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요정들의 오너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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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412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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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1.초대장.

분명...꿈은 아니야.

이제서야 다시금 꿈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된다.그녀와의 격렬한 섹스가 끝나고,샤워를 하고나서,그녀는 내 품
에 안겨 쎄근쎄근 잠이 들었다.이불을 살짝 들추면,내 품에 안겨있는 그녀의 알몸이 훤히 보인다.

-니가 좋아하던 내모습이 아니었다면 어쩌지?-

다시한번 입을 맞추며,민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래,맞다.분명 내 마음속에 있던 청순한 이민아는 오늘 죽었
다.침대에서 노련하게 나를 이끌던,섹시한 이민아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몸을 섞는 과정이 끝나고도,민아는 사
귄다거나 교제를 한다거나 등의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사생활이 더럽고 문란하지는 않을 것
이겠지만, 나는 그녀의 연인은 될수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안고....입을 맞추어도 말이지..."

그녀가 깨지 않도록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하하.맞다.어쩌면 하룻밤 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맘에도 없는 나와
사귀어 주는것이 더 잔인한 걸지도 모르겠다.하지만 난 후회는 없다.20대가 넘어가도록 숫총각이라고 나를 놀려
댔던 친구놈의 모습이 떠오르지만,분하지는 않다.난 나름 후회없는 첫경험을 한것이다.내가 3년간 미치도록 사랑
했던 여자에게, 내 처음을 준 것이니까.

"아직...눈이 오는구나."

사실 난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민아의 알몸과 함께 보는 눈은 왠지 모르게 아름다웠다.시간은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그제서야 나는 집에서 나를 기다릴 아이들 생각에 덜컥 겁이 나버렸다.

"으으응.."

내가 살짝 몸을 일으키니,내 품에 안겨있던 민아가 뒤척인다.깰까봐 조마조마 했지만,민아는 깨어나지 않았다.
그것보다 몸을 살짝 돌리는바람에 알몸을 가리고 있던 이불이 스르르 내려가 버린다.잠을 자고 있는 여인에게 또
한번 욕정을 느낄수는 없는 노릇이기에,나는 민아의 몸에 잘 이불을 덮어 주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엄청온다.제길.눈은 정말 싫단 말이다.나처럼 잘 넘어지는 놈은 눈온 다음날이 거의 재앙수준이라고.

창가에 뿌옇게 서려있는 습기를 맨손으로 슥슥 하고 닦아낸 나는 하얀 눈 덕분에 평소보다 밝게 느껴지는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펑펑 내리는 눈. 다행히 가벼운 눈인거 같았다.뭐랄까...길에
잔뜩 쌓여서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그런 무거운 눈 같지는 않다고 해야할까?

"어...어라?"

나는 담배불에서 재가 떨어지는것도 잊은 채 그자리에서 굳어져 버렸다.창밖에 누군가가 서서 이 모텔건물을 뚫
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얀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청순해 보이는 얼굴.핑크색 모자를
귀엽게 눌러쓴, 언뜻 보면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청순한 여자가 서있었다.

"세...세라."

눈을 비비고 봐도 마찬가지다.창밖에서 서있는 사람은 분명히 세라였다.모자위로 흰눈이 어느정도 쌓여 있는것
으로 봐서는,꽤나 오랫동안 밖에 서있었다는 뜻이 된다.

"바...바보같이!"

나는 후다닥 담배를 비벼끄고는 옷을 챙겨 입었다.문득 내 시야에 곤히 잠든 민아의 모습이 들어왔지만,그렇다
고 저대로 세라를 둘수도 없는것 아닌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옷을 입은 나는 외투 속주머니를 뒤적거려 작은
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었다.탐정일을 하면서 메모지와 필기구를 갖고 다니는것이 몸에 베어 버린 탓에,휴업중
에도 이렇게 챙겨들고 다니는 것이다.

마음이 급하니 글씨도 써지지 않았지만,나는 민아에게 사촌동생이 찾아서 급히 간다는 쪽지를 써놓고는 황급히
방을 나섰다.2층이었기에 나는 엘레베이터가 아닌 비상구로 뛰어 내려갔다.

"세라야!"

고개를 숙이고있던 세라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양볼이 빨갛게 물든 그 모습.흡사,연예인이 방문한 것과같은 느
낌마져 불러 일으킨다.

"주인님..."

세라가 살며시 미소짓는다.나는 얼른 뛰어가 그녀의 외투와 모자에 있는 눈을 털어주었다.

"왜 눈 맞으면서 서있었어?"

"주인님이..안오셔서...걱정이 되어서요."

이런 빌어먹을....난 급격히 내 자신이 싫어지는게 느껴졌다.세라는 내가 민아와 술을 마시는 그 순간부터,내 뒤
를 따라와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스토킹 같은것이 아니다.다만 약해빠진 주인을 위해,그녀는 날 지키기 위해 묵
묵히 이 함박눈이 내리는 거리에서 계속 서있었다는 말이된다.

"감기 걸리면...어쩌려고 그래..도대체.."

목이 메어왔다.혼자 사는데 익숙해 져버렸던 나는,이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세라는 오히려 내가 무사히 나
와서 다행이라는듯 환하게 웃었다.

"저희는...감기같은 질병에는 걸리지 않습니..."

그녀의 말이 뚝 하고 멈췄다.내가 세라의 볼을 감싸쥐었기 때문이었다.큰 눈을 껌벅거리며,세라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얼른 들어가자."

세라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흰 눈이 사박사박, 그녀의 털모자 위로 조금씩 떨어지기 시
작했다.

"네!"





어둑어둑 해진 밤하늘은,내리는 눈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한치앞도 볼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나는 어느샌가 나
도 모르게 세라의 차가운 손을 꼭 쥐고 걷고 있었다.

미안했다.솔직히 말해서 민아를 만나는 동안에는 집에 있는 이 아이들 생각은 전혀하지 않은 것이다.이제 세라
도,유나도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고,영특한 아이들인지라 더이상 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것들을 가르
쳐 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하지만 세라는 티를 내지 않고 내 뒤를 따라온 것이
다. 내 신변에 행여나 위험이 있을까봐...그리고, 내 사생활에 지장이 있을까봐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있었던 것
이다.

솔직히 창피했다.모텔에 민아를 들쳐업고 들어간 나를,세라는 보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의 웃는 표정에서 나를
향한 경멸은 없었다.이제 페어리들이 개화한지 한달여가 넘어가고 있지만,세라는 여전히 나에 대한 신뢰를 그렇
게 행동으로써 표현하곤 했다.

"아이들은 다 안자고 있을까?"

"네..아마도.."

세라는 내 손을 꼭 쥔채 조용히 나를 따랐다.누가 그녀를 보고서 블랙나이트라 생각할수 있을까?지금 이 모습은
여지없이 청순한 여성일 뿐이다.일반적인 청순한 여성과 다른것이 있다면, 눈밭위에 찍힌 그녀의 발자국이 치
밀할 정도로 일정한 보폭으로 찍혀있다는 것쯤일 것이다.뭐...그런건 무술을 수련한 사람이 아닌이상 신경조차
쓰지 않을 대목이겠지만.

"애인...인가요?"

문득 입을 연 세라때문에 나는 화들짝 놀랄 뻔했다.여전히 맑은 눈망울을 한채로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야...고등학교 동창이었어."

"주인님이...짝사랑하셨나요?"

뜨..뜨아...나는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을 뻔했다.세라에게 이런면이 있다니....아마도 유나가 매번 챙겨보는 드
라마를 옆에서 같이 봤기 때문인 것일까?평소 세라에게서 나올 단어가 아닌데 말이야.

"사실은...맞아."

"잘...되었네요."

하하하하.민망하다.잘 되었다는 세라의 말은 아마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지.내 착각일까?그런말을 하는 세
라가 왠지 모르게 슬퍼보이는것은.

"아냐.잘되었거나 그런게..."

"네?"

내 힘없는 중얼거림에 세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게 걸어가면서도 느껴진다.하하하.그래.뭐 내용면으로 봤을땐
잘된것일수도 있지.하지만...내가 아무리 오늘이 첫경험이라 할지라도,여자아이와 하룻밤 잤다고 해서 그것이
로멘스가 되지 않는다는것 쯤은...알고 있었다.

"암것도 아냐.추운데 어서 들어가자."

"주인님."

"응?"

막 아파트 현관에 키를 꼽으려는 그 찰나,세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힘내세요."

하하하하.세라다운 무뚝뚝하고도 의미있는 말이네.나는 나도 모르게 살짝 웃으며 세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
다.

삐비빅

도어락 소리가 들리며 방안의 정경이 보인다.

"으윽!"

나는 나도모르게 뒷걸음질 처버렸다.현관엔 유나가 서있었고,그녀는 마치 드라마에서 바람피고 들어온 남편을
바라보는 의심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님!어디갔다 온거에요?누구 만났어요?"

으...이봐.너 어젯밤 부부클리닉을 너무 심취해서 본거 아니니?딱 거기나오는 이름모를 여배우 포스라고.

"친구 만났어."

"거짓말!거짓말!"

검정색 원피스를 입은 유나의 은발이 묘하게 흑백의 조화를 이룬다.하..하...몸매는 진짜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변
했구나...흐뭇하다....아..이게 아닌데.

"정말이야.내가 봤으니까."

세라가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에 유나는 다시한번 수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스윽 하고 훑어보았다.

"치...그래도...마나 수련하다말고 친구를 만나러 가면 어떡해요?"

"이제 부터는 수련할거야....피곤하다.나 먼저 잘게."

내가 투정을 받아주지 않자 그제서야 유나는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하더니,이내 세라를 한번 쓰윽 바라본다.세
라는 언제나처럼 그런 유나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해 주며 방안으로 들어가 눈에 젖은 외투와 모자를 벗었다.

"칫..재미없게.."

유나는 입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렸지만,나는 평소처럼 유나의 외모에 감탄하고 있을수는 없었다.아직은...생각해
야 할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티비나 보다 잠들어 버릴 심산으로 쇼파에 몸을 기댄 나는 그제서야 노아가 안보였던 이유를 알수 있었다.노아는
쇼파끝에 살짝 앉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하하.귀엽구나.왠지 모르게 어리광이 심해서 인지,나름 아이의 티를 벗
어난 노아는 아직까지도 꼬맹이 같아 보인다.내가 몸을 기대자,쇼파가 움푹 들어가는 걸 느껴서 인지 노아가 눈
을 비비며 나를 바라본다.

"우웅...주인님 왔어요?"

"그래.어서 방에가서 자."

"싫어요."

노아는 언제나처럼 내 쪽으로 오더니만 무릎에 폴짝 올라타 버리고는 내 목을 끌어안았다.어이쿠! 이녀석아.이제
넌 더이상 꼬맹이가 아니라고~ 니들은 꼬맹이인 기간이 1주일정도 밖에 없는 아이들 이잖니.크큭.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내품에 쏙 파고드는 노아를 보며 유나가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뭐라고 말은 하지 않
고 있었다.세라 역시 묵묵히 노아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허허...신기하다.나도 바보가 아닌이상,유나와 세라
가 오너인 나의사랑을 받고 싶어한다는 것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긴 했지만,신기하게도 노아가 이러면 둘다 조
용해 진다.만약에 여기 안겨있는게 세라였으면,아마 유나의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을 거다. 역시나...노아가 최강
의 페어리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인걸까?강하기 때문에 저 아이들이?흐음...

똑똑.

베란다 창문쪽에서 유리창에 무언가가 부딪힌듯,똑똑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커튼이 쳐진 창문밖으로,눈덩이라
도 부딪혔나?

똑똑똑

가..가만.우박이라도 내리는거야 뭐야?두번째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노아와 세라,그리고 유나마저도 창문쪽을 주
시하게 되었다.

"적..?"

세라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에 유나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물들며,언제나처럼 그녀의 양손에 백색의 기운이
휘몰아 치기 시작했다.가..가만.니들 그러지마!무서워 지잖아!

똑똑똑.

이건..절대 우박이 아니다.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것이다.나는 군침을 꿀꺽하고 삼켰고,노아역시 내 품에
서 내려와 창문쪽을 바라본다.

"얘들아 물러서.적일리가 없어."

당장이라도 창문을 향해 한기를 날릴것만 같은 유나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적이라면...뭐하러 매너있게 노크를 하겠어.그냥 처들어 오겠지."

나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무서웠다.흠흠!하지만 이래선 안되지.뒤에 그래도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 말이야
쪼는 모습보이면 좀 볼쌍 사납지 않으려나.

나는 긴장감에 살살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커튼을 걷었다.에라이!설마 죽기야 하겠냐.

"에엥?"

나를 비롯한 방안의 인원의 표정이 이상야릇하게 변해버렸다.창밖에는 비둘기보다 약간 큰, 갈색의 매 한마리가
우리를 점잖게 바라보고 있었다.


#2.대회의.

"뭬..뭬야 이건..."

나는 다소 어처구니 없어진 말투로 말했다.허허.이 동네...사람이 안살아서 그런지 희귀 야생동물도 있구만.동
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매가 날카로운 부리와 날렵한 눈매를 번뜩이며,베란다에 있는 바리케이트 위에 앉아 우리
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근데 매가 왜 노크를 하지?"

신기(神氣)라도 있는 영물같은 녀석인가....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때,침착하게 보고 있던 세라가 베란다 문
을 열었다.이..이봐!그러다가 집안에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래!

"이건..그냥 동물이 아닙니다.마나가 느껴지는걸로 봐선 소환되었거나,혹은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뭐..뭐?"

내가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자,유나역시 손에 띄운 기운을 없에 버리며 거들었다.

"소환술사의 페어리를 가진 오너가 보냈을 거에요.아직까지는 이정도 피조물을 창조할 만한 마법레벨을 지닌 페
어리는 없을테니까요."

소환이라...하하하하.정말 그런모양이구만.이 녀석은 새 주제에 영특하게도 우리의 대화에 고개를 끄덕이기 까지
했다.하지만...왜?누가 이런걸 보낸거야?

"발목에 뭔가가 있다!"

뒤에서 보고 있던 노아가 매의 발톱부분을 가리켰다.발목에는 카드로 추정되는 검정색 물체 하나가 매달려 있었
다.흠...그..근데 저거...물지는 않나?왠지 발로 손을 가져 가기가 조금 무서운디...

유나와 세라는 내 결정에 따른다는듯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항상 그랬다.늘 나에대해 예우를 갖추는 세라는 물론
톡톡튀는 유나나 어리광많은 노아도,언제나 어떤사항이 발생하면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조용히 내 결
정만을 기다리는 편이었다.쩝...이번엔 그냥 니들이 가서 편지 떼도 되는데...

살짝은 무서웠지만,나는 찬바람이 마구 들어오는것을 느끼며 녀석의 발목에 매달린 검정색 카드를 떼어 내었다.
이,이녀석...떼어내기 편하게 한쪽발을 살짝 들어주는 센스까지...흠..좀 탐나는 애완동물일세.

파파팟!

"으헉!"

순식간에 스파크 튀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물러섰다.순식간에 빛을 뿜은 그 매 한마리는,내가 카드를
떼어가자 마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헐....애들은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으니 놀란 내가 민망하다.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해보이고는 손에 들린 카드를 바라보았다.종이가 아닌,검은색의 고급스런 헝겊 재질이었다.
보들보들한 것이 비단 같기도 하다.나는 무심코 카드를 열어 보았다.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진,역시나 범상치 않
은 재질의 속지가 드러났다.

"이게 뭐야?"

신기하게도,아이들 역시 모른다는 눈치다.카드 안에는 영문으로 적혀져 있었다.



-페어리의 오너로써 선택된 한국의 유 준님께.

갑작스런 초대장,죄송합니다. 1년에 한번씩 열리는 오너들의 대회의가,이번에 영국에 있는 저의 비밀저택에서 열
릴 예정입니다.

일시는 초대장을 받으신 다음날이며,귀하에 계신 곳으로 정확히 오전 10시에 자가용 비행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입국문제는 조치를 취해 놓았고,보유하고 계신 세분의 페어리분들의 여권역시 만들어 놓았습니다.

불참시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시국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이때에,오너분들의 전원참석을 기원합니다.

오너 윌리엄스 드림.-




어...어라?대회의라면...J라는녀석이 말했던 그거 아닌가?근데...내 영어 실력이 이렇게 좋았나?어떻게 이걸 해
석하고 있는거지?

"모임이....있는 모양이군요."

세라가 조용히 말했고,유나역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초대장을 바라보았다.머릿속이 복잡해 진다.

정리해 보자.나 말고 다른 오너가 있다는 것은 J라는 녀석을 통해 알긴 했다만...이런 체계적인 모임같은것도 있
었단 말이야?그건 그렇고...

"나..근데 이거 어떻게 읽고 이해한 거지?"

내 중얼거림에 세라가 조용히 대답을 해주었다.

"페어리의 오너가 되면,언어의 장벽이 사라집니다.저희가 개화하는 순간,주인님도 모르는사이에 생기는 능력이라
고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허...헐....그렇구나.그래서 세라나 유나,노아도 나오자마자 말을 배우지 않아도 술술 말을 하는 것이로군.와..
이거 횡재했는데.이 느낌 이대로 영어 통역 알바나 뛰어볼까?

"와...이게 뭐야?"

노아가 조그만 수첩같은것을 꺼내든다.헉..그녀가 꺼내든 것은 대한민국 여권이었다.이 조그마한 봉투에 어떻게
저게 들어가 있는거지?에이...저런건 이제 놀랍지도 않아.

"나...나잖아."

유나역시 조용히 중얼거린다.여권에는 유나와 세라,노아,그리고 내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사진을 찍어봤을리가
없는 유나와 세라마져도 여권에 버젓이 여권용 증명사진이 붙어 있었다.헐...이..이거 뭐야..좀 무서운데!

나는 다시한번 찬찬히 초대장의 내용을 읽어보았다.영국에 사는 윌리엄스라는 오너가 대회의를 소집했다는 내용
까지는 알겠는데...가만보니 이거 초대장이 아니고 협박장아녀?불참시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는다니 말이야...동
네 반상회에서나 쓰는 문구 아니냐고.

"오너들과 페어리들 사이에...정기적인 모임이나 회의가 있나봅니다."

세라의 말로 미루어보아,이 아이들도 전혀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닌 모양이었다.게다가 이렇게 급작스럽다니...
일시또한 쌩뚱맞게 초대장을 받은 다음날 이란다..하하.지금 막 11시 30분을 향해가고 있으니,이제 30분만 지나
면 회의가 열리는 날이 된다는 의미다.거참 황당스럽네.

"주인님!가실거에요?"

유나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었다.으으...그건 물어보는게 아니라 가라고 협박하는거 같다고.돌아다니길 좋아
하는 유나의 성격상,아마 다른페어리와 오너를 만난다는 이 자리는 그녀에게 있어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닐수 없
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뭐...다른 오너들이나 페어리들을 만난다는건 그닥 유쾌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 자리에 가면 난 많은 것을 배울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었다.게다가 나는 J라는 녀석이 나에게 말했던 것
처럼,초보 오너였다.조금 꺼림직한 자리이긴 하지만,가서 정보를 얻을수 있다면 잃을것도 없지 않은가.

"가자...다들 짐싸."

"와아아!"

걱정스런 표정의 세라완 달리,유나와 노아가 팔짝 팔짝 뛰면서 좋아한다.유...유나야....너..이제 다 컸거든.
너 뛸때마다 내 시선이 자꾸 한곳으로 쏠린단 말이야...그러지 말아줄래.

"자가용 비행기라..."

윌리엄스라는 그녀석.엄청난 부자인 모양이다.자가용 비행기라 함은 원래 부의 상징 아니야?게다가 난 페어리가
있다고 떠벌린 적도 없는데 정확히 내 이름과,유나,세라,노아의 이름이 적혀있다.더욱이 그녀들과 내 사진까지
떡 하니 붙은 위조 여권마져 보내줬다.

"그러고 보니...."

방화범 J와 그의 페어리인 마유미를 처음 만났을때,J는 나를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투,아니,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는 말투로 말했었다.이거...페어리들의 오너들 사이에서는...이미 나와 이 세명의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는 뜻이 되어버리잖아?

"이것도 가져가야지!이것도!이것도!"

유나는 신이나서는 가방에다가 옷가지들을 챙겨넣기 시작했고 노아는 뭐가 좋은지 꺄르르 웃는다.역시나 설레여
있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세라가 조용히 물었다.

"괜찮을까요?주인님.."

"휴...글쎄다."

사실 아주 조금은,이것이 함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지만,아까 순식간에 사라졌던 그 매의 모습이 떠
오르니,분명 함정은 아닐꺼란 생각이 들었다.비록 아직은 마나의 세계를 모르는 나이지만,그 정도의 수준높은
피조물을 소환할 정도의 페어리를 가진 오너가,왜 괜히 이렇게 구석진 지역에 짱박혀 있는 나를 함정으로 끌고
가겠는가?죽이고 싶었으면 바로 죽였겠지.

"괜찮겠지.내일 오후까지...공항으로 가야 할테니까...얼른 자자."


#3.영국으로!

흠흠! 목이 약간 잠긴거 같다.제길...수면부족 탓인걸까?어제 한숨도 자지 못했다.자다 말고 클라리넷을 불어 다
시금 마나의 존재를 느껴보기도 했다.왠지 모르게....만일의 경우에 위험한 상황에 생길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때
문이었다.

젠장.윌리엄스라는 녀석.뭐 당연히 인천공항으로 보냈겠지만,뭔가 좀 이상하다.영국이라면 우리나라와 9시간정도
의 시차가 있는 나라 아닌가?그럼,저 매인지 독수리인지 하는 녀석을 보낸것도 내가 받는 시점과 시차들을 모조
리 계산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으으..치밀한 놈.저런 애들이 범죄를 하면 진짜 무섭지...암.

"주인님! 나 어때요?헤헷!"

커...컥! 너...너 그옷은 또 언제 지른거냐....나는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도는 유나를 보며 숨이 턱 막히는 게
느껴졌다.벨벳같은 재질의 스커트에,맵시있는 코트를 걸친 것이다.거기에 신상(?)으로 추정되는 깜찍한 부츠까
지.뭐 완벽한 몸매에 은빛 머리칼을 가진 미녀를 보는 내 심정이 나쁠리가 없지만,왠지 모르게 또 유나가 내 카
드로 인터넷 결제를 했다는 생각에 가슴한 구석이 강하게 쓰려온다.

"여기여기!노아도 제가 코디해줬어요!"

확실히...유나는 패션감각이 있는 편이었다.노아 역시 언니들을 따라나서는 깜찍한 중학생같다.파스텔 톤으로 코
디된 옷이,노아의 블루블랙 머리칼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쳇.이봐.정작 나는 파카하나 걸치고 가는
데 니들너무 오바하는거 아니냐.

"슬슬...출발할까?"

나는 뒤쪽에 있는 세라를 돌아보며 말했다.그녀는 유나에 비해 옷차림이 수수할지 몰라도,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
모습이었다.블랙나이트여서 그런걸까?치마가 불편한건지 세라는 늘 청바지만 입었다.그 모습조차도 너무나 맵시
있어서 수수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좋은 점이랄까.하하하.

"으휴...유나야.무슨 유럽배낭 여행가니?"

낑낑거리며 커다란 가방을 끌고 오는 유나를 보며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이봐...그래봐야 1박2일정도일 텐데,
지금 너는 거의 이민 수준이잖니.

"가서 짐 반으로 줄여."

"이이잉!왜요!"

"어서."

내 말에 유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이내 가방을 끌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에휴우...정말 험난한여정이 될
것만 같구나.

"어..어이...이봐 너 뭐하는 거야."

방을 슬쩍 들여다본 나는 어이없음에 자동으로 힘빠진 목소리가 나와버렸다.유나는 거의 울것 같은 표정으로 옷
들을 하나하나 가방에서 꺼내고 있었다.

"히잉...다 가지고 가고 싶단 말이에요..."

....말을 말자.....





푸드드드득!푸슈웅...

큭...나 나중에 돈벌면 꼭 이런소리 안나는 차 사고 만다.세명의 미인을 태운 똥차라니...백설공주랑 라푼젤이랑
엄지공주 셋이서 리어카 타고 가는 꼴아냐 이거..

그래도 나름 기름이 만땅 채워져 있다는것에 대해 작은 위안을 삼으며,지도 한장에 의지한 내 차는 인천공항으로
서서히 달려나가고 있었다.물론 출발전에 무언의 조수석 쟁탈 심리전이 있었지만,언제나처럼 어리광 한방에 노아
가 조수석에 떡하니 자리잡았고,역시나 세라와 유나는 뒷자리에 극과 극으로 떨어져 앉았다. 흠...저 아이들 언
제 한번 친해지기 프로젝트 진행하던가 해야지 안되겠어.

평일이지만,출근길을 교묘히 피한 시간이었기에 차는 그닥막히지 않았다.비록 내차가 똥차여서 그렇지,한번 스피
드가 붙으면 나름 아직까지는 잘 달린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쾌거의 순간이기도 하다.허허허허.

"와와!영국에 가면 궁전에 꼭 가요!디게 멋지다!"

역시나 무서운 아이들이다.이 세계는 엄밀히 말하면 이 아이들에게 있어 생소한 세계임에 틀림없는 것이거늘,유
나는 인터넷에서 영국을 검색해서는 그것을 프린트까지 해서 들고 온 것이다.관심없어 하던 세라역시 유나가 들
고 있는 종이를 흘끔거리는게 보인다.하기야...이 아이들이 살던 세계는 저런 궁전들이 많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좋아할줄 알았다면 경북궁이라도 데려가볼걸...쩝.

옆에서 부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노아가 자그만 가방에서 딸기우유를 꺼내 마시고 있었다.하하하.귀
여운 녀석.노아는 가방안에 딸기우유만 잔뜩 적재(?)해서는 들고온 것이다.너..유나나 세라만큼 크고도 그러면
안된다....흠흠!

차안에 오디오 기능은 이미 맛탱이 간지 오래였지만,설렌 유나가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다보니 차안은 나름 화기
애애 했다.세라만이 명상을 하는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있긴 했지만,나는 유나와 노아의 재잘거림을 모두 들어주며
답해 주었다. 못난 오너를 만나 여행도 못다녔는데...이렇게 라도 해줘야지 않겠어?부자 오너를 만났더라면 유나
도 좋아하는 옷을 실컷 살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세라는 걱정없이 전용 수련장에서 실컷 수련을 할수 있었을 거
고...노아는 최고급 딸기 우유가 나오는 정수기를 갖을 수도 있었을 거고...쩝...왠지 모르게 이런 못난 주인을
믿고 따라주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와아..."

시간이 지나,공항에 다다라 가자,유나와 노아의 눈이 휘둥그레 진다.하하하하.욘석들.그래도 비행기 떠다니는거
보니 신기하긴 하구나 니들?그래그래.나름 인천공항 간지나는 공항이야 임마.


장기주차를 신청하고,세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공항에 들어서자 마자 마구잡이로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
졌다.외국인이며 한국사람들이며, 깜찍한 노아와 각각 다른 매력을 뿜어내는 두 미인들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걔중에는 그 사이에 끼어있는 나의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의 눈초리까지도 느껴졌다.하하하하.

"근데...어디로 가야하지?"

내 한마디에 아이들의 표정이 싹 굳어진다.이..이봐들! 그렇게 바라보지 말라고.내가 아무리 이 세계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행기 탄 적은 없단 말이야...사실.공항도 처음와봐.

"유준씨 되시나요?"

한참이나 유나의 사늘한 시선에 식은땀을 흘릴때에,뒤에서 공손히 울려퍼지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뒤를 돌아
보니,금발을 가지런히 틀어올리고 세련된 정장을 입은 한 여성이 살짝 인사를 하고 있었다.

"네..맞습니다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저는 윌리엄스 사장님의 비서 케서린 이라고 합니다."

"아..아예."

허허.거참 신기하네.한국말 하듯이 자연스레 영어가 나오잖아?흠...이럴때 빨리 토익을 봐둬야 하는데..까비!

이 넓은 공항에서 내가 이쪽 게이트로 들어온것을 어떻게 알았을까...하는 고찰에 잠겨있을때쯤,케서린은 우리를
인도하듯 앞장서서 걸었다.

"절차는 밟아 두었으니 입국문제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이리로.."

유나는 금새 신이나서 내 팔짱을 끼고는 걸음을 재촉했고,노아 역시 내옆에 찰싹 붙어서 걸었다.세라만이 내 뒤
에 약간 떨어져서 나를 보호하듯 뒤따랐다.

흠....윌리엄스란 사람...대단한 사람인 모양이다.여권위조는 그렇다치고,입출국을 처리했을 정도면 입김이 장난
이 아니란 이야기 아닌가?이거..가자마자 내 복장 보고 뺀찌놓는거 아니야?

시덥잖은 생각을 하고 있을때쯤,나는 드디어 내 생애 처음으로 자가용비행기 라는것을 배견할수 있었다.신기하게
도 자가용비행기의 이착륙시간역시 공항에서 배정이 되는 모양이었다.당연히 약간의 심사및절차는 있었지만 케서
린이란 여자가 뭐라고 이야기 하니 약식으로 진행되었다.

"우아아아...이게 하늘을 나는 거에요?"

"으..응.그런가봐."

"와..비행마법은 나도 할줄 모르는데."

"이거..마법이 아니라.."

"핏!나도 안다구요."

내 옆에서 생글거리며 장난치는 유나.그녀는 너무나 들뜨고 설레는 모습이었다.세라는 기내로 들어오고나서야
경계의 기운을 늦추었다.

"시간이 꽤 걸립니다.그때까지 편히 쉬시고,필요한것 있으시면 언제나 말씀하시길..."

"아..예예.물론입죠."

자리까지 안내한 케서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기내의 복도쪽으로 걸어나갔다.한참이나 자리에 대한 토론이 계속
됬던 결과,결국 가운데에 네 자리에 우리는 나란히 앉기로 합의를 했다.

-곧 이륙합니다.벨트를 메어 주세요-

뭐..자가용 비행기도 할건 다 하는구나.방송이 나오자 나는 벨트를 메었지만,역시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괄량
이 유나양은 그 말을 철저히 무시한채 창가쪽만 바라보며 싱글거린다.

에휴...영국이라....괜찮을까 모르겠다...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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