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집안 이야기, 그 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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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9,625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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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이야기 그 전 (21)>

 정용은 함께 나온 누이 동생 때문이라도 이런 시비에 말려들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데 술을 먹은 군인 녀석 하나가 정용이 있는 자리로 슬슬 다가오며 정아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어이, 학생 예쁜데 -- ”

 꼭 이런 데만 오면 양아치 같은 녀석들이 걸려드는지 정말 모를 지경이었다.
 둘 다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고 있었고, 둘 다 나이에 비해 훨씬 숙성한 몸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이 군인 녀석은 정용과 정아가 애인 사이가 아닌가 싶었던 모양이었다.
 한쪽에서는 술 값, 음식 값을 못내겠다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지 않나, 한쪽에서는 술 취한 군인 녀석 하나가 다가와 그들에게 시비를 걸지 않나 -- 그러자 손님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다 나가 버렸다.
 단 정용과 정아만은 군인 양아치 녀석의 시빗거리가 되는 바람에 나가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붙들리고 말았다.

 정용은 손을 쓰려면 단번에 쓸 수도 있었지만, 주인은 반대편 쪽에 있고, 또 이 양아치 같은 군바리 녀석은 빈정거리며 시비만 걸지, 덤벼들지도 않는 폼이 술 취해 주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정용이 미적미적하고 있는 찰라에 또 다른 패거리 녀석들이 확 들이 닥쳤다.

 “뭐야 -- 뭐야 -- 사장님, 어떤 녀석들인데 시비거는 거야! --- ”

 얼핏 보아도 몰려드는 녀석들은 열 댓 놈 가량 되어 보이는데, 인근 태권도장이나 권투 도장에서 운동하던 녀석들 같았다.
 밀어 닥친 녀석들은 도복 입은 놈이 절반 정도 되고 그냥 잠바때기나 걸친 녀석이 절반 정도 되어 보였다.
 그 녀석들 중에는 몇 놈이 등 뒤에 정권 주먹 그림과 함께 ‘영등포 청도관’이라는 도복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그 중 몇 놈은 각목까지 들고 있었다.

 “저 -- 군바리 새끼들 조져 버려!”

 이 녀석들은 들어오자마자 누가, 누구를 상대하는지 알고 왔나보다. 이놈들은 군복을 입은 오류동 패거리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한다. 그러나 오류동 패거리들도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다. 마치 복싱하는 자세로 가드를 올리면서 마구잡이로 오는 녀석들을 향해 반격한다. 중국 음식점 식당 안쪽 코너에 몰렸지만 청도관 녀석들도 대번에 이 군인 녀석들을 때려잡지는 못하고 있었다.

 정용은 정아에게 시비 걸던 군인 녀석도 어느새 자기 동료들과 합세하여 영등포 깡패 녀석들을 함께 방어하는 대열에서 열심히 치고받고 하였다. 정용도 정아에게 시비 걸던 녀석이 깡패 녀석들을 상대하는 꼬라지가 제법 괜찮아 보였다.

 정용은 옆에서 이들의 드잡이질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 참에 한 녀석의 도복에서 쓰여진 ‘영등포 청도관’이란 문구가 자기 눈앞을 스치는 것을 보며, 어디선가 보고 들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아, 어디서 들었을까?--” 고개를 갸우뚱 하며 생각하는데, 도장에서 온 녀석들 중 한 녀석이 “이 놈도 -- 그 놈이야?”하면서 옆에 서 있는 정용의 손을 확 비틀어 버리는 것이었다. 정용은 이 녀석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그 잠깐 사이에 자신의 손목이 비틀어지자 ‘어어’ 하면서, 자신의 몸을 회전방향으로 같이 돌리면서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원 위치에 도달하며 왼쪽 무릎을 꿇게 하면서 몸의 중심을 잡고 다시 오른발로 일어서려는데, 손목을 비틀던 그 녀석이 발길질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건, 참으면 안 돼지! --- ”싶어 정용은 일어서면서도 몸을 살짝 비틀어 자세를 바로 잡고, 자기 면상으로 들어오는 발을 손으로 가볍게 내쳤다. 들어오는 놈의 발길질이 그의 몸 왼쪽으로 벗어나면서 허방을 질러 버렸다. 동시에 그 놈은 엉덩방아를 찧고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그 때 주인장이 정용이 무릎 꿇고 그 녀석에게 발길질을 당하는 순간을 봤는지, “어, -- 그 사람은 아냐! 손님이야! -- ”하고 소리치는데, 청도관 깡패 녀석은 주인장 얘기는 듣지도 않고, 자기가 지른 발길질이 헛방이 된 게 거슬렸는지, 벌떡 일어나더니 정용의 안면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날리며 들어 왔다.
 정용도 처음엔 방심해서 아무런 방비도 없이 손목을 잡혔지만 그것만으로도 기분 나빴는데, 이젠 대놓고 들어오는 그 녀석의 정권이 아주 기분이 나빴다. 가볍게 머릴 숙여 그의 정권을 피하고는 오른손으로 ‘퍽’ 그의 가슴을 쳐냈다.
 정용은 가볍게 친 것이지만 들어오는 녀석은 마치 크로스 카운터를 거슴팍에 맞은 것이나 진배 없었다. 녀석은 보기 좋게 저만큼 나가 떨어졌다.

 생각 같아서는 ‘팍’ 요절을 내 주고 싶었지만, 싸움의 당사자도 아닌 터에 영등포 토박이들에게 골절상이라도 입히면 그것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닐 것 같아 손에 인정을 두고 질렀는데, 그놈이 두 번이나 나가 떨어지자, 이젠 정용을 향해 몇 놈이 한꺼번에 와르르 달려들었다.

 이젠 완전히 패싸움이 되어 버렸다. 정용은 어떻게 하다 보니 술 취한 오류동 패거리 군인 셋과 함께 한 편이 되었고, 영등포 청도관 녀석들인지, 깡패 놈들인지가 한 패가 되어버렸다. 정용은 되도록 움직임을 최소화하여 방어자세로 이 의미 없는 싸움판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낯 익은 얼굴 하나가 그 놈들 중에 눈에 띄었다. 바로 현 사장의 이 비서란 놈이다. 이 비서란 놈에게 있어서 정용은 이를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미운 놈이 되었다.

 이 비서란 놈은 정용에게 얻어터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 잘난 운전기사 겸 수행비서 자리를 내놓아야 되었다. 현 사장은 ‘중학생에게 얻어맞는 녀석을 어떻게 비서로 데리고 다니냐?’며 나중에 ‘사장이 위험에 처할 경우를 대비해서 수행 비서를 데리고 다니는데 이런 녀석을 누가 쓰겠느냐?’고 하며 곧바로 회사를 그만 두게 했다는 것이다.


 이 비서란 놈은 60년 중반에 국영기업이면 최고의 직장으로 간신히 얻은 직장인데, 그만 두라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며 자기를 그 직장에 넣어준 영등포 관장을 찾아가 하소연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 후, 이 놈은 자신을 이런 꼴을 만든 정용을 찾아 헤맸지만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게다가 방학을 해서 학교에 학생이 없으니 학교로 찾아가도 말짱 헛일이었다. 그 녀석은 그 후에도 성균관에도 몇 번 가보고, 삼청동 부근을 이리저리 헤매었지만 도저히 정용을 찾을 수 없어 그냥 영등포 도장이나 나가 관장의 잔 심부름이나 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그 놈도 정용의 얼굴을 보더니 “어, 너 --- 잘 만났다 ---”하며 대번에 알아보고, 군인 녀석을 상대하다가 말고는 옆에 있는 놈의 각목을 빼앗아들고는 마구잡이로 각목을 휘두르며 공격해 왔다.

 

 정용도 낯이 익은 이 비서란 놈을 보니, 이젠 그냥 두면 안 될 싸움으로 커져 버린 것을 알았다. 이 비서란 놈은 정용을 보자 아예 각목을 휘두르며 덤벼 들었다. 그 놈은 맨손으로는 정용을 상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또한 정용과 다시 한 번 붙는다 하더라도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관장과 함께 찾아 갔었는데, 그만 관장도 찾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 다닌다고 사람 많은데서 핀잔만 주어 이놈도 쪽이 팔린대로 팔린 상태였다.

 좁디 좁은 중국음식점은 장정들 스무 명 남짓이 치고 박고 던지고 부수니 아주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 비서란 놈은 인정사정 두지 않고 정용을 향해 각목을 휘두른다. 더욱이 정용은 여동생 정아를 자기 뒤에 보호하고 있어서 행동반경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용이 그 놈에게 맞을 정도는 아니었다. 먼저 그 놈이 휘두르는 각목을 뺏어야 했다.
 그 놈이 자기 머리를 향해 내리치는 각목을 두 손을 모아 받아내며, 동시에 두 발을 모아 냅다 그 놈의 가슴을 공격했다.
 각목을 쥐고 있으니 정용의 공격을 피하려면 각목을 놓든지 아니면 각목을 든 채로 가슴으로 정용의 두발 공격을 맞아내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이 비서란 놈은 정용의 발길질을 피하지도 못하고 그만 각목을 빼앗기면서, 정용의 두 발 당수를 가슴팍에 맞고 말았다. 말은 길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용은 그 기세를 이용하여 허리를 튕기면서 벌떡 일어섰다.
 이 비서란 놈이 갖고 있던 각목은 어느새 정용의 손에 들려 있었다. 자신의 가슴을 정용의 두 발로 호되게 얻어맞은 이 비서란 놈은 이쪽에서 저쪽 구석까지 주르르 밀려가면서 그만 머리를 벽에 쿵 처박고 말았다.
 그 녀석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가슴을 부여잡고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구석에 널부러져 있던 녀석이 자기 관장을 보며 소릴 지른다.

 “관장님 --- 저놈이에요! --- 내가 말한, 그놈 --- 말예요 --- 그놈이 저놈이란 -- ! 커헉 -- ”

 이 비서란 녀석은 얼마나 급한지 그만 말도 말도 제대로 다 못한다.

 “뭐? ---- ”

 이 비서란 놈의 말을 관장이란 놈도 알아 들었는 모양이었다.


 오류동 군바리 패거리들을 이리저리로 두들겨 패고 있던 파란색 추리닝을 입고 있던 삼십대 정도 된 남자가 오류동 패거리들과 싸우다가 말곤 고개를 돌려 각목을 빼앗아 든 정용을 바라보았다. 파란 추리닝 옆에 위 아래로 하얀 줄이 가 있었는데, 옆엔 ‘영등포 청도관’이라고 쓴 정권 모양의 로고가 박혀 있는 운동복이었다.
 꼴에 관장이란 놈은 추리닝에도 신경을 쓴 것 같았다. 60년 당시 운동복이 아주 귀한 시절, 부잣집 아이들이나 추리닝 운동복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니 관장이 입은 추리닝 같은 것은 일반 관원들은 입지도 못할 옷인 셈이다.

 관장 녀석은 오류동 패거리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관심을 접어두고, 정용 쪽으로 슬그머니 다가오는 것이었다. 정용은 각목을 들고 있는데 어쩐지 각목을 들고 있는 것이 어정쩡하고 신경이 쓰였다. 뺏은 각목인데, 마치 자기가 각목을 갖고 상대를 공격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만 각목을 옆으로 내던졌다.

 그런데 그게 마치 신호라는 듯 관장이란 놈은 정용에게 공격한다는 신호도 보내지 않고 정용을 향해 냅다 뛰어오르며 옆차기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 공격에 정용이 얻어맞지는 않지만, 어쩐지 다른 놈들과는 현저히 다른 몸짓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관장 녀석은 순간적으로 오른쪽 발로만 하단, 중단, 상단 이렇게 세 번의 공격을 했다.

 정용도 그 놈이 발로 하단을 공격하자 그도 발로 그 놈의 공격을 막으며 비켜섰다. 중단 공격은 몸을 돌려 피하며 그의 상단 공격을 손으로 툭 치면서 어긋나게 만들었다. 그러자 관장 놈이 “탓!”하고 소리를 지르며 정권으로 그의 몸통을 공격하였다. 잘못했다간 곧바로 명치를 맞게 될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순간 정용은 한 발을 뒤로 빼며, 허리 부근에 틈이 보이는 청도관 관장 녀석의 허리 부근을 수도로 쳐 나갔다. 관장 녀석이 훌쩍 뒤로 물러난다.

 “허, 꼬맹이가 제법인데? --- ”

 관장은 정용의 손속이 만만치 않은 것을 파악했나보다. 하긴 다른 동네가면 3단 실력은 된다는 현 사장의 비서 녀석이 손 한 번 겨루고 망신을 당했다면 어느 정도 고수일 게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몇 살 처먹지도 않은 까까머리 중학생인 것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하긴 이 비서란 놈이 중학생에게 얻어맞았다고 말할 리는 없는 것이고, 그저 성균관에 있는 등치 좋은 어떤 놈에게 맞았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청도관 관장은 김 교수를 찾아 갔지만 김 교수도 모른다는 녀석이니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혼을 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관장 녀석은 일격필살의 자세로 온 몸에 기를 모아 정용을 공격하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었다.

 관장 정도의 고수급 반열에서 정용같이 순진한 학생들을 상대로 꼼수와 비열한 수를 동원하면 이길 재간이 없는 것이다. 뭐, 눈에 물을 뿌린다거나, 연탄재를 날린다거나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다른 놈들을 동원하여 뒤에서 공격하기 등 난장판 싸움에서 이기려고 별 꼼수들 다 쓰는 게 이쪽 동네 깡패들의 못된 습성이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실력이 있더라도 여차하면 이놈들에게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중국집 문 앞에서 ‘삑!’하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큰 소리가 들려 왔다.

 “어이, 청도관! --- 너 관장이냐? 고만 해라!”

 정용이 청도관 관장을 공격에 대비하여 어떻게 반격을 해야 하나 생각하여든 찰라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밖의 소리와는 무관하게 관장의 주먹이 정용을 향해 지쳐 들어왔다.

 그 순간, 한 사람이 번개처럼 나타나면서 “이 새끼가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나!” 하면서 청도관 관장의 쳐들린 오른팔 주먹을 뒤에서 꽉 쥐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청도관 관장은 깩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만 손목이 그 사람에게 비틀리고 마는 것이었다. 청도관 관장 수준의 실력자를 뒤에서 손목을 잡아 비트는 수준이면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야이, 개쌔끼야! 나, 오류동 특무상사 김 상사야! 이 쌔꺄! -- 어디서 주먹을 함부로 휘둘러, 휘두르긴!”

 

 그런데 그 특무상사의 목소리는 어디선가 정용이 익히 듣던 목소리였다.

 그 소릴 지른 사람이 누군가 봤더니 그건 바로 김 중사 아저씨였다. 반가움에 그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 김 중사 아저씨 --- 저 정용이에요 --- 용이요 --- ”

 김 중사는 순간, 정용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되물었다.

 “누구 -- 정 머시개?---- ”

 “아니, 저, 정 - 용 -이에요. 부천 둔덕산 아래요! -- ”

 그러자 김 상사가 눈을 크게 뜨고 물어 본다.

 “그런데 니가 이 싸움판에 웬일이냐? --- ”

 “글쎄요 -- 저도 잘 모르겠어요. -- - 동생하고 영화구경하고, 짜장면 먹으러 왔다가 그만 ---- ”

 그러자 김 상사가 정용이를 보면서, 영등포 청도관 관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어이, 영등포 청도관 --- 너 일루 와봐!”

 

 김 상사는 청도관 관장에게 ‘관장’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그냥 ‘청도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청도관 관장은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김 상사 앞에 다가가 굽신하고 절하다시피 한다. 진짜 창피한 일이다. ‘관장’이란 녀석을 ‘관장’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데 ‘관장’ 녀석이 그 앞에 나가야 한다니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얌마, 청도관 -- 너 이 분이 누군지나-- 알고 덤빈겨? 이 자슥아! -- ”

 그러자 청도관 관장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며 뚱해진다.

 청도관 관장이 ‘아니 내가 어떻게 이런 좀만한 녀석을 알어?’하고 생각하는데 김 상사가 말한다.

“이 분이 정자, 현자, 정현(鄭鉉)님, ‘구월산 산신령’님의 자제분이다. 알아서 모시거라!”

 김 상사의 이런 소릴 듣자 청도관 관장은 “후 --- ”하고 한숨부터 내 쉰다.

 영등포 일대에서  깡패들이나 무도인들이 덤비지 않아야 할 인물이  몇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특무전대 김상사였다.
 그는 주임상사였지만 주임상사로 부리지 않고 모두 특무상사로 불렀다. 사실 특무상사란 직책은 6.25 전쟁까지만 있었다.
 그러나  뒤골목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이름이었다. 또한 전설처럼 전해져 온 이름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구월산 산신령"이다.  알려진 바로는 특무전대 게릴라 공작요원들의 무술 교관이라고 하는데 그의 실력은 얼마나 높은지 과장하며 경신술과 기공에 도사급이라고 불려졌다. 그런데 김 상사가 구월산 산신령을 진짜 산신령처럼 받들어 모신다는 것이었다. 

 ‘어쩐지, 쬐맨 녀석에게 당할 뻔 한 게 --- - ’

 

 그러자 이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정용이 김 상사에게 묻는다.

  “아니 그런데 김 중사, 아니 김 상사님은 어쩐 일이세요 --- ”

 “응, 난 저 새끼들 땜에 왔어 -- ” 하면서 오류동 군바리 녀석들을 손가락질 한다.

 “저 녀석들이 오늘 들어오는 날인데, 헌병대에서 연락이 왔거든. 영등포 어디서 군인 몇 놈이 술 먹고 행패 부린다고 신고가 들어 왔는데, 혹시 우리 애들 나가고 안 들어 온 놈들 있냐는 거야! 내무반에 연락했더니 요놈들 셋만 빠진 거야! 섬에 간다고 -- , 뭐 특박인지, 휴간지 줬대잖아! 글쎄---”

 헌병대에서 온 연락은 오류동 특무전대 군인들이 영등포에서 행패를 부리는데, 김 상사가 빨리 와서 이놈들을 데리고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김 상사는 여전히 「공군 20 특무전대 정보학교」의 주임 상사였다. 그러나 ‘주임상사’라기보다는 영등포 일대에선 ‘정보대 특무상사’로 더 잘 알려졌다. 그것은 어떤 깡패든, 어떤 도장의 관장이든 특무상사의 단 일격을 당해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용의 아버지 정현(鄭鉉) 즉, ‘구월산 산신령’에게 무술을 제대로 배운 김 중사는 진급하여 상사가 되었고, 정보학교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주임 상사가 되었다. 주임 상사의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도망 나간 미 귀대 요원의 귀대를 돕는 것이었다. 사실 오류동 특무전대 병사들은 휴가를 가면 거의 대부분이 제시간 귀대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귀대하는 날 영등포에서 술 먹고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고, 아주 착한 놈들이라야 오류동까지 와서 어영부영대다가 늦게 귀대하는 놈들이었다. 그래서 헌병대와 영등포 경찰과는 밀접한 정보 교류가 있었고, 그 중 가장 사고를 많이 치는 오류동 깡패 군발이 특무전대 주임상사는 부대의 온갖 살림도 도맡아 했지만, 그 중 하나가 부대 요원들의 원만한 군대 생활이었다. 사실 이들의 미귀(未歸) 사건을 모두 영창 처리하면 부대 영창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보다는 잘 구슬러서 훈련 잘 받도록 만드는 것이 국가와 사회에 이익이 되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주임상사인 그는 이런 저런 사회활동에 깊이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용에게 자초지종을 다 들은 김 상사가 청도관 관장에게 말한다.

 “얌마, 쟤한테 잘못했다고 빌어 -- ”

 청도관 관장은 죽을 맛이다. 김 상사란 놈은 쬐만 어린애들 앞에서 체면 안 서게 ‘얌마’, ‘점마’하고 관원들 앞에서도 ‘오라니’ ‘가라니’ 하면서 쪽 팔리게 한다. 한 번 덤벼보고 싶지만 아까 잡힌 손목이 지금도 얼얼한데 장난이 아니다. 이판사판 붙어봐야 김 상사에겐 파리 목숨이다.

 게다가 자신도 관원 애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두 학생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시비를 건 것이 오히려 자기네들 편인 것으로 낙착되었다. 물론 오류동 깡패 군인 녀석들이야 귀대하면 영창깜이라지만 정용과 정아를 먼저 건들인 것은 자기네들이었다. 더욱이 오류동 특무전대 김 상사와 아는 사이라는데 영 찝찝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어서 청도관 관장은 “얘, 우리가 잘못했다”라고 싹싹하게 사과하고 물러섰다.

 그것을 옆에서 이 비서란 놈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된 새끼가 우리 관장보다 더 실력이 좋아?’

 그러나 이 당시의 정용의 실력은 사실 관장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실전 무술의 대가인 김 상사가 옆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관장은 정용에게 꼼수를 부리다가 김 상사에게 현장에서 걸린 것이기에 더 더욱 말하기 곤란했다.

 

 김 상사는 벌어진 사건을 후다닥 정리하고 만다.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어 본 것이 아니란 투로 중국집 주인에게는 ‘뭐 부서진 것 없냐?’고 물어보고, 관장에게는 ‘다친데 있는 녀석 나오라’고 한다. 마침 정용에게 처음 얻어 맞은 녀석과 이 비서란 녀석이 쿨럭거리자, 가까이 가서는 등을 몇 차례 두들겨 주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이 쌔끼들아!!”하면서 일어선다.
 그런데 김 상사가 몇 번 두드리자 얻어맞은 녀석들은 호흡이 펑 뚫리는 느낌을 받으면서, 저절로 이마에 땀이 주르르 흐르는데 몸이 확 풀리는 것이었다.

 김 상사는 청도관 관장에게는 “관장, -- 나중에 내가 한 번 나와서 소주 한 잔 살께! -- ”하곤 오류동 군인 세 명을 데리고 나간다. 소주 사는지, 안 사는지는 나중 일이지만 ---

 그리고 정용에게, “야,-- 니네들도 가자!”고 큰 소릴 친다. 길가엔 이미 군용 지프가 와 있었다.

 정용과 정아가 지프를 타자 김 상사는 정용에게 말한다.

 “넌, 저런 놈들하고 싸우게 되면 조심해야 돼!”

 “왜요?-- ”

 “너 저 놈이 너한데 고추가루 던지려는 -- 거 봤어?”

 “아뇨? -- ”

 “내가 그놈이 식탁 위에 고춧가루 손에 집어넣는 걸 봤거든”

 정용은 식은 땀이 났다. ‘세상에나! -- 별 거지같은 놈들이 다 있네!’싶다가도 그런 난장판 드잡이질에, 뭐가 뭔지 모르는 싸움판에, 맞는 놈만 손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의미도 없고, 아주 이상한 싸움판엔 절대로 끼어들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래저래 중국집만 난리가 났다. 매상의 손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싸움판을 벌려 집기 부서진 것, 음식 먹고 달아난 것 등은 아무런 놈도 갚아 주지 않았다. 당시 주로 인천을 통해 들어왔던 중국인들은 음식점을 해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60년대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법에 따라 그 전까지 돈을 많이 벌었던 중국인 화상(華商)들은 자산(資産)을 거의 상실하고 만다. 게다가 60년대 초까지는 중국음식점을 대부분 화교(華僑)들의 독점하고 있었으나, 이들은 70년대 들어오면서 정부에서는 무거운 과세, 쌀밥 판매금지, 가정의례 준칙의 엄정 준수 등의 화교들을 향한 배타적이며, 차별적인 이민 정책으로 이들이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이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정용은 정아와 함께 군용 지프의 뒷자리에 앉았다. 물론 군바리 녀석들은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벌을 받으며 귀대하게 되었다. 김 상사는 정용과 정아 두 남매를 집 가까이 데려다 주곤 귀대하였다.

 오류동을 거쳐 둔덕산 쪽으로 오는 길에 정용은 자신이 평소에 가장 궁금했던 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던 김 상사에게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궁금하다’고 말하자 김 상사는 딱 한 마디하고 입을 다물었다.

 “니네 아버지는 절대 죽을 사람이 아니다!”

 정용이 묻지 않을 수 없어서 또 묻는다.

 “그럼 어떻게 된 거예요?”

 김 상사는 무겁게 대답하였다.

 “나도 그건 모른다. 알아도 너한테 얘기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모른다.”

 두 사람 사이에 한참 침묵이 흐르다가 김 상사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

 “니가 좀 더 크면 ---부대나, -- 병무청이나, 그런데 알아봐라. 그럼 알지도 모른다. 그리고 니가 좀 더 크면 한 번 날 찾아 와라 ---”

 그렇게만 대답해 주고 김 상사는 부대로 돌아갔다. 정용은 아버지가 죽은 것인지, 행방불명이 된 것인지, 아니면 제 3국에라도 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 대답을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정용은 이젠 적어도 한 가지 답은 찾았다. 그의 아버지가 죽지는 않았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었다.

 김 상사는 “니네 아버지는 절대 죽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용의 마음속에 이 말이 메아리쳤다. “니네 아버지는 절대 죽을 사람이 아니다!”

 정용은 마음 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그래, 맞아 우리 아버진 죽을 사람이 아냐!’

 그런데 한 가지 의혹이 떠올랐다. “그럼? 안 죽었다면 --- ” 안 죽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아버지를 찾아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정용은 정아와 함께 둔덕산 언덕을 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무예를 더 깊이 연마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였다. 공부도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졌다. 아버지가 죽지 않고 살아계신다면 그런데도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건 분명 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아버지가 무예의 고수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란 사실은 물어 보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었다. 

 정아는 짧은 해로 이미 어두워진 집으로 가는 둔덕산 길을 오르면서 두 손으로 오빠의 오른손을 붙들고 가면서 생각에 잠긴 오빠의 너무 잘난 얼굴이 우수에 잠기는 걸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난 이 남자를 죽어도 사랑할꺼야"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주 엉뚱하였다.
 “오빤, 무슨 생각을 -- 그렇게 골똘하게 하는 거야?”


 정용은 누이동생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한참 있다가 그냥 아무 의미없는 대답만 한다.

 “으응 --- 그저 --- 아이, 싸가지 없는 놈들 때문에 우리 정아와 데이트만 망쳤잖아!”

 정아는 오빠가 자기와 "데이트"를 했다는 말에 그만 기분이 좋아졌다.

 “난 오빠랑 같이 있어서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 난, -- 정말, 괜찮았어 -- ”

 정아는 오빠 곁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듯 아양을 떤다.

 정용은 그런 누이동생이 너무 사랑스럽다.


 지프에서 내려 준 덕에 집까지 가는 길은 금방이다. 보통은 큰길에서 정용의 발결음으로는 한 삼십분 걸음이다. 그런데 이십분 정도 걸을 길을 지프가 움직여 주었으니 십분 정도 갈 길이다. 물론 그의 집 앞에까지 갈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철망으로 만들어진 큰 문을 열고 닫고 해야 되는데 그건 번거로운 일인 것을 김 상사도 알고 정용도 알기에 지프가 돌릴 수 있는 곳에서 돌려 부대로 가고 정아와 정용 두 남매는 잠시 걸어서 올라가도록 하였다.

 정용은 어두워진 십이월의 겨울 길을 누이동생과 함께 올라가면서 자신의 품에 꼭 안아 주었다.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데, 내 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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