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마수록 1권 8/1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030회 작성일 17-02-12 11:26

본문

인간과는 다른 이질적인 것에서 쥐어짜내어진 땀이라든가 체
액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방울에 전체의 아집()
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호스케는 정신 상흔의 공동(포)에 잠겨들 결심을 했다. 정신
상혼의 본체가 사라져 있기 때문에 잠겨들기가 쉽다. 만약 아직
괌아 있는 것이 있다면, 남자의 자아의 내부에까지도 땋을 수 있
을 것이다.
호스케는 주위를 부유하고 있는 표층의식의 단편을 몇 개 자신
의 내부에 넣었다. 이것은 무슨 일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무기나
방패가 되는 것이다.
정신 상흔은 언뜻 보기에 야구공 형태를 하고 있으나, 그것은
의식의 각 층에 있어서의 단면 형태이다.
실제로는 의식의 각 층에 가지를 뻗은 4차원적인 '나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뿌리는 자아의 네부에까지 땋아 있는 경우가
많다,
호스케는 정신 상흔이 사라진 후의 구멍 속으로 몸을 밀어넣었

그 순간 처절한 광경이 호스케의 눈앞에 펼쳐졌다.
쿠로고의 빌사
지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멎이 다다미 위에 격자 모양
의 그컴자를 떨어뜨리고 있다. 미풍이 불 때마다 격자 무늬 속에
서 잎사귀가 달린 나뭇가지 그림자가 멎의 얼룩을 흔들었다.
다실(홀) 안에 물이 끓는 작은 소리가 울리고 있었고, 가운
데 놓인 화로 위의 주전자에서는 김이 오르고 있었다.
대나무 꽃병에 한 묶음의 도라지꽃이 꽂혀 있다. 작은 연보라
색 꽃이 피기 직전의 팽팽한 생명력으로 적당한 긴장을 만들어내
고 있었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다실이었다.
보통 사람 눈으로는 알 수 없지만 천장에도, 둥근 장식 기둥에
도 많은 돈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모든 것에 최고의 재료가 사
용되어 있는 것이다.
장식품은 꽃병 뒤의 벽면에 걸려 있는 족자뿐이다.
옛 풍미가 있는 다실에 그 족자는 웬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
다. 족자에 그려진 그림이 다실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선 채로 교합하고 있는 남녀 신의 모습이 현란한 색채로 그려
져 있다.
혜루카 신의 환희상이었다.
중앙에 짙은 군청색 헤루카 신이 버티고 서고, 그 옆에 검은
색 여존(=) 이 달라붙어 턱을 뒤로 젖히고 있다. 두 다리를 혜
루카 신의 엉덩이에 돌린 여존의 그곳을 혜루카 신의 남근이 아
래로부터 관통하고 있다.
혜루카 신은 분노의 형상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왼손에는 구슬
을 오른손에는 방망이를 쥐고 있다. 좌우로 펼친 무수한 손에는
여러 가지 법구()와, 엉덩이로부터 꼬챙이에 꿰어진 인간,
범천()의 머리가 쥐어져 있다. 몸에 지니고 있는 장신구는
무수한 인간들의 살아있는 머리였다. 머리는 수십 개의 해골로
장식되어 있다.
등뒤에는 붉은 불
눈을 크게 뜬 세 개의 안구에는 핏발이 서고
꽃이 타오르고 있다.
지나치게 강렬한 밀교의 밀화() 였다.
기묘한 다실이었다.
그 다실에 네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여자, 나머지의 세 사람 중 둘은 노인이었다. 한 노
인은 일본옷을 입고 있었다.
차례카례 순서대로 차를 따
일본옷을 입은 노인이 세 사람에게
라주었다.
그 노인은 7대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머리가 깨끗하게 벗어
져 있었다. 양쪽 귀 주위에서 후두부 쪽으로 간신히 백발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본옷을 입은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큰 체격은 아니지만 묵직이 안정되어 보였다. 그것이 노인의
신체를 외견 이상으로 크게 보이게 했다. 노인의 육체로부터 사
람을 누르는 이상한 압력이 뿜어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인에게는 단순한 관록 이상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생기 같
은 것이 있었다.
찻잔을 다루는 손놀림도 언뜻 보기엔 전혀 격식에 따르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정확한 작법에 따른 것이었다.
노인이 단정히 양복을 입은 남자 앞에 찻잔을 놓았다.
토야마라고 불린 남자는 찻잔에 손을 뻗었다,
약간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직 대 초반처럼 보였다.
토야마는 정확히 작법대로 차를 마시고 나서 다시 놓았다.
'어떤가, 토야마.'
맑은 목소리로 노인이 물었다.
'아카오리베()군요.'
토야마가 조금 굳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호.'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는 찻잔에 대해서 아느냐'
'안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나는 몰라."
'지금 들은 이름도 이놈을 얻었을 때 당연히 들었을 텐데 지금
까지 잊고 있었어. 게다가 지불한 금액도.'
'네에 .......'
노인의 눈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한 가지 봐주겠나'
노인은 탁자에 놓여 있던 두 개의 찻잔을 집어올리며 물었다.
'어떤가'
토야마 앞에 그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이것을 어떻게 .......'
토야마는 노인의 진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가늘게 뜨
고 찻잔을 보았다.
한 개는 시노( ;), 한 개는 에카라츠(챠)처럼 보인다.
'상표나 찻잔 이름은 아무래도 좋아. 이 두 개중 어느 쪽이 비
싼 건지 그것을 맞춰보게."
노인이 말했다.
'그건.......'
'즉흥적으로 말해봐.생각나는 대로.'
토야마의 이마에 땀이 배고 있었다.
여름에 양복을 입었기 때문에 흘리는 땀은 아니다.
그 이마의 땀을 재미있다는 듯이 노인이 웅시하고 있다.
'질문을 바꿔볼까 어떤가, 얼마면 자네는 이것을 사겠나 값
을 매겨보게. 자네가 말한 값으로 이것을 팔아주지.'
토야마 이마의 땀방울이 커지고 있었다.
'2천만 엔이라고 매길 텐가 백만 엔 아니면 2, 백 엔이라
든가.......
"저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토야마가 대답했다.
'저런 !"
'용서해 주십시오, 쿠로고 님.'
토야마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시선을 토야마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몸집이 작은 노인과 여자가 앉아 있었다.
어떻소, 엔오우. 당신이라면 얼마로 매기겠소"
엔오우라고 불린 노인은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더욱 주름지게
하며 괴룹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쿠로고라고 불린 노인보다는 체구가 작다. 여윈 체구에 검은
도복을 단정히 입고 있었다. 네 사람 중에서 혼자만 책상다리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하겠습니다."
엔오우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우선 최상의 노주(중)를 준비하겠습니다.'
"오호.'
'그 노주를 두 찻잔에 한가득 될 때까지 담아도 되겠습니까'
'좋도록 하게.
'그 노주를 담은 채로 찻잔 두 잔분의 노주 가격으로 사겠습니
다,'
능숙하게 말했다.
'힘이 빠지는군."
'어차피 저한데 그 찻잔은..... .."
'엔오우, 내가 고심해서 만든 작품을 노주와 똑같이 취급하는
군그래.'
노인은 웃으면서 두 찻잔을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쿠로고 님이 직접 구우신 것입니카"
토야마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물었다. 두 개의
찻잔은 비전문가의 거친 손재주라고 하기에는 훌륭한 품격이 있
었다,
'그런데 토야마,'
탁자에서 시선을 뗀 노인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호스케가 코우야 산에 왔다는 것이 사실인가"
끔.
'타무라를 지키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있었는데, 그는
비쿠라는 남자와 함께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바가 산에서 만났다는 남자인가보구만.어떤 사람인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코우야 산과 대단히 관
계가 깊은 듯합니다. 미리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비쿠에게 호스
케를 넘겨주지 않았을 텐데.......'
한코가 함께 갔었지'
'도중에 곰에게 습격을 받아 곰은 한코가 처치했지만 그 일로
쟈코인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여자가"
'여자가 상처를 입지만 않았어도 한코가 어떻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한코와 쟈코인이라.......'
노인은 팔짱을 꼈다.
엔오우에게 눈길을 돌리며 노인이 물었다.
'어떤가,엔오우"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엔오우가 대답했다.
'수사(=) 인 자네와 쟈코인. 한코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뿐일 것이네."
'그렇습니다."
엔오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팔짱을 풀고 다시 토야마를 향해서 말했다.
'놈들은 산에서 만난 이바 일행과 타무라를 결부시켜 생각하
지는 않는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타무라가 그때 죽어있지 않았다면......."
맥박은 분명히 멈춰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코우야 산쪽
패거리들이 소생시켰을 것입니다. 사인이나 사후의 경과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멈춘 심장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코우야 산이라.......'
노인의 표정이 미약하게 험해져가고 있었다.
'그때 타무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
'모르겠습니다. 타무라가 쿠카이에게 접촉한
때문에.......
찰나의 일이기
"호스케가 타무라에게 잠입할까'
'그럴 가능성이 콤니다.'
'그가 어느 정도까지 알 수 있는가'
'호스궤가 소문 그대로의 남자라면 대층은 알 수 있을 것입니
다.'
='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타무라가 쿠로고 님의 얼굴을 봤다면. 호스케가 쿠로고 님의
얼굴을 알게 됩니다."
'그 정도인가,사이코 다이버라는 게"
'그러나 쿠로고 님을 타무라가 어떻게 보았는지가 중요합니
다. 사진처럼 실물 그대로 쿠로고 님의 얼굴이 타무라의 기억에
남아 있을 리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 외에도 많은 얼굴을 기억하
고 있을 겁니다. 그중에서 쿠로고 님의 얼굴만을 이번 사건과 뀔
부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러 달 시간을 들여 정보를 모
아서 그것을 컴퓨터로 처리하면 어쩌면......."
노인은 눈을 감고 토야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외에 또 다른 다이버는 없나"
눈을 뜨고 토야마를 보았다.
'우리 나라에는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덥회에 가입한
다이버는 무리일 겁니다. 비밀리 일을 의뢰할 수가 없으니까요.
쥬타라는 자가 있지만, 그 남자는 브라질 어딘가에 가서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프리 다이버는 여러 사람
있지만 기껏해야 타무라 정도, 아니 타무라 이하의 사람들뿐입니
다."
'타무라 외에도 또 한 사람이 죽었지'
'네. 역시 쿠카이와 접촉한 순간입니다.'
노인의 얼굴이 더욱 험악해졌다.
강렬한 의지가 그 육체에 차오르고 있었다.
'타무라는 오늘 안으로 처리할 수 있겠지'
'네. 이바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토야마가 시선을 다다미에 떨어뜨리고 고개를 내렸다.
노인은 몸 안에 차올라오는 압력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아까
부터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여자에게 시선을 보냈다.
'렌보.'
노인이 여자를 향해서 말했다.
'네."
겐보라고 불린 여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날카롭게 찢어진 긴 눈에 안달나게 하는 성적 매력이 있었다.
긴 머리가 정좌하고 앉은 무릎 위까지 드리워져 있다. 입술이
하게 붉다. 그 붉은 입술과 검은 머리카락이 흰 피부를 더욱 도드
라지게 하고 있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의 암흑 속에서 자란:연체동물처럼 횐
피부였다.
육체 주위를 요염한 공기가 둘러싸고 있었다.여자의 주변 공
간이 그 육체에 의해서 비뚤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여느 여
자들이 가지고 있는 색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태어나면서부
터 그 여자의 육체에 갖춰져 있는, 인간을 벗어난 요염함이었다.
"판시가루'에 대해서 들추고 다니는 남자가 있다고 했지"
노인이 물었다
. 네,'
'그 남자를 붙잡아 놓았다. 요이치라는 르포라이터야. 센기치
라는 남자로부터 의뢰를 받아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센기치요
" 누군지 모르겠어. 요이치도 그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몰라.
전화로밖에 이야기하지 못한 것 같다. 선금으로 만 엔을 받
았다고 한다.'
요이치라는 자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를 처리하기
로 했다.
"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어.필요한 정보는 들었으니까.'
노인이 일어섰다.
'엔오우,오래간만에 자네의 기예를 보여주게."
네 사람은 정원으로 나갔다.
드넓은 정원이었다.
주위는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넓은 부지의 여기저기에 백화나무가 있다. 일부러 심은 것이
아니다. 원래 거기에 자라고 있던 것을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정원 한쪽에 횐 테이블과 네 개의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다섯 명의 남자가 서 있었는데, 청바지를 입은 한가
운데 남자는 꿴지 불안해 보였다. 그 남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네 명의 남자가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네 명의 남자는 모두 체격이 건장했다.
그들의 온몸에서는 거친 일에 매우 익숙해 있는 냄새가 풍겼
다. 애송이가 뿜어내는 경솔한 짐승적인 냄새가 아니다. 레슬러
나 혜비급 권투선수가 가진 근육의 위압감과도 또한 다르다. 그
것은 '폭력의 프로'가 가지는 독특한 체취였다.
노인이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엔오우, 렌보, 토야마는 의자에 앉지 않고 노인 옆에 섰다.
네 명의 남자가 뒤쪽으로 물러섰다. 청바지의 남자만이 거깃에
혼자 남겨졌다.
'.이치 ."
노인이 말했다.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말했습니다. 이제 돌아가도 되겠습니
까"
노인이 아무 말도 묻지 않았는데 요이치가 이렇게 말했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이다.
요이치의 머리카락은 부스스하게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고, 얼
굴 여기저기에는 멍이 나 있었다.
움푹한 안구 속에서 핏발이 선 눈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병석
에서 갓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입술도 말라서 마른잎처럼 보였
다.
겨우 서 있는 것이다.
고문을 받았는지 손톱이 빠져 있는 손가락도 있었고, 손끝에는
빨갛게 피가 맺혀 있었다.
텁수룩한 수염으로 보아 요이치가 얼마 동안 갇혀 있었는지 예
상할 수 있다.
'자네도 소위 르포라이터 나부랭이라면 자신이 어디까지 갗이
들어왔는지 알겠지"
노인이 무거운 소리로 말했다.
귀 위의 백발이 바람에 혼들리고 있다.

요이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면서 새파땋게 변했다.
노인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네는 이렇게 내 얼굴도 봐버렸다.'
노인의 눈이 갑자기 가늘어졌다
'죽일 겁니까, 나를'
요이치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리도 떨고 있었다.
'부탁합니다. 당신을 위해서
일하게 해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지 하겠습니다!'
목을 쥐어짜는 듯한 처절한 목소리였다.
'자네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어.'
노인이 미소지었다.
요이치의 목소리가 목 속에서 죄어들었다
'좋지 않은가'
미소를 띄운 채 노인이 말했다.
'날씨도 좋고, 푸른 소나무도 아름답다.
잘 봐두어라, 요이치.
이것이 네가 보는 마지막 풍경이다.'
네 명의 남자는 표정도 바꾸지 않고 노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겐보는 요염하게 서 있었다. 요이치를 응시하는 길게 찢어진 눈
이 화끈히 젖은 빛을 띠고 있었다.
엔오우는 표창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 앞에 나선 자신의 손자
를 보는 것처럼 온화한 주름을 눈 주위에 만들고 있었다. 긴장하
고 있는 것은 토야마뿐이었다.
'안돼 !"
요이치가 뒷걸음질치면서 소리겼다.
'살려줘요 ! 제발 죽이지 말아줘요!'
자신의 발에 얽히어 요이치가 넘어졌다.
심한 공포 때문에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잘생긴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시작하게, 엔오우.'
가늘게 노인이 말했따.
엔오우가 앞으로 나왈다.
넓다란 검은 도복의 소매가 바람에 흔들려 힘줄이 보이는 팔이
안쪽까지 드러나보였다.
고양이 등 같은 등이 한층 더 그 노인을 작아 보이게 했다.
기분 나쁜 박력이 있었다.
요이치가 풀 위를 엉금엉금 기면서 도망쳤다. 굳어져 있던 손
끝의 상처가 벌어져 풀에 피를 묻혔다.
요이치는 가까이에 있던 백화나무 줄기에 달라붙어 기어올라
갔다. 횐 나무껍질에 빨갛게 손가락 흔적이 찍혔다
엔오우의 몸1 움직였다.
발끝으로 경쾌하게 풀 위를 걸어갔다. 어떤 춤의 발동작을 보
는 것 같았다.
'휘익 !'
요이치가 날 듯이 엔오우에게 달라붙었다.
두 사람의 몸이 부딪치는 순간 엔오우의 몸이 새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좌악 하고 백화나무 가지가 울었다. 머리 위의 백화
나무 가지에 가볍게 엔오우의 몸이 실렸다. 가는 가지가 크게 휘
었다.
위도 보지 않고서 그대로 요이치는 달리기 시작했다
'휴욱!'
엔오우의 입술로부터 피리소리 같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횐 가지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반동을 이용하여 엔오우의 몸이
날았다. 달리기 시작한 요이치의 정면에 소리도 내지 않고 사뿐
히 내려앉았다
. 으윽!"
엔오우의 목에서 동물 같은 숨소리가 나왔다.
엔오우 위로 턱 하는 소리와 함께 요이치의 몸이 힘없이 엎어
졌다.
'끝났군."
노인이 증얼거렸다.
양동이를 가져와.'
엔오우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네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안으로 달려갔다.
요이치의 몸을 엔오우가 쳐들었다. 엔오우의 오른손이 요이치
의 턱 아래로부터 목 중앙까지 파고들어가 있었다, 왼손은 요이
치의 입을 누르고 있었다.
엔오우는 팔꿈치와 어깨로 요이치를 받들고 있는 것이다.
남자가 큰 플라스틱 양동이를 가지고 왔다.
'거기 놓거라.'
엔오우는 요이치의 몸을 풀 아래로 내려 양동이 안에 요이치의
머리를 넣었다.
남자들이 요이치의 몸과 양동이를 붙잡았다.
엔오우가 왼손을 떼자, 요이치의 입에서 피가 솟아 넘켰다, 엄
청난 양의 피였다. 붉은 거품을 내며 피가 양동이에 가득 차갔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뜨거운 김이 올랐다.
남자가 붙잡고 있는 양동이가 따뜻해졌다.
피의 기세가 가라앉자 엔오우는 요이치의 목에서 천천히 오른
손을 빼냈다.
주름과 힘줄투성이의 손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엔오우는 요이치의 옷에 두 손의 피를 닦고 처음의 위치로 돌
아갔다.
공원을 산보하는 노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쿠로고의 눈에 반짝반짝하는 불꽃이 머물러 있었다.
'겐보."
그 눈을 돌려 여자를 보았다.
'오늘 밤에 나에게 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촉촉히 빛나는 빨간 입술을 음탕히 벌리며 렌보가 미소지었다
'슬슬 다음 의식에 사용할 여자를 찾아야만 해.'
노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호스케의 주위에 처절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아가 있어야 할 곳에 자아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육식동물익
내장을 뜯어먹은 짐승의 뱃속에 들어가면 이런 광경을 볼 수 있
올지도 모른다.
코우야 산의 현실(호)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정신 내부가 그
야말로 그것이었다.
자아의 외벽에 쓰레기가 된 피투성이의 자아 조각들이 찰싹 달
라붙어 있었다.
자아가 있어야 할 공간에는 그때까지 자아의 진흙탕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모든 오물들이 널려 따뜻한 항문으로 나온 회충처
럼 꿈틀대고 있었다.
심장의 형태를 한 것. 머리털 같은 놈. 여러 가지의 형태와 빛
칼의 얼룩. 빨강과 파랑, 황색의 원색. 그리고 중간색.
0년분의 도회지 하수도의 오물을 긁어 모아놓은 것 같았다.
살과 대장 조각끼리 멋대로 얽히어 융합하여 그로테스크한 생
물이 되어 있었다. 비록 비유라고 해도 그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
은 어렵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같은 것이 여러 형태로 변하는 것이다.보
는 사람의 정신 상태가 변하는 만큼 똑같은 것이 또다른 양상을
띠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때 호스케가 보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가슴의 서랍으로부터 핏방울을 떨어지게 한 증오의 빛깔을 띤
책상이 비뚤어지면서 웃고, 똥 냄새를 먹고 검은 얼룩의 소리가
되어간다......
이런 것이 보이고 이것이 모두 뒤집히면 인간의 손목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손목에는 음꼬가 자라고, 손바닥에 항문이 생기고. 손가락은
페니스 오양이 되어 항문으로 잠입한다. 항문은 페니스를 먹으면
서 고형물의 비명을 질러 자기 자신을 삼키어 무수한 멎깔을 한
쾌감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간다.'
게다가 시각적으로는 이처럼 보였던 것이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한다. 지금 호스케가 본 것은 남자의 머리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의 단편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는 언젠가 먹은 음식의 맛
을 남자는 그처럼 느끼고 기억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깔끔한 형태를 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아의 내부에서는 형태라든가 빛깔, 소리는 추상화된 감정인
것이다. 또한 그것들이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 죠층의식만큼
단순한 것은 아니다.
아득한 심층의 본능이라든가 무의식까지 적지않게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호스케는 주위에 떠도는 것들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호스케는 그 부유물이 가진 기쿄한 부자연스러움을 깨
달았다. 자연스럽게 자아로부터 이탈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잘
라 떼어진 것 같은 혼적이 있는 것이다.
뭔가 남자의 정신을 먹어버렸다는 최초의 인상은 비유로서도
그다지 벗어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부유물 하나하나에는 검은 덩어리가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있
었다.
있던 검은 것
이곳에 잠입했을 때 사용한 정신 상흔의 입구에
이다.
그것은 이 남자의 정신을 먹어치운 것이 정신의 살을 너무 많
적어도 남자의
이 먹었을 때 떨어뜨린 침과 같은 그런 것 같았다.
정신 밖에서 들어간 것은 틀럼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먹히고 흩어진 것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찾는다는 것은
조사해야만 하는 것이 무수히 많았다.
이 남자가 누구일까.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엇 때문에 쿠카이의 즉신불을 흠쳤을까.
그리고 호스케보다 먼저 남자의 정신에 잠입하였다는 급 다
이버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 급 다이버는 현재 아직 사이코 컨버터에 접속된 채 호스
케의 육체 옆에 누워 있었다.
그 다이버의 이름은 가가와이다.
가가와를 살려내는 것도 이번에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이다.
가가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검은 덩어리에게 가가와가 먹혀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급 다이버라도 어럽지 않게 소화시킬 수 있는 상대이다.사이코
슈트만 입으면 내버려두어도 거의 해롭지 않은 존재다.
호스케는 엷은 대기 같은 자아의 공동(오) 속을 신중하게 나
아갔다.
자아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해도 완전한 정신의 진공 상태가 되
어버리는 것은 분명 아니다. 결국에는 주위를 떠도는 찌그러진
고깃덩어리로부터 새로운 자아가 형성되어간다.
그러나 그때는 그 남자가 미쳐 있었거나 폐인이 되어버린 후일
것이다.
호스케는 부유물을 신중하게 먹어가고 있었다.
어떤 부유물은 남자가 유아기에 체험한 신체의 어느 부위의 통
증이며, 또 어떤 부유물은 소년기에 체험한 고양이나 개를 죽게
했올 때의 슬픔이기도 했다.
시간 기억의 줄기만 튼튼히 있다면 어떤 시점에 있어서의
시각과 청각을 알아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그것도 무리였다.
단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남자의 정신의 잔유물들이 우호적이라
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그다지 공격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호스케의 몸에 둔한 통증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아픔이 아니다. 이물질이 무리하게 체내
에 들어오려고 할 때 느껴지는 감각이다. 잠입해 있는 것이 프로
가 아닌 비전문가 다이버였다면 그것은 거의 육체적인 통증과 같
은 것으로 느꼈을 것이다.
호스케의 온몸에 어느 샌가 몇십 개의 그 검은 덩어리가 모여
들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한 마리가 사이코 슈트 내부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열
대우림의 정글을 걷고 있으면 아무리 웃깃이나 소매를 조이고 있
어도 반드시 서너 마리가 맨 피부에 홉착하여 오는 흡혈 거머리
와 닮았다.
호스케는 들어오려는 것 중에 한 마리를 차버렸다.
떨쳐내도 떨쳐내도 검은 거머리는 무수히 호스케에게 달려들
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