들이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라도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곧 죽음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짓!)
복마환제는 살기를 발하며 촉망히 진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나 곧 그는 우거지상이 되었다.
(큭! 빌어먹을, 혈국 계집과 싸우다 입은 내상이 너무나 엄중해 내공이 잘 모아지지 않는다.)
복마환제의 내상은 생각보다 더 깊었다.

그는 염미인의 한상빙백강에 적중되어 온몸에 한독이 스며든 상태에서 혈화사미 중 혈국과 마주쳐 싸우게 되었다.
다행히 혈국을 죽이기는 했지만 최후에 가서 그녀가 발악적으로 내뻗은 혈라쇄심장(血羅碎心掌)에 적중되어 오장육부마저 제자리를 이탈했다.
지닌 바 막중한 임무만 없다면, 살아야 한다는 강인한 정신력이 없었다면 벌써 그의 영혼은 황천길로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 몸이니 어찌 진기가 모아지겠는가?
복마환제가 아연해 할 때다.

"이런 육시를 할 늙은이! 어디서 눈을 부라리고 지랄이야!"

복마환제가 살기를 내뿜자 철패가 버럭 소리치며 발길질을 했다.
퍽!

"우욱!"

복마환제는 입 밖으로 시커먼 핏덩어리를 토해 냈다.

"죽엇! 이 늙은아!"
퍽! 퍽!
철패의 발길질은 끝이 없었다. 그의 발길질 속에는 백근은 족히 나가는 힘이 서려 있었다.
타고난 신력에 외문기공을 익힌 그인지라 그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일류고수라 해도 함부로 대적치 못할 거력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복마환제라면 그의 그 공포의 발길질에 맞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철패가 감히 상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초절정고수이기 때문이다.

-복마환제(伏魔幻帝)!

당금 강호의 백도무림계에 대해 말하라면 한 마디로 말해 멸(滅)! 그것으로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다.
그렇다. 당금 강호의 백도무림은 없다!
소림사를 위시한 구파일방은 십 년 전 봉문을 했고, 전통을 자랑하는 사대세가 중 오직 모용세가(募容世家)만이 그 명맥을 이을 뿐 나머지 남궁(南宮), 상관(上官), 제갈세가( 諸葛世家)
는 문을 걸어 잠궜다.
흑도천하(黑道天下)!
당금 강호를 일컬어 흑도천하라 한다.
그런 마고장천(魔高長天)의 천하 속에 고군분투하는 백도 무림의 최후 보루가 정검련(正劍聯)이다.

-정검련(正劍聯)

소속 인원이 몇이며, 어디에 총단이 있으며, 련주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백도의 마지막 정혼
복마환제는 그곳 정검련의 팔대봉공 중 일인이며 오십년 넘도록 강호행을 하면서 협행을 쌓아 온 협결이다.
그의 복마장법과 경공술, 그리고 은신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평소의 그였다면 철패는 이미 초죽음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 현재 복마환제는 어린아이도 그를 죽이려고 맘만 먹으면 죽일수 있을 정도로 사경을 헤맬 정도였으니……

퍼억!

"커억!"

복마환제는 눈이 부릅떠졌다.

"이……이런 개……개 같은 경우가……끄륵!"

복마환제는 무엇이 그리도 억울한지 빈 허공을 향해 두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그 힘을 읽고 말았다.
툭!
땅바닥에 떨어지는 팔과 함께 그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졌다.
죽은 것이다. 정녕 개죽음이었다.

"씩씩! 늙은 놈이 뼈마디가 육시럴하게 긁네……!"

철패는 숨을 거칠게 내뱉았다.
어림 잡아도 백여 번의 발길질을 했어나 보다.
천 근 바위도 그의 발길질 서너 번이면 쩍쩍 금이 가고, 아름드리 나무도 허리가 반 동강이 나건만 닭모가지 하나 비틀 힘이 없어 보이는 복마환제를 죽이는데 무려 백여 번의 발길질이 필요했던 것이다.

"씩씩! 그 여편네한테 힘을 너무 많이 썼나……."

철패는 자신이 누굴 죽였는지는도 아직 몰랐다. 아니, 그는 그딴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눈치였다.
쓱!

"에엣!"

퍽!
그는 신경질이 난다는 양 죽은 복마환제의 옆구리를 냅다 발로 갈겨 버렸다.

"쌍놈의 늙은이 때문에 달밤에 체조했잖아! 치잇!"

그래도 성이 가지시 않는 양 몇 번의 발길질을 더 한 철패는 손을 툭툭 털었다.

"발길질도 이제 지쳤다"

그는 죽은 복마환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엎어진 복마환제의 몸을 똑바로 눞혔다.

"빌어먹을 늙은이! 아직도 눈을 부라리고 있잖아!"

죽은 복마환제의 두 눈은 억울함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불신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펑!
그러나 복마환제의 두 눈은 곧 시뻘건 피를 토하며 유리처럼 깨졌다. 철패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한 것이다.

"이제서야 눈알을 밑으로 까네……."

철패는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나려다가 말고 복마환제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발길질에 패이면서 가슴 섶 속의 전낭이 삐죽 빠져나와 있엇다.

"이건 전낭……이얏호! 완전 복주머니잖아!"

전낭을 집어 그 안에 있는 은자를 확인한 철패의 눈알에 탐욕이 이글거렸다. 그는 복마환제의 가슴 섶을 열어제꼈다.
옷이 찢기듯 풀어지며 그 안에 한 권의 무공비급과 어른 주먹만한 옥불상이 나왔다.

"복……마장보……허억! 복마장보! 그럼 이 늙은이가 복마환제란 말인가?"

비급의 제목을 확인한 순간 철패는 혼비백산했다.

복마장보(伏魔掌譜).

복마환제의 성명절기들이 수록된 무공비급.
철패는 놀란 토끼 눈을 한 채 죽은 복마환제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내……내가 복마환제를 죽였단 말인가? 내가……?"

믿어지지 않았다. 철패 역시 강호밥을 먹고 있는지라 복마환제가 얼마나 무서운 고수인지 귀가 따갑게 들어온 터였다.
하나 분명 복마환제는 그의 발길질에 죽었다.

"큭!"

갑자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최초 나직하게 새어나온 웃음은 어느 한 순간 앙천광소로 변했다.

"크핫핫핫핫! 나 철패가 복마환제를 죽였다.! 누구든지 덤벼! 나 철패가 공포의 발길질로 모조리 때려 눕혀 버릴 테니까!"

기분이 좋았다. 구름을 탄 채 붕붕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히히히……정검련, 정검련 하도 떠들기에 꽤나 무서운 놈들이 있는 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잖아!"

착각도 이만하면 수준급이다.
철패는 의기양양한 채 어깨를 으쓱이며 죽은 복마환제의 품을 마저 뒤졌다. 그러나 복마장보와 함께 나온 옥불상 이외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치잇! 무립 고수면 고수답게 그럴싸한 것을 많이 가지고 다녀야지 고작 이거냐?

철패는 수중의 옥불상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옥불상(玉佛像)!

그것은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좌불상이었다. 한하게 웃고 있는 환희불존(歡喜佛尊)의 모습을 띠고 잇는 옥불상은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발하고 있었다.

"제법 돈 좀 받겠는데……."

철패는 옥불상과 복마장보를 품에 넣었다.

"일단 밑천도 두둑하니 천락도박장에 가서 한 끗발 날리고……아침에 은화보석장(銀華寶石場)에 가서 옥불상을 팔면 그럭저럭 며칠은 개기겠다."

철패는 엉덩이에 묻은 흑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이윽고 그는 배부른 곰이 숲으로 들어가듯 어슬렁어슬렁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큰길로 나갔다.
그가 떠난 지 일각 정도가 지났을까?
파라락……!
한 차례 파공성과 함께 복마환제의 시신 앞에 가냘픈 인영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인영은 염미인이었다.

"이럴 수가……!"

염미인은 복마환제의 죽음에 망연한 눈치였다.

"대체 누가?"

복마환제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 듯 염미인은 눈을 빛내며 그의 시체를 살펴보았다.

"허어……구타를 당하다니……."

그녀의 붉은 입술 새로 새어나온 것은 왠지 허무롭다고 느껴질 수 있는 어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복마환제의 직접적인 사인은 끝없이 이어진 철패의 발길질에 가뜩이나 제 자리를 이탈했던 오장육부가 터지고, 염미인의 한상빙백강에 적중되어 한독에 뼈마디가 동결된 상태에서 충격이 가해져 뼈마디가 산산히 부서진 것이었다.
결국 장파열과 부서진 뼈가 몸 안의 장기들을 찢고 들어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한동안 망연한 표정으로 복마환제의 시신을 직시하다가 염미인은 정신을 차렸다.

"원정내단!'

염미인은 쪼그려 앉아 복마환제의 품을 뒤졌다.

"없다!"

그녀는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살폈다.

"놈이다.! 복마환제를 죽인 자! 놈은 복마환제의 품에서 원정내단을 가져갔다.!"

염미인은 밤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놈은 강도? 그렇다면……!"

팟!
무엇을 생각했는지 염미인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 * *

천락도박장(天樂賭博場)

낙양 제일의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는 도박장이다.
늦은 삼경이지만 천락도박장의 불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가히 불야성을 방불케하는 도박장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랜만이군……야수대형!"

회계대에 앉아 있던 도박장 총관 장방장은 어슬렁거리며 들어서는 철패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손이 근질근질해서……."

철패는 거침없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은 일층과는 달리 판돈이 큰 대판이 펼쳐진다.
보통 수중에 황금 만 냥 이상이 있어야 판에 낄 수 있는 그런 큰판이다. 황금 만 냥이면 다섯 식구가 일 년 동안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어이……나는 한 판 안 끼워 주나?"

노름에 정신을 팔고 있던 자들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대부분 아는 자들이라 그들은 철패에게 아는 체들을 했다.

"어, 야수대형이 오셨구먼. 이리 앉으셔."

"판은 백 냥이 기준이오. 돈이 없거든 개평이나 뜯어서 술이나 한잔 먹고 가든지……."

철패가 품 속에서 호기롭게 전낭을 꺼냈다.

"백냥 아니라 천 냥도 있지!"

그러자 머리를 박박 깎은 자가 자리를 좁혀 주었다.
자리에 앉은 철패는 주위를 쓸어 보았다. 모두 낯이 익은데 다만 두 사람만이 낯이 설었다. 물주를 잡고 있는 자와 그 뒤에 서서 구경하는 자였다.
물주를 잡고 있는 자는 얼굴에 분화구같은 구멍이 뻥뻥 뚫린 곰보 중의 왕곰보였다.

"핫핫핫…… 어젯밤 꿈에 돼지 대가리가 웃었겠다.!"

왕곰보가 판을 긁어모으고 있는지 그의 앞에는 은자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들은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다.
육면체의 주사위는 다른 주사위와 다른 점이 없었지만 일(一)과 사(四)에는 주홍색을 칠해져 있었다.
물주인 왕곰보는 납작하고 깊은 표주박에 주사위를 담아 허공에 냅다 흔든다.
따라라락……따라락……
표주박 속에서 주사위가 마구 돌아가며 부딪치는 소리가 명쾌하다.
쾅!
한 순간 물주인 왕곰보는 표주박을 탁자 위에 내려찍는다.
그러자 꾼들의 시선이 일제히 탁자 위의 표주박과 놀음판에 쏠렸다.
표주막이 떨어져 있는 탁자 위에는 대(大)과 소(小)란 글이 쓰여져 있었다. 꾼들은 그 글씨 중 한 곳에 은자를 건다.
주사위 놀음의 규칙은 간단하다.
대(大)인 4, 5, 6의 숫자 중 하나가 나오면 소에 건 사람들의 은자를 물주가 먹고, 반대로 대에 건 사람들에게 은자를 변상해 주면 된다.
소(小)인 1, 2, 3의 경우는 그 반대다
그 간단한 규칙에 남다른 재미를 붙인 것이 1과 4의 붉은 점이다.
홍1의 주사위 점수가 나오면 물주가 싹슬이를 한다.
홍4의 점수가 나오면 물주는 모조리 꾼들에게 변상한다.
홍1은 물중에게 일확천금을, 홍4는 물주에게 패가망신을 주는 점수다. 그 외 다른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왕곰보는 주사위를 덮고 있는 표주박 위에 손바닥을 얹어 놓고는 주절거렸다.

"자아……하늘의 재신이 내게 복 터지는 돈벼락ㅇ르 내려 주셨도다……와드드드……하늘에서 돈벼락이 쏟아진다! 으랏차!"

왕곰보가 표주박을 엎어 탁자 위에다 누르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자아, 찔러야 판이요, 먹어야 끗발이로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더 태울 사람은 태우쇼!"

왕곰보는 막 판에 끼여든 철패를 주시했다. 철패는 아직 판돈을 놓고 있지 않았다.
철패는 표주막을 잠시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대(大)에다가 은자를 걸었다.
이윽고 물주인 왕곰보가 소리쳤다.

"자아……개봉박두!"

파락!
표주막이 젖혀지며 나타난 주사위의 숫자는 홍1. 물주 싹쓸이 판에 나온 것이다.

"카하하하……이거 완전히 돌아 버리겠네, 은자가 산처럼 쌓이니까 주체할 수 없구나!"

왕곰보는 입이 째져라 웃으며 판돈을 모조리 긁어 갔다.
철패는 입맛이 썼다.
(제길' 첫판부터 곯아잖아! 허지만 아직 시작인데……첫끗발이 개끗발이 되는 것보다야 막판 뒤집기, 나중 끗발이 더 좋지…….)
철패는 아직 첫판이란 위안을 삼으며 계속 주사위 놀음에 몰두했다.
한데 시간이 흘러 한 시진이 넘도록 주사위 놀음에 매달렸지만 한 번도 따지 못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

정말이지 개 같은 경우였다.
은자는 눈이라도 달린 양 물주 쪽으로 몰려만 갔고, 철패의 전낭은 자꾸만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물주가 장난을 친다거나 작심하고 먹어 치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이상ㅎ나 것은 큰 판은 꼭 물주가 싹쓸이 해가고 작은 판은 태워 주는데 이상하게도 철패만 골라 가는지 그만이 계속 잃은 것이다.
부아가 치민 철패는 왕곰보를 노려보며 버럭 소리쳤다.

"어이! 물주, 우리 판을 바꾸자!"

"판을 바꾸자고?"

"그래! 이번 판만 놀고 다음 판부터는 패돌리기를 하자!"

"패돌리기? 그건 별로 재미없는데……."

패돌리기란 역시 주사위 놀음이지만 방법이 다르다.
일에서 육이란 숫자 중 하나만 빼놓고 꾼들은 은자를 태운다.
물주의 숫자는 결국 남아 있는 마지막 숫자가 된다.
주사위를 돌려 숫자가 나왔을 때 숫자를 맞춘 사람은 두 배로 변상을 받고 나머지를 물주가 싹쓸이 한다.
물주의 숫자가 나와도 싹쓸이다.
어찌 보면 물주가 상당히 유리할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니다. 문제는 역시 붉은 1과 4의 점이다.
홍1이 나오면 홍1에 은자를 태운 사람에게 열 배의 배상을 몰주가 해야하고, 홍4가 나오면 4에 돈을 태운 사람 것만 먹고 나머지는 모두 변상해야 한다.
그것이 패돌리기다.
왕곰보는 주위의 꾼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꾼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 한 사람 나서서 철패의 의견을 반대하는 자 아무도 없었다.
허긴 타지에서 온 왕곰보가 어찌 야수 철패의 무서움을 알랴?
(빌어먹을 너무 쎄게 놀았나?)
왕곰보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눈 앞에 산처럼 수북이 쌓인 은자를 힐끔 보았다.
(판돈을 반 이상 긁긴 했지만 아직 더 긁어야 한다.……저 곰같이 생긴 놈이 이상한 낌새를 차린것 같으니 일단 한 번 튕기고 패돌리기로 들어가자. 흐흐흐……패돌리기도 내 전문이란 것을 모르는군…….)
왕곰보는 철패에게 실실 웃었다.

"정말 패돌리기로 바꿀 거요?"

철패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 난 한 번 뱉은 말ㅇ느 절대 줏어담지 않아!"

그때다. 물주인 왕곰보 뒤에서 구경을 하며 가끔씩 은자를 찔러 넣던 말상의 중년인, 역시 타지 사람인 그가 철패에게 불쑥 말했다.

"여태껏 잘 놀았는데……댁은 끝판에 끼어 가지고 왠 말이 많소? 하기 싫으면 다른 판에 끼시오."

철패의 눈이 더욱 째졌다.

"뭣이? 나보고 다른 판에 가라고? 야! 너도 두 눈이 있으니 똑바로 보라고, 아무리 운이 좋다지만 돈을 곰보딱지가 몽땅 싹쓸이하고 있잖아!

그 말에 왕곰보가 눈을 부라렸다.

"아니, 그럼 내가 속였단 말야?"

왕곰보는 철패를 째려보면서 으름장을 놓앗지만 철패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철패는 이곳이 제박이고 또 낯선 두 사내들의 노는 꼴이 아니꼽기도 하여 냉소를 쳤다.

"흥, 속였는지 내가 어찌 알아? 재미없으니 패돌리기로 바꾸자는데 뭐 잘못 됐어?"

"이봐, 아무 데나 불쑥 끼어들어 혓바닥 잘못 놀리다가 후회하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가라고……."

왕곰보가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철패는 못 들은 체하고 탁자 위에 주사위를 아예 커다라 손으로 움켜잡았다.

"어때? 패돌리기 할 테야 ……말 테야……."

그가 좌중을 둘러보고 물으니 모두 이곳 토박이들인 데다가 철패가 두려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좋겠다. 패돌리기로 하자."

"물주가 많이 땄으니 싫다고는 못할걸……"

왕곰보가 자기 앞의 은자더미를 흘깃 보며 말했다.

"지금 내가 잃은 은자가 스무 냥이 넘는데 누구보고 땄대?"

철패는 재차 물었다.

"할 거야……말 거야?"

왕곰보는 힘으로 윽박을 질러도 안되자 결국 투덜거리며 응낙을 했다.

"까짓거 해보지……주사위에 눈코가 따로 있나……"

이윽고 탁자의 판이 바뀌었다. 꾼들이 일제히 판의 숫자에 돈을 태워 놓았다. 남은 숫자는3. 물주의 숫자는 3인 것이다.

"자아……그럼 들어간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절……씨구씨구 들어간다.……."

따라락……따락!
주사위가 탁자에 떨어지고 일순 왕곰보의 입에서 파안대소가 나왔다.

"캬하하하! 역시 난 오늘 운이 텄다니까?"

좌르륵……
왕곰보는 두 팔을 벌려 탁자 위의 은자를 모조리 자기 쪽으로 끌어 갔다.
주사위의 숫자는 3! 결국 왕곰보가 먹은 것이다.
철패의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지미……운 더럽게 없네! 시팔, 어디 언제까지 네놈 운이 좋은지 보자!"

철패는 전낭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허나 잡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으잉?"

뭔가 이상하게 일이 꼬인다고 느낀 철패는 전낭을 거꾸로 들어 흔들어 보았다.
푸시시……
떨어지는 것은 먼지 뿐이었다.
찰나 가뜩이나 철패의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던 왕곰보는 이때다 싶어 입을 열었다.

"어이, 은자가 다 떨어졌는가 본데 그럼 일어나지……다른 사람이 끼어야할 게 아냐?"

그말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 되었다.

"뭐라고! 누가 돈이 없데!"

철패는 가슴 섶에 손을 불쑥 집어넣더니 신경질적으로 무엇인가를 탁자 위에 탁! 소리나게 꺼내 놓았다.

"이거로 하겠어!"

그가 꺼낸 것은 복마환제의 시체에서 훔친 옥불상이었다.
헌데 잔뜩 기대했던 꾼들과 왕곰보의 입이 한꺼번에 찢어지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게 아닌가?

"와핫핫핫! 이봐, 여긴 돈 놓고 돈 먹는 곳이라고……어디서 그런 고물딱지를 가지고 와서 땡깡이야!"

"하하하……철패, 이곳 규칙을 잘 아는 자네가 그러면 안돼지……."

꾼들과 왕곰보의 야유에 철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떠그랄!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기실 이곳 천락도박장은 은자외에는 그 어떤 것도 판돈으로 쓸 수 없다. 집문서니 보석 따위는 통용되지 않고 오직 은자만이 통용되는 곳이다.
심지어 전표(지금의 수표와 어음과 같은 것)도 통용되지 않는 곳이니 옥불상이 아무리 값나 보여도 웃음거리밖에 안됀 것이다.
그런다고 물러날 철패는 아니다.

"이런……죽을래!"

철패는 눈알을 부라리며 꾼들을 훑어보았다.

"이크!"

(에구구……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꾼들은 찔금한 눈치를 보이며 입을 막았다. 가뜩이나 돈 잃고 열받아 있는 철패의 비윗장을 잘못 건드렸다가 의원 신세지는 것보다 입을 다무는 것이 더 낫다.
하지만 철패의 무서움을 모르는 왕곰보는 달랐다.

"뭐야? 힘을 쓰자는 거야?"

왕곰보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들어 구경꾼들을 둘러보았다.

"낙양도 한 물 갔군……돈 잃고 속 좋은 놈 없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겁을 주면 어떻게 해……"

비웃음을 던진 왕곰보는 선심이라도 쓴다는 양 자기 앞에 수북이 쌓인 은자더미에서 한 웅큼 은자를 쥐어 철패의 탁자 앞으로 휙 던졌다.
짤랑……짜라랑……
은자들이 탁자에 구르고, 탁자 밑으로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냈다.

"개평이다. 가지고 꺼져! 이만큼 생각해 주는 거야, 노름판에서는 니돈 네돈이 없고 부자간에도 안면 몰수란 것도 잊지 말라고……."

왕곰보는 승자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철패를 한껏 조롱했다.

"이런……육시랄 놈!"

철패의 인내는 한계에 달했다.
휙-
시커먼 주먹이 나른다 싶은 순간,
퍽!

"아구구!"

왕곰보는 승자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철패를 한껏 조롱했다.

"이런……육시랄 놈!"

철패의 인내는 한계에 달했다.
휙-
시커먼 주먹이 나른다 싶은 순간,
퍽!
시커먼 주먹이 나른다 싶은 순간,
퍽!

"아구구!"

왕곰보는 턱에 일권을 맞고는 의자에 앉은 채 뒤로 벌렁 넘어 갔다.

"개새끼, 타지에서 왔으면 알아서 주머니를 풀고 갈 것이지 감히 낙양 돈을 싹쓸이해 가! 너 오늘 잘 만났다!"

한데 왕곰보를 고꾸라뜨려 의기양양해 있는 철패 앞으로 갑자기 하얀 그림자가 번쩍이는 게 아닌가?
하얀 그림자는 조금 전 왕곰보와 철패가 패돌리기를 할까 말까 서로 으르렁거릴 때 끼여들었던 바로 그 말상의 타지 사람이었다.
왕곰보가 넘어가자 말상의 타지인이 번개처럼 철패에게 일장을 갈긴 것이다.

"어쭈구리……한 패였잖……!"

철패는 눈을 부라리다가 어깨에 일장르 맞았다.
펑!

"크윽!"

철패의 상체가 휘청이는 순간 말상의 타지인이 그의 옆으로 득달같이 달려오더니 어느새 꺼냈는지 수중의 비수로 철패의 심장 어름을 꾹 눌렀다.

"입 닥쳐! 한 번 더 떠들면 그땐 심장에 바람구멍을 뚫어 줄테다!"

"이런……지미럴……!"

방심하고 있던 철패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당했다.

"저런 놈 봤나!"

"어어……"

좌중의 사람들이 우우 일어섰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말상의 타지인이 막 일어서며 턱을 만지고 있는 왕곰보에게 말했다.

"천가(川家)야, 돈 모아라!"

이로써 왕곰보와 말상의 타지인이 한 패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모두들 어이없어 할 때 왕곰보는 은자들을 빗질하듯 허리춤에서 꺼낸 커다란 푸댓자루에 쓸어 담았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온것을 보아 사기 도박사가 분명했다.
그러나 왕곰보의 얼굴엔 불안이 떠나지 않았다.

"육가(陸家)야, 여긴 낙양이야, 무사할까?"

아무래도 철패가 하는 꼴이 보통내기가 아니란 것을 노름판에서 굴러먹던 눈치밥으로 맞춘 왕곰보는 힐끔힐끔 철패를 훔쳐보았다.
사실 그의 불안은 이곳이 낙양이란 것보다는 철패의 엄청나게 큰 덩치와 노름을 하는 꾼들이 그를 두려워하던 모습들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더욱이 같은 편인 말상의 타지인은 손에 든 비수를 철패의 철판같은 가슴에 대고 있지만 그 모습이 영 아니올시다다.
적어도 위협을 하려면 목젖에 척하니 검 끝을 들이밀어야 바씩 어는 건데 워낙 철패가 크다 보니 목에다가 칼 끝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가슴에 댄 것이다.
만약 철패가 상처날 것을 각오하고 덤벼든다면……
부르르……
왕곰보는 갑자기 오한이 든 사람 마냥 떨자 은자를 푸댓자루 안에 집어넣는 작업이 더뎌졌다.
그때 말상의 타지인이 소리쳤다.

"우리가 언제 이것저것 따졌냐? 노름 돈에 임자 따로 있다던? 아무나 먹기는 매일반이다."

"알았어……!"

반은 흘리고 반은 담고 허둥거리며 은자를 푸댓자루에 쑤셔넣은 왕곰보는 후다닥 계단 쪽으로 달려갔다.

"어서 와!"

이판사판인 듯 왕곰보도 수중에 비수를 꺼내 제법 살기를 뿜어내며 계단을 지켰다.

"이 새끼 먼저 처치하고!"

파팍!
말상의 타지인이 벼락같이 철패의 어깨 견정혈과 옆구리의 기해혈을 찍었다.

"우욱!"

철패는 일시에 몸이 기운이 쫘악 빠지는 것을 느끼며 털썩 주저앉았다.

"다가오는 새끼는 모조리 긁어 버릴 꺼야!"

휘리릭! 휙-
말상의 타지인은 살벌하게 빛나는 비수를 휘저으며 계단으로 가더니 왕곰보와 함께 번개처럼 일층으로 내려갔다.

"야! 똥빼! 이거 풀어!"

철패가 꾼들 가운데 한 사내에게 소리쳤다.
꾼들 속에 묻혀 있던 이십대 후반에 얼굴이 검은 사내는 동배란 이름을 지닌 자로 낙양 뒷골목에서 주먹질 하나로 밥을 먹고사는 자였다.
(개새끼! 또 똥이래!)
동배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철패와 안면이 깊은 그를 부를 때 철패는 항상 똥빼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그는 철패를 두려워했다.
동배는 철패의 소리에 후다닥 달려왔다.

"야수대형……괜찮아?"

"네 눈깔에는 내가 괜찮아 보이냐? 샤까!"

(귀신은 뭐하나 몰라……)
동배는 속으로 열불이 터졌지만 찍 소리도 못하고 철패의 견정혈과 기해혈을 풀어 주었다.
찰나 저 엄청난 거구의 어디서 저런 빠른 신법이 나올까 싶을 정도의 쾌속한 몸놀림으로 철패가 용수철처럼 일어나더니 이미 그는 일층 계단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쒸아아앙~
철패는 밖으로 튀어 나갔다.
밖은 어두웠다. 어디에도 왕곰보와 말상의 타지인은 보이지도 않았다.

"쌍! 토꼈잖아!"
철패는 맥이 탁 풀렸다.
이때 우르르 꾼둘이 밖으로 달려 나왔다.
철패는 노기가 머리 끝까지 뻗쳐 연신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씹어댔다.

"누가 그 새끼들을 여기로 끌어들였어?"

동배가 우물우물 말했다.

"메기 아줌마네 있지?"

"메기! 낙수강변에서 계집 열댓 명 데리고 계집질로 먹고사는 포주 메기 말야!"

"응? 우리가 메기네 집에 가서 한 잔 걸치고 몸도 풀겸 해서 오랜만에 한 판 땡기자고 하자 마침 메기네에서 몸을 풀고 나오는 그놈들이 자기들도 끼워 달라더군 ……."

"그래서?"

"메기에게 물어 보니 둔푼 깨나 있는 봉이라기에 욹어 먹으려고 데려 왔는데……."

"병신 새끼! 그러고 보니 네놈이 놈들을 불러 들였구나!"

퍽!

"큭!"

철패는 발길질에 동배는 배를 감싸안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철패는 씩씩거렸다.

"비잉신……봉이라고? 봉이 아니라 탓자야 새캬! 탓자를 불러 들였으니 몽땅 빨릴 수밖에……."

"으으……누가 알았나……나 탓자요 하고 이마빼기에 쓰고 다니는 새끼가 어디 있어!"

한 대 맞아 열불이 터진 동배가 씩씩거리며 대들 기세자 철패가 어느새 그의 옆구리를 한 번 더 내찼다.
퍽!

"컥!"

동배가 땅바닦에 개구리 마냥 사지를 벌리고 쭉 뻗어 버렸다.
철패는 동배의 등에 발바닥을 지그시 올려놓고는 으르렁거렸다.

"죽으려고 환장햤나……가뜩이나 열받아 있는데 엉겨?"

그리다 말고 철패가 동쪽을 노려보았다.

"메기 이 여편네가 붙였다 이거지……."

그의 살기 어린 음성에 구경꾼들은 혀를 찼다.

'쯧쯧……메기는 죽었군……."

안 봐도 눈에 선하다. 포주 메기가 어떻게 당할지가……
철패는 메기에게 가 화를 풀 생각인 듯 씩씩거리며 동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그가 채 두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잠깐 야수대형!"

"뭐야!"

철패가 고개를 꺾어 돌아보니 천락도박장의 총관인 장방장이 헐레벌떡 뛰어 나왔다.

"이거 받으라고……."

장방장은 꽤 묵직해 보이는 전낭과 왕곰보를 뛰쫓다보니 미처 챙기지 못한 옥불상을 철패에게 건네며 말했다.

"미안해, 사람을 잘 골라 가면서 받아야 했는데……많이 잃었다며……이건 우리 성의니까 받으라고……."

장방장이 내민 전낭과 옥불상을 탐욕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철패가 덥석 그것들을 쥐었다.

"잃은 것이 반의 반도 안되지만……성의를 봐서 받지."

그의 말에 장방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적어?"

"꼭 적다기 보다는……."

철패가 장방장의 허리춤을 지긋이 보았다. 그의 눈에 비쳐진 것은 장방장의 전대였다.
(더러운 놈!)
장방장은 속으로 욕을 했지만 별 수 없었다. 타지인을, 그것도 도박장에서 원정 나온 타지방의 탓자를 골라내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 난동을 부리면 그 날로 장사고 뭐고 없다.
장방장은 배알 없는 사람 마냥 실실 웃으며 전대를 끄러 주었다.

"이거면 ……."

"됐어! 조금 모자라지만 이걸로 오늘 일은 잊지……하지만 그 두 새끼만은 용서못해!"

찬바람을 풀풀 일으키며 전대마저 챙긴 철패는 동쪽 대로로 달려갔다.
그 광경에 장방장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개새끼……아예 그 두 놈에게 맞아 죽어라."

그 소리는 장방장 뿐만 아니라 구경꾼 모두가 하고 싶은 소리였다.


PS.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하구여
댓글 남기신 분들중에 와룡강 소설임을 의심하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여
저도 책을 읽어보면서 와룡강님 소설이랑 다른 점을 많이 느꼈지만
책을 읽으면서 쓰는것이기 때문에 와룡강님 소설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여 님들이 정 못 믿으시겠다면 이 책을 중단하고
와룡강님의 해룡왕, 적붕왕중 한편을 쓸까 생각 중입니다.
두편중 한편을 골라 주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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