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고독사랑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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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257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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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루 밖에는 수필의 말이 한가로이 대로 옆에서 풀을 뜯고 있고, 모두 일율적으로 흑의경장을 입은 무사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옥상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곳은 산중턱에 위치한 한적한 곳이라 길가는 행인이 별로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무사들외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부진진은 급히 밖으로 나갔으나 무사들을 발견하자 이들이 백옥상을 찾아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백옥상은 어느 새 이십 장 밖을 걷고 있었는데 그의 보법(步法)은 느린 듯했지만 실상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모습은 한줄기 연기처럼 빨랐다.
흑의무사들은 추호도 지체하지 않고 날렵하게 말을 몰고 그 뒤를 따라갔다.
영호문이 밖으로 나왔을 때 부진진은 재빨리 말했다.
"언니, 저들은 상오빠를 잡으러 왔나 봐요?"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불안과 염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빨리 따라가자!"
영호문은 황망히 외치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주점과 멀리 떨어지자 영호문과 부진진은 경공술을 전개하는데 마치 제비처럼 유연하면서도 섬전같이 빨랐다.


동지(冬至),
한 겨울의 날씨는 어둠이 밀려오자 살을 에일 듯한 찬바람이 몰아쳤다.

불영사(佛影寺)!

이곳은 항주 북서쪽에 위치한 유명한 사찰(寺刹)이다.
상주하는 승려 수만 해도 백이 넘고 주위에 고적이 많아 항주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들려본데다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항시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허나, 세인들은 알지 못했다.
이곳이 천불맹(天佛盟)의 사대분맹(四大分盟) 중의 하나라는 것을……

황혼이 짙게 불영사를 물들일 무렵이었다.
불영사의 대웅전에 정좌해 있는 주지승인 혜각선사는 소림에서 수학한 불심(佛心)이 깊은 고승이었다.
그는 두 사람의 선객을 맞아들였다.
한 명의 늙은 승려였다.
회색가사에 초라해 보이는 노승이었는데 주름진 이마엔 눈처럼 흰 백미(白眉)가 길게 뻗어 있고 탐스럽게 기른 그의 눈빛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눈을 보듯 맑고 투명한 동공은 한점의 티끌도 없이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그 옆에는 청삼노인이 앉아 있었다.
취옥천황 백장천은 지금 막 도착하여 대웅전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는 옆의 노승에 대하여 몹시 짙은 호기심을 느꼈다.
혜각선사는 당금 소림의 장문인인 혜천상인(慧天上人)의 사제로서 그와 함께 직접 대좌할 수 있는 신분의 사람은 손꼽을 정도였다.
헌데, 혜각선사의 태도로 보아 노승의 신분은 실로 범상치 않을 것 같았다.
취옥천황 백장천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이 노승의 모습은 기억에 없었다.
"아미타불, 백시주께서 오신다는 전갈을 받았읍니다."
혜각선사는 정중히 인사를 하며 합장을 했다.
"폐가 많읍니다, 선사."
"천만에 말씀을 다하십니다. 백시주야말로 대의(大義)를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분, 노납이 마땅히 도와 드려야지요."
혜각선사는 겸손을 표하며 잠시 노승을 쳐다보았다.
노승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
혜각선사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백시주께서 노납을 보자하심은?"
백장천이 침중히 물었다.
"선사께서는 알고 계시듯이 제가 이번에 여기 온 것은 고독사랑 때문이기도 하나 또 한 가지의 목적은 제가 조사한 결과로 신비회의 총단이 항주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일순 혜각선사의 눈빛에 경악의 빛이 스쳤다.
"아미타불……"
그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운 심정에 나직이 불호를 외웠다.
"신비회가 강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십 년이 넘었읍니다. 그들의 총단이 항주에 있다면 어느 정도 선사께서도 무언가의 조짐을 발견하셨으리라 생각하는데?"
백장천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 끝을 흐렸다.
혜각선사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년 전부터 천비성의 천비태공(天秘太公) 목(穆)시주에게 언뜻 들은 말은 있지만 노승은 별달리 아는 것은 없읍니다."
백장천의 표정이 밝아졌다.
"천비태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이다! 바로 그 분 시주를 말하는 것이지만 일 년 전 목시주께서는 병사하셨소이다."
순간, 취옥천황 백장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천비태공 같은 고수가 병사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혜각선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미타불. 노승도 그일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없읍니다. 다만 듣기로는 그렇다는 것이외다. 허나……"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
"노승의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그 일로 피살된 것 같구료!"
백장천의 두 눈에서 날카로운 광채가 폭사되었다.
"그 일이라면?"
"잘은 모르나 일 년 전 목시주께서 죽기 직전 잠시 이곳을 다녀갔소이다. 그때 천비태공의 말로는 황금산장의 동태가 아무래도 이상한 데가 있다고 말했읍니다."
"황금산장이라면?"

혜각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그렇습니다."
백장천의 가슴에 찬바람이 스쳐지났다.

<황금산장(黃金山莊))>

천하금력의 태반을 움켜쥔 황금성이었다.
십 년 전 내분으로 인해 와해의 직전까지 갔었으나 황금독효 금하림에 의해 장악된 후 황금산장의 제이의 황금기가 펼쳐진다.
헌데, 황금산장이 수상하다니?
취옥천황 백장천은 일순 이를 악물었다.
'황금산장! 그러나 아무리 황금산장이라도 신비회의 일과 연관이 있다면 결코 파괴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내심 굳은 마음을 먹지만 그의 가슴은 잔뜩 침울해졌다.
설상가상이었다. 신비회만 해도 벅찬 일인데 황금산장까지 연관된다면 앞으로의 일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년 간의 조사 끝에 신비회에서 영호장군가의 참화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제는 황금산장까지라니……
취옥천황 백장천은 가볍게 허리를 숙인 후 천천히 대웅전을 나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연판장을 얻어야 한다. 만일 이 일이 잘못된다면 우리 집안 뿐만 아니라 취옥궁, 나아가서는 전무림이 혈풍에 잠길지도 모른다.'
천천히 걷는 그의 신형은 웬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취옥천황 백장천이 사라진 대웅전은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혜각선사는 공손히 입을 열었다.
"사숙조, 백시주의 행동으로 보아서 어느 정도 알려 주는 것이……"
노승은 침울히 한숨을 쉬었다.
"혜각, 이 일은 한 개인의 일이 아니다. 신비회는 비록 겉으로 일개 강호방파 같으나 사실과는 다르다. 아미타불. 지금으로서는 연판장의 일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그것은 가짜일지도 모르는 일, 백시주에게는 미안한 일이겠으나 당분간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백시주는 취옥궁을 이끄는 무림의 동량 아닙니까? 만약 일이 잘못되어 맹우들의 노여움을 산다면 일이 수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노승은 씁쓸한 표정으로 창 밖을 주시했다.
"무림의 암운(暗雲)은 이미 천 년 전부터 시작되어 온 것이지. 설사 취옥궁이 무너져서 구마신교의 부활을 저지할 수 있다면 그나마도 다행한 일이지."
그는 회한 서린 표정으로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헌데, 이 무슨 소린가?
구마신교(九魔神敎)라니?

개세구천마종(蓋世九天魔宗)!

일천 년 전, 구인(九人)의 천세마종(千歲魔宗)이 출현하면서부터 전대미문의 대겁풍이 천지를 뒤덮었다.
중원(中原)과 새북(塞北)의 경계에 우뚝 솟은 기련산(祁蓮山)에서 악마(惡魔)의 성역이 탄생되었다.

<구마신교(九魔神敎)!>

그로부터 무림천하(武林天下)가 암흑의 무저지옥계로 화하고 말았다.
후세사가들이 일컫기를 암흑천지대파멸겁세(暗黑天地大破滅劫勢)라 일컫는 중원초유의 지옥혈풍기(地獄血風期)가 도래했다.
천하인들은 하늘을 우러러 절규했다.
천지(天地)의 암흑화!
허나, 빛(光)은 열렸다. 열 개의 대정지기(大正之氣)가 암흑을 관통했으니……

<중원십정무련(中原十鼎武聯)!>

철저히 신비 속에 감추어진 체, 구마신교를 공략해 들어간 열 개의 빛줄기.
그 십광(十光)이 사그러들기 직전까지 갔을 때에서야 비로소 암흑은 거두어졌다.

――크크큭! 두고 보아라! 또다시 악마혈겁(惡魔血劫)이 도래할지니, 진정한 구마신교가 부활하리라! 천하가 구마신교의 암흑저주(暗黑詛呪)에 함몰되리라! 켈켈켈……

암흑지옥(暗黑地獄)의 저주예언을 남기고 죽어 갔던 개세구천마종(蓋世九天魔宗)!
천 년의 시공 속에 구마신교는 침묵으로 잊혀졌거늘, 그 저주의 구마신교가 다시 거론되고 있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가?
저 저주의 지옥겁화(地獄劫火) 속에 통곡하는 중원천하(中原天下)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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