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경천행 제19장 風雲의 天魔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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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204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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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장 風雲의 天魔閣

팟! 자천룡은 천황검을 치켜 세웠다.
"너에게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한 가지 기회를 주겠
다."
"......."
"나의 이 천황검 아래서 십초를 견디어내고, 내 손 안에 있는 천
황검을 빼앗아 가라. 만약 너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오늘은 너의
목숨을 살려주마."
백표랑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이미 자천룡이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가를 잘 안다.
그는 이미 인간이 아니다.
신의 영역에 들어선 초마인이다.
"네가 만약 오늘 이곳에서 살아 나간다면 본좌는 정확히 삼 일
후부터 너를 추격하게 될 것이다."
"본인에게 그런 환대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이오?"
자천룡은 담담하게 말했다.

― 네가 다름아닌 고신만해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신검대인 고신만해의 아들. 자천룡은 그렇게 말했다.
자천룡은 흐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떠냐? 죽음을 택할 테냐?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겠느
냐?"
백표랑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지었다.
"푸후훗! 자라면서부터 목숨을 마음대로 포기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소. 어리석은 짓이 될지 모르지만 당신의 능력을 시험하겠소."
자천룡은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
"역시 고신만해의 아들이다. 그러나 명심해라. 본좌는 일단 대전
에 임하면 추호도 상대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백표랑은 서서히 검을 뽑아들었다.
쩡!
맑은 검명과 함께 검신을 드러내는 원앙쌍검 중 하나.
"푸후훗! 본인도 남에게 동정을 받는 것을 가장 치욕으로 생각하
오."
"허허헛! 역시 마음에 드는군."
슥! 자천룡이 천황검을 세워 중천세를 가다듬었다.
대결! 공전절후의 대결이 벌어질 순간이다.
장내에 모인 구마왕과 삼천제 중 두 사람.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삼 장씩을 물러섰다.
두 사람이 대치 상태로 들어가자 대전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 같은 살기와 긴장감으로 몰입되었다.

* * *

"조심하시오."
담담한 백표랑의 음성과 함께,
백표랑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치솟아 올랐으며, 그 순간
에 이미 무려 사십사검(四十四劍)을 환상처럼 펼쳐냈다. 구마왕을
비롯한 삼천제의 안색이 변했다.

― 저것은 검마 호동파의 파천일식이다.
― 그렇다면 놈이 호동파의 진전을 이어받았다는 말인가?

촤라라랏!
대기를 갈라내는 무서운 예기!
그것은 폭산하듯 자천룡을 덮쳐갔다.
그러나, 자천룡은 움직이지 않았다. 중천세로 향한 검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서려있을 뿐이다.
스윽! 지극히 간단한 움직임!
그러나,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자천룡의 그 지극히 간단한 동작에 백표랑의 살벌한 검세는 너무
무력하게 와해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쿠웅!
자천룡은 자세를 바꾸었다.
중단세의 자세에서 하검식(下劍式)의 자세로.
그러자 보라.
오오! 백년호심처럼 가라앉은 자천룡의 공(功)의 기도를.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대자연이었다. 그는 너무 강해져 버린 인간이었다.
대전에 운집해있던 천마혈성의 수뇌들은 한결같이 자천룡을 향해
경의의 시선을 보냈다.
백표랑은 놀라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풍차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현란하게 검을 움직
였다.
그와 함께, 백표랑의 손에서는 실로 상상할 수 없는 검학이 펼쳐
졌다.
콰우우우!
최초로 대기를 가른 검법은 무당의 최고검학이라는 태극혜검이요,
장중하고 웅혼한 검법은 소림의 달마삼검이다.
환상과 같은 쾌를 동반한 검법은 남궁검문(南宮劍門)이 자랑으로
삼았던 대승검도(大乘劍道)요, 뿐이랴.
지옥수사 염우의 지옥사검이 연달아 펼쳐지고,
대전을 온통 메운 자욱한 검광은 호동파의 파천일식이 재현되는
모습이다.
콰우우우!
요동치는 기류!
폭산되어가는 검광, 그 모습은 장엄하다 못해 끔찍하다.
사람들은, 번쩍이는 검광에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대전이 무너질 듯 요란하게 진동을 하는 사이로,
"대단하군."
나직한 칭찬과 함께 한 걸음을 크게 물러서는 자천룡의 모습이
보였다.
쿵!
자천룡이 물러선 대리석의 바닥은 거의 한 자 가량의 족적이 새
겨졌다.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저럴 수가?'
'어찌 한 인간의 몸에서 구대문파의 비전 검학들이 모조리.......'
'무서운 놈이다.'
구마왕은 물론이요, 연사미와 마곡천의 얼굴에 감탄의 기색이 역
력했다.
백표랑의 나이 기껏해야 이십.
저 나이에 자천룡과 당당하게 자웅을 겨룰 수 있다니.
자천룡은 잠시 침유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백표랑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앞가슴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 가슴은 백표랑의 공세에 의해 너덜거렸다.
"본좌의 옷자락을 베고 본좌를 물러서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은 과
거 고신만해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의 아들인 너에게 또다시
이런 수모를 당하는군."
그러나, 기분나쁜 음성은 아니다.
스윽! 자천룡은 검을 수평으로 세웠다.
백표랑은 지체하지 않고 재차 자천룡을 향해 검을 쓸어갔다.
"뇌화혼(雷火魂)!"
뇌화혼! 이는 바로 고신세가의 가전무학인 뇌정검도의 최후초식
이 아닌가?
번쩍! 살아 움직이는 혜성처럼, 허공으로 섬랄하게 떠오른 일섬검
광!
수만 개의 벼락이 한꺼번에 작렬하는가?
백표랑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벼락이 작렬하는 것 같은 검광이
대전을 휘감았다.
동시에, 수평으로 세워진 자천룡의 검이 움직였다.
"제오초(第五招)."
쿠르르릉!
저녁노을처럼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검광!
그 검세는 일시에 백표랑이 전력으로 쏟아낸 뇌화혼과 정면으로
충돌해갔다.
콰르르릉! 두 사람의 검기가 허공에서 요란하게 뒤엉켰다.
"으음!"
환상처럼 갈라지는 두 사람.
자천룡은 뒤로 한 걸음을 크게 물러섰으며, 백표랑은 자천룡의 엄
청난 검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일 장 가량이나 물러섰다.
그러나 보라, 일 장이나 물러난 백표랑의 숨결은 지극히 고르고
평온해 보였다.
두 사람의 대결은 삼초식이 더 이어졌다.
우세를 보인쪽은 당연히 자천룡이다.
그러나, 백표랑의 움직임 또한 놀라웠다.
잠영미종이라는 천고의 신법을 펼쳐 자천룡의 검세를 모조리 피
해내고, 날카로운 반격을 퍼부었다.
문득, 자천룡의 검이 변하기 시작했다.
검신의 주위로 은은한 혈광(血光)이 서렸다.
뿐이랴. 그의 전신에서는 패도적인 기운이 뿜어졌다.
백표랑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파천혈세다.'
오오! 파천혈세!
향음아는 말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무학으로도 파천혈세를 꺾을
수 있는 무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미미하게, 흔들리는 백표랑의 신형.
흔들리는 시선 속으로, 자천룡의 검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구주혈란(九州血亂)!"
파천혈세의 제일식 구주혈란.
백표랑은 보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피의 혈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환상을.
"윽!"
구마왕과 삼천제는 그 여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정없이 밀려났
다.
백표랑은 입술이 터져라 깨물었다.
'피할 수 없다.'
방법은 오직 하나, 분신쇄골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천룡의 파천
혈세를 막아야 한다.
"뇌화혼!"
그의 검이 전력으로 뇌화혼을 펼쳤으며 그의 왼손이 해일처럼 밀
려드는 자천룡의 검세를 향해 요란하게 흔들렸다.
씁씁씁씁!
서른 여섯 가닥의 은빛 섬광이 검세를 갈라내고 자천룡을 향해
빛살처럼 쏘아갔다.
꽈르르릉! 콰아아아!
천지가 요동을 쳤다.
대전의 벽이 걸레조각처럼 터져 나갔으며, 바닥은 쩍쩍 갈라졌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 속에서 주춤 물러서는 자천룡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낭패한 모습이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이것은 옥관음 구야홍의 공작철우가 아
닌가?"
옥관음 구야홍의 공작철우!
우내사성의 한 사람인 옥관음 구야홍!
패도적인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구야홍의 공작철우!
백표랑은 위기의 순간에 공작철우를 펼쳐낸 것이다.
자천룡은 시선을 들어 백표랑을 바라보았다.
.......
그의 모습은 참혹했다.
의복은 걸레조각처럼 터져 날아갔으며, 입가에는 시뻘건 선혈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보라.
걸레조각처럼 너덜거리는 의복 속에 드러난 금사보의를!
사실, 백표랑은 금사보의를 염우가 입은 청의 속에 겹옷으로 걸치
고 다녔다.
'무섭군. 금사보의가 아니었다면 나는 자천룡의 검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전신이 터져 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금사보의!
도검의 침입을 막아주는 보물.
만약, 금사보의가 아니었다면 백표랑은 자천룡의 검에 죽음을 당
했을 것이다.
자천룡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유난히 운이 좋은 인물이군."
"......."
"천하의 비전무학들과 기보들이 그대 한 몸에 있으니 말이다."
백표랑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런 것 같소."
자천룡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나 파천혈세의 마지막 초식인 파천혈란(破天血亂) 앞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슥! 자천룡의 검이 하검식의 자세를 가다듬었다.
해일처럼 일어나는 패도적인 기운.
그 기운은 백표랑의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백표랑은 굳어진 얼굴로 역시 똑같은 하검식의 자세를 가다듬었
다. 처음에는 가늘게 흔들리던 백표랑의 모습이 얼마의 시간이 지나
자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두 사람은 무서운 대치상태로 접어들었다.
일초!
단 일초 안에 모든 것은 끝난다.
파파파팟!
기(氣).
두 사람의 몸과 검에서 발해지는 검기와 살기는 더욱 짙어갔다.
쌍방의 기가 허공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뒤엉켜 있다.
무성무식(無聲無息).
말 그대로, 두 사람은 소리도 숨결도 없으면서 무형(無形)의 살초
를 상대에게 전개하고 있다.
그들의 기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
그리고, 터지는 날에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죽게 된다.
.......
십절마제 두철기!
대전장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는 그의 눈빛은 쾌심한 빛을
머금었다.
'놈은 패한다.'
그는 백표랑의 패배를 내심으로 단정했다.
비록, 두 사람의 팽팽한 대결같지만, 기실 두 사람의 기는 상당한
차이를 두고 있었다.
그 차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명백해졌다. 억년호심처럼 가
라앉아가는 것이 자천룡의 자세라면, 시간이 흐를수록 흔들리는 것
은 백표랑이다.
그러던 한 순간이었다.
"타앗!"
검이 울부짖듯 명쾌한 대갈성에 이어,
번쩍! 살아움직이는 혜성처럼 움직이는 백표랑의 검.
극쾌한 빛을 휘몰고 자천룡의 전신을 투명하게 갈라가는 한 줄기
백색검광!
기이하게도, 그 백색 검영이 대기를 가르자 마치 얄팍한 면도날
수백 개가 자천룡을 향해 폭사해 가며 섬뜩한 섬단음을 발하는 것
이 아닌가?
뿐이랴. 구색을 맞추기라도 하듯, 그의 손이 허공에서 거대한 하
나의 원을 그렸다.
고오오오!
장강대류(長江大流)가 쏟아져 나오는 것인가?
세상의 모든 것을 함몰시켜버릴 것 같은 잠경이 대전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며 자천룡을 함께 휩쓸어갔다.
만력신공(萬力神功)!
고신세가의 가전무학 두 가지가 한꺼번에 펼쳐진 것이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도대체가 믿어지지 않는다.

― 어쩌면 성주가 패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백표랑의 공세는 무서웠다.
그러나, 자천룡은 놀라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는 오히려 봄날의 훈풍같은 한줄기 미소가 소리없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미소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스윽!
지금까지, 고요하게 하검식의 자세를 가다듬고 있던 그의 검이 아
주 완만하게 허공을 향해 그어졌다.
콰우우우우!
귀청을 찢어내는 한 소리 굉음과 더불어,
자하의 서기(瑞氣) 같은 검세가 천황검으로부터 발출되어 백표랑
의 그 무서운 공세를 모조리 차단해 가는 것이 아닌가?
파파파팟!
환상처럼 갈라지는 백표랑의 공세.
끔찍한 장면이었다.
백표랑의 백색검광과 잠경은 자천룡의 검세에 의해 거짓말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세가 하나도 꺾어지지 않은 채,
검세는 백표랑의 전신을 휘감아 버렸다.
"으아아악!"
비명이 터졌다.
사람들은 두 눈을 부릅떴다.
노을 같은 자천룡의 검세 속에서 그보다 더 시뻘건 피를 뿌리며
허공을 날아 곤두박질 치는 백표랑의 모습이 보였다.
푸후.......
피화살이 길게 뿌려지고,
쿵!
대전의 갈라진 벽 사이로 날아간 백표랑은 지면에 거세게 내동댕
이 쳐졌다.

* * *

자천룡을 비롯한 천마혈성의 수뇌들.
그들은 백표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은 백
표랑. 사람들의 얼굴이 기이하게 변했다.
두철기를 비롯한 몇몇 인물들의 얼굴이 득이한 웃음을 짓고 있는
가 하면, 향음아의 얼굴엔 초조감이 역력했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은 자천룡이다.
움직이지 않는 백표랑을 내려다 보고 있는 그의 얼굴은 거짓말처
럼 무표정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으으......."
백표랑의 입에서 미미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이어, 그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일어섰다.
비틀!
일어서면서 그는 몸을 지탱할 수 없었든지 심하게 비틀거렸다.
"푸후훗!"
그러나, 백표랑은 웃었다.
아마, 그 웃음은 자신의 무력감을 자책하는 웃음 같았다.
그는 흐릿해져오는 시선을 애써 자천룡의 얼굴에 고정시켰다.
"약속한 십초요."
자천룡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역시 운이 좋군."
"약속대로......."
"너를 보내준다."
"......."
"그러나 삼 일 후부터 너를 추격하게 된다. 구마왕과 삼천제, 그
리고 천마혈성의 모든 힘이 너를 추격하게 된다. 사실 너는 살려두
기에 너무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다."
"푸후후후훗! 듣기 싫은 말은 아니오."
백표랑은 괜스레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백표랑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등을 돌려 자천룡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보다 당신이 먼저 죽게 될지 모르오. 이곳에는 당신의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상상 외로 많다는 것을 알았소."
자천룡은 단지 미소만을 지었다.
백표랑은 두철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철기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저놈이!'
그는 자천룡의 안색을 살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자천룡은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백표랑의 시선이 닿은 곳은 야황 연사미의 얼굴이었
다. 그는 실없는 사람처럼 툴툴 웃었다.
"푸후후후훗!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지난날처럼 달콤했던 밤은 다
시 돌아와 주지 않을 것 같군."
달콤한 밤!
그 의미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어찌 모르랴.
연사미의 얼굴이 울그락 붉으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감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백표랑의 앞을 가로막지는 못했
다.
자천룡의 약속이기에.......

* * *

"십절궁주!"
자천룡의 담담한 부름에 두철기는 몸을 떨었다.
"말씀하십시오, 성주!"
"앞으로 삼 일 후부터 구마왕과 구천마궁은 그를 추격한다. 그리
고 그대는 그의 목을 내 앞에 가져와라."
두철기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자천룡은 그 한 마디만을 남기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풍운의 천마각!
이렇게 역사의 한 장을 마감하고 있다.

* * *

나는...... 살아야한다.
죽음을 비웃고,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더라도 살아야 한다.
어차피,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뜻대로 죽을 수 없는 운명이 아니었
던가?
한가지 방법이 있다.
화림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들이라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나를 지킬 수는 있을 것이다.

* * *

불사곡(不死谷)이라는 곳이 있다.
중원무림과는 거리가 먼 청해(靑海)의 오지(奧地) 어딘가에 자리
하고 있다고 전해져오는 신비한 문파.
전하는 말로는, 불사곡의 인물들은 모두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누린다고 한다.
탐욕에 눈이 어두운 중원무림인들이 신강의 오지를 뒤졌지만, 끝
내 불사곡을 찾은 사람은 없었다.

스물....... 스물.......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는 계곡.
밖에서 보면 단지 안개만 자욱하게 깔려있는 것 같은 이곳은 마
치 신선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말이다.
꽃! 계곡을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은 수만 가지의 꽃들이 아닌가?
스물거리는 안개 속에 꽃이라니?
누구나 이곳에 들어서면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게 된
다.
정오 무렵!
스으으으!
아름다운 계곡의 안개 사이로 한 사람이 소리없이 내려섰다. 옆구
리에 축 늘어진 사람을 안고 있는 사람은 여인이었다.
사월령! 놀랍게도 불사곡 안을 들어선 사람은 화림의 살수인 사월
령이 아닌가?
그녀는 초조한 듯 옆구리에 안긴 백표랑의 얼굴을 연신 바라보았
다.
눈물일게다. 언제나 냉막함이 서려있던 그녀의 아름다운 봉목에
서린 저 흐릿한 물기는 정녕 눈물인 것이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백표랑의 싸늘한 기운!
그것은 이미 살아있는 사람의 체온이 아니다.
죽음으로 등을 돌려버린 사람의 냉기다.
'림주!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당신
을 살리고 말 것입니다.'
그녀는 정신없이 불사곡의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 *

환상의 꽃세계, 불사곡에 들어선 사람은 그 순간부터 꿈에도 볼
수 없는 화려한 꽃의 향취에 흠뻑 젖어들고 만다.
난화(蘭花), 금은계(金銀季), 말리화(末梨花;자스민)와 철경의 해당
화(海棠花) 등, 비단처럼 늘어선 꽃들,
게다가, 그 꽃들이란 것이 세상의 모든 꽃들이 한 자리에 모인 양
그 종류가 다양한 것은 물론이요, 색과 모양도 각양각색으로 보는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한다.
뿐인가? 단장화(斷腸花), 울금향(鬱金香;튜울립), 우담화(優曇華),
사막의 자생화(自生花)는 물론이요,
중원에서는 도저히 구경할 수 없는 이국의 꽃과,
전설상에나 존재하는 꽃들이 이곳에는 흔하게 널려있다.
사시사계(四時四季)와는 관계없이 온갖 자태와 향기를 자랑하는
꽃들이 환상의 꽃세계를 만들고 있다.
.......
한 여인, 그녀는 꽃밭에 서 있었다.
일신에는 성결스런 백의!
한 손에는 물뿌리개를 들고 꽃밭에 물을 주고 있다.
이 여인에게서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투명한 느낌이랄까?
정서도, 감정도, 사랑도 찾아볼 수 없는 무색(無色)의 여인이다.
기이한 여인이다.
그녀는 사월령이 자신의 가까이에 다가왔건만 사월령에게 전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응당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건만, 이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여인처럼.
사월령은 초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불사신옹(不死神翁)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왔다."
여인은 그때까지 반응이 없었다.
사월령의 눈빛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백표랑을 살리기 위해서라
면 그녀는 그 누구의 목에라도 검을 들이댈 수 있다.
슥! 사월령의 손이 검을 잡아갔다.
여인의 동작이 그때에야 멈춰졌다.
그러나, 손만을 멈췄을 뿐 시선은 여전히 물을 뿌리고 있는 꽃송
이에서 돌리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옆을 가리켰다.
"저기 계시니까 만나보세요."
표정도 그렇거니와, 이 여인의 음성 또한 여인의 음성이라면 믿어
지지 않을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없다.
사월령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 그녀가 가리킨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순간, 사월령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 무덤!

여인이 가리킨 곳은 다름아닌 하나의 무덤이었다.
그녀가 여인에게 불사신옹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을 때, 여인이 무
덤을 가리켰다는 것은 곧 불사신옹이 죽었다는 말이 아닌가?
"불사신옹이 죽었다는 말이냐?"
여인은 여전히 시선 하나 돌리지 않은 채 짤막하게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무덤을 거처로 삼지는 않으셨어요."
"으음!"
사월령은 무거운 신음성을 흘렸다.
절망의 신음성이다.
사실 그녀가 이 불사곡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
울였던가?
백표랑은 혼절하기 직전에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 신강의 어디엔가 있는 불사곡을 찾아가라. 그곳에 있는 불사신
옹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온 불사곡!
그런데 이미 불사신옹은 죽었단다. 절망에 사로잡혀 있던 사월령.
그녀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여인은 불사신옹을 사부라고 하지 않았던가?

― 그렇다면 불사신옹의 제자인 그녀도 림주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슥! 사월령은 검을 뽑아 들었다.
이어 여인의 목에 찰싹 검을 들이댔다.
여인은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추고 사월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살인병기가 자신의 목에 닿아 죽음을 부르고 있건만,
여인의 얼굴은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단지, 사월령의 이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당신이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군."
"네가 분명 불사신옹의 제자라고 했느냐?"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나를 협박하는 이유가 된다는 말인가요?"
여인의 음성은 여전히 투명했다.
그러나 사월령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면 불사신옹의 모든 진전을 이어 받았겠군."
"당신에게 그런 것까지 밝혀야 할 이유가 있나요?"
몹시 불쾌하다는 음성이다.
사월령은 옆구리에 안고 있는 백표랑을 가리켰다.
"이분을 살려라."
여인의 눈이 잠시 백표랑을 바라보았다.
이미 죽은 사람이나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백표랑의 모습이다.
문득, 여인은 피식 웃었다.
"이제보니 당신은 정신병자군요."
사월령도 예의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감히 나 사월령을 정신병자라고 부르고 두 눈 뜨고 살아있는 사
람은 아마 너 뿐일 것이다."
여인의 눈빛이 약간 변했다.
의외라는 눈빛이다.
"당신이 정말 화림의 절대살수라는 사월령이란 말인가요?"
"나는 아직 거짓말을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여인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당신이 사월령이라고 해도 대답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할 수 없다는 말이냐?"
사월령의 음성이 싸늘하게 변했다.
거절한다면 그녀의 검이 금방이라도 불을 토할 것 같았다.
"인간에게는 불가능이라는 것이 있어요."
"......."
"당신은 지금 무덤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할 사람을 데려와서 살려
달라고 억지를 쓰니 한심한 일이 아닌가요?"
"나는 지금 지극히 온전하다."
여인은 투명한 웃음을 머금었다.
"당신은 설마 이런 사람을 살리라고 부탁하려는 것은 아니지요?"
사월령은 굽힘없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불사신옹의 제자라면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사월령은 백표랑을 가리켰다.
"바로 이 분이다."
"......."
"이 분께서는 불사신옹의 활인대법(活人大法)이면 가능하다고 말
씀하셨다."
여인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분명 활인대법이라고 말했단 말인가요?"
"틀림없다."
"으음!"
여인은 처음으로 나직한 신음을 흘려냈다.
아마 불사신옹의 활인대법이라는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
이다.
'사부님의 활인대법을 알고 있는 중원인이 있었다니....... 이로 보
아 사부님과 상당한 교분이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녀는 백표랑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기껏해야 이십여 세, 나이로 따진다면 도저히 자신의 사부와 교분
이 있을 수 없는 나이다.
백표랑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여인의 눈빛이 기이한 빛을 발했
다.
준영한 백표랑의 얼굴.
비록 피가 뒤엉키고, 죽음의 그늘로 덮여 있지만, 타고난 수려함
과 기상은 남아 있다.
'보통의 인물이 아니다. 아마 내 눈이 틀림없다면 그는 중원에서
도 매우 이름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여인은 사월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은 중원제일의 살수라고 들었어요."
경어를 사용하지만 여인의 음성은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다.
"당신 같은 사람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나를 찾아오다니 믿어
지지 않는군요."
"살수라고 해서 무조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그럼?"
"살려야 할 사람이 있다면 살리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을 살리는 가요?"
"이 사월령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럼 이 사람이 당신은 꼭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요?"
"그래서 이곳까지 왔다."
여인의 눈은 야릇한 기광을 머금었다.
"당신의 남자이기 때문인가요?"
사월령의 눈빛이 흠칫 굳어졌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백표랑은 자신이 잡아두기에는 너무 큰 인물이다.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왜죠?"
사월령은 공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참새는 봉황의 곁에 남을 수 없으니까."
여인은 사월령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렇게 뛰어난 인간이라는 말인가?'
불현듯, 여인은 백표랑이라는 인물에 대해 짙은 호감이 생겼다.
"대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매우 궁금해지는군요."
사월령은 여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말은 이분을 살릴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한 가지만 묻겠어요."
"......."
"내가 만약 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면 당신은 나를 죽일 생각인
가요?"
사월령은 주저없이 말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만약 살리지 못한다면 기꺼이 검을 뽑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월령의 그런 말에도 여인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입
가에 지었을 뿐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어요."
"복잡하군."
"문득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해지는
군요."
사월령은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힘없이 말했다.
"만세야 자천룡이다."
달리 생각없이 해버린 이 말.

― 만세야 자천룡이다.

여인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아마도 몹시 놀란 모양이다.
"방금...... 만세야 자천룡이라고 했나요?"
"왜,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인은 백표랑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지껄였다.
"믿어지지 않아. 이 나이에 만세야 자천룡과 대결을 하다니......."
사월령은 한숨처럼 말했다.
"만세야 자천룡이 아니라면 천하를 통틀어 그 분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천하 제이인자라는 말.
여인은 한동안 백표랑의 모습만을 천천히 살폈다.
볼수록 뛰어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의 곁에 있는 사월령이라는 여인이 갑자기 부러워지기
까지 했다.
"당신은 중원무림의 소문과는 달리 상당히 감상적인 일면을 지니
고 있었군요."
"살수도 어차피 인간이고 여자다."
"여자?"
"가슴에는 사랑이 숨겨져 있지. 그런 감정들을 가슴 속에 간직하
고 있을 뿐 남에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여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당신은 이 은소소가 지금까지 보아온 사람들 중 가장 인
간다운 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지 몰라요. 당신은 누구보다 자신
의 감정에는 솔직하니까요."
여인 스스로 은소소라고 밝혔다.
은소소는 등을 돌렸다.
"저를 따라오세요."
은소소가 들어선 곳은 하나의 모옥이다.
단아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하나의 모옥!
사월령은 모옥에 들어서면서 세상에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있다
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 * *

―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물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요. 그 두 가지 중 한 가지만 없어도 이 사람을 살리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어요.

은소소,
그녀는 나무침상 위에 백표랑을 반듯하게 눕히고 말했다.
사월령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그 두 가지라는 것이 무엇이냐?"
"첫째는 삼엽선단(三葉仙丹)이에요."
"삼엽선단."
"삼엽선단은 하늘의 기연(奇緣)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물건이
에요. 인간이 복용하면 불로장생할 수 있고, 무림인이 복용하면 단
숨에 일 갑자의 내력을 얻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해요."
"그것을 어디에서 구한다는 말이냐?"
은소소는 사월령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행히 불사곡에는 단 한 개의 삼엽선단이 있어요."
"......."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사람은 하늘이 내린 인연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군요."
사월령은 안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 한 가지는 무엇이냐?"
여인은 사월령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의미있는 웃음을 머금었
다.
"순음지기(純陰之氣)를 지닌 세 명의 여자예요."
"뭐야?"
사월령은 놀란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
은소소는 투명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원래가 사부님의 활인대법은 여인의 순음지기를 이용해 펼치는
대법이에요. 다만 한 가지 상대여자가 모두 삼갑자 이상의 내력을
지닌 여자라야 해요."
삼갑자의 내력을 지닌 순음지기의 여인.
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가?
설혹 순음지기의 여인이 있다고 하자,
세상에 삼갑자 이상의 내력을 지닌 순음지기의 여자가 어디 흔한
가?
"다른 방법은 없느냐?"
"없어요."
"결국 포기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월령의 얼굴에는 짙은 비애가 서렸다.
은소소는 흘러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하늘이 이 사람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적을 볼
수 있을지 몰라요."
사월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 어떠한 일이 있어도 림주를 살려야 한다.

사월령은 은소소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우선 삼엽선단을 복용시켜라."
"......."
"순음지기의 여자는 내가 구해보겠다."
"삼 일을 넘기면 공연히 삼엽선단만 허비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
요."
"알았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후리리릿!
한 줄기 바람처럼 사월령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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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할 때는 언제 다 끝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벌써 2권이 다 끝났군요.
이제 2권도 마지막 20장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6월달이 되면서 그나마 있던 시간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_-a
어찌 될지는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그래도 노력해서 3권까지 확실히 끝내도록 하는게...
장수무병에 도움이 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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