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4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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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6,476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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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48부


<손님 환영!!!>, 느낌표가 3개나 찍혀있는 그 옆에는 <3호 갈보집>.
이것이 우리집 대문, 그래봤자 싸리문의 송판에 백묵으로 써 있는 글씨였다.
글씨체를 보면 별로 잘 쓴 것 같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장난 같지도 않다. 더구나 우리집이손님을 받는 집도 아니고 갈보집이라고 쓴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갈보란 더러 들어본 기억으로는 몸을 파는 여자를 말하는 것이다. 금촌리는 물론 읍내에도 그런 여인은 없지만 큰 도시에는 있다고 한다.


낙서 같기도 한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지우지도 않고 우선 집안으로 들어왔다.
집에는 영자 누나와 영미 누나가 건너방에 앉아 있었다.
“누부야, 우리집 대문에 쓰여 있는게 뭐꼬?”
영자 누나야 당연히 볼 수가 없으니 영미 누나를 보면서 물었다.
“어떤 개새끼가 또 지랄쳤구나! 아까도 내가 지웠는데 ...... ”


누나는 내가 보았다는 내용을 묻지도 않고서 표독스럽다고 할만큼 눈을 치뜨면서 대뜸 화부터 냈다.
“퍼뜩 가서 지워라. ...... 아, 그라고 어디 숨어가 좀 지켜 보그라. 어떤 쌍놈의 새끼가 그런 짓을 하는지, 잡히마 똥물을 멕이든지 손모가지를 잘라 버릴 끼다.”
내 질문에는 아무 설명이 없어 아직도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낙서를 지우러 나가기 전에 다시 물었다.


“뭔 일이 있는 기고? 밖에 쓰여 있는 건 무슨 말이고?”
“내 입에 다시 올리기도 싫다! 아아, 내일 학교도 몬 가겠다. 우리집이 이런 꼬라진데 우째 낯짝 들고 다니겠노? 아아, 차라리 일찍부터 공장에 다녔으마 이런 꼴도 안 보잖나.”
여전히 나는 새로 알 것이 없었다. 나도 울컥 화가 치밀었다.
“뭐락도 설명을 좀 해봐라. 그래 혼자 씨부리이 내사 감도 못 잡잖나?”
“궁금하마 느그 잘난 어무이한테 물어봐라. 내 입으로는 말도 못 꺼내겠다.”


영미 누나는 나를 약오르게 하기로 작정을 한 것인지 이 말을 하고 고개를 훽 돌린다. 저나 나나 같은 엄마의 아들 딸인데 ‘잘난 느그 어무이’라는 말도 이상하다.
내가 또 한마디를 하려는데 영자 누나가 나직한 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가족끼리는 우선 모두 용서를 해야 하는기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핏줄이 통한 식구들은 우선 용서하고 서로 위로해야 ...... ”


영미 누나는 잔뜩 토라져 있고 영자 누나는 말을 제대로 끝맺지 않으니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일단 밖으로 나와 물걸레로 대문의 낙서를 지웠다. 하지만 영미 누나의 말처럼 숨어서 다시 낙서하는 놈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 다녔다.
내 또래의 녀석들도, 형이나 누나뻘들도 알고 있는 것이 꽤 있었다. 동네 아낙들은 몇 명이 모여 수군거리다 내가 다가가도 별로 거리낌 없이 말이 오갔다. 나는 퍽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새롭게 알게된 것은 창피하고도 충격적이었다.
엄마를 포함한 금촌리의 달비장사 여인들이 며칠씩 달비를 수집한다고 돌아다니면서 그곳 남자들과 이른바 화냥질, 빠구리를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람이 늘다 줄다 하기도 했지만 현재 금촌리의 달비장사는 7명이다. 그중 누구는 남편에게 직사하게 매를 맞았고 누구는 그 때문에 이혼하기로 결정이 났다는 말도 나돌았다. 


달비는 앞에서도 한번 설명했지만 여인의 머리카락이다.
주로 빗질을 할 때 빠져나온 것이고 쪽을 지거나 땋은 머리를 퍼머나 단발머리로 자를 때는 뭉텅이로 나오기도 한다.
이 머리카락은 가발공장이 수출산업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갑자기 돈 받고 파는 물건이 된 것이다.
특히 한국여인들의 달비는 삼푸 대신 동백기름이나 피마자기름으로 손질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머리카락의 질이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금촌리에서는 대구에서 큰 포목상을 하는 홍명구의 둘째아들이 방직공장과 염색공장을 경영하면서 그 알음알음으로 처음 홍씨네 여인 한두명이 하다가 점점 늘어 한때는 10명까지 된 적도 있었다.
달비장사는 우선 각지를 돌면서 “달비 삽니다.” “달비 파이소.”를 외치며 달비를 수집해서 가발공장이나 달비수집상에게 판다.
그리고 그중 엄마를 비롯한 몇 명은 돌아오는 길에 도매상에서 설탕, 미원, 치약, 칫솔, 비누 등 생활필수품들을 사와서 일반가게보다는 좀 싼 값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파는 것이다.


달비장사는 몇 명이 어울려 고향을 떠나서는 다시 각각이 개척한 지역으로 갈라진다. 한 도시나 읍에서도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가는 식이다.
해가 지면 수집일은 마감되고 다시 모여서 여관비도 비싸 여인숙에서 잠을 자고 아침부터 다시 골목을 도는 식으로 한번 나가면 보통 2~3일씩 걸리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차츰 경험이 쌓이면서 그 마을의 남정네들 얼굴도 익히게 되었고 일종의 요령도 생겼다, 남자들이 저녁을 사고 때로는 함께 술도 마셨다. 그런 관계가 발전하면서 빠구리도 하게 되었다. 여인들은 우선 숙박비와 식사비가 절약되었다.


비용절감이 더 필요했는지 외간남자와의 빠구리가 더 좋았는지, 하여튼 얼마 후부터는 금촌리 달비장사의 대부분이 각 지역마다 고정 애인들을 만들어 그들에게 식사나 술대접을 받고 밤이면 빠구리를 해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젊은 한 30대 달비장사는 임신까지 해서 몇 달 전 장사하려 간다고 나와서 대구의 한 병원에서 낙태수술을 하고 요양을 한 후 오다가 돈을 잃어버렸다고 시침을 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남편은 이미 몇 년 전에 정관수술을 했기에 남편 아기라고 우길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과 뒤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추문으로 얼룩진 이 사건이 마을사람들에게 들통 난 계기는 한 달비장사가 성병(性病)을 마을에 전염시킨 것이 발단이었다,
나는 이번 일로 성병이라는 말도 처음 알았다.
성병은 남녀가 빠구리를 할 때, 그러니까 자지 보지로 옮는 병이다. 성병 환자와의 키스나 손에 묻은 세균으로 전염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빠구리를 하면서 옮는다고 한다.


대표적 성병으로는 임질(淋疾)과 매독(梅毒)이 있는데 임질은 요도, 즉 오줌관에 염증이 생기고 그 병을 가진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눈이 멀 수도 있다고 한다.
매독은 균이 핏줄을 타고 돌아 각종 병으로 발전하고 페니실린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치료제가 거의 없는 무서운 성병이다. 중세 유럽에 매독이 만연해서 왕이나 귀족들도 코가 문드러지고 손발이 짤려 나가며 죽었다고 한다.

 



“임질이군요. 벌써 꽤 날짜가 지났군.”
문상수가 읍내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그의 자지를 훑어보고 진단을 내린 뒤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니, 금촌리에 왜 갑자기 이렇게 임질 환자가 많아?”
“저 말고도 환자가 또 있습니꺼?”
“그럼, 3일 전에 한사람이 오더니 어제는 연달아 두명, 오늘 문씨가 네 번 째야.”
“그기 누구누군데요?”


그제서야 의사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상수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결국 차트를 보며 그 명단을 알려 줬다.
환자의 비밀이나 개인정보보호라는 개념이 아직은 희박한 시절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상수는 우선 집에 와서 아내를 다그쳤다. 정동띠기도 금촌리 달비장사 중 하나였다.
그녀는 처음 펄쩍 뛰며 시침을 뗐다. 그러나 보지를 까고 고름이 흐르는 것을 함께 확인하고 계속 주먹이 날아들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정동띠기는 결국 달비를 사러 다니다 상주에서 한 남자와 자고난 후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남편에게 실토했다.
그러나 어설프기는 하지만 상수의 역학조사(疫學調査)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내가 그 병을 이 마을로 옮겨왔고 자신도 임질에 걸렸지만 그는 아내 말고 다른 여자와 빠구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금촌리에는 그가 아는 것만도 임질환자가 3명이나 더 있는 것이다.


남편의 논리를 앞세운 끈질긴 추궁에 정동띠기는 홍기택이라는 자와 빠구리 한 사실도 털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기택은 상수와 같은 연배고 평소 친하게 지냈던 이웃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3일 전에 읍내 병원을 찾은 임질 환자였다
상수는 칼을 품고 기택을 찾아갔다. 그러나 칼을 쓰지는 않았다.
기택은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빌어가며 자백했다. 웬만하면 딱 잡아뗄 수도 있겠지만 임질에 걸린 사실까지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지난 가을 우연히 들판에서 빠구리를 하게 된 후 가끔 정동띠기와 어울렸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또 다른 임질 환자 2명이 더 있다. 상수는 그들의 이름을 밝히며 의심을 털어놓았다. 아내는 홍기택 말고는 “하늘이 무너져도 다른 남자와는 그런 일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도 병수 엄마가 종일이나 근식이하고 가까운 건 모르겠는데 ...... ”
기택은 머리를 갸우뚱하다 말했다.
“아, 그기 ...... 종일이가 이월띠기하고 얽혀가 그리된갑다.”
이월띠기는 40살 전후의 과부였다. 평소에도 몸가집이 헤프다는 소문이 나도는데 기택은 가끔 그녀와 빠구리를 해오면서 종일이도 그녀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택이 이월띠기에게 임질을 옮겼고 종일은 다시 이월띠기에게서 옮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문근식은 ...... ? 상수는 다시 근식에게 칼을 품고 가 아내와의 관계를 추궁했다.
근식은 펄쩍 뛰었다. 자신도 임질에 걸린 것은 맞지만 아내 외의 다른 여인과는 살을 섞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그는 좀 감이 잡힌 모양이다.
“니 그 칼 좀 도고.”
근식은 그 칼을 아내에게 들이밀며 윽박질렀고 그의 아내는 “죽어도 딱 한번뿐.”이라며 종일과 빠구리한 사실을 실토했다.


대충의 윤곽이 나왔다. 정동띠기가 달비장사에 나갔다가 임질에 걸려 남편과 이웃남자 기택에게 옮겼고 기택이 이월띠기에게 옮긴 것을 종일이 받아가 다시 근식의 아내에게도 옮긴 것이다. 그리고 근식은 다른 보지를 구경도 못했건만 아내에게서 성병을 옮은 것이다.
금촌리에서 은밀하게 벌어졌던 빠구리판은 임질소동으로 그 일부가 밝혀졌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임질 환자가 더 있고 지금도 어떻게 전파중인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정동띠기에서 비롯된 임질이 여러 남녀에게 전파된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 일에 덧붖혀 또 하나 밝혀진 것이 있다.
정동띠기 말고 다른 달비장사 여인들도 외지에서 빠구리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상수가 아내를 닦달할 때 그녀는 남도 마찬가지라고 하면 자기 잘못이 좀 희석되리라고 생각했는지 "같이 간 송산띠기도 상주에서 다른 남자와 잤으며 대부분 다른 달비장사 여인들도 그렇게 해왔다."고 털어 놓았다.
이웃집 남자와 간통을 한 것도 그렇지만 제 여편네 말고 다른 이 마을 여인들도 외지에서 어떤 놈들한테 가랑이를 벌렸다는 것에 분개한 그는 송산띠기의 남편인 홍수인에게 그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수인의 집에서는 대판 부부싸움이 일어났고 실컷 얻어맞고 나서야 그의 아내는 잘못을 시인하면서 정동띠기처럼 역시 "다른 달비장사도 그래왔다."고 덧붖혔다.
결국 이 일은 달비장사의 남편들이 모두 알게 됐고 앞의 다른 집들처럼 남편의 주먹다짐이나 부부싸움이 크게 벌어졌다.
남편이 집에 없는 엄마는 닦달을 면했지만 아버지가 있었다면 우리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전체가 이 일로 술렁였고 그중 웬 좀팽이 같은 달비장사 남편은 분풀이로 우리집의 낙서같이 달비장사들 집에 분필로 표까지 해놓은 것이다.

 



무성한 소문들을 얻어 듣느라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는 안방에 앉아 있었다. 나는 말도 걸기 싫어 외면하고 있는데 엄마 역시 눈길을 주지 않다 나가더니 저녁 밥상을 차려 왔다.
“밥들 무라 캐라.”
엄마의 말에 나는 누나들을 부르러 건너방으로 갔다. 영미누나는 또 눈을 치껴 뜨다 뭐라고 투덜거리더니 아예 집 밖으로 나가버리고 영자 누나와 나만 밥상에 앉았다.


밥을 먹어도 모래 씹는 맛인데 그건 영자 누나도 비슷해 보였다. 그래도 누나는 아직 숟갈도 들지 않는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어무이는 안 묵나?”
“내는 생각없다.”
밥상에 정적과 그보다 더 살벌한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누나와 나는 반그릇도 채 못 비운 채 식사를 마쳤고 엄마는 밥상을 들고 나갔다.


다시 엄마가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냥 서성거렸고 엄마는 벽을 보며 앉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창피하고 당황한 마음 뿐이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같은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무이, 도대체 우찌 된 일이고?”
“뭐가 ...... ?”
“뭐가라이 ...... ? 집안 꼴이 이 지경인데 그런 말이 나오나?”
갑자기 소리지르는 나를 한번 돌아본 엄마는 다시 외면한 채 말했다.
“아~들은 알꺼 없다.”


학교를 끝내고 돌아오면서부터 괴상한 낙서를 보고, 영미 누나의 신경질을 받아 냈고, 다시 내가 알아낸 사실과 소문들에다, 엄마의 이런 태도까지 보게되자 정말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뭐라꼬?”
내 목소리는 한층 커졌다.
“어무이는 내가 아직도 알라로만 보이나? 내가 이래 뵈도 남평문씨의 정수공파 37대 후손이고 종혁씨 고조 할아버지 이래 5대 종손이다! 내도 이 문씨 가문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아야겠단 말이다!”


엄마는 찔끔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침묵 후에 입을 열었는데 말은 더듬거렸다.
“그기, ...... 응, 그래 ...... 나도 문씨 가문 여자다. 하지만 자식들 키우고 멕일라꼬, ...... 혼자 발버둥치며 살다 보이 그런 일도, ...... 그래, 그래가 그런 일도 벌어진기고, ...... 와 갑지기 이래 됐는지 모르지만 내도 앞으로 이 일이 어찌 굴러갈지는 모르겠다.”
이것도 일종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모호한 말들로만 이어져 내용은 하나도 없다.


“그래가 ...... ? 그 가랭이 벌려가며 우리를 키웠나? 그 씹 팔아가 우리를 먹여 살렸나? 우리가 그런 밥 묵고 살아온 기가?”
나도 모르게 직설적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미 말은 뱉아 낸 것이고 그 여파가 분노에 부채질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영도야!”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은 갑자기 슬퍼 보였다.


“내가 우정 그럴라고 한 것도 아이고, ...... 니도 아는 것처럼 느그 아부지는 나그네 주막 들리듯 가끔 집에 오면서 가족들 책임도 안지고, ...... 내는 그래도 우리 자식들 굶지는 말아야지, 헐벗지는 말아야지 카는 마음에 발버둥 치다 그런 일도 일어난 기다.”
갑자기 차분해지는 엄마의 말에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그러나 그 다음 말에 나는 머리가 돌아 버렸다.
“그라고 느그 아버지, 나한테 하는 것 봤제. 소 닭 보듯, ...... 나도 여자인기라.”


“뭐라꼬?”
나는 한껏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노려보았다. 엄마도 내 돌변한 시선을 느꼈는지 두손을 바닥에 대고 몸을 뒤로 젖히면서 겁먹은 표정이었다.
“니, 니, 와 그라노?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여자라서 그렇다꼬? 그래, 좆맛을 못봐가 씹구멍이 벌렁벌렁하나? 오야, 그라마 나락도 해줄게.”
“야가 와 이카노?”
 
엄마는 급히 몸을 사렸지만 달려들며 와락 앞섶을 제쳤다. 우드득, 단추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런닝셔츠가 드러났다. 그것도 손으로 제끼자 맥없이 찢어져 버린다. 흰 빨래라고 자주 양잿물에 삶아서 더 맥이 없는 것 같다.
엄마의 젖통이 출렁거리며 늘어졌다. 포도알만한 젖꼭지가 달렸고 가슴 양옆으로 쳐진 젖통은 4자녀를, 아니 죽은 형제들까지 치면 6명의 아이를 낳고 키운 세월의 흔적이다. 특히 나는 철이 든 후에도 그 젖을 빨며 안식을 얻었었다.


그러나 그 연민과 지난 날의 상념도 잠깐, 저 젖통을 어떤 놈들이 주무르고 빨아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며 나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씨팔, 문씨 가문 여자가 아무 놈이나 좆을 받아드리는 것은 내가 못참겠다 이기다! 그러이 내가 대신 박아 줄게.”
엄마는 두팔로 방바닥을 댄 채 엉덩이를 움직이며 뒤로 물러섰다.
“이카지 마라! 영도야, 이카지 마라! 내가 잘몬했다! 그래, 내가 잘몬했다!”


엄마의 처절한 비명은 애원조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내 행동에 자제력을 상실했다.
엄마를 밀어붙이자 그대로 자빠져 버렸다. 힘이 불어난 것인지 분노가 억센 힘으로 나타난 것인지 하여튼 엄마는 그대로 자빠졌다.
나는 발작적으로 엄마의 치마를 들어 올리고 팬티를 내렸다. 광목으로 만든 사각형의 팬티가 엉덩이에 걸렸지만 거칠게 벗겨 내는 데는 장애가 되지 못했다.


“아아, 니가 와 이라노? 내가 잘몬했다. 쪼매만 참고 말로 하자. 어무이가 잘몬했다. 으응? 잠깐만 어무이 말 좀 들어봐라.”
털이 수북한 보지가 드러난 상황에서도 엄마는 자신이 나의 엄마임을 내세우며 다음 행동을 막으려 두팔로 내 몸을 밀어내며 안간힘을 썼다.
“어무이? ...... 그기 뭐 그리 대단하노? 니는 내 어무이 되기 전부터 이놈 저놈 좆이 드나든 거 다 안다.”
“뭐라꼬? 그기 무슨 말이고?”


“어무이는 이집에, 문씨 가문에 시집오기 전부터 빵꾸가 난 여자 아이가?”
“뭐라꼬? 그기 무슨 말이고?”
엄마는 똑같은 말로 되풀이해 물었다.
“아부지가 다 말해줬다.”
“느그 애비가 뭐라 캤노?”
“어무이가 이집에 올 때. 이미 빵꾸가 난 여자라 재수도 없고 정도 안든다고 ....... ”


나를 막으려던 엄마의 손에 갑자기 힘이 빠진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작자가, ...... 아이고, 내 팔자야! 지는 그래 팔랑거리며 살면서, ...... 자식한테까지 그런 말을 ...... 아이고, 내 팔자야!”
엄마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죽은 사람마냥 아무 저항이 없었다. 다만 훌쩍이지도 않은 채 양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 내렸다.


런닝셔츠가 찢겨진 채 드러난 젖가슴이나, 치마는 올려지고 수북한 털이 덮여있는 보지가 내 앞에 펄쳐진 것은 정말 비극적인 풍경이었다.
더구나 그 풍경은 모두 아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제 반항이나 수치감마저 상실한 엄마는 슬픔과 절망만 남은 살아있는 시체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도 잠시 추춤했으나 저 보지에 이놈 저놈이 박아댔단 말이지, 하는 생각이 떠 오르자 다시 분노가 솟구쳤다.


나도 급히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내리자 한껏 성을 낸 자지가 툭 튀어나왔다.
“오야, 내가 해줄께! 씨팔! ...... 어무이, 니가 여자라서 어떤 놈하고라도 씹을 해야 한다꼬 ...... ? 그건 이집 5대 종손인 내가 인정 몬한다. 그러이 씨팔, 내가 박아줄게”
“아아, 내 팔자가 ...... ”
혼잣말처럼 그 말만 중얼거리며 엄마는 여전히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허벅지를 벌리고 자지를 집어 넣으려 했다.


“악!”
눈을 크게 뜨며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내려다보니 엄마의 보지는 메말라 있었다.
“와 이렇노? 이놈 저놈 좆맛 볼 때는 안 이랬잖나? ...... 5대 종손 좆은 맘에 안드나?”
“흑!”
엄마는 그 한마디만 하며 두손으로 눈을 가렸다.
나는 누구에겐가 들은 말처럼 두손바닥에 침을 뱉어 자지에 문지르고 다시 박았다, 자지는 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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