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집안 이야기, 그 전(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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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0,599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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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새로운 여인
 
 4월이 되면서 삼청동 주변 지역은 온통 꽃으로 뒤덮인 천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성균관 뒷산도 개나리와 진달래로부터 시작하여 온갖 꽃들이 만개했다.
 개나리와 진달래의 뒤를 따라서 벚꽃이 온통 산 위에 흰빛과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멀리서 보면 마치 수채화 그림 물감을 온 산에 풀어 놓은 것 같았다.

 아직 영산홍과 철쭉은 다피지 않았지만, 이 꽃나무들도 일제히 피어나길 기다리며 수많은 봉오리를 만들어 뾰족히 내밀고 있었다.

 성균관과 대학 캠퍼스, 그리고 북악산 기슭의 봄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조금만 바깥으로 나가 종로거리를 지나려면 연일 한일회담 반대 시위로 인해 나라 사정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주변 사정이 어수선하든지 말든지 정용은 여전히 꿀과 같이 달콤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정용은 4월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동안 여러 일로 인해 나가지 못하던 새벽 운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하였다.
 운동을 하지 않고 여자들하고만 보내니 아무리 어리다 하더라도 단단한 그의 근육들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두면 안될 것 같아 겨우내 움추렸던 몸을 떨치고 새벽에 일어났다.  

 김 교수도 한동안 보지 못하였던 그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지라 정용에게 뭐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새벽에 다시 만나자 매우 반갑게 대해 주었다.

 그런데 4월 중순 어느 토요일 새벽에 정용이 운동장을 나가자 봄 안개가 자욱한 운동장에 그의 눈에 매우 낮이 익은 듯한 날씬한 몸매와 육체의 굴곡을 자랑하는 한 여인이 몸매가 다 드러나도록 만든 검정색 세줄 추리닝을 입고 나타났다.

 

 김 일범 교수는 정용이 나타나자 그녀를 소개하였다.

 “이 민희씨야! 내 사촌 여동생이기도 하고--- 윤 사장 부인이야 -- 그리고 현서 엄마!! 너도 알거야 -- ”

 그러자 정용은 그녀의 얼굴이 생각났다.

 현서의 집에서 파티를 할 때, 처음 본 얼굴이지만 그가 대번에 생각이 난 것은 그녀가 은지의 이모였기 때문이었다.

 

 은지 엄마의 언니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예쁜 은지 엄마와 그녀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 보였다.

 영화배우 동생을 둔 우월적 유전자가 작용하는 셈이다.

 그녀는 사십이 훨씬 넘었을 텐데도 얼굴은 화사하고 밝은 데다가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온 그야말로 콜라병 몸매의 소유자였다.

 

 물론 그녀는 윤 사장의 아내이며, 학급 친구인 윤 현서의 엄마이기도 했다.

 그녀는 부잣집 마나님답게 고급스러운 검은색 삼선 무늬의 몸에 딱 맞는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정용은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이 그녀에게 인사를 하였다.

 “아하! -- 현서 어머님이시군요! -- 그간 안녕하셨어요? -- 전, 너무 예뻐서-- 누군지 못 알아 볼 뻔 했어요 -- ”

 그러자 그녀도 함박 웃음을 띄며 그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어떤 여자든 예쁘다고하면 깜빡 죽는다.  

 

 “나도 알아요. -- 우리 현서 친구 -- 정용이라구 --- 그리구 우리 은지 과외선생님? -- ”

 정용도 자기를 알아보는 친구 엄마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예, 맞아요 -- 저, 정용이에요 -- 저번에 현서 초대로 --- 집에 가서 -- 사모님을 뵌 적이 --- 있어요 -- ”

 정용은 현서 엄마를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하긴 윤 사장의 부인이니 보통 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도 사모님으로 불릴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가장 무리가 없는 호칭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 교수가 말을 거들었다.

 “내 사촌 여동생이야 --- 이종이지 --- 어려서부터 나랑 같이 운동했어 -- ”
 김 교수와 같이 운동을 했다는 말을 듣고 정용이 조금 놀랐다.

 

 김 교수와 함께 어려서부터 운동을 했다면 그녀의 솜씨도 여간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듯 이번에는 현서 엄마가 대답한다.

 “으응, 그렇긴 한데요 -- -- 그런데 이이가 날 가르쳐 주었어도 -- 난 실력이 형편 없어요 --- ”

 그녀는 김 교수를 오빠라고 하지 않고 ‘이이’라고 불렀다.
 정용은 그런 그녀의 표현에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녀는 대답을 하면서도 정용에게 깍듯하게 존대말로 응대해 준다.
 그런데서 사회생활을 하는 커리어 우먼의 냄새가 풍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김 교수가 갑자기 헛기침을 하면서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런데 네가 가르쳐 준 헌원심법을 현서 엄마에게 가르쳐 주니 그 다음부터 아침 운동을 나오겠다는 거 아니냐?”

 요는 김 교수가 구두로 헌원심법을 현서 엄마에게 가르쳐 주자 그 효과가 당장에 나타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헌원심법은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 더 좋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헌원심법이 정작 더 좋은 효과를 나타내려면 호흡법만으로는 어렵고, 온몸을 마사지하는 추나술(推拿術)을 시전해 주어야 하는 법이다. 그걸 무술의 대가인 김 교수가 모를 리 없다.

 그러려면 온몸의 혈도를 다 만져주고, 혈도가 막한 곳이라도 있으면 두드려 줌으로써 타통(打通)을 해주어야 좋은 효과를 나타내는데, 그런 경우의 남녀의 사이는 보통이 넘는 사이여야 한다.

 

 그런 남녀의 사이라면 부부간이 가장 좋은 것이고, 남매 사이라도 보통의 관계를 훨씬 넘는 가까운 사이여야 한다.

 이미 정용은 마나님과 씹을 하면서 그런 관계에서 헌원심법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던 것이다.

 물론 정용은 김 교수와 현서 엄마와의 사이가 그런 깊은 관계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헌원심법이 좋은 것은 마나님의 경우를 보아서 잘 알 수 있었다.

 아마 김 교수는 이종 사촌 여동생인 현서 모친에게 헌원심법의 호흡법을 가르쳐 준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사실상 정용이 은지 엄마에게 행한 헌원심법에 의한 추나술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봐야 한다.
 

 하루는 은지 엄마가 박 장군 숙소에 갔다 오더니 현서 엄마를 보고 생글생글 웃으며 아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임신을 하여 아기를 가진 여자가 얼굴이 뽀얗고 피부가 탱탱한 것이 중년 여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얼굴빛이 아주 좋은 것이 그녀에게 무슨 엄청 좋은 일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현서 엄마가 은지 엄마에게 “너, 요즘 얼굴이 그렇게 좋아진 이유가 도대체 뭐니?”하면서 이유를 캐물었다.

 그런데 현서 엄마가 은지 엄마랑 아무리 이야기를 해보아도 정용이란 은지 과외 선생인 남자 아이 하나가 은지 엄마의 무슨 혈도를 만져주고 두어 번 몸을 가볍게 해준 것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간단하게 호흡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 그것도 흉내를 내는 수준으로 계속 했다는데, 그녀의 얼굴이 몰라보게 뽀얗게 올라오고 피부가 윤기와 탄력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부쩍 호기심이 생겼다.

 당연하게도 은지 엄마는 정용과 씹을 했다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은지 엄마는 정용과 치루었던 그 열정적인 씹이, 아주 결정적으로는 그의 젊은 정액을 수시로 받아들인 것이 얼굴이 예뻐지게 하는 데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것도 절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누구든지 예뻐질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법이다.

 그건 나이가 많건 적건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게다가 은지 엄마는 삼청동 마나님 이야기도 곁들였다.

 “언니, 우리 동네 삼청동 이 사장 사모님 알지? 그 사모님도 늦둥이 아기를 가졌는데, 요즘 그 사모님을 보면 얼굴이 십년은 더 젊어진 것 같아! 거기에 대면 난 아무것도 아냐!!!---”

 

 이렇게 동생인 은지 엄마의 이야기를 듣자 정용과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고 있는 현서 엄마는 더 이상 동생으로부터는 얻어들을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바로 그 때 머릿속을 휙하고 스쳐지나가는 번개가같은 생각이 떠울랐다.
 그녀는 몰래 혼자 무릎을 치며 저번에 자기 집에 들렀던 이종 사촌 오빠인 김 교수를 생각해 내었다. 

 ‘그래! 그 오빠에게 말하면 이 민정이년이 뭘 했는지 알 수 있을꺼야!’

 사실 김 교수와 그녀는 어려서부터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

 둘은 사촌이란 관계가 아니었으면 결혼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엄격한 양반 집안의 김 교수네 집에서 김 교수 모친의 동생으로 이모의 딸인 이 민희를 그의 아내로 맞이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김 교수는 당시 자신과 동문 수학하던 가장 친한 친구 윤 사장에게 이종 사촌 여동생인 민희를 소개해 주고 둘이 결혼하도록 모사를 꾸몄던 것이다.

 당시 윤 사장은 철모르는 부잣집 도련님 타입이었는데, 미인인데다가 친구의 여동생인 민희를 보자 그만 첫눈에 반해 결혼을 서둘렀고, 민희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는데도 그만 아기인 현서를 뱃속에 가져 결혼을 하고 말았다.

 물론 그 아이가 김 교수 아이인지, 윤 사장 아이인지는 당사자인 현서 엄마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네들의 이런 속사정을 시시콜콜 알 리가 없는 정용은 그저 김 교수와 현서 엄마의 사이가 가까운 친척 사이이기 때문에 아침 운동을 같이 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 교수는 아침마다 현서 엄마에게 헌원심법의 구결을 알려주고 가부좌를 튼 자세에서 온몸을 만져주며 혈도를 타통시켜 줌으로 이 호흡법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좋은지 실제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은 새벽에 운동장에서보다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더 많이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자동적으로 김 교수는 연구실 한편에 간이침대를 마련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오랜만에 사촌 여동생과 즐거운 정교(情交)의 시간, 즉 남녀가 다시 만나 씹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오랫만에 만난 옛 연인들이 다시 불타오르는 사이가 되자 이번에는 도저히 끌 수 없는 지경으로 번졌다.

 

 현서 엄마는 처녀 시절부터 오빠와 씹을 해왔던, 아니 씹을 가르쳐 준 ‘이이’인 김 교수가 비즈니스인지 뭔지 허구헌 날 술만 처먹고 들어오는 윤 사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왕성한 정력으로 자신을 눌러 주자 너무나 만족하게 되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김 교수는 유학을 연구해 오기도 했지만, 유학보다 더욱 심취해 있는 것이 무학(武學)으로써 평생 무술을 연구하고 육체적으로 연마해 왔으므로, 더욱이 매일마다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 왔기에 지금 사십이 훌쩍 넘은 나이이지만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하고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자신이 젊은 시절 결혼까지 꿈꾸고 있었던 아름다운 여인인 현서 엄마가 이제 농익은 몸으로 헌원심법의 호흡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자 처음에는 빈번한 스킨십이 요구되는 마사지 때문에 거절하려다가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라는 현서 엄마의 부탁에 호흡법과 함께 농익은 여인의 아름다운 몸을 마사지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몸에 서로의 몸을 섞는, 결국 남녀의 생식기가 부딪쳐 반죽을 이루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렇게 둘은 과거에 한 번 갔던 길을 다시 가게 되자 그 다음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고속도로가 생기고 말았다.

 중년의 두 사람은 새벽 운동을 하다가 연구실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씹을 즐기는 사이가 되었고, 현서 엄마는 정용이 자기 동생에게 가르쳐 준 무슨 심법도 김 교수가 훤하게 알고 있어 그것을 배우다 보니 은지 엄마가 알고 있는 것은 전체의 반의 반쪽도 안되는 것임을 깨닫고는 동생에게 픽 웃어 줄 수 있게 되어 중년의 사촌 오빠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그러자 현서 엄마는 한 달도 채 못 되어 자기 동생인 은지 엄마보다 더 날씬하고, 혈색이 좋은 몸을 갖게 됨으로 아주 만족하게 되었다.

 

 김 교수는 정용이 한동안 아침 운동을 나오지 않자 혼자 운동하는 것보다 여동생인 현서 엄마가 같이 운동하기를 요청하자 잘되었다 싶어 이른 봄부터 같이 운동을 하였는데, 운동을 시작하는 날부터 정용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동생인 은지 엄마가 어떻고, 마나님인 삼청동 이 사장 사모님이 어떻고, 무슨 호흡법인데, 그게 그렇게 여자한테 좋다는데 알고 있느냐는 둥 이런 저런 질문을 쏟아 내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현서 엄마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보니 아마 정용이 마나님과 은지 엄마에게 무슨 호흡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게 그렇게 여자의 미용에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걸 오빠인 자신이 현서 엄마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느냐? 뭐 대충 그런 이야기로 들렸다.

 김 교수는 물론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그건 본래 자기 무술이 아니라 정용의 집안 가전 무예인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현서 엄마는 그건 자기가 정용에게 허락을 얻는 것으로 하고 먼저 가르쳐 달라고 졸라 대었다.

 김 교수도 정용에게 먼저 이야기를 해야 맞지만, 그래도 자기가 정용이 헌원심법의 어려운 부분에 대한 해석과 부분적인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권한이 있다는 생각으로 현서 엄마에게 호흡법을 가르쳐 주고 초보 수준의 호권과 호보를 가르쳐 주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호보와 호권, 그리고 호흡법을 가르쳐 준 날은 김 교수와 현서 엄마의 즐거운 섹스가 기다리는 날이기도 했다.

 물론 김 교수는 현서 엄마와 그렇고 그런 사이란 것을 정용이 알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을 김 교수로부터 전해들은 정용은 김 교수와 현서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육체의 비밀을 나누어 갖는 막연한 사이임을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속으로 ‘픽’하고 웃어 주었다.

 ‘교수님, 괜찮아요 -- 나도 그런데 뭐 --- ’

 

 그런데 김 교수는 현서 엄마에게 호보 단련을 위해 성균관에서 북악에 이르기까지 아침 등산을 하도록 권유하였다.

 그것은 호보의 단련이라기보다는 중년에 도달한 여인들이 건강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한 좋은 배려이기도 했다.

 현서 엄마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권유를 받아들여 일주일에 한번 정도 시간을 내어 산을 올랐다.

 집에서는 가정주부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남편인 윤 사장을 아침에 출근하도록 도와야 하고, 아들의 등교도 관심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평일에는 등반하기는 어렵고, 해서 주말인 토요일을 중점으로 인근 성균관 뒷산에서 서울 성곽을 따라 북악산까지 오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미 둔덕산에서 산길 오르는 법을 익힌 정용에게는 성균관에서 북악 오르는 길은 어려운 길이라고 볼 수 없었다.

 당시 북악(北岳)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길이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북악 스카이웨이와 서울 성곽이 복원된 시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 성곽은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등산로는 험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길이라 할지라도 개방되어 있었던 북악산 가는 길이 서울 시민에게 완전히 막힌 것은 1968년 1월 이후 푸른 기와집이 완전히 털려버릴뻔 한 사건이 난 이후였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그 길이 막힐 것은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그 당시에는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서울 사람들에게도 ‘등산’이라는 ‘운동’이 ‘운동’으로 와닿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휴일에 산에 올라간다는 것이 일종의 사치로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아침마다 산에 오르는 것이 일종의 무예 수련으로 여겼던 사람이기에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가벼운 수련으로 등반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여인인 윤 사장 사모님은 과거에 운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길을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김 교수와 정용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잰 걸음으로 올라가는데, 여인인 윤 사장 사모님은 무술을 한 남자 둘을 따라잡는 것이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용과 김 교수는 한참을 쉬었다가 윤 사장 사모님을 먼저 보내고 뒤따라 올라가기로 작정한다.

 그래도 현서 엄마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날랜 두 남자를 잘 따라 올라왔다.

 그것은 그녀 역시 이런 산행에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정용은 그녀를 앞세우고 뒤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검은 추리닝을 입은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가 자꾸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겅정색 삼선 추리닝은 당시 보통 여자들은 구하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독일제 수입 완제품이었다.

 그건 윤 사장이 독일에 출장 갈 일이 있어 그곳에 갔다가 현지에서 사온 귀한 물건이었다.
 

 요즈음 정용은 운동할 때 제인이 입다가 그녀가 물려주고 간 미제 후드 달린 회색 추리닝 티셔츠를 입었는데, 그것도 하두 운동을 하고 빨아대니 몇 벌이 있는데도 견뎌내질 못한다.

 이번 여름이 되면 튼튼한 추리닝 복을 몇 벌 더 구입해야 할 판이다.

 사실 당시 국산 체육용품의 수준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추리닝이나 운동복은 말할 것도 없었고,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체육용품은 겨우 축구공이나(에이스) 탁구공(피스) 정도였다.
 그래서 일본애들이 한국에 와서 국제시합이라도 할라치면 자존심 상하게 걔네들 용품을 쓰지 않으면 시합이 안될 정도였다.
 더욱이 1966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 유니폼이 하룻밤 사이에 염색이 다 빠져버리는 촌극도 벌어질 정도였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제품은 고급으로 쳐주고 싼 것은 ‘차이나’이지만 당시 국산 제품들은 형편없었다.

 그러니 돈 좀 깨나 있다는 집안에서는 외제 물품을 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더욱이 이렇게 윤 사장 사모님인 현서 엄마나 은지 엄마 같은 멋쟁이 여편네들이 자기 몸을 치장하는 것에는 유달리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어려서부터 운동을 한 윤 사장 사모님인 현서 엄마는 특별히 삼색선이 들어간 '아○○스' 제품을 선호하였는데, 윤사장이 유럽에 출장을 나갈 길이 있으면 독일에 들러 삼색선이 든 운동화와 추리닝을 사오도록 닦달하였다.

 

 어쨌든 이날 처음으로 현서 엄마를 앞세우고 북악산을 오르는 정용은 그녀의 탱탱한 엉덩이를 볼 때마다 아랫도리가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시도 때도 없이 그의 좆을 꼴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마 그가 평범한 중 2학년의 남학생이라면 그런 생각이 그저 그런 망상(妄想)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이제 그는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릴 뿐 아니라 침실에서 내로라하게 만족시켜주는 어엿한 한 명의 남성이 아닌가?

 그러니 현서 엄마가 그의 앞에 올라가면서 크고 탱탱한 엉덩이를 요리 돌리고, 조리 돌리면서 앙증맞게 걷는 것이 불편해진 것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몸에 딱 달라붙는 검정색 추리닝 복은 사십대 중년 미부(美婦)의 몸매를 섹시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그로서는 고문이었다.
 

 정용은 ‘현서 엄마’가 친구 엄마인지, 아니면 정용이 따먹은 ‘은지 엄마의 언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먼저 친구인 현서 엄마라면 윤리적으로 정용은 좆 꼴리지 말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따먹은 은지 엄마 언니라면 조금 다른 것이 아닌가?

하긴 자기 엄마도 따먹는 놈이 친구 엄마를 가리겠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정용은 스스로 자신의 좆을 달랬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김 교수는 오로지 운동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정용이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마 그로서는 정용이 등치만 컸지 어리게만 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마침 가파른 길을 올라가던 현서 엄마가 “어마야! --”하면서 주르르 미끄러지는 것이었다.

 이때 현서 엄마를 뒤따라가던 정용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뒤에서 꽉 붙들었다.

 그러자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탱탱한 엉덩이 골로 꼴린 그의 좆이 쑤욱 들어가는 형국이 되었고, (물론 옷 위이지만)그의 두 손은 그녀의 커다란 유방을 두 손으로 움켜쥔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녀가 발을 헛딛어 생긴 일이었지만, 그 바람에 정용은 뒤로 발라당 넘어지고 말았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뒤로 넘어지면서 그의 엉덩이가 땅바닥에 심하게 부딪쳐 얼얼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둘 다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넘어지는 현서 엄마를 정용이 붙들어 주지 않았다면 그녀가 심하게 다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한동안 둘은 넘어지는 충격에 둘 다 하늘을 보고 발라당 누운 자세에서 정용이 부인을 껴안은 채 한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다.
 

 물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자세를 바로하고 바로 일어났다.

 그러나 정용은 현서 엄마의 젖가슴을 만진 부드러운 촉감을 잊을 수 없었고, 현서 엄마는 자신의 엉덩이 골을 찔러 들어오던 그의 커다란 육봉의 크기를 대략 짐작하고는 손으로 입을 가릴 수 빆에 없었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속으로 감탄하면서 중얼거렸다.

 ‘어머, 아 총각이 -- 좆이 대단히 큰 것 같아 --- ’
 

 그러나 정작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생각과는 달랐다.

 “어머, 어머 --- 넘넘 -- 고마워요 --- 도와주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

 그러자 무슨 생각을 하였든지 혼자 멀찌기 뒤처져오던 김 교수가 그제서야 달려오면서 그녀를 껴안으면서 말한다.

 “누이 -- 안 다쳤어요? --- ”
 

 그러자 현서 엄마는 김 교수의 품에 살포시 안기면서, 눈을 정용을 향해 살짝 치켜뜨면서 말한다.

 “이이는 --- ?? 이제 오면 어떻게 해요 ?? -- 정용 학생이 날 잡아주지 않으면 큰일 날 뻔 했잖아요!! -- ”

 그러자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김 교수가 정용에게 눈짓으로 고맙다고 한다.

 그리고 이젠 그만 내려가자고 하는 현서 엄마의 요청에 두 남자는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서 엄마가 넘어지면서 발을 삐끗했는지 상당히 불편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용은 자신이 만져주면 금방 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김 교수가 있는데 자기가 나설 수 없어 그만히 있었다.

 

 그날의 북악산 아침 등반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셋이 같이 내려오는 길에 성균관에 이르자 현서 엄마가 추리닝 주머니에서 작은 명함 지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 있는 명함을 한 장 건네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언제 우리 사무실에 놀러와요 --- 정용 학생-- ”

 거기에는 『안암미술관』‘관장 이 민희’라고 쓰여 있었고, 특별히 ‘관장’이라는 직함 밑에는 ‘책임 큐레이터’라는 정용이 처음 보는 직책이 적혀 있었다.

 ‘큐레이터?’

 정용은 속으로 다시 되뇌었다.

 그러자 큐레이터에 의문을 품은 것을 알았는지 현서 엄마가 하얀 이를 내보이면서 싱긋 웃으며 말한다.

 

 “큐레이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미술품들에 대해 전시, 기획, 연구하는 학예사를 말하는 거예요”

 옆에 있는 김 교수가 그녀의 말을 거들어 자세히 설명해 준다.

 “말하자면 고미술품의 전문가인 셈이지. 대개 큐레이터는 연구직이 있고, 교육·홍보직이 있고, 전시관리직이 있는데 석사 이상의 학력이 요구되지. 고고학, 고고미술사학, 미학, 미술사학 등의 관련 학과를 전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지. 우리 이 민희 관장은 고려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프랑스에 유학하여 미학을 공부했지.”

 김교수의 이런 설명에 흡족했는지 현서 엄마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김 교수는 정용에게 말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아무래도 이 사람이 발목이 부은 것 같아 -- ”

 김 교수가 현서 엄마의 상태를 돌봐야겠다고 하면서 두 사람은 연구실 쪽으로 방향을 돌려 들어갔다.
 

 정용도 그런 두 사람을 따라갈 처지가 못 되어 그냥 삼청동 집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침 그가 주말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자 그를 기다리는 한 떼거지의 ‘여인’들이 있었다.

 모두 다섯 명의 여인이다.

 거기에는 이제 그의 아들을 낳은 마나님을 비롯하여 마나님의 딸들인 지현, 지영 등 두 명의 자매와 정용의 친엄마인 정혜 엄마, 여동생 정아 등 모두 다섯이지만 이들은 나이가 많던 적든 모두 다 한결같이 나이도 어린 정용의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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