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요정들의 오너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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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049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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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


#1.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이게...벌써?"

현실이라고는 도무지 믿을수 없는 일 투성이었던 지난 한달.나는 한달전 커피를 마시기위해 들어갔던 주인의 쉼
터에서 알버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남은 카드들은...유 준씨의 가능성 이라고 해두죠.-

가능성...?

그땐 그저 믿을수 없는 현실때문에 어안이 벙벙했을 뿐이다.나는 유나가 내민 카드를 외면해 버렸다.알버트와의
그 시간을 떠올려서는 안된다.머릿속에 페어리의 모습이 형상화 되는 순간,내 주변 마나와 반응하여 개화가 일어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인님?"

세라가 공손히 나를 불렀다.유나와 노아의 시선역시 나에게로 꽂힌다.

"서랍에...넣어둬.아직은 때가 아닌거 같아."

"네?"

대회의에서,나는 잠을 설쳐가며 곰곰히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다름아닌 유나,세라,노아의 2차개화에 관한 문제였
다.미인들과의 스킨쉽을 싫어하는 남자가 있을까?싫은것이 아니다.그것이 의식화 될까봐,그것이 싫을 뿐이었다.
무엇보다...첫사랑인 민아에게 느꼈던 감정과는 약간 다를지 모르지만,나는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직 먼저 나온 세명에 대한 생각도 복잡할 이때에,아직 네번째 페어리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먼저 우선시 되어야할 문제가 있어서..."

훌쩍 커버린 유나와 세라,그리고 노아는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고,나는 착잡한 심정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새롭게 나올 페어리가 싫은것이 아니다.다만 아직 내가 이렇게 부족한데,페어리의 수가 늘어나도 될까 하는 걱
정과 노파심 때문이었다.

-한번에 셋을 개화시킨것은 처음있는 일이죠-

-유 준씨는...정령의 여왕이라는 유일한 페어리를 가진 오너니까요-

대회의에서 다른 오너들에게 들었던 말들이었다.하하.거참...기분이 묘하네.나는 그저 평소대로 똑같이 살아왔
을 뿐인데...고아로 자라서,성인이 되어 자립하는...남들과는 약간 다르긴 하지만,그렇다고 해서 썩 특이한 삶을
살아온것도 아닌데 말이다.

"주인님.무슨 생각해요?"

정신을 차려보니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노아가 보였다.아기같이 고운 피부.귀여운 단발머리
에, 깜찍하기 까지 한 눈.사과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입술이 보인다.화장품을 쓰는것도 아닌데 늘상 상큼한
과일 향기가 나는 노아.하지만 노아역시 그런 귀여운 얼굴을 한채로,몸은 완전히 성인이 되어 있었다.내 목을
끌어 안을때 물컹한 가슴의 감촉이 노아역시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노아야."

"응?"

노아는 페어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아이들처럼 꼬박꼬박 존대를 썼지만 가끔씩 애교섞인 반말도 했다.
물론 나역시 싫지 않았다.오히려 나는 아이들에게 편하게 부르라고 했을 정도였지만,아무도 안해서 오히려 그게
더 문제일 정도로...

"너한테 나는 뭐니?"

푸하하.내가 생각해도 얼빠진 질문이다.방으로 들어간 유나와 주방에서 무언가를 치우는 세라, 그 두명이 없으니
이런 민망한 질문을 얼빠지게 던질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음...."

노아는 곰곰히 생각하는듯 귀여운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렸다.나도 모르게 노아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는데,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꼬마의 몸으로 느껴졌던 노아의 허리는 옴폭 들어가 있었다.

"음...가장 소중한 사람?"

하하하.기쁘다.그런 대답이 나와줘서.만약에 그냥 평소처럼 주인님이라던지,전장에 함께나갈 전우 등으로 표현을
했다면,아마 난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지도 모르거든.

"와와!세라 그거 나줘!나!나!"

문득 세라가 냉장고문을 열었을때 또르르 굴러나오는 사과를 보더니,노아는 신속하게 내 품에서 벗어나 냉장고
로 뛰어갔다.하하하하.귀엽다.저렇게도 과일이 좋을까.철저한 육식주의(?)인 유나와는 완전 정반대인데?

우우우웅...

헉!럴수럴수 이럴수가! 이 얼마만에 들어보는 내 휴대폰의 진동소리인가!영국에 가게 되면서 테이블위에 고대로
놓아두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단 1통의 부재중 전화가 없던 내 휴대폰이 진동음을 내는 그 광경은 감격스럽기 그
지없는 아름다운(?)모습이었다.

"여보세요?"

-흠흠!야!준이냐?-

나는 살짝 수화기를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무턱대고 받아서 받기전에 확인을 안한 탓이다.액정에는 고등학교
동창인 현수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아..오랜만이다."

-짜식.뭐하냐?오늘 망년회 할까 하는데...안나올래?-

"망년회?"

맞다.그러고보니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날이다.뭐..워낙 최근에 정신없는 일들이 잔뜩이다 보니,전혀 신경도 쓰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 짜샤!엉아 아니면 누가 널 챙겨주겠냐?오늘밤에 할건데...미리 연락을 못해서 지금한다.-

나는 피식 웃었지만,현수의 말은 어느정도 사실이었다.시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고등학교를 다니던 고아 유 준
에게 값싼 동정이 아닌 진심으로 챙겨주던 아이는 현수 뿐이었다.감격의 눈물을 겨우겨우 참으며 간다고 하려던
그 찰나,녀석의 말은 결정타가 되어 내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

-근데...여...여자친구도 동반해서 모이는데 괜찮냐...?-

이런 개쉑히!이 자식이 지금 새해가 밝아오려는 이 시점에 불난집 앞에서 기우제를 지내도 유분수지...뭣이 어쩌
고 어째?커.플.동.반?

"너....왜 전화했어 이 자식아..."

-아..아하하!야야...근데 꼭 여친 동반하는거 아냐.근데 다들 데리고 나온다고 해서 그렇게 된거지임마.혼자 나
와도 되는 자리라니까?-

안봐도 비디오다.분명 끼리끼리 안주를 먹여주며 알콩달콩.니 여친은 몇살이니 내 여친은 어디학교 다니는데..
이러다가 건배하고 러브샷!러브샷!이 지랄하면서 또....크으으윽!

"이..이자식이 지금 누구 염장지르려고 전화를 했나아아아!"

-야..야..너..여친없는거야?-

"여친이 있긴 어디에 있...."

뭐라고 쏴붙이려고 했던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내 눈앞에 너무나 아름다운 한 미인이 앞치마를 두른채 1박2일
간의 여정때문에 소흘히 했던 부엌청소를 하고 있는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본다.

"으..흠흠!그래서...어디서 할건데?"




#2.단둘이서 외출?!


"너무해 너무해!왜 세라만 데리고 나가요?"

"분명 맛있는곳 많은데 갈려고 그러는 거죠!그쵸!"

아아..귀가 따갑다.눈앞에서 잔뜩 토라진 은발의 미녀와,단발머리의 미녀 사이에서 나는 허둥지둥 갈팡질팡을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아무말 없는 것은 내 뒤에 다소곳이 서있는 세라 뿐이었다.

"그런게 아니라니까 그러네...그게...여럿이서 가면 안되는 자리라서 그래.그리고 나중에 너희도 꼭 데려갈 거
라니까?진짜야.."

솔직히 말빨이 좀 있다고 생각했는데,지금 상황에서는 어버버 하며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일단 노아까지는
괜찮았다.노아의 칭얼댐은 다량의 딸기우유를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입막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문제는 유나였
다.다른 사람도 아니고,세라와 나간다고 하니까,길길이 뛰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게다가 목적지를 술자리라고 이
야기 할수 없어서,나는 한참을 빙빙 돌려대야만했다.그러니 자연히 눈치빠른 유나는 수상한 냄새를 맡고는 계속
해서 나를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그럼 그것만 말해줘요.어디가는 건데요?"

음..생각하자 유 준.지금이야 말로 너의 잔머리가 빛을 발할때란 말이다.나는 빛의 속도로 내 깡통을 굴리기 시
작했다.옳지!그게 좋겠다.

"사실은..내가...무술의 달인을 좀 알고 있는데...세라에게 소개를 시켜주는게 어떨까...해서..."

"에엥?"

유나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진다.하하.그래도 이쁘다.결코 난 세라를 편애해서 그녀를 데리고 가는것이 아니었다.
망년회 자리에서 유나가 잘못해서 입을 놀린다면,나는 아마 또라이 취급을 당하기 쉽상이기에,말수가 적은세라를
데리고 나가려는 것이었다.흠..내가 좀 비겁한가?

"그거...정말이에요?"

"그럼!정말이지..."

"근데...세라가 무술의 달인을 만날 필요나 있어요?아무리 개화한지 얼마 안된 페어리지만,세라는 블랙나이트
인데요?"

윽...말문이 막혀 버린다.뭐라고 해야하지?머리를 굴리자..머리를..머리를..

"흠흠!무..물론 세라는 누구의 지도를 받을 필요는 없지.근데..그게..음..그러니까 내공을 다루는 법을 아는 사
람이라고 해야할까?"

"내고옹?"

세라처럼 무협지를 보는게 아닌 유나로써는 생소한 단어겠지만,이내 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물론,얼굴
에는 의심이 가득 들어있긴 했지만 말이다.하하하하.이럴때를 위해 난 비장의 카드를 준비해 두었지!

"유나야."

"핏.왜요!"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유나의 손에 비장의 무기를 쥐어주었다.두둥!그것은 바로 유나의 분노의 쇼핑질을
막기위해 꼭꼭 숨겨놓고 있던, 나의 체크카드였다.

"이걸로..옷한벌 사.너 많이 컸잖아."

흠...그것은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식물의 꽃이 활짝 피는것을 보는듯한 장관이었다.연신 토라진 표정이었던 유나
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더니 나를와락 끌어 안았기 때문이었다.윽윽!숨막혀...

"주인님 최고오!"

하..하하.순식간에 내 얼굴은 유나 입술의 폭격을 맞게 되었고,그 순간 강하게 내 손을 당기는 엄청난 악력이
느껴진다.

"가요..주인님.늦을지도 모르잖아요."

세라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나를 잡아끌었고,유나는 또 세라와 마주치자마자 흥!하면서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이녀석들!언젠가 수련지가 정해지면 니들을 꼭 친해지게 만들고 만다 내가!

"주인님 약속 잊지 말아요!"

그래그래.알지 임마.다량의 딸기우유.나는 노아의 밝은 표정과,아직까지 의구심 가득한 표정의 유나를 뒤로하고
세라와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근데...정말 제가 가도 되는 자리일까요?"

엘레베이터를 타자마자 입을 연 그녀의 말에 나는 문득 세라를 바라보았다.더욱더 자라서,이제 완벽한 성인의 모
습을 하고 있는 세라.그나마 큰 코트를 입어서 아까처럼 소매가 짧은 언벨런스함도 일어나지 않아,그녀는 더욱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무릎까지 오는 코트에,그녀가 입어서 더욱더 맵시있어 보이는 청바지.화장기는 없는 얼굴이지만 그때문에 더욱더
세라의 청순함은 빛이 났다.누가 이 아이를 내 여친이라고 믿어줄까?흠흠!아니,블랙나이트라고 믿어줄까?

"미안...내키지 않는데...나때문에 가는거 같아서..."

"아닙니다 주인님.저는 그런게 아니라...제가..."

손사레까지 치며 부정한 세라가 발그레 하고 얼굴을 붉힌다.어어?너 왜그래?

"주인님의 여자친구 행세를 해도...될까 싶어서..."

하하하.가슴한쪽이 깊이 찔린다.내가 할말이란 말이야.너가 내 여친이라고 하면,아마 다들 내가 갑부인 줄 알
걸?미안한건 나란 말이다.친구들에게 꿀리기 싫어서...페어리를 데리고 나가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내 한심함의 합리화가 아니라,나는 늘 묵묵히 강해지는 것만 생각하고,자신보다는
나를 더 배려하는 세라에게 미안했을 뿐이었다.그것은 비단 유나나 노아도 마찬가지였지만,세라는 늘상 자신을
희생했고,궂은 일을 도맡아 하려했다.한번쯤은,그녀에게도 술자리를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세라야."

"네?"

나도 모르게 세라의 손을 쥐어주었다.왜인지 늘상 따뜻한 그녀의 손은 얼음처럼 차갑다.

"오히려 내가 영광이라고 바보야."

세라가 싱긋 웃었다.마치 얼음이 녹는 것처럼 포근한 미소였다.아차차!하나 까먹을 뻔했다!

"아..세라야."

"네."

"그 자리에 가서...절대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안돼..."

"그럼..뭐라고 부르나요?"

"으음..."

준이씨?아니 그건 좀 웃기잖아.중년로멘스도 아니고..오빠...그래...오빠가 좋겠다.

"오빠...라고 불러."

세라는 심하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하기야 계속해서 주인님이라는 말이 입에 베어 있으니,당연히 어색할지도
모른다.

"오..오빠."

커헉!엘레베이터가 도착해서 멎음과 동시에 내 심장도 멎을 뻔했다.오...누군지는 모르지만 날 낳아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제가 이런 미녀에게 오빠란 소리도 들어보는군요...흑...

"그..그래..자..잘하네."

"감사합니다 주인님."

"......"




#3.내 여자친구는 퀸카?


고등학교 동창끼리의 망년회 술자리가 벌어지는 곳은,외곽에 위치한 우리집에서 부터 가려면 꽤나 먼 거리였다.
술을 마실게 뻔하기에 나는 차를 가져가지 못하고,버스를 타야만 했지만,이내 그것도 목적지의 절반도 가지 못하
고 내려야만 했다.세라와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심하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차갑게 변한 세라의 손을 꼭 쥐어 주느라고 정말로 연인같은 모습을 보였기때문에 그 시선은 더욱더 격하
게 느껴졌다.여자들은 이해가 안간다는듯 세라를 바라보았고,남자들은 부러움과 시기가 섞인 눈으로 연신 나와
세라를 번갈아 가며 시선으로 훑었기 때문이었다.

"자..다왔습니다."

택시기사 역시 요금을 낼때에 나와세라를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하하하.젠장.아저씨마저 그럴거유?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요금을 내밀었다.

"여기 거스름돈입니다....이야..애인이 이쁘시네."

"감사합니다."

대답하는 내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아저씨의 말에는 마치 "니 주제에 애인은 이쁘다?"라는 것으로 들
렸기 때문이었다.음...그것은 심한 비약인가?에이!모르겠다.넘어가지뭐.

"흠..저긴가 보네."

연말이랍시고,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지듯 나와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연말에 모든걸 털어버리자는 생각에
나온 사람들과,역시나 연말은 술이지!라는 듯이 벌써부터 비틀비틀 거리는 시대의 군상들이 낮보다 밝은 밤을
밝히고 있었다.

"세라야.이런곳은 처음 와보지?"

"네..."

세라는 연신 내 손을 꼭 잡고 두리번거렸고,그녀의 미모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더더욱 빛난다.마지막으로 세라
에게 호칭에 대한 주의를 당부한 나는,술자리가 열리고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흠...엄청 크구나.나는 시끌벅적한 곳은 딱 질색인데 말이야.뭐 할수 없지....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주
위를 두리번거렸다.

연말이라 그런건지,테이블은 꽉꽉 들어차 있었다.연신 건배소리가 울려퍼졌고 잠시 귀마져 멍멍해지는게 느껴진
다.한참을 둘러본 끝에 나는 현수녀석의 얼굴을 확인할수 있었다.오..그나마 다행이네.한쪽 끝에 있는 구석진
자리여서,그나마 가장 조용한 자리인거 같았다.

"여어!"

현수도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난 살짝 웃어주며 그쪽으로 다가갔고,세라는 내 뒤를 조용히 따라
걸었다.하하.여긴 그렇게 경계하면서 오지 않아도 된다구.

후아..많이도 모였다.남자사이에 여자가 꼭 한명씩 끼어 있는거 보니,커플동반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는건 맞
는거 같군.

가까이 가서 자리에 모인 맴버들을 확인한 나는 살짝 굳어질수 밖에 없었다.망년회라기 보다 고교 동창회를 방불
케 하는,모두가 안면이 있는 동창들이었고,그 중에서 한 명이 나에게 살짝 인사를 했다.

"준이...안녕?"

"아..안녕..민아야."

하하하하.기분이 이상하다.얼마전 갑작스런 만남과 뜻하지 않은 전개(?)를 겪었던 그녀가,내 앞에 앉아 있었다.
내가 그녀를 짝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현수가 어색한 분위기 때문인지 화재를 돌렸다.

"야야.거봐.민아도 솔로인데 나왔잖아.솔로라고 해서 못나올게 없다니...."

현수의 말이 뚝하고 멎었다.동시에 현수의 시선을 따라갔던 다른 남자아이들은 모두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걔중에는 오뎅국물을 마시던 그대로 주르륵 국물을 다시 방출하는 녀석도 있었다.

"안녕하세요....세라..라고 합니다."

"저..저기..누구신지.."

현수의 넋나간 질문에 세라는 잠시 망설이더니 내 손을 살짝 쥐었다.

"주인니...아니,준이오빠의 여자친구 입니다."

어디서 유나가 마법이라도 썼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동되었다.민아의 표정역시 순식간에 굳어버렸
고,넋을 잃고 바라보는 자신들의 남친들을 바라보는 여자아이들의 표정도 굳는다.

"에에에에?"

현수가 믿을수 없다는듯 손사레마져 치고 있었다.아니,자리에 스르르 주저 앉기 까지 한다.이 자식아!그만해!
서서히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고 있잖아!

"여..여기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오...감동이다.세라는 오늘 내 여자친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는지,잠시나마 살짝 웃기도 한다.
그녀의 미소에 내 대각선 방향의 한 동창녀석은 다시한번 오뎅국물을 방류시킨다.

"주...준이도 왔으니 한잔 할까?"

"조..좋지.."

다들 동의하면서도 세라만을 바라본다.나는 현수가 따라주는 술을 받으며 나도모르게 민아를 바라보았다.복잡
한 표정으로 세라를 보는 민아의 얼굴이 눈에 띈다.하하하.이거 참...뭔지 모르게 뻘쭘하긴 하네.하지만,민아와
난 아무사이도 아니다.그것은 술을 마시고,모텔에 가면서도 은연중에 민아가 그어놓은 분명한 선이었다.그러니
내가 민아의 눈치를 볼 일도 없겠지.

"세..세라씨도..한잔 받으시죠."

세라는 깜짝 놀라며 나의 눈치를 살핀다.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뭐...그녀에게는 미성년
이라는 개념도 없지 않나 사실?술을 마시는 것도...나쁘진 않지 뭐.

현수가 손까지 덜덜 떨어가며 세라에게 술을 따라주었고,뻘쭘한 분위기 속에서 첫 건배가 시작되었다.

"다들...새해복 많이 받아라!"

모두가 세라의 눈치를 살피니,내가 호기있게 외칠수 밖에 없었다.살짝 소주를 목으로 넘긴 나는 곁눈질로 세라를
훔쳐 보았다.

하하하하.귀엽다.세라...아주 약간 입술에 축이더니,얼굴을 살짝 찌푸렸기 때문이었다.아마도 태어나서 처음마
셔보는 소주의 맛이 생각보다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하하.

"쓰면..조금만 마셔도 돼."

"괜찮습니다."

세라는 다짐을 한듯 입술을 깨물더니 이윽고 손에 든 술잔을 모두 비워 버린다.잔뜩 얼굴을 찌푸린모습에 나는
얼른 내 앞에 있는 과일셀러드 하나를 세라에게 먹여주었다.

"어...어이.너네 너무...닭살떠는거 아니냐?"

큭...의도한건 아니었지만,왠지 창피한 마음에 피식 웃어버렸다.그리고 세라의 표정역시 그렇게 나빠보이지 않아
서 안심이기도 했다.

"나 한잔 따라줄래?"

세라를 보며 살짝 웃고 있는데,누군가가 내게 술잔을 쑥 하고 내민다.고개를 돌리니 평소의 웃는 모습이 아닌,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민아가 보인다.

"아...그..그래."

민아에게 술을 따라줄때에,세라의 표정이 술잔에 비쳤다.왜일까.세라는 민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고,민아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고 세라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러고 보니,세라는 민아를 본적이 있었지....

"자자자.민아만 따라주지 말고...다들 한번 따라주라.아참.준이 니가 모르는 사람들도 꽤 있겠네."

혼란스러워 할 틈도 없이,나는 현수의 여자친구를 비롯해서,동창 녀석들의 여자친구들을 소개받아야 했고,시끌벅
적한 분위기로 바로 이어져 다들 몇 잔의 술잔을 주고 받았다.

"세라씨는 무슨일 해요?"

"전...기사입니다만.."

"네?"

"아하하하하!그러니까...속기사야 속기사!이 아이가 타자가 좀 빠르거든...하하하하!"

"아...응..."

세...세라야.너도 이제부터 의무적으로 유나랑 같이 꼭 드라마를 보거라.기..기사라고 하면 나는 어쩌라는 거니.
다행히 불같은 애드립으로 상황을 모면했으니 망정이지.

몇 잔의 술잔이 오가고,내가 간만에 만난 동창들과 떠들썩하게 이야기 하는 동안에도,세라 주변에 앉은 녀석들
은 연신 세라에게 술을 따라주었고,내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곧잘 받아마셨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준이는 어디서 만났고?"

아놔...저녀석들...세라는 폭격처럼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살짝 당황하는 모습이었다.나는 그때마다 연신 세라의
말을 가로채서 대답해줄수 밖에 없었지만,은근히 내 앞에 있는 민아도 신경이 쓰인다.

"한잔 더줘."

"야..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알았으니까 달라고."

평소의 얌전하고 밝은 성격의 민아 답지 않게,그녀는 계속해서 옆에 앉은 동창에게 술을 따라달라고만 하고 있었
기 때문이다.게다가 나와는 아예 말조차 섞고 싶지 않다는듯,시선을 두지도 않는다.

세라의 등장으로,술자리의 분위기는 묘해지기 시작했다.남자 동창들의 여친들도 문제였다.아무도 그들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으니,즐기려고 온 망년회 자리에 그녀들은 전혀 관리안되는 표정으로 세라에게 헬렐레 하고 있는 자
신들의 남자친구만 흘겨볼 뿐이었다.

"여어어어!다들 여기에 있었구만?"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린 나는 마음속 깊은 한숨을 쉬어야만 했다. 우리뒤쪽으로 이제 막 합류하는
듯한 무리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라라라?이게 누구야...추리오타쿠 유준 아니냐?"

윤준영.저 빌어먹을 자식은 왜 온거지?게다가 학창시절부터 저 녀석을 따라다니던,껄렁껄렁한 패거리들이 고대
로 나왔다.나이 처먹고도 지버릇은 개 못주는 모양이군.

"어..반갑다 야."


나는 건성으로 대답해 버렸다.예전 고교시절,민아의 남자친구였던 녀석이다.민아역시 녀석을 보는 시선이 그지
좋다고 볼수 없었다.뭐..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인원들이 다 그랬지만.

"하하.이새끼 이거 술도 마셔?집에서 뒹굴거릴줄 알았더니만 말이야."

아...사람이 나이먹으면 철든다는거 어떤 자식이 한 말이냐?준영이 녀석이 내 머리를 툭툭치며 건들거렸고 뒤에
있는 패거리들은 큭큭 거리며 웃는다.삽시간에 굳어진 내 표정을 본 현수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야야.거기 앉아.술잔 곧 갖다 줄거야."

"가만있어봐 임마.간만에 동창만나서 반가워서 그러는데....응?"

그의 말이 뚝 끊긴다.내 옆에서 살짝 붉어진 얼굴을 하고 있는 세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미인은 누구셔?"

"아...그...준이...여자친구."

"뭐어?"

세라가 살짝 목례를 하자,준영의 표정이 불신으로 물들었고,그 뒤에 있는 녀석들역시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하하하!야야 박현수.구라좀 적당히 쳐라."

"진짜야.세라씨라고...준이 여친이야."

현수의 말에 준영은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다시 세라에게 시선을 돌린다.

"진짜..이 자식 여자친구에요?"

"네....그렇습니다만."

세라는 내가 이 아이를 싫어하는걸 본능적으로 느낀걸까?현수가 말걸때와는 달리 차갑고 딱딱하게 대답했다.야..
알았으면 부탁이니 저쪽에 떨어져서 앉아주라.졸업하고도 니 얼굴 보는건 그닥 유쾌하지가 않아서 말이지.

"하하하하!이 새끼 제법인데?야,어디서 저런 미인을 건졌냐?"

참자...참아야 한다.준영이 자식이 내 머리를 툭툭 주먹으로 치며 말을 하고 있었지만,나는 참아야만했다.망년회
자리인데다가,고교 동창들의 모임이 아닌가....으응?가만..이 느낌은?

문득,이상한 기분이 들어 옆을 바라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고개를 숙인 세라의 몸이 살짝 떨리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고운 손은 주먹이 쥐어져 있었고,그 자리에서는 오직 나만이 느낄수 있는 마나의 파동이 조금씩 일어나
기 시작했다.계속해서 내 머리를 쥐어박는 준영의 손찌검을 본 세라가 화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좀 위험한데...

스으으으...

순식간에 우리 테이블에 알콜냄새가 진동을 했다.세라가 체내의 알콜을 마나를 일주천 하면서 확 밀어낸 모양이
다.

"세라야.안돼.참아."

나는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중얼거렸고, 막 몸을 일으키려던 세라가 조용히 앉아버린다.

"암튼 뭐,많이 사람됐나 보네 추리오타쿠?일단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구.야야.우린 저기 앉자."

아싸리 다행이다.내가 별 반응이 없고,주변에서도 살짝 안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자, 나에게 찝쩍거리던 준영이
자식은 지 패거리들을 데리고 테이블 끝으로 가서 자리잡았기 때문이었다.살짝 부르르 떠는 세라를 겨우 진정
시키자,알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민아가 보인다.


#4.소중한 사람.


끄윽...취한다 취해.정확하게 취하기 직전까지 마셨을때,1차를 가장한 우리의 술자리는 끝이났다.

"괜찮으세요?"

모두가 밖에 나와서 2차를 어디로 갈지 정하는 사이,벽에 살짝 기댄 나를 보며 세라가 걱정스레 물었다.하하하.
기분 좋으려고 나온건데...그닥 썩 좋지는 않았다.

"난 괜찮아.우린 돌아가자."

"네."

세라역시 아까의 화를 많이 누그러뜨렸는지 나를 보며 살짝 웃어주었다.어차피 많은 인원이 모인 술자리니,나하
나 빠져도 큰 문제는 될리 없다.게다가 뭐...원래 술자리라는게 먹다보면 하나둘씩 수가 줄어드는게 정석아닌가?
하하하.

"인사 안하고..그냥가셔도 되나요?"

"상관없어."

간다고 말하면 대한민국 술자리의 특성상 모두 가지말라고 잡을게 뻔하다.나는 세라를 데리고 술집옆으로 나있는
골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골목만 지나면 택시가 다니는 큰길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세라는 살짝 걸음이 풀린
나를 묵묵히 부축해 주었다.

"미안해 세라야."

"네?"

"재밌는 자리가 될 줄 알았는데....그러지 못했잖아."

"아닙니다."

하하하.어찌보면 이게 행복인지도 모르겠다.처음엔 그저 세명의 꼬맹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막막한 기분이었는
데 말이야.이렇게 순식간에 미인이 되어있고,나는 그런 미인의 품에 안겨있으니....무엇보다,이제 이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나에겐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이거 놓라니깐!"

"아...이거 참.그만 튕겨.재미없게 왜이래?"

문득 코너를 돌려는 그때에,남녀가 실랑이를 벌이는 그 소리에 나는 걸음을 우뚝하고 멈춰섰고,나 팔을 잡고 따
라걷던 세라역시 걸음을 멈추었다.

살짝 고개를 빼꼼히 빼고 보니,여자한명이 골목길 담벼락에 기대어 있었고,남자녀석 하나가 거의 반강제로 여자
를 껴안고 있었다.

"민아......잖아."

술자리 계산을 하기 불과 몇분전에,민아가 화장실을 간다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걸어나갔던 것이 생각났다.그리
고 곧바로 준영이 자식이 따라나갔었지....

"이거 안놔?"

"야.왜그래?고등학교때는 이렇게 해주면 좋아 죽었으면서 내숭은."

빌어먹을.못볼걸 본 기분이다.싫다고 뿌리치는 민아의 치마속으로 준영이 자식은 강제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멀찍이서 그녀석의 친구하나가 반대편쪽에 망을 보고 서있다.하하하.양아치 자식들....변하지도 않는구나.

"주인님."

주먹을 불끈 쥔 나를 보며 세라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열이 받는다.민아를 좋아해서냐고?그런게 아니다.그 날밤
이후로,민아에 대한 짝사랑은 훌훌 털어버렸고 정리했기 때문이었다.그것은 좋아하고 안좋아하고의 문제가 아니
다.준영이 새끼는 강제로 민아의 팬티마져 내려버리고 있다.쓰레기를 보는것보다 역겹다.싫다고 마구 발버둥치는
민아의 양손을 한손으로 모아 움켜쥐고는,마구 민아의 몸을 유린하는 녀석의 탐욕에 젖은 눈이 역겹다.발정난 짐
승하고 도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이 개자시...."

화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려는 찰나,목뒤로 차가운 감촉이 들어오더니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마치 보이
지 않는 실에 속박을 당한것처럼,내 목에 무언가 닿은 그 이후로 부터,내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굳어버렸다.

"세라...너.."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세라...그녀가 내 목뒤를 점한것이다.도대체...왜?

"죄송합니다 주인님.혈을 잠시 누른것이라...바로 풀어 드리겠습니다."

"왜...왜 그러는거야?지금 저자식은..."

"지금 주인님이 나서면...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입을 열어 세라에게 뭐라고 하려던 찰나,그녀는 골목입구로 천천히 걸어나갔다.머리 부분은 아직도 골목쪽
을 향하고 있었기에, 그 광경은 내게 똑똑히 보였다.

"그만 두세요."

어둡고 인적없는 골목길에 세라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고,민아도,그녀를 마구 희롱하던 준영도 움직임을 멈추고
세라를 바라보았다.

"뭐야..?"

어디 숨어 있었는지,준영의 추종자 두녀석도 어느샌가 달려와 세라를 바라보았다.그녀의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살짝 하고 날렸다.나는 돌아서 있는 세라의 표정은 볼수 없었다.다만,민아의 떨리는 눈동자와,황당해 하는 준영
이 패거리들의 얼굴만 보일 뿐이다.

"아가씨.그냥 지나가.험한 꼴 당하지 말...."

준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세라의 몸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아아악!"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그나마 세라와 같이 오래 있어서 그녀의 움직임이 적응이 된 나만이 알수 있었을 것이다.세라의 양 손이 준영을 막아선 두놈의 양다리에 직격한 것이다.볼것도 없이 골목벽으로 나란히 처박혔음은 말할것도 없었다.

"너...넌..아까 유 준의...."

그제서야 어둠에 가려져 있던 세라의 얼굴을 확인한 준영은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지만,이내 세라가 목뒤를 내려
치는 바람에 스르르 기절해 버렸다.

"아..나...나는.."

민아는 믿을수 없는 눈앞의 현실 때문인지 벽을 타고 그대로 스르르 주저앉아 버렸다.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세라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일어나세요...저에게 가장 소중한 분의 기억속에 계신 분이기에 도와드렸지만,앞으로는 이런일 없을 겁니다."






"세라야..."

"네."

"나 걸을수 있어."

"아닙니다.취하셨잖아요."

"큭...그런거 아니라니까.난 취하면 주사가 심하다고.얌전한걸로 봐선 나 안취했어."

한참이나 세라에게 업히다 시피 걷던 나는 그제서야 지면을 밟을수 있었다.

"휴우.오늘은 너한테 고생만 시키나봐."

"아닙니다.즐거웠는걸요.주인님이랑 계속 있어서.."

하하하.고맙다.틀림없이,세라와 유나,노아를 만나게 된 내 운명은 가혹한것이 아니라 축복이었다.내게도,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셋이나 생긴것이니까.

택시를 타고 내리고도,한참이나 세라의 부축을 받아 동네어귀를 걷던 나는 이제 나란히 걸었다.

"손 줘봐."

"네?"

"이렇게 차가운데..."

안쓰러웠다.세라의 고운손이 차가우니 더욱더 안쓰러워서 나는 두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이윽고 세라
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고,우린 계속 손을 잡고 걸었다.

"세라야."

"네?"

"나는...어떤 존재야?너에게 있어서."

노아에게도 물었던 그 질문을 나는 또 세라에게도 하고 말았다.

"가장...소중한 존재입니다."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혼자인게 익숙할정도로,고독과 외로움속에 있던 내가,이제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
어있다는게 너무나 기쁘다.활짝 웃는 세라의 얼굴에서 거짓이란 조금도 보이지 않았기에 더더욱 기쁘다.

"헛...."

기쁜마음에 환하게 웃던 나는 나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 삼켜버렸다.우리 동네의 이 거리...그리고 반짝이는 저
간판...바로 민아와 같이왔던 모텔이 있는 바로 그 거리였다.내가 흠칫하자,세라역시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조금씩 말없이 걷고 있을 그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

"으..응?"

"그거 알고 계신가요?"

"뭐..가?"

내 되물음에 세라는 한동안 아무말없이 묵묵히 걷기만 하더니 이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페어리들은,성장이 끝나기 전에 2차개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최종적으로 신체적 성장이 끝나야 하지요."

그..그런 이야기를 갑자기 왜 꺼내는거야...너...의아한 내 표정에도 불구하고,세라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와 유나는...대회의에 다녀온 오늘을 기점으로 성장이 모두 끝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덜컹거리며 내달리기 시작했다.그녀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바보가 아닌이상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 말을 꺼낸 세라의 얼굴이 붉게 물든것도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세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계속해서 바라보면 충동적으로 입을 맞춰 버릴것만 같았지만,꾹 참고 나
는 조용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그 말을 꺼내들었다.

"너에게 있어서...2차개화는 어떤건데?"

세라는 여전히 발그레 해진 얼굴로 내 손만을 꼭 잡고 있었다.내 심장은 계속해서 두근거리며 이 아이의 대답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너무나 아름다운 달빛,그 달빛을 받아 더더욱 아름다운 세라의 두 입술이 꿈결처럼
아름답게 열리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교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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