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집안 이야기, 그 전(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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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9,820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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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그 전(44)

 

<44. 학급 반장 >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어느 학교든지 어느 학년이든지 새 학기, 새 학년이 되면 학급의 반장을 새로 뽑는다.

 정용의 학급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정용은 1학년 때 같은 학급에서 같이 자리에 앉았던 윤현서와 같은 학급이 되었다.

 그와 따로 떨어져도 별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같은 자리 함께 앉았던 친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더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당시 일류학교든, 이류학교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몇 명 중에서 담임선생의 추천에 의해(정확히 담탱이의 입맛에 의해) 반장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각 학급의 담임들은 대부분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데,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꼭 반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들은 일년간 살펴 본 결과 리더십도 있고, 공부도 잘하면서, 선생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반장이 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선생들끼리는 반장깜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암암리 반장깜이 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한 학급에 몰리지 않도록 반 배정에 신경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k 중학은 전통적으로 학생의 자율에 맡겨 반장을 선출했다.

 그건 학생들 간에 묵시적으로 정해진 일종의 전통같은 것인데 학생들은 그런 것에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학급 반장을 뽑는 날, 추천에 의해 후보를 정하는데, 윤현서가 가장 먼저 나서며 정용을 반장 후보로 올리는 것이 아닌가?

 정용은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윤 현서는 후보를 추천하는 말을 하는데, 정용이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은 공부도 물론 잘하지만, 다른 실력도 뛰어나다는 것으로 일년 동안 학급을 이끌만한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공부도 잘하지만, 지난 학기 서석구란 못된 놈이 있었는데, 그를 어떻게 물리쳤는지,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파인 정용이 반장이 되면 우리 학급은 잘 될 것이라고 선전해 주었다.

 자연히 현서는 정용에 대해 공부보다는 무예실력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또래 아이들은 태권도나 합기도를 하는 아이들에 대한 일종의 선망이 있었는데, 그런 것은 정용을 선전하는 데 좋은 도구였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현서가 정용의 확실한 실력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의 언변에는 설득력이 좀 부족했다.


 그런데 정용은 현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이 반장이 될 위험에 처할 것 같아(그래서는 안되니까!) 그도 발언권을 얻어, 오히려 현서를 반장으로 앉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용은 반장이 되면 그러지 않아도 시간이 쪼들리는데 학급 일에 신경쓰다보면 마나님을 비롯한 여자들에게 소홀해질 것이 분명해 보여 그래서는 절대 안된다는 다짐을 하는 찰라에 그만 현서의 추천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가 윤현서를 반장으로 추천하면서, 왜 자신은 누구를 반장으로 추천하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정용은 현서가 자신을 학급의 반장으로 선출시키려는 의도를 생각하면서, “아 바로 여기서도 배울 게 있는 거로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임시로 사회를 보면서 반장 선출 권한을 가진 아이에게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후, 지난 일 년 동안 자신이 옆에서 관찰 해온 윤현서의 장점을 조목조목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의 집안 환경과 출신 학교가 바로 이웃인 재동국민학교이며, 성적이 좋고, 성품이 온화하여 반 학생들과 잘 화합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고 소개하였다.

 

 그리고 가정 형편이 넉넉한 데다가, 미국에 유학갔다 온 삼촌들이 있는 집안이라 유학 정보나 외국의 학교에 대해 입학 정보 등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윤현서야 말로 학급 반장으로 적합하다고 이야기 했다.

 더욱이 아버지가 재계의 유력인사이며, 그런 것은 학교나 학급에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충분히 도울 수도 있을 것이란 이야기를 곁들였다.

 더욱이 자신은 부천의 시골 촌놈이라 집안 형편도 어렵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배운 게 없는 놈이라고 추천을 해 줘서 고맙지만, 추천을 사양한다고 발표하였다.

 조리있는 그의 말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떤 애들은 그래서 정용이가 반장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내었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은 이미 추천이 들어 온 것은 어쩔 수 없으니 투표로 결정하자고 한다.

 그런데 사회를 보던 녀석은 지난 한 해, 다른 학급에서 반장을 하던 녀석이라 그쪽 녀석이 그놈을 추천하여 결국 3파전의 투표를 하게 되었다.

 

 당시 60년대의 한 학급의 학생 수는 보통 50명에서 60명 사이였다.

 그러므로 3명이 반장에 출마했다면 1/3 수준인 20명만 넘으면 반장이 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반장 투표를 과반수가 넘지 않으면 2차 투표까지 가자는 의견이 있어서, 결국 2차 투표까지 가서 윤현서가 반장으로 선출되었다.

 거기에는 물론 정용의 발언이 큰 몫을 차지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정용은 자신이 추천한 윤현서가 반장이 된 것에 대해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정작 반장으로 선출된 윤현서는 걱정이 그득하다.

 윤현서는 등치도 있고, 마음씨도 온화한 것이 정말 괜찮은 학생이지만 한 가지 조금 유약한 점이 흠이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한 방이 있는 정용이 부러웠던 것이다.

 

 그도 반장이 된 것에 대해서는 더없이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지만, 이반 저반 아이들이 섞인 곳에서 과연 리더십을 발휘하여 반을 이끌어 나갈지는 의문이었다.

 아무래도 학년 초기에는 반의 헤게모니를 쥐려는 녀석들이 어디서고 있게 마련이므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용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얘, 정용아 -- 니가 날 추천했으니 --- 그래서 내가 반장이 된 거니까 --- 문제가 생기면 --- 알았지?”

 윤현서는 정용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한다.

 

 정용도 윤현서의 도움을 나 몰라라 팽개칠 위인이 아니다.

 그는 언제든지 현서를 도와 주겠다고 약속한다.

 현서는 정용이 언제든지 도와준다는 약속을 하자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되어 ‘윤-정’ 조합이 만들어졌다.


 학기 초가 되면 어디든지 동아리 모임을 갖는다.

 남학생이 있는 곳이면 대부분의 학교가 검도부나 럭비부, 혹은 역도부 등이 학생들의 군기(軍紀)를 잡는다.

 당시는 아무래도 일제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어, ‘선배의 말은 곧 하늘이라’는 식으로 후배들에게 절대 복종을 강요했는데, 그건 k 중학도 예와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해 ‘서석구 사건’으로 인해 정용의 이름이 암암리 동아리 패거리들에게 알려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새 학기를 맞이하여 정용을 자기 부서로 끌고 오려는 부장들의 암묵적인 경쟁이 생겨났다.

 그러나 정작 정용은 어떤 부서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중학교의 검도부나 태권부나 럭비부나 다 마찬가지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를 데리고 오려고 하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세를 키워 학교 내에서 세력을 과시하고픈 각 부서의 부장들은 그렇지 않았다.

 정용을 데리고 오기만 하면 그 즉시로 한 방을 띄워서 학교 내의 헤게모니를 단번에 움켜 쥘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윤현서를 통해 압박하기 사작하였다.

 그러나 정용은 몇 번 현서로부터 그런 제의를 받자 그에게 ‘어디서 그런 요청이 들어오면 다 거절하라’고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자 그만 현서의 입장만 난처해졌다.

 

 그래서 정용은 현서의 이런 저런 사정을 들어보니 그의 입장도 이해할만 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정용을 잡으려면 윤현서부터 잡아야 된다는 소문이 퍼져, 재동국민학교 동창들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 친구들까지, 선생님들까지 동원되어 자신에게 정용의 입단(入團)을 부탁해 온다고 하는 것이다.

 원래는 신입생들에 대한 입단이 주가 되는데, 올해는 정용의 입단이 화제가 되었다.

 정용은 이런 데서 단체생활의 어려움을 느꼈다.

 ‘아하, 이래서 친구가 되지 않으면 -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로구나!!’

 자신은 그저 가만히 있고 싶은데 상대가 그냥두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가고 싶지 않은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반장으로 선출된 윤현서가 자기 집에서 파티가 있는데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윤현서는 그의 아버지가 자기 집에서 여는 파티로서, 그저 마당에서 간단하게 삽겹살이나 먹는 조그만 파티인데, 아버지가 아는 k 중학 선생님들도 몇 분 초청하였고, 친척들도 몇 분 오시는데, 아버지가 꼭 정용을 초청하라고 해서 우리 반 친구 두 명과 함께 초청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용은 윤현서의 아버지가 여는 파티에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나님과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이러저러해서 그런 파티에 초청을 받았다고 하자, 마나님은 적극적으로 그의 등을 떠다밀어 하는 수 없이 파티에 가게 되었다.

 마나님은 “얘, 그런 파티엔 무조건 참석하는 거야 --- 나중에라도 그런 기회를 놓치면 안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함으로 남자가 자기 시야를 넓히고, 어른들을 만날 기회를 갖고 인맥을 쌓아두는 거라고 한다.

 정용도 생각해 보니 마나님 말이 옳은 것으로 여겨졌다.

 윤현서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재계에서 이름난 분이라고 하니 알아둬서 나쁠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파티에 참석하자 놀랄만한 일이 생겼다.

 그 파티엔, 그 뿐 아니라 은지가 와 있는 것이었다.

 정용은 윤현서네 마당 앞, 정원에서 은지를 만났다.

 정용은 은지를 보자 깜짝 놀라 그녀를 보고 물었다.

 “얘, 니가 어쩐 일?---- ”

 그러자 은지는 현서네 집이 아주 가까운 친척이란다.


 “왜? 여기 우리 이모집이야 !! -- 우리 옴마도 와 있는데 ?? --- ”

 그런데 은지 뿐 아니라 은지 엄마도 와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은지는 정용에게 어떻게 이 집에 오게 되었느냐고 되묻는다.

 “나? -- 현서가 우리 반 친구야 -- ”

 이러저러해서 알고 보니 윤현서의 이모가 은지 엄마였다는 것이다.

 “그럼? ---- ”

 은지의 설명에 의하면 윤현서 엄마가 은지 엄마의 언니란다.

 “어쩐지 --- ???”

 정용은 윤현서가 만나면 만날수록 누군가와 닮아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바로 은지와 은지 엄마 때문인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은지의 코와 눈매가 현서와 닮아 있었다.

 게다가 윤현서는 남학생 치고서는 너무 예쁜 얼굴이라 아예 꽃미남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뭐가 어쩐지야??--”

 은지가 정용에게 되묻자 정용은 은지에게 설명한다.

 “아니, -- 은지, 널 보면 어디선 본 사람 같았고, -- 현서를 봐도 어디서 본 사람 같았거든 --- 니네 둘을 연관시킬 수는 없었으니깐 -- 그런데 이젠 알았다는 거야!!”

 

 그 때 이 사람 저사람 돌아다니며 인사하던 현서가 그들 곁으로 다가온다.

 “뭐, 둘이 벌써 인사 했어?--”

 그러자 은지는 정용의 손에 팔짱을 끼면서 현서에게 말한다.

 “우리 샌님이야!!--”

 그러자 이번에는 현서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랜다.

 “뭐? -- 그럼?? 니 성적을 올려 주었다는?? -- ” “맞어! 바로 이 샌님이야!!”

 은지는 정용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벌써 현서네 집에도 정용에 대한 소문이 다 난 모양이다.

 

 은지 엄마는 은지 성적이 엄청 좋아졌는데, 그 이유가 어떤 남학생이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라고 언니인 현서 엄마에게 다 떠벌렸던 모양이다.

 “야, 정용, 너 - 대단해 --- ”

 현서는 다시 한 번 정용의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용은 현서의 집을 구경하면서 놀랐다.

 현서는 자기 집을 안내하면서 구경시켜 주었다.

 그의 집에는 그의 아버지가 모아 놓은 각종 미술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장식품으로 된 것도 있고, 그림이나 서예도 있었고, 병풍과 족자도 있었다.

 정용은 이런 방면에는 완전히 무식했음으로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현서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물건이 많은 것 같았다.

 

 주로 현서와 정용, 은지가 함께 돌아다니며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수집한 고 미술품을 감상하였는데, 현서도 고 미술품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듯 보였다.

 “야, 현서 - 넌 이쪽 방면에 도가 튼 것 같다.”

 정용이 그의 설명을 들으며 감탄하자 오히려 그는 겸손하게 말한다.

 “야, 정용. 그런 말 하지 말아! 난 겨우 책에서 얻어 들은 것 뿐이야! -- 그런데 넌 무술에 고수잖아 -- ”

 현서는 정용의 무술실력에 비하면 자신이 배운 책에서의 지식은 비교할 바가 못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용이 보기에는 오히려 그것이 더 부러웠다.

 “이쪽 방면으로 공부를 더하면 -- 좋을 것 같다 -- ”

 그래서 친구를 위한 마음으로 권한다.

 “그러지 않아도 - 아버지도 문화사나 고고사학을 공부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하셔 -- ”

 현서는 나중에 대학교수나 역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였다.


 정용은 그가 그렇게 되어도 좋지만, 그러려면 먼저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해 본다.

 “그래서 난, 중학을 졸업하면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 마침 삼촌들도 있고 -- ”

 그러는 내내 은지는 정용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팔을 꼭 붙들고 다닌다.

 마치 정용이 자기 애인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것이 어른들의 눈에 거슬렸지만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샌님이에요 --”라고 소개를 한다.

 자기 선생님과 함께 다니는 것이므로 너무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어떻게 보면 으스대는 표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용은 은지와 다니는 것이 너무 불편하다.

 무엇보다 은지가 입은 옷은 얇은 실내복이기 때문에 일부로 그러는 건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는 잘 몰라도 그의 팔뚝에 자꾸 자기 볼록 솟은 유방이 있는 가슴을 자꾸 문대니 좆이 꼴려 죽을 지경이다.

 친지들이 있는 곳에서는 일부러 그를 소개해 준답시고 자신의 탱탱하게 부풀어 오르는 사춘기 여학생의 엉덩이를 그의 좆 근방에 갖다 대고서는 살랑살랑 흔들어 버린다.

 정용은 속으로 욕이 나온다.

 ‘아이 쌍년, 그러지 말고 아예 한 씹 대주든지 --- ’


 그런데 손님들 중에는 k 중학교 교사가 두어 명 있었다.

 그들은 k 중학을 좌지우지하는 지위에 있는 주임급 교사들이었다.

 물론 윤현서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재계에서 내로라는 인물이기 때문에 초대받아 온 것이지만, 윤현서의 아버지는 현서의 학업성적이라든가 교우들과의 교제라든가를 생각해서 아무 생각없이 학교 선생들을 부른 것인데, 그 중 한 명이 정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용이 자기 주변에 있는 선생 중의 하나가 자신을 음침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것을 어떻게 중학생이 눈치를 채겠는가?

 

 파티가 끝날 무렵 정용에게는 매우 낯익은 얼굴이 파티장에 나타났다.

 그건 바로 성균관의 김 일범 교수였다.

 그가 나타나자 정용은 깜짝 놀랐는데, 김 교수는 그에게 ‘쉿 - ’하며 자신을 아는 척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정용도 그래서 그만 모르는 척하고 말았다.

 사실 김 교수와 정용, 두 사람은 너무 친근한 관계이지만 그런 관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윤현서의 아버지가 좌중에 모인 사람들에게 김 교수를 소개하였다.

 아마 윤현서의 아버지와 김 교수는 막역한 사이인 것 같았다.

 정용이 먼 발치에서 현서의 아버지인 윤 사장을 보니 아주 깔끔한 신사다.

 검은 정장 차림에 흰 외이셔츠와 붉은 넥타이를 매었다.

그가 후줄근한 개량 한복을 입은 김교수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내 동기, 동창인 성균관 김 교수입니다. - 유학(儒學)이 전공이니, 한문에는 일가견이 있고, 고문서에도 아주 조예가 깊은 분입니다. 게다가 옛 무술(武術)도 한 가락하는 친구입니다.”


 김 교수는 현서 아버지와 한 때 동문수학한 사이라고 한다. ‘어쩐지 --- ’

 정용은 이래저래 현서와 얽히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전에 실전(失傳) 되었던 호보와 호권에 관한 책자를 먼저 구입한 것이 현서의 아버지라고 한다.

 고문서와 고도서를 알아보는 데 능했던 윤 사장은 당시 전쟁통에 수없는 국보급 유물들이 그냥 없어지는 것이 너무 안타까와 사재를 털어 골동품을 사기 시작하다가 한자로 된 오래된 책자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책자는 오래된 것은 분명한데, 도통 알아먹지 못할 글들이 잔뜩 씌어져 고문서와 고도서 도해에 일가견이 있는 김 교수에게 번역과 해석을 의뢰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 문서를 보고 단번에 실전된 무예에 대한 기록물인 것을 윤 사장에게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윤 사장은 ‘그 무예를 익힐 수 있느냐?’ ‘익히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라고 물어 본 뒤 김 교수가 그 책자에 의해 무예를 익히게 되면 그 중 얼마라도 자기 아들에게 그르쳐 주기로 약속하고 그 책을 김 교수의 수중에 넘겼다고 한다.

 물론 아들인 현서가 익히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건 김 교수의 완전한 소유가 된다고 인정하였다.

 다만, 원래는 그의 소유이므로 가끔씩 그 무예가 어떤 것인지 보고 싶을 때가 있으니 그럼 좀 보여달라고 부탁하였는데, 김교수는 그런 일이 대수로운 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흔쾌히 약속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먼 훗날, 정용과 김 교수 만의 대화에서 나온 내용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절대 모르는 일인 셈이다.


  윤 사장은 사람들에게 김 교수의 실력을 이야기한다.  

 “김 교수의 무예는 대단합니다. 한 번 보여주시면 어떨까요? -- ”

 그러자 김 교수는 아주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윤현서의 아버지는 아무리 자기 부탁이라도 고수들은 자신의 실력을 보이는 것조차 꺼려한다는 것을 잘 모르고 한 말이었다.

 현서의 아버지인 윤 사장이 혼자 보겠다고 했으면 김 교수가 거절할 일이 아니었으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예를 시전한다는 것은 마치 원숭이 서커스하는 기분이어서 무예를 시연하고 싶은 생각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친한 친구의 오랜만의 부탁이니 거절하기도 난처했다.

 그런데 여기 주책이 한 바가지 더 있으니 바로 윤현서다.

 그 역시 자기 친구 정용을 자랑하고 싶어서 난리가 났다.

 “여기 내 친구 정용도 -- 한 무술 --읍읍 ----- !! -- ”

 정용은 재빨리 친구 현서의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말았다.

 

 말하자면 자기 사부격이라 할 수 있는 김 교수도 곤경에 처했는데, 자기마저 그런 쇼에 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볍게 입술의 밑에 있는 턱의 중간부분 성대를 다른 손으로 가볍게 탁 쳤다.

 곧 아혈(啞穴)이다.

 정용은 친구 현서의 목을 가볍게 만졌으므로 잠시 동안만 말이 안나올 것이다.

 조금 더 있으면 자연적으로 쉰 목소리가 나오다가 한시간 정도 있으면 정상적으로 목소리가 나오도록 그의 입을 막으면서 조치를 했다.

 현서는 정용이 자기 입을 막으면서 목을 치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깜짝 놀랐다.

 그런데 정용이 눈짓을 통해 ‘쉬 -- ’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대비 무슨 소린 줄 알았다.

 

 할 수 없이 김 교수는 이 집의 주인의 거절할 수 없는 이상한 요청으로 인해 무술 시연을 보이게 생겼다.

 정용은 좋은 기회로 여기고 김 교수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김 교수가 마당으로 나서자 손님들도 우르르 따라 나간다.

 

 그런데 부엌에 있던 여자들도 무슨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겼다는 듯 우르르 몰려나온다.

 먼저 김 교수는 당부의 말을 한다.

 “제가 윤 사장의 부탁으로 잘하지는 못하지만 몇가지 우리나라에서 실전된 무예를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보고 웃지나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여기 어린 학생들도 있는데 저를 따라 하지는 마십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마당에 둘러 다니는 주먹만한 돌멩이를 주워서 정원석 위에 올려놓고는 “야압 -- ”하고 기합을 넣자 그만 그 돌멩이가 으스러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주위에 공사하다가 남은 것 같은 각목을 세워놓고서는 발로 차자 그만 각목이 우지끈 부러지고 만다.

 그러나 그 정도만이라고 대단한 힘이었다.

 많은 사람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멋쩍어진 김 교수가 그 정도 하고 들어가려는 데 윤 사장이 한 번 더 부탁을 한다.

 “김 교수 그 뭔가 신법인가? 무슨 보법인가도 좀 보여주게 --- ”

 그러자 김 교수는 그만 ‘후르륵’ 하며 담을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보여주고 싶지 않는데 자꾸 부탁하는 윤 사장이 꼴이 보기 싫었던지 그만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고 만다.

 그러나 그 신법을 알아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 사람도 참 ---- 싱겁기는 -- ”

 윤 사장이 공연히 헛물만 켜고 만다.


 그러나 정용만큼은 예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용은 김 교수의 담을 넘어 가는 놀라운 신법을 통해 근래 들어 그의 공부가 일취월장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호보(虎步)만으로는 그런 성취를 이루기 어려웠다.

 그것은 정용이 은연중 알려준 헌원심법이 그의 내공성취를 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김 교수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는데 그의 곁에 은지 엄마와 현서 엄마가 나타났다.

 “바로 -- 이 학생인 모양이지? -- ”

 현서 엄마가 현서에게 뭍는다.

 “예, 어머니 -- 정용이에요--”

 현서가 정용을 소개하자 곁에 있던 은지가 발랑발랑 뛰어가 현서 엄마를 붙들고 이야기한다.

 “이모 - 이모, 울 샌님이야----”

 정용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저, 정용이라구 해요 ----”


 그런데 현서 엄마는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정용은 자기 주변의 여자들이 하나같이 아름다운데 그 풍기는 체취는 조금씩 달랐다.

 먼저 자신의 친 엄마인 정혜 엄마는 들꽃같은 거친 아름다움이 있었다.

 마치 들국화같기도 하고 야생의 나리꽃 같기도 한 청초하면서도 강인한 맛이 있는 여자였다면, 삼청동 마나님은 마치 모란과 같이 활짝 핀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쩌면 함박꽃같이 흐벅지게 피어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비해 은지 엄마를 비롯한 이집의 여자들은 한 무더기로 피어난 장미꽃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한 성깔이 있는 것 하며 그 미모는 어느집의 여자보다 뛰어난 아름다움이 있었다.

 물론 그래서 남자의 손을 일찍 탈 수도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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