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4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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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7,540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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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리 설화(金村里 설화) 49부



“에이 씨팔!”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지를 세차게 박아댔다.
“아앗! 아, 잠깐만 ......! 쪼매, ...... 아, 너무 아프 ...... ”
밑에 깔린 엄마의 비명소리에 나는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보지가 유난히 빡빡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침을 바른 자지가 쑥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 속은 아직 메말라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지금 이 행위는, 엄마를 기분 좋게 하거나 내가 좋으라고 하는 짓이 아니다.
엄마에게 벌을 주고 괴롭히려 시작한 것이다. 또 나 자신을 괴롭히고 화풀이를 하고 싶어 벌인 일이다.
엄마의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비명이 워낙 다급하고 절실하게 들려 나는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자지에 습기가 밀려온다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자기 보호를 위한 본능적 반응인지 좆맛을 받아들이려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어떻든 다시 방아질을 시작하자 질컥거리는 소리가 날만큼 이제 장애가 없었다.
나는 맹렬히 박아댔다.
더러운 엄마, 미운 엄마, 문씨 가문에 시집오기 전부터 빵꾸가 났고 자식들 먹여 살린다는 핑계로 이놈 저놈의 좆이 들락거렸던 보지, ...... 나는 오직 밉고 경멸스러운 엄마의 보지에 매를 때리는 심정으로 자지를 박아댔다.


그 매질은 평소의 다른 때보다 끝이 빨리 왔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나도 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으려 했기에 더욱 그럴 수도 있다.
울컥! 첫 정액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그 전의 다른 사정들처럼 잠시 희열 같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이어 그 전에는 못 느꼈던 다른 감정도 겻들여 졌다.
이것은 엄마, 더럽고 미운 엄마에 대한 징벌이야. 나의 화풀이야. 나는 더욱 속도를 빨리 했고 희열보다는 통쾌한 복수를 해낸 것 같은 감정을 담은 정액이 꾸역꾸역 나왔다.


“하아!”
꼴깍 하는 기분으로 사정이 끝났을 때 가쁜 숨을 내지르며 나는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떨어트렸다. 갑자기 세상은 깜깜해지고 나는 허망의 늪에 빠져버렸다.
그때 나는 불쑥 얼음판에서 팽이 치던 광경이 떠올랐다.
채를 쳐댈수록 팽팽 돌아가던 팽이가 슬슬 옆으로 이동하다 얼음 깨진 물웅덩이에 빠지며 모든 움직임을 멈춘다.
나라는 팽이도 그랬다. 울분과 자학이라는 채찍으로 나 자신을 매질하면서 정신없이 뱅글뱅글 돌아가던 나는 사정을 끝나자마자 차가운 웅덩이에 빠진 팽이 꼴이 되었다.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동작을 멈춘 팽이에게는 회한과 슬픔만 밀려 온다.


아,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했지? 그것도 엄마한테 ...... 엄마도 그저 남들 같은 보통 엄마가 아니다. 개에게 자지를 물린 이래 유난히 엄마의 속을 썩이고 슬픔을 헤집으면서 자라왔던 나 아닌가?
어디 그뿐이랴. 정말 가정에 불성실한 남편에게 홀대 받으며 4남매를 도맡다시피 키워 온 그 인고(忍苦)의 세월.
장님인 큰 딸이 한없이 착하다 해도 그 때문에 더욱 병신 아들을 키우는 것과 같이 가슴에 맺혔을 멍울, 둘째딸은 고등학교 학비조차 댈 수 없어 내 팽개쳐야 했고, 그런 엄마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 성깔 못된 막내딸, 어느 것 하나 엄마에게 위로나 힘이 되지 못하는데 그 벅찬 짐을 혼자 짊어지고 버둥거려 왔던 엄마 ......


되돌아보면 그 전에도 빠구리를 하고 나서 허망과 후회에 빠졌던 적이 있다. 바로 엄마와, 그리고 새할머니와의 경우다.
그러나 그 상황은 지금과 너무 달랐다.
그때 엄마는 병신으로 자라온 아들이 진정한 사내구실을 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당신의 몸을 스스로 바친 것이다.
그런 엄마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했던 나는 다만 내가 태어난 곳에 자지를 박는다는 것만으로 흥분하고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사정을 하자마자 그때도 후회와 죄스러움이 밀려 왔다.
엄마의 반응은 달랐다.


“아이고, 이 자슥아! 아이고, 내 아들아! 니가 사람이 됐구나! 니가 남자가 됐어!”
엄마는 나를 부등켜 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아 냈다.
“이제 조상님들한테도 낯을 들게 됐다! 내 멍에도 한도 다 풀렸다.”
그런데 철없는 내가 “한번 더 해보면 ...... ”이라고 말할 때 엄마는 정신을 차렸다.
“아이고! 이거 내가 완전히 상피(相避)를 저질렀네. ...... 이걸 우야노?”
비명을 지르며 조상 볼 낯이 없다고 비로서 자책과 후회로 허둥댔던 엄마. ...... 그만큼 엄마는 도덕이나 인습을 생각하기에 앞서 자식의 사내구실을 확인하는데 정신이 팔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로 나는 태어나서 줄곧 함께 했던 엄마의 방을 쫓겨 났다.


새할머니와의 빠구리도 처음은 뜻밖에 일어난 일이었다. 술찌끼미를 함께 먹고 잠시 그방에서 잠이 들었을 때 그녀는 내 자지를 꺼내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자지가 대단한데 허리병이 도지면서 빠구리도 못한다는 푸념까지 나오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우리라도 할까요?”라고 꺼낸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니가 할 수 있나?”라는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아, 내는 몰라! 내사 모른다!”라며 내 바지에 얼굴을 부벼대던 그녀.


결국 우리는 빠구리를 했고 그녀는 앙 앙! 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한차례 절정을 맞았지만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그만 하자고 했다.
“병상의 영감도 그렇지만 느그 아부지 어무이 얼굴을 우예 보노?”
그 말에 아랑곳 않고 나는 끝장을 보겠다고 다시 자지를 맹렬히 박아댔다. 그런데 사정을 하고 나자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분출된 잔인성이 밉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진 일은 앞의 두 경우와도 달랐다.
그 전에 엄마와 새할머니와 벌어진 일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돌발상황이라고는 하나 그때는 다 스스로 옷을 벗었다. 끝나고는 모두 후회와 자책감에 빠질지라도.
그런데 오늘은 한사코 저항하는 엄마의 옷을 찢어가며 강제로 벗겼다. 그리고 가슴 속의 상처까지 후벼내서 저항의 힘마저 잃게하고 엄마를 유린한 것이다.
“어무이, 내가, ...... 아니 제가 잘못했심더.”
계속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들고 나는 말했다.


엄마는 그저 창백하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눈동자도 초점을 잃고 멍한 모습이다.
몸을 일으켰더니 보지에서는 내가 싸지른 정액이 울컥 흘러나오고도 이어서 꾸역꾸역 나오고 있다. 너무나 추하고 역겨웠다.
나는 일단 그 뒤처리를 하기 위해 타올을 가지러 갔다. 그제서야 엄마도 몸을 좀 움직이는 것 같았다.
타올을 꺼내고 돌아선 나는 경악했다.


엄마는 방구석에 있는 반짓고리를 열고 가위를 꺼낸 것이다. 오른손으로 자루를 쥔 그 날카로운 가윗날이 막 축 늘어진 젖통 쪽을 향하고 있다.
“앗! 어무이, 안돼요!”
나는 몸을 날려 엄마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엄마의 힘도 억셌다. 다시 가위는 엄마의 가슴 쪽으로 옮겨졌고 나는 두손으로 날을 감싸려 했다.
쿡! 손바닥에 가윗날이 박혔다. 나는 피가 흐르는 손으로 다시 엄마의 손목을 움켜 잡으며 울부짖었다.


“어무이, 제가 잘못했심더! 제발 좀 참으이소! 잘못했심더! 다시는 안 그럴끼라요. 제발 좀 참으이소.”
“놔라!”
엄마는 잡힌 손을 빼려 버둥거렸지만 이제 내 힘이 밀리지 않았다. 나는 가위날이 내쪽으로 향하게 끌어 당기면서 사과와 용서를 비는 울부짖음을 계속했다.
“내가 이런 꼴로 살아가 뭐할끼고? 서방한테야 이미 반버림받았다 캐도 자식한테까지 이런 벌과 멸시를 받아가며 살아가 뭐할 끼고! 빨리 놔라!”
“안됩니다, 어무이! 제가 잘할 께요! 정말 어무이한테 잘할 께요!”


“흐흐흥!”
아직 네 개의 손이 가위를 잡고 싱갱이를 하고 있는 중 기어이 엄마의 울음이 터져 버렸다.
“내 팔자가 아무리 기구하다 캐도, 흐윽! ...... 서방한테 그리 괄시를 당하고, 흐윽! ...... 자식한테 바라는 것도 애시당초 없었는데, 흐윽! ...... 이런 꼴로 살아야 뭐할끼고. 엉 엉 엉!”
엄마가 펑펑 울어대는 중 손가락을 하나씩 펴가며 가위를 빼앗는데 성공했다. 얼른 팬티와 바지를 추슬러 입고 가위를 어디 두어야 하나를 생각했다. 원래 있던 반짓고리나 장롱에도 둘 수가 없다.
방문을 열었을 때 또 하나 비극적 광경이 있었다. 건너방이 열린 채 영자 누나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어깨가 조금씩 들먹이는 것이 보였다.
누나는 울고 있었다. 누나는 안방의 일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어떻든 지금 누나까지 챙길 수는 없다. 나는 가위를 건너방 구석에 치우고 다시 엄마에게로 왔다.


엄마는 누웠던 몸이 앉았다는 것 말고는 매무새에 아무 변화가 없었다.
찢겨진 런닝셔츠로 드러난 젖가슴은 축 쳐져 있고,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좀 벌린 채로 앉아 그대로 보이는 보지는 아직도 흘러나오는 것 같은 정액으로 지저분했다.
엄마는 여전히 초점을 잃은 멍한 표정이고 눈물은 멈추어 있다.
나는 우선 타올로 엄마의 아래를 닦았다. 그래도 엄마는 아무 반응이 없다.


“어무이, 뭐라도 좀 걸치이소.”
나는 금방 닦아낸 곳을 외면하며 아까 우악스럽게 벗겨낸 엄마의 팬티를 내밀었다.
“놔 둬라! 이래 엄청난, ...... 이래 험악한 일을 겪었는데 더 이상 창피할 끼 뭐 있겠노? 아, 그냥 이대로 죽어뿌는게 지금 내 소원이다. 그래, 내가 죽어야지. ...... 후우! ...... ”
맥이 하나도 없이 혼잣말처럼 하고 한숨을 쉬지만 엄마의 결의가 들어있는 것 같아 나는 다시 겁이 났다.


“앗! 니 그 피 ...... !”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엄마의 시선이 멈춘 곳은 내 왼손이었다. 아까 가위 때문에 승강이를 하다 손바닥을 찔렸는데 나도 소동 속에서 잊고 있었다.
돌아보니 들고 있는 엄마의 팬티에도 방바닥 여기저기도 핏자국이 있고 지금도 피가 나오고 있다. 그제서야 통증도 느껴졌다.
“괘않아예.”
나는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누르고 주먹을 쥐었다.


엄마는 일어나 장롱에서 약상자를 꺼냈다. 그 서슬에 치마가 내려와 아래는 가렸지만 여전히 가슴은 드러난 채였다.
“덫 나마 큰일 난다. 일로 온나.”
농촌답지 않게 우리집 약상자에는 소독약과 지혈제나 소염제, 붕대와 반창고 등이 구비되어 있다. 지난날 나의 자지가 늘 곪고 딱쟁이가 벗어져 피가 나는 것 때문에 필요했던 것이다.
엄마는 손수건을 들어내고 손바닥을 살폈다.


“상처가 꽤 깊네. 병원에 가야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선 소독은 해야 ...... ”
엄마의 응급치료를 받으며 나는 또 가슴이 울컥했다.
지난날 그토록 엄마의 속을 썩였던 기억도 그렇지만, 절망과 허망감에 빠져 죽음만 생각하고 있던 중에도 아들의 상처를 보고는 돌변한 그 모습 때문이었다.
붕대를 감고 반창고를 붙이는 것으로 응급처치는 끝났다. 상처가 약간 아려왔지만 이 사고를 계기로 엄마가 일단 절망과 체념의 늪에서 잠시 빠져 나온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이래 맥이 하나도 없노.”
아들의 치료가 끝나자 엄마의 상태는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갔다. 힘없이 엉덩이를 댄 그 자리에 누워버린다. 아까 내가 흥분해서 밀쳤던 바로 그 자세다.
“어무이, 정말 제가 잘못했심더. 다시는 절대로 안 그러겠심더.”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 한번 용서를 빌었다. 엄마는 눈을 감은 채 시체처럼 아무 반응이 없다. 여전히 가슴이 드러난 채의 그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베개와 이불로 엄마를 감싸 주었다.


“영도야, 일로 와봐라.”
엄마는 붕대를 감은 내 왼손을 잡았다.
“지금도 많이 아프제?”
“아니요. 괘않심더.”
“아아, 내가 니한테 ...... ”
“정말이라예. 하나도 안아파요.”
나는 엄마가 내 손에 상처를 낸 것을 자책하는 줄 알았다.


“내가 니한테 ...... ”
엄마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꼭 하고잡은 말이 있다. ...... 그래, 느그 아부지 말처럼 내는 이집에 시집올 때 빵꾸난 여자였다. 하지만 그건 내가 화냥끼가 있거나 꼭 행실이 못되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 그건 여자의 운명 같은 기다.”
천정을 보고있는 엄마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가 귓가로 흘러내린다.
"아아, 그 해에 그리 가뭄이 심하지 않았다면 ...... 물꼬싸움만 안 일어났어도 ...... ”

 



그해 봄, 강인덕과 손성규는 인덕의 집 마루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밭일을 끝내고 가끔 벌어지는 술판이었다.
“아따. 현숙이 쟈, 엉덩이 좀 봐라. 펑퍼짐한 기 한껏 익어 뿠네.”
“임마가 남의 집 과년한 딸 보고 무슨 개소리고?”
“하 하 하, 낳기는 니가 낳다 캐도 앞으로는 손씨 집 식구아이가?”
“그라마 더 요상하제. 며느리 엉덩이를 니가 와 들먹이노?”
“우리 아들놈 좋겠다 싶어 말이 나온기다.”


인덕과 성규는 도암리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온 동갑내기며 불알친구였다.
장가는 성규가 먼저 가서 첫 아들을 낳았고, 이듬해 뒤따르듯 장가를 간 인덕은 성규 아들보다 두 살 아래인 첫 딸을 낳았다.
둘은 그 무렵 농담처럼 “우리끼리 사돈을 맺자.”고 했고 말이 씨가 된다고 그 아기들이 자라면서 그 언약은 점점 더 굳어졌다.
“이번 가을걷이만 끝나마 아주 잔치를 벌이자.”
“그래, 우리집 큰 일꾼 보내는 건 아깝지만 느그 아들 춤 질질 흘리는 것도 보기 안됐고, 하나라도 빨리 치워야제.”


날짜까지 잡지는 않았지만 승덕과 현숙의 결혼은 올 가을로 정해진 것이다. 
둘은 다 어릴 적부터 부모들의 언행으로 볼 때 언젠가 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 왔었다.
둘은 오히려 성숙해 지면서 이른바 내외(內外)한다고 좀 소원해 지기도 했다.
그런데 올가을에 결혼하기로 확정되자 이제 그런 내숭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가끔 밤이면 둘이서만 몰래 만나기도 했다.
밭뚝이나 들판에 앉아을 때 사랑의 고백이나 장래 계획을 주고받지도 않았지만, 현숙은 그저 같이 있으면 가슴이 뛰면서도 포근했다.


어느날 첫키스를 했을 때 혀가 오가며 너무나 달콤하고 황홀했다. 만남이 거듭되면서 승덕의 손은 그녀의 더 은밀한 곳을 파고 들었다.
젖통을 더듬을 때, 결국 보지에까지 그의 손이 닿았을 때 그녀는 한층 짜릿하고 황홀한 자극에 가쁜 숨을 쉬며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가 속옷을 벗기려는 것은 한사고 거절했다.
“현숙아. 한번만, 딱 한번만이라도 해보자! 그래야 니가 진짜 내 여자라고 믿을 수 있제.”
“몇달만 참으마 되잖나? 지금도 나는 승덕이 니 여자다. 하지만 그건 식을 올리고 나야 하는 것 아이가?”


자신의 몸도 달아 오르고 아래가 질퍽해진 것을 알지만 혼인도 안한 처녀 총각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바람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다음 행동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승덕의 요구는 만날 때마다 더 심해졌다.
“니 때문에 이리 된기다!”
벌떡 선 자지를 내놓고 대신 용두질을 쳐달라고 했다. 그녀는 외면하며 거절했지만 안달하는 그가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다.


“니를 만난 날을 잠도 못잔다. 남자는 이래 좆이 팽팽하마 용두질로라도 좆물을 빼야 되는데 쪼매 있다가는 다시 니가 떠 오르고 ...... 참말로 미치겠다. 내 색씨 앞에 두고 지레 말라죽겠다.”
“쪼매만, 몇 달만 참으마 되잖나? 식만 올리마 언제나 니 마음대로 하게 할게.”
“아아, 참말로 미치겠네. 아 참! 그라마 우리끼리 식을 올리자. 남들 모르게 우리끼리 결혼하마 될꺼 아이가?”
그가 꾀를 낸 말은 그녀에게도 솔깃했다. 이제 곧 신랑 될 남자의 안달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지만 자신의 달아오르는 몸도 때로는 추스르기 어렵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결혼했습니다. 나 손승덕은 강현숙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어디서 들은 말은 있어 그는 사투리도 쓰지 않고 연극대사처럼 읊은 뒤 입을 마췄다.
“아얏!”   
팬티가 벗겨진 채 밭뚝에 눕던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등을 돌멩이가 찔러왔다. 그 돌을 치우고 무릎을 굽혔던 그도 다시 바지를 추슬러 입었다. 땅바닥이 너무 아팠다.

그들은 옷차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물레방앗간으로 장소를 옮겼고 그나마 평평한 바닥에서 첫 빠구리를 치루었다.
둘 다 경험이 없어 서툴고 헤메기도 했지만 어둠속에서도 짝짓기의 본능처럼 자지는 보지 속에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통증이 따랐지만 현숙은 그토록 보챘던 승돈의 여자가 되었다는 것이 감격스럽기도 했다.
가뭄이 시작된 여름밤에 그들은 두차례나 더 어울렸다.


그해 남부지방은 유난히 가뭄이 심했다.
도암리는 금촌리보다 더 벽촌이고 평야가 적어 전체 논의 반 이상은 낮은 산을 개간해 계단식으로 만든 천수답이라 꼼짝없이 가뭄을 탔다.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농민들의 가슴도 타들어갔다.
10여일이나 비 한방울 없는 가뭄이 이어지다 밤늦게 빗방울이 보였다. 빗줄기는 점점 세어져 마른땅을 적시고 흐를 정도까지 왔다.


주민들은 너나 없이 논으로 나갔다.
인덕도 정신없이 골짜기의 물을 자기 논으로 끌어 들였는데 아랫쪽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야, 지금 내가 물 받고 있는데 물꼬를 돌리마 우야노?”
성규였다. 그는 인덕보다 한발 앞서 논에 나왔는데 물줄기가 끊기자 항의한 것이다.
“물이사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는데 윗논이 먼저 받는 기 당연한 것 아이가?”
“임마야! 내가 먼저 와서 받는데 늦게 온 놈이 와 새치기를 하노?”


성규가 인덕의 물꼬를 메우고 내려갔으나 인덕은 다시 자기 논에 물꼬를 텄다. 성규는 다시 올라와 물꼬를 바꾸려 했다.
몇10년을 이어왔던 우정도 가뭄에 속을 태우던 농민의 절박함은 이기지 못했다.
세찬 빗줄기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멱살을 잡고 다투다 제각기 삽을 들었다. 이웃사람들이 그 소동을 알고 뛰어 왔을 때 그들은 상대의 삽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성규는 어깨를 삽으로 찍혔고 팔뼈가 부러졌다. 인덕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옆구리도 크게 찔렸다. 그 상처들처럼 그들의 우정도 깨져 버렸다.


그 물꼬싸움은 참 부질없는 짓이었다.
심술궂은 하늘은 혹심한 가뭄에 시달렸던 농민들에게 잇달아 폭우를 퍼부었다. 논과 메말랐던 벼들이 떠내려 갈만큼 엄청난 장마였다.
그 부질없는 물꼬싸움에 둘 다 큰 부상을 입었지만 인덕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원래 삐지기 잘하는 성규는 화해를 거부했고, 고집이 센 인덕은 다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오랜 불알친구였던 그들은 졸지에 원수지간이 되었다.


그해 가을, 승덕이 장가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상대는 현숙이 아니라 이웃 문봉리의 처녀라고 했다.
“그 좀팽이 같은 놈 집에 우리 딸 안보낸기 다행이제.”
인덕은 그 소문에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맏딸인 현숙에게 그 말을 전했을 때 딸이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것에 가슴이 덜컥했다.
“니, 승덕이 자슥하고 뭔 일이 있었나?”
“흑!”
딸은 이제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말 좀 해봐라! ...... 니 참말로 뭔 일 있제? ...... 그것도 했나?”
몇 번이나 채근해도 묵묵무답이던 딸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몇번이나 ...... ?”
“세번 ...... ”
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도 말했다.   
“아이고, 이거 그냥 넘어갈 일이 아이구나. 이 가시나야, 그새를 못참고 사달을 내노?”


현숙 어머니는 이 사실을 우선 남편에게 알렸지만 남편은 해결의 열쇠를 갖지 않았다.
다시 승덕의 어머니에게도 이미 둘이 빠구리까지 했다는 것을 밝히고, 승덕에게도 “네가 책임져야지.”라고 다그쳤다.
“그거 잘코산이다. 인덕이 그 새끼, 진짜 코가 납작해지겠네. 사내자식이야 계집 한번 건들인게 무슨 흠이 되나? 그 새끼 딸년만 신세 망친기지.”
성규는 아내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자 오히려 고소해 하며 아들의 결혼을 서둘렀다.
애비에게 쥐어사는 승덕이나 남편에게 꿈벅도 못하는 아내는 그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현숙에게는 힘든 시절이었다. 딴 여인을 찾아 떠난 승덕에게 미련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승덕에게 사랑 비슷한 감정을 가져본 적도 없었고 3차례 빠구리를 했지만 그 감흥도 별로였다.
다만 어른들이 너는 나중에 승덕이 색씨가 될거야 라는 식으로 말해 와서 일종의 세뇌처럼 당연히 어른 말을 따라야지 하고 생각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승덕이 이별의 말 한마디 없이 장가를 가고 한마을에 사니 더욱 정이 떨어지고 반감만 생기는 것이다.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소문이 어떻게 나돌까 하는 정도였다.


2년 뒤 22살인 그녀는 금촌리의 문광석이라는 청년과 결혼했다.
허우대도 인물도 승덕이 보다는 훨씬 좋았고 도암리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우선 좋았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미 한남자가 거쳐 갔다는 지울 수 없는 흠집이었다.첫날밤, 그녀는 첫경험을 생각하며 그보다 더 과장되게 아프다고 엄살을 피웠다. 물론 피는 나지 않았고 신랑은 일을 치룬 뒤 찜찜한 표정이라 탄로가 났다고 가슴을 조렸다.


“당신을 처음 안아본 남자가 누구요?”
금촌리로 온지 며칠 만에 신랑이 물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만 그저 좀 용서하고 넘어가 주이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떨리는 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우리가 일생을 함께 하기로 언약을 했는데 그라마 내 아내에 대해서도 알건 알아야 될거 아니요? 물건이 어찌해서 이렇게 겉보기와 달리 상해 있는지 ...... ?”


머뭇거리고 신랑은 재촉하기를 몇 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보였다.
결국 그녀는 고백했다. 아버지와 죽마고우가 어릴적부터 그집 아들과 짝을 맺자고 약속한 일, 2년 적 가을에 잔치를 하겠다고 정해진 뒤 여름철 그 남자와 3차례 몸을 섞었는데 심한 가뭄 끝에 일어난 물꼬싸움, 그리고 원수지간이 된 남자 집에서 아들을 서둘러 장가보냈다는 것까지 ......
고백을 하는 동안 그녀는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첫남자에 대한 그리움이나 배신감도 아니고 신랑에 대한 미안함도 아니었다. 백년가약을 한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여자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고 시리게 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 하지만 그런 과거는 강물처럼 다 흘려 보내고 우리 잘살아 봅시다.”
신랑이 살폿이 안아줄 때 그녀는 너무 감격해서 그 가슴에 얼굴을 묻고 통곡했다.

바로 아기가 들어섰고 입덧을 시작한지 한달쯤 후, 신혼부부의 일상사처럼 된 빠구리를 하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곧 그녀는 안방의 시부모를 걱정했다. 시부모가 부부싸움을 하며 언성이 높아지면 말씨까지 알아들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이 계속 방아질을 해대는데 그녀는 비명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온 몸이 부서지는 것 같고, 그러다 몸이 붕붕 뜨기도 하고, 핏줄과 신경이 모두 감전된 듯 밀려오는 자극이 주체할 수 없는 희열로 가득했다.


그 전에도 그녀는 빠구리가 싫은 적이 없었다. 승덕이 젖통을 만지고 그 손이 보지에까지 들어오며 요구할 때 거절을 하면서도 몸은 달아 올랐다.
막상 처음 자지를 받아들였을 때 통증은 있었지만 다시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래가 축축히 젖어 온다.
남편은 또 달랐다. 우선 입과 손의 놀림이 초보자와 숙련공의 차이처럼 세련됐고 우람한 자지가 늘 보지를 가득 메워주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온 몸이 희열로 가득한 것은 또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다음에 빠구리할 때도 거의 찾아왔다.


행복, 현숙은 그 말을 속으로 자주 되뇌었다. 이런 것이 행복이로구나.
농촌의 일은 늘 고단하고 잡곡을 섞어 먹어도 양식은 늘 쪼들리고 보릿고개가 닥아오면 어떻게 견디어낼까 하고 조마조마 하지만, 빠구리를 하면 온 몸이 달아오르고,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뱃속의 아기가 움직이고 잠자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첫 아기는 아들이었다.
“마침내 우리집 5대 종손이 태어났구나!”
시아버지의 환한 웃음처럼 남편도 그녀도 이 경사를 기뻐하며 흡족해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황소의 코뚜레처럼 벗어날 수 없는 멍에가 있었다.
첫아들은 생후 6개월 남짓할 때 홍역을 앓다 죽었다. 에미 마음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집안 전체가 슬픔에 휩싸였다. 아들을 산에 묻고 온날 저녁 남편은 가득 취한 채 들어왔다.
그날을 그녀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런 일이 다 니가 이 집에 올 때부터 헌 계집이라 일어난 기다. 니가 재수 없는 여자인기라.”
남편의 그 말은 비수가 되어 그녀 가슴을 헤집었다. 서로가 위로를 해야될 마당에 그런 말을 하는 남편에 대한 미움이나 반감보다, 정말 내 몸의 흠집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어 더욱 그녀 자신을 괴롭혔다.
다시 생활은 일상으로 접어들었다.

농사는 고되고, 양식은 쪼들리고, 그래도 빠구리를 하면 전같지는 않아도 가끔 희열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또 하나 일상적이라고 할만한 일이 생겼다.
“당신, 첫남자캉은 어땠노? 그때도 이래 소리 질렀나? 지금도 많이 생각나제?”
1년이면 한두번쯤, 특히 술에 만취했을 때면 버릇처럼 이 말이 튀어 나오는 것이다. 무시하려 해도 남편은 꼭 대답을 강요하며 더욱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팠다.


첫딸 영자는 어릴 적부터 영특하고 재롱이 많았다.
그런데 4살 때 찾아 온 마마를 이겨내지 못해서 눈은 멀고 곰보가 되었다. 그날도 남편은 술에 취해 돌아와서는 같은 말을 했다.
“이기 다 니가 헌 계집이라 일어난 기다. 니가 재수없는 여자인기라.”
그녀의 인종(忍從)도 한계가 왔다. 남편을 부여잡고 대들었다.
“그래, 내가 재수없는 년이다! 니한테 오기 전 남의 좆을 받아 들이가 이래 됐다! 그라마 진즉 나를 버리지, 와 데리고 살았노? 차라리 나를 죽이라! 아니, 내가 죽을께!”


그녀는 두리번거리다 마당으로 나와 양잿물 그릇을 집어 들었다. 그제서야 남편이 달려들어 그릇을 빼앗고 “잘못했다.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며 그녀를 달랬다.
남편은 곧 코를 골며 잠에 빠졌지만 그녀는 그 밤을 꼬박 새웠다. 그 옛날 남편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에 겨워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원망만 남았다.
그러나 아직 고열에 시달리는 큰딸과 새근새근 자고 있는 둘째딸을 보며 양잿물을 안먹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다음날 집을 나가더니 줄곧 그런 떠돌이 생활이 계속되었다. 


 

“니보다 두 살 많은 아들도 잃고 다시 니가 태어났지만 개한테 그런 화를 당하고 ...... 참말로 내 팔자가 기구하구나 하고 한탄하지만 자라는 느그들을 보마 다시는 죽을 생각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오늘 이런 일까지 당하이 참말로 여자의 운명은 끝이 어딘지 모르겠다.”
긴 말을 맺는 엄마의 맥빠진 얼굴에 눈물은 없었다. 지난날의 역정을 아들에게 털어 놓으며 너무 흘려 지금은 말라 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의 엄마가 ‘빵꾸난 여자’라는 말로 나는 때로 엄마를 나쁘고 불결한 여인으로 생각해 온 것도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몰랐고 짐작도 못했던 엄마의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인생 역정을 알게되면서 엄마에게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새롭게 엄마가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앞으로 제가 잘 할께요. 엄마의 상처를 제가 어루만지고 새로운 기쁨을 드리겠습니다.”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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