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건곤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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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087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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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一擲

제3권 제30장 동창(東廠)의 기인(奇人)



천백룡은 문창해가 원하는 대로 그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문창해는 그를 극진히 대우했으며 밤낮없이 함께 있기를 좋아했다.


화원에는 이제 갓 새싹을 돋아내는 온갖 수목들이 질서정연하게 심어져 있었으며 인공으로 만든 연못 주위에는 수초들이 하늘거렸다.


잘 다듬어진 정원석들 위로 유리알같은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문창해는 화초를 가꾸는 취미가 있었다. 그는 화초만을 따로 모아 놓은 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방은 온도조절까지 되어 있어 겨울에도 화초를 잘 보살필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그는 지성을 다해 화초를 가꾸어 왔다. 잎이 누렇게 죽은 것이 있으면 밤잠을 자지 않고 돌보는 그였다.


그는 지금 매화가지를 쳐주고 있었다. 시들은 동매가 가지에 얹혀져 있는 것을 떨어내고 알맞은 모양으로 가지를 쳐주는 것이었다.


가지를 다듬는 그의 손이 눈부실 정도로 희고 고왔다.


백룡은 연못 주위에 서 있는 정자에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문창해. 언젠가 이 친구는 문명(文名)을 떨치게 될 것이다. 아까운 것은 그의 출신이다.'


그렇다. 문창해는 그의 부친이 환관 출신이었기 때문에 출세에 한계가 있었다. 그 역시 환관이 되는 이상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백룡은 문창해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학문의 깊이를 알았다. 비록 닭잡을 힘도 없을 만큼 유약한 성격이었으나 학문만큼은 대유학(大儒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반면 문창해도 백룡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일개 강호의 무사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백룡은 그야말로 보기 드물 정도로 깊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에게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믿을 수 없으리만큼 헌앙무비했다.


문창해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백 형은 거인(巨人)같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문득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언젠가 아버님을 따라 자금성에 입성했을 때 . 먼 발치서 뵈온 폐하에게서 느꼈던 군왕(君王)의 기도 . 그런 느낌이 백 형에게서도 풍긴다.'


순간 문창해는 흠칫했다.


그는 정자 쪽으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백룡은 정자 난간에 기댄 채 연못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문득 문창해의 머리 속에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소리쳐 백룡을 불렀다.


"백 형!"


" ?"


백룡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문창해는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백 형은 강호인이니 물론 입신양명(入身楊明)에는 뜻이 없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백룡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오?"


문창해는 담담한 미소를 띄었다.


"선비가 글을 읽는 것도 이상(理想)이 있기 때문이오. 마찬가지로 무사가 검을 연마함에도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오."


문창해는 눈빛을 빛냈다.


"소제가 보기에 백 형의 무예는 신의 경지에 이른 것같소."


" ."


문창해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백 형이라면 동창에서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백룡은 곧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흥미 없소이다. 나는 한 번도 관(官)에 투신할 생각은 품어보지 못했소."


"관이 아니오."


" ?"


백룡이 의아해하자 문창해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아버님께서는 최근 한 가지 대사(大事)에 몰두하고 계시오."


백룡은 상체를 바로잡으며 되물었다.


"대사 ?"


"잘은 모르나 동창의 모든 힘을 기울여 한 가지 일을 꾸미고 있는 듯하오."


문창해는 음성을 낮추었다.


"그것은 관부와는 무관하나 어쩌면 천하(天下) 안녕에 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분명하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문창해는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무림(武林)과 깊은 관련이 있소이다."


문창해는 은근한 눈빛으로 백룡을 바라보았다.


"자세한 것은 아버님만이 알고 계시오. 한 번 만나보시지 않겠소?"


백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는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무림에 관련된 일이라면 어느 정도 흥미는 있소."


"잘 되었소. 마침 아버님께서도 퇴궁하셨소. 이 기회에 백 형을 동창에 영입한다면 앞으로 계속 가까이 대할 수 있게 될 것이오."


단순한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순수한 마음으로 인해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남자(男子)가 여인과 다른 점은 어디에서도 나타난다. 우선은 피부가 그렇고 다음은 수염이다. 그리고 음성 또한 다르다.


그러나 예외인 경우가 있다.


환관(宦官)은 황궁의 내전(內殿)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예로부터 남자의 상징을 거세함으로써 황제의 처첩을 관리하고 측근에서 보살피는 일을 해왔다. 환관은 비록 남성이 거세되었다 해도 권력은 막강했다. 역대 황제들은 환관을 중용함으로써 숱한 겁난을 당해왔다.


환관정치(宦官政治)라는 말이 나돌 지경으로 그들의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인재의 등용에서부터 봉고파직에 이르기까지 환관의 입김이 스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당금의 대명의 특수조직인 동창의 책임자가 환관인 것도 그 경우였다. 동창은 황제직속기관으로서 권한은 무한대였다. 언제라도 비밀리에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며 고관대작을 체포 구금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검박하게 꾸며진 대전 안이었다.


"네가 백장천이란 아이냐?"


여자도 남자도 아닌 음성이 들려왔다. 어찌 들으면 가냘프기 까지 한 음성이었다.


태사의에는 한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피부는 여인처럼 희고 깨끗했으며 수염이 없었다. 얼굴의 윤곽도 여인처럼 섬세했다. 문사릉 바로 동창의 책임자였다.


백룡과 문창해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백룡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의 옆에 있던 문창해는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님. 백 형은 소자의 목숨을 여러 차례 구해주었습니다."


"못난 놈!"


" !"


문사릉의 싸늘한 일갈에 문창해는 일순 당황을 금치 못했다. 문사릉이 다시 입을 떼었다.


"너는 이 아비가 사람을 쓰는 데 사정(私情)을 동원한다고 생각하느냐?"


문창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버님 ."


"대내(待內)의 일을 관장하는 것은 곧 대명조의 운명이 달린 일, 어떤 경우라도 사적인 감정을 내세워서는 안 되는 법이다."


문창해는 고개를 떨구었다.


"소자 명심하겠습니다."


그는 곧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소자가 백 형을 천거하는 것은 소자를 도와주어서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 때문이냐?"


"백 형이야말로 진정 명조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문창해는 침착한 음성으로 말했다.


"첫째는 무공이 불가해하게 높은 무인이라는 점입니다."


"둘째는?"


"애당초 입신양명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순간 문사릉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셋째는?"


문창해는 다소 쑥스러온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은 백 형이 부탁한 것이 아니라 소자 스스로 생각해 낸 일입니다."


"허어 ."


문사릉은 한순간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힐끗 백룡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뿐이냐?"


"또 있습니다."


"무엇이냐?"


문창해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신중하게 말했다.


"결정적인 것은 아버님께서도 좋아하실 거라는 점입니다."


문사릉의 눈썹이 위로 바싹 치켜 올라갔다.


"내가 좋아할 거라고? 무슨 뜻이냐?"


문창해는 감탄의 기색으로 백룡을 바라보았다. 백룡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백 형은 무(武)에만 능통한 것이 아니라 문(文)에도 해박하기 때문입니다."


문사릉의 눈에 기광이 스쳤다.


"문무를 겸전했단 말이냐?"


문창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흐음 !"


문사릉의 표정이 몇 번의 변화를 일으켰다. 이윽고 그는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입을 떼었다.


"여봐라!"


"여기 대령하였사옵니다."


문가에 서 있던 청초한 인상의 두 시녀가 옥음으로 대답했다.


"가서 문방사보(文房四寶)를 가져오너라."


"네."


잠시 후 두 시비는 문방사보를 가져왔다. 한 눈에 보아도 고급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그것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문사릉이 그를 향해 말했다.


"장천, 자네를 시험해도 되겠나?"


백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억양이 없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불초는 굳이 시험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백 형 ."


문창해가 옆구리를 찌르며 눈짓을 했다. 그러나 백룡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불초는 본래 강호야인으로서 대인(大人)의 눈에 들기 위해 아부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문사릉의 눈썹이 미미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호오. 그게 사실인가?"


"그렇소이다."


"그럼 가게."


문창해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아버님!"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그는 난처한 기색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백룡은 일어나서 문창해에게 정중히 포권했다.


"문 형. 그 동안 실례 많았소이다. 불초는 아무래도 이 곳이 불편한 것같소. 야인은 야인의 삶이 있는 것. 후의는 가슴에 간직하고 차후 뵙겠소."


문창해는 멍한 표정으로 백룡이 미련없이 돌아서서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잠깐."


백룡은 의혹의 표정으로 문사릉을 바라보았다. 문사릉은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성질이 급하군. 갈 때 가더라도 한 자 남기는 것이 어떤가?"


백룡은 싱긋 읏었다.


"좋습니다."


그는 시녀에게서 붓을 받아쥐고는 종이가 아닌 값비싼 비단에다 일필휘지로 휘갈겨 썼다.


<군자대도행(君子大道行)>


간단명료한 글이었다. 흔한 글귀였다. 하지만 비단천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문사릉의 눈썹이 눈에 띌 만큼 크게 떨렸다.


문사릉은 서체(書體)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백룡의 서체 속에 숨어 있는 활달한 기상과 고고한 기품을 한 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오오 . 정녕 훌륭한 서체군. 필치는 왕희지(王羲之)를 닮았으되 약하지 않고, 이태백공(李太白公)의 서체처럼 활발하나 또한 군왕지기가 엿보이니 정말 노부 평생 처음 보는 명필이네!"


문창해도 서체에는 어느 정도 조예가 있었으나 지금 이 순간 문사릉의 안목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 아버님의 학문의 조예는 내가 평생 닦아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깊구나.'



극적인 경우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백룡은 그날 이후 문사릉의 눈에 들었다. 문사릉은 크게 흡족해하며 그를 격찬했다. 뿐만 아니라 문사릉은 백룡을 가까이 머물게 했다.


문창해는 더할 수 없이 만족해 했다.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가까이 지기를 항상 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쁘기 짝이 없었다.


한편 상여홍도 문창해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녀 역시 백룡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코 남녀간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녀는 오직 문창해를 사랑했고 백룡은 어디까지나 그를 알게 모르게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로 인식할 뿐이었다.


3남녀는 매일같이 어울렸다.


3월이 가고 4월이 오자 우화대(雨化臺)는 절경을 이루었다. 벚꽃이 만개해 바람이 불 때마다 꽃비(花雨)가 휘날려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것이다.


3인은 나란히 우화대 위에 올라 정담을 나누었다. 제자백가(諸者百家)에서 영웅호걸의 기담에 이르기까지 온갖 얘기를 다 했다.


문창해는 특히 백룡으로부터 강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겨했다. 상여홍도 무림의 얘기가 나오면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열심히 들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호호 !"


상여홍은 붉은 궁장을 나풀거리며 호숫가를 뛰었다. 그 뒤를 문창해가 쫓았다.


4월의 햇살이 상여홍의 윤기 흐르는 머리 위에 내려 앉아 밝은 빛을 뿌렸다.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뛰어가는 두 선남선녀. 마치 한 폭의 도원경을 보는 듯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백룡은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으나 그의 마음은 착찹했다.


'벌써 이 곳에 온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무런 소득이 없다. 아버님의 원수가 황궁과 관련이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을 타일렀다.


'서두르지 말자. 동창은 간단한 조직이 아니다. 언제고 기회는 있을 것이다. 다만 .'


그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문창해는 밝고 솔직하며 청렴한 친구다. 이번 일로 그와 원수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


그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우화대에 한 중년인이 나타났다. 자삼복장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동창의 비밀위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문득 백룡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백룡은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수다.'


중년인은 천천히 다가왔다.


이윽고 백룡 앞에 이른 그는 정중히 포권을 했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에서는 어떤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공자께서 백 공자시오?"


백룡도 같이 포권하며 대답했다.


"그렇소이다만?"


중년인은 침착한 음성으로 말했다.


"본인은 동창 자삼위대(紫衫衛隊)의 위소천(韋小天)이라는 사람이오."


"아! 그렇소이까? 그런데 무슨 일로 ?"


"대인께서 부르시오."


'문 대인이?'


백룡의 흠칫했다. 그는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명을 받겠습니다. 그러나 우선 문 형께 ."


그 순간 위소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소이다. 문 공자께도 따로 기별을 할 것이오."


백룡은 흠칫했다. 위소천의 태도가 지나치게 신중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문창해와 상여홍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으나 그들의 모습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알겠소이다."


위소천은 그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손짓을 했다.


한 필의 흑마(黑馬)가 그들 앞으로 달려왔다. 잡털 한 올 없는 명마로 맑은 눈빛과 날렵한 다리를 지니고 있었다.


백룡은 탄복했다.


"정말 훌륭한 말이요."


"흑아(黑兒)를 타고 가시오. 그 곳에서 대인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이오."


" ?"


백룡은 의혹을 느꼈으나 말에 올라탔다.


히히힝!


말이 미끄러지듯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백룡은 경악했다. 흑아가 네 발굽을 딛자 나르는 듯 허공을 내질러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빛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 주위의 풍경들이 환상을 보듯 마구 스쳐갔다.


흑아는 계속 질주를 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상 위의 백룡은 점점 의혹이 깊어졌다.


흑아는 자금성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었다. 광안문을 지나 방향을 틀어 북(北)쪽으로 가고 있었다. 행인들은 말이 지나 갔는지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그저 한 줄기 흑풍이 스치는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문득 백룡은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이 쪽으로 가면 극락사(極樂寺)가 있는 곳인데.'


극락사는 유명한 사찰이었다. 자금성을 끼고 도는 호성하(護城河)변을 따라가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나타나는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히히힝!


외마디 울음을 울며 흑아가 걸음을 멈추었을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극락사의 금빛 편액이었다.


"아미타불 !"


어디선가 불호가 들려왔다.


백룡은 흠칫했다. 목소리에 정순한 내력이 깃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재빨리 흑아의 등에서 내렸다. 그때 홍의가사(紅依袈裟)를 입은 한 중년화상이 합장을 하며 그의 앞에 나타났다.


나이를 예측하기 어려운 동안(童顔)의 중년화상이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물처럼 담담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호수처럼 잔잔한 눈으로 백룡을 바라보았다.


"백장천 시주가 맞는지요?"


"그렇소."


"소승을 따라 오십시요. 문 대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극락사의 경내는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사찰이면서도 의외로 한적했다.


그들은 승방을 지나고 대웅전을 지났다. 건물들은 대체로 낡아 있었으나 은은한 정취와 함께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윽고 울창한 죽림(竹林)이 나타났다. 북쪽 지방에서는 대나무가 살기 힘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대나무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백룡은 내심 감탄했다.


'이것은 귀하기 그지없는 금강오죽(金剛烏竹)이구나.'


대숲의 한가운데로 조그만 오솔길이 나 있었다. 오솔길 초입에서 중년화상은 합장을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시주께서 혼자 들어가셔야 합니다."


"알겠소이다."


백룡은 혼자 길을 걸어갔다. 무슨 일이길래 이토록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지 궁금했으나 지금으로서는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스스스 !


바람에 대숲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청랑한 기운이 전신에 스며들어 오는 듯했다.


몇 걸음 들어가자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대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게 솟아 있었던 것이다. 바닥에는 단단한 청석이 깔려 있었다.


문득 백룡은 마음이 숙연해졌다.


약 반 마장 정도 갔을까? 죽림의 한가운데에 낡은 사당이 한 채 나타났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허름한 것이었다. 주위에는 괴괴한 적막이 감돌고 있어 흡사 폐쇄된 토지묘같은 느낌이 들었다.


'극락사 경내에 이런 곳이 있다니 ?'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한가닥 맑은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


순간 백룡은 충격을 받았다.


'목탁음으로 나를 시험하고 있다!'


똑똑똑 !


그것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탁소리는 끊일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백룡의 이마에 진땀이 배었다. 기혈이 흩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운공을 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의 정력이 조금만 부족했어도 이미 그의 심기(心氣) 산산이 흩어져 역혈하거나 주화입마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임이 분명했다.


백룡의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무서운 내공이다. 대체 누가 목탁을 친단 말인가?'


이때 백룡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잠시 정신이 분산되었던 것이다. 그는 가슴이 뜨끔했다.


백룡은 급히 공력을 모았다. 그러자 이마 위에서 허연 수증기가 무럭무럭 솟아나왔다.


이윽고 그의 마음은 명경지수같이 고요하게 가라 앉았다.


전혀 동요의 빛이 없는 그의 얼굴에는 온화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눈빛은 담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윽고 목탁소리가 멈추었다.


"아미타불 . 금강항마대승불음(金剛抗魔大昇佛音)을 통과하다니, 놀랍소. 소시주."


음성은 분명 맑고 낮았다. 그러나 그것은 백룡의 귀에 천둥소리처럼 엄청나게 들렸다.


백룡은 일어나 공손히 포권했다.


"어떤 고인께서 후배를 시험하시었소?"


낭랑한 음성이었다. 사당 안에서 청아한 불호가 들려왔다.


"아미타불 . 이리 들어오셔서 차(茶)나 한 잔 하는 것이 어떻소?"


백룡은 빙긋 웃었다.


"후배는 수양이 깊지 못한 탓인지 차보다는 술이 좋소이다."


그때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백 소협. 마침 노부가 오래 묵은 화설로(火雪露)를 가지고 왔으니 잘 되었군. 안 그런가?"


"대인(大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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