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소설 몽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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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6,238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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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1학년때인 1977년, 유신정권말기의 광기가 막바지로 치닫을때였다. 나는 이제 국민학교(당시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했다)를 갓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국민학교때부터 한 공부했던 내게 집안에서 거는 기대는 상당했고, 이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내 대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단 내 방이 새로 생겼다. 동생들과 같은 방을 쓰면 아무래도 공부에 지장이 있을거라 생각하신 부모님은 세를 놨던 방 하나를 들이고 내 방을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당대 최고인 "동양강철"의 학생용 책상과 의자가 내 방으로 들어 왔다. 이젠 티비와 동생들의 방해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여 성적은 항상 전교 1-4등 사이에 들었다.

당시 중학교때 모든 것은 공부로 통했다. 싸움도 공부순이었다. 설혹 1등짜리는 싸움을 못해도, 누군가와 싸움을 했다면 그 상대방은 싸움의 승패를 떠나 담임선생님에게 죽도록 맞고, 만약 1등짜리가 실장이거나 육성회간부의 자제일 경우 학생주임, 교도주임, 체육주임 선생님들로부터 돌림빵을 당할 정도였다. 당시 중학교때 입학전에 본 평가고사에서 당당히 전교 3등을 차지한 나는 우리 반의 짱이 되었고, 실장이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와 보니 중학교의 실장은 국민학교의 반장이나 회장에 비길 수 없이 막강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중학교 생활은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다. 이은희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은희 선생님은 우리 국어선생님이시다. 당연히 대학교 졸업한 지 2년밖에 안된 25살의 꽃다운 처녀. 거기다 얼굴은 당시 최고 탤런트인 김자옥과 정윤희를 섞어 놓은 듯한 얼굴. 낭랑한 목소리로 국어책을 읽으면 정말 천사의 목소리가 따로 없을 정도다. 처음 우리 교실에 이은희 선생님이 들어 왔을때 교실문에 갑자기 찬란한 빛이 비치고 그 사이로 사람이 들어오는 기현상이 보였다. "예수 재림"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모습이었을게다. 항상 그렇듯이 선생님은 자기 소개를 하고 바로 수업에 들어 갔다. 수업에 들어가면 국어선생님들은 이런 것을 주문한다.

"실장, 일어나서 오늘 공부할 단원을 읽어 봐."

나는 일어나 또롱또롱한 목소리로 책을 읽었다. 한 페이지쯤 읽으니,

"그만. 아주 발음이 정확하고 잘 읽었어요. 다음, 이 반 평가고시 1등, 일어나서 다음 읽어 봐."

나는 또 다시 일어났다.

"아이고, 이 반은 실장님이 공부도 평정했네. 다음 부실장."

나는 또 읽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부실장에게 다음을 양보해야만 했다. 나는 국어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다. 심지어 문법책을 사다가 아직 중학교 1학년이 채 알지도 못하는, 중학교 2, 3학년대나 되어야 공부하는 완전동화, 불완전동화, 순행동화, 역행동화에서부터, "나랏말싸미 듕국에 달라"를 줄줄 외울 정도가 되었다. 종종 국어시간에 다른 애들이 모르는 문법적인 것과 고전을 가지고 선생님과 토론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럴대면 선생님은 아주 능숙하게 이 부분을 다른 학생들과 괴리감이 안 생기게 해주셨다.

"음, 오늘도 선생님과 정수가 남들이 모르는 말로 떠들었네요. 내일까지 오늘 둘이 얘기한 "모음조화, 양성모음, 음성모음"에 대하여 조사해 오세요."

아마도 내 생각엔 아이들이 나를 싫어했을거다. 요즘말로 하면 "씨발, 좆도 잘난체 하긴. 둘이 아주 붙어먹어라." 그렇다, 나는 할 수 있다면 선생님이랑 붙어먹고 싶었다. 그 시절에 학교를 다닌 회원님들은 아시겠지만, 실장은 선생님들과 친해 질 기회가 많았고, 그로 인해 여러가지 혜택도 받았다. 선생님들의 심부름도 하면서 친해지고. 그로 인해 고급정보도 듣고 보게 되고, 그 고급정보를 알려고 애들이 더 따르고. 국어선생님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은희선생님은 다른 반 실장들보다도 더 나를 예뻐해 주셨다.

그러다보니 선생님의 사적인 심부름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수업교재를 집에 두고 왔다 하면 선생님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내게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선생님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나는 선생님의 방에도 찾아가보는 남자가 되었고, 어떨땐 선생님의 사전허락을 받고 선생님 방에 놀러도 갔다. 선생님의 방에는 그 당시에는 아주 희귀한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그런 침대에서 자는 선생님은 천사나 다름없을거라 생각되었다.

당시에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화장실은 99.9% 푸세식이었고, 특히나 남자학교의 화장실에는 정말 눈뜨고 보기 어려운 민망한 낙서가 벽과 문짝을 잔뜩 메우고 있었다. 남자 학교의 화장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그 학교 여선생중에서 킹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학교는 말할 것도 없이 이은희 국어선생님이 모든 화장실을 평정했다. 모든 화장실 카칸에는 벽마다, 문짝마다 이은희 선생님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고, 아주 자세히 이은희선생님의 보지라고 그림을 그려놓은 것도 있었다. 녀석들이 그걸 보았을리는 없겟지만, 최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검은 털이 보지 주변에 잔뜩 나있고, 그 사이에 금이 가 있고, 또 그 가운에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선생님의 보지그림은 정말 사실처럼 잘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을 교실에서 먹었다, 뒷산에서 먹었다, 도서관에서 먹었다, 심지어 친구들과 돌림빵을 했다 등등 별별 야설들이 난무했다.

아이들도 그 야설과 그림들이 하나의 화제였다. 심지어 어떤 녀석은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며 교실문을 크게 열면서,

"얘들아, 1-7반 화장실에 드디어 이은희 선생님의 새로운 작품이 떴다."


라고 소리지르기도 했고, 그 소리에 아이들은 모두 그 화장실로 몰려가 때아니게 화장실이 북적거리고 붐비게 되는 현상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자지에 솜털이 나기 시작햇고, 자지도 조금씩 커지고, 아침마다 자지가 빳빳하게 서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들은 야한 얘기를 하며 달딸이에 대해서도 얘기하곤 했다. "딸딸이 쳐봤다"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애들도 있었으니, 이는 결국 자지도 커졌고, 발기도 하고, 거기서 정액도 나오니 나는 어른이다 라는 뜻도 된다. 나도 친구들에게 딸딸이치는 법을 배웠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친구들은 딸달이를 칠때 주로 주간지에 있는 사진을 보면서 이은희 선생님과 빠구리를 치는 상상을 하며 친다고 했다. 다른 여자보다도 이은희선생님과 빠구리를 친다고 상상하며 달딸이를 치면 좆물도 많이 나오고 멀리 나간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던 7월초쯤되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막 기말고사가 끝나고 이미 채점한 시험답안지를 다시 검산하던 것은 대개가 실장들 몫이었다. 물론 자기반이 아닌 다른반 또는 다른 학년의 답안지를 검산했다. 그런데, 그날 내가 검산한 답안지 묶음하나에서 오류가 있었는데, 그걸 깜박 빠뜨렸다. 다음날은 점수를 넘기는 날이기 때문에 오늘까지 꼭 얘기해야 할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종레가 끝난 시각, 그래서 나는 이은희 선생님댁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선생님댁은 그 시절의 대부분의 방 한칸짜리 전셋방이 방 하나에 부억 하나의 구조였는데, 대부분 방이 있는 좁은 마루가 있고 그 끝에 부억이 있는 구조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선생님집을 들어갈때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큰소리로 부르지 않고 문을 노크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부억쪽에서 물 끼얹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당시에 대개 이런 구조의 전셋방은 부억에 따라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을 해서 거기서 여름에는 물도 끼얹으면 샤워를 했다. 호기심에 부억 문틈을 보던 나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나의 천사 이은희선생님이 홀라당 벗고 목욕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눈부시게 하얀 예쁜 선생님의 나신을 보게 되었다. 주간지에서 보던 정윤희나 장미희, 유지인은 거기 따라오지도 못할 정도였다. 가슴은 아주 봉긋하고 (지금 생각해도 내 와이프보다 크고 예뻤다.) 허리는 잘록, 엉덩이는 아주 풍만했다. 요즘 말로 S라인, 베이글이 합쳐진 몸매였다. 거기에 삼각주에는 검은 털이 무성하게 자리잡고 있어 그 사이의 균열이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선생님의 나신을 훔쳐봤다는 죄책감에 더 이상 볼 생각도 못하고 조용히 물러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으로 오는 도중에도 계속 선생님의 하얀 나신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 와서 보니 팬티가 축축했다. 좆물을 발사한 것은 아니었고, 자지에서 계속 윤활유가 나왔던 것. 그날은 이미 기말고사가 끝났기에 편안하게 저녁을 먹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는 중에도 선생님의 하얀 나신이 떠올라 자지가 계속 빳빳하게 서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난생 처음으로 딸딸이란 것을 쳤다. 그리고 내 자지에서 발사된 정액(좆물)을 확인하며 나도 이젠 남자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애들이 가르쳐 준데로 빳빳히 발기된 내 자지를 잡고 문지르며 왕복을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이은희선생님의 나신을 떠올렸다. 특히 봉긋한 가슴과 검은 보지털을 생각했을때는 자지가 아주 터져갈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는 내 몸속에 그런 애기를 낳을 수 있는 정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게 또 그렇게 많이 나온다는 사실에도 놀랬다. 그 날이후로 문제가 생겼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선생님을 보면 선생님이 옷을 하나도 입고 있지 않아서 놀라서 쳐다보게 되었다. 그건 당연히 환상. 그럴땐 어김없이 자지가 발기되어 버렸다. 그리고, 저녁에 자기 전엔 이은희선생님을 상상하며 딸딸이를 치고.

이제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토요일. 선생님은 방학때는 서울로 가 계신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 늦게 나는 선생님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사서 선생님댁으로 갔다. 그 당시엔 삐삐, 휴대폰도 없고, 자취하는, 전세사는 사람들이 전화도 주인집 전화를 빌려쓰던 시대였으니 사전 연락도 없이 가는 셈이다. 한편으론 잘하면 지난 번처럼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볼 수도 있다는 기대를 안했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선생님댁에 도착했을때는 오후 세시쯤 지난 시간이었으려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운 여름날 에 선생님 방문과 창문은 닫혀 있었다. 어디 나가셨나 하고 문틈으로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선생님의 침대에는 선생님과 어떤 남자가 홀라당 벗고 몸을 섞고 있었다. 포르노 잡지에서나 보던 그런 남녀의 섹스 장면이었다. 선생님 위에 있는 남자는 내 자지보다 더 큰 자지를 선생님의 보지에 넣고 마구 박아대고 잇었고, 선생님은 그 박자에 맞추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문틈으로 보니 선생님과 그 남자의 얼굴을 보이지 않았지만, 자지와 보지의 결합된 부분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애들이 화장실에 그려놓은 그림처럼 선생님의 보지는 검은 털로 뒤덮힌 사이에 금이 가 있고, 그 금에는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는 내 자지보다도 훨씬 더 큰 저 남자의 자지가 가득 메우고 왕복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하더니 몸을 움직였다. 나는 깜짝 놀라 이젠 끝났나 싶어 가려다 말고 조금만 더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 눈앞에선 정말 대단한 광경이 펼쳐졌다. 누워 있던 선생님이 뒤로 엎드렸다. 마치 개처럼 엎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의 보지와 똥꼬, 엉덩이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내 눈앞에 펼쳐졌다. 선생님의 보지는 엄청나게 물칠을 해놓은것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런데, 그 자세에서 그 남자가 뒤에서 다시 선생님을 박아댔다. 선생님의 신음소리는 아까보다 더 커졌고, 뒤에서 박아대는 남자의 움직임도 더욱 더 커졌다. 정말 충격이었다. 곱디 고운 선생님의 보지에는 그 남자의 자지가 마치 개가 홀레붙듯이 박아대고 있었다. 그렇게 박아대다가 남자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얼마뒤에 그 남자의 자지가 선생님의 보지에서 빠져 나왔다. 선생님의 보지엔 온통 허연 풀물투성이였다. 선생님의 그 남자의 자지를 잡더니 입을 빨아주었다. 나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음탕하게, 약간 눈이 풀린듯한 얼굴을 하며 좆물이 묻어있는 남자의 자지를 빨아주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았다.


선생님과 남자가 침대에 누워 얘기를 하고 있고, 나는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왔다. 집으로 뛰어 오는 내내 내 팬티속이 아주 축축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목욕실로 들어갔다. 팬티를 벗자 팬티속은 온통 내 좆물로 범벅이 되었다. 아마도 아까 나도 모르게 사정을 한 모양이다. 나는 팬티를 벗어 빨았다. 그리고 샤워를 하는데 다시 자지가 발기되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서 딸딸이를 치기 시작했다. 내 좆물이 욕실바닥에 뿌려졌다. 아주 많이, 그것도 아주 멀리. 그 날 나는 하루종일 자지가 아파 죽는줄 알았다. 하루종일 자지가 발기되어 있었다. 여름날의 얇은 옷으로는 발기된 내 자지를 가릴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상앞에만 앉아 잇었고, 어두워지자마자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자꾸만 선생님의 나신과 선생님의보지, 그리고 거길 들락거리는 그 남자의 자지가 더올랐고, 나는 결국 또 딸딸이를 치고 말았다.

밤새 잠자기도 어려웠다. 자지가 아플정도로 꼴려 있어 자다가 깨기 일쑤였다. 그럼 또 딸딸이를 치고. 아마도 밤새 10번은 딸딸이를 친것 같았다. 그래도 좆물은 계속 나왔다. 나중엔 아직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귀두를 둘러 싸고 있는 좆껍데기가 헐어서 벌겋게 쓿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여름방학은 엄청난 딸딸이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달여의 여름방학이 끝난고 개학식을 할때 우리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은희선생님이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당시엔 여자가 결혼을 하면 거의가 직장을 그만두었다. 선생님은 개학식날 교단에 올라가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교문앞에 미리 불러 놓은 택시를 타고 가셨다. 물론 그 택시의 옆에는 내가 본 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7개월 후, 선생님이 건강한 아이를 순산하셨다는 소문을 들었다. 모두들 칠삭동이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바로 속도위반이란걸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속도위반이 아주 희귀했다.

뱀다리 : 지금 생각해봐도 그 선생님은 그 남자랑 빠구리를 많이 쳤나보다. 그 당시에 결혼도 안한 총각 처녀가 뒷치기로 하고, 순진하게생긴 처녀가 자지도 빨아 주고. 더구나 자기 보지에서 조금전에 사정하여 조물과 씹물이 묻어있는 자지를 빨아 줄 정도면 둘이 아주 요즘말로 하면 선수급이었나 보다. 당시엔 속도위반도 아주 희귀한 사건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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