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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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507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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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12話 신혼여행4, 사흘 동안의 여행2


  31-1.
  “에라이. 아무리 나라지만 자기 때문에 군대가 몰려올 거라는 생각은 못하는 거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진? 제대로 자세 잡아.”
  “네에.”

  나는 진 분신126호. 황궁으로 외출나갔다가 감히 부인의 허락도 없이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그러니까 바람미수죄라는 이유로 누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녀석이다. 내 고통을 링크를 통해 충분히 공감하고, 알고 있는 진 분신 1호부터 분신 125호까지 나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저어준다.

  “자아, 제대로 자세 잡지 않으면 밤새도록 그렇게 세워둘테니까.”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었던 31번째 누나 레비가 히죽 웃으면서 나를 괴롭힌다. 그림 모델이 된 내 모습을 보고 눈을 빛내는 111번째 부인 아사가 내 몸이 뚫어져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 나는 명경지수와도 같은 마음으로 모델일에 충실해야 할 때. 자세를 잡고 하늘을 바라본다. 아아, 맑다.

  ‘누나들이 나를 괴롭혀.’

  다리 사이로 스치는 바람에 다리를 오므리고 싶은 기분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흐느낀다. 차라리 벗고 모델하는 것이 낫지. 이게 다 뭐야.

  “역시 진은 여장을 해도 잘 어울린다니까. 여자로 태어났으면 우리 중에서 제일 미인이었을지도 몰라. 오호호.”

  그렇다. 나는 아버지가 변태적인 취미를 즐기고자 온 제국령에 보급한 일본식 여자교복을 입고 자세를 잡고 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꿈꾸는 소녀처럼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는 내 눈은 이미 썩은 동태눈처럼 흐려져있다.

  “그나저나……그대로 묘사하지는 않았네.”
  “뭐, 이 봉긋한 가슴라인이야 적당히 만들면 되는 거고. 흐음. 이걸 걸어두면 사람들이 멍하니 바라보겠지? 오호호호!”

  누가 나를 구해줘. 이런 치욕플레이라니.
  무엇인가를 원하는 듯 반짝이는 31번째 누이를 밤에 어떻게 해버릴까를 생각하면서 ‘나’는 자세를 잡고 있는 나를 제외하고서는 모두들 고민에 빠졌다.

  “평화롭네♪”

  임신한 셋째 누나는 이 풍경을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훌쩍.

  32.
  “그런가?”

  다른 분신들이 속으로 투덜거리는 것을 전해 듣고서는 순간 찔끔한다. 생각해보면 이 도시에 들어온 외국인들 중에서 혼자서 돌아다니고 비슷한 체형을 가진 남자를 찾는다면 순식간에 대상이 나올 것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정확하게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말이지.”

  여자들이 모여 소녀를 보호하는 한 편, 지하통로로 빠져나가려는 방으로 향하면서 중얼중얼댄다. 솔직히 뻘쭘하기는 하지만 내가 떠올린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솔직히 나 하나 잡으려고 저렇게 대규모로 병력을 동원한다는 건 말도 안되고.

  ‘어제 그 쥐새끼 두들겨 팰 때 보인 무위를 생각해봐라. 설마하니 소드마스터 이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정도 병력은 되어야 뒤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 것 아냐.’

  순식간에 반론이 들어왔다. 따지고보면 이쪽도 맞는 것 같고.

  “에이, 어쨌거나 위기에 처하게 했으면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그러다가 바람피우면 ’나‘는 죽는 거다. 누나들에게.’

  아, 그거야 알아서 자제하면 될 일이니까.

  ‘알아서 할 게 아냐!’
  ‘네에, 네에.’

  절규하는 다른 분신들의 호소를 무시한다. 설마하니 여자가 꼬이겠어? 나름대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 뿐이니까. 히죽 웃으면서 방문을 연다. 순간 화들짝 놀란 듯한 여자들이 우르르 문에서 멀어진다. 그러면서 나에게 시선 집중. 나는 최대한 젠틀하고도 멋진 모습으로 말했다.

  “체크 아웃하러 왔는데요.”

  토끼들처럼 동그랗게 눈을 뜬 그녀들의 모습을 보자 실소가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안도하는 것 같은 그녀들의 모습에 조금은 골려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참으련다. 어디까지나 도와주고 조금은 신뢰를 얻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이곳을 향해 군대가 움직이고 있는데 여기에 있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저 때문인 것도 같으니까요. 어제 이 나라의 썩은 관리 몇 명을 좀 징계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 정도 규모의 병력이 이쪽을 향해 움직였다는 건 말도 안되고……. 아무래도 당신들에게도 볼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여기에 숨어있는 몇 분도 대충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일단 그런 식으로 내가 어느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식으로 운을 띄운다. 그러면서 슬쩍 힘을 개방하자 그림자에 숨어있던 몇 사람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는 5명. 어쌔신인가.

  “일단 정체를 밝히시지요.”

  그리고 그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것 같은 사람이 절묘한 위치에 서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절묘한 위치라 함은 그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소녀와 나 사이를 말한다. 일단 믿을 수 없다는 걸까. 하긴 나라도 믿을 수는 없겠지, 생각하면서 한 번 씨익 웃어주었다.

  “이름없는 은거기인에게 여러 가지를 배운 사람입니다. 이름은 진이라고 합니다. 정확한 정체는 알려드릴 수가 없어서 죄송하지만 적어도 적의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여러분들은 누구이시길래 군대가 움직이는데 이렇게 잔뜩 긴장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군대가 움직이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니…….”

  이름을 알려주면서 슬쩍 몸을 움직여 30대 여자가 안고 있던 소녀의 앞에 서서 이야기한다. 그저 슬쩍 보여주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심하게 놀라워했다. 일단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는 건 기본이고,

  “어라? 심장마비면 안되는데.”

  심약한 것인지 내가 너무 놀라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쯤 기절해버린 여자들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인다. 내가 무슨 귀신도 아니고 말야. 갑자기 옆에 스윽 나타난 셈이니 놀라지 않을 이유야 없겠지만. 기절한 여자들의 몸을 한 번 살피고는 안도한다. 그냥 놀란 거구나.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흐음. 일단 심장마비까지는 아닌 것 같고……. 뭐, 당신들이 보호하려는 사람이 이 아이인 것은 잘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꽤나 중요한 아이인 것 같네요.”

  내가 보여준 무위에 놀란 것인지 입을 딱 벌린채로 굳어버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싱긋 웃는다. 내 모습에 잔뜩 긴장한 것인지 소녀를 호위하던 사람들, 그러니까 아까 숨어 있던 사람들은 잔뜩 긴장한 모습. 아무런 말도 없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시를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이 주변에 간단한 진을 쳐서 안락하게 해보겠습니다. 아마 100만 대군이 몰려와도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당신들을 도와주겠다. 그런 태도로 이야기를 하자 어쌔신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몸에서 살기가 좀 수그러들었다. 그렇지만 근육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여차하면 나에게 달려들겠다는 의지가 충만해보인다. 좀 믿어주지. 소녀에게 아티팩트 목걸이를 걸어주며 나는 다시 싱긋 웃었다. 9클래스 마법이라고 해도 한 번은 막아줄 수 있는 아티팩트이니까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잘 걸어놓고 있어. 이 도시에 거대한 운석이 낙하해도 한 번은 막아줄 수 있는 녀석이니까. 아……미안합니다. 꽤 높은 신분인 모양이군요. 아가씨. 선물입니다. 받아주시겠어요?”

  내가 소녀의 목에 걸어준 아티팩트에, 아니, 소녀의 몸에 손을 댔다는 것 때문인지 살기를 마구 뿌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믿음이 없는 사회라니 실망했다.’라고 혀를 찬다. 하지만 이런 귀여운 소녀가 나를 믿어준다면 힘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으니……. 다시 한 번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소녀에게서 떨어진다. 아무래도 살기가 흉흉하게 내 몸을 찌르는 것에는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아직도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가만히 계세요. 나오면 위험해질지도 모르니까요. 건물 밖으로 나오면 무지하게 위험해질 겁니다. 이 아가씨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궁금하지만 밖으로 나간 분들이 군대를 막으려다가 다치는 걸 막는 것이 더 급한 것 같으니까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민을 해결해드립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건물 밖에 분신을 더 만들어낸다. 잠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니까 딱히 번호를 붙이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곳을 향해 움직이는 부대가 모두 다섯이니 분신도 다섯. 급한대로 땅 속에 묻혀있던 바위 몇 개를 꺼내 진을 구성한 후 발동시키고는 그 분신들에게 각각의 병력들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긴다.

  “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말했잖아요? 진이라는 사람이라고. 당신들에게 죄가 없으면 한없이 좋은 사람이 될 사람이랍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이 아이를 보호하는 당신들을 보면 죄가 없는 사람 같으니까 아마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믿어주시면 됩니다.”

  진을 발동시키자마자 이 여관 주변을 가득 채울 듯 짙게 깔리는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은 모양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못 믿어요. 어제 제 엉……덩이를 두들겼잖아요.”
  “뭐, 귀여워서 그랬던 것이니 안심하시죠. 아가씨. 일단 제가 이렇게 나선 것도 이런 귀여운 소녀가 있는 곳을 쑥밭으로 만들 군대가 오는 것 때문이니까요.”
  “변태.”
  “아아, 여러 가지로 낙담하게 되는 말이네요.”

  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가씨에게 내 정체를 밝힐까 말까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소녀에게만 전음으로 내 정체를 밝혀본다.

  ――제 이름은 진 맥세인 아슈레이. 미시어스 제국의 황태자입니다. 감히 아가씨의 이름을 청하게 되는군요. 참. 제 이름은 주변분들에게는 비밀입니다.
  “아앗!”
  “쉬잇. 비밀입니다.”

  제로스마냥 싱긋 웃으면서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좀 멀어지나 싶더니 갑자기 다시 바로 앞까지 나타나서 예쁜 입술에 손가락을 대는 내 모습에 놀랐는지 볼이 빨개졌다.

  “그 얼굴……진짜가 아니네요.”
  “뭐, 정체를 밝히시면 제 얼굴을 아가씨에게만 보여드리겠다고 약속드리죠.”

  볼이 빨개진 아가씨의 키에 맞추어 무릎을 꿇으면서 빙긋 웃었다. 자랑스런 나의 지골로 스마일……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에게도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자랑스런 미소가 발휘되었다.

  “비밀이 많은 사람은 못 믿는다고 했는데.”
  “뭐, 제가 여기에 있었다는 걸 들키면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테니까 말이죠. 이해해주시겠습니까?”

  통하지 않았다! 내 미소가! 통하지 않다니! 이런! 비극이 있나!
  살짝 좌절하면서 이해를 요청한다. 그런 내 말에 소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그 사람, 무지 변태라고 하던데.”
  “누가 그러던가요!”

  아아, 대체 나에 대한 소문은 어떻게 나고 있는 거냐! 내, 내가 누, 누이들과 겨, 결혼까지 해, 해버린 자, 잡놈이라지만 이런 평가는 너무한게 아닌가!

  “일단 반응을 보니 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은 드네요. 조금은 믿어줄게요. 손톱만큼만.”
  “아아, 감사합니다.”

  드디어 조금의 신뢰를 가지게 된 것 같다. 이 신뢰를 바탕으로 이름을 알아볼까.

  “제, 제 이름 말인가요? 음……알려드려도 될까요?”
  “마음만 먹는다면 저희 모두를 해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저희에게 해를 끼치기는커녕 궁중의 광대같이 웃기려고 드는 사람이니 알려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돈이 필요했다면 벌써 우리를 죽이고……모시고 갔을 겁니다.”
  “궁중의 광대라니…….”

  이름을 알아보려고 하다가 꽤나 냉혹한 평가를 받아버렸다. 조금 좌절.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한심함과 약간의 호기심을 담아서 보는 구경꾼들. 아아, 당신들이란 사람들은 나를 얼마나 나락으로 빠뜨려야!

  “알겠어요. 카를. 인사드릴게요. 나탈리 엔막스 프리그입니다. 반정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숨겨진 딸이죠. 당신이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의 능력이라면 묻지 않고도 알아내실 수 있을 것 같아 얌전히 알려드리는 겁니다.”
  “아아, 공주님이셨군요.”

  그러나 즉각 자신의 정체를 알려버린 프리그 왕국의 폐공주廢公主 때문에 내 마음 속의 절규는 성대 저 아래로 꾸욱 내려가버렸다. 흐음, 공주였구나. 그런 것치고는 꽤나 적과 가까운 곳에서 사는 것 같은데.

  “등잔밑이 어두우니까요.”

  좋은 방법이긴 한데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건 좀 아니지 않을까 싶은데. 한숨을 내쉬면서 느긋하게 자리에 앉는다. 두 손은 비무장 상태로.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손님인데 차는 대접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젠틀하고도 멋진 자세로 대화를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화가 난 듯한 소녀의 고함. 아아, 소녀여. 환상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구나.

  “지금 상황에서 차가 넘어가나요! 게다가 그 느끼한 말투는 다 뭔가요!”
  “느긋해지시면 됩니다. 이 위기를 벗어나시고 왕위를 재탈환하는데 성공하시면 여왕이 되실 분인데 이런 일 정도는 대범하게 넘기셔야…….”

  내 설득이 먹힌 것인지 포기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 앉는다. 호오, 각각 다섯명씩, 총원 25명의 ‘공주님 수호대’는 군대의 진군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곳을 향해 움직이는 군대를 지휘하는 하급지휘관들을 제압하면 되겠네. 분신들의 시야를 공유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되도록 병사들에게는 피해가 없도록 하자. 나쁜 것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려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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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안되면 이분들이 국외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잠시의 침묵. 그리고 그 끝에 소녀는 이런 말을 꺼냈다.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병력 30명에 무력을 사용할 수 없는 여자 30명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다. 이 아이는.

  “공주님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득 알고 싶어졌다. 이 아이가 따듯한 마음을 가진 군주가 될 수 있는지. 다른 나라의 일에 간섭하는 일이지만 최소한의 명분은 내 마음 속에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거예요. 질렸거든요. 도망가고, 쫓아오는 사람들을 죽이고……아마도 저를 보호하시는 분들도 지치셨을 거예요.”

  50점. 하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50점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지금 이 나라의 위정자들보다는 나을테니까.

  “그렇다면 지금 움직이도록 하지요. 군대는 제압했습니다. 병력은……프리그 왕국의 부흥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왕궁으로 진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적어도 민심은 전대 왕을 그리워하고 있으니까요.”

  왕궁 내의 모든 병력을 제압했다는 임시분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몸을 일으킨다.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사람들을 향해서 한 번 싱긋 웃어주고는 말한다.

  “보통 이런 걸 두고 기적이라고 하지요. 지금은 제가 도와주는 상황이라 일이 쉽게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떠나고 나면 힘들어질 겁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는 생각해두도록 하세요.”

  이곳의 사람들의 표정과 비슷하게 경악한 것 같은 25명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고서는 임시 분신들을 다시 회수한다.

  “허락없이 움직인 건 용서해주시겠지요? 프리그의 새로운 여왕님?”

  그리고 나는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하고 있던 소녀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 내 손을 잡아왔다. 모두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지만 나를 따라서 문을 나선다. 갑작스런 군대의 움직임에 놀란 프리그 왕국의 왕도 루테시아의 사람들이 문을 닫아 건 것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성격이 급해서 그냥 얼렁뚱땅 해치워버렸습니다. 이제 왕궁으로 가시지요.”

  신뢰는커녕 귀찮은 나머지 대충대충 일을 끝내고는 그렇게 말한다.

  33.
  “저, 정말로.”
  “이 중에서 쓸만한 사람들은 저 편에 남겨두었습니다. 이쪽은……그렇네요. 그냥 쓸모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숨어버린 왕도의 텅 빈 거리를 행군하듯 걸어 왕궁에 도착해서는 후속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서는 것이 아니라 소녀를 앞장세운 파천황적인 일처리다.

  “어떻게 할까요?”
  “그건 여왕님의 마음에 달린 문제이겠지요. 피를 보기 싫으시다면 유폐하는 방법도 있고 후환을 생각하면 모두 사형시키는 방법도 있겠지요. 제가 나설 일은 없습니다.”

  설렁설렁, 대충대충.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는 식으로 소녀에게 판단을 종용한다. 그리고 소녀, 아니 이제 프리그 왕국의 새로운 여왕이 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버지의 원수인 폐위된 왕과 그에게 아부하던 귀족들을 모두 지하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내가 분류해둔 ‘쓸만한’ 귀족들에게는 다급한 행정업무를 맡긴다. 아직 태양이 중천까지 뜨기 전의 일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하죠?”
  “생각해보세요.”
  “갑작스러운 일이라서……잘 몰라요.”

  일을 처리하는 동안 여왕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갖춘 그녀가 나에게 일일이 다음 대책을 요구해왔다. 아무래도 자신의 힘으로 뒤집지 못해서인가. 한숨을 쉬면서 그녀가 나에게 의지하게 만든 내 귀차니즘을 반성한다.

  “정리해보겠습니다. 나탈리 엔막스 프리그 여왕전하께서는 5년 전, 쿠데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으셨습니다. 전대 국왕이신 막스 맥조안 프리그 전하께서 숨겨두셨던 딸이셨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3년간, 여왕전하를 보호하던 150명의 병력은 30명까지 줄어들 정도로 추격을 받았으며 2년 전, 이 수도로 잠입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살아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시면서 평범한 여관의 종업원으로 사시기 시작했지요. 대신 여왕전하를 수호하던 분들은 용병으로 변신하여 돈을 벌어왔고 여관에서 소비하는 식으로 여왕전하의 신변에 문제가 없도록 노력하였구요. 그러는 동안 이 프리그 왕국에서는 폐왕의 말도 안되는 정책으로 민중이 고통받기 시작했고, 전대 국왕전하를 그리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왕전하께서는 기인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왕권을 되찾는데 성공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재 왕궁까지만이 여왕전하의 세력권이고 아직 이 상황을 모르는 도성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은 여왕전하의 편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지방의 영주들이라거나 국경수비대 또한 여왕전하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왕전하께서는 답을 아시겠습니까?”

  좀 많이 축약하기는 했지만 질문을 던지자 여왕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제가……돌아왔다고 알려야 하는 건가요?”

  라는 것이었다. 아아, 순진한 소녀로구나. 쓰게 웃으면서 왕권이 굳건히 살아있을 때면 모를까 지금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귀찮으시겠지만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이편에서 반격에 들어가서 성공했다는 것을 안다면 저 치들은 필시 여왕님을 제거하려고 병력을 움직일테니까요. 먼저 도성을 방어하는 1만의 병력과 도성에서 거주하고 있는 30만의 시민들을 포섭하셔야 합니다. 그 이후에 지방의 영주들 중에서 옥석을 가르고 여왕전하의 편에 설 영주들에게만 도움을 요청하고 또, 주어야 합니다. 여기까지하는데 이틀을 넘겨서는 안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잠시 숨을 고른다. 이틀이라는 시간. 한계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여왕의 질문이 떨어졌다.

  “왜죠?”
  “혼란은 짧을 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 넘기면 제 부인들이 낌새를 챌 확률이 높으니까요.”

  어째 결론은 이상하긴 했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등골이 서늘하다. 그 때문에 죽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구석으로 물러나서 쭈그려 앉는다. 아아, 들키면 난 죽음일지도. 욱하는 김에 저질렀지만 생각해보면 들키면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진 밖으로 나온 누이들이 내 기척을 알아채고 저 편에 남아있는 내 분신들을 닦달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이고 머리를 식혀야 할 일이 있을지도…….

  “공처가인가요?”
  “애처가입니다.”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왕을 보면서 쓰게 웃는다. 일만에 가까운 병력을 손실없이 그것도 단독으로 제압한 남자가 아내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이런 남자를 떨게 하는 아내들의 무위를 추측해보거나.
  어쨌거나 이미 구겨진 이미지를 회복하려는 마음으로 좋은 이야기를 해본다.

  “지금은 이 자리가 버거우실 겁니다만……좋은 인재를 가려쓰시고 이 나라의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실 수 있다면 훌륭한 왕으로 추앙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뭐,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노력해보세요. 여기까지가 제 충고입니다.”
  “알겠습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 대전에서 나와 기지개를 켠다. 이제야 겨우 점심이다. 오늘은 꽤나 할 일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잠시 왕궁 밖의 모습을 바라본다. 여전히 문을 걸어잠그고 불안에 떨고들 있는 모습.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젓는다. 나설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관용을 기치로 내세운 여왕의 행보에 불안한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을 뿐, 나서서 무엇인가를 해볼 용기가 사라진 사람들이었다.

  “스스로 쟁취하지 않으면 영광도 없겠지.”

  히죽 웃으면서 근처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에 내 등을 뉘었다.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여왕과 그 일행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쓸만한’귀족들과 행정관들을 포섭하기 시작하겠지. 그리고 피아를 가르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 때쯤 되어야 내가 나설 일이 생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는다.
  오늘 나는 한 나라를 뒤집었고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답답함을 보았다. 물론 그 후에 그 답답함을 덜 행동들을 보여주기를 바라고는 있지만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면 그렇게 나오지는 못할 것 같다.

  “포섭할만한 영주 명단은 서류 더미 속에 끼워두었으니 알아서들 하겠지.”

  덧붙여 여왕의 품속에도. 느끼지는 못했겠지만 발견하고 나면 화가 좀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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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생각도 없이 적다보니 엉망이 된 오늘의 글. 사죄드립니다(납작)
어쨌거나 혼자서 나라를 뒤집어버린 우리의 주인공되겠습니다. 그래봐야 사람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금방 다시 뒤집어질 위태위태한 상황이지만.

캐릭터 소개
나탈리 엔막스 프리그. 13세. 프리그 왕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정통성 있는 왕족. 물론 여기에서 정통성이라 함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으로 그 아버지인 막스 맥조안 프리그가 불륜을 통해 낳은 딸이기 때문에 여기에 태클을 걸어버리려고 하면 대책이 없다. 그나마 지금 집권하고 있던 폐왕이 폭정에 가까운 국정운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 영주들의 반란만 막아낸다면 정통성에 태클을 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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