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내가 남자와 자게 된다면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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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208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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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리를 절면서 나에게 왔다. 너의 걸음이 후두둑, 떨어질 때마다 나의 시선도 흔들렸다. 우리, 열일곱살 적의 이야기다. 그날 한번 뿐, 다시는 너의 저는 다리가 나의 눈에 띄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만큼의 너는, 너무도 건강하고 신선한, 그저 열일곱살 동갑내기일 뿐이었다.

- 남자와 자게 된다면 당연히 너다.
나는 육년전의 일기장을 덮어버린다. 풋, 웃음이 난다. 일기장 가득, 너의 이야기 뿐이다. 그리고 저 한줄이, 아주 단단한 결심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남자와 자게 된다면, 당연히 너란다. 열일곱살의 나의 다짐은, 아, 그때까지는 순수했던 것이다. 나, 순결했던 것이다.

강릉으로 향하는 중이다.
고속버스는 흔들거리며 너를 따라 간다. 너는 아직, 강릉에 있을까?

조그만 공장에서 우리는 만났다. 나, 그때 가난했고 어렸다. 부모님에게서 철저히 버려져 갈 곳이 없었다. 선택은 두 개, 공장과 다방. 나는 공장을 선택했고, 너를 만났다. 너는, 나의 무거운 심을 대신 들어주기도 하고, 나의 다친 허리를 대신해 일해주기도 했다. 우리, 수줍음 많은 열일곱. 멀리 덜어져 움직이는 것만 봐도 즐거웠다.

니 애기를 가졌어.
너의 여자친구는 나보다 두살이 많았다. 너는 내가 공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녀와 사귀고 있었고, 그리고,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너의 여자친구는 나의 양언니였다. 그 시절, 친한 언니동생을 양언니라 불렀다, 나를 양동생으로 찍은 너의 여자가 말했다. 너의 아기를 가졌노라고, 말이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너, 아주 착하고 여린 아이인데. 순진하고 금세 얼굴이 붉어지는 아이였는데.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안 것은 너보다 너의 여자가 빨랐다. 나는 너의 여자에게서 면도칼을 맞았다. 입속에 있던 면도칼을 퉤, 뱉어내던, 그 차가운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너는 공장을 나갔다.
너를 찾아오라고 나는 두어번 더 두들겨맞았지만,
너를 찾아올 수는 없었다.

강릉, 네가 나가고 나서 나 한동안 제멋대로 살았다. 여자란 가만히만 있어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존재더구나. 나, 너의 형과 사귀었다. 너의 형과 잠도 잤다. 강릉, 너의 형은 네가 강릉이 고향이라고 했다. 나, 지금 강릉으로 가는 버스 안이다.

박, 네 집 아닌가요.
너의 어머니구나. 너를 닮았다. 지치고 늙었지만 너를 닮았다. 나, 잠간 머리가 띵해 마루에 주저앉고 말았다. 너희 어머니, 아무것도 묻지않고 작은 방을 내어준다.

나 잠이 들었나. 누군가 짤강짤강,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 익숙한 그림자. 절름거리며 다가오는 낯익은 그림자 하나. 너인가. 나를 안는다. 하나하나 단추가 풀려나간다. 맥이 빠져서 안을 수도 없는 그림자.

너인가. 속옷이 벗겨져 나가고 나, 알몸이 되었다. 부그럽지 않다. 이불도 덮어주지 않는너, 나의 알몸을 내리누른다. 차가운 너의 알몸, 나의 알몸. 아프다. 잠시 정신이 번쩍 들만큼 아팠다. 그러나 너는 멈추지 않는다. 뜨겁다. 뜨거워서 델 것만 같다. 내가 그토록 상상하고 그리워했던 너의 몸, 너의 혀, 너의 성기, 너의 가슴, 너의...

아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던져진 옷을 주어입고 밖으로 나왔다. 서울행 버스에 오른다. 눈물이 난다. 다시는 널 볼수 없다는 걸 나는 알아버렸다.

남자와 잔다면 그애다, 라고 썼던, 일기장을 잘게 짖어 차창 밖으로 날린다. 나, 너와 잔걸까. 나, 아직 잘 모르겠다. 아픈 몸, 어딘가에 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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