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요정들의 오너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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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273회 작성일 17-02-12 11:26

본문

5부부터 9부까지 올립니다.
 
리플달아주시는 것들은 제가 전부 갈무리해서 작가님께 보내드립니다.
 
혹시 아이디 공개 원치 않으시는 분께서는 쪽지 보내주세요~ 아이디만 지우고 보내드릴게요 ^^
 
그럼 즐감~~
 
<5부>


#1.탐정..휴업!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분위기는 정말 이루 말할수 없을 만큼 묘했다.유나는 군데군데 엉망이 되어버린 옷가지
를 부여잡고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고,올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와 떨어져 앉아 있는 세라역시 아무말 하지
않았다. 나는 룸밀러로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또 곁눈질로 쎄근쎄근 잠들어 있는 노아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까의 그 상황.아마 평생 잊을수 없는 광경임에 분명했다.노아가 정령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태평양이라도 불태
울수 있을것만 같던 마유미의 화염은 단 5초만에 잠식되어 버린 것이다.비록 나온지는 얼마 안되었지만,언제나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던 노아에게는 그런 무시무시한 힘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리고...마유미는 분명 노아때문에 힘들다고 말을 했다.그건 또 무슨뜻일까?내 손만 잡고 있던 노아가 도대체
무슨일을 했다는 거지?그리고..도대체 2차개화의 의미는 뭐지?

마음속에 궁금증이 곰실곰실 올라오고 있지만,그것을 뒤에 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기에는 너무나 상황이 뻘쭘했
다.유나와 세라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까...항상 장난기 넘치고,스킨쉽 좋아하는 유나도 돌아가는 차안에서 내
내 아무말 없이 창밖만을 보고 있다.내 탐정 라이프 사상 최고액의 의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내 마음은 차안
의 분위기처럼 무겁기만 했다.

"어라?"

막 내 사무실이 있는 건물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나는 번호판이 가려져 있는 고급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것을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이상한 일이네.이 동네에는 전혀 안어울리는 외제차인데...

"다왔다.얘들아."

"으으으응.."

노아는 잠에서 덜깬 목소리로 칭얼대며 어리광을 부린다.그냥 놔두면 계속 저런 상태인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별수없이 노아를 품안에 안아들고 차에서 내렸고,세라와 유나가 조용히 내 뒤를 따랐다.

어둑어둑하고 칙칙한 오래된 건물안으로 들어가면서 외투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열쇠를 찾던 나는 복도에서 우뚝
하고 멈춰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외제차의 주인을 알겠군.저 양반이었구만.그는 다름아닌 내 의뢰인이었다.여전히 중세시대 귀족마냥
수행원을 달고 다니는 저 사람.불이 붙었다가 꺼져버렸다는 기이한 보고를 듣고 아마 발바닥에서 불이나게 달려
왔겠지.하하하.축하하우.내가 돈을 밝히는 덕택에 댁의 구린 뒷면은 이제 세상이 모를 테니까.

"아..예."

나는 씁쓸하게 대답하고는 열쇠로 사무실문을 열어주었다.오랫동안 비운탓에 한기가 몰려왔지만,그는 전혀 개
의치 않고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불이...꺼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만...도대체 어떻게 하신 건지요?다른 분이 한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거기에 있던 직원중 한명이 선생님을 봤다고 하더라구요."

캬하하하.내 생애 선생님이라는 말도 들어보고....나 출세했구나.

"별거 아닙니다.그 J라는 사람은 잡지는 못했지만.....뭐....방화를 하지 않도록 회유하는데 성공했다고 해야하
나요..그렇게 설명하는게 가장 쉽겠군요."

내 요상한설명을 듣더니 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이내 영업적 성향이 잔뜩 묻어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품안에 안겨 또 꾸벅꾸벅 조는 노아가 깨지 않도록 쇼파에 잘 올려놓았다.이제야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
는 모양인지, 의뢰인 중년은 세라와 유나,그리고 노아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하하.그러시군요...여튼 너무 고생이 많으셨습니다.그런데...실내가 꽤나 춥군요..하하."

실내라서 추운게 아니라우.지금 유나가 꽤 열받아 있는상태거든.그래서 냉기가 더 방출되는 겁니다. 저녀석은
바로 프로즌 레이디....에이...관둡시다.

"약속대로....잡지는 못했지만 방화는 막았습니다."

내가 재촉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 하자 그는 씨익 웃으며 조수에게 손짓을 했고,그는 들고 있던 007가방을 나
에게 넘겼다.

"약속한대로...정확히 현찰 1억입니다."

나는 최대한 속물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쓰며 환하게 웃었다.왜냐고? 저 녀석은 슬슬 눈치를 챌지도 모른다.자신
이 하고 있는 그림경매가 결코 온전한 루트가 아니라는 그 사실을 내가 알고있다는 것을 말이다.그렇게 되면 상
당히 귀찮아 진다.나름 이 바닥에서 느낀 사실이지만,이런 스타일의 남자는 남이 비밀을 알게 되면 그것을 잘어
르고 달래서 비밀을 지키게 하는것보다 협박하는 방법을 택할 사람이니까. 귀찮은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면,나는
돈을 엄청 밝히고 당신일에는 관심없수다...하는 뉘앙스를 풍겨야만 한다.

"오오오...역시....약속을 지키셨군요.반신반의 했는데 말이죠."

"여부가 있겠습니까.소중한 저희의 예술 작품들을 지켜주셨는데요.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겠죠."

큿...당신이 예술을 논하니 조금 재밌습니다 그려.마치 내가 바람둥이의 삶을 논하는것과 같은거 아닌감?

나는 가방안을 가득채운 현찰더미를 꼼꼼히 확인한후 가방을 닫았다.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J의 협박장
을 비롯해서 그가 처음에 제시했던 자료들 역시 고스란히 그에게 넘겨주었다.나중에 이것가지고 꼬투리잡아서
딴말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럼...신세를 졌습니다.종종 찾아뵙지요."

"저야말로.감사합니다."

나는 공손히 인사를 했고,그들은 만족한 웃음을 띄우며 사무실을 나섰다.언제 잠이 깨었는지 노아가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가방 안에 가득한 배춧잎들을 보며 눈을 빛낸다.하하하.니들이 아무리 신비의 종족(?)들이라 하더
라도 단 며칠만에 때가 탄 것이로구나.돈의 중요성을 알다니.....

하지만 나는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올뿐이었다.1억...마치 편의점에서 담배 사고 돈을 내밀듯,이런 거금이 툭
하고 나와 버린다는 그 사실이 그저 웃음이 나올뿐이다.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구나...하는 자괴감
이 아니다.평소에 경멸하는 인간 타입에게 나는 페어리들의 힘을 이용하고,돈을 벌었다. J라는 녀석이 의적행세
를하려고 마유미를 부려먹는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어?"

나는 내 손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옆을 돌아보았다.세라가 내 손을 꼬옥 잡고 그것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 안
았기 때문이었다.아...그녀의 심장박동이 손으로 느껴진다.마유미와의 일전으로 그녀는 많이 힘들어 보였지만,
너무나 청순한 미소를 지으며 웃어주었다.그녀의 볼록한 감촉위로 조용히 뛰고 있는 심장박동.그리고 그녀의
목소리.

"죄책감 갖지 말아요 주인님.저희들의 힘은 주인님의 것입니다.."

"고마워...세라야."

나는 애써 웃어주며 세라의 머리칼을 살짝 어루만져 주었다.행복해 해야 옳을 것이다.어쩌면 나는 운명의 짐을
떠맡은 것이 아니라,소중한 동료들을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집에 가요."

이번엔 유나가 내 허리를 끌어 안았다.뭐가 그리 심통이 났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내 손을 잡고 있는 세라의
손만 심술궂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이봐...앉은 사람의 허리를 껴안으면...뱃살이 잡힌단 말이야...

"어떻게...하실 건가요?"

세라가 조용히 물어왔다.나는 조용히 오늘의 일을 곱씹어 보았다.알게 된것도,깨달은 것도 많은 하루였다.세상에
는 다른 오너,그리고 다른 막강한 페어리가 있었다.그들과 싸워야 하는것은 물론 아니지만,나중에 이들이 말하
는 크룬들이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된다면,나는 짐짝신세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아니,이미 오늘 페어리들의 전
투에서 나는 짐짝에 지나지 않았다.

"돌아가자.그리고....당분간은 수련만 할거야....사무실에 나오지 않아도 될만큼의 돈이 생겼으니까..."


#2.재회


"조금만더요...조금만.."

"이이이이익!"

나는 유나의 응원을 받으며 정신을 집중했다.하지만 이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절망감에 푸핫!하고 한숨을 내뱉
어 버렸다.

"아...난 소질이 없나봐."

"무슨 소리에요.어서 해요!"

유나가 귀여운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 난 또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탐정사무소를 임시 휴업하고,나는 2주일간 아이들과 함께 수련에 매달리고 있었다.바로 나도 마나라는 녀석을 다
루고 느낄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었다.J라는 아이가 보여줬던,사람이라고는 믿을수 없게 만든 바로 그 움직임.
내가 오바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분명 또 그런 식으로 전투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내가 최강이
되자는 건 아니지만,적어도 이 아이들에게 짐이 될수는 없는거 아닌가?

게다가 나는 의뢰가 끝나고 원룸방을 빼서 투룸짜리 방으로 이사를 했다.넷이 살기엔 좁디 좁을 뿐더러,지금 새
로 이사온 이 집은 개발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람이 별로 많이 살지 않는 데다가,월세도 꽤나 저렴한 편이
었다.따라서 내 수련은 나름 방해없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그런데.....

"꺄하하하하!간지러워!간지러워!"

노아가 꺄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내 옆에서 "마나 느끼기"라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수련을 봐주던 유나가 이
내 지쳐서는 노아와 장난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들을 슬쩍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확 붉어져 버렸다.

달라졌다.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졌다.노아는 아이의 티를 완전히 벗어버리고는 아이가 아닌 소녀가 되어 있었다.
노아의 변화까지도 괜찮았다.문제는 유나였다.이제 키가 160을 훌쩍 넘어섰고,누가봐도 고교생으로 보일 정도로
성장을 해버린것이다.게다가 걸린시간은 단 2주일 뿐이다. 키가 자란것까지는 참겠는데,문제는 점점 여성미가 보
이기 시작한다는 거다.가슴이 볼록 튀어나왔고,눈매는 더더욱 요염하게 변했다.게다가 세라와는 반대로 치마를
좋아하는 유나의 짧은 주름치마 밑으로 하얀 다리가 길게 뻗어 있었다.허벅지가 보일랑 말랑 하는것은 전혀 아랑
곳 하지 않고 노아와 장난치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에 나는 공중으로 쌍코피를 분사할 뻔했다.

"주인님.식사...준비할까요?"

크헉!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또한번 헛바람을 삼킬 뻔했다.청바지에 스웨터,그리고 그 앞에
앞치마를 두른 세라가 서있기 때문이었다.세라는 유나보다 키가 더 컸다.긴 흑발은 어깨를 덮을 정도로 자라 있
었고,눈은 더욱더 청순하게 변했으며,입술은 더더욱 반짝거리는 핑크빛이었다.앞치마 위로도 굴곡이 느껴질 정도
로 세라는 완전히 여인이 되어 있었다.

아...미치겠다.아무리 사람이 아닌 아이들이지만,너무 심한거 아니냐고!꼬맹이의 모습에서 한달만에 저렇게 자라
버리면 나는 어쩌라는 거냐!이래뵈도 한창때의 청춘이거늘,자꾸 젊은 혈기를 자극할 셈이야?아...근데 이러다가
얘네들 한 1년있으면 바로 할머니 되어버리는거 아냐?

"아..아냐.조금만 더하고 먹지뭐..."

세라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는 나를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앞치마를 벗어 의자에 걸어 놓았다.

2주동안,묘하게도 가사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청소는 노아가 물의 정령을 이용해서 후다닥 끝내버렸고,
요리는 세라가 맡았다.유나는 세라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사를 거부하긴 했지만,이내 내 의견으로 인해
노아와 놀아주기나 정리정돈등의 일을 맡았다.

나는 뭐하냐고?나는 주로 장보기등의 업무만을 할 뿐이었다.세라와 유나등은 자신에게 시키라고 했지만,사실 이
런 미소녀들이 동네를 왔다갔다하고,또 내가 사는 집에 드나드는게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거라곤 단 1%도 없
기 때문이었다.뭐..전에 살던 곳보다는 주민들이 얼마 없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나는 하도 앉아 있던 탓에 답답함을 느껴 창가쪽으로 걸어가 창밖을 바라보았다.새로 이사오길 새삼 잘했다는 생
각이 들었다.방이 두개니,조금 넓은것도 맘에 들었다.만약 계속 원룸에서 지냈더라면,나는 저렇게 다 커버린 미
소녀들의 틈바구니에서,아침마다 잠든 아이들을 보며 바지를 불룩하게 만들면서 괴로워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
다.가끔 어리광 심한 노아가 내 품에서 잠들기를 원하긴 했지만,아직까지는 소녀의 모습이라 참을만 했다.하하.

그리고 한가지 더 좋은점은,집 뒤에 산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으니 세라는 종종 산에 올라가서
수련을 했다.마유미와의 대적이후,수련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유나도 종종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아직 세라와의 사이는 좋지 않은건지, 세라가 없을때만 올라간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마나라...."

나는 한숨을 푹 쉬어버렸다.딱히 시간이 정해져 있는것은 아니지만,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불안하다.

-마나란,자연력이자 생명력입니다.우리가 보이지 않는 공기에 둘러쌓여있는 것처럼,마나역시 공기처럼 널리 분
포되어 있습니다.주인님께서 어떤 쪽에 특화되었는지는 알수 없지만,확실한것은 검투사던 마법사던,마나를 다룬
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느끼고,다루셔야 합니다.그 단계가 끝나야 만이 주
인님이 어떤 재능을 갖고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반드시 느끼게 되실거에요.주인님은 페어리를 셋이나 깨우게
한....유일무이에 가까운 분이니까.-

문득 세라가 해준말이 떠올랐다.자연력이자 생명력.말이 쉽지...이건 뭐 산소를 손에 잡고 흔들어봐!라고 명령
하는 것처럼 지극히 쌩뚱맞은 일이다.그리고 할때마다 내가 왜 여기서 이 짓을 하고있지?하는 자괴감과 방향을
잃은 목표의식 때문에 집중이 더더욱 되지 않았다.

"나....잠깐 나갔다 올게."

답답한 마음에 내뱉은 내 말에 장난을 치던 노아와 유나,그리고 쇼파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던 세라까지도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나도 갈래요!"

유나의 밑에 깔려있던(?)노아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와서는 허리를 끌어 안았다.

"미안 노아야.나 혼자 생각할게 있어서 그래."

노아는 이내 풀이 죽은 표정으로 바뀌었고,나는 연신 그녀의 짧은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올때 딸기우유 사다줄게.알았지?"

"와와!"

하하하.몸은 이제 많이 자랐지만 여전히 딸기우유를 좋아하는구나.내 말에 노아는 단박에 미소를 지으며 만세를
불렀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주인님."

"으..응"

여전히 주인님이라는 말을 듣는게 영 불편했다.내가 몇번이고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건만,아이들은 그것이 익숙치
않은지 늘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버리지 못했다.그런 연유로 나는 부득이 하게 다같이 집밖을 나설때 아이들에게
몇번이고 당부를 해야만 했다.뭐...지금은 나혼자 나가는 거니까 큰 상관없겠지 뭐.

며칠전에 눈이 왔었던 거리는 살짝 눈이 녹아가면서 약간은 질척질척했다.으...내가 가장 싫어하는 거리가 바로
눈온 다음날의 거리였다.옷도 더러워지고,잘못하면 신발안에 양말까지 흠뻑 젖어 버리니까...

그래도 햇살은 눈부시다.쌀쌀한 겨울바람이 불어오긴 했지만,나름 햇빛이 비춰줘서 그리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꺄하하...장난치지마!"

"뭐어때..으흐흐."

저..저것들이!지금 솔로인생을 외로이 걷고 있는 내앞에서 염장질을 하는거냐!아무리 사람이 별로 안사는 동네라
지만 길거리에서 저렇게 대놓고 애정행각을 하다니....요즘 20대란...쯧....아,나도 20대였지 참.

"어서오세요."

꽤나 외곽으로 걸어나갔던 나는,작은 커피전문점에 들렀다.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싶어서였다.세라,유나,노
아와의 동거생활이 시작된 이후,나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한번도 사색의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켜들고 나는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자,드디어 이런
저런 생각이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분명...내가 페어리들의 오너로 발탁된것은 운명의 장난일 것이다.덕분에 나는 머리털나고 단 한번도 생각해 보
지 않았던 이종족과의 전투와 전쟁에 대해 고민해야만 했기 때문이다.게다가 하나 더 늘어난 고민은,돈버는 의무
말고도 강해져야 한다는 의무까지 더해져 버렸다는 점이다.

나는...지금 행복할까?분명 행복할때도 있다.아무리 장난기 많은 아이들이라도, 나를 주인으로 떠받들어 주는것
은 처음 겪는 것이었고,무엇보다 이쁜 미소녀 셋에게 둘러쌓여 하는 생활도 그닥 나쁘지는 않았다.다행히 아이
들이 소녀일 때부터 나왔기 때문에,내가 발정난 개가 되어 아이들을 덮치는 대 사건도 없었다.물론 요새 아이들
이 훌쩍 커버려서 중간중간 야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흠흠!

"마나라...."

나는 나도 모르게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그런건 도대체 어떻게 느끼고,어떻게 사용한다는 거야?말이 쉽지...
나는 그런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란 말야.그런건 공상과학소설에나 있는 내용이라고!

"설마...준이...니?"

누군가가 말을 거는 소리에 속으로 한참이나 투덜거리던 나는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보았다.

"어...어?"

나는 커피잔을 든 그대로 굳어버렸다.하얀색 폴라티셔츠를 입고,너무나 환하게 웃는 아이.똑같이 하얀색 털모자
를 쓰고,동글동글한 귀여운 눈을 찡긋 해보이는 한 소녀.민아가 서있었다.


#3.마나의 실체.

이민아.그녀는 내 첫사랑이었다.뭐..정확히 말하자면 짝사랑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얼굴이 너무나도 하얗고,눈
망울이 이쁜아이.

"앞에...앉아도 돼?"

"아...응."

"너무 오랜만이다..그치?"

그녀는 나에게 싱긋웃으며 말을 걸었다.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민아.나는 이 아이만 만나면 말을 잃곤 했다.고아원에서 자라고,사회복지시설의 도움으로 가게된 고등학교에서
그녀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에비해,너무나 빛나는 아이었다.누구에게나 친절했고,얼굴도 이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학교 테니스부인 그녀가 라켓을 잡고,테니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은 사춘기의 내 마음을 흔들어 놓
았었다.뭐...계속해서 고백한번 못하고 주위만 서성여서 그렇지.

"뭐하고 지내?여긴 왠일이야?"

"아...그냥...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 하고 있고..얼마전에 이동네로 이사왔어."

"정말?와!잘됐다.나도 이사온지 얼마안되서 친구가 한명도 없거든.근데...하고 싶던 일이라는거..설마 탐정?"

"아?으..응."

"와와~멋진데?"

멋지긴 뭐가 멋지냐...나는 솔직히 쪽팔렸다.내가 고등학교때도 추리소설 신봉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소위 일진이라는 아이들은 그거 가지고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른다.하지만 더 자존심이 상했던
건,그 일진이라는 녀석들 사이에는 민아의 남자친구도 있었다는 점이다.

"준영이라는...아직도 사귀니?"

"어머..얘는.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사귀니?"

민아는 들고 있던 커피를 살짝 들이키며 쿡쿡 웃었다.여전히 귀여워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그만 또 얼굴이 빨개
져 버렸다.

젠장.예전에도 늘 이런 식이었다.왜인지 그녀앞에만 서면 나는 제대로 말도 못했고,민아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나는 가슴이 떨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너는?너는 무슨일해?"

"그냥...테니스 레슨해.내가 할게 뭐있겠어."

"그랬구나."

"너는?아직도 악기 잘불어?"

"아..악기?"

아...하기야.내가 확실히 악기부는걸 좋아하긴 했지.뭐..남자가 플룻이나 클라리넷 부는거 가지고 또 니 예전남
자친구 패거리들이 나를 놀려대어서 그렇지...

"그래!그...무슨 악기더라?너 그거 되게 잘 불었잖아."

"하하.다 지난 일인걸 뭐."

"졸업하고 보니까 되게 멋있어 졌는데?"

"칫..놀리지마."

나는 또 한번 맘에 없는 말을 해버렸다.너는 예전보다 훨씬 더 이쁘구나...라는 말이 목까지 맴돌았지만,왠지
그런말을 하기가 민망했다.입술을 굳게 다물어 버린 탓에 정적이 흘렀다.

"근데...왜 졸업하고 나서는 연락 한번 안했니?나 번호도 그대로인데..."

민아가 커피에 꽂혀 있는 빨대를 빙글빙글 저으며 물어왔다.

"그냥..뭐..바빠서 그랬던거 같아."

내가 생각해도 웃긴 대답이었다.사립탐정이 바쁘긴 뭐가 바쁘단 말이냐?단지 3년간의 긴긴 짝사랑을 그만 두고
싶었을 뿐이었고,그녀라면 대학에 진학해서 멋진 남자친구를 백번은 더 사귀었을 거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이제부터는 연락 자주해.알았지?"

"아...응.."

민아는 내 얼빠진 대답에 또 싱긋 웃는다.제길...어째서냐.핸드폰에는 이미 지워진 그녀의 번호가 아직 머릿속에
는 생생하게 남아있다.나..머리 이렇게 좋은 놈이었던가.

"나..이만 가봐야겠다.이사한지 얼마 안되서 정리할게 남아있네...."

"아...그..그렇구나.알았어."

"그래..."

민아는 또 살짝 웃어주며 천천히 일어선다.이렇게...이렇게 또 그냥 민아가 가는 걸까?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이렇게 예전처럼,그리고 찐따처럼 또 민아가 가고,나는 후회하겠지.그땐 왜 그런말을 못했을까..그러면서 말이야
그리고 또 아무렇지 않게 재회하고,또 나는 말없이 속으로만 중얼거리겠지.

"민아야."

"응?"

젠장.나도 모르게 그녀를 불러버렸다.안녕이라고 말하며 몸을 일으켰던 민아가 나를 바라보았다.말해야 해.억울
하지도 않냐?고교 생활을 이 아이 하나 바라보는데 허비했으면서...그 시간이 아깝지도 않냐고!

"오늘 저녁에....시간있어?"

"뭐?"

"오늘 저녁에...술이나 한잔할래?"

민아가 눈을 껌벅껌벅 거리며 나를 바라본다.제길...나 설마 또 거절당하는 건가.

"술?"

"어.술. 고등학교때도 아니고,이제 성인이니까 뭐..술 마실수도 있는거고..뭐...동네친구도 없고...또..."

아아.젠장.난 또 찐따같이 아무멘트나 마구 던져버리고 말았다.그런 나를 민아는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어 버렸다.

"알았어.7시 어때?"

"으..응?"

허락해 줄줄은 전혀 몰랐기에 나는 내가 제안해놓고 깜짝 놀라 버린다.

"7시...다시 여기서 만나자.알았지?"

"아...응...그래.알았어."

"그럼 안녕."

민아가 마시던 테이크 아웃 커피컵을 들고 살짝 손을 흔들었고,나는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갈때까지 멍하니 뒷모습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하하하..."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마구 뛰던 심장이 드디어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다.맙소사!나 3년동안 안되던 데
이트 신청...드디어 성공한 거다!!!!






"으히히히히.."

"....."

"크크크크크큭!"

"...."

"우헤헤헤헤!"

"주인님.무슨 좋은 일 있어요?"


참다 참다 말한다는듯 유나가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내게 물었다. 집으로 오자마자 연신 히죽 거리는 내가 보기
도 찌질해 보인 모양이다.

"응?아..별거 아니야."

"칫..거짓말.여자 만났어요?"

"뭐..뭐?아..아냐!"

"흐음.."

유나가 점점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 밀었다.더불어 유나의 원피스 앞자락이 헐렁하게 내려가며 그녀의 가슴골이
훤히 보여지고 말았다.

"으윽...왜그래.."

"수상한데요.다른 여자 만나면 용서 안해요!"

"으..응?"

나는 심히 당황하고야 말았다.유나가 물론 애정표현을 자주 하기 했지만,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그...그리고....자꾸 눈앞에 니 속살 아른거리게 하지 말아줄래?...나도 남자라고.

"그만해.주인님도 쉬셔야지."

"흥!"

세라의 점잖은 말에 유나는 이내 고개를 휙 돌리고는 티비쪽으로 걸어갔다.내가 사다준 딸기우유를 맛있게 먹고
있는 노아,그리고 나를 묵묵히 바라보는 세라.티비를 보는 유나사이에 살짝은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맞다!"

나는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이 나서는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베란다로 달려갔다.

"분명...분명히 있을텐데..."

"뭘..찾으세요?"

세라가 뒤에서 조용히 물어왔지만,내 눈은 여전히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있는 박스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한
참을 뒤적거린 끝에,작은 플라스틱 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있다!있어!"

오오!드디어 발견했다.예전 고등학교때 은사님이 선물로 주셨던 바로 그 클라리넷!내가 악기를 꺼내들자 관심어
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세라와 유나,그리고 노아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려진다.하하하.셋이 동시에 그러니까 굉
장히 귀여운데.

"그게..뭐에요?"

1분전까지만해도 삐져있었던 유나가 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나는 케이스의 먼지를 털어내고는 클라리넷을 꺼내
들었다.

"이거?클라리넷이라는 악기야."

"악기?"

"응.피리같은...부는 악기지."

"와아....주인님 음유시인인가봐!"

"으...음유시인?그..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눈을 반짝거리며 박수까지 치는 유나와,기대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세라때문에 고개를 강하게 흔들던 나는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래.음유시인 맞다."

나는 민망함에 씩 웃어 보이고는,클라리넷을 입술에 대어 보았다.당시에 60만원이라는 거금인 이것을,나를 위
해서 선뜻 사주신 선생님덕분에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그리고...민아에게 꼭 들려주리라 마음먹으며 3개
월 동안 한개의 곡만을 카피했던 적이 있었다.

"우와아아..."

처음에는 피식거리는 소리만 나던 악기가,아직은 내 실력이 죽지 않았는지 그때의 그 재즈 연주곡이 천천히 흘
러나왔다.담배를 배운덕분에 호흡이 예전같지 않았지만,조금씩 조금씩 연주가 흘러 나왔다.

아름다운 선율.아직 실력은 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순간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 야릇한 기분이 들어왔
다.마치 내가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선율의 흐름속에 내가 타고 있는것만 같은 느낌.나도 모르게 스르
르 눈이 감겼다.

"주...주인님."

세라가 넋나간 듯이 중얼거렸지만,나는 계속해서 무아지경에 빠진것처럼 연주를 계속했다.살짝 아이들의 반응
이 궁금했던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으응?왜 애들이 나를 넋나간 듯이 바라보는 거지?

내 연주가 중간에 뚝하고 멈춰버렸다.그러자 멍하니 나를 보고 있던 유나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방금!방금 느끼셨어요?"

"으응?"

무슨소리야?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나와 세라를 바라보았다.

"방금...마나를 느끼시지 않으셨나요?"

"뭬야?"

하하하.인석들 요새 버라이어티를 즐겨 보더니 이상한 개그를 하는구나.마나라니 무슨 소리야.나는 그저 고교시
절의 향수에 젖어 악기를 불었을 뿐이라고.

"방금 분명히.주인님을 기점으로 마나의 파동이 생겼었습니다."

나는 세라의 말에 그저 눈을 껌벅거릴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거니...니들...

"난...그냥 연주를 했을 뿐이라고."

"다시한번..해보시겠어요?그리고...무언가 편안한 기분이 들면 그것을 느낄수 있도록 해보세요."

전혀 의미를 알수 없는 세라의 말이었지만,나는 이내 자세를 고쳐잡고 다시 클라리넷에 입술을 대었다.그리고
천천히,추억의 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조용했던 내 방에 다시금 선율이 울려퍼졌다.

모르겠다.도무지 모르겠다.그저 나는 손가락을 움직이고,숨을 내쉬거나 혹은 들이 마실 뿐이다.이런일련의 소리
내는 과정에 있어서 마나의 파동이 생겼다고?

살짝 눈을 떠보니,아까처럼 잔뜩 기대한 얼굴들이 아닌,약간은 실망한 얼굴들만 보인다.으윽...그러지 말라고.
너희들은 마나를 다루는 신비의 종족일지 몰라도,나는 백미터를 18초 대에 뛰는 저질체력의 선두주자란 말이야.
애초에 마나란걸 느낄수 있을리가 없잖니.

잡생각이 드니 악기연주가 제대로 될리 만무했다.정신을 집중해 보자.눈을 감고.아까처럼 선율속에 나를 맡기듯
이,아무런 계산없이 연주해 보는거다.

우선,마음을 비웠다.세라가 자주 명상을 하는 것을 본적있는 나는 진지하게 그녀를 흉내내듯이 허리를 꼿꼿히 펴
고 연주에 집중했다.다시금 고운 클라리넷의 음색이 나를 감싸돌기 시작했다.천천히 나의 의식은 그 음율을 따라
간다.그리고....눈을 감은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이미지화 되기 시작했다.

파란색.그것은 분명 파란색이었다.내 의식속에서 홀로 악기를 들고 서있는 내가 보인다.그리고 그런 내 주위로
파란 아우라가 감싸들고 있다.이것일까? 마음이 편안하다.뭔지 모르게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고,가랑이 사이가
간지럽다.

"와...와!주인님!"

유나의 탄성이 들린다.나는 한참이나 연주를 하다가 눈을 떴고,내 몸을 감싸고 있던 그 느낌도 그와 동시에 스르
르 사라져 버린다.

"나...조금은 느낀거 같아."

"정말인가요?"

세라가 내 손을 덥썩 움켜쥐었다.아...이...이 아이 손 너무 부드럽다.

"와!주인님 최고!"

내 눈이 휘둥그래 졌고, 세라의 눈역시 놀라움으로 물들었다.내 허리를 덮썩 안은 유나가 까치발을 하더니 내 입
술에 입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어...어?"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동되었다.당연히 첫키스는 아니었지만,유나의 돌발행동에 노아를 제외한 나와 세라는 멍하
니 유나만 바라볼 뿐이었다.이녀석...기습뽀뽀를 하더니 살짝 윙크까지 했다.

아하하....나...이 아이들하고 사는거 점점 더 위험해 지는거 아닌지 모르겠어.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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