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고독사랑36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467회 작성일 17-02-12 11:26

본문

제12장
흑야벌(黑夜閥)의 정체(正體)


북천(北天)에서 불어오는 한풍(寒風)은 차가운 냉기를 담고 휘몰아 쳤다.
관도의 행인들은 조금이라도 추위를 덜기 위하여 몸을 움츠리고 걸었다.
헌데 돌연,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한 대의 사두마차는 뿌연 황진을 일으키며 달려왔다.
네 필의 건장한 말은 모두 일천 냥을 치루고도 사기 힘든 막북(漠北)의 천리준마였으며 마차는 매우 호화로운 장식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마차는 거리에 들어서자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움직였다.

용화루(龍花樓)는 항주에서 유명한 기루(妓樓)였다.
사두마차는 서서히 용화루 앞에서 멈추었다.
넓고 화려한 장내에는 백 명에 가까운 주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술을 들면서 흥청거리고 있었다.
주객들은 대부분이 병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이틀 전에 벌어진 육반산의 혈겁에 관해 떠들고 있었다.
"……?"
"……!"
이층의 주객들은 아래층이 조용해 진다 싶자 약간 의아로운 표정으로 시선을 두리번거렸다.
육중한 발걸음을 울리며 이층으로 올라서는 사인(四人)이 있었다.
이남이녀(二男二女)였다.
그들 중 이인(二人)은 유난히 낯이 익은 인물들이 아닌가?
앞장선 여인은 날아갈 듯한 백의자락을 끌며 사뿐히 걸음을 옮기는데, 그녀의 그런 자태는 가히 환상의 아름다움이었다.
약간은 수척한 듯 하나 그것은 그녀에게 또 다른 매력 하나를 추가시켜 줄 뿐이었다.
한 쌍의 봉목(鳳目)은 추수(秋水)같이 서늘했으며, 길게 드리워진 속눈썹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산산이 부숴뜨릴 듯 애절했다.
마치, 한 떨기의 백합을 연상시키는 애수적인 여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여인의 옥용은 빙막(氷幕)을 한꺼풀 씌운 것처럼 차가왔다.

모란서시(牧蘭西施) 상관약연(上官若蓮)!

혼백마저 얼려 버릴 얼음의 요정은 바로 그녀였다.
상관약연의 옆에는 시녀인 듯한 소녀가 총총히 따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엔 보는 것만으로 질식할 듯한, 엄청난 기도를 폭출시키는 철인(鐵人)이 따르고 있었다.
좌수(左手)엔 일장 이척에 달하는 묵빛의 장창(長槍)을 비껴든 구척의 거한!
자그마한 묵철산이 자리한 듯이 육중한 풍모의 중년인이었다.
이런 유의 인물은 오직 한 사람 뿐이었다.

묵룡철사왕(墨龍鐵獅王) 상관사후(上官獅侯)!

사자(獅子)의 왕(王)!
무적군벌의 실질적인 최강자(最强者)이자 얼음의 요정인 상관약연의 오라비가 되는 인물이었다.
무적군벌의 모든 기대를 한 몸에 지고 있는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의 옆에는 철사자가 묵묵히 뒤따르고 있었다. 사 인(四人)이 뿜어내는 가공할 기도는 용화루 전체를 박살내 버릴 듯 막강한 것이었다.
이들의 기도에 입을 다물고 있던 사 인이 자리에 착석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리면 자연히 아름다움을 논(論)하기 마련이다.
주객들은 상관약연의 미모에 관해 한마디씩을 던지는데 주저치 않았다.
"카아! 군방천화루(群芳天花樓)의 설향(雪香)이 항주제일미라고 하지만 달빛에 반딧불을 비교하는 것이로군!"
"제길! 나는 오늘에야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해 개안(開眼)했어!"
"대체 저런 천상의 미녀를 데리고 사는 복많은 사내는 누굴까?"
주객들은 연신 상관약연을 힐끗거리며 열기를 피워 올렸다.

"……!"
"……!"
상관약연을 비롯한 사 인(四人)은 묵묵히 서 있었다.
비단장포를 입은 똥똥한 노인이 식은 땀을 흘리며 그들 앞으로 달려왔다.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이리로!"
똥보노인은 사 인(四人)을 삼층으로 안내하며 통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용화루 전체는 알지 못할 막강한 강막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최소한 이갑자 이상의 초강고수 일백 인이 발출시키는 것이었다.
용화루는 예사로운 기루가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마천루(魔天樓)의 비밀분타였다.
그리고, 일백 팔 인의 초강고수가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었고……

천비태작(天秘太爵) 백일강(百一强)!

마천루의 수호무신(守護武神)이었다.
중원천하의 모든 정보를 지닌 마천루는 모든 세력들이 노리는 황금굴(黃金屈)이었다.
이제껏 그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마천루를 넘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천비태작(天秘太爵) 백일강과 일백팔 인(一百八人)의 마천무적혈위군단(魔天無敵血衛軍團)!
최소한 내공이 이갑자를 상회하는 초절정의 고수자들만 이루어진 말 그대로의 무적군단이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마천루가 명맥을 유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비태작 백일강은 바로 그 일백 팔인의 마천무적혈위군단의 군단총수였던 것이다.

상관약연을 비롯한 사 인이 들어서자 천비태작 백일강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삼가 백일강이 대공녀를 뵈오이다!"
백일강의 시선은 오직 상관약연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신비공작(神秘公爵) 단우천(端羽天)!
마천루의 지존인 그에게 있던 아들이 죽은 이후, 신비공작 단우천의 모든 사랑은 상관약연에게 쏠려 있었다.
명실상부한 마천루의 후계자였다. 그녀의 말은 곧 신비공작 단우천의 명령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아울러, 신비공작 단우천을 제외하곤 천비태작 백일강의 고개를 숙이게 할 수 있는 유일인 사람이 바로 상관약연이었다.

상관약연은 천천히 의자에 앉으며 백일강을 주시했다.
"그 자를 찾았나요?"
백일강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직 그 자의 행방을 찾지 못했으나 곧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상관약연의 고운 아미가 좁혀졌다.
"무슨 말인가요? 삼일 전 연락으로는 그 자의 뒤를 쫓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백일강은 곤혹스런 표정을 떠올리며 더욱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삼일 전까지만 해도 고독사랑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황금산장의 황금독효와 결전 이후 중상을 입고 도주하는 바람에……"
그는 말끝을 흐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 안으로 무슨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상관약연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 자가 중상을 입었다고 했는데 상처가 얼마나 중한가요?"
"확실치는 않으나 수집한 정보로는 극히 위중한 중상을 당한 것 같읍니다."
상관약연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중상을 입었다고? 안돼! 절대 죽으면 안 돼!'
그녀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벌떡 일어섰다.
상관약연의 안색은 밀랍처럼 창백하게 탈색되어 있었다.
상관사후는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담담히 말문을 열었다.
"연아(蓮兒)! 너무 조급히 생각할 필요없다. 무슨 일로 그를 찾으려는지 모르지만 그가 항주에 있는 이상 결코 우리의 눈을 벗어날 수는 없다!"
"……"
상관약연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망연한 시선으로 창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문득, 나지막한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취의(翠衣)를 걸친 시비가 들어왔다.
"천비성(天飛城)의 장로이신 취불선(醉不仙) 어른과 백운려라는 여인이 뵙고자 찾아왔읍니다."
상관사후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 분들을 이리로 모시게."
시비가 밖으로 나가자 상관약연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오라버니는 그들과 만나기로 하셨나요?"
상관사후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아버님의 지시라 너에게 미처 말할 틈이 없었다. 그리고 취불선어른은 천비성의 장로이시니 고독사랑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상관약연의 두 눈에 언짢은 기색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말없이 의자에 앉았다.
취불선은 칠순의 나이로 겉모습은 지저분했으나 동안의 얼굴에 매우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이었다.
상관사후는 취불선과 백운려를 맞이하여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노선배님, 오 년만에 다시 보는군요."
취불선은 걸걸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조카의 신수가 그 동안 훤해졌군. 그래, 그동안 마천루에서 주지육림에 파묻혀 살아보니 이 불쌍한 늙은이는 잊었겠지?"
상관사후는 담담히 웃음을 터뜨렸다.
"노선배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라도 본영(本營)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사양치 마시고 찾아 오십시오. 하핫!"
취불선은 음충맞게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제길! 한 번 가기는 가야할 텐데 이 늙은 노구에 무슨 역마살이 끼었는지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바브기만 하니 신경질만 나는구만."
그는 투덜거리며 신세타령을 늘어 놓았다.
"하하. 노선배님! 그만하시고 저 분 소저를 소개나 시켜 주십시오."
상관사후가 백운려를 바라보며 눈짓하자 취불선은 기묘한 표정으로 뜻깊은 미소를 지었다.
"흐흐. 이 사람아, 이 아이를 소개하는데는 그냥 말로서는 안 되지."
그는 말끝을 흐리며 상관약연을 쳐다 보았으나 그녀의 차디찬 눈빛에 쓴웃음을 흘리며 고소를 삼켰다.
'염병할, 상관가(上官家)의 사람은 다 만만해도 이 아이에게만은 주눅이 드니.'
상관약연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싸늘한 옥음을 발했다.
"소녀는 몸이 불편해서 먼저 실례하겠어요."
말과 함께 그녀는 일어서서 걸음을 옮겼다.
원래 상관약연은 유달리 결백증이 심해 지저분한 몰골을 하고 있는 취불선을 유난히 싫어했다.
특히, 석년 남편의 죽음이 천비성의 반역도인 혈비작(血秘爵) 곽소천(郭燒穿)으로 드러남에 따라 그녀는 증오심마저 품고 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취불선은 쓸쓸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인! 듣기로는 고독사랑을 찾고 있다는데 이 아이가 그 자의 내력을 잘 알고 있소이다."
그는 백운려를 가리키며 정중히 말했다.
실로 이해 못할 일이었다.
상관사후에게는 하대를 하던 그가 그의 누이인 상관약연에게는 경어를 쓰다니……
알고 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혈비작(血秘爵) 곽소천이 천비성의 반도라 하나 무관할 수는 없는 법, 취불선의 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
문앞까지 다가서던 상관약연의 신형이 멈추고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의 시선은 백운려를 보고 있었다.
취불선은 재빨리 소개를 했다.
"이 아이는 북경 영호대장군가의 후예로 취옥천황의 외손녀이외다."
백운려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백운려라 해요!"
상관약연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다.
잠시 서로 인사가 오가고 좌중의 분위기는 부드럽게 변했다.
취불선은 한 잔의 술을 단숨에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삼일 전 육반산의 혈겁은 십 년 이래도 최대의 참사였네. 구구히 말을 하지 않아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겠지만, 묘강사독이 죽고 사백(四百)에 가까운 사람이 살상되었네! 게다가 백궁주마저 고독사랑과 앙패구상을 하고 아들마저 잃었으니……"
그는 말끝을 흐리며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상관사후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침중한 음성을 발했다.
"그 자의 가공할 무예도 그렇지만, 그가 그렇게 살상을 벌이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취불선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목적은 알 수 없네만 그가 사용하는 무예는 전설의 천강비검성의 천강초극검을 사용한다고 하네."
상관사후는 의아로운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취불선은 나직이 설명을 했다.
"천강비검성에 대한 것은 나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천강(天剛)은 곧 별(星), 유성을 말하는 것일세!"
"유성이라?"
"극쾌(極快)! 모든 동작과 초식을 묵살한채 오로지 빠름만을 생명으로 낙뢰(落雷)의 빛을 능가하는 일종의 초극검예이지!"
"……!"
"그것이 극에 이르면 검기(劍氣)로서 일천 장 밖의 것을 살상할 수 있는 검화천탄강(劍花天彈剛)을 펼칠 수 있다네!"
"검화천탄강!"
"그렇네!"
취불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검극초인에 이르는 길이지! 들리는 소문으로는 고독사랑은 이미 그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하네!"
상관사후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실로 믿기 힘든 말이군!"
그의 중얼거림에 취불선은 씁쓸한 고소를 머금었다.
"허허! 사실 믿기 힘든 것이네만 석년의 절대삼자 중 일 인이셨던 일수천발검(一手千拔劍)도 불완전하나마 천강비검술(天剛飛劍術)을 사용하다가 결국 고독검문에 패한 후 사라지고 말았지!"
"아니, 그 사람도 천강비검성의 제자였다는 말씀입니까?"
"천강비검성은 고독검문과 마찬가지로 신비의 방파이네! 다만, 그가 천강비검술을 시전할 수 있었기에 그렇게 추측할 뿐이지."
취불선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것은 그렇고, 고독사랑을 구한 자들은 흑야묵연(黑夜墨煙)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몇 명이 모여서 한명의 중계인 아래서 자객(刺客)일을 한다네. 그 중 혼자서 자객업을 하는 자들도 있으나 그것은 극히 드물고 살인청부는 보통 중계인을 통해 다 이루어지고 있네."
상관사후는 그제야 이해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약연이 백운려를 주시하며 나직이 말했다.
"백소저는 고독사랑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흑야벌(黑夜閥)이 아닐까 짐작하네!"
그의 말이 끝난 순간,
"흑야벌!"
곁에 있던 철사자의 입에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상관사후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안색도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다.
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