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건곤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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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156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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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一擲

제3권 제28장 검노(劍老)의 죽음(死)



고독검노(孤獨劍老).


이것이 일평생 그에게 따라붙은 이름이었다.


검노는 평생 그의 이름처럼 고독하게 살아왔다. 그에게는 처자가 없었다. 처자가 없는 이유는 그가 검(劍)과 결혼을 했고 검이란 이름의 자식만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늙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수염도 세었다. 그가 검마에 비해 더 늙은 이유는 십 년 전 검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항상 손목에 사슬로 묶은 검을 가지고 다녔으나 십 년 전 검의 노예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그는 부쩍 늙어 버리고 말았다.


검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천운이 돌아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식이 없는 그는 주천운에게 깊은 정을 느꼈다. 때문에 주천운과 재회를 하게 되자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평생을 오직 단 세 사람에게만 탄복했다.


그 첫째는 검마 철무쌍. 최초로 검법을 겨루어 무승부를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항간에는 그가 철무쌍에게 패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다만 철무쌍과 무승부를 이루었던 것이다.


검노는 일평생 오직 검법만을 익혔으므로 검마와의 무승부에 스스로 검노가 되었다. 팔목에 검을 사슬로 연결하여 평생 검마를 꺾지 않으면 검의 노예에서 해방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가 두 번째 탄복한 인물은 바로 건문제였다.


그가 이십 년 만에 검마 철무쌍과 황산 무의봉에서 비무를 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또다시 백중의 싸움을 벌여 사흘 밤낮을 계속 싸웠다. 급기야는 두 사람이 모두 탈진하여 목숨을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존심이 강하여 그 누구도 그만 두자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건문제였다.


건문제는 싸움을 말리려 했으나 두 사람이 말을 듣지 않자 대소를 터뜨리며 두 사람을 공격했다. 급기야 검노와 검마는 이대 일로 그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협공을 하였는 데도 건문제를 꺾을 수가 없었다.


도리어 두 남북양대검벽이 건문제에 의해 무릎을 꿇게 된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건문제의 수하가 되기로 자청을 했다.


검노가 세 번째로 탄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주천운이었다. 그를 어릴 적부터 알고 있는 검노였다. 무공이든 학문이든 주천운은 놀랄 만큼 흡수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검노는 뜨락을 걷고 있었다.


'과거 주공께서는 소주께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 가기를 어느정도 바라고 계셨다. 그러기에 당신의 내력을 우리들에게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그의 생각은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소주는 스스로 자신의 내력을 알아내셨다. 그리고 놀랍게도 어려운 결정을 하신 것이다. 만일 소주께서 천하창생을 생각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셨다면 아마 천하는 온통 대혈란에 빠져 들게 되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주천운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비록 스스로를 가신으로 자처하는 그였으나 주천운에게는 사도지간의 정을 느끼고 있는 검노였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검노는 이만 자리에 들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 ?"


그는 문득 옷자락 날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후원 쪽에서 들렸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는 즉시 신형을 날렸다. 이미 팔순에 달한 검노였으나 그의 청력은 능히 옷자락 소리만 듣고도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야율대(耶律臺).


그는 기련산 일대에서 목축을 하는 자다.


기후의 변화에 따라 양을 이끌고 유목생활을 하는 그는 오늘은 마침 기련산 중턱에서 양을 방목하게 되었다. 밤이 되자 그는 초원에 방목하던 양떼들을 몰아 우리 안에 넣었다.


양의 숫자를 확인하던 야율대는 세 마리의 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양을 되찾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으응?'


그의 눈이 크게 커졌다.


북쪽 능선이었다. 양 세 마리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양의 옆에는 한 인영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도둑인가?'


양을 훔치는 도둑이 최근에는 골칫거리였다. 야율대는 부지중에 몽둥이 하나를 들었다.


'괘씸한 놈! 오늘은 결코 가만 두지 않겠다.'


야율대는 체격이 컸다. 그것은 그가 오랑캐의 피를 받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는 몽둥이를 들고 조심스럽게 능선 쪽으로 올라갔다.


인영은 의외로 체격이 가냘픈 것같았다. 더 가까이 가다가 그는 흠칫 놀랐다.


'여자?'


그렇다. 도둑은 여자였다. 검은 옷 위로 기다란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야율대는 어리둥절해 졌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나섰다.


"여보시오! 당신은 누구요?"


여인은 그 음성을 듣자 돌아섰다. 순간 야율대는 넋을 잃고 말았다.


소녀였다. 희미한 달빛 아래 눈부시게 흰 얼굴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이, 인간인가? 요물인가?'


야율대는 세상에 태어난 이래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소녀 또한 꿈꾸는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낭자는 ?"


이때 소녀가 방긋이 웃더니 놀랍게도 옷자락을 풀어 헤쳤다. 그러자 앞섶이 열리며 박속같이 하얀 유방이 달빛을 받아 드러났다.


봉긋하니 솟아나온 유방을 본 순간 야율대는 그만 머리 속이 텅 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툭!


그의 손에서 몽둥이가 떨어졌다.


"호호 !"


소녀가 손짓을 했다. 야율대는 넋을 잃은 채 침을 흘리며 다가갔다. 그러자 소녀는 검은 장삼을 아래로 서서히 벌려 보이는 것이었다.


아찔했다.


유지같이 매끄럽고 눈부시게 빛나는 나신이 거짓말처럼 야율대의 눈 속으로 들어왔다. 새하얀 유방과 옥으로 다듬은 듯한 선연한 나신, 그리고 대리석 옥주처럼 곧게 뻗어 있는 다리 .


"헉!"


야율대는 쓰러지듯 소녀의 발 아래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은 빛을 잃고 있었으며 두 손을 달달 떨면서 앞으로 뻗어 나갔다. 마침내 손 끝에 소녀의 동그란 무릎이 만져졌다.


"으으 ."


야율대는 소녀의 무릎을 만지며 신음을 발했다. 소녀의 무릎은 인간의 육체가 아닌 듯 만진 순간 그의 혈관을 끓게 만들었다.


소녀의 손이 야율대의 머리를 매만졌다. 손길이 닿은 순간 야율대는 감전이라도 된 듯 부르르 경련했다.


야율대는 소녀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일어섰다. 그의 눈은 소녀의 나신을 더듬어 올라갔다. 마침내 소녀의 하아얀 유방과 그의 눈의 높이가 같아졌을 때, 그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와락 그녀를 끌어 안았다.


그飁였다.


"커억!"


가슴이 화끈했다.


야율대는 화살이라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그의 가슴 속에는 어느새 소녀의 희고 나긋한 손이 박혀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율대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벌렸다.


"왜, 왜 ?"


그것이 끝이었다. 야율대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소녀의 손에는 어떤 물체가 하나 쥐어져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심장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마녀(魔女)! 정녕 잔인하구나!"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분노에 찬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 !"


소녀는 움찔하더니 몸을 돌렸다. 그 바람에 장삼이 펄럭였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소녀의 나신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떠올랐다.


노인이었다.


백발백염의 청수한 노인이 만면에 분노의 빛을 드러낸 채 삼 장 밖에서 소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검노였다.


그는 옷자락 날리는 소리를 따라 이 곳까지 와서는 마침내 모든 광경을 본 것이었다.


소녀는 바로 주천운을 따라 온 소녀, 사라(沙羅)였다.


처음에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자신의 눈이 잘못되지 않나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야율대가 쓰러지고 사라의 손에 심장이 들려져 있는 것을 본 순간 검노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요망한 계집! 인간의 심장을 꺼내다니 ! 이제 보니 마물(魔物)이었구나!"


검노는 치를 떨었다.


강호생활 근 백여 년에 가까운 그였으나 이렇게 잔인한 소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그가 더욱 분노한 것은 사라를 주천운이 아주 순수한 소녀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호호 !"


사라는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검노는 기혈이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나이가 몇인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욕정을 느낀 것이었다. 그의 눈은 사라의 알몸으로 향했다.


사라의 나신은 빙기옥골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여체가 있다면 바로 사라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사나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품을 만한 희대의 우물(尤物)이었다.


그러나 검노는 평생을 검도에 바친 인물로 정력(定力)의 절륜함은 타인의 경지를 초월했다.


"갈(喝)!"


그는 호통을 쳤다.


불문의 사자후와 비슷한 일종의 정심력(定心力)이 깃든 외침이었다. 그 속에는 그의 평생 공력이 담겨져 있어 사라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부르르 가냘픈 몸을 떨었다.


언뜻 사라의 눈 속에서 고통스런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호호호호호홋 !"


사라는 요사스러운 교소를 터뜨리며 일순 허공을 향해 훌쩍 뛰어올랐다.


장삼이 장막처럼 활짝 펼쳐지며 그녀의 적나라한 나신이 드러났다. 사라의 나신은 달빛을 받으며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한 마력을 뿜어냈다.


" !"


검노는 긴장했다. 검마 철무쌍과 건문제 이후로 이렇게 심장이 얼어붙듯이 압도 당한 적은 없었다. 사라의 나신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을 바라본 순간 검노는 전신의 혈맥이 응축되는 것을 느꼈다.


무형의 극음직기(極陰之氣)가 그의 전신을 무섭게 짓눌렀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달빛과 함께 쏟아져 내려 그를 얽어매고 있었다.


"으으으 !"


검노는 검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항상 손목에 연결하고 다니던 검을 끊어버린 것은 이미 십 년도 전이었다. 그는 십 년 동안 손에 검을 잡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검을 지니지 않은 것이 뼈저리게 후회스러웠다.


"호호홋 !"


악마적인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흐드러지게 쏟아져 내렸다.


검노는 더욱더 몸이 얼어붙은 것을 느꼈고 이대로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기혈이 가닥가닥 끊어진다는 것을 예감했다. 그의 이마에 심줄이 불거져 나왔다.


검노는 혼신의 공력을 기울여 수검(手劍)을 들었다.


검의 고수는 손이 곧 검이다.


그가 수검을 취하자 그의 전신에서는 가공할 기운이 뻗쳤다.


스스스 !


수검 끝으로 하아얀 백기가 흘러나왔다.


"독(獨) 고(孤) 일(一) 검(劒)!"


20년도 넘었다.


그가 창안한 독고일검이 펼쳐졌다. 그것은 단 두 번, 검마와 건문제에게 펼친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독고일검은 당시에 비하면 더욱더 위대한 검법이었다.


단 일 초(一招)!


그 일 초에는 삼라만상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고독검노의 일평생이 담겨져 있었다.


파아아 !


흰빛이 달을 갈랐다. 착각이었을까? 한순간 달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은?


달을 배경으로 빙글빙글 춤추고 있던 사라의 몸도 환상처럼 두개로 갈라졌다.


'베었다!'


검노는 웃었다.


그는 좀체로 웃지 않는 위인이다. 희노애락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인데도 이번에는 웃음이 어리고 있었다.


만족스러웠다. 이 순간 검노는 자신의 독고일검이야말로 천하제일의 검법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웃으며 쓰러졌다. 입가는 물론 주름 어린 눈가에도 잔물결이 번지듯 잔잔한 웃음이 잡혀 있었다.


쿵!


그는 고목처럼 스러졌다. 인간고목이었다. 검노는 반듯이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옆으로 낙엽처럼 팔랑거리며 사라의 몸이 떨어져 내렸다.


사라는 전신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옷은 두 조각으로 정확히 베어져 저만큼 날아가고 있었다.


" ."


사라는 달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나신이었으나 웬지 슬퍼보였다.


한순간 사라는 춥다고 생각했다. 작은 손바닥이 스르르 움직여 봉긋한 젖가슴을 가렸다. 바람에 머리칼이 날렸다. 더욱 추워졌다. 사라는 두 손으로 유방을 다 가리지도 못한 채 떨었다.


"추워 ."


그 모습을 누군가 보았다면 달려가 꼬옥 안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사라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라는 슬픈 듯이 물끄러미 검노의 시신을 내려 보았다. 상처하나 없이 검노는 죽어 있었다.


"아아 !"


사라의 입에서 애끓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에서는 진주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또다시 바람이 불었다. 사라의 나신에 소름이 돋았다.


"아아 ."


애절한 한숨이 흘러나왔을 때 이미 사라의 몸은 그 자리에 없었다.



검노의 죽음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충격은 특히 주천운에게 가장 크게 밀려 들어왔다. 그는 흡혈악마가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에서 맴돈다는 사실이 가히 전율스러웠다.


검노의 시신 근처에는 심장을 잃은 야율대의 시신이 있었다. 그로 미루어 검노가 흡혈악마를 발견하고 싸우다 죽은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러나 검노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검노의 사인은 전신의 혈맥이 가닥가닥 끊긴 데 있었다.


'대체 어떤 무공이기에 이토록 완벽하게 당했단 말인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검노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죽어가는 순간에 승리자의 미소를 짓다니.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장원의 분위기는 침통하게 가라앉았다. 특히 철무쌍은 넋을 잃은 듯 하루종일 입을 다물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검노는 평생의 적수이자 지기(知己)였다. 만일 그에게 검노가 없었다면 인생의 의미는 절반 이상 감소했을 것이다. 검노가 있었기에 그의 검술은 항상 발전할 수 있었고 인생도 좀더 의미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죽을 때 검노와 함께 죽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검노가 없는 삶이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검노가 죽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이었다. 검노의 시신은 웃고 있었지만 검마 철무쌍의 가슴은 온통 찢어지는 듯했다. 주천운은 범인을 잡기 위해 기련산 일대를 이잡듯이 뒤졌으나 허탕을 쳤다.


검노는 매장 되었다. 그의 무덤이 솟아났을 때 비로소 철무쌍은 통곡을 터뜨렸다.


그와 같이 나이가 많은 노인이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주위 사람으로 하여금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팔마와 주천운은 차마 그의 울음소리를 더 들을 수 없어 자리를 떠나야 했다.


검마 철무쌍은 열흘이 지나도록 식음을 전폐했으며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 몇 번이나 팔마가 찾아가고 주천운이 그를 위로했으나 검마는 말을 잃어버린 듯이 그저 무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물 흐르듯 시간이 지나갔다.



철무쌍은 다시 검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잡은 검은 그의 애검인 반야검(般若劒)이 아니라 한천검(恨天劒)이었다. 검의 자루에는 가는 사슬이 달려 있고 그 사슬은 손목의 팔찌와 연결되어 있었다.


바로 검노가 반평생을 손목에 차고 다녔던 그 검이었다. 검마의 뜻은 분명했다. 바로 검노의 원수를 자신의 손으로 갚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


아무튼 검마가 기운을 되찾음에 따라 장원은 서서히 깊은 절망과 비애 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주천운은 팔마와 검마 등과 함께 상의했다.


기련산에 더이상 머무르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중원으로 모두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팔마와 검마는 동의했다.


주천운은 단호히 말했다.


"나는 연경(燕京)으로 가겠소."


연경이라면 자금성이 있는 곳을 말했다. 주천운은 연경으로 가 직접 동창과 부친의 사인이 관련 있는 지를 조사할 작정이었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여러분께서는 낙양으로 가 주시오."


" ?"


"낙양의 만향원(晩香院)이라는 기원으로 가시오. 그 곳에 유향경이란 여인이 있소. 그녀에게 내 이름을 대면 알 것이오."


만향원과 유향경. 실로 오랜만에 주천운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이었다.


팔마와 검마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주천운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향경과 함께 있는 여인은 둘이 있소. 그 중 일잔향(一殘香)이란 이름을 가진 여인과 상의하시오. 그녀는 과거 뇌정각의 비밀조직에 있었던 여인으로 ."


그는 일잔향의 내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팔마와 검마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어느새 주천운이 믿음직한 주공으로 성장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들이 아는 한 건문제도 여인에게 몹시 호감을 사는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 아들인 주천운에게 여인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천운은 팔마 검마와 앞으로의 일을 숙의했다.


팔마와 검마는 일단 만향원에서 일잔향과 함께 뇌정각의 움직임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 자신은 연경으로 가 동창을 조사할 생각이었다.



달빛이 환했다.


기련산 계곡을 수원(水原)으로 흐르는 백하(白河)의 물은 맑고 차갑기가 일품이었다. 그 백하를 거슬러 올라가면 웅장한 폭포수가 나타났다.


이 곳은 과거 주천운이 무공을 익히던 곳이었다.


" ."


주천운은 폭포수 앞의 편편한 바위 위에 서 있었다. 기련산을 떠나기에 앞서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우르르릉


굉음을 내며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 일대는 장중한 분위기를 준다. 자욱한 포말이 물안개를 일으키는 가운데 폭포수 아래에는 움푹 패인 한담(寒潭)이 고여 있었다.


주천운은 옷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기차게 떨어지고 있는 폭포수를 바라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내일이면 이 곳을 떠난다. 언제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기련산은 그의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본래 그는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을 외방산 회천곡에서 보냈다. 원래 그가 태어난 곳은 외방산의 조양산장(朝陽山莊)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의 생활은 짧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이 곳에서 팔마, 검노, 검마와 함께 보낸 것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어릴 적 친구도 있었다.


천소유(天少柔)가 바로 그였다.


천소유는 일가를 축공표에게 몰살 당한 후 팔마에 의해 극적으로 구함을 받은 불행한 소년이었다. 팔마가 그를 구했을 때는 축공표의 악랄한 장력에 맞아 이미 기맥이 손상된 후였다.


팔마가 백방으로 손을 썼으나 그는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천소유는 짧은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주천운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소유. 너의 원한은 갚아 주었다. 축가놈은 내 손에 죽었지.'


폭포수 아래서 천소유과 함게 멱을 감으며 즐겁게 놀던 기억이 떠오르자 주천운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에게는 천약귀수 포대숭이 만든 희대의 신단인 대환신단 세 알이 남아 있었다.


'소유. 이 대환신단이면 너의 그 고질병도 고칠 수 있었을 것을 .'


그러나 천소유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그의 가슴이 웬지 공허해졌다. 이때였다.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폭포수의 굉음 속에서도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의 청력이 예민하다는 뜻이었다.


'사라.'


그는 흠칫했다. 사라였다. 사라는 백하에 몸을 담구고 위로 천천히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백하는 얕은 물이었으므로 그녀의 몸은 허리쯤까지 잠기고 있었다.


'이 밤중에 웬일로?'


그러고 보니 이 며칠간 그녀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는 옷을 입은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윽고 한담에 이르자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주천운은 바위 위에서 그런 사라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달빛을 받으며 한담에서 헤엄을 치는 소녀의 모습은 다분히 환상적이었다.


물에 젖은 옷이 찰싹 달라붙어 소녀의 몸매가 환한 달빛 아래 그대로 드러나 보였었다. 뛰어난 안력으로 그 모습을 보던 주천운의 가슴이 갑자기 뛰었다.


'속옷을 여전히 입지 않고 있구나 .'


그렇다.


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흑의 위로 속옷을 입지 않은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소녀의 봉긋한 유방의 윤곽은 물론이려니와 작은 오디열매와 같은 젖봉오리까지 옷 아래 두드려져 보였다.


너무나도 밝은 달빛 덕분에 사라의 동작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 마리의 검은 인어인 양 헤엄을 치는 사라의 모습은 신비한 마력을 발하고 있었다.


이따금 물 속으로 잠입해 들어갈 때마다 그녀의 옷에 찰싹 들러붙은 동그란 둔부가 시선을 끌었다.


'아름답군.'


주천운은 더이상 몰래 보고 있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볍게 입을 열었다.


"사라, 무엇하고 있는 것이냐?"


"용 오빠군요!"


사라는 반가운 듯 교구를 물 밖으로 떠올리며 소리쳤다. 수발이 등 뒤로 들러붙고 옷이 바짝 살결에 감겨 고혹적이다 못해 폭발적인 염기마저 뿜고 있었다.


주천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물이 차갑다. 어서 올라 오너라."


"호호 ! 오히려 시원한 걸요. 용 오빠도 이리 오세요."


주천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생각없다."


사라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쳇! 용가가는 언제나 점잖만 빼는 군요."


그러나 그녀는 더이상 헤엄을 치는 것이 재미없다는 듯이 이윽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사라가 다가왔을 때 주천운은 시선을 둘 곳 몰라 방황해야 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사라의 나신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는 시선을 먼 하늘로 돌리며 말했다.


"감기 들겠다. 옷을 말려야 될 텐데."


"호호! 괜찮아요. 용가가."


사라는 깔깔거리며 상체는 흔들었다. 그 바람에 봉긋한 유방이 출렁였다. 물방울이 날려 주천운의 얼굴에 닿았다. 그런데 차가운 느낌은 도리어 그의 가슴에 더운 기운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내가 !'


그는 자신을 나무랐다. 피하는 것은 오히려 떳떳하지 못한 행위였다. 그는 시선을 돌려 사라를 정시했다.


"사라. 춥지 않느냐?"


사라는 그의 담담한 눈길을 받자 웬지 움찔하더니 몸을 웅송그렸다.


"그러고 보니 조금 추운 것같아요."


"불을 피워주마."


잠시 후 그는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바위 아래 경사진 곳에서 모닥불을 피웠다. 불길이 활활 지펴지자 금세 따스한 기운이 퍼졌다.


사라는 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쬐었다. 주천운은 나무를 불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사라."


"네?"


"우린 잠시 헤어져야 겠다."


" !"


사라의 몸이 가늘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의 동그란 눈에 문득 두려움의 빛이 스쳤다.


"나는 볼 일이 있어 먼 곳으로 가야 한다. 그 동안 너는 어른들을 따라 낙양으로 가 있거라."


"싫어요."


사라는 몸을 틀었다. 고개를 힘껏 저었기 때문에 머리칼이 날려 주천운의 뺨을 스쳤다.


"사라는 오빠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사라 ."


주천운은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알기로 사라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연경까지 함께 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사라를 만향원에 맡기려고 벌써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더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는 내일 혼자 몰래 떠날 심사였다. 당분간은 섭섭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졸려요. 용가가 ."


잠시 후 사라가 몸을 기대어 오자 주천운은 이만 가자고 말하려다가 마음을 돌렸다.


'어차피 내일이면 이별을 할 텐데.'


그는 사라의 몸을 가볍게 안았다. 따뜻한 감촉이 옷을 통하여 느껴졌다. 얼마 전 물에 젖은 사라의 육체가 떠올랐으나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사라는 소녀였다.


비록 아름답고 여인으로서도 어느 정도 성숙해 있었으나 그에게는 언제나 천진한 소녀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방금 전 한담 속에서 본 사라의 모습은 기이하게도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마음을 애써 지우며 사라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사라는 평온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금방 잠이 든 것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가가."


"응?"


뜻밖에도 사라는 자지 않고 있었다.


사라의 눈이 떠졌다. 이상한 열기가 그녀의 눈 속에 떠올라 있었다. 그가 흠칫하는 찰나 사라는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았다.


"사라 ?"


"안아 줘요."


사라는 그가 미처 뭐라고 말을 할 사이도 없이 목을 당기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주천운은 황급히 그녀를 밀어내려다가 손에서 힘을 뺐다.


따뜻하고 향기로운 숨결이 느껴졌다. 사라는 입술을 반쯤 벌리며 말했다.


"사라는 오빠가 좋아요."


"나도 네가 좋단다."


그는 아차 싶었다. 일순 사라의 눈에 열기가 짙어지더니 호흡이 빨라졌다.


"사라는 ."


더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이유는 사라가 갑자기 그의 입술을 자신의 뜨거워진 입술로 덮었기 때문이었다. 실로 대담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나긋나긋하고 뜨거운 소녀의 입술이 힘껏 눌러오자 그는 정신이 산란해 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려 하였으나 사라가 목을 꽉 끌어안고 있어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 !"


그는 흠칫했다.


입술을 비집고 사라의 혀가 영활하게 침입해 온 것이었다. 절로 비명이 나올 지경이었다. 일개 소녀로만 보았던 사라가 이런 대담한 짓을 감행할 줄이야.


이건 거꾸로 되어도 한참은 거꾸로 된 일이었다.


주천운이 누구인가? 그는 여자를 사로잡는 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뿐더러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리어 사라에게 농락당하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이렇게 된 이상 무정하게 사라를 밀쳐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사라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왕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사라의 가냘픈 허리를 부드럽게 안고 말았다.


사라는 당돌하고도 집요했다. 그녀는 혀를 영활하게 움직여 주천운을 희롱하고 있었다. 주천운은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서 그녀의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상태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그는 목구멍으로 무엇인가 달콤한 액(液)이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사라가 혀로 밀어보낸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타액이려니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단전(丹田)이 후끈해지는가 싶더니 곧 걷잡을 수 없는 열기가 그의 전신을 끓어오르게 하는 것이 아닌가?


'미약(迷藥)!'


그것을 깨달은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그가 느꼈을 때는 이미 전신의 혈맥이 팽창한 이후였다.


'이럴 수가 !'


그는 힘껏 사라를 밀어냈다. 그러나 그의 손에 이미 힘이 없었다. 게다가 사라는 문어처럼 그를 휘감았다.


"가가 ."


사라의 달콤한 음성이 귓전에 부어지는 순간 그는 억제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꿈같은 순간이었다.


달빛 아래 사라가 옷을 벗었다. 마치 허물 벗듯 장삼을 아래로 끌어 내리자 속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적요한 나신이 뽀얗게 드러났다.


소녀답지 않게 탱탱한 젖가슴과 미끈한 다리 . 둔부는 만월(滿月)인 양 풍요로웠다. 사라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된 채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뱅어처럼 놀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자 주천운의 옷도 하나하나 허물을 벗었다.


"용서하세요. 가가 . 이러지 않고는 사라는 견딜 수가 없는 걸요. 운명을 저주해요. 그러나 가가의 흔적을 사라는 갖고 싶답니다 ."


사라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주천운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욕망밖에 없었다. 그는 이글거리는 용광로이자 불덩어리였고, 화산(火山)이었다.


어느덧 그의 몸도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 나신 위에 사라의 완전무결하도록 아름다운 나신이 겹쳐졌다.


달빛은 바위의 경사진 곳까지 스며들었다. 물보라는 바람에 밀려 이따금 두 개의 뜨거운 몸뚱이 위에 물방울을 흩뿌렸다. 그 가운데 사라의 몸이 흐느적거리듯 움직였다.


사라는 울고 있었다. 머리칼이 장막처럼 쏟아져 주천운의 머리를 가두었다. 그 속에서 두 얼굴이 겹쳐졌다. 다음 순간 주천운은 견딜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라가 그의 사지를 단단히 얽어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위치가 바뀌었다.


"아 !"


사라는 비명을 발했다. 주천운이 그녀를 옆으로 쓰러뜨린 것이다.


사라의 가냘픈 몸이 거친 암벽에 긁혀 가벼운 혈흔을 남겼으나 주천운은 개의치 않았다.


이 순간은 다만 굶주린 맹수가 먹이를 놓고 덤비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을 뿐이었다.


"흐으윽!"


사라의 입술이 벌어졌다. 이어 눈이 크게 떠졌다. 맹수처럼 덮치는 주천운의 공격에 그녀의 온몸이 화살을 맞은 듯 경련을 일으켰다.


한껏 치켜 뜬 사라의 눈 속에 달이 이지러지고 있었다. 그때 주천운의 모든 것이 그녀의 깊은 곳에서 용트림하고 있었다.


"아아!"


사라의 입술이 딱딱 벌어졌다. 그녀의 가냘픈 사지가 요동쳤다. 그녀는 주천운의 목을 끌어안은 채 신음했다. 희열이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희열이 그녀의 몸을 온통 분열시키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사나이의 뜨거운 정혈이 폭포수처럼 분출했다.


"용가가 !"


그녀는 아득하게 온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부르짖었다.



"사라 !"


폭포수 옆의 바위에서 그가 깨어난 것은 새벽녘이 다 되어서 였다. 모닥불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의 일이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바닥에는 분명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사라가 남긴 파과(破瓜)의 한 송이 붉은 꽃망울이었다.


주천운의 얼굴에, 입술에, 손에, 가슴에도 그 밖의 모든 부분에도 향기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사라의 향기, 소녀의 향기, 아픔의 향기였다.


"사라!"


그는 장원으로 달려왔고 곧장 사라의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사라는 사라지고 없었다. 오로지 그녀가 남긴 것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청의의 찢어진 조각 하나뿐이었다. 사라의 옷자락이었다.


거기에 글이 쓰여져 있었다.


<운명(運命)을 저주(詛呪)해요! 가가(哥哥)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날 낳아 준 어머니가 원망스러워요!>


알 수 없는 전율이 주천운의 몸을 경직되게 만들었다.


'무엇이 이 소녀로 하여금 운명을 저주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무엇이 ?'


주천운은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막연하기만 하던 불길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파먹으며 달려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설마 !'


그의 손에서 청삼자락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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