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혼자하는 즐거움 16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121회 작성일 17-02-12 11:26

본문

16.벌

아! 그 남자를 처음 본 순간 난 그냥 반해버렸다.

우아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어느 파티에서였다. 거기서 그는 보드카 몇 잔에 자제력을 잃고, 스포츠맨 기질을 살려, 내게 대담하게 추파를 던졌다. 점잖음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지만 전혀 밉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쏠렸다.
그는 파티에 참석한 다른 어떤 사람보다 훨씬 더 취해 있었다. 모두가 그의 추태 아닌 추태를 보고 놀라워하며, 그가 펼치는 재미난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술을 삼갔다. 그의 뜻하지 않은 프로로즈의 대상이었던 나 역시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해프닝을 즐겼다.
그 다음날, 술이 깨자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진 그는 바로 내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했다. 그후로 그는 몇 번 내게 저녁을 사주었다. 그날밤 일은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간직하고 싶지 않은 추억을 기억에서 지우려는 듯, 외려 거슬릴 정도로 지나치게 예의를 표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그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고, 나는 그에게 집에 올라가 한잔 더하자는 제의를 했다. 뜻하지 않은 횡재에, 그는 차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나와 내 팔짱을 끼고 아파트 입구까지 놓칠 않았다.
거실로 들어온 그는 소파에 앉았다. 주방에서 나와 보니 그가 전략상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나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술책에 넘어가지 않고 다른 곳에 자리를 잡자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가 잔을 건네자 받으면서 그는 은근히 내 손을 만졌다.
"에드가!"
내가 먼저 말했다.
"오해가 없길 바래요. 당신이 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까봐 걱정 돼요".
"날 뭘로 보는 거요. 한순간도 딴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었소."
그가 쿠션에 엉덩이를 붙인 채 허리를 펴고 얼굴을 붉히며 항변했다.
"날 어떤 여자로 생각하세요?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에, 조신한 여자로... 정말이에요."
그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완전히 빗나갔어요! 나는 조신한 여자가 아니에요. 당신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란 말이에요. 문을 두드리고 달아나지 않은 덕택으로, 당신은 상을 받은 거예요. 오늘 저녁 나는 당신에게 문을 열었어요. 그래서 당신은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황망히 사라지지 않아도 됐구요.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그가 소파에서 굴러떨어져 내 발언저리에 고양이처럼 엎드렸다. 내가 몸을 숙일 여유조차 없었다.
"아 아!"
그날밤 발정한 표범 같았던 럭비선수가 순한 양으로 돌변해 버렸다. 운동장에서 스크럼을 짜고 태클할 때의 기백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새 양복을 구길까봐 안절부절못하는 회계사처럼 조심스럽게 키스를 했다.
'기적'의 보드카를 손에 들고 여러 차례 그를 도발해 보았다. 하지만 그는 보드카 병만 보고도 딸꾹질을 했다. 스포츠맨의 저돌성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싱거운 과일주스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이 가련한 남자의 소심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부정함에 나 같은 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마누라 귀에 들어 갈까봐 항상 공포에 떨었다. 늘 그렇게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보니 변변치 않은 연애 경험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말았다.
매번 만날 때마다 시우족 인디언들처럼 조심스럽게 굴어야 했다. 게다가 자주 만날 수도 없었고, 만나면 빨리 일을 치르고 헤어져야만 했다. 내겐 너무 가혹한 주문이었다.
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방법이 여럿 있었지만, 너무 잔인하게 복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는 에드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도가 지나친 성유희는 절대 사절하는 고집과 모든 일에 있어서 날 자기 마누라와 야비하게 비교하는(다행

히도 그는 항상 날 더 높이 평가했다.) 괴벽만 없다면 그는 애인으로서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 두 가지 단점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오후, 매번 바쁘게 일을 치르고 황망히 떠나버리는 그에게 내가 오늘은 시간 여유가 있으니 한번 질탕하게 놀아보자고 운을 뗐다. 그가 동의했다. 그런데 그는 나와 만나면서부터 나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전희에 인색했고, 항상 내가 자기를 위해 무언가 해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면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기술을 다 동원해 그를 애무했다. 발뒤꿈치부터 시작해 동양적이라고 할만큼 아주 느린 속도로 그의 몸을 혀로 핥았다. 가장 민감한 부분만 빼고 엉덩이까지 그의 몸 거의 전부를 애무하고 나니 삼십분이 지나 있었다.
참음의 한계에 봉착한 그가 흥분을 쏟아버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몸에서 입을 떼고, 침대를 빠져나왔다.
"미안해, 갈증이 나서 그래. 금방 올게."
나는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느리게 애무를 시작했다. 달아오른 그의 몸이 조금 전처럼 사정할 기미를 보이는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내 다리에 쥐가 났다. 나의 고통스런 표정에 당황한 그가 내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우리의 사랑놀이는 또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상황이 훨씬 더 미묘해졌다. 조금만 자극해도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기가 힘들었다.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쉽지 않았다. 신통한 처방이 없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다뤘다. 사정의 기미를 포착한 순간, 나는 '일손'을 멈추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불만을 참다못한 그가 화를 내었다.
"도대체, 무슨 놀음을 하는 거야? 말해 봐!"
나는 입 안 가득 고인 담배 연기를 느리게 뿜어내었다.
"자기를 위한 놀

음. 처음으로 자기 원칙을 지킨 거야. 그것도 고분고분하게. 조금 더 있다가, 자기가 온 방 안을 헤매게 되면, 그 때 자기가 원하는 걸 주려고 그래. 그러면 쾌감이 극도에 달할 거야."
그는 내게서 담배를 빼앗아 재떨이에 비벼 끈 후 침실탁자 위에 내동댕이치고는 난폭하게 나를 덮쳤다.
불쌍한 에드가! 그의 거친 행동이 내 결심을 더 굳게 만들었다.
그와 몸싸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웃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힘을 한 곳에 집중시키지 않으면 지고 말기 때문에. 순전히 힘만 가지고는 내가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승리를 구가하기 직전에 그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항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어금니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던 그가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데다가 화까지 겹쳐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패배를 인정했고, 그 때서야 나는 체벌을 멈췄다.
그가 모로 누우면서 베개 속에다 얼굴을 파묻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이 잠시 나를 즐겁게 했다.
"바보."
내가 중얼거렸다.
"얻고자 한 것을 얻지 못했다고 고백할 것이지.... 자 이리 와."
그가 조금 망설였는데, 그것이 나는 몹시 통쾌했다.
일이 끝나고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얘기를 나눴다. 이브가 우리 둘을 다 망년회에 초대했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그는 몹시 당황해 했다.
"이자벨도 거기 올 거야."
그가 말했다.
"아주 지독한 여자야. 암호랑이 같아. 정말이야. 남편이 조금만 허튼 수작을 부려도 용서치 않아."
"그럼, 날 망년회에 오지 말라는 거야, 뭐야?"


"그게 아니고, 그냥, 조심하자는 거야. 그날 저녁에는 날 쳐다보지도 마.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알아들었어. 걱정하지 마."

하얀 실크 드레스를 걸친 암호랑이의 미모는 마돈나를 뺨칠 정도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어디 하나 매력이 넘쳐흐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나는 곁눈질로 몰래 몰래 '표독한' 에드가의 아내, 이자벨을 관찰해 보았다. 그녀는 정숙하게 눈을 깜박이며 얌전하게 처신했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수줍은 듯 미소를 띠며 답했다. 춤은 추지 않았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으며, 어떤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끼어들지 않았다.
에드가는, 마누라가 전혀 개의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선언했던 대로 여자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피했다. 음악의 흐름에 따라 일시적으로 파트너를 바꾸며 노는 이런 파티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한사코 남자들이 모여있는 곳만 찾았다. 그도 역시 춤에는 관심이 없었다. 몇 마디 건네기 위해 가끔 가까이 다가오는 마누라와도 춤을 추지 않았다.
내가 냉장고에 얼려놓은 얼음을 꺼내기 위해 혼자 주방에 있을 때, 갑자기 그가 나타났다.
"독살스런 마누라가 저 여자야?"
내가 말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던데."
그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 놓지마. 마누라가 눈치채면 어떡하려구...."
내가 그의 두 손에 얼음통을 안겨주었다.
"지겹게 자꾸 왜 그래? 내게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알어? 당신 부인도 당신과 다를 게 하나도 없더라구."
"무슨 말이야?"
"당신 부인도 사람들을 피해. 마치 이 파티장 어느 구석엔가에 정부를 숨겨두고 있는 것처럼."
"이자벨이? 아! 아! 샤를로트,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하지만 당신이 하는 짓거리와 하나도 다를 게 없잖아...."
"허튼 소리 하지

마, 경고하는 거야. 절대로 그럴 리가 없으니 상상도 하지마."
"정말 그렇게 믿어?"
내가 고집스럽게 물었다.
"정부가 여자일 수도 있잖아?"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의 두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에드가, 마누라에 대해서 아는 게 뭐가 있어.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정숙한 여자? 어디 한번 두고 보자구."
나는 그가 말을 받기 전에 얼른 주방을 떠났다.
뒤이어 주방을 나온 에드가가 얼음통을 탁자 위에 놓고 샴페인 병을 꽂았다. 얼굴에 수심이 서려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자기 부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 다시 사람들과 어울렸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밤이 점점 더 깊어 갔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파티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에드가 부부의 감시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한동안 축제의 열기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역시 에드가와 그의 부인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각자가 주어진 역할에 맞게 춤을 추는, 일종의 가면 무도회인 감비에 끼어들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는 축제의 여흥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이 약간 섭섭하긴 했지만, 쉬고 싶은 마음이 앞서 조용한 구석을 찾았다. 떨어져 있는 종이모자와 색종이 테이프를 건너 뛰어 춤꾼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벽난로 앞으로 갔다. 부지깽이로 타고 있는 장작더미를 잠시 뒤적이다가, 나는 그만 카펫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금빛 샌들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치맛자락 아래 두 다리가 우아하게 뻗어 있었다. 고개를 들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옆얼굴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

방해하는 건 아닌가요? 저도 좀 조용하게 있고 싶었어요."
그녀가 몸을 떨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녀가 대화를 이끌게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잇지 않았다. 턱을 무릎 위에 얹고, 벽난로 속의 불길만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다시 가볍게 떨렸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세요?"
내가 물었다.
"뭘 좀 마시는 게 좋겠어요. 뭘 드시고 싶으세요?"
"아뇨, 아뇨."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피곤해서 그런 모양이에요."
"원하는 주종을 말씀해 보세요. 달짝지근한 것, 단맛이 없는 것, 아니면 독주?"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내가 위스키를 두 잔 따라왔다. 그녀는 자기 몫을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얼음이 잔 바닥에 소리를 내며 떨어질 때까지 계속 들이켰다.
"고마워요, 어쩜 내게 필요했던 것이 이것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녀의 볼에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혹시 영화계에서 일하지 않으세요? 이브가 너무 짧은 시간 동안에 너무 많은 사람을 소개시켜 줘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혼동하는 실례를 범할까봐 겁이 나요."
"스크립터예요."
내가 대답했다.
"배역을 부탁하진 마세요. 제 능력 밖이니까요."
그녀가 곱게 웃었다.
"이런 불운이 있나! 또 한 번의 기회가 무산되고 마는군요!"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녀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거부 반응이 생기지 않는 질문들이라 나도 기꺼이 응했다. 당황한 에드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하찮은 수다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가버렸다. 한시간 후에 이자벨과 나는 말을 놓게 되었다.
이번에는 먼저 심문대에 올랐던 내가 이자벨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유년 시절과 무용수업 시절 그리고 처음으로 맛보았던 실연에 대해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서로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에 순조롭지 못했던 에드가와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직설법을 피하고 넌지시 암시만 했다. 그녀는 또 자신들의 부부생활이 권태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하기 위해 독특한 수사법을 사용했다.
망년회의 축제 분위기가 어느덧 하향곡선을 긋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으로 들어가 골아 떨어졌고, 남은 몇몇 사람들이 식당에서 밤참을 즐기고 있었다. 음식 냄새는 구수했지만 같이 끼어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자벨과 나는 꺼져가는 잉걸불이 마지막으로 제공하고 있는 온기 속에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숙사 침실에서 밤을 밝히며 소곤소곤 속내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명의 여학생 같았다. 차이라면 지금 우리가 주고받는 얘기 속에서는 여학교 때의 솔직함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자벨이 낮은 목소리로 잃어버린 꿈들을 장황하게 열거하면, 내가 간간이 주석을 달았고, 내 주석이 끝나면 그녀가 짤막하게 감탄사를 터뜨리며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그녀의 고백은 길긴 했지만 전혀 알맹이가 없었다. 아마 다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에게 진정한 속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에드가가 도둑처럼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와 우리들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새벽이야, 네시가 넘었어."
그가 말했다.
"난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자러 가야지."
그녀가 벗어 놓은 샌들을 찾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졸려, 이자벨?"
그녀가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아니."
그녀가 대답했다.
"잠이 쏟아지던 순간은 한참 전에 지나가 버렸어."
"좋아."
에드가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나는 자러 간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사라졌고, 우리는 킥 웃음을 터뜨렸다.
"저 사람 항상 저래?"
이자벨은 대답 대신 어깨를 추스르며 한숨을 쉬었다.
이자벨이 벽난로 속에 장작 한 개를 집어넣고는 내 곁으로 와, 머리가 내 발치에 오게 거꾸로 누웠다.
우리는 에드가가 놓고 간 잔의 술을 한 모금씩 마셨다. 내가 가운뎃손가락으로 이자벨의 발등에 도드라져 있는 반점을 만지며 물었다.
"예방주사?"
대답이 없었다. 내가 손바닥으로 그녀의 흉터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 쉬면서도 발을 빼지는 않았다. 몸을 일으켜 살펴보니, 이자벨의 얼굴이 고집스럽게 카펫이 깔린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내친김에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쓸어보았다. 숨을 죽이기만 했지, 피하지는 않았다.
이자벨의 여성스러운 몸매는 매력적이긴 했지만,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벌써 날이 밝았어."
내가 말했다.
"한두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운전하기가 힘들거야."
나는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방으로 갔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나오면서 그녀의 볼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내 볼에 입술을 찍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정오가 지나 있었다. 에드가 부부에게 작별인사라도 하고 갈 요량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에드가 혼자 앉아 있었다. 눈길이 차가운 것으로 보아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쭈!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그가 마음대로 공상을 하도록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는 게 나을까, 아니면 이자벨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무녀의 주문처럼 알쏭달쏭하게 얘기하는 게 나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내게 일주일 동안 전화를 하지 않았다.
화요일에 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를 한 사람은 여자였다.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샤를로트?"
이자벨이었다.
"그 미친 놈이 무슨 꿍꿍이속을 하고 있는지 넌 아마 상상도 못할 거야...."
"샤를로트?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야? ...."
"네 손길이 그날 밤처럼 여전히 부드럽고 감미로웠으면 좋겠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