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반(反)영웅-(부제: 로얄 블러드) - #8 복잡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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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684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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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몰래 드골을 자신의 처소로 부른 로자리아는 란셀롯에 대해 물어보았다.
 
물론 전에 들어둔 적이 있었지만 혹시라도 지금의 란셀롯이 그로 가장한 제국의 스파이일 수도 있음을 가정해야만 했다.
 
(그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오래도록 받은 이가 가짜일 것 같진 않지만....)
 
약사 로렌조를 통해 란셀롯이 당한 상처가 오랜 시간 꾸준히 받아온 것임을 알고 있기에 로자리아는 그를 믿고 싶었다.
하지만 한 집단의 리더라는 것은 항상 모든 위험을 상정해두어야만 했다.
 
그녀가 이끄는 집단 "광휘의 메르체트"는 현존하는 로드리아의 마지막 저항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만큼 제국들은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을 쫒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그녀들의 위치가 발각된다면 매우 큰 위험에 봉착하게 될 것임이 분명했다.
 
(제국들로써는 그 어떤 치졸한 속임수를 쓰더라도 우리들을 찾고 싶어할테니까 말야.)
 
그녀는 잠시 란셀롯을 떠올려 보았다.
 
(란셀롯 오라버니...)
 
붉은 매의 전(前)수장이자 불패 신화의 주인공.
현 대륙의 가장 실세들인 두 개의 제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희대 전술가.
역대 전략사를 뒤집어 놓은 획기적인 사고의 천재.
 
그녀는 그런 란셀롯이 스파이가 아니길 간절히 바랬다.
그녀가 느낀 건 그저 아주 미묘한 착각에서 비롯된 오해였다고 말이다.
 
"...그 말은 현재의 그 분이 의심스럽다는 것 입니까?"
 
드골 또한 오랜 역경을 헤쳐온 백장노장.
그는 로자리아가 걱정하는 바를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흐음. 왕녀전하의 그 걱정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지난 밤에 저희 둘이 나눈 대화 중 일부분은 진짜 그 분이 아니라면 모르는 이야기가 다수 섞여 있었습니다."
 
드골은 장담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그의 곁을 보좌해왔던 그는 전날 만났던 이가 7여년을 같이 저항활동에 힘썼던 붉은 매의 란셀롯임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녀님...)
 
오히려 드골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겨우 만날 수 있었던 혈육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로자리아의 지금 처지가 불쌍했다.
 
(역시 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 일까...?)
 
[로드리아의 강철꽃[이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매사에 냉철해질 수 밖에 없는 로자리아 왕녀를 보며, 이전에 모든 이들을  의심을 하고 감시하던 란셀롯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드골이었다.
 
"그렇군요...그럼 다행이고요."
 
란셀롯을 보증하는 드골의 대답을 들은 로자리아는 비로서 찡그렸던 인상을 살며시 폈다.
만일의 가능성까지 고려해 볼 수 밖에 없었던 로자리아로서는 드골의 확답은 그 어느 것보다도 위안이 되었다.
드골은 천상 무인이었으나 그렇다고 남에게 쉽사리 속을만한 이도 아니었다.
만약 란셀롯이 가짜였다면 오랜 시간동안 그와 함께 했던 드골이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를 완전히 풀 필요는 없겠지.)
 
이미 그에게 의심을 품고 있던 그녀는 아군의 요새를 탐색하는 듯한 란셀롯의 행동을 발견하고는 더욱 자신 안의 의구심이 깊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메이드의 부축을 받고 오붓히 산책을 하는 듯한 행동.
하지만 그녀의 직감은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눈 앞의 사내는 위험하다고.
그는 뭔가를 노리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낮에 란셀롯과 메이리가 요새 안을 같이 둘러보던 모습을 목격했던 로자리아는 한편으로는 의심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마음 속에 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함과 초조함에 동요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뭔가 분했어.)
 
겉보기엔 삭막하고 냉정할 것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메이리와는 매우 다정하게 얘기를 하며 간간히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쓴웃음이었지만 로자리아에게는 즐거운 듯 웃는 모습 같았다)
 
왠지 오랫동안 동경하고 있던 오라버니를 남에게 빼앗긴 기분.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불쾌했다.
 
란셀롯과 그녀가 서로를 접해볼 수 있었던 기회는 솔직히 손가락으로 뽑을 정도였다.
그런데다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때조차도 서로에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알게 되던 란셀롯이란 인물은 그를 아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들은 것이나,
저항군 활동을 통해 듣게 되는 그의 무용담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 안에 이상적이고 멋있으며 용맹한 오라버니를 그릴 수 있었고, 동경을 해왔었다.
혼자만의 상상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의 허상을 존경하며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왜 메이리에게 그런 분을 빼앗긴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일까?

메이드인 메이리를 란셀롯에게 붙여준 것은 다름아닌 로자리아 그녀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메이리라면 안심하고 란셀롯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그녀가 메이리에게 그런 이상한 기분을 느껴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모르겠어.)
 
알 수 없었다.
아직 사랑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로자리아에게는 그런 미묘한 감정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단순히 오라비를 빼앗긴 여동생의 마음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그저 자신의 것이었던 것을 다른 누군가 빼앗긴다는 느낌이 강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왕녀님. 외람되어나 이전부터 말씀드려왔던 사안이온데 이시스 국의 왕세자와의 혼담은 이대로 계속 미루실 생각이신지요?"
 
드골은 란셀롯에 대한 의심이 일단락 된 듯 싶자 로자리아 왕녀에게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사안을 꺼내놓았다.
 
이시스 왕국은 로드리아의 오랜 동맹국으로써 오래 전부터 로드리아 왕국과는 친밀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다.
여러 차례나 서로 간의 왕족들이 혼인을 한 적이 있어서 어찌보면 혈맹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곳이었고, 어려운 로드리아 저항군의 활동을 몰래 뒤에서 지원해주는 든든한 지원줄이기도 하였다. 
 
이미 여러차례나 큰 도움을 받은 바 있어서 이시스 왕국의 혼담은 쉽사리 거절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로자리아는 잠시 눈을 감고는 생각에 잠겨야 했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그 건은 아직 때가 아니예요. 드골 장군. 아니, 그보다 오히려 오라버니의 혼담을 먼저 찾아봐야 하는 것 않을까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뜬 로자리아는 드골에게 란셀롯의 혼담에 대해 물어보았다.
 
현재 란셀롯의 나이는 스물 아홉이었다. 열아홉에 저항군 활동을 시작해서 7년을 보내고 그 뒤로는 제국에게 사로잡혀 3년을 지하감옥에서 고문으로 보내느라 나이를 먹어버린 그는 혼기를 한참이나 놓친지 오래였던 것이다.
 
드골 역시 로자리아의 혼담을 얘기하기엔 아직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란셀롯에 대한 말을 꺼내자 그녀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자님의 혼담이라...그렇군요. 생각해보니 더 늦기 전에 그 분의 혼담 먼저 찾아봐야 하겠군요."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보통 스무살 전후로 결혼을 하고 왕족들은 그보다 좀 더 일찍하는 워랜드에서 란셀롯은 노총각 중에서도 노총각이었던 셈이다.
 
"...오라버니가 전에 좋아하던 여인이나 관계를 갖고 있던 여인은 없었나요?"
 
순간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지만, 말을 하고보니 아차 싶은 로자리아였다.
 
"에...? 내가 왜 이런 걸 물어보는거지?"
 
로자리아의 질문에 난처한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놀랍게도 드골이었다.
 
"예? 에에... 그게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저 그것이..."
 
언제나 강직하고 자신만만한 드골이었는데, 그런 드골이라도 뭔가 말하기가 어려운 듯 보였다.
 
(뭐야, 그럼 정말 전에 그런 여자가 있었던 거야?)
 
드골의 반응을 본 로자리아는 그 상대역의 여자와 란셀롯이 꽤나 깊은 관계였다는 걸 알 수 있어 로자리아는 가슴이 콕 콕 쑤셔왔다.
란셀롯이 결혼까지도 생각했었던 상대라니...
도대체 그녀가 누구였을까?
 
순간 왠지 다시금 기쁜 듯 서로를 보며 웃고 있는 란셀롯과 메이리의 이미지가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욱씬 욱씬!
 
따끔거리는 아픔이 순간 가슴에 일어났다.
드골은 그 후 앞으로의 군단의 계획들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헤어졌다.
그런 드골을 보낸 뒤로도, 아니 회의를 하는 내내 로자리아는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 정말. 오늘은 내가 왜 이러지? 잠시 찬 바람이라도 쐬어서 기분 좀 전환한 뒤 돌어와야겠네.)
 
로자리아는 란셀론에 대한 생각 때문에 계속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로자리아는 애써 마음 한 켠으로 몰아넣었다.
그런 사소한 감정을 신경쓰기에는 그녀가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딜런."
 
로자리아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의 부름과 함께 어디선가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네, 왕녀님."
 
로자리아는 그런 그의 등장에 놀라지도 않은 체 명을 내렸다.
 
"란셀롯 오라버니의 주위를 좀 신경써서 감시해주세요. 기본적으로는 그 분에 대한 보호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분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언제나 염두해두고써 만일의 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로자리아는 그녀의 심복인 딜런에게 란셀롯에 대한 것을 일임하기로 하였다.
그 누구보다도 그녀의 뜻을 잘 아는 딜런이라면 모든 것을 잘 처리해 줄 것이다.
 
"예. 모든 것은 전하의 명대로."
 
딜런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이걸로...)
 
로자리아는 복잡한 한숨을 내쉰 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방을 나섰다.
 
하지만...
 
그녀는 진정 모르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느낀 감정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커 갈 것인지 말이다.
 
그대로 놔두면 치명적으로 변해가는 극독처럼 그녀가 마음 한 구석에 던져놓은,
그 미세한 감정은 서서히 그리고 그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마음 안에서 그 크기를 키워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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