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여인 추억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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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270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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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약국집 딸
1948년 3월 다에꼬는 여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4월에 마사오는 새 제도로 고등학교 2학
년이 되었다. 미국의 점령 정책의 영향이었다. 학교 생활에도 어떤 변화가 일고 있었다. 학
생들의 인격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소자품 검사가 없어졌고 학교 밖에서의 행동을 별로 규
제하지도 않았다. 자주적 판단에 맡긴다는 경향이 생겼다. 따라서 여고생들과의 교제는 자
유롭게 되었다. 선생들도 학생들에게 연애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게끔 되었다.
다에꼬는 집에서 신부 수업을 하고 있었고 마사오는 문과반을 택해 공부했다. 자연히 다에
꼬에게는 여기저기서 혼담이 들어왔다. 혼담이 하나씩 들어올 때마다 마사오는 조마조마했
다.
철쭉산에서 서로를 더욱 깊이 안 이후로도 둘은 관계를 계속하고 있었다. 임신시켜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마사오는 항상 예방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사오의 책상에는 열쇠가 채워져
있는 서랍이 하나 있었는데 그 예방품은 거기에 있었다. 그것을 구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
다. 동네의 약국에서는 살 수가 없었다. 멀리 떨어진, 모르는 가게에 가야만 했는데 그래도
그걸 사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노는 친구들에게 부탁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그것을 사러 가서는 희한한 말짓거리로 가게
주인을 놀래키거나 혹은 주인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아예 기가 막혀서 단념하게 돼 버
리면 여유만만하게 그것을 사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약국 아저씨 말이야, 떫은 얼굴이더라. 마치 도덕주의자나 되는것처럼 말이야. 실은 그
런 놈이 제일가는 호색가야. 콘돔이 필요하면 내가 사다 줄께."
실은 살 필요도 없는데 가게에 들어간다. 자신의 그런 행동을 급우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말
을 했다.
"누가 쓸 거냐?"
주인은 가게에 온 고교생을 가만히 안경 너머로 보고 얼굴을 찡그린다.
"저요."
"너, 몇 살이지?"
"열여덟이요."
"미성년자에게는 안 팔아."
"그래요?"
그건 미리 예상한 일이다.
"안 판다 이거죠? 저―주인 아저씨, 아저씨는 귀여운 여학생이 임신해도 좋아요?"
"그런 짓을 안 하면 되잖아."
"그렇게는 할 수 없지요. 이미 하기로 결정했어요. 아저씨, 저는 상대 여자를 위해서 그것
을 쓰려고 하는 거예요. 사실은 나도 쓰고 싶지 않아요. 그냥 그대로 하는 쪽이 몇 배나 좋
다는 것쯤은 아저씨도 잘 아시잖아요. 희생하고 비싼 돈을 내면서 저는 이것을 사려는 거예
요. 아저씨 그래도 안 팔 거예요? 아저씨 때문에 순진하고 귀여운 여학생이 야밤에 병원의
문을 두드리고, 위험한 수술을 발게 돼요. 제가 만약 그 의사라면 태아를 가져와서 이 가게
에 던질 거예요."
"너 어디 학교 다니냐?"
"그건 쓸데없는 얘기구요, 자아 팔 거예요, 안 팔 거예요?"
"안 팔아."
"좋아요. 양심에 가책이 되지 않아요? 아저씨는 이제부터 범죄의 공범자예요."
"나가!"
"알았어. 내가 이 약국을 잘 기억해 두지. 이 집 딸이 올해 몇 살이더라? 그 계집애는 이
제 내 거야."
위협을 하고 가게를 나온다. 팔지 않아서 돈도 쓰지 않고 끝났다. 약국 주인은 당분간 안
심하지 못할 것이다. 불량 고교생이 밤길에 여자를 덮치는 사건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약국에서는 아무 말 없이 물건을 내주고 무표정하게 돈을 받았다. 또 거
절했다가도 계속 추근대면 화를 내면서라도 물건을 내주곤 했다. 그러나 마사오가 그런 친
구들에게 부탁하지 않은 것은 자기의 비밀이 탄로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다에꼬의
몸속에 들어갈 물건을 그런 남자들 손에 닿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마사오는 가게에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들어갔다. 돈을 내고 물건의 이름을 말
했다. 내심으로는 매우 떨렸지만 밖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주인은 고개를 들어 보지도 뭘
묻지도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물건만 내주었다.

토요일이었다. 2학년이 되어서 처은 같은 반이 된 나까가와 와꼬가 마사오에게 물었다.
"오늘 끝나고 볼일 있어?"
"아니 특별한 건 없어."
"너 우리 누나 생각나지?"
"요시꼬 누나? 그럼 잊을 리가 있냐?"
"T시로 시집갔어. 벌써 아이도 있어. 남편은 탄광촌 의사야. 시라고 해도 마을에서 멀리 떨
어진 산속에 있는 작은 동네야. 너랑 같은 반이 되었다니까 누나가 너 보고싶다더라."
"의사 부인이 됐어? 미인이었으니까 당연하겠지."
"열렬한 연애 결혼을 했어. 나 지금 거기 갈 건데 너 같이 안 갈래?"
"아니 사양하겠어."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부끄러워 말고 누나도 옛날 일은 다 잊고있어. 또 기억하고 있으
면 뭐 어때."
나까가와는 마사오가 요시꼬의 품에 안겼던 일을 알고 있었다. 그저 안겨있었다고만 알고
있지 그 이상의 일은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거길 왜 가냐?"
"할 수 없지. 그럼 부탁할 거 있으면 말해. 올 때 뭘 가져다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나 잘 해 줘. 그때 네 누나는 나의 비너스였어."
마사오는 나까가와를 보낸 후 옆 동네에 사는 사쯔가 미찌유라는 반 친구랑 영화 구경을
했다. 극장을 막 나서려는데 사쯔가가 살짝 웃으며 말해 왔다.
"내 여자 친구 만나 볼래?"
"여자 친구가 있었어?"
"약국집 딸이야.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가게일을 돕는데. 극장표도 그 애가 준 거야. 이
근처야."
"좋아. 만나 보지."
두 사람은 번화가를 걸었다. 마침 다에꼬와의 밀회 때에 필요한 물건을 마사오는 이 동네
에서 살 생각이었다. '그 여자애네 가게에서는 안 사.'
"저 가게야."
"지금 있을까?"
"저녁때니까 잘 모르겠는데."
"부모님은 만나는 걸 허락했니?"
"아니, 비밀이야. 그래서 오늘은 약방에 가서 위장약을 살 거야."
"위? 너 위가 나빠?"
"아니. 우리 엄마."
처음에는 모르는 척하고 가게 앞을 지나가기로 했다. 마사오는 앞을보며 곧장 걸었다. 가
게 앞을 지나자마자 사쯔가가 마사오의 팔을 잡았다.
"있어. 게다가 그녀 혼자야. 들어가자."
두 사람은 스스럼없이 약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옷을 입은 소녀가 진열대를 보고 서 있
었다. 흰 살결의 귀여운 얼굴이었다. 사쯔가를 보고 "어서오세요" 하더니 안쪽을 돌아다보았
다.
"위장약 좀 주세요." 일부러 사쯔가는 큰 소리로 말했다.
"함께 그 영화를 봤어."
마사오는 인사를 했다.
"오늘 고마웠어. 좋은 영화였어."
소녀도 마사오에게 인사를 했다. 작은 소리로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말했다. 역시 안쪽을
의식하고 있다. 사쯔가는 무슨 말을 하려다 그냥 "그럼 다음에" 하더니 마사오에게 "갈까?"
했다. 그리곤 가게를 나왔다.
"겨우 그 정도야?"
"아버지가 안에 계셨어. 그 애의 사정이니까 이애해야지."
사쯔가는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마사오에게 보여 주었다.
"편지를 받았어.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그리고 내 방에 가서 천천히 읽어야
지."
마사오는 너무 놀랐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사쯔가는 속주머니에 편지를 소중하게 넣
었다.
역 근처에 이르렀을 때 마사오가 말했다.
"나도 사고 싶은게 있어."
"그럼 거기서 사지. 약값도 깎아 주는데. 그런데 뭘 사려고?"
마사오는 주저하지 않고 물건 이름을 말했다. 사쯔가는 농담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뭐?"
마사오는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사쯔가의 표정에 장난기가 가셨다.
"정말이야?"
"응."
"너 창녀방에 가니?"
"아니. 그냥 사 보고 싶은 거야."
"그냥 사 보고 싶어? 필요한 게 아니구?"
"필요하다고도 할 수 있지."
"그럼 가자."
"거기 가서 사?"
"괜찮아. 익숙해져 있어, 약국집 딸이니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판대."
"너희 사이는 어느 정도냐?"
사쯔가는 마사오를 경계하는 눈으로 보았다.
"너 비밀을 지킬 수 있어?"
"너, 나 입 무거운 거 몰라?"
"난 그 애와 결혼할 거야. 분명히 약속했어."
"그 애의 이름은 뭐니?"
"미즈시마 노부꼬야. 그 애 어떻든?"
"뭐랄까, 순진하고 예쁘고 멋있는 애라고 할까. 네겐 좀 과분해 보이더라."
"판정은 합격이야?"
"물론."
"우리는 벌써 모든 걸 허락했어. 나는 책임을 질 생각이야 그러니까 사러가도 괜찮아."
"그럼 네가 사다 줘."
"안 돼." 사쯔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는 못 해. 내가 사면 그 애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거야. 같이 가서 네가 사."
"그렇겠군. 좋아 멋적지만 가자."
"빨리 가. 아버지가 가게에 있으면 귀찮아져. 아무리 얘기해도 팔지않거든."
두 사람은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마사오는 사쯔가에게 강한 연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종의 공범 의식 같은 거였다.
가게 안에는 여전히 노부꼬 혼자였다. 마사오와 사쯔가가 들어가자 노부꼬는 고개를 들었
다. 그 얼굴이 아까와는 달라 보였다. 사쯔가와 서로 몸을 허락한 사이라는 걸 알기 때문인
모양이다. 그러나 역시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다시 온 사쯔가를 보는 그녀의 눈
에 기쁨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내가 볼일이 있어서 온 게 아냐. 이놈이 사고 싶은 게 있대."
노부꼬는 마사오에게 물었다.
"뭘 드릴까요?" 당연히 노부꼬의 표정에는 연인의 친구에 대한 붙임성이 배어 있었다. 사
쯔가가 물건 이름을 말했다. 낮은 소리였다.
"한 타스 상자에 넣어서."
노부꼬는 당황하는 것 같았다. 사쯔가를 보는 눈이 화가 난 듯했다.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
다.
"정말이예요?"
마사오를 보지도 않고 다시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마사오는 태연한 표정으로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사쯔가 "값을 깎아 줄 거
지?" 하고 말하는데 그녀는 무뚝뚝하게 답했다.
"곤란해."
그러더니 물건을 꺼내주었다.
"자 빨리 주머니에 넣어." 사쯔가가 물건을 마사오에게 주었다. 가게를 나올 때 마사오와
노부꼬의 눈이 마주쳤다. 그때 이미 노부꼬는 본 모습으로 돌아와서 침착하게 그 가게의 주
인으로서 인사를 했다. 노부꼬의 눈 속에 뭔가가 요염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낀 것은 마사오
의 착각이었을까?
둘은 다시 역으로 갔다. 도중에 사쯔가가 말했다.
"잘됐어. 저 애는 나와 그렇게 된 것에 대해 늘 죄의식을 갖고 있었어. 이젠 우리만 그러
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좀 안심하겠지."
"날 싫어하지 않을까?"
"아냐. 되려 공범 의식이 생겨서 네게도 친근감을 가질걸."
"그렇다면 괜찮지만, 이것으로 나도 모르는 가게에 가는 일도 이제 끝이야. 안심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그 가게에서 사다 줄께."
"고마워."
"그런데 너 진짜 그거 어디다 쓸 거니?"
"만든 목적대로 사용할 뿐이지. 그런데 너희는 이걸 여자가 갖고 오니?"
"응."
"무척 순진해 보이던데. 상상이 안 돼."
마사오는 사쯔가와 노부꼬의 일을 다에꼬에게 말했다. 노부꼬가 다에꼬의 후배여서 그녀들
은 서로 알고 있었다.
"어머 그 애가?" 다에꼬는 퍽 놀라운 모양이었다.
"얌전하고 순진한 앤데."
"여자는 알 수 없어. 그 애들이 한몸이 된 건 우리보다 빨라."
"믿기 어려워."
"하지만 사실인 걸."
마사오는 다에꼬의 귀에다 대고 사쯔가에게서 들은 말을 얘기해 주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와서 사쯔가의 방문을 두드린 적도 있었대."
"왜?"
"사쯔가가 그리워서."
"그 애가 그런 정열이 있대? 나도 그런 대담한 일은 한 적이 없는데."
"그런 아이가 가끔 그 일 때문에 신에게 용서를 비나 봐."
"그건 진짜 나와 다르네. 난 세상에 알려지면 네가 곤란해질까 봐 비밀로 하는 거야. 죄책
감은 조금도 없어. 진실하게 살아가잖아. 너를 사랑하고 있고. 그게 제일 중요해."
두 사람 중 그들 관계가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는 쪽은 마사오였다. 다에꼬는 침착했다. 가
끔 누나 같을 때가 있었다. '난 귀여운 여자를 보면 귀여워해 주고 싶어. 이제부터 아마, 많
은 여자들과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다에꼬는 내게 고향 같은 존재가 될 거야. 아니,
이미 그래."
월요일 이었다. 마사오가 교실에 들어서자 나까가와가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네 다녀왔어."
그러더니 들고 있던 종이뭉치를 마사오에게 건넸다.
"너 주는 거야."
"누나가 아직도 날 기억하고 있든?"
"보고 싶어 하던데. 거기 가서 나고야 닭고기 구이를 먹었어. 매형은 탄광 회사 직원들뿐
만 아니라 근처 농가의 사람들도 진찰해 주고 있었어. 그러면 농가의 아줌마들이 인사로 산
닭을 가지고 오기도 한 대. 끝까지 안 받으려고 하면 닭을 잡아서 깨끗이 잘라 주기도 하
고. 다음에는 같이 가자. 누나가 너와 꼭 같이 오라고 했거든."
"그러지. 난 닭고기 구이를 좋아하니까."
"닭을 구울 때는 꼭 설탕도 넣더라. 역시 의사라는 직업이 괜찮기는 한가 봐."
"그런데 이게 뭐냐?"
"쇠고기 통조림하고 땅콩 통조림이야. 미군들이 푼 거야. 너 주라더라."
"이렇게 귀한 걸 받아도 괜찮을까?"
"야, 우리 누나가 널 아직도 좋아하는 거 아니니? 다음엔 너 나랑 꼭 같이 가야 해."
마사오는 나까가와가 준 통조림을 반으로 나누어 다에꼬한테 가지고 같다. 다에꼬는 이상
하게 생각했다.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언제?"
"국민학교 때."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었어?"
"아니."
예리하다고 느끼면서 마사오는 부정했다.
"처음 듣는 소린데?"
"별로 말할 게 없었으니까."
"너는 연상에게 인기가 있어서 걱정이야."
"그런 뜻이 아니야. 갑자기 내가 보고 싶아졌나 봐."
국민학교 때, 먼 마을에서 있었던 축젯날 밤에 생긴 그 이상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기억과 통조림과는 마사오의 가슴속에서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마 그 누나
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다에꼬에게 말한 대로 그저 보고 싶다는 일시작인 생각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나까가와의 누나인 요시꼬가 뜻하지 않게 통조림을 보내 주었다는 사실은 마사오의 가슴 속
에 먼 옛날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요시꼬는 그날 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환상의 여
자였다. 현실적으로는 그리움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요시꼬 다음으로 마사오에게 강렬한 체험을 하게 한 센쯔루는 그렇지 않았다. 친척
이어서 자주 부모님의 화제가 되었던 까닭에 센쯔루는 늘 마사오에게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
는 인물이었다.
그 센쯔루가 주말에 예고도 없이 혼자 마사오의 집에 나타났다. 도시락을 싸가지 않은 토
요일이었기 때문에 허기진 배로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온 마사오를 센쯔루가 웃는 얼굴로 마
중나와 있었다.
"어―?"
"뭘 그렇게 놀라니? 유령이 아니야. 자, 올라와. 마사오 많이 컸구나. 늠름한 남자 같아.
흠, 너도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예뻐졌는데, 이렇게 미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무슨 말을 하고 있니? 나는 여학교 때부터 예뻤어. 공습 때 둘이 방공호로 뛰어들었을 때
부터."
그래, 이젠 세월이 흘렀다. 센쯔루는 그 동안 잊혀진 얼굴이었다. 이제 그 센쯔루가 어른이
되어 마사오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갑자기 방공호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 태연하게 말하는
것도 이젠 센쯔루가 거기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어쩌면 마사오와의 은밀
했던 장난도 이제는 잊었는지 모른다.
마사오가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오라서자 센쯔루가 다가와 키를 대 보았다. 거의 비슷한 키
였다.
"여어, 마사오 정말 많이 컸다."
"그럼, 예전의 내가 아니라니까."
센쯔루는 물러서지 않고 두 손으로 마사오의 양팔을 잡으며 젖은 눈으로 마사오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았니?"
"만나고 싶었어. 그러나 만나도 내게 용돈을 줄 만큼 월급을 많이 받지는 못하잖아."
"어머, 너한테 용돈 정도는 줄 수 있어. 자 밥 먹으러 가자.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어머니는 부엌에 있었다. 세 사람이 식사하는 도중에 어머니가 마사오에게 말했다.
"센쯔루가 이번에 결혼한댄다. 결혼식에는 마사오도 가야 돼."
"결혼?" 마사오는 젓가락질을 멈췄다.
"그래요? 그럼 가야죠. 언제 언떤 사람과 하는데? 중매야, 연애야?"
"만나게 된 것은 나중에 자세히 말해 줄게. 사실은 더 놀고 싶지만, 결심했어. 너무 이르다
고 생각하니?"
"아니. 센쯔루 누나는 빨리 결혼하는 게 좋아."
"어머, 어째서."
"모든 사람이 안심하기 때문이지. 그런데 상대는 어떤 사람이야?"
"평범한 회사원이야. 얼굴은 마사오하고 꼭 닮았어."
"그럼 남자답겠는데."
"그래."
상대는 대학을 나온 회사원이고 센쯔루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다. 재산가의 차남이었고, 그
렇기 때문에 부모와 함께 살 필요가 없어서 버릇없는 자기에게는 잘 됐다고 센쯔루가 말했
다. 동감한다는 듯이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 누나보다 다섯 살 위야? 그러면 나보다 일곱 살 위구나. 그러면 어른이잖아? 하긴 누
나를 귀여워해 주려면 그래야 되겠지."
"그렇지 않아. 선을 불 때부터 내가 더 적극적이었어."
"믿을 수 없어."
"그렇겠지. 연애가 아니고 중매라는 사실, 그리고 내가 타산적이라는 사실 때문이겠지?"
저녁때 아버지의 귀가가 늦는 걸 알고 집에 있는 사람이 먼저 목욕탕에 들어가게 되었다.
손님인 센쯔루보다 남자인 마사오가 먼저 들어갔다.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 새삼스레 떠올
랐다. 옛날 일을 생각하면서 탕에 들어가 있을 때 문소리가 났다. 탈의장에 하얀 얼굴이 나
타났다. 옛날 그때 그 하얀 얼굴이었다.
"열 거야." 센쯔루의 못소리였다.
"등을 닦아 주러 왔어."
"안 돼. 사양하겠어."
마사오는 탕 속에서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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