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세상의 저편에서...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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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666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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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저편에서 ... 7장   그들의 관계..

 

1997년 8월 16일 AM 07:00분

뉴욕 맨하탄시 뒷골목의 어느 허름한 모텔

 

시차의 문제인지 자고 일어났지만 아직도 피곤이 몰려온다. 북조선에선 지금 이시간이면 뭘 하고 있을까..


평양과 개성을 왔다 갔다하며 드라마 촬영을 할때까지만 해도 북조선의 식량 문제를 인지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봤던 실상은 너무도 놀라움 그자체였다. 남조선 티비의 북조선 식량 문제를 언급하며 자료 화면을 봤을땐


정말 저것이 내가 살아왔던 조국인지 의문이 들때가 많았다. 하지만 얼마전 함경북도에 우연히 촬영을 하러 갔을때의


그 충격적인 공포는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병원침대에 누워 아무 힘도 없이 주는 죽만 받아 마시고 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은 뱃가죽과 등이 붙어있는것처럼 보였다. 머리만 빼고 그 밑으론 전부 가죽만 남아있다고 봐야 마땅했었다.


그 아이들은 우리들이 도착하여 둘러보고있을때도 힘없는 동공이 풀린듯한 눈으로 우리를 지켜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아이들의 슬픈눈빛을 난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또한 그마을 주민들의 시체가 대로변 한가운데 쌓아져 불타고 있던것도


난 아직도 잊을수 없다. 그들이 무슨죄가 있기에 이렇게 처참히 죽어나가야 한것일까?


난 그들을 위해서 나와 혜영이 남조선으로 들어가 북조선의 실정을 알려야만 했다. 또한 그에 따른 위험 부담감도 컸다.


그에 대해 나와 혜영은 당 간부들의 눈에 벗어나기 위한 연극 아닌 연극을 펼쳐야만 했다.


아마도 그는 알고있을것이다. 나와 혜영이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것을.. 지금 그도 당의 눈길을 피해 고심하고 있을게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옆자리에 누워 자고있는 혜영의 얼굴에선 긴장감이란 찾아볼수 없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게 잠을 자고있는 혜영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고


난 잠시 먹을것을 찾으러 밖으로 나왔다. 뒷골목의 모텔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이 지나다니질 않았다.


어찌보면 다행이기도 했다. 서양남자들은 동양여자를 좋아한다고는 들었지만 다행히 그런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한참을 걸은뒤에야 난 작은 마켓을 찾을수가 있었고 그곳에서 몇가지의 먹을거리를 살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도 부지런한것처럼 보였다. 북조선에선 사람들이 아침 6시면 일어나 밭과 논을 가꾸곤 했었다.


이렇게 큰 대도시에서도 그런것을 보니 사람사는건 거기서 거기같이 보였다. 우리가 묵고있는 모텔에 다다를때쯤 모텔 앞쪽에서


처음보는 동양인 남성 두명이 서성대느것을 보았다. 그들은 쉴새없이 무전을 하며 우리가 묵고있는 모텔창문쪽을 쳐다보곤 했다.


난 그들을 신경쓰지 않으려 하며 모텔을 들어섰다.  "매화." "!..." "매화." "장미.." "먹을거 사가지고 오는거요? 앞으론 우리한테


이야기해주면 사다주도록 하겠소. 아까 어린동무는 잠깐 공원가는듯하던데.." "그렇군요. 고맙습네다. 그럼 수고하시라요."


그들을 뒤로하고 난 우리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다행히도 우리가 방을 비운사이에 들어오지는 않은것 같았다.


여행가방에서 한벌의 옷을 꺼내기 위해 뒤적거리고 있을즈음.. 한장의 사진이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혜영의 소학교 졸업사진.. 그 사진속에서의 혜영은 무언가 잔뜩 움추리고 있었고 난 그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그날은 혜영에게 가장 슬픈 날이 아니었나 싶다.  혜영의 아버지가 그날 사고로 목숨을 잃었던 탓이리라


당시의 나와 혜영에겐 슬픔과 충격이 몸속에 너무도 깊게 베여 내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질듯만 한것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왜 이사진을 가방속에 넣어두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무작정 쑤셔박는 탓에 같이 들어간듯 하였다.


이제 과거는 잊어야만 할거 같다. 아마도 남편은 하늘에서 우리가 그러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


난 사진을 찢어버리고 화장실 변기속에 던져버리고 물을 내려버렸다. "콸콸"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의 과거는 사라지고 말았다..

 

 


1997년 8월 16일 PM 18:40분


대한민국 서울 특별시 중앙 정보부 상황실

 


상황실 모니터속엔 또다시 북측으로 향하는 전화가 포착됐다. 대남작전을 위한 또다른 메시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번엔 땅굴도 그렇다고 공중납치도 아닌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상황실의 신참 김희주는 모니터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하루에 두번씩이나 전화를 하는것은 이상했다.


그동안 교육을 받으면서도 이런 상황은 거의 없다고 배웠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김희주는 찜찜한것을 뒤로 하고


기밀문서 한켠에 다시 발신 뉴욕  수신 함경남도라고 기재했다. 선배인 박정수는 이미 퇴근한뒤였다.


고작 전화한통이 더 들어갔다고 박정수에게 다시 물어보기위해 전화하기는 또 그랬다.


선배인 박정수도 어엿한 가장이었고 엄연히 와이프와 아이가 있었다.


김희주는 그것을 떠올리곤 고개를 가로저어 버리곤 빌려온 책한권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훗날 그것이 어떻게 됐을지는 그녀도 몰랐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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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10일

 

"오늘은 우리가 이곳 퀸즈로 온지 벌써 한달여간의 시간이 흘렀다."


"나와 혜영은 점차 이곳의 생활에 적응을 하고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에선 벗어나질 못한다."


"그들은 시도때도없이 우리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을 하곤 한다. 처음엔 무섭기도 하였으나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됐다."


"이곳 퀸즈는 동양사람들이 꽤 많이 살고있다. 그덕택에 우리는 밖으로의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있다."


"그들이 우리를 보면 의심을 하게 될것이고 이곳 뉴욕의 경찰 수사망이 좁혀져 올것이었다. 물론 자유의 나라지만 북조선과


미국의 관계가 어떤지는 나도 알고있다. 또한 한인 학생들의 눈길도 무섭다. 그들은 우리를 동포로써 보는게 아니라


당연히 신고해야하는 1순위로써 볼것이다. 아무래도 이곳보다 한인학생들이 적은곳으로 이동해야 할것 같다."


"위즈콘신 주로 이동을 해야할것 같다. 그곳은 극소수의 한인들만이 거주하고 있다는것으로 들었다. 당쪽에서 어떠한


조치가 취해져야 할것 같다. 그들로써도 이곳은 부적절한곳으로 보일것이다. 내 딸 혜영은 여전히 이곳에서 자유분방하게


외출을 하고 한인학생들을 만나러 다니곤 한다. 나이가 나이인만큼 이제 여자가 되어가고 있다는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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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9월 10일  김명숙의 일기장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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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25일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혜영이가 그만 다른 한인 학생과 사귀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당쪽에선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그쪽에서 눈치를 채게 되면 우리의 신변이 위험하다. 또한 그 한인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까지도 혜영을 마음에 들어하는것 같다.


이 소문이 퍼지게 되면  우리의 신변이 어찌 될지는 불보듯 뻔하다.  아무래도 서둘러서 이동을 해야 할것 같다.


어차피 당쪽에서도 이미 다른곳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떨어졌기에 혜영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틈을 줄순 없었다."


"지금 이 일기를 쓰고있는곳은 위즈콘신 주 로 이동하는 차안이다. 혜영은 옆자리에 앉아 곤히 잠들어있다.


서둘러 떠나는길 새벽이라 피곤할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의 작전을 위해 당에선 자가용 한대와 기사를 붙여주었다.


기사는 다행히 미국국적을 가진 남미 사람이다. 희미한 차안의 전조등 안에서 이 일기를 쓴다. 바깥의 색이 푸르다.


날이 밝아오는듯 하다. 차는 어느덧 펜실베니아 주로 들어온듯하다. 이제 얼마나 가야 할까.. 이곳의 대륙은 너무나도 넓다."


"나도 이제 눈을좀 붙여야 할듯 하다. 아까부터 우리의 뒤를 따르는 차들이 있다. 아마도 그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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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9월 25일

                                                                                                           김명숙의 일기장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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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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