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검궁인의 건곤일척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332회 작성일 17-02-12 11:26

본문




乾坤一擲

제1권 11장 창궁무고(蒼穹武庫)



광란하는 파도에 미친 듯이 흔들리는 통나무배 위의 두 사람은 어느 틈엔가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자존심 높고 도도하기만 하던 감리신옥도 잔뜩 겁에 질린 채 몸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잔잔하던 호수와는 달리 갑자기 물살이 거세어지면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엄청난 급류로 화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칠흑같은 어둠뿐이었기에 아무리 상승무공을 지닌 여인이라 해도 본연의 두려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우르르 쿠쿠쿵!

급류는 더욱 거세어지기만 했다. 배는 한껏 높이 치솟았다가 아래로 급격히 곤두박질쳤다. 두 사람은 차가운 물을 또다시 흠뻑 뒤집어 썼다.

"저 정말 나가는 길을 알고 있나요?"

마침내 감리신옥이 불안한 음성으로 물었다.

"설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겠죠?"

주천운은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오. 거짓말을 했소. 하지만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그럴 수가 !"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제정신이 아닌 듯 그녀는 허우적거리며 부르짖었다.

"나 날 속이다니 . 역시 당신은 .아악!"

갑자기 배가 뒤집힐 듯 기우뚱거렸기 때문에 그녀의 말은 비명이 되고 말았다.

주천운은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순간,

콰르릉!

천둥치는 듯한 폭음이 울리더니 마침내 배가 뒤집혀 버렸다.

두 사람은 물 속으로 처박혔다. 주천운은 다급히 손을 뻗어 배를 잡으려 했으나 배는 이미 저만큼 밀려간 듯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 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하나의 안배를 하여둔 것이 있기는 했다. 그것은 배의 선미에 가느다란 은사(銀絲)를 매달아 지나온 길을 알 수 있도록 장치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소용이 없게 되어 버렸다. 배와 함께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눈앞의 위험을 극복하는 것만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감리신옥이 수중공부에 자신이 있다고 한 것도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일단 물 속으로 처박힌 그녀는 죽어라 그의 목에 매달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무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바깥 세상이고 뭐고 입과 코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삼키며 그녀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토해내기에 바빴다.

"아 악마! 아압 ! 도 돌아가요 으흡 !"

주천운을 때리고 꼬집어 보아도 이미 늦어버린 일이었다. 그녀는 물이 목구멍을 치밀고 들어올 때마다 기절을 할 것만 같았다. 이런 고통은 생전 처음 당하는 것이었다.

기어코 그녀는 혼절하고 말았다.

그녀가 혼절한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다행히 주천운은 수중공부를 익혔으나 그녀가 목을 붙들고 악을 써대는 바람에 헤엄을 치기가 용의치 않았던 것이다.

콰르르 쿠쿠쿵 !

거미줄같이 얽힌 수동 속을 빙빙 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살을 따라 나가기만 하면 밖으로 나가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힘이 점점 빠졌다. 한 손에 감리신옥을 안고 있을 뿐더러 다른 손으로는 계속 물을 저어야 했으므로 진기의 소모는 예상보다 컸다.

점입가경으로 물결은 더욱 거세지는 것이다. 물결은 거세게 소용돌이치면서 한 곳을 향해 놀라운 속도로 빨려들어갔다. 동시에 동굴을 무너뜨릴 듯한 굉음이 더욱 가까워졌다.

주천운도 드디어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지하 세계로 빠지는 것은 아니겠지?'

그가 막 그와 같은 불길한 생각을 했을 때였다.

"헉!"

갑자기 엄청난 흡인력에 의해 그의 몸은 수중으로 빨려들어갔다. 아무리 위로 떠오르려고 해도 소용 없었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수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수중동(水中洞)의 형태는 신비로웠다.

한가운데 동그란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을 중심으로 넓은 광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주변은 온통 휘황한 광채가 감돌고 있어 현란하기 그지없었다.

그 광채는 벽과 바닥에 깔려 있는 돌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 돌들은 각들이 져 있었으며 투명한 가운데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벽과 바닥뿐만이 아니라 천정에서 뾰족하게 내려온 기암에까지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덕분에 휘황한 광채는 이리저리 반사되어 가히 눈부실 정도였다.

"이 이럴 수가? 이것들은 모두 금강석이 아닌가?"

주천운은 도시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금강석 천지였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바닥에 뒹굴고 있는 반짝이는 돌들을 주워 들어보며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틀림 없었다.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는 보물덩어리가 이곳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었다. 드넓은 광장이 온통 보광으로 휩싸여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주천운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가히 환상의 세계였다. 이 곳에 있는 보석은 단 한 줌만 가지고 나간다 해도 대부호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값진 것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이만한 보화가 있다면 능히 일국(一國)을 건설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설사 황제라 한들 어찌 이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겠는가.

주천운은 이제 황제도 부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달콤한 환상을 일시에 깨뜨리는 앙칼진 목소리가 있었다.

"더러운 거짓말쟁이!"

"윽!"

주천운은 등줄기에 일 장을 얻어맞고 앞으로 나가 떨어졌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운신을 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나가떨어지다가 머리를 종류석에 부딪쳐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눈앞에 별이 번쩍이는 가운데 화가 나 서릿발처럼 굳어진 예쁜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애당초 당신의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흥! 하지만 대가는 톡톡히 치를 거예요."

감리신옥이었다.

그녀는 두 눈에 살기를 드러내며 섬섬옥수를 쳐들었다. 그녀의 손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주천운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누이. 기왕에 이렇게 된 것 너무 화를 내지 마시오. 내가 비록 누이를 속였다고 하나 나쁜 뜻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오. 게다가 ."

"시끄러워요."

쐐액!

수도가 가차없이 떨어졌다.

주천운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일격에 맞기만 하면 어디 하나가 성치 못할 것같았다. 그는 데굴데굴 구르다시피하여 일단 몸을 피했다.

그러나 재수가 없으면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하필이면 칼끝처럼 날카로운 보석을 안고 구르는 바람에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너무나 아팠던 것이다.

"흐흥! 어딜?"

감리신옥의 화는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주천운을 따라 신형을 날리며 재차 쌍장을 날렸다. 손바닥이 수십 개로 나뉘어지며 맹렬한 위세를 떨쳐내었다.

주천운은 다급히 여섯 바퀴나 굴렀다. 그가 피해낸 바닥에는 여지없이 선명한 장인이 찍히며 돌이건 바위건 할 것 없이 가루가 되어 있었다.

일곱 바퀴째에서 그는 벌떡 일어섰다. 더이상 가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잠깐만! 누이. 이것 좀 보시오!"

그는 다급히 손가락으로 사방을 가리키며 감리신옥의 주의를 돌리고자 했다. 그녀는 의아한 듯이 돌아보다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자고로 여자라는 존재는 선천적으로 보석에 대한 감식안이 있기 마련이다. 감리신옥도 그런 면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대뜸 이 곳이 엄청난 보석굴임을 알아보며 환성을 발했다.

"금강석이다!"

주천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 모두가 나의 공이 아니겠소?"

그러나 이미 감리신옥에게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괴성을 발하더니 신형을 날려 바닥에 흩어져 있는 금강석을 마구 끌어모우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아름의 금강석을 모았으나 그래도 만족하지 않은 듯 그녀는 계속해서 금강석을 긁어 모우는 것이었다. 마치 이성을 잃은 것같았다.

주천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여자란 모두 똑같다니까."

감리신옥은 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마음을 놓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찬란한 보광 때문에 광장의 모든 것이 환히 보였다. 그는 발 끝에 채이는 보석을 밟으며 걸었다. 절로 실소가 흘러 나왔다.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만일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면 이것도 그저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 것을 ."

감리신옥은 그의 말을 들지 못했다.

그녀는 치마를 입지 않은 것을 평생 처음으로 후회하면서 옷자락에 잔뜩 금강석을 주워 담았다. 치마를 입었더라면 아마 치마폭이 찢어질 정도로 가득 담았을 것이다.

단삼은 원래 간편을 위주로 하는 복장이었으므로 별로 여유가 없는 옷이다. 그러나 여기저기 금강석을 쑤셔 담는 바람에 옷이 찢어져 나갈 듯한 데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완전히 금강석 모우기에 정신이 빠져 있었다.

주천운은 빙긋이 웃으며 안쪽으로 걸어갔다. 광장 한 쪽으로 통로가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잠시만 그대로 있어 주오. 누이."

그는 통로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소용돌이에 휘말려 잠시 정신을 잃긴 했으나 무공만은 손상됨이 없었다.

통로의 바닥에도 금강석이 깔려 있어 환했다. 그는 줄곧 금강석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보석을 밟고 걸어간 사람은 아마 그가 처음이리라.


<창궁부(蒼穹府)>


주천운은 석문 앞에서 못 박힌 듯 굳어졌다.

통로의 끝에 석문이 있었다. 그의 시선은 창궁부라고 깊이 각인되어 있는 글씨에 고정되어 있었다.

글씨는 진서체로 쓰여진 것이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살아 승천하려는 용과 같은 필체였다.

그 글씨체를 보는 순간 그는 두 가지 이유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첫째는 아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내가지력(內家之力)으로 5푼의 깊이가 넘는 글자체를 새겨넣은 것이었고 두 번째의 것은 창궁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창궁 창궁이라면 !"

주천운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가지 무림고사가 떠오른 때문이었다.

300년 전 무림을 한(限)과 피(血)로 물들였던 무림비사 .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고사가 석문을 보는 순간 벼락같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는 경이에 찬 시선을 석문에서 떼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곳이 바로 창궁무고(蒼穹武庫)란 말인가?"

창궁무고라면 천하의 무림인들이 꿈에서도 찾으려 하는 신비의 장소가 아닌가. 주천운의 가슴이 벌렁거리며 뛰었다.

격류에 휘말려 떠밀려 온 곳에서 어쩌면 불후의 기연을 만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설레게 한 것이다.

"인간사 새옹지마라더니 환란 속에 기연이란 말인가?"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석문을 밀어 보았다. 석문은 약간만 힘을 주었을 뿐인데도 소리없이 열렸다.

창궁무고는 서고(書庫)를 비롯하여 세 칸의 장방형 석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서고로 들어간 주천운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사면 벽에 가득 꽂혀 있는 고서들은 무림인들이라면 꿈에서도 얻고 싶어하는 각종의 무공비급이 아닌가?

천하 각 파의 무공은 물론이었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기인이사들의 무공비급이 헤아릴 수 없이 쌓여 있었다. 심지어는 하오문에 속하는 흑도무공이나 사마외도의 방문좌도 무학에 이르기까지 두루 망라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 창궁무고에 관한 고대의 전설이 모두 사실이었다니 ."

주천운은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수백 년 동안이나 무림에서 꾸준히 내려오는 전설. 그것은 창궁무고에 관한 것으로 누구든 창궁무고를 여는 자가 있다면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된다는 전설이었다.

전설이 시작된 것은 300년 전이었다.

당시 장한미인(長限美人)과 창궁객(蒼穹客)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무림비사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500년 전 천하를 피로 물들였던 천마교의 진전을 이어받은 장한미인과 정도 천하제일인이었던 창궁객의 사랑. 그것은 무림의 비극이었다.

장한미인과 창궁객은 본래 서로 사랑하는 사이었으나 장한미인이 천마교의 마공을 익혀 절세마녀가 되자 두 사람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숙적이 되고 말았다.

장한미인은 천마교주가 되어 천하를 마도로 장악하려 했고 창궁객은 그를 막아야 했다. 그 당시 무림은 천마교와의 싸움으로 단 하루도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장한미인은 엄청난 마공과 미색, 교활한 간지로 무림을 도탄에 빠뜨렸다. 그로 인해 수만 명이 죽고 무림산하는 시산혈해가 되었다.

정도 제일기인이었던 창궁객은 몇 번이나 장한미인을 설득하려 했으나 이미 마성이 극도로 달한 장한미인은 그러한 충고를 들을 리가 없었다.

도리어 그녀의 암격에 창궁객은 목숨이 경각에 처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결국 창궁객은 눈물을 뿌리며 그녀를 제거할 결심을 굳혔다. 이어 그는 천양방(天陽幇)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정도 세력을 규합했다.

천양방과 천마교의 싸움은 수 년을 끌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황산(黃山) 무애봉(武涯峰)의 대전에서 정사양도는 환우일전을 벌였다.

그 대전으로 인해 무림의 원기는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치유되지 못할 정도의 깊은 상처를 입었다.

창궁객은 장한미인과 삼일 밤낮의 혈전을 벌였다. 그 싸움에서 마지막 삼천 초 만에 장한미인은 창궁객에 의해 목이 잘렸다.

신화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설은 창궁객이 무림에서 사라지고 천양방이 해체되었을 때 생겨났다.

그것은 창궁무고에 관한 것이었다. 창궁객이 천양방에 가담했던 각 파의 신공절기와 당시 그가 제압했던 천마교의 마두들의 독문무학이 담긴 비급들을 한 장소에 비장시켜 놓았다는 소문이었다.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왔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소문은 끊임없이 무림에 이어져 왔다. 그후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창궁무고가 발견되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소문을 사실로 믿었다. 더불어 창궁무고를 발견하는 자는 천하제일인이 된다는 전설 아닌 전설은 여전히 무림인들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당겼던 것이다.

주천운의 격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전설이 자신의 눈앞에서 실현된 것이 아닌가. 그는 창궁무고에 가득차 있는 무학비급을 바라보며 감개가 무량했다.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대기연을 만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문득 그는 수천 권의 비급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후후 아무리 많은 비급이 있다 한들 이것을 모두 익힐 수는 없지 않은가?"

맞는 말이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욕심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이치였다.

무고 안에 가득찬 무공비급은 실상 한 권 한 권이 한 문파를 이루어온 절기들이 아닌가. 한 사람이 그것을 모두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중의 십분지 일쯤 ? 아니 백분지 일도 다 익히지 못할 것이다.'

주천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공을 익혔다. 무림인이라면 무공비급에 혹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그도 그런 면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를 알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과 틀리다면 틀린 점이었다.

'서두를 것 없다. 어차피 창궁무고는 내 앞에 있다.'

그는 무공비급을 뽑아보려는 유혹을 물리치고 무고를 나왔다.

'이 곳은 외부세계와 단절된 곳이다. 밖으로 나가는 길도 아직 찾지 못했다. 그 동안 많은 시간이 있다.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 급한 것은 우선 이 곳을 완전히 파악하는 일이다.'

주천운이 남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면이리라. 나이에 비해 훨씬 침착할 뿐더러 치밀하기도 한 것이다. 때로는 치기어린 점이 있으나 그것은 타고난 성품일 뿐이었다.

그는 뇌정각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오직 그 한 가지를 위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떨쳐버렸으며 무한한 고통을 참아왔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금강석보다도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머지 두 칸 중 하나는 유실(幽室)이었다. 유실 안으로 들어간 주천운은 석벽에 걸려 있는 한 장의 족자를 보고 흠칫했다. 족자의 그림이 워낙 괴이했기 때문이었다.

'저분이 창궁객이란 말인가?'

그의 눈은 빨려들 듯이 그림으로 향했다.

족자 속에는 일신에 혈의를 입고 있는 중년인이 그려져 있었다. 중년인의 뒤에는 암벽이 있고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미녀의 머리를 들었다.

검은 땅으로 향한 채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는데 정작 놀라운 것은 미녀의 목이었다.

미녀는 목이 깨끗이 잘린 채 장발이 중년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비록 목밖에 없는 여인이었으나 용모는 처절하리만큼 아름다웠다.

빙옥같은 얼굴과 선연한 이마는 섬뜩할 정도의 요요한 미를 풍겼다. 다만 부릅뜨고 있는 눈에서 가공할 마기가 느껴진다는 것이 간담을 서늘케 할 뿐이었다. 잘려진 목으로부터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천운은 중년인의 얼굴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이분이 창궁객일 것이다. 그림의 내용은 삼백 년 전 무애봉에서 장한미인을 죽인 것을 나타낸 것이리라. 사랑하는 여인을 죽이고 난 후의 심정이 잘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그림 속의 혈의인은 장천을 우르러 처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미녀의 수급은 바로 그가 사랑하던 여인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심중이 너무나 잘 묘사되어 있었다.

일그러진 뺨 위로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천하의협 창궁객진위(天下義俠 蒼穹客眞位)>


그림 앞에 놓여 있는 위패와 유골을 바라보던 주천운은 문득 의문에 휩싸였다.

'이 위패의 글씨체는 석문에 새겨진 것과 다르다. 석문의 글씨는 활달하되 비장한 기운이 느껴지는 반면 위패의 글씨는 장중하고 만인을 압도하는 군왕의 기상이 느껴진다.'

갑자기 그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의혹에 찬 시선으로 유골단지를 바라보았다.

'창궁객은 삼백 년 전의 인물이니 죽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누가 그의 유골을 거두었단 말인가. 죽은 사람이 자신의 유골을 거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맞는 말이었다. 유골 단지는 물론 위패를 만든 사람은 창궁객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또다른 사람이 이 창궁무고에 들어왔다는 말이 아닌가.

주천운은 새로운 사실의 발견에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이 곳에 들어오기 전에 다른 인물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놀랍기보다도 강한 의혹을 던져주는 일이었다.

창궁무고를 여는 사람은 천하제일인이 된다!

그 전설을 모르는 무림인은 없다. 그렇다면 창궁무고를 발견하고 창궁객의 유골을 정리한 인물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아직 무림에 창궁무고를 발견했다는 사람이 없었거늘 .'

의문이 구름처럼 일어났으나 단시간에 풀 수는 없었다. 주천운은 유실을 나왔다.

마지막 석실은 침실이었다. 장방형의 반듯한 석실에는 돌로 만들어진 침상과 탁자를 비롯한 몇 가지 기물들이 있었다.

주천운은 침실로 들어서는 순간 형언하기 힘든 영감을 접하고는 부르르 떨었다.

" !"

돌침상에는 사람이 누워 있던 흔적이 있었으며 한 쪽에는 그 인물이 입었음직한 의삼이 개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의삼은 퇴색되었으나 그것을 바라보던 주천운은 그것이 보통 의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곤룡포 !"

그는 부지중에 부르짖었다. 그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창궁무고 안에 황제의 어의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이 침상 머리맡의 벽으로 움직였다.

한 자루의 검이 벽에 걸려 있었다. 한눈에도 보통 장검이 아니라 고색창연한 느낌을 주는 보검이었다.

" !"

자력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그는 검을 잡았다.

검을 잡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검의 손잡이로부터 알 수 없는 느낌이 전달되었던 것이다. 검집은 교룡(蛟龍)의 가죽으로 되어 있었으며 자루는 물소의 뿔로 되어 있었다. 수실은 황금빛이었다. 두 개의 수실은 장구한 세월 속에서도 조금도 퇴색되지 않아 먼지를 털어내자 찬란한 광채를 발했다.

자루를 어루만지던 주천운은 눈을 크게 떴다. 자루 한 부분에 새겨진 글씨때문이었다.

<황(皇)>

"이 이것은 황제의 검이다!"

석실 안이 그의 부르짖음으로 진동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황제의 어검이 창궁무고에서 발견되다니 . 그것은 실로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경이로운 마음으로 보검을 살펴보던 그는 검집에서 또다른 글을 발견했다.

<윤문(允愕)>

그것은 서명이었다. 즉 검의 주인 이름을 새겨넣은 것이었다.

"윤문 윤문이라고? 앗 !"

마음 속으로 이름을 되뇌이던 주천운은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발했다.

"윤문이라면 금륭에서 영락대제에 의해 죽었다던 혜제(惠帝) 건문제의 이름이 아닌가!"

쾅! 하고 거대한 쇠망치가 그의 가슴을 치는 듯했다.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윤문. 즉 건문제는 대명(大明)의 3대 황제였다. 그는 불우한 황제로서 불과 4년밖에 제위에 있지 못했으며 숙부인 영락대제에 의해 제위를 빼앗긴 인물이었던 것이다.

야사에 의하면 영락대제가 연경(燕京)에서 내려와 금륭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을 때 황궁에서 불에 타 죽은 시신을 발견하고는 그를 건문제라고 발표하였으나 사실 건문제는 죽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고 지사(志士)들을 모아 복위를 노린다는 것이 민간에 전해진 야사였다. 야사는 정사와 달리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비운의 황제 건문제에 대한 소문은 끊임없이 민중 사이에 만연되어 영락대제는 항상 제위기간에도 불안해 하였다는 말이 있다.

물론 영락대제는 죽었다. 지금은 정통제(正統帝)의 시대였다. 꾸준히 민간에 나돌던 건문제의 야사는 이제 차츰 시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놀라운 일이다. 이 곳에서 건문제의 황검이 발견되다니 그럼 저 곤룡포도 바로 그의 ?'

황검이 있고 곤룡포가 있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건문제는 바로 이 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건문제는 바로 이 곳에서 재기를 노리며 각고하였을 것이다. 당시 영락대제의 힘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에 복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건문제는 이 곳에서 창궁무고의 무공을 익혀 거사를 획책하였을 것이다.'

그의 생각은 이어졌다.

'황궁을 정복하고 복위를 하는 것은 엄청난 금력과 지지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 곳에는 막대한 보물이 있으니 금력 면에서는 해결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

그는 마치 눈으로 보기라도 한 듯이 생각을 이어갔다.

'당시 건문제를 따르던 무장이나 충신들은 모두 영락제에 의해 참수되고 천지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을 설사 다시 모운다고 해도 영락제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만일 그분이었다면 .'

갑자기 주천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다. 무림 무림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황궁과는 관련을 갖지 않는 강호무림의 힘을 이용한다면 복위를 꾀하는 것도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더욱이 이 곳에 있는 수많은 무림비급을 이용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그러나 한 가지 의문에 부딪쳤다.

'현재의 황제는 정통제다. 건문제께서 폐위되었을 때로부터 이미 사십 년이 휠씬 지났다. 건문제가 무고를 얻고 복위를 꾀했다면 어찌하여 아직 거사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 이상은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주천운이라고 해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복위를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서 산화되었다면 그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엄청난 비사가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는 웬지 건문제에 대해 강하게 이끌리는 느낌을 받었다. 비운의 황제였던 윤문. 그의 성 또한 주씨였으니 아득하게 거슬러 올라간다면 자신과 한 줄기 혈연이 얽혀 있을 지도 몰랐다.

그 순간 주천운은 큭큭 웃었다.

"어림없는 일이다. 성이 같다고 그런 생각을 어찌 감히 그분은 황제였고 나는 강호무부의 후손이 아닌가?"

그는 고개를 흔들며 수중의 검을 어루만졌다. 검은 석 자 두 치의 알맞은 길이로 그의 손에 잘 맞는 느낌이었다.

"강호의 범부로서 황검을 취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나 어차피 주인을 잃은 것이라면 이 곳에 사장되기는 아깝다. 혜제시여, 이 주천운이 취한다고 너무 노여워 마시기 바라오."

주천운은 검을 두 손으로 받들어 경의를 표한 다음 검을 뽑았다.

우우웅 !

흡사 용이 울부짖는 듯한 검명이 들리며 석실 안은 검광으로 푸르게 빛났다. 검날은 오랜 세월 동안 갇혀 있은 것이 답답하였던지 한껏 검기를 발했다.

푸르른 검광이 서리서리 검극으로부터 뻗어 그 서슬만으로도 능히 천하를 질타할 것같았다.

" ?"

검이 뽑혀지는 순간 무엇인가가 검집 안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똘똘 말려진 한 장의 종이었다. 무엇인가 의아해하며 종이를 펼쳐든 주천운의 얼굴에 놀라운 빛이 역력했다.

"이 이것은 건문제의 친필이다!"

그것은 건문제가 직접 쓴 밀지였다. 주천운은 그것을 읽어나갔다.


-석년(夕年). 짐은 충신들의 진언을 듣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 아아! 그들이 충심으로 짐의 안위를 걱정하여 연경부에서 숙부 태(泰)가 흉심을 품고 남하하여 왕위를 노린다는 말을 간하였으나 짐은 믿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렇듯 비참하게 되었으니 하늘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나 어찌 역천의 죄를 범한 그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때늦은 감이 있으나 짐은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천심이 짐을 버리지 않았음인지 짐은 양천위(楊天違), 곽릉(郭陵) 등의 도움을 받아 함락되던 황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재기의 날을 기다리며 천하를 유랑하다가 무협(巫峽)에 이르러 문득 영감을 느껴 이 곳을 찾게 되었는 바, 그도 역시 하늘의 뜻이 아닌가? 무고를 남긴 강호기인 창궁객의 유골을 거두고 짐은 결심했다. 천심이 짐에게 있다면 무고를 열게 한 것이야말로 짐의 재기를 바라는 것이며 그 시작이 예시된 것이라고.

짐은 강호야인들을 규합하여 재기하리라. 이 곳에서 무도를 익힌 후 강호에 나가 뜻을 세울 것이다. 마침 곽릉이 강호에 밝으니 그의 도움을 받으면 대사를 꾀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다시 보위에 올라 정사를 바로잡을 때까지 황검을 이 곳에 둠은 짐의 뜻이 확고하여 뜻을 이루기 전에는 야인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 !"

주천운의 놀라움은 이제 극에 달했다. 황검 속에 감춰져 있던 밀지로 인해 모든 것이 밝혀졌다. 이 곳에 들어온 인물은 실종되었던 건문제였다.

그는 멍하니 황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건문제 한데 어찌하여 거사가 일어났다는 말이 없단 말인가. 이 곳에서 나간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

정녕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밀지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창궁무고의 무공을 익힌 후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림인을 규합하여 재기를 꾀했을 것이 아닌가? 그 일은 무림을 경동시키기에 충분한 일이다.

그러나 주천운은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들은 것이 없었다.

"지금은 정통제 영락대제 이후 황제의 보위는 세 차례나 바뀌었다. 비록 그 사이 많은 세월이 흐른 것은 아니라 하나 지금에 와서 건문제가 복위를 꾀한다는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있다."

검광이 사라졌다. 검집에 회수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분이 복위를 노린다면 그것은 도리어 천하의 안녕을 해치고 난세를 일으키는 일이 될 것이다."

주천운은 웬지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영락제가 조카인 건문제를 폐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것은 정당한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천운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그는 방 안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언제고 밝혀질 때가 있겠지."

그때였다. 돌연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감리신옥의 음성이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는 화살처럼 신형을 쏘아갔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