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집안 이야기, 그 전(3)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1,271회 작성일 17-02-12 06:30

본문

 

<집안 이야기 그전(3)>

 

 새벽 하늘에 가을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차갑기도 하고 서늘하기도 한 아침 기운이 온몸을 휩싸고 흘러 넘쳤다. 그것은 여름부터 호흡법을 시작하면서 생긴 이상한 흐름인데, 가을이 되면서 점점 뚜렷해졌다. 정문 앞 성균관을 지나는데 누군가가 불렀다.

 

 “어이, k 중학생 너 잠깐 보자!”

 직감적으로 그는 자기가 만난 바로 그 남자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꼭두 새벽에 그를 한 눈에 알아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가 몸을 돌리자 멀리서 그 남자가 손짓을 하였다. 그가 손짓하는 것에 따라 성균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성균관 대문 안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육백년도 넘은 나무라 한다.

 

 그가 은행나무 아래 서서 말을 했다.

 “난 성균관 유학대학 교수 김일범이다. 여기서 유학을 가르치고 있지”

 나이가 든 그가 자기를 먼저 소개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우물쭈물거리며 대답하였다.

 “전 정용이에요. K 중학 다녀요. 일학년이에요.”

 그러자 그가 놀라는 듯이 말했다.

 “뭐, 일학년! 3학년이 아니구?”

 “예-- ”

 “난 네가 한 3학년쯤 됐다고 여겨졌지. 그래서 그날 네가 고등학교 입시공부하느라고 늦은 줄 알았지”

 “아니어요. 그냥- 뭐 이거 저거 생각하다 보니 늦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날 이야기가 나왔다. 그 역시 그 남자의 무술 솜씨가 궁금하였던 터라 그를 칭찬하듯 말하면서 물어 보았다.

 

 “아저씨는 무슨 기술로 그 애들을 넘어뜨린 거에요?‘

 그러자 그는 ‘허허’하면서 짐짓 아무것도 아니란 듯한 자세를 취하면서 대답하였다.

 “응, 그건 아무 것도 아냐. 그런데 난 네가 배운 게 더 궁금한데?”

 

 그제서야 그의 본심이 나온 것 같았다. 그는 성균관 교수라는 이 남자가 나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고, 또 그가 배운 무술들이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에 생각나는대로 그의 아버지가 정보학교에서 미군을 상대로 무술을 가르치는 교관이었다고 아는 대로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이 동네에 오려면 부천 둔덕산에서 오류역까지 걸어 나와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와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김 중사 이야기나 제이콥 또는 ‘헌원내가기공’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 얘기는 본래 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정용에게 몇 가지 기본자세를 취해보라고 하였다. 그는 그 남자가 원하는 자세들을 어렵지 않게 시행해 보였다. 그는 무언가 골돌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용아, 나는 네가 아버지에게 배운 무술이 실전된 것으로 알려진 황해도 지역에서 널리 퍼졌던 고려본국권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내가 읽은 책에 의하면 이 무술은 본래 고려시대 한 무장이 개성 지역에 널리 퍼뜨린 것인데, 이조 시대에는 박해가 심해 구월산으로 숨어 들어가 그쪽 지역에서 발달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네가 그 이름을 모르니 나도 알 바가 없구나”하면서 자신의 권법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내가 연구하고, 또 연습하는 것은 호보(虎步)와 호권(虎拳)이다. 우리나라 선조들은 호랑이에 대한 관심이 매우 깊어 옛날부터 호보와 호권에 대한 가르침이 내려왔지만, 이 또한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부분이 유실되고 정통적 가르침이 사리지기에 이르렀다. 나는 옛날의 한 유생(儒生)이 전한 한 문집에서 이 호보와 호권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보게 되었는데, 이를 번역하면서 깨달음을 얻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난 이미 나이가 들어 이 유실된 무술을 접하게 됨으로 최고의 경지에 도달 할 수는 없었고, 책에 수록된 것만 연구하여 알았을 뿐 그 이상의 진전은 이룰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연마한 호보를 보여 주겠다고 하였다. 그는 ‘에잇’하는 큰 소리와 함께 몸을 날렸는데 그의 몸은 어느새 십 여미터나 떨어진 성균관 담장에 사뿐이 올라가 있었다. 그의 몸은 적어도 80kg 이상이나 되는 둔중한 몸매였는데, 기와 지붕으로 된 성균관 담장에 아무런 손상도 없는 것이 신기했다.

 

 그는 다시 사뿐이 몸을 날려 순식간에 곁으로 다가왔다. 참 놀라운 기술이었다. 그렇게 둔중하게 생긴 몸이 그렇게 가볍게 떠오르고 또 착지하는 것이었다. 다시 그는 돌을 하나 집어 들어 내리치며 말하였다.

 “이게 호권이닷!” 그가 내리친 돌은 ‘팍삭’하고 깨지면서 돌가루가 훌훌 날렸다.

 보통 사람이 맞으면 즉사할 수도 있을 정도로 위력이 강한 강력한 권법이었다.

 

 “호보와 호권은 매우 강력한 것이 특징이다. 아마 중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권법을 외가권(外家拳)이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네가 배운 것은 고려 본국권법에 군에서 필요한 특공무술을 섞은 것이므로 각개전투나 집합무술에 쓰기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여러 사람을 상대하기 좋다는 것이지만, 내가 갖고 있는 이 호권(虎拳)은 순전히 개인이 필요한 무술이랄 수 있겠다. 그것은 아마 힘을 집중하여 쓰는 법이 다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자세히 알려 주는 것은 네가 이 무술을 배우면 이 무술이 우리 세대에 실전(失傳) 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미 넌 상당 수준의 경지에 도달해 있으므로 내 무술을 배우는 데에도 그리 어렵지 않고, 아마 네가 머리가 좋으니 연구를 좀 더 하면 호보와 호권의 창조적인 경지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용은 성균관 교수인 그 남자의 호보와 호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가 이런 좋은 무술을 가르쳐 준다면 얼마든지 배울 것이다. 첫날 그는 만난 기념으로 호보의 기초를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발을 놀리는 법을 일러 주었다.

 

 그는 먼저 오른발을 안쪽으로 들였다간 갑자기 바깥으로 향하게 하여 훌쩍 내닫는 몸짓을 일러 주었다. 정용이 그의 몸짓을 따라하자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양손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흔들며 오른발을 높이 쳐들며 몸을 날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시범을 보여 주었다. 일순 그의 몸이 훌쩍 떴다 싶은데 이미 오륙 미터나 앞에 날아가고 있었다. 정용도 그의 시범을 따라서 하자 갑자기 그는 몸이 훌쩍 떠오르면서 그보다는 못 미쳤지만 삼사 미터는 족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가 말하였다.

 

 “넌, 자질이 정말 탁월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수준을 넘을 것이다. 이걸 기억해라.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몸을 날려 아직 개지 않은 새벽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걸 익히고 나면 호권(虎拳)을 가르쳐 주도록 하지”

 새벽의 공기 속에서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미 몸이 상당히 더워져 명륜동의 신문보급소로 달려갔다. 아직 아침은 되지 않았지만 신문보급소에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지고 있었다.

 평소에 비해 조금 늦기는 했지만 그렇게 늦은 시각은 아니었기에 부랴부랴 신문을 배달하였다. 그러나 신문을 배달하면서 인적이 드문 곳이 나타나면 성균관의 유학 교수에게 배운 호보(虎步)를 시전해 보았다. 처음에는 영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계속해서 시도해 보니 그런대로 몸에 익숙해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토요일이 되어 삼청동 집에 들러 보기로 하였다. 그 집에 도착하니 이미 제인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그가 오지 않을까 싶어 일찍부터 그 집에 도착하여 그를 기다린 듯 했다. 그가 공부하게 될 삼청동의 그 집은 커다란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이층 양옥집이었다. 이 집은 전에 그가 신문을 넣던 집이었다. 가끔 그 집에 들러 신문대금을 받던 집이었으므로 주인 여자도 그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주인은 매우 곱게 생긴 아름다운 흰 피부의 중년 부인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이제 갓 마흔이나 됐으려나 싶었지만 이미 대학생인 두 딸이 있다는 것을 보면 그건 곱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고, 사실 그것 보다는 더 됐으려니 싶었다.

 

 “어머, 이 학생이 바로 그 학생이야?”

 제인이 여주인에게 소개하자 그녀는 반색하며 맞아 주었다.

 영어를 공부할 학생은 이 집의 두 딸이었다.

 제인은 자기가 받을 강사료를 떼어 정용에게 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아름다운 중년 부인의 침도 안바른 칭찬에 멋쩍하며 우물쭈물한 자세로 자신을 소개했다.

 “요 아래 k 중학 1학년이에요. 전 아무 것도 몰라요. 그냥 이 누나 하라는대로 할께요.”

 그는 제인을 누나라고 말했다.

 “어머 겸손하기도 하지”

 제인은 이 중년의 미부인에게 그를 엄청나게 소개했나 보다. 나중에 듣고 보니 제인은 그를 마치 하늘에서 하강한 무림의 고수와 같은 모습을 가졌다는 이야기 했다. 공부할 학생은 이제 대학 3학년인 큰 딸인 지연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대학생이 된 작은 딸 지영, 이렇게 두 명이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부인은 “응, 지방에서 올라온 수재라는 그 학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입학 당시 그가 돌리는 신문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 몇 명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정용은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부인도 김포가 고향이라 경기도 사람이 그 학교에 들어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여튼 그는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제인은 그의 영어 발음은 완전한 동부 뉴요커의 인텔리 발음임에 분명하다고 하였다. 부인은 선생님이 한 분 더 오셨으니 별도의 페이를 더 주겠다고 말하였다. 그 정도의 페이는 이 집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아마 제인과 똑같이 대우해 줄 모양이었다.

 

 제인은 영어 수업을 패턴에 맞춰 일상생활의 체험 영어 스타일로 진행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바로바로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실수가 있더라도 괜찮으니 생각나는대로 말하라고 주문하였다. 정용은 처음에 혼자 이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쑥스러웠다. 그래서 부인도 같이 하는 것이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이 집 주인인 중년 미부인도 처음에는 망설이듯 하다가 그를 보고 참석하겠다고 말하였다. 수업은 매주 토요일 오후에 진행하기로 하고 첫날은 서로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간단히 끝내었다.

 

 정용은 그 다음 토요일 오후가 되어 그 집을 방문하였다. 이날 제인은 어디서 구했는지, 그 당시 미국에서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유명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란 뮤지컬 드라마의 영어 대본을 가지고 왔다. 제인은 본래 LA 출신으로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영화 쪽에 인맥이 있다고 하였다. 친구에게 부탁하여 미 군용 비행기 편으로 대사관 물건들이 오는데 영화를 보고 싶으나 그것은 어렵고 그 편에 이 대본이라도 구해 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마침 이번 주에 이 대본이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당시 미국에서 사용하는 젊은이들의 언어를 영화에 삽입시킴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서 본래는 섹스피어의 희곡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의 다이아로그와 남자의 다이아로그가 혼합되어 있기에 대사를 읽으면서 영어를 배우기 아주 알맞은 방법이었다. 또 이 영화 대본이 당시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가사에 삽입되어 있었기에 음악을 몰라도 가사만 보아도 당시의 미국 생활을 느껴지는 효과도 있었다.

 

 부인은 나중에 이 영화가 한국에 들어오면 모두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하였다. 그들은 서로 대본을 들고 역할을 정해서 읽기를 하다가 나중에는 역할을 서로 바꾸어서 읽고, 자기가 하고 싶은 역할을 배우처럼 연기도 하면서 마치 연극 배우가 된 것처럼 대본을 읽으면서 영어 공부를 즐겼다. 정용은 주인공인 토니 역이 좋았다. 대학교 1학년 들어간 작은 누나인 지영은 마리아 역을 맡겠다고 고집했다.

 

 정용은 혼자서 공부를 하다가 이렇게 제인과 함께 미국말을 원어민과 함께 배우니 그전에 제이콥이 가르쳐 줄 때보다 더 많은 지식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실 돈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그도 함께 배우는 것이 더 많으므로 그도 수업료를 내는 것이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참여하고 난 뒤 많은 사람이 그로 인해 미국의 실용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었으므로 재미있어 하였고 영어를 즐기며 배울 수 있었으므로 모두 좋아하였다. 
 
토요일 저녁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늦은 저녁 삼청동에서 명륜동으로 오는 길은 성균관을 넘어오는 뒷길 밖에는 없다. 창경궁 앞으로 오려면 너무 오래 걸리고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아 어두컴컴하지만 성균관으로 넘어 오는 길이 훨씬 빠르고 좋았다. 정용은 오히려 어스름한 길이 밝은 대로보다 더 좋았다. 아마 그것은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인 것임을 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느 학교든지 양아치 같은 애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가 다니는 학교가 좋은 학교이고, 전국에서 수재들만 모이는 학교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들 중에는 힘깨나 쓰는 애들이 있게 마련이고, 또 다른데서는 그러지 않는다 할지라도 고만고만한 애들 사이에는 주도권을 쥐고 흔들려는 애들이 있게 마련이다. 정용은 자신이 그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한 학기가 지나자 이미 아이들 중에는 누가 짱이니, 누가 주먹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정용은 그런 아이들과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아니 상관하려고 해도 그는 자기 할 일로 더 바쁜 아이였다. 이제 그는 아이라고 보기 힘들만큼 정신적으로도 성숙해 갔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정말 아이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이미 그가 제인과 함께 영어 강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가 자기 주변 학생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대신 다른 아이들이 먼저 그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접근해 왔다. 그가 부천 시골에서 왔으므로 그를 촌놈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부천 촌놈은 촌놈이니까! 부천에서 종로의 화동까지 온 것은 그 나이에 엄청난 출세라고 봐야 했다. 그래서 그네들이 촌놈이라고 불러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놀려대면 반응을 보여야 더 놀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런데 촌놈이라고 놀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놀리고 싶은 애들도 그냥 심드렁해졌다.

 그런데 이런 초연한 그의 태도에 고까와 한 것은 종로 부근의 재동국민학교나 운현국민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아니라 동대문 근처인 제기 국민학교 나온 녀석들이랑 동대문도 넘어 회기 국민학교 나온 녀석들이었다. 이 녀석들은 종로 부근의 아이들보다 훨씬 못되어 먹었다.

 

 정용은 몸집이 다른 아이들보다 비교적 큰 편이기 때문에 언제나 남쪽 창가 뒷자리에 앉았다. 그의 곁에는 항상 재동국민학교를 나온 단짝인 윤현서란 친구와 함께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서도 정용을 부천의 촌놈이라고 멸시하지 않았고, 정용도 현서를 좋은 친구로 여겼다.

 그런데 몸집도 별로 크지 않아 중간정도나 앉으면 될 녀석이 항상 뒷자리에 앉고자 깝족대던 석구란 녀석이 있었다. 이 녀석은 동대문 근처 사는 녀석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꾀돌이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되바라져 항상 못된 짓거리를 꾸미고 다니는 녀석이었다.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하는 녀석인데,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성적이 좋았는지 아니면 보결로 들어왔는지 학급에서도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녀석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에는 아주 발벗고 나서는 녀석이었다.

 

 한 번은 현서가 미국에서 온 삼촌이 줬다는 파커 만년필을 정용에게 보여주며 자랑을 하였는데, 며칠 있다가 보니 석구란 녀석이 학급에서 그 만년필을 갖고 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 용은 그걸 보자마자 “저거 네 꺼 아니니?”라고 묻자 현서란 녀석은 곤란한 눈치를 보이며, “으응 -- 내가 그냥 줬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용은 속으로 보자마자 저 쥐새끼같은 녀석이 착한 현서를 등쳐먹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후 현서는 미국의 삼촌이 줬다는 검은색 샤프 펜슬을 여러 자루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중에 한 자루를 정용에게 주었다. 그런데 뭐가 잘 안되려는지 마침 그 자리에 없었던 석구란 녀석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그 장면을 보아 버렸다. 석구란 녀석은 정용이 샤프 펜슬을 받아드는 것을 보자 정용에게 자기에게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야, 정용, 너 그 샤프 나한테 주면 좋겠는데”

 정용은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 아주 괘씸했다. 그러지 않아도 이 녀석을 어떻게 골탕 먹이나 싶었는데 먼저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 이참에 본때를 보여 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대뜸 말을 받아주었다.

 “내 걸 왜 너한테 주니?” 

 정용이 이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현서가 “용아, 그거 줘 버려 내가 하나 더 줄게 --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용은 “그건 그 거,구 이건 내 거야. 이거 니가 나한테 준거 아냐? 왜 내 껄 재한테 주니?”

 그러자 석구란 놈이 말했다.

 “어이, 촌놈, 존 말할 때 그냥 나한테 넘겨! 너한테 준 놈도 그렇게 말하잖아!”

 석구란 놈은 어디 양아치처럼 껄렁하게 이야기해 왔다.

 용은 ‘픽’하고 웃음을 띄었다.

  “야, 촌놈? 웃기네. 서석구! 네가 뭘 모르고 까부는구나”

 정용은 서석구란 놈을 완전히 무시하는 투로 이야기하고 말았다.

 분명히 녀석이 화를 낼 것이 뻔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석구란 놈은 “뭐, 까불어? 이 새끼가 어디서 함부로 말해!” 하며 주먹을 휘두르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건 석구란 놈의 엄청난 실수의 시작이었다.

 

 정용은 주먹을 휘두르는 석구란 녀석이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가슴 정면을 다 비운 채 덤벼드는 녀석의 명치를 정권으로 가볍게 내질러버렸다. 아마 그가 요즘 배우는 호권으로 힘을 다해 찍어 갔다면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일권이었다. 그래서 적당하게 힘을 빼고 가볍게 일권을 먹인 것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정용이 이렇게 손을 쓰는 것을 바로 옆에 있던 현서도 알아보지 못했다.

 순간 석구란 녀석은 “헉!”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정용은 “얘가 갑자가 왜 그래”하며 석구를 부축하는 척 했다.

 

 석구의 얼굴에는 이미 사색이 돌았다. 정용은 그를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아 그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막혔던 기도가 풀리자 석구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미 창백해진 얼굴에는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용은 급우들에게 말했다.

 "얘가, 뭐가 갑자기 막한 모양이야. 양호실로 데리고 가봐!”

 반 친구들은 갑자기 덤벼들던 애가 ‘헉’ 소리를 지르고 앉아버리자, 정용의 이야기대로 점심 먹은 것이 잘못되어 체했나 싶어 석구를 따르던 급우 몇 명이 석구를 부축하며 양호실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현서는 정용 옆에서 속닥였다.

 “야, 니가 그런거지?”

 정용은 빙그레 웃으며 입에 손을 갔다 대고 “쉿!”하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 날 이후 석구란 녀석은 그 반에서 꼬리를 완전히 내렸다. 항상 반에서 큰 소리 치던 녀석의 소리도 사라졌다. 항상 석구로 인해 시끄럽던 학급에는 평화가 깃들었다. 그러나 정용은 이 일로 인해 이상한 루머의 진원지가 되었다.  

 “석구란 놈이 딱 한 방에 갔대!”

 “그거 쌤통이네, 그런 쥐새끼 같았던 녀석인데, 잘 됐네!”

 “쥐새끼보다 승냥이 같았던 녀석이야!”

 “친구들한테 못된 짓이나 하던 아주 질이 나쁜 녀석인데!”

 “누가 그랬대?”

 “몰라 -- 촌놈이 그랬대는데, 누가 본 사람은 하나도 없대!”

 “그 순둥이가? 설마 - ”

 그러나 정작 큰 일이 난 것은 이 일이 지난 뒤 며칠이 지나서였다. 정용은 새벽마다 성균관에 나갔다. 김 교수는 호보(虎步)의 초보를 천천히 전수해 주고 있었다. 그와 함께 호보를 전시할 때의 호흡법도 함께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그 호흡법이 정용이 매일 아침마다 하고 있는 헌원씨 내가 심법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그의 호흡법보다는 헌원기공의 내가 심법을 운용하여 호보를 배우려고 마음먹게 되었다. 호보의 기초를 웬만큼 익히자 김 교수는 정권으로 내리치는 호권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호보나 호권이나 그 자세는 아주 단순하다. 단지 이걸 얼마나 깊게, 오랫동안 꾸준히 연습하느냐에 따라 그 위력이 나타난다. 네가 이미 고려 본국권법에 어느 정도 익숙한 터이니 멀지 않아 효과를 볼 것이다.”

 성균관의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정용은 김 교수가 오면 오는 대로 함께 운동하였고, 오지 않아도 스스로 성균관 뜰과 새벽의 대학 운동장을 돌면서 몸을 풀고 운동을 하였다.

 

 학교가 파하고 다시 가회동 길을 올라가려고 하는 저녁 어스름에 그의 앞에 서석구란 녀석이 동네 깡패같은 녀석 셋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형님들, 바로 저 녀석에요!”

 석구는 정용을 지목하며 말했다.

 정용은 세 명의 청년들이 자신을 주시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 청년들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서는 결코 쉽게 갈 녀석이 아니란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정용은 석현에게 엄중한 어조로 타일렀다.

 “석구, 너 이거 아주 잘못한 거다. 이 일에 대해 네가 책임져야 한다. 알았냐?”

 그러나 석구란 녀석은 정용의 이런 위협에도 조금도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대동한 깡패같은 녀석들의 힘을 믿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그건 순전한 계산 착오란 사실을 몰랐다.  

 석구는 정용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큰소릴 쳤다.

 “이 새끼, 너야말로 오늘 죽을 줄 알아. 그 땐 내가 조심하지 않아 너 같은 놈한테 한 대 맞았지만, 오늘은 다를 거야!”

 그러자 그들 중의 한 청년이 석현에게 말했다.

 “야, 얌마. 그럼 니가 먼저 한 번 붙어봐!”

 

 아마 그건 자기가 직접 붙기엔 정용이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봤고, 또 정용의 실력이 얼마 정도인지 알 수 없기에 여러 가지 의도를 가지고 먼저 해보란 이야기였다. 그러나 석구는 영 찝찝했다. 저번에도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한 방을 먹고 뻗었는데 지금도 이 형들이 자기가 먼저 나서라고 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영 죽을 맛이었다.
 
정용은 이 청년들이 석구란 녀석에게 말하는 뽐새를 보니 이 청년들은 석구의 친 형이나 친척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아마 동네 깡패 수준이나 될 정도라고 생각 되었다. 그러나 정용은 나중에 싸울 이 깡패같은 녀석을 생각하면 먼저 덤벼들 석현을 한 방에 제거해야 했다.

 “이야 ---”

 석구란 녀석이 자신의 실력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 이 녀석의 수준은 태권도장에서 정식으로 태껸을 배운 수준도 못되었다. 그저 합기도장이나 몇 개월 나간 실력을 가지고 애들을 괴롭혀 왔는데, 본래 싸움에는 소질이 없는 녀석이 겨우 손과 발을 내젓는 방법을 배운 수준에 불과했으므로 딱 한 방이면 보낼 수 있지만, 뒤에 늘어선 청년들을 생각하면 몇 번 정도는 피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다가 짬이 나면 한 방에 보내 버려야 하겠다는 전략을 짰다. 그러면 그들도 쉽게 덤비지 못할 것이므로 차례대로 대하기만 한다면 이 녀석들의 실력으로는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석구란 녀석이 오른쪽 다리를 들어 정용의 허리 부근을 공격해 왔다. 정용은 왼손으로 그의 오른쪽 다리를 막으면서 동시에 정권으로 정강이를 내리쳤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순간 호권이 저절로 시연되었다. 더 험악한 것은 그 순간 그의 오른쪽 정강이 뼈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는데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상태에서 정용이 시연한 호권은 연약한 중학생에 불과한 석구의 오른쪽 정강이 뼈를 단 한 주먹에 박살을 내었다.

 “으아악 ---- ”

 석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나뒹굴었다.

 

 정용은 그 순간 ‘스스슥’ 하며 호보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그러는 순간 그 청년들이 자신을 공격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깡패같은 녀석들도 그가 신속하게 물러나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공격해 왔다. 그것은 그들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수준의 실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세 명의 청년들도 석구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길 가에 엎드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정용은 마치 회오리처럼 돌면서, 그들의 손과 발을 작살내었다.

  손으로는 호권으로 한 명이 내 뻗은 손의 중단을 쳐버렸고, 왼쪽 다리를 축으로 돌면서 오른쪽 다리로 다른 한명의 다리를 걷어찼고, 다시 돌면서 나머지 한 명의 등 뒤를 두 손으로 강하게 타격하였다.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며 깡패 녀석들의 손목 관절이 꺾이고, 발목 골절이 생기는가 하면, 한 명은 앞으로 꼬꾸라져 입에서 피를 토하는 형편이 되었다. 싸움은 단 한 순간에 끝이 났다.

 

 정용은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을 상대하기 어려워 보이지 지체없이 그 자리를 물러 섰다. 공연히 그 자리에 더 있다가는 고의적인 폭행 사건으로 자신이 어려워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골치 아픈 일이 생긴 것은 그 다음이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