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벨제뷔트의 신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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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벌 계획 시동까지 1주일. 평생을 잊지못할 황홀한 추억을 가득 남긴 윌리엄은 베시시 웃다가 동료들이 이상한 눈초리를 짓자 얼른 잡념을 버렸다. 군의 전반적인 전략을 짜는데 한치의 실수도 용납지 않는 막중한 임무였다. 자그마치 육십만. 처음의 백만에서 절반가량이 줄었지만 그래도 대륙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다. 그만큼 이동 속도가 느리고 식량 문제가 골치아프지만 해결방법은 간단했다. 각국의 군사들이 강 줄기를 따라 내려가 일정 포인트에서 진지를 구축한다. 그런다음 2~3만씩의 정예군을 차출해 이교도의 본거지를 치는 방안이었다. 어차피 정예군을 움직일텐데 왜 육십만이나 되는 대군이 모이는가. 이것에는 각국의 더러운 이면이 숨어있다. 겉은 종교전쟁이면서 내용은 황금이나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철광석이나 구리 광산 들의 확보다. 윌리엄도 휴가를 끝내고 복귀했을 때야 이 사실을 알 정도로 그전까지는 극비로 취급된 모양이다. 물론 지금도 지휘부를 제외하면 발설하면 안되는 극비다.
“ 고.. 공작 각하! ”
작전실에 찾아온 때아닌 손님에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경직된 자세를 취했다. 리암 스튜어트 공작은 이빨이 빠져도 여전히 무시무시한 호랑이다. 그의 매서운 눈길이 닿을때마다 그들은 하나같이 움찔대며 고난이 끝나길 기도한다.
“ 윌리엄 스튜어트! 그대가 내일 아침 브리핑을 할 것이다. 황제 폐하를 비롯해 연합군의 손님들이 모일 터. 잘 할 수 있겠느냐? ”
“ 맡겨만 주십시오! ”
부자 관계를 떠나 객관적으로 윌리엄 스튜어트란 청년은 맡은 임무를 충실히 맡겠지만 그에 앞서 한가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어깨를 두들겨 격려한 공작은 귓가에 입을 대고 조용히 속삭인다.
“ 곧 카르델 국왕이 이곳에 온다. ”
“ !! ”
카르델 왕국. 사랑하는 마리엘의 모국. 아내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소문을 통하여 대강 알고 있다. 공작이 개입한 사실을 제외하면 말이다. 불쾌함이 머리끝까지 치솟으면서도 그의 표정은 철혈공작의 피를 이은 자식답게 냉정하고 침착하다. 당장 갈아마셔도 시원찮은 개자식이라도 장차 제국에게 있어 든든한 우방이 될 나라의 왕이다, 공과 사의 구분은 애비만큼 철저하다. 두 부자는 복도로 나왔다. 활짝 열린 창문 밖으로 찬란하게 펼쳐진 형형색색의 꽃밭 정원은 수년 전 타계한 전 황비가 직접 가꾼 곳으로 타계 후 오늘 날까지 제국 최고의 정원사에 의해 정성스래 다듬어졌다.
“ 설마 황궁에 올 줄은.. ”
“ 놈이 얼마나 대담한지 직접 보면 알게 될거다. 성인식을 치루기 전에 쿠데타로 왕좌를 획책한 치밀하고 무서운 녀석이다. 아들아 명심하거라. 그런 녀석 앞에서 기가 죽어선 안된다. 약점도 잡혀선 안돼. 얕잡힐수록 놈이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신세로 전락한다. 속마음은 감추되 강하게 리드하거라. 방법은 네가 잘 아리라 믿는다.”
“ 명심하겠습니다. ”
한나라의 왕이 타국에 방문하는 일은 흔치 않다. 대게 패전후 볼모로 끌려오는 신세지만 아주 가끔 친분 교류 차원으로 방문하는 일이 있다. 대체로 끈끈한 동맹국으로서 사돈 관계, 국장(國葬) 같은게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카르델 국왕은 전대미문의 파격적인 행보로 역사에 한페이지를 장식할지도 모른다. 비록 비밀스런 방문이지만 호위 없이 홀몸으로 제국 심장부에 발을 디뎠다. 타국의 왕이 방문한 것치고 환영하는 이는 초라한 숫자지만 각자 제국의 중추 핵심 세력으로서 이보다 더 성대한 환영식은 없을 것이다. 그를 접대하기 위해 제국 최고 권력자들이 한자리로 모였다. 수년전만 해도 이들의 리더는 리암 스튜어트 공작이었다. 젊은 나이에 공직에 올라 수십년간 제국 최고의 권세를 누린 스튜어트 공작. 허나 그도 병들고 나이들어 은퇴 시기가 앞당겨졌다. 그 바톤은 같은 황태자 파인 애거튼 공작이 맡았으나 상대역인 워싱턴 후작측의 입김이 워낙 강력하여 감당 안되는 모양이다. 그 증거로 최고 권력자의 중심에 워싱턴 후작이 섰다.
“ 손님 대접이 후하군. 감격했소. ”
마차에서 내린 자의 이름은 아인 슈나이더. 마리엘 슈나우더의 하나뿐인 남동생이자 대륙에서 제국 다음으로 가장 부유한 카르델의 국왕이었다. 나이는 무려 19세. 17세때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장악했다지만 너무 어리다. 누나와 같은 피는 못속이는지 그역시 용모가 굉장히 수려했다. 여성스런 섬세함이 아닌 훤칠한 키에 굉장히 남자답고 씩씩하면서 강인한 인상은 가만히 서있어도 카리스마가 넘치다 못해 다수를 압도했다.
“ 당신이.. ”
“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저는 워싱턴 후작입니다. 이쪽은 도날드 공작.. ”
“ 아아, 됐소. 다들 삐까번쩍한 사람들이니 관등성명은 필요없겠군. 어디보자. 거기 스튜어트 공작 께선 못 본 사이에 많이 수척해졌어. 보약이라도 먹지 그래. ”
개쓰레기 같은 놈. 왕이 되니 눈에 뵈는 게 없는건가. 스튜어트 공작은 수년전 왕이 되는 방법을 알려달라며 목을 매던 그를 떠올렸다.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왕이 되겠다고 제발 도와달라며 애원하던 코흘리개는 그 짧은 사이에 군주로서 위엄을 갖추었다.
“ 여전히 과묵한 양반이시군. ”
위엄으로 가면쓴 가증스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방법은 많다. 바지만 살짝 들썩여도 움찔움찔 할 터이나 공작은 꿋꿋히 참아냈다. 애써 상대해봤자 워싱턴 후작에게 빌미만 제공하겠지. 후작은 그에게 비릿한 웃음꽃을 남기며 왕을 안내했다.
“ 황제께선 안에 계신가? ”
“ 황태자 전하와 함께 서재에 계십니다. 이 시간이 되면 체스를 두시지요. ”
후작은 힐끔 눈을 흘겼다. 왕이 자국을 떠나 이곳에 온 것은 그만큼 권력 기반이 무쇠처럼 단단해졌다는 증거다. 타국에 호위없이 맨 몸으로 들이 밀 정도면 보통 내기가 아니다. 아무리 황제와 카르델 전 국왕이 어릴적부터 친분을 교류하는 사이였다해도 아버지를 배신하고 결과적으로 죽인 패륜을 황제가 어떤 식으로 받을지 본인이 가장 잘 알텐데. 그의 두 눈은 한치의 빈틈없이 패기가 넘치다 못해 뻔뻔하고 당당하다.
“ 페하, 카르델 국왕이 알현하러 왔습니다. ”
“ 들여보내라. ”
문이 닫히고 카르델 국왕 아인 슈나우더는 서재 중앙으로 성큼 걸어갔다. 푹신한 쇼파에 몸을 기대어 체스를 두는 젊은이는 아인을 보더니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그것은 그의 강렬한 인상때문이 아닌 한눈 판 사이에 적의 체스말이 나쁜 쪽으로 움직여서다. 이것이 권력인가. 한나라의 왕을 두고도 본체만체하는 무소불위의 권력. 젊은 쪽이 필시 황태자겠지. 그리고 서재에는 그 둘 말고도 두 사람이 더있었다. 창가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아름다운 여신들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누이 마리엘과 맞먹는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 오렌지 빛 풍성한 블론드 미인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왠지 강한 원한같은게 느껴진다. 그녀가 장차 앞으로 가장 경계할 대상이다 . 헤르미나 스타세일러 크라우스. 누이와 자신의 운명처럼 똑같이 황제 자리를 앞에 둔 황태자와 황녀. 묘한 동질감과 적의가 뒤엉킨 사선에서 그 눈길은 피하듯이 옆의 여성으로 움직였다. 뺨을 붉게 물든 아리따운 여인은 애쉴린 하스톨 크라우스. 백금으로 수놓은 머릿칼을 찰랑이며 그 어떤 남자도 눈을 땔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미소를 짓자 아인은 고개를 돌렸다. 율단 왕국의 재상. 하스톨 공작가의 영양. 그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다. 오래전 부끄러운 일이었다. 사절단으로서 율단 왕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그녀와 만났다. 그녀의 춤 신청에 잘 추지 못하는 아인은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곤욕을 치러야했다. 외모빼고는 다 빵점이군요. 그 잊혀진 기억 속에 떠오른 한마디에 이가 바득 갈렸다.
“ 내 아내에게 무슨 문제라도? ”
정신을 차린 그는 황태자가 일어나 경계를 취하자 서둘러 표정을 지웠다.
“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정신을 잃었소. 무례가 되었다면 사과드리오. ”
그 말에 황제는 무릎을 탁 치고 웃었다.
“ 껄껄껄. 한 나라의 왕이 되는 자가 자존심을 굽혀서 되겠는가. 페일, 헤르, 너희 셋은 물러가거라. 내 이놈이랑 할말이 있느니라. ”
그들이 나가자 아인은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그가 왕의 자리에 오르도록 도움을 준 것은 리암 공작이지만 사실 황제의 도움이 컸다. 친우라 불리는 황제와 카르델 국왕이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간의 애증이 넘나드는 라이벌이라 할 수있다.
“ 이것을 돌려드리겠습니다. ”
“ 그래그래, 삼십년만에 돌려 받는군. ”
눈부신 빛을 발하는 패황의 목걸이는 황제의 품에 사라졌다. 제국 건국의 어머니라 불리는 엘리자 여황으로 대대로 물려오는 가보는 삼십년 전 젊은 혈기에 체스 내기로 카르델 전 국왕에게 넘겼다. 술기운에 감히 해선 안되는 실수를 한 것이다. 그날을 두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가.
“ 그는 마지막에 나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가? ”
“ 당신과 한번 더 체스 시합을 뒀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
“ 아아, 그렇지. 전적으로 내가 1승 앞섰으니까. 그렇게 건강하던 녀석이... 후후.. 이제 우리 세대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구나. ”
“ 황제? ”
제국을 넘어 대륙의 패자라 일컬어지는 황제의 뺨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 네 애비에 관해선 미안하게 생각한다. 설마 먼저 죽을 줄은.. 하핫. 내가 먼저 갈까 생각했는데 본의아니게 이런 식으로 일이 꼬이는구나 ”
“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
“ 그래,, 됐다. 먼 길오느라 피곤할텐데 내일 일도 있고하니 물러가 쉬거라. ”
“ ...예. 그럼.. ”
충격을 받고 숨진 아버지. 아인또한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앞에선 충성을 맹새해도 뒤에선 애비 죽인 패륜아란 꼬리표를 붙이고 손가락 질 하고 있다. 문이 열리고 방 안쪽에서 흐느끼는 소리에 황태자와 황녀는 아인을 노려보며 들어간다.
“ 빌어먹을. ”
하지만 어쩌겠는가? 악당이 되기로 각오한 몸. 잠시 약해진 마음을 강하게 추스른 그의 눈매는 야망으로 활활 타올랐다.
“ 카르델 국왕 전하. ”
꾀꼬리같은 아름다운 목소리가 부르자 한차례 어깨에 힘을 잔뜩 실은 그는 냉큼 뒤돌아 황태자비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 너... ”
“ 아프니까 놔주실래요. ”
“ 항상 그런식이냐? 그런 식으로 감히 날 깔아내려보고.. ”
황제의 침소 주변은 황족을 제외하면 시녀장 몇이 선발되어 돌아다닐 뿐. 고요한 적막감이 감도는 복도를 따라 가장 구석의 방은 주기적으로 돌아다니는 시녀장들도 청소날 빼곤 찾지 않는 장소였다. 침대도 없고 그저 덩그라니 빈 옷장과 쇼파만 몇 개 있는 그 방에 때아닌 불청객이 자리 잡았다.
“ 아아아앙! 하아! ”
두 남녀의 성교소리가 방안을 떠나가랴 울러펴진다. 불과 열칸 정도 옆의 침실에서 황제와 황태자, 그리고 황녀가 있는데 두 남녀는 자칫 인생의 파국을 맞이할지도 모를 짜릿한 불륜 섹스에 열중이다. 카르델 왕국의 국왕 아인 슈나우더. 바지춤만 내린채 드러난 크고 훌륭한 패니스는 상대를 봐주지 않고 오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원초적인 움직임을 반복했다. 그 상대는 놀랍게도 현 제국의 황태자비 애쉴린 하스톨 크라우스였다. 오직 팬티만 내린채 치맛자락만 올리고 음부를 드러낸 그녀는 남편이 아닌 외간 남자가 선사하는 짜릿한 쾌감에 아리따운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서서 벽을 짚고 엉덩이를 길게 뺀 황태자비는 육봉이 질주름을 마찰할때마다 허리를 튕기고 음탕한 교성을 질렀다. 결합부에서 찔꺽찔꺽하며 애액이 바닥을 적신다. 이렇게 화끈한 섹스는 오직 아인 슈나우더만이 가능했다. 귀두 끝까지 내빼며 질벽을 당기다가 푹하고 자궁 입구까지 뚫는 그 황홀한 쾌감은 넣었다 하면 금방 싸버리는 조루에다 정상위밖에 할 줄 모르는 풋내기 황태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 그렇게 좋냐? 이 더러운 암캐야! ”
“ 하아, 좋아,, 좋아! 좋아! ”
백금발의 긴 머리카락을 강하게 움켜 젖힌 아인의 강압적인 폭력은 마조히즘의 황태자비에게 대단한 오르가즘을 선사했다. 철퍽 철퍽 둔부가 부딪히는 음탕한 소리에 맞춰 침까지 질질 흘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는 상체를 들어 두 손을 남자의 목에 가져가곤 턱을 들어 키스를 요구했다. 신장 차이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인은 배려심이라곤 눈꼽만도 없었다. 덕분에 발뒷꿈치를 들고 선 황태자비는 더더욱 깊게 들어오는 육봉의 꽉찬 느낌에 낙옆처럼 엎어질 것 같으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상대의 목을 잡고 하체를 흔들어댄다.
“ 쩝 쩝쩝! ”
숨이 막히도록 깊고 격한 키스가 이어지고 혀가 엉키며 흐르는 침이 목을 타고 흘러 풍만한 젖무덤을 더럽혔다. 우악스런 손길로 두 젖을 움켜쥐고 주물르다 유두 끝을 잡고 길게 잡아당기고 놓자 그 절륜의 탄력감으로 젖가슴은 시뻘건 손자국을 머금은채 제 모습으로 돌아갔다.
“ 개같은 년! 너는 길바닥의 더러운 창녀야! 갈보에다 화냥년이라고! 알겠어? ”
아마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녀는 이런 모욕적이고 비신사적인 언어 폭력에 눈물을 흘리고 상처받았을 테지만 그녀는 부모조차도 키우면서 절대 몰랐던 희대의 마조히즘을 자랑하는 치녀였다. 수년 전. 그때. 그 파티장에서 모욕감과 상처를 받고 쓸쓸히 퇴장하던 그에게 동정을 느끼고 몸을 허락한 것이 그녀의 첫 경험이자 동시에 마조히즘의 쾌락을 깨닫는 계기였다. 더불어 아인 슈나우더또한 동정을 바치면서 그동안 쌓은 모든 스트레스를 섹스로 풀었다. 욕을 뱉고 거침없는 파괴적인 행위는 그 자신도 예상못한 일이었다. 그런 비이상적인 갭의 매력에 빠진 나머지 수십차례를 비밀리 만나 서로를 파괴하는 격렬한 섹스를 치뤘다. 그렇게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황태자비가 된 계기로 지난 날의 불장난으로 서로의 과거를 죽을 때 까지 덮어두나 싶었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다.
- 퍽 퍽퍽! -
- 찔걱! 찔꺽! 찔꺽! -
너무나 거칠고 짜릿한 쾌감에 점점 힘이 빠져가는 황태자비가 결국 상체를 숙이고 벽을 짚더니 질벽에 힘을 주는 불시의 공격에 아인은 즉시 움직임을 멈춰 고조된 사정감을 진정시켰다.
“ 씨발.. 개 년이 어디서 수작 질은!? ”
“ 하아앙.. 좋으면서.. 하아.. 뭐해? 빨리 ... 빨리 박아줘. ”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다. 그동안 서로가 즐기면서 본능적으로 깨우친 테크닉이었다.
“ 황태자 놈꺼랑 내꺼. 어느게 좋냐? ”
“ 하아.. 짗굿은 질문이네.. 하아아.. 길이는 남편께.. 하아아악! ”
단박에 꿰뚫자 황태자비는 자지러지는 함성을 지른다.
“ 시. .싫어.. 왜 안움직여? ”
그녀가 엉덩이를 뺐다 끼웠다 움츠리려하자 늘씬한 허리를 꽉 잡고 멈춰 세운 아인은 마치 제국 전체를 얻은 것 마냥 정복감에 휩쌓였다. 그 누가 아리라. 황태자는 오늘 밤도 즐겁게 아내를 품에 안겠지. 조금 헐렁한게 이상하게 생각해도 설마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그것도 타국 왕의 페니스 맛을 실컷 본 사실은 상상도 못할거다.
“ 길이만 기냐? 발정난 암캐년아! ”
“ 하아아악! 그.. 그것 뿐이야.. 하아.. 요.. 용서해줘.. ”
항상 도도하고 오만하며 품위와 예의를 중요시하는 황태자비란 가면 속에 이토록 대단한 치녀가 숨은 사실은 오직 아인 슈나우더. 그 혼자만이 아는 이야기다. 그때였다. 문 밖으로 멀리서 어렴풋이 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격렬하게 절정으로 움직였다. 아인이 허리를 뒤로 빼면 그녀역시 엉덩이를 앞으로 당기며 그가 강하게 박자 그녀또한 길게 뒤로 빼어 익숙한 육봉의 감촉을 한가득 느끼고 새기고자 했다.
“ 크으으.. ”
“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마지막으로 힘차게 박자 시원하게 배출된 정액은 결합부를 빠져나와 매끈하고 늘씬한 허벅지를 적시고 바닥을 더럽혔다.
- 달칵-
“ 애쉴리.. 거기서 뭐해? ”
“ 아아, 못 보던 방이라 구경 좀 해봤어요. ”
“ 얼굴색이 안좋아보이네. 어디 아픈거 아니야? ”
“ 그러게요. 샤워 좀 해야겠어요. ”
하체를 벌린채 앉아있던 아인은 문 뒤로 앵꼬부부의 사랑스런 대화에 실 웃음을 터트렸다. 워낙 시원하게 분출한지라 완전히 쪼그라든 육봉은 정액과 애액으로 범벅이 되어 야한 냄새를 풍긴다. 그의 옆에는 황태자비가 급히 놓고간 T자형 핑크빛 실크 팬티가 꾸깃 말려있다. 황태자비는 노팬티 차림으로 정액이 빠져나가는걸 막고자 다리를 꼬아댔지만 순진한 남편은 치맛자락 안에 펼쳐지는 불륜의 증거를 눈치채지 못했다.
“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걸. ”
“ 미안해요. 사실 어제 한 뒤로 귀찮아 세수하고 향수만 뿌렸어요. ”
“ 하, 진짜야? ”
“ 실망했어요? 깨끗한 척 하면서 안씻고 다녀서? ”
“ 그.. 그럴 리가. 의외의 일면을 발견해서 기쁜걸. 이렇게 내가 모르는걸 하나 더 알게 됐군. 다음은 뭘로 나를 놀라게 해줄지 기대되는걸? ”
“ 여보, 그런데 언니는요? ”
“ 헤르는 아버지와 같이 있어. 자자, 곧있으면 동생들이 올라오니까 얼른 빠지자. ”
꼴깝을 떠는군. 황태자비의 연기력은 가히 신의 영역에 다다른 듯. 그녀의 능청스런 연기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소름이 돋은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지춤을 올렸다.
겨우 이틀인가. 출전 전날 이틀, 이후 몇 년간은 보지 못할 아내와의 마지막 밤을 보낼거란 생각에 가슴이 타들어간다. 황궁 안에서 헤르미나나 세레스와 섹스할 기회는 여럿 있었지만 국가 전체가 움직이는 시국을 앞둔 상황에서 하고 싶진 않다. 심호흡으로 간신히 정신을 집중한 윌리엄은 부관에게서 받은 자료를 들고 단상위에 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이는 바로 마리엘의 동생이자 카르델의 국왕 아인 슈나우더였다. 본래라면 황제가 시석할 자리지만 건겅상의 문제로 카르델 국왕이 앉은 것이다.
“ 그럼 브리핑에 앞서 작전 계획 사본을 나눠드리겠습니다. 세부적인 핵심을 가득 담고 있으니 브리핑을 마치고 돌아가시면 각 군의 최고 사령관에게만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
두 시간에 걸친 브리핑이 끝나고 박수와 함께 내려온 윌리엄. 이후 각국의 최소 인원만 남기고 모두 바깥으로 퇴장했다. 닫힌 문 넘어로는 보나마나 남벌이 끝난 뒤 전리품이나 각종 보석이나 자원 광산들의 배분 문제로 언쟁이 벌어질 것이다.
“ 윌리엄 스튜어트! ”
“ 국왕 전하.. ”
아인 슈나우더는 진심을 다하는 척. 매형의 두 손을 꼭 쥐고 흔들었다.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허리를 숙이는 윌리엄. 그러나 고개 아래 숨겨진 두 눈은 아내를 죽이려 했던 나쁜 놈에 대한 증오가 서려 있었다.
“ 말씀 낮추십시오. 매형. 더 일찍 만나뵈려 했는데 아무튼 이렇게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
“ 아닙니다. 저야말로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
가면을 썼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눈빛만으로 알아채는 두 남자였다.
“ 누님은 어떻게 지냅니까? ”
“ 전하께서 걱정안해주셔도 될 만큼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
“ 덕분에 제 걱정이 한시름 덜었군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에 누님께서 충격을 많이 받으셔서 혹시나 했습니다만 매형을 보니 누님의 행복한 미소가 상상이 갑니다. ”
윌리엄 스튜어트. 아인에게 있어 몹시 특별한 감정이 있다. 분명 명문가의 자식에 앞으로 장래가 장밋빛으로 약속되어 누이의 남편으로 손색없을 인물이렷다. 허나 가증스런 스튜어트 공작의 아들에 누이 마리엘을 빼앗아간 개자식이다. 그날... 처형식이 이틀 앞둔 그 날. 아인은 나라를 손에 넣었지만 후환 때문에 누이의 처분 문제로 밤잠을 설쳤다. 그는 누이 마리엘 슈나우더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남매로서가 아닌 이성으로서 사랑했다.
[시.. 싫어!]
[누나! 살고싶으면 나와 결혼하는 수밖에 없다고! ]
근친혼은 금기가 아니다. 왕가의 핏줄을 유지하고자는 핑계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상대가 수락하냐는 것. 이른 새벽에 별궁을 찾은 그는 다가고짜 고백하고 입맞춤을 시도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렇게 사이좋던 남매사이는 쿠데타와 함께 아버지의 죽음으로서 완전히 갈라졌다. 그 차이는 시리도록 차가워 커다란 상처로 돌아왔다. 마치 괴물을 보듯.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어대며 도망치는 누나를 볼때마다 그의 인간성은 점점 사라지고 대신 욕망이 메워졌다.
-짝! -
그녀는 마지막까지 거부했다. 끝으로 뺨을 맞자 고조된 흥분이 급속도로 차갑게 식어졌다. 만약 그 자리에서 스튜어트 공작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강제로 그녀를 범했을 터. 다음날 공작은 누이를 데리고 제국으로 가버렸다. 당시 나라 상황이 어려워 공작이 건낸 제안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나라는 완전히 손에 넣었지만 자신의 소중한 일부를 빼앗겼다.
“ 그런데 참모진 소속이라면서요. ”
“ 아, 전하의 곁에서 보좌하란 임무를 맡았습니다. 정말로 선봉에서 지휘하실 겁니까? ”
“ 후후, 왕이 직접 움직이는게 이상합니까? ”
“ 보통은... ”
“ 매형께서 신경쓸 것 없습니다. 한 오 년정도 왕좌를 비워도 가신들이 알아서 꾸려나가겠지요. ”
아인은 누구도 왕좌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준비했다. 직접 선봉에 선 만큼 제국에서 적극적인 피드백에 나설 것이다. 적어도 현 황제가 살아있을 동안은 그렇다. 가신들은 전부 친 제국파로 채웠으며 충성스런 외가쪽 집안을 섭정으로 세웠다. 이렇게까지 모험을 하는 이유는 바로 눈앞의 윌리엄 스튜어트다. 남벌? 전리품? 단순한 명분일 뿐이다. 전쟁에 나서면 부득이하게 전사하는 경우가 많다. 아인은 그 틈에 그를 죽이고 누이를 되찾을 생각이었다. 병으로 끙끙 앓는 공작만 빨리 뒈지면 누이가 제국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볼모라도 남벌을 직접 지휘한 공을 황제는 결코 무시하지 못하겠지. 이미 워싱턴 후작과 모의가 끝났다.
“ 그건그렇고 전쟁이 끝나면... 누님을 찾아뵈도 되겠습니까. 직접 못만나도 괜찮습니다. 멀리서 볼수만 있다면 족합니다. ”
“ ......물론입니다. ”
“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출정날에 뵙지요. ”
한 나라의 왕이 고개를 숙이면서 예를 갖추는 일은 전무하다. 아무리 친누이의 남편이라도 이렇게까지 겸손을 떨 필요가 있는건가? 아버지가 말한 것과 상당히 다른 이미지에 괜히 긴장한 윌리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창가에 걸쳐 아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남벌 군이 출두한지 보름이 넘었다. 지금쯤 국경에서 카르델 군과 합류하겠지. 황궁에서 돌아온 스튜어트 공작은 며칠내내 서재에 틀어박혀 그동안 밀린 영지 서류를 검토했다. 그러다 문득 전장에 나간 자식이 떠올랐다. 패륜 왕자가 무슨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왕자와 마리엘과의 관게가 몹시 걸렸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대담한 놈이라도 제국과의 전쟁을 불사할 깡은 없다. 왕좌를 비운 이상 함부로 행동 못할 것이다.
- 똑 똑. -
“ 들어오라. ”
레드포드 백작가의 집사. 일평생 대대로 공작가를 위해 몸바쳐 일하고 숨을 거둔 집사장 데미앙의 막내 동생으로 공작이 진심으로 신뢰하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허탕을 쳤다며 고개를 푹 숙인다.
“ 그렇군. 쇠약한 노인도 벌떡 일어서는 귀한 약재라 노리는 사람도 많은게 당연할테지. 하지만 너무 지나쳤어. 사람을 시켜서 훔쳐라고는 말 안했는데. ”
“ 죄송합니다. ”
“ 아닐세. 부탁한 내가 괜한 부담을 줘서 미안하군. ”
그는 서랍에서 금화 꾸러미를 책상위에 놓았다.
“ 제법 썼겠군. 백작놈이 눈치채기 전에 이걸로 채워넣게. ”
“ ....일을 그르친 점에 대해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한가지 정보는 얻었습니다. 본래 그건 수도 외곽의 어떤 상점에서 먼저 구입했답니다. ”
“ 어떤...? ”
“ 그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상점이라.. ”
그런 곳이라면 몇 군데 알고 있다. 바로 매춘굴이다. 젊은 여자들이 가슴을 훤히 드러내놓고 돌아다니며 몸을 파는 곳. 공작또한 오래전 레드포드 백작과 함께 그런 곳 간 적이 있다. 물론 매춘굴이 아니라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최고급 살롱이었다. 접대부 한명을 하루 사들이는 것만으로 어지간한 평민들이 반년 이상의 끼니 값이 드는 부유한 귀족들만의 장소였다.소문대로 상당한 미인들의 최고급 서비스를 받았지만 아내와 나누는 섹스만큼 즐겁진 않았다. 오히려 죄책감이 치밀어올라 일찍 돌아갔었지.
“ 그래 무슨 상점인가? ”
“ 그게.. 어떤 도구를 파는 곳 같습니다. ”
“ 나는 돌려서 말하는걸 가장 싫어하네. 자네가 잘 알잖는가. 속시원하게 핵심만 말하게. ”
백작가 집사는 침을 삼키고 설명했다.
“ 성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도구점입니다. 정식 명칭은 자위 기구라고 하더군요. 남성 성기 모양을 본따 만든 탄력적인 막대기나 링같은 걸로 성기에 끼우고 여성과.. 험.. 그 사랑을 나눌 때 여성분께서 굉장히 좋아한다고.. 아무튼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이것외에 정력에 좋은 각종 약재는 기본이며... ”
“ 됐네. 그러면 그곳에 가서 말 하면 되겠군. ”
“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
“ 자네를 계속 빌렸다간 백작이 눈치챌거야. 죽을때까지 놀림거리가 되긴 싫군. 자네를 못미더워서 하는 말이 아닐세. 나역시 사람이고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야. 자세한 위치를 말해주게나. ”
왜 그걸 구하고 싶은걸까. 공작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도착할때까지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허름한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고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불쾌한 냄새에 코를 찡그렸다. 매춘굴 중에서도 가장 더럽고 위험한 곳이다. 입에 풀칠하는 것만으로 겨우 삶을 연명하는 최하층민들의 쉼터 입구에서 공작은 근처 물웅덩이에서 더러운 거지꼴을 확인했다. 여기저기를 꿰맨 누더기 옷에 머리는 헝클어져있고 새하얗던 얼굴도 시커먼 기름칠로 누가봐도 힘없고 가난한 노인이다. 이렇게까지 프라이드를 버리면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여러 고뇌가 스치면서도 그의 발걸음은 어둡고 칙칙한 앞을 향하고 있다.
“ 어이 할배. 싸게 해줄게. 놀다 가. ”
“ 이쪽이야 이쪽.. 어머나 얼굴색이 별로네. 힘 좀 쓰다 관에 들어가는거 아니야? 농담 농담. 이쪽으러 와. ”
“ 이곳에 처음 온 사람같은데 우리집 소문 못들어봤나요? 서비스가 아주 끝내준답니다. ”
여성들은 칙칙한 거리에 어울리지 않게 형형색색의 드레스로 남자들을 유혹했다. 가슴을 드러내놓거나 살짝살짝 치마를 들춰 치부를 보여주는 등 평생 하늘 높은 곳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이에겐 상상을 초월하는 쇼크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녀들의 표정은 전부 죽어있었다. 웃고 있지만 눈은 삶에 찌들린 피곤함이 엿보인다. 살기 위해서 몸을 파는 행위. 공작에게도 별로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지만 나라 입장에선 필요악이었다. 교황청에서 신성모독으로 매번 매춘굴을 전부 파괴해달라 간곡히 호소했지만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이런 오락시설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어떤 여자는 어렸다. 나이는 열 여섯 정도로 성인식을 앞둔 사춘기 소녀는 몸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옷차림으로 용병들을 유혹했다. 마른 몸매가 취향이 아닌지 그들은 자기들까지 음담패설을 오가며 밀쳤고 쓰러진 그녀는 욕지거릴 뱉어내더니 공작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 미안하지만 그런 용무로 온게 아니라서.. ”
“ 한번만 해봐요. 잘할 자신 있다구요. 끝내주는 하룻밤을 약속할게요. ”
“ ...귀찮군... ”
불쌍한 것. 아마도 포주라는 자가 할당량을 못채우면 두들겨패는 모양이다. 그 증거로 옆구리나 허벅지 사이로 자그마한 멍이 보였다. 공작은 품에서 돈을 꺼내려다 주변을 살피고 멈췄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인 패거리들의 눈빛이 느껴지자 그녀를 강하게 밀었다.
“ 나 돈없어. ”
“ 뭐야, 돈도 없으면서 온 거야! 썩 꺼져! 개같은 할방구 새끼. ”
소녀는 욕을 한바가지 퍼붓고는 다른 손님들을 찾아 떠난다. 어이가 없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던 그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녀가 자그마한 체구에 안어울리게 고성방가를 해준 덕분에 창녀들의 시선은 손님이 아닌 거지로 보게 되었다. 귀찮은 일에선 벗어났지만 기분은 심히 좋지 않다. 목적지는 좀 더 안쪽이었다. 파고들수록 창녀들은 점점 나이가 들고 초라한 몰골로 의욕도 없이 서있는다. 혹시나 나이들고 볼품없는 자신이라도 받아줄 손님을 찾는지 시선만은 여지저기 움직였지만 누구하나 공작에게 말을 거는 이는 없었다.
“ 잠깐 거기 아저씨. ”
“ 뭔가? ”
험상굿은 패거리 셋이 앞을 막자 순간 움찔했다. 황제를 제외하고 누구한테도 당당한 기세를 자랑하던 그였으나 어디까지나 귀족들끼리 상대할때의 이야기. 눈앞의 놈들에겐 일반적인 상식은 무리한 요구였다. 하나같이 큰 덩치에 얼굴과 몸에는 여기저기 흉터가 잔뜩 진 것이 힘없고 초라한 노인을 압도한다.
“ 처음 보는 얼굴인데 돈도 없으면서 여길 왜 온거야. ”
“ 볼일 때문에 왔다. ”
하지만 노인의 말투에는 뼈가 담긴 위압감이 서려있었으나 통용될 상대가 아니었다. 다가고짜 안면을 가격하자 공작은 피를 뿜으며 바닥을 뒹군다.
“ 이 새끼! 말하는 싸가지 보소. 죽고 싶어? 죽고 싶냐고. ”
“ 나잇값이나 하시지. 우릴 누구로 보고 눈을 부라랴. 앙? ”
“ 사.. 살려줘.. ”
처음이었다. 이렇게 맞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살려달라고 호소했으나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이는 없었다. 혹시나 말려들까봐 피해가거나 웃긴다며 깔깔거리는 창녀들. 엎친데 덮친격으로 폐병까지 발동해 연신 콜록거리며 피를 토해냈다. 얼마나 맞았을까.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그는 힘을 다해 앞으로 기어갔다. 어렴풋이 금화 주머니를 짤랑거리며 횡재했다는 불량배들의 뒷모습이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 거.. 거기서.. 네 놈들을.... ”
상상하기 힘든 치욕과 모멸감. 뺨에 피와 함께 묻은 가래침을 닦아낸 그의 눈동자엔 엄청난 분노와 증오로 활활 타올랐다. 당장 군대를 이끌고 이곳을 싹 밀어버릴 것이다. 특히 저 놈 셋을 잡아다 죽고 싶다고 소리칠때까지 끔찍한 고문을 해주리라.
“ 이런이런.. 놈들에게 당하셨군요. ”
그때 나긋나긋한 젊은이의 목소리와 손길에 공작은 배를 움켜쥐며 부축받았다.
“ 놈들은 돈냄새라면 귀신같이 알아내지요. ”
“ 누구요.. ”
“ 의사입니다. 불결한 곳이지만 이런 곳일수록 의사가 필요하지요. 우선은 제 가게로 갑시다. 그 꼴로는 어디 가지도 못할테니. ”
“ 큭.. ”
쓰디 쓴 약냄새. 장작불의 따듯한 온기를 받으며 눈을 뜬 공작은 순간 벌떡 일어났다. 틀림없이 두들겨맞았을텐데 이상하리만치 가벼운 몸은 마치 폐병을 앓기 전의 활기찬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방안은 단촐했다. 작진 않지만 간단한 가구에 침대 하나만 딸랑 놓아졌고 핏물에 절인 옷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빨아져 장작불 앞에 걸려있다.
“ 아, 이제 괜찮습니까? ”
공작은 문을 열고 들어온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나 같은 남자라지면 저렇게 잘생긴 청년이 있다니. 제국 최고의 미남이라 일컬어졌던 조나단 헥스 백작의 젊은 시절도 저 정도만큼은 아니었다. 그가 다소 계집애같은 인상이었다면 지금의 청년은 남자다우면서도 섬세한 매력이 철철 넘치는 미남이었다.
“ 제가 아주 잘생겼다는거 압니다. 그렇게 뚫어져라 보시면 부끄럽군요. ”
게다가 철면피. 전형적인 나르시스트였다.
“ 여긴.. ”
“ 뭐, 제 가게입니다. 여러 가지 잡화나 약을 팔지요. 아아, 선생님께선 폐병을 앓고 계셨더군요. 제가 지은 약을 처방해드렸습니다. 이곳의 야만적이고 구시대적인 장비로는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일시적으로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지요. ”
그는 의자를 질질 끌어와 반대로 놓고 앉았다. 등받이에 손을 올려 장난스런 시선을 보내자 공작은 뭐냐는 듯 경직된 눈빛으로 되받아친다.
“ 귀족이셨군요. 목에 걸고 계신 목걸이로 알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장식이라 값어치는 없어보이지만 천만에 말씀. 천년목을 재료로 쓴 덕분에 수천년 아니 만년 이상 썩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죠. 휘황찬란한 보석보다 세계에서 몇그루 되지 않는 천년목을 사용한 장식 목걸이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일단 보통 사람은 아니란 뜻이지요. ”
“ 대단하군. 그런걸 알고 있다면 자네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란 말인데? ”
“ 제가 좀 특이한 쪽이라서요. 약에 쓰려고 온갖 재료들을 다 모았습니다. 천년목도 딱 한번 만져봤지요. ”
“ 그런가.. 자네였군. 산삼을 자네가.. 산삼을 사들였나? ”
“ 에? ”
의외의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 손바닥을 쳤다.
“ 아아, 어떤 가문의 집사님께서 산삼을 구입가격보다 더 비싸게 쳐준다고 하셨는데 그쪽이랑 연관이 있으신가요? ”
“ 내가 시킨걸세. ”
남자는 이마를 탁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그 전에 상처가 사라진 말끔한 몸의 가벼움이 무척 기분좋았기 때문이다.
“ 젊은 나이인데도 대단하군. ”
“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선 안된죠. 제가 이래뵈도 나이 좀 먹었답니다. ”
“ 거짓말.. 이십대 초반 같은데? ”
“ 그보다 배는 많습니다. 젊음을 그저 나이 먹는다고 놔두면 안되죠. 철저하게 꾸미고 가꾸는 노력을 해줘야 되요. 어쨌든 저에게 용건이 있으셨다니까 이것 참 기이한 우연입니다. 이럴게 아니라 내려가서 식사나 함께 하시며 이야기를 나누죠. ”
문을 열고 식당으로 내려가서 벌써부터 매콤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주방에서 열심히 움직이던 여성은 남자가 내려오자 활짝 웃는다.
“ 인사하시죠. 제 집사람입니다. ”
“ 아아...!!! ”
세상에나. 공작은 그의 아내를 보자 또 한번 입을 쩍 벌렸다. 그럴것이 그녀는 대단히 젊고 또한 며느리 마리엘 만큼이나 대단히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다만 청초한 꽃같은 마리엘과 달리 그녀는 엄청나게 매혹적인 눈매를 가졌다. 나쁘게 보면 요부같았다. 붉게 타오르는 머리칼과 새빨간 입술 덕분에 더욱 색정적으로 비춰진 것일지도 모른다.
“ 아아, 이것 참. 제 소개부터 해야겠군요. 저는 아르젠입니다. 집사람 이름은 펠리시아. ”
“ 대단한 미인이군. ”
“ 그게 단점이지요. 이곳에 살면서 꼬이는게 너무 많아요. ”
“ 배부른 소릴. ”
“ 하하핫, 미인 아내를 둔 죄겠지요. ”
식탁으로 향하던 공작은 확 고개를 틀어 그녀를 살폈다. 열심히 요리 중인 그녀의 뒷모습은 전형적인 아내같다. 기분 탓인가. 방금 날 보는 것 같았는데.
“ 여보, 저는 일하러 갈게요. 맛있게 드세요. ”
“ 전처럼 산송장 만들지마. 상대를 봐가면서 해라구. ”
“ 호홋, 알면서.. ”
남편 뺨에 입을 맞추고 나가는 그녀의 걸음은 굉장히 특이했다. 춤이라도 추는 듯 허리를 잘룩잘룩 흔들며 나가는 엉덩이는 지독스런 요염함으로 가득하다.
“ 접대부입니다. ”
“ 뭐? ”
그는 크림을 잔뜩 묻힌 빵을 한입 넣어 삼키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오히려 공작은 황당해서 벌떡 일어날뻔 했다.
“ 자네는 아내를 사창가에 파는가? ”
“ 뭐 어떻습니까. 자기 좋다고 하는 일인데. 보시다시피 이곳에서 가장 비싼 몸이랍니다. ”
“ 때돈을 쓸어담겠군. 왜지? ”
“ 마치 저같은 남자가 이런 곳에 있으면 안된다는 뜻입니까? 그렇겠지요. 제 인생은 한가지 철학만 있습니다. 바로 즐긴다는 것. 즐기기 위해선 여러 가지 필요합니다. 지식이나 돈은 그 일부죠. 그녀또한 인생을 즐기고 있답니다. 덤으로 돈도 벌거요. 하지만 단 한가지. 유명세는 필요없어요. 그런건.. 귀찮아요. 쓸데없는 인맥이나 만들고 잡담이나 하려고 황금같은 시간을 낭비하기 싫거든요. ”
“ 특이한 성격이로군. 나로선 도저히 이해불가능한 이야기야. ”
“ 누구에게 이해를 해달라고 말안했습니다. 성함이.. 그.. ”
“ 내 소개를 깜빡했군. 나는.. 니슨일세. ”
“ 니슨 씨. 당신은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나요. 이제와서 산삼을 넘겨달라고 하셔도 글쎄요. 지금 현재로선 그만큼의 돈은 없어보이시군요. ”
그렇지. 놈들에게 빼앗겼지. 공작은 그 생각만 하면 이가 갈렸지만 목적은 이루고 싶었다. 그런 꼴을 당한게 너무나도 억울하니까.
“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지. ”
“ 아니요. 제가 묻는건 용도입니다. 당신의 병은 천년 묵은 산삼 따위로 해결못해요. 아아, 물론 산삼은 체질까지 건강하게 바꿔주는 굉장한 보약이지요. 그렇다고 만병통치약이 아니에요. 음? 아아, 뭔지 맞춰볼까요? 흐음, 제가 보통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계시겠지요. 성인용품을 판답니다. 섹스에 관련된 여러 가지 도구들이나 정력제 따위를 팔지요. 산삼은 정력제에 아주 좋은 재료입니다. 그럼 답은 한가지. 성적으로 뭔가 해답을 찾고 계신거죠? 나이도 그렇게 지병도 앓는 약한 몸이니 발기부전 쯤 되시겠군요. ”
“ 크.. 정말 신비한 남자로군. 점쟁이라도 하지 그래. ”
“ 오래전에 해봤어요. 관상학을 좀 배웠거든요. 돈이 별로 안되서 며칠하다 때려치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까운 시간을 날려서 화가 납니다. ”
“ 자넨 대체 못하는게 뭔가. ”
“ 의외로 많아요. 요리나 세탁 같은거? 어쨌든 잘 찾아오셧습니다. 산삼은 못드리지만 발기부전 치료제를 한첩 드리지요. ”
“ 정말인가?! ”
“ 그 전에 좀 기다려주세요. 밑에 환자들을 보낸 뒤 이야기합시다. ”
“ 얼마든지 기다려주지. ”
그의 집은 하나의 큰 건물로 아래층부터는 전부 상점이었다. 난생 처음보는 자위도구들. 그것도 여자만 쓴다던 그 소문의 딜도부터 해서 남자또한 자위에 쓰이는 도구가 여러 종류로 잔뜩 있었다. 낯뜨겁고 상스러운 물건이지만 의외로 손님이 많았다.
“ 아 실례. 미안하군. ”
“ 나야말로 미안하오. ”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간 허름한 복작의 남자는 얼빠진 표정으로 여기저기 도구들을 살피는데 공작은 그 남자를 다시 살피다 소름이 돋았다. 스코너 자작? 워싱턴 후작파의 일원으로 비록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안면은 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열심히 물건들을 만져보고 비교하는 중이다. 설마 저 시커먼 딜도란 걸로 아내를 괴롭힐 생각인가?
“ 그건 그렇고 왜 입구로 들어오셨습니까? 돌아서 오시면 될텐데. 본 건물의 입구는 두 개입니다. 위치가 두 지역의 접전 중심이라 한쪽은 매춘굴 다른 한쪽은 재래시장과 연결되어 있죠. 시장쪽으로 오시면.. 뭐, 됐습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비밀이 있는 법이지요. ”
1층에 내려오자 그가 말한대로 환자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젊은 여성들이 대다수인데 아마도 창녀같았다.
“ 좀 기다리셔야할테니 지하의 서재에서 책이라도 읽으시렵니까? ”
“ 그러지. ”
그가 열어준 문으로 내려가자 공작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등불 아래로 가득한 책장 사이에서 시커먼 갑옷의 기사가 앉아서 이쪽을 보는게 아닌가. 그 역시 책을 읽고 있었다.
“ 아 이것 참! 기사님께선 돌아가셔도 됩니다! ”
아르젠이 뭔가 대단히 놀란 목소리로 외치자 기사는 책을 덮고 일어섰다. 족히 2미터는 되는 키에 시퍼런 대검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머금고 있다. 이상한 남자로군. 투구까지 쓴 채로 독서라니. 공작이 계단을 내려오자 그는 성큼성큼 움직여 올라가는데 시선이 공작에게 멈췄다.
“ 나에게 할말이라도 있소? ”
기사는 잠시 그렇게 쳐다봤을뿐 곧 밖으로 나갔다. 그가 읽던 책은 이상한 지렁이가 기어가는 문자의 책이었다. 첫페이지부터 끝가지 꾸물꾸물한 문자로 기록된 책을 훝어보고 밀어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서재에 놓인 책은 각종 각색의 이형의 문자로 쓰여져있었다. 대륙어를 쓰는 책이 많긴 했지만 그 외에는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알수가 없다. 어떤 것은 왠 그림만 붙어있는데 어떤 뛰어난 화가가 그렸는지 마치 실제와 같은 그림들이 크고 작게 붙어 있었다. 책에다 그림을 그리다니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군. 그림속에 사람들은 몸에 착 달라붙는 바지나 짧은 치마 따위의 이상한 복장이다. 대륙어로 쓰인 것도 별반 다를게 없다. 포드나 페라리란 단어 위에 놓여진 해괴망칙한 물체를 두고 박수치는 사람들. 반팔에 반자지의 흑인들이 공같이 보이는 물건을 두고 빼앗는 놀이를 한다던가 유행하는 옷차림이라며 여자들이 별별 괴상한 옷들을 걸친다던가. 공작은 일어나 책장 사이를 누볐다. 그리스 로마 신화? 우주의 신비? 모빌슈츠 제타 칸담? 그중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을 찾았다..
“ 카오스... ”
말그대로 혼돈. 그 책은 세계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주 오래전. 아득히 먼 과거. 시간마저 존재하지 않는 초월 공간. 칠흑같은 암흑 속에 검은 빛을 내는 카오스란 존재가 있었으니. 카오스는 빛이 있으라는 말과 함께 빛과 코스모스를 만들었다. 코스모스는 카오스의 거울같은 존재. 다시말해 형제이자 자매이며 부모 지간이면서 부부 사이가 된다. 질서란 이름의 그녀는 암흑에서 빛을 뿜으며 공간을 가르고 시간을 만들었다. 시간이 존재하는한 영원토록 무한한 숫자로 이어지는 차원 증식 시스템을 관리하기위해 초월생명체 즉, 신을 만들고 그들이 다스릴 우주를 만들었다. 빅뱅을 일으켜 탄생한 우주는 은하를 이루고 무리지은 별의 바다속에 무수한 생명을 만들어냈다. 혼돈과 질서.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대립은 어떻게 무슨 이유로 이루어졌는지 불명확하나 카오스는 코스모스의 부산물을 닥치는대로 파괴했다. 두 초월체의 대결은 무한한 세월동안 계속되었고 마침내 카오스는 스스로를 소멸시켰다. 그 파편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악!(惡) 타이탄을 비롯해 여러 악한 파괴신들과의 끝도없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코스모스는 모든 것을 종식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소멸시켰다. 마지막으로 남은 코스모스의 영혼마저 홀연히 사라지고 세계는 빠르게 안정을 취했다는 이야기다.
“ 대단해. 허무맹랑하지만 그럴 듯 하군. 이런걸 어디서 구한거지? ”
그는 책장에 꽂으려는 찰나. 옆에 꽂힌 책에 흥미가 생겼다. 누군가의 일기였다. 제목도 작성자도 없지만 첫페이지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어떤 여성이었다. 무척 대단한 재상의 아내로 딸과 아들을 낳고 사는 이야기. 공작은 불연 듯 죽은 아내를 떠올렸지만 실소를 터트렸다. 그녀는 이렇게 지저분하게 휘갈기는 글씨체가 아니다. 유서깊은 명문가의 영양 답게 철저한 교육을 받아 글씨라면 공작보다 더 잘썼다. 활발하고 정열적인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처음에는 매일 간단한 한 두줄 문장으로 그날의 일을 써내려갔지만 둘째를 낳고 난 뒤부터 며칠 몇주 간격으로 한페이지를 썼는데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했을때부터 시작이다. 이후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 타락한 여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싫었지만 점차 쾌락의 덫에 빠져 나중에는 비밀리에 열리는 가면 파티에 참석.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의 정액을 받으며 쾌락을 즐겼다.
“ 이제 끝났습니다. 어라? 그게 이곳에 있었나요? ”
아르젠은 약간 피곤한 기색으로 다가왔다.
“ 주인이 누군가? 이름이... 지워져있군. ”
“ 글쎄요. 어떤 부랑자한테서 돈 대신 받은 물건인데 나름 볼만하더군요. 재밌지 않습니까? 남편은 죽어라 일하는데 아내는 외간 남자들의 품에 안겨 허우적대는 전형적인 스토리지만 그건 좀 특별한 재미가 있더군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변태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저지른다는게 흔치 않아요. ”
“ 가면 모임이란거 소문만 들었는데.. ”
“ 아직도 있습니다. 얼마전에 가봤거든요. 다들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하나같이 변태들이죠. 저는 별로 재미 못봤습니다만 원하신다면 안내원을 소개시켜드려요? 비밀스런 모임이라 첫 참가자들은 눈을 가려서 데려가는데.. ”
“ 됐네. 관심 없어. ”
볼수록 신비한 남자다. 그는 모르는게 없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척 시치미를 때는 듯한 그런 분위기와 말투속에 기묘한 매력이 있었다. 시간은 벌써 밤이 되었고 닫혀진 가게 안에 남은 점원들이 열심히 청소 중이다. 그는 깔끔하게 정돈된 약제실을 보여주었다. 수백개의 서랍 속에서 몇 개의 재료들을 꺼내 빻아 가루로 만들고 종이 위에 모아 곱게 접자 한첩을 완성. 예의 일기장을 펼쳐 그 사이에 꽂고 닫아 공작에게 건냈다.
“ 이거면 되는가? ”
“ 물에 타 드시면 됩니다. 효력은 십분 이내에 발동하며 사정 후에도 금새 발기할겁니다. 횟수는 상관없으나 24시간이 지나면 약빨이 떨어지니 유의 하시구요. ”
“ 한번에 24시간이라.. 몇 개 더 주면 안되나? ”
그 말에 아르젠은 대뜸 공작의 가슴팍에 손을 짚었다.
“ 니슨씨는 폐병을 앓고 계시죠? 그럼 이 약은 맹독입니다. 보통 한첩 정도로는 열흘에 한번 섭취해도 괜찮으나 그 이상 복용하면 몸의 여러 장기에 무리를 주어 대단히 위험합니다. 일단 이걸로 몸에 맞는지 확인 해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다음에 또 오십시오. 아아, 이건 서비스입니다. 공짜로 드리죠. 돈 받고 팔았는데 별 효과 없으면 서로 마음만 상하잖아요. ”
“ 고맙군, 그런데 내 주치의가 될 생각은 없는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네. 어떤가. 나는 자네의 실력을 원하고 자네는 돈을 원하니 서로 득이 되는 거래가 아닌가? ”
“ 찾아오시는건 몰라도 제가 찾아뵙기엔 너무 바쁘군요. 병자가 니슨씨 혼자만 있는게 아니랍니다. 혹시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내가 특별해? 공작은 잠시 생각했다. 막대한 부와 한때나마 거머쥔 최고의 권력. 이 둘으로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다. 그는 거리낌없이 대답했다.
“ 그렇다. ”
“ 그렇게 대답하실 줄 알았습니다. 이것으로 당신이 얼마나 높은 위치인지 알겠군요. 뭐, 그렇다해도 이곳에서 한발자국도 나갈 생각은 없습니다만. 제 눈엔 당신이 누구든간에 다른 병자들과 마찬가지로 병든 노인일 뿐입니다. 가보세요. 다음에 오실때는 돈도 잊지 마시구요. ”
마차를 못찾으면 어쩌나 싶던 걱정도 기우였다. 가게를 나선 공작은 시장 광장 중심이 보이자 피식 웃었다. 한참은 늦은 시간에 나타난 공작을 보고 마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달려왔다.
“ 마리엘 아가씨가 걱정하십니다. ”
“ 늦었군. 그래... 어서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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