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잔혹동화11 엄지동이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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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455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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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엄지둥이의 사랑

옛날, 어느 마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금슬 좋은 부부였으나,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가 생기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할머니는 뜨개질을 하고, 할아버지는 난로의 불을 뒤적뒤적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생각난 듯이 할머니가 중얼거렸습니다.
"이런 때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식이 없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야. 다른 집은 저렇게 잔치집 같이 즐거운데 우리 집은 밤낮 절간처럼 조용하니, 어디 사람 사는 집 같아야 말이지."
"정말 그래요. 요 엄지 손가락만한 아이라도 좋겠어. 눈앞에서 꼬물거리는 애가 있다면 둘이서 얼마나 귀여워하겠소."
할아버지도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되어서 할머니의 몸이 달라지더니 일곱달 만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소원대로 엄지 손가락만한 사내아이였습니다. 할머니는 갓난아이가 엄지 손가락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 못마땅해서 할아버지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당신이 이상한 소리를 했기 때문이예요. 손가락만한건 당신 거시기로 충분하잖아요."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어 사내아이에게 '엄지둥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키웠습니다.
엄지둥이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크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불평을 늘어놓고, 할아버지는 그 불평을 듣고 있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마침내 엄지둥이를 내쫓기로 하였습니다. 엄지둥이를 보면 할머니는 일부러 방귀를 뀌고, 할아버지는 재채기를 할 적마다 콧물을 튕겼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손끝만큼도 받지 못하는 엄지둥이는 하루라도 빨리 집을 뛰쳐나가 자기를 귀여워해 주는 집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바늘 한 개를 칼 대신으로 차고 기사다운 차림을 갖춘 다음 밥그릇을 배로, 젖가락을 노로 삼아서 강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엄지둥이는 고생 끝에 임금님이 사는 도시에 도착하였습니다.
개와 고양이에게 쫓기고, 아이들에게 밟힐 뻔하면서 큰 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크고 화려한 집이 있었습니다. 엄지둥이는 현관에 서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문이 열리고 문지기인 듯한 사내가 나왔습니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신발 위에 엄지 손가락만한 사람이 서서 어엿한 젊은이의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외치고는 이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자꾸만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지기는 엄지둥이를 손끝으로 들어 올려 임금님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임금님은 엄지둥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돋보기로 찬찬히 관찰하였습니다. 허리에 실을 둘러 감아 바늘칼을 찬 기사복 차림의 젊은이가 엎드려 있었습니다. 작지만 수염까지 기르고 있는 것이 우스워서 임금님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엄지둥이라고 했나. 몸이 작아서 애송이인가 했더니 훌륭한 어른이구나."
임금님이 말하였습니다.
"황송하옵니다. 아무쪼록 저를 신하로 삼아 주십시오. 반드시 한 몫 해 보이겠습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뭔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춤을 추어 보아라."
엄지둥이는 임금님의 손바닥 위에서 익살스럽게 춤을 추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박수를 치고 환호하자 엄지둥이는 품속에서 버들피리를 꺼내 멋지게 불면서 계속 춤을 추었습니다. 임금님은 엄지둥이가 매우 마음에 들어서 공주의 놀이 상댈 선물했습니다.
공주님은 나라에서도 소문난 미인이었지만 무슨 까닭인지 남자를 싫어해서 나이가 되었는데도 혼담에는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구애하는 귀공자에게는 가시돋힌 시를 지어 물리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공주님은 책 읽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해서 읽을거리가 없어지면 자신이 직접 붓을 들어 이야기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공주님은 엄지둥이를 진기한 동물처럼 생각했는지 예쁜 종이로 조그만 집을 만들어 조개껍질에 솜을 깔아서 엄지둥이의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식사 때에는 엄지둥이를 손바닥에 올려 놓고 새에게 모이를 주듯이 밥알을 하나씩 하나씩 젖가락으로 집어 주고는, 엄지둥이가 밥알을 양손으로 들고 먹는 모습을 싫증도 내지않고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공주님은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입 밖에 내던 것을 이제는 엄지둥이를 상대로 말을 하게 되고, 엄지둥이가 재치있는 대답을 했기 때문에 왕과 왕비에게 조차 말하지 않은 은밀한 생각까지도 아무렇제 않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예컨데 공주님은 나무랄데 없는 아름다운 미인으로 스스로도 그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반면, 자기 몸의 가장 중요한 곳에 부끄러운 결점이 있지는 않는가 자주 걱정하기도 하고, 세상의 남자들을 우둔하고 패기없는 따분한 동물이라고 헐뜯는가 하면, 귀신같이 아주 무서운 것에게 당해서 몸이 찢겨 보았으면 좋겠다는 등 터무니 없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엄지둥이에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게 하면서 한참 책을 읽다가는 그런 망상이 솟구치면 공주님은 엄지둥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눈 높이까지 쳐들면서 되묻곤 했습니다.
"엄지둥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그런 때 엄지둥이는 눈 앞에 있는 두 개의 보름달 같은 눈동자에 빨려들 것 같은 기분좋은 떨림을 느꼈습니다. 엄지둥이는 공주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입 밖에도 내지 않고 공주님 앞에서 익살스런 얘기를 하거나 재롱을 떨면서 기분을 맞추었습니다.
그럭저럭 지내는 동안에 엄지둥이는 공주님과 한 침대에서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은혜로 엄지둥이에게 몹시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무심코 공주님의 겨드랑이에 들어가 잠들었을 때, 잠버릇이 그다지 좋지 않은 공주님이 몸을 뒤척이는 통에 깔려 죽을 뻔한 일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지둥이는 공주님이 잠들 때까지는 귓가에 있으면서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고, 허락을 받아 젖가슴 사이에 들어가 놀다가 공주님이 잠든 후에는 자기의 조개껍질 침대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엄지둥이는 공주님의 젖가슴 언덕에 올라가서 언덕위에 있는 조그만 탑을 가지고 장난을 쳤습니다. 공주님은 그것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던지 매일 똑같은 장난을 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게다가 공주님의 신체를 탐험하며 무슨 장난을 쳐도 좋다는 허락까지 얻었습니다. 엄지둥이가 호기심에 이끌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다보면 이따금 공주님의 입에서 안타까운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대지진 같은 떨림이 몸을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공주님은 엄주둥이의 장난을 막기는커녕 '멈추지 말고 계속해 줘.'라고 말하며 다음날 밤에는 더욱 노골적인 명령으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공주님을 잠재우기까지의 일이 큰일이었습니다. 엄지둥이는 엄지 손가락만하기 때문에 시키는대로 공주님의 드넓은 몸 위를 돌아다니며 희롱거리기란 이만자만한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남모르는 사랑을 품고 있는 엄지둥이는 내일도 또 내일도 정성을 다해 밤시중을 들며, 아름답기로 소문난 공주님이 여러 가지 맛있는 요리를 혀에서 혀로 옮겨 먹여 주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고 지냈습니다. 혀로 옮겨 먹여준다는 것은 공주님이 잘게 씹은 음식을 혀 끝에 얹어 내밀면 그 부드런운 고기 식탁에 엄지둥이가 달라붙어 먹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날 공주님은 엄지둥이를 허리띠 사이에 넣고 시종들을 데리고 교회로 예배를 보러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산길을 걷고 있는데 불쑥 두 마리의 도깨비가 나타나 공주님 일행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빨간 도깨비와 파란 도깨비가 혀바닥을 낼름거리며 달려들자 시종들은 기겁을 하고 달아나 버렸고, 공주님은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엄지둥이는 정신없이 공주님의 옷속으로 파고 들어가, 익히 알고 있던 공주님의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몸을 숨겼습니다. 밖에서는 도깨비들이 이를 갈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쩔 셈인지 공주님을 도깨비 소굴로 업어 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이대로 공주님도 나도 도깨비에게 먹히는 것일까? 먹힌다면 나야 도깨비 뱃속에서 한바탕 난리를 쳐보기라도 하겠지만 그 전에 공주님을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엄지둥이가 몸을 숨기고 있는 곳으로 도깨비의 몸뚱이 같은 빨간 고기가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엄지둥이는 죽을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바늘로 마구 찔렀습니다. 그러자 왁 하고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도깨비의 물건이 공주님의 은밀한 곳에서 빠져 나갔습니다. 이어서 또 다른 녀석의 물건이 나타난 것을 엄지둥이는 힘껏 찔렀습니다.
"가시가 돋혀 있다."
"귀신이야."
도깨비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허둥지둥 도망쳤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엄지둥이가 쓰러져 있는 공주님의 귓가에 말하자, 공주님은 차츰 정신을 차리며 황홀한 기분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곁에는 도깨비들이 떨어뜨리고 간 요술방망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요술방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걸로 제 키를 늘려주세요."
엄지둥이가 부탁하자 공주님은 방망이를 들고 엄지둥이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습니다.
"키 나와라 뚝딱. 키 나와라 뚝딱."
엄지둥이는 쑥쑥 키가 커져서 공주님보다도 머리 하나 정도가 큰 훌륭한 체격의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성으로 돌아와 자초지정을 얘기하자, 먼저 달아났던 시종들의 말을 듣고 비타에 빠져있던 임금님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곧 엄지둥이를 공주님의 신랑감으로 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일인지 공주님은 우울해하고 즐겁지 못한 모습이 두드러졌고, 엄지둥이도 이상하게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괴이적게 생각한 임금님이 그 까닭을 묻자 공주님은 엄지둥이하고는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왜?"
"그 사람은 엄지둥이예요."
"지금은 저렇게 체격이 좋은 젊은이가 아니냐?"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엄지둥이 그대로예요."
그런 일이 있은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부부 싸움을 하다 엄지둥이라고 놀림을 받은 엄지둥이는 화가 나서 요술방망이르 꺼내서 공주님의 머리를 두드렸습니다.
"엄지둥이가 되어라 뚝딱."
공주님도 지지않고 요술방망이를 빼앗아 다시 엄지둥이를 두들겼습니다. 두사람이 서로 욕을 하면서 요술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사이에 새끼 손가락 보다도 작게, 벌레 보다도 작게, 먼지보다도 작게,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도깨비의 방망이만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벌레 보다 작아진 두 사람이 그 후 오손도손 사이좋게 살았는지 어쨌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 교훈 - "Small"은 "Beautiful"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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