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집안 이야기, 그 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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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2,547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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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그 전 (2)>

  국민학교 6학년 말이 되자 하루는 담임 선생님이 그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지만, 담임 선생님은 상급학교 진학 문제로 상의할 것이 있다고 꼭 모시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엄마에게 그대로 이야기하였다. 엄마는 그 다음날 부대에 나가지 않고 학교에 왔다. 그는 그 때 그의 엄마가 그렇게 예쁜 줄 처음 알았다. 학교의 동급생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엄마를 쳐다 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이콥이 미국에 가기 전 엄마를 위해 여러 가지 화장품과 옷가지를 선물로 주고 간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국민학교 6학년이 끝나는 때 그는 서울 종로에 있는 K 중학에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는 정작 전국에서 수재들만 모인다는 이 중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것은 예쁜 엄마와 헤어진단 생각이 그를 슬프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의 성화에 못 이겨 시험만 본다고 하였는데, 덜컥 합격이 되고 말아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엄마는 “그 학교가 어떤 학굔데 안가?”하면서 그 학교에 가면 무슨 소원도 다 들어줄 것처럼 이야기해서 하는 수 없이 그 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가 처음 다닌 학교는 그의 집에서 다시 부천 방향으로 둔덕산을 넘어 위치한 부천 북 국민학교였다. 그는 매일 걸어서 다녀야 했다. 학교까지는 아무리 안 걸려도 그의 걸음이라도 한 시간 이상 걸렸다. 그러나 어린 그는 거의 뛰다시피 잰 걸음으로 이 학교에 갔는데, 나중 4학년이 되자 그의 집 앞 쪽에 동 국민학교가 생기는 바람에 그리로 다니게 되었다.

 

  사실 당시 부천이면 서울도 아닌 시골의 국민 학교에서 서울 K 중학을 갔던 애는 역사상 한 아이도 없었다. 일제시대 생긴 북 국민학교에서도 서울에 가서 시험을 본 애들은 많았지만 정작 K 중학교 간 애들은 없었다. 그런데 동 국민학교에서 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 서울에 있는 중학교, 그것도 K 중학교에 간 것이었다.

  이 중학교는 전국에서 수재 중의 수재들만 온다고 하는 공립학교였다. 그가 그 학교에 간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나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던 그에게 있어서는 별반 대수로운 일이 못되었다. 중학교는 공립이기 때문에 공납금은 매우 쌌지만, 엄마가 미군 부대에서 버는 돈만으로는 공납금을 충분히 낼 처지가 못 되었기 때문에 그는 자취를 하다시피 해 가며 쓸 돈은 스스로 벌어 써야 했다.

 

  무슨 돈인지는 몰랐지만 그의 엄마는 학교에는 조금 많이 떨어져 있는 명륜동 산 비탈에 작은 달동네 집 한 칸을 전세로 얻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이콥이 미국에 가면서 약간의 달러를 두고 간 것을 잘 두었다가 환전하여 목돈이 된 것으로 그가 살 전셋집의 종잣돈이 되었던 것 같았다.

 

  이곳에서 그가 학교를 가려면 창경궁 쪽으로 내려가 다시 창덕궁 골목으로 돌아가 화동에 있는 k 중학교엘 가야 했다. 그 거리는 북 국민학교 갔던 거리와 비슷했지만 그는 이미 육체적으로 어른이 다 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떨 땐 가회동 쪽으로 나와 중앙고등학교 옆으로 빠져 성균관대학의 허름한 철망을 훌쩍 넘어 대학 교정을 가로질러 명륜동으로 그냥 빠지기도 했다. 이 길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지름길인데다가, 산길이어서 운동하는 그가 자주 애용하는 길이 되었다.

 

  그는 주로 그가 살던 동네인 와룡공원 가까이 있는 명륜동 산동네에 살면서 신문배달을 하였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신문을 들고 명륜동 한 바퀴를 돌아다니면 겨울이라도 온 몸에 땀이 흘렀다. 그러면 찬물에 수건을 적셔 겨드랑이를 비롯한 온 몸을 닦아내면 한 겨울이라도 몸이 후끈 거렸다.

  명륜동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그가 나갈 마땅한 도장(道場)이 없었던 것이었다. 아니 있었어도 돈 내고 도장 다닐 처지는 못되었기에 도장에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성균관 대학의 운동장과 성균관 뒷산에서 새벽 시간에 운동을 하곤 하였다. 부천 집에 가면 여전히 퀀셋 막사에 매트레스가 깔린 도장이 있어 운동하기에 좋았다.

 

  중학교 1학년 여름이 되었다. 그 때 그는 이미 170cm를 넘고 있었고, 몸 무게는 60kg정도였지만 여전히 성장하는 중이었다. 한 학기만의 학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가 반겨 주었다. 그 때 만으로 열 한 살이 되었던 그의 여동생은 그를 너무나도 반겨 주었다. 물론 엄마도 반겨주었다. 그러나 예전만큼 살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 그가 이미 성인의 몸집으로 부쩍 자랐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의 엄마는 여전히 미군 부대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진심을 말하자면 엄마가 부대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엄마가 탐욕스러운 돼지 떼 속에 던져진 청초한 백합화 같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아빠가 없으니 엄마가 부대에 다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중학생이 되고 보니 젊고 예쁜 그의 엄마가 남자들만 바글거리는 부대에 나가는 것이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군인이라면 계급이 높건 낮건 상관없이 치마만 두르면 누구라도 껄떡대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당시 상황으로서는 여자로서 예쁜 것이 죄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해 봄에서 여름으로 갈 무렵 갑자기 엄마가 부대를 그만 두게 되었다. 그와 아울러 김 중사 아저씨도 그의 집에 가끔씩 드나들던 군인들도 모두 사라졌다. 물론 김 중사 아저씨는 아버지가 없어진 후 그의집에 더 이상 들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필요할 경우 며칠 씩 퀀셋 막사에서 다른 군인들과 함께 기거하곤 했는데, 그 역시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엄마가 약간 술에 취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엄마는 붉어진 얼굴로 한숨을 쉬듯 그에게 말하였다.

“너에게 이런 얘기 해서 알아들을지 모르겠다”고 하며 시작한 이야기는 부대장으로부터 더 이상 아버지가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기별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모종의 임무를 띄고 어디론가 갔는데, 거기서 그만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말로는 행방불명이라 했지만 그건 죽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엄마가 이 일로 매우 낙심하고 슬퍼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까지 그의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엄마는 아버지를 굳게 믿었고, 아버지는 엄마에게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때 그의 엄마 나이 갓 서른이었다!

  그는 엄마에게 그를 믿으라고 말했다. “엄마, 아빠가 안 계시면 날 믿으면 되잖아”

  그러면서 난 가슴아파하는 엄마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만으로 겨우 열 세 살의 중학교 일학년의 소년일 따름이었다. 아직 그의 엄마가 믿을만한 나이가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행방불명의 이유로 그가 살던 부천 둔덕산 자락의 집과 그 옆의 채소밭, 퀀셋 막사와 도장으로 쓰이던 차고 등은 그냥 쓰도록 허락해 줬다는 것이었다. 즉 부대에서는 국유지인 그 땅을 아주 헐값으로 행불자의 배우자로서 엄마 명의로 불하를 해주었던 것이었다.

 

  그 후 엄마는 마치 농사꾼처럼 채소밭을 넓혀가며 농사를 지었다. 채소밭에서 나오는 채소를 부천 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연명해 나갔다. 예쁜 엄마가 낮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밭에서 일하는 것은 나이어린 소년에게도 안쓰러웠다.

 

  소년은 여름방학 도중 계속하여 도장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잠도 그냥 도장의 매트리스 바닥에서 잤고, 도장에 그냥 쓰던 작은 나무 책상에서 공부도 하였다. 중학교 1학년 수준의 공부는 아주 쉬웠다. 이 때 처음으로 그는 제이콥이 미국에 간 것이 아쉬웠다. 만약 제이콥이 그의 곁에 있었더라면 소년은 더 높은 수준의 어학 공부는 물론 다른 공부도 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하루는 그가 도장에서 아침부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퀀셋 막사의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소년은 무심코 막사의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그 때 지붕을 덧 이은 양철과 양철 사이에 끼어 있는 듯한 무언가가 그의 눈에 띄었다.

 

  보통 때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하였으나 비오는 날이어서 오히려 눈에 띈 것이었다. 나무 책상을 갖다놓고 그것도 모자라 그 위에 나무 걸상을 올려놓고도 까치발을 한 후에야 겨우 그것이 손에 쥐어졌다. 그곳에 손을 넣으니 오히려 그곳은 마치 비밀 서류를 넣어놓기 위해 마련한 공간같이 움푹 패어 있는 것이 꽤 상당한 분량의 문서가 손에 잡혔다. 그건 마치 접힌 가죽 문서 같은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 보았다.

 

  앞 표지에는 붓으로 후려갈려 쓴 듯한 글씨가 한자로 ‘정씨(鄭氏) 가성(家姓)’이라는 책자였다. 당시는 국민학교 4학년이 되면 국어책에 한자가 나왔다. 게다가 그는 삼국지와 수호전을 국민학교 5학년 시절부터 읽었기 때문에 웬만한 한자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잘 알았다. 성씨와 가성 정도의 한자는 초급 수준이었다. 중학교 국어책에는 물론 한자가 섞여 있었다.

 

  먼지를 털어 이 책의 앞장을 넘겨보았다. 거기에는 사람의 이름만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무슨 이름이 그렇게 많은지 온통 사람 이름이었다. 그제서야 그는 ‘가성(家姓)’이 ‘족보(族譜)’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걸 소중하게 여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툭툭 먼지를 털었는데, 그 속에서 무언가 편지 같은 것이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미군들이 주로 쓰던 풀 스카프 용지를 네 번 접어 만든 그 종이를 펼쳐들면서 본능적으로 이건 아버지가 남긴 편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편지를 펼쳐 들었다. 거기에는 빼곡하게 여러 가지 내용이 적혀 있었다.

 

  편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로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아들 용(庸)에게, 네가 이 편지를 볼 때면 이미 너는 어른이 되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어른만큼 키가 큰 소년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 책을 숨겨 둔 곳은 어른이 되지 않았거나 그만큼의 키가 되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곳에 숨겨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이것을 발견하였다는 것은 운명이다. 그것은 이미 네가 네 운명을 개척해 나갈 힘이 생겼다는 뜻도 된다. 아마 너는 이 도장에서 많은 운동을 하면서 이곳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네 키는 그만큼 자랐고, 힘도 그만큼 생겼지만 또 그만큼 무술에 대한 갈급도 있을 것이다. 내가 숨겨둔 다른 곳에서 너에게 줄 하나의 선물을 찾길 바란다. 아버지 씀”

 

  편지의 내용을 생각 밖으로 단촐하였다. 그러나 다른 곳에 숨겨 둔 또 하나의 선물이 무엇인지 기대가 되었다. 편지의 밑에는 알기 쉽게 그려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약도인 것 같았는데, 큰 산이 있고 계곡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둔덕산 전체를 그린 그림이었다. 어려서 수없이 뛰고 놀던 둔덕산의 구석구석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바라 그림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림의 가운데에는 큰 나무가 그려져 있었고 그 나무 밑에 X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X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가서 그곳을 뒤져봐야 할 것이었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날이 저물기 시작하였다. 그는 얼른 그곳을 찾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이미 어두워진 산에 올라갈 수는 없었다. 도장에서 나온 그는 저녁을 먹으러 집안으로 들어섰다. 어느새 부쩍 자란 그의 여동생이 반겨주면서 말하였다.

 

  “오빠, 땀이나 딲아, 아으 - 땀 냄새!”

  운동을 하면 당연히 땀이 난다. 그것도 하루 종일 몰두하다보면 쉰 냄새가 진동한다. 그러나 본인은 잘 모른다. 마당에 있는 펌프로 가서 큼지막한 양은 다라에 물을 품어 올렸다. 그리고 웃통을 훌훌 벗은 채 팬티 차림으로 바가지에 물을 떠서 머리로부터 부어 내렸다. 순간 차가운 기온이 오싹하고 찾아왔지만 이내 서늘해진 것이 기분이 좋았다. 비누칠을 하고 다시 바가지로 물을 부어 내렸다. 이내 몸에 비눗기가 빠지고 청량한 기운이 감돌았다. 차가운 기운으로 그의 불알이 오그라뜨렸다. 현관에서 그의 동생이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오빠, 여기 -”

  그는 동생이 주는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대충 털어내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 근싸한데 -- ”

  그의 여동생도 소년의 몸매를 근사하다고 말하자 갑자기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여동생은 그로부터 수건을 다시 받아들고는 그의 손이 미치지 못한 등 뒤를 닦아주었다.

  “오빠 등이 너무 딱딱한 것 같애!”

  여동생은 그의 등 뒤를 두드렸다.

  그는 갑자기 이 착한 여동생을 껴안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그의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알싸하고 맛있는 김치찌개 냄새가 났다. 그의 입에 갑자기 침이 고였다. 그의 엄마가 등을 돌리고 있다가 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팬티 바람인 그를 바라보았다.

  부대에서 입던 스커트 차림에 앞치마를 두른 엄마의 모습을 보자 너무 예쁜 엄마의 모습에 당황하였다.

갑자기 그는 팬티 바람으로 엄마 앞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부끄러웠다.

 

  얼른 그의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오랜만에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그는 방으로 들어가 그의 아버지가 쓴 편지 생각을 하였다. 정씨 족보를 발견한 것과 아버지의 편지를 발견한 것은 당분간 엄마나 동생에게 비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지 그들에게 알리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원치 않는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새벽 그는 아침 운동 겸 둔덕산에 올랐다. 본래 집으로부터 약 삼,사십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거의 뛰다시피 하여 산의 정상에 올랐다. 비가 개인 7월 하순의 여름 야산은 싱그러웠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나무는 산의 정상에 심겨진 큰 떡갈나무였다. 천천히 나무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어디에도 X자 표시가 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곰곰이 떡갈나무 주변을 살피던 그는 그제서야 X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헬기 착륙장으로 만들어진 장소에 둥그런 원 가운데 열십자 모양의 돌들이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그건 X자가 아니라 열십자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는 열십자 모양으로 놓인 돌들을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가운데 가장 큰 돌을 들춰냈다. 그리고 야트막하게 흙이 깔려 있고 그 안에 양철 상자가 나타났다. 주위를 살피고 아무도 없는 것을 다시 확인 한 후 양철 상자를 꺼냈다.

 

  비가 왔던 이 여름의 어스름한 새벽에 누가 이 야산 정상에 오겠는가? 그는 양철 상자를 꺼낸 후 주변의 흙을 가져다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곳을 덮어 버렸다. 한 번의 비가 더 오면 이 흔적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그 양철 상자를 들고 순식간에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퀀셋 도장으로 들어갔다. 숨을 죽이며, 그의 아버지가 남긴 그 양철 상자를 열었다.

 

  거기엔 또 다른 책이 들어 있었다. 그 책은 매우 오래된 책자로 보였는데, 제목이 한자로 되어 있었다.

  ‘헌원씨내가운용심법(軒袁氏內家運用心法)’이라고 써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표지를 들추니 첫 페이지에는 앉은 채 숨을 쉬는 법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들의 대부분이 붓으로 쓰여졌고, 한자로 쓰여졌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역시 이곳에도 그의 아버지가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이렇게 써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미 네가 저번의 편지를 보았다면 이번 선물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나는 네가 먼저 ‘헌원씨 내가 운용심법’을 익힐 것을 권한다. 이 심법은 모두 5단계로 되어 있는데,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네가 이해하기에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내가 그 옆에 연필로 번역을 해두었는데 자세히 보면 보일 것이다. 보이지 않으면 네가 한문을 스스로 익혀서 공부하면 어느 정도 터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글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도 그려져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예로부터 헌원씨 내가기공을 완벽하게 터득하면 불로장생의 금강불괴의 몸을 만든다는 전설도 있으나 믿을 것은 못된다. 그러나 네가 이 호흡법을 완벽하게 터득하면 건강에 매우 좋을 것이란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나는 이 책을 구월산 어느 암자에서 돌아가신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그러나 나도 이 호흡법을 다 터득하지 못하였고 약 3단계의 성취만 있었다. 너는 어려서부터 명석하고 강건하니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정진한다면 분명히 나 이상의 성취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용맹 정진하길 바란다. 아버지 씀”

 

  역시 이 편지도 저번 편지 못잖게 간략했다.

  그런데 그 책자 아래에는 무슨 편지 뭉텅이 같은 것이 잡다하게 깔려 있었다. 얼핏 보니 아버지가 엄마에게 보낸 연애편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중 하나를 꺼내 읽다가 보니 너무나 음란한 표현이어서 깜짝 놀라 얼굴이 붉어져 편지는 나중에 읽어 보기로 하고 먼저 심법책을 골몰하여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그가 본 엄마에게 쓴 아버지의 편지는 미군 부대에서 본 펜트하우스나 플레이보이지에 나오는 표현 이상의 것이었고, 나중에 보니 그의 아버지가 쓴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당장은 덮어 두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였다.

 

  여름방학은 그렇게 흘러갔다. 중학교 일학년 공부가 너무 심심하던 차에 한문 공부와 심법 공부는 충분한 그에게 소일거리와 함께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7월 하순에 발견한 이 책은 8월 한 달 내내 그에게 좋은 일거리가 되어주었다. 마침 새롭고 왕성한 독서 욕구와 새로운 학문에 대한 갈증을 달래기에는 그만한 책이 없었다. 정용은 시내 책방에 나가 한문을 이해하기 위해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이란 커다란 중고 사전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써놓은 깨알 같은 해설과 함께 잘 모르는 글자들을 열심히 번역해 보았다. 그 아버지의 해설은 한문을 이해하고 심법을 이해하는데 마스터 키와 같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8월 한 달을 둔덕산을 뛰어 오르고 내리며, 집의 도장에서 헌원씨 내가운용심법을 단련하고 나자 9월 초순이 되면서 단전 아랫배에 조그마한 덩어리가 생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심법에서의 호흡 방법은 복식호흡과 비슷하였지만 그보다는 단전호흡의 일종이었다. 그가 호흡할 때마다 생기는 그 덩어리는 그의 의지가 발동하는대로 조금씩 움직여 주었다.

 

  9월이 되어 다시 그는 서울로 돌아왔다. 아침마다 명륜동과 가회동을 오가며 신문배달을 하였다. 처음 50부로 시작하였던 배달 부수가 점차 늘어 200부 가까이 되어 제법 용돈으로도 충분한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수업료를 내거나 저축할 여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그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여전히 중학교 일학년에 불과하였으니까!

  이 때 그의 아침 운동은 성균관 뒤뜰에서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된 데에는 한 편의 사건이 발생함으로 이루어졌다. 학교가 파하게 되면 그는 별 일이 없으면 가회동 길을 올라가 중앙고등학교 쪽문으로 들어가 뒤편으로 나가는 작은 길을 택해 성균관 대학으로 넘어가는 철망이 있는 남들이 다니지 않는 샛길을 택해 명륜동으로 들어가곤 하였다.

 

  그 날은 수업이 늦게 끝난 데다가 도서관에서 밀린 공부를 하고 늦게 학교를 나섰는데,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가회동을 비롯한 북촌의 한옥들은 대부분 부잣집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 날에는 사람들은 인적이 일찍 끊기고 지나가는 행인이나 남의 일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져 있는데다가 갑자기 쌀쌀한 가을 날씨로 사람들의 인적이 끊어진 뒷길을 걷는데, 웬 여자가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었다. 별 관심 없이 걷는데, 갑자기 뾰족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여자가 어떤 젊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동네 깡패들이 한 외국인 여자를 겁탈하려는 것인지, 돈을 뺏으려는 것인지 소리를 지르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좀 더 가까이 다가서자 한 청년이 한 소리 했다.

 

  “얌마, 너 관계 없으면 꺼져! 괜히 얻어터지지 말구”

  그러나 마음에 이미 이 일에 참견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므로 겁내지 않고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

  “이 새끼가 말을 안들어 너 맞구 싶냐!”하면서 한 청년이 손으로 머리를 치려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살짝 주저앉자 그의 주먹은 내 머리 위로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어쭈 요 좆만한 새끼가 피해?” 하면서 냅다 발길질을 해왔다.

 

  그 양아치 같은 녀석은 처음 주먹질을 실패한 다음이기에 매서운 발길질로 그를 겉더 찼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무술 고단자들과 숱한 대련을 해 왔던 그는 이 청년의 발길질이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손을 들어 밑으로 들어오는 그의 발길질의 중단을 향해 매섭게 내리쳤다. 청년은 “으윽”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그러자 외국인 여자를 괴롭히던 두 사내 녀석이 친구가 꼬꾸라지는 모습을 보자 여자를 괴롭히던 것을 그만 두고 동시에 그를 향해 내달려 왔다. 그런데 그 순간 두 녀석은 한꺼번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헐렁한 한복 적삼을 입은 남자가 청년 두 녀석이 중학생 교복을 입고 있던 그에게 덤벼들자 그만 손을 쓰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한 녀석은 그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그만 쓰러져 있는 친구들을 외면한 채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한복을 입은 남자가 먼저 정용에게 말을 걸어왔다.

  “넌 어디서 그걸 배웠니?”

  정용은 딴 곳을 쳐다보며 멀뚱거리며 그 남자가 뭘 말하는지 못 알아듣는 척 했다.

  “청도관이나 흑추관 같은데서 배운 것은 아닌 것 같고 -- 어디서 그런 손 쓰는 법을 배웠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그는 한복 입은 남자에게 뭔가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필요를 느꼈다. 그 남자는 정용이 딱 한 번의 손을 내지른 것을 알아 본 것 같았다.

 

  “우리 아버지한테 -- 조금 배웠어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래? K 중학생, 너 운동 좀 하지? 아침에 운동하려면 성균관으로 한 번 와 보지 않을래?”

  한복입은 남자는 그가 k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말을 걸면서도 휘적거리며 중앙고등학교 가는 길로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남자는 성균관 대학과 주변의 산길과 뒷길을 아주 잘 아는 사람 같았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옆에 있던 외국인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머 --- 댕큐 -- 댕큐 --- ”

  여자는 한국말을 익숙하게 잘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천천히 제이콥으로부터 배운 영어로 외국인 여자와 대화를 하였다. 여자는 한편으로는 한국어로 한편으로는 영어를 쓰면서 말을 걸었다.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제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제인 잭슨. 그도 마지못해 대답했다.

 

  ‘정용이에요.’

  그녀는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는 미국의 공무원이었다. 깡패들이 그녀를 만약에 어떻게 해서 그녀가 해를 입었다면 그건 아주 중대한 범죄가 될 뻔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깡패 녀석들이 한복을 입은 남자에게 쫒겨난 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인 셈이었다.

  불빛이 환한 곳에서 그녀를 보니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이었다. 이 동네 젊은 양아치들이 넘보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여자는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이쪽으로 오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저쪽 길로 가야 하는데 이 쪽 길이 지름길이 아닌가 싶어 왔는데 그만 불량배를 만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가 살던 곳을 일러 주었다.

  삼청동이었다. 신문을 돌리는 바람이 이 근방의 지리를 빠삭하게 아는 고로 걸어서 한 이십분만 걸으면 된다고 하자 이 금발의 미국 여자는 그에게 에스코트를 요청하였다.

 

  그녀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그를 보고 매우 신기해 했다.

  왜 안 그렇겠나? 1960년대 초 대한민국은 나라로서의 수준도 갖추지 못하고 남의 나라의 원조에 기대어 연명하던 불쌍한 국가였었다. 그 중에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외교관 수준의 공부를 한 사람을 빼놓고는 아주 특수한 부류의 사람만 가능한 언어였다.

 

  그런데 겨우 중학생이 영어를 자유자재로 한다는 것은 아주 신기한 일이었다. 간단하게 어려서부터 제이콥에게서 영어를 배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용기를 낸 행동에 그의 대해 매우 탄복했다고 말했다.

 

  둘은 나란히 걸어가면서 여러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휴일에는 아르바이트로 종로에 있는 유명한 영어 학원에서 강사로 일한다고 하였다. 또 그러면서도 특별히 돈 많은 집안의 여자들만을 위해 따로 과외로 수업을 하기도 하는데 토요일 오후만 하는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라면서 그의 실력이면 수업 시간에 끼워줘도 되겠다며 같이 영어 수업을 도와주기를 원했다.

 

  특히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실전적인 생활 영어이므로 제이콥에게서 배운 일상 얘기를 통한 영어가 아주 쓸모 있는 영어라고 극찬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같이 걸어가면서 혼자 산다는 것을 알자 자기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초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와 같이 저녁을 먹는 것은 이미 시간이 늦어 불가능해졌고, 우선 삼청동까지 바래다주기로 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였다. 이십분을 걸어 그녀가 원하는 영어 과외 공부하는 집에 도착하였다.

 

  집에 들어가기를 권하였으나 일단 완강히 거부하자 그러면 다음 주 토요일 오후 시간에 이 집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그녀의 부탁이 너무 간곡하여 그것마저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아 그 다음 주 토요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되돌아서 성균관 대학 쪽으로 향하였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으나 이런 길에 익숙한 터라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삼청공원 앞을 지나 감사원 방향으로 다시 중앙고 앞으로 순식간에 내달았다. 그리고 익숙한 중앙고등학교 뒷담길을 뛰어넘어 창경궁의 뒷담을 끼고 돌면서 성균관 대학교 언덕을 올라섰다가 이내 명륜동 골목길로 들어섰다.

 

  명륜동 산비탈 작은 전셋집에 도착하자 온몸에 땀이 흥건하였다. 옷을 벗고 마당으로 나가 펌프에서 물을 길어 팬티 바람에 찬물을 온몸에 확 끼얹었다. 아스라한 찬기가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름이 지나 머리에 김이 무럭무럭 솟아 올랐지만, 펌프에서 바로 길은 찬물을 뒤집어 쓰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여름 내내 헌원씨 내가 기공의 호흡법을 계속한 터라 그런지 몰라도 펌프에서 갓 길은 찬물이 별로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새벽이 되어 눈을 번쩍 뜨니 네 시가 좀 넘어 있었다.

  신문돌리기는 아직 한 시간여 남아 있었다. 갑자기 어제 만난 그 이상한 적삼을 입은 남자가 생각났다.

  “운동하려면 성균관으로 나와!” 어쩐 일인지 그 남자의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렸다.

  어차피 일어났고, 성대 운동장 한 바퀴 도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옷을 주섬주섬 입고 운동장으로 나섰다. 명륜동 골목에서 성대로 들어가는 것은 굳이 정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정문가 가까이 있는 성균관으로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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