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집안 이야기, 그 전(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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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9,334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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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 이야기, 그 전(42)

 <42. 당랑권 >

 정용은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그의 옆엔 삼청동 마나님이 편하게 미소를 띠며 잠들어 있었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그의 입가에도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아침에 부대 앞에서 엄마를 보내고 서울역에 내려 신세계로 달려가 마나님의 임산부용 옷과 귤 한 박스를 사가지고 들어간 시간이 약 오후 한 시나 두 시 정도 됐을 대낮이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누나들이 오기 전까지 무려 서너 시간을 마나님과 온 방을 헤매며 질탕하게 씹을 해댔다.

 

 거실부터 시작한 그들의 씹은 곧 안방으로 이어졌는데, 안방의 마나님 침대에서 씹을 하던 둘은 다시 서재로 나왔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가 봄방학 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의료용 싱글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물론 마나님과 정용은 홀라당 벗은 상태였다.

 정용은 마나님이 풍만하고 탱탱한 하얀 자신의 젖을 가리지도 않은 채, 부끄러움도 모르고 덜렁덜렁 흔들며 돌아다니는 것이 보기만 해도 좆이 꼴렸다.

 

 게다가 이제 아랫배가 어느 정도 튀어나와 누가 봐도 애기를 밴 둥근 아랫배가 보이는데, 마나님은 아기가 태동(胎動)을 한다면서 그에게 서슴없이 만져보라고 하지 않는가?

 옷을 입고 겉으로 보기에는 티가 잘 나지 않았는데, 옷을 벗고 보니 마나님의 몸매는 눈에 띄게 변하였다.

 “얘, 그거 -- 겉으로 보면 5개월까지는 잘 몰라 -- ”

 마나님 이야기는 5개월 이후부터 눈에 띄게 커진다는 것이다.

 

 마나님은 자신의 손으로 정용의 손을 잡아 끌며 아랫배로 가져간다.

 정용이 마나님의 아랫배를 만지면서 그녀의 젖을 보니, 젖무덤 전체에 실핏줄이 파랗게 드러나 보인다.

 “얘, 그건 --- 아기가 젖을 먹도록 변하는 거야 --- ”

 마나님은 유방이 커지면서 그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혈액량이 늘어나 혈관이 파랗게 드러나 보인다고 말한다.

 정용이 마나님의 젖꼭지를 만지자 마나님은 “아야 --- 앙 -- ”하며 앙탈을 부리는 것 같이 신음한다.

 “얘 --- 애를 가지면 젖꼭지가 아주 예민해지는 거야 ---- ”

 

 마나님은 그러면서 싱글 침대를 이용해 “그거 뭐 추나((推拿)인지 요법(療法)인지 한번 해 보면 어떠냐?”고 묻는다.

 정용은 마나님의 치밀함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냥 침대는 너무 푹신해서 자꾸 움직이지만, 의료용 침대는 매트리스가 단단하여 쉽게 움직이지도 않고 매트리스를 조정하면 한쪽이 올라가기도 해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들이 움직이기 편한 그런 구조였다.

 

 아마 마나님도 임신 개월 수가 늘어나면 움직이기 어려운 몸을 생각하여 이런 침대를 들여놨나 싶었다.

 정용이 의료 침대의 매트리스를 만져보자 마치 둔덕산 도장의 매트리스처럼 단단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마나님의 배는 이제 서서히 D라인을 형성하려고 자릴잡고 있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허리가 아픈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정용은 마나님을 엎드리도록 해 놓고 어깨부터 다리까지 전체적으로 마사지를 해 나갔다.

 그의 마사지가 임신으로 인한 요통에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전체적으로 좋으니 임신부에겐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추나요법을 시현한 것이지만 그로서는 어떤 효능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마나님이 좋아하니 추나술을 해주는 것이지만 정작 정용 자신은 받아 본 일이 없으니 효과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마나님은 정용이 그 효과를 모른다는 것이 더 즐겁다.

 그래서 마나님은 정용을 골려댄다.

 “얘, 니가 마사지해 주는 거 --- 추난지, 추년지 --- 그거 진짜 좋은 거야 -- 임산부에겐 더 말할 나위도 없어!!!”

 

 임산부는 아기를 가짐으로 어쩔 수 없는 요통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헌원심법의 추나술은 기본적으로 심법을 익힌 자가 시술을 받는 자의 명문혈에 자신의 기(氣)를 불어 넣어주며 시술하는 것이므로, 임산부에겐 더할 나위 없이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술법인 셈이다.

 정용은 자신의 기를 아낌없이 마나님의 몸 속으로 불어 넣어주니 마나님은 온통 시원하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용은 먼저 머리를 만지면서 두통을 가시게 하는 마사지로부터, 어깨의 힘을 풀게 하는 마사지와 등뼈와 허리를 만져줌으로서 자세를 바로 하는 추나술, 엉덩이와 좌골을 만져줌으로써 신경통을 예방하는 마사지 등 몸 전체의 경락을 강력한 지압을 통해 마사지를 해 나갔다.

 

 마나님은 정용이 만져줄 때마다 “아이 -- 좋아 --- ”, “응 -- 거기 -- 거기 -- ”, “너무 -- 너무--- 씨원해 --!!!”, 심지어 “아들, 나 --죽어 -- ”를 연발하였다.

 더욱이 그가 허벅지와 보지 부근과 공알까지 만져주자 마나님은 음수가 벌컥벌컥 새어나오는지 “아들 - 아들 -- 나 - 싼다 --싸 !!!”하면서 아들 앞에서는 부끄럽지도 않다는 듯 애액을 방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정용은 마사지를 하다 말고 좆을 마나님의 보지 위를 문대주면서 한 번씩 박아 주곤 했다.

 마나님은 정용이 무쇠 좆을 흔들어 박을 때마다 아예 자지러지고 말았다.

 무려 세 시간 여의 씹판을 통한 박음질과 강력한 정용의 마사지를 통해 그야말로 회춘(回春)한 마나님은 딸들이 들어오기 전 안방 욕실에 들어가 정용과 함께 깨끗한 목욕을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목욕을 하면서도 농탕질은 멈추지 않아, 마나님은 정용이 자기의 뒤에서 좆을 박도록 임신한 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기도 하였다.

 정용은 욕조 밖에서 마나님이 욕조 가장자리를 짚고 엎드리게 한 채 서서 그녀의 보지 안으로 그의 큰 좆을 박아 넣자, 그녀는 그만 다리에 맥이 풀려 “얘, 나 죽어 --- 죽어뻐려----”하고 외치는 것을 정용이 큰 엉덩이를 들어 바닥에 눕히고 씻어 주기까지 하였다.

 마나님은 불룩한 아랫배를 내민 채 욕실 바닥에 엎드려 그가 씻기는 대로 몸을 맡겼다.

 정용은 아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피부가 곱고, 윤기가 잘잘 흐르는 것이 ‘잘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나?’ 궁금했다.

 “얘, 난 니가, 하라는 대로 -- 그거 무슨 심법인지 --- 있잖니? 매일 했거든 ---”

 마나님은 헌원심법이 자기 피부를 곱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여기 봐 -- ”

 마나님은 자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아랫배를 보여준다.

 “애를 가지면 여기가 부풀어 올라 피부가 트는 거야 --- 그런데 난 아무렇지도 않잖니? --- ”

 과연 그랬다.

 마나님의 아랫배는 불쑥 눈에 띌만큼 부풀어 올라 있지만, 하얀 뱅어의 아랫배처럼 기름지고, 투명하도록 고왔다.

 그게 다 헌원심법 덕이란다.

 

 “얘, -- 여기 만져봐 -- 애기가 놀지?? -- ”

 마나님은 태동이 생길 때마다 그의 손을 끌어다가 자신의 아랫배를 만지도록 한다.

 정용은 그럴 때마다 아랫배만 만지는 것이 아니라 보지끝의 공알도 만져준다.

 그러면 마나님은 좋아 죽는단다.

 

 

 이날 새벽에 일어나자 마나님은 그가 일어나는 기척을 느꼈는지, “용이니? -- ” 하면서 침대에서 뒤척인다.

 정용은 “예 -- ”라고 대답하며, “아침 운동하고 올께요 -- ”란 말과 함께 벌떡 일어난다.

 정용을 껴안고 자는 것이 버릇이 된 마나님은 이제 그가 침대를 나가면 허전해 한다.

 

 성균관으로 올라간 정용은 김 교수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른 봄날, 성균관은 새벽안개에 젖어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정용은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사정을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성균관에 올라올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물어보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수월할 것 같았다.

 마치 그것은 헌원심법을 다 외워놓고 한 구절씩 물어보며 연구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었다.

 가장 먼저 그는 진짜 ‘김 상사의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니 어떻게 자기 엄마에게 그런 거금을 아무렇지도 않게 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정용에 이어 곧 성균관으로 올라온 김 교수에게 정용은 간략하게 자신의 집안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김 교수는 대뜸 그 이야기부터 하였다.

 “그 돈은 김 상사가 ‘아무렇게나’ 준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무슨 사정이 있는 돈으로 생각된다. 네 어머니한테는 일일이 말하고 싶지는 않은, -- 그러나 난 어쩌면 그 돈이 네 아버지의 ‘목숨’과 관련된 그런 돈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 ”

 

 정용은 속으로 덜컹했다.

 ‘결국 - 아버지의 목숨 값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 아버지의 생사는 -- 어떻게 된 것인가? --- ’

 정용은 김 교수의 추론과 생각하는 관점,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왜 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

 정용은 그런 생각까지 이끌어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어린애 일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더 성장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고 김 교수와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김 교수는 계속하여 말을 술술 이어갔다.

 “그리고 김 상사는 봉급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봉급만으로는 그런 거액을 절대로 만질 수 없다. 아마 부대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직책이니, 공금에 손을 댈 수도 있고, 아니면 --- ”

 정용은 김 상사가 자신에게 무슨 꿍꿍인지는 몰라도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 많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니면요 --- ????”

 정용은 김 교수가 하던 말을 멈추자 더 궁금한 마음이 생겼다.

 

 김 교수는 뜸을 들이며 신중하게 말을 한다.

 “이런 말은 -- 좀 더 알아보고 말해야 하지만, -- 군대 내에 --- 어떤 비밀 조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김 교수의 예리한 추리와 추론에 정용이 빠져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비밀조직이요?--”

 정용이 묻자 김 교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비밀 조직들은 항상 이권(利權)을 달고 살다시피 한다 -- ”

 그는 다시 뜸을 들이며 숨을 한 번 쉰 뒤 말을 이어간다.

 “내가 하는 말을 ---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내뱉어서는 안된다! -- 알았지!! -- ”

 김 교수는 정용에게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물론 정용은 그가 한 말을 다른 누구에게 발설하지 않을 것을 그도 잘 알지만, 그가 그렇게까지 말한 것은 그의 추리에 대한 파장이 사회적으로 너무 크게 번질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60년대 초반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下野)로부터 시작하여 장면 정권이 무너진 것도, 윤보선 정권이 무너진 것도 모두 정권의 부패와 관련이 깊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여 사회적으로 부정부패와 깡패조직을 소탕한다고 하였지만, 그래도 군대 내에서의 부정과 부패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뿌리가 뽑힌 적이 없다.

 

 그만큼 군대조직에서의 부정과 비리는 연륜이 깊고 지속적이다.

 “특히 김 상사는 무술의 대가가 아닌가? 만약이지만 그가 그런 무술로 부대장을 협박하면 -- 어떤 부대장도 ----”

 김 교수는 김 상사를 본격적으로 의심하였다.

 “ -- 혹은 -- 그의 유혹에 -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

 

 즉 김 교수는 김 상사의 본업이란 게 부대장과 결탁하여 부대의 각종 살림살이를 팔아먹는 일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막강한 무술실력을 동원한다면 어느 부대장이 그의 유혹에 빠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당근과 채찍은 마키아벨리즘의 전형 아닌가?

 마키아벨리는 군주로서의 자질은 여우의 지혜(냉혹함)와 사자의 힘(잔인함)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김 상사는 이런 역량을 동원하여 공군특무전대의 군수물품을 자기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 교수는 특무전대의 주임상사라는 지위를 이용한다면 자기 부대 뿐 아니라 경기도 인근의 각종 부대 물품도 요리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김 상사 외에 다른 ‘돕는 손’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며, 그것은 자동적으로 비밀조직의 형태를 갖추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란 설명이었다.

 

 60년대와 70년대 군 부대에서 사용하던 물품들은 대략 10종(種)의 구별이 있었다.

 그 중에 1종(種)은 쌀을 비롯한 각종 먹을거리이며, 2종(種) 복과 군장류 등 각종 입을 거리이며, 3종(種)은 주로 유류와 각종 연료용품, 4종(種)은 페인트를 비롯한 건축 자재류, 5종(種)은 탄약류, 6종(種)은 개인물품으로 주로 PX 물품, 7종(種)은 각종 차량, 총포 기계류, 8종(種)은 약품 등의 의무기자재, 9종(種)은 정비부품, 10종(種)은 1종에서 9종까지 속하지 않은 품목인데 대부분 10종이라고 말하면 죽은 시체를 의미한다.

 

 이 10가지 품목 중 가장 손을 많이 타는 것이 1종인 쌀과 2종인 의복류이었다.

 당시 경제사정이 취약했던 나라 형편으로 군대 물자는 민간 사회에서도 대 환영이었는데, 이를 통해 막대한 편취, 사취가 이루어졌다.

 병사들의 일일 급식량도 정해져 있었지만 정량(定量)대로 보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당시 병사들은 항상 배가 고팠고, 마음껏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병사도 많았다.

 

 또한 각 부대에서는 2종과 4종을 담당하는 계원을 ‘이사종계’라고 불렀는데, 피복과 담뇨 등의 군장류를 취급하는 이들의 횡포도 만만치 않았다. 연대급 이상 부대는 군수참모와 함께 이종계와 사종계가 따로 있었지만, 대대급 이하 부대에서는 이사종계가 이런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곤 했다.

 그러므로 각 부대에서 선임의 위치에 있는 주임상사는 그 권한이 막강했다.

 게다가 주임상사는 한 번 그 부대에 배치되면 부대장은 바뀌어도 주임상사는 바뀌는 일이 없기 때문에 특전단 같은 특수부대일수록 주임상사의 권한은 공고해지게 마련이었다.


 김 교수는 김 상사의 그런 점을 의심하였다.

 “아마 그런 일 이상의 일도 있을 수 있다 -- ”

 김 교수는 김 상사가 단순하게 부대의 물건 나부랭이를 훔쳐다 팔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엄청난 일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는 자인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였다.

 

 사실 당시 한국은 모든 부문에서 부패와 연루되어 있었다.

 그러나 상아탑이라는 학교만 그런 사회적 풍토와 격리되어 순수한 교육이념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던 사람이 꽤 남아 있었다.(반대로 그렇지 못한, 짐승만도 못한 교수놈(?)들도 수없이 많이 있기도 했다)

 김 교수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정용에게 이런 충고를 하였다.

 

 “네가 정말 이 일을 해결해 보고 싶다면 너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안된다. 네 편을 가지고 있어야 이런 종류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먼저 네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 즉 네가 궁금한 사항을 정리해서 나에게 가져와 봐라”

 

 김 교수는 정용이 궁금한 사항을 막연하게 말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씩 정리하여 대안을 세워 보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러지 않아도 정용은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정리하여 김 교수에게 보여주려던 차에, 김 교수가 자신이 궁금해 하는 사항을 정리해 보라는 이야기를 듣자 그 말이 가장 그럴듯하게 들렸다.

 

 

 이런 이야기를 다 끝내고 나서야 이들은 만남의 본래 목적인 무술 연마로 들어갔다.

 “자, 오늘은 지금까지 네가 나에게 배운 것을 검토해 보자 --- ”

 김 교수는 자신이 가르쳐 준 호보와 호권과 호조를 하나씩 검토하였다.

 정용은 그의 요구에 의해 자신이 닦아 온 호보와 호권을 보여 주었다.

 

 김 교수는 그의 호보와 호권에 대해서는 만족한 듯 미소를 띈다.

 마지막으로 그가 호조를 보여주자, 김 교수는 아직 호조는 익숙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창조한 호조(虎爪)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그런데 그가 시연한 호조의 날카로움은 지난번 보았던 것에 비하면 월등하게 위력적이었다.

 “이건 저번의 시범보다 훨씬 위력적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양 손을 놀리는 것을 보면 손가락에서 바람이 휙휙 일어났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 호보(虎步)와 호권(虎拳)에서 벗어나, 네가 나로부터 해석하기를 원했던 헌원심법의 일부가 호조(虎爪)의 수법에 녹아들어갔기 때문이다.”

 정용은 그의 시범을 감탄하는 눈으로 쳐다 보았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김 상사에 대해 평가를 한다.

 “김 상사는 너나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고수일 수 있다. 저번 그의 보법(步法)이랄까, 신법(身法)이랄까, 네가 설명해 준 것만 가지고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좁은 식당에서 그렇게 신속하게 움직였다면 -- 그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당랑십팔보(螳螂十八步)’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건 내 추론에 의한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미 당랑권(螳螂拳)의 고수가 상당히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본래 출신이 그 쪽일 수도 있다.”

 

 정용은 김 교수의 설명으로 김 상사의 본래 출신 성분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을 저절로 깨달았다.

 어린아이 시절 그의 모습은 단단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음침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그런데 연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랑권(螳螂拳)은 사마귀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근접전에 유용한 무술로서 점혈수법이 중심이다. 본래 사마귀가 매미를 간단하게 잡는 모습에서 본 딴 것인데, 중국 북쪽의 18문파의 무술을 집대성하여 통합한 뒤, 원숭이가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취한 원후보법(猿猴步法)을 당랑수법((螳螂手法)과 혼합하여 당랑권(螳螂拳)을 창시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만약 그가 당랑권(螳螂拳)과 당랑십팔보(螳螂十八步)를 수련한 자라면 -- 게다가 그 자가 영등포 관장에게 시연한 것이 ‘응조공(鷹爪功)’이라면 ?? ----정말로 네가 그자와 맞붙기라도 한다면, 네가 가진 헌원심법을 최소한 사 단계 이상을 익혀야만 대적이 가능할 것이다.”

 그때 정용은 아버지의 편지가 저절로 생각 났다.

 ‘아버지도 삼 단계 밖에는 수련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나의 실력은 겨우 2단계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아마 2단계도 못미쳐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김 교수는 오늘 생각 밖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넌 지금 김 상사와 만나면 아마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네가 가진 절기를 만에 하나라도 알아본다면 --  네가성장하기 전에 --- 그는, 널 죽여야만 -- 될 것이라고 --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 ”

 정용은 모골이 송연했다.

 

 결국 김 상사와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운명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정용은 더 이상 자신의 의문 사항을 정리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부문들이 마음 속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 있지 않을 가능성도 이미 배제하지 않았다.

 비록 김 상사가 “니네 아버지는 죽을 리 없다”고 큰소리 쳤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부대장 방에 가서 면담을 할 때마다 “그러면 부대 내 일자리를 뺏겠다”고 협박하는 이유도 짐작이 되었다.

 그는 오늘 김 교수와의 대화에서 생각 밖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자신을 덮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커다란 그림자를 지워 없애는 것이 다른 사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헤쳐 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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