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새로운 시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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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1,811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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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1

 

 

 

화장을 한 아버지의 유골을 묘원에 안장을 하자마자 모든 친인척 들이 한 마디씩 얹었다.

 

“이젠 네가 가장이다. 잘 해야 해!”

제대를 얼마 앞둔 화수에겐 온 통 가정을 책임지라는 말의 일색이었다.

 

“네 엄마도 참 어지간한 사람이다.”

이모의 날 선 말투는 어느새 한 풀 꺾여 있었다. 늘 가정을 떠메고 꾸려가는 동생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으리라.

 

김화수는 22년을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가 가정을 책임지는 모습을 단 한 차례도 보질 못했다.

아니 단돈 백 원도 집으로 벌어들이는 꼴을 보지 모했다.

 

평생을 집안에 박혀 술타령으로 보낸 사람이 아버지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주사는 없었다는 것이다.

의례 알콜 중독자가 있는 집안은 가정폭력이 난무하는 게 다반사였으나 화수의 집은 그저 술만 있으면 아무런 바람도 일지 않은 그런 집이었다.

 

그러니 자연 집안의 경제는 엄마인 해령이 책임을 질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여자의 몸으로 경제력이 무능한 알콜중독인 남편과 두 남매를 키우기가 어디 만만했겠는 가.

그나마 누나인 미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는 바람에 그 힘겨움이 좀 덜 해졌다지만 그래도 가족의 생계는 여전히 엄마 해령의 몫이었다.

 

아직 화수는 군복무 중이다. 말년 중의 말년으로 불과 제대가 2주 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의 부고로 특휴를 나온 상태다.

 

이제 곧 귀대를 하고 일주일 남짓이면 민간인이 되는 지라 두발도 군인 치곤 제법 긴축이었다.

 

“엄마, 이제 그만 가자.”

화수의 누나인 미수가 엄마 해령의 팔짱을 끼고 부축을 했다.

미수의 부축을 받기는 했으나 사실 해령은 그다지 탈진이랄 것 까지는 아닌 상태다.

아니 사실 남편을 여읜 미망인 치고는 컨디션이 그 닥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해령을 비롯한 미수와 화수는 아버지의 죽음이 그 닥 애달프지 않았다.

워낙 술에 찌들다시피 절은 몸의 아버지는 간신히 숨만 붙인 채 근 2년을 넘게 버티다 돌아갔다.

그동안 수차례의 응급실행으로 남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행연습을 충분히 시킨 까닭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가자. 언니! 언니도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나중에 정리가 좀 되면 그때 다시 만나.”“그럴래? 화수도 귀대를 곧 해야 하는데 내가 가서 집도 좀 치워주고 했으면 좋겠는데....”

“고마워 언니. 그렇지만 지금은 좀 조용히 있고 싶어.”해령의 유일한 피붙이인 언니 교령은 동생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동안 무능한 제부에게 갖은 타박을 했으나 그것은 제부에 대한 미움보다는 고생을 하는 동생이 안타까워 그런 것이다.

 

화수의 가족들도 그런 교령의 마음을 잘 아는지라 이모의 엔간한 타박엔 미소로 답을 할 정도였다.

“그래요 이모 당분간 저희끼리 조용히 시간을 보낼게요.”“알았다. 그럼 화수야, 제대하고 보자. 이모가 맛있는 거 잔뜩해 줄게.”

“네, 이모 수고 하셨어요. 들어가세요.”교령은 화수의 가족을 향해 손을 흔들며 주차장을 향해 종종 걸음을 옮겼다.

 

“후∼ 이제 숨 좀 돌리자.”미수가 아버지의 유골이 안장된 돌관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역할이 미미했던 아버지지만 그래도 부재의 허전함이 밀려왔던 것이다.

 

“엄마....”

화수는 엄마 해령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다. 아버지의 막바지 병수발을 하느라 고생이 심했는지 엄마의 어깨엔 살집이 잡히질 않았다.

 

“고생 많았어. 미안해 엄마.”

화수는 부쩍 마른 엄마가 안쓰러웠다. 사내를 잘못만난 죄로 거의 반평생을 고생고생 하며 살아온 엄마다.

 

“나 제대하면 바로 취직할 게 조금만 참아.”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는 졸업해. 어떻게 들어간 대학굔데.”

화수의 말에 발끈하며 정색을 한 사람은 미수였다. 고등학교의 성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무능은 그녀의 진학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절대로 너 대학은 졸업해야 해!”

“그래 누나 말이 맞아. 이제 아버지도 없으니 한결 여유가 돌 거야. 게다가 보험금도 제법 되고.”

 

아버지는 당신의 죽음으로 평생 하지 못했던 경제적 혜택을 가족에게 보험금이란 이름으로 남기고 갔다.

 

“나중에 이모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꼭 해야 한다.”

“응.”

해령의 언니 교령은 동생의 장래를 걱정해 아버지의 생명보험을 동생의 이름으로 부어주었다.

 

이런 걸 선견지명이라고 해야 할까. 이모 덕분에 2억이라는 보험금이 해령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유골을 납골한 돌관의 주위에 둘러앉은 화수의 가족들은 누구도 아버지나 남편에 관한 추억이나 회상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니 아예 머릿속에 떠올리지 조차 않았다.

“일단 화수 넌 무사히 제대나 해.”

미수는 곧 귀대할 화수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보았다. 사실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폐인의 상태로 평생을 보냈으니 미수를 비롯한 엄마 해령은 화수를 정신적인 집안의 가장으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화수의 성정이 진중하고 외형도 듬직하여서 그녀들에겐 충분히 의지가 되어왔다.

해령과 미수의 일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도울 정도로 자상하기도 했으니 더욱 그녀들은 화수에게 의지를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 2년 화수기 군 복무를 하는 동안은 집안에 냉기마저 돌 정도였으니 그녀들에게 화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커다랬다.

 

그러나 곧 화수가 제대를 하니 그녀들은 의지할 버팀목이 새로 생기기라도 하는 듯 기대감에 부풀었다.

“알았어. 나 금방 나올 게.”

 

 

 

“왜 이렇게 안 오지 엄마?”

“그러게....”미수와 해령은 25평 아파트 현관에 서서 화수의 귀가를 목이 빠져라 기다라고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귀대한 화수가 드디어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는 날이다.

그녀들은 바로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기에 날짜를 착각할 리가 없었다.

 

“혹,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엄만....어제도 통화를 했는 데....”

“그렇지?”이미 시간은 자장을 넘기고 있었다. 화수가 좋아하는 아구탕은 차갑게 식은 지 이미 오래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식은 탕을 데우다 국물이 졸아 화수가 오면 다시 데운다는 것이 벌서 세 시간 전이다.

 

딩동∼

찰칵.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초인종이 울리자 미수는 맨발로 현관을 질러 자물쇠를 풀었다.

“미안∼ 엄마 누나, 많이 기다렸지?”양손 가득 보따리를 안아든 화수가 붉게 물든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현관을 들어섰다.

 

“왜 이렇게 늦었어? 흑.”

미수가 기어코 눈물을 떨구며 앙칼지게 따져 물었다.

“그래 늦으면 전화라도 하지. 걱정했잖아.”해령도 두 눈에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의지한 만큼 실망도 커다랬던 것이다.

 

“미안 동기 녀석들이 좀처럼 놔줘야 말이지....그리고 이거 좀 받아.”

화수는 품에 안고 있던 보따리를 미수에게 건넸다.

“뭔데?”

볼을 타고 구르는 눈물을 훔치고 보따리를 안아들었다.

“응∼ 선물.”

화수는 현관을 지나 거실에 들어섰다.

“누나, 나 시원한 물 좀.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목이 타네.”

“흥∼ 쌤통이다. 이렇게 걱정을 시키고는....”

말은 야멸찼지만 손은 벌써 꿀병을 따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선물?”

꿀물을 타느라 부산한 미수 대신에 엄마 해령이 보따리를 풀었다.

“미수는 좋겠네∼ 동생이 선물도 사오고.”

해령이 미수의 기분을 풀어주느라 다소 과장된 억양으로 말했다.

“응? 혹시 엄마∼ 질투? 물론 엄마 것도 있지∼”

강수는 해령과 미수의 부신함에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젖어 들었다.

“어머! 이건?”

“뭔데, 엄마?”해령의 탄성에 미수는 쟁반에 꿀물이 가득 든 대접을 받쳐 들고 종종 걸음으로 다가왔다.

“백!”

“백?”

해령과 미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도 명품!”

“명품? 혹시 짝퉁아냐?”

화수의 주머니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들이기에 은연중 고개를 끄덕였다.

“어허! 짝퉁이라니, 거기 보증서가 엄연히 있는데!”

화수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목소리에 힘을 줬다. 제대 기념으로 가장 사랑하는 두 여인에게 선물을 하는데 짝퉁이란 가당치 않았다.

“정말이네?”

 

백에 관해선 미수는 거의 전문가나 다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첫 직장이 백화점 명품매장이었기 때문이다.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해령이 자신의 몫인 백을 포장도 뜯지 못하고 울먹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화수인지라 군 복무 중 집에 단 한 번도 손을 벌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휴가 대 쥐어주는 용돈도 극구 거부했던 화수였다.

그런 그가 어디에서 돈이 생기겠는가.

“아, 군대에도 월급이 있다니까 그러네.”

그랬다. 화수는 다달이 그야말로 쥐꼬리가 더 길게 느껴질 사병의 월급을 꼬박 모은 돈으로 두 여자에게 명품 백을 안겨준 것이다.

“화수야∼”

“아들∼”

해령과 미수는 목이 메어 오는 걸 느꼈다. 화수가 자신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새삼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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