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붉은 달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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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낯선 번호에 잠시 망설이던 성철이 핸드폰을 열었다.
;여보세요?;
성철의 물음에 건너편 수화기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다. 성철은 다시 한번 번호를 확인하고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또 다시 침묵이 흐르고 짜증이 난 성철이 전화를 닫으려는 순간
;나다!;
나이 지긋한 여자의 목소리다. 이번에는 성철이 침묵했다. 오년만에 들어보는 어머니의 목소리
였다. 실제 모습을 못본지는 이십년도 넘었다. 당황하는 자신에게 짜증이 일었다.
;왠일이세요?;
아들의 퉁명스러움 때문이었을까 이번에는 어머니가 잠시 침묵햇다. 성철도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딴 일이 아니라 용구한테 사고가 생겨서….!
용구? 용구가 누구지? 아 저 아주머니 새끼가 용구였지! 용구! 애 새끼이름이 용구가 뭐냐? 차라리
짱구라구 하는게 날뻔 했군! 성철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그런데 걔가 왜요?;
성철은 일부러 용구라는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물어준 것 만에도
고마운듯 아니면 사정이 절박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와르르 말을 쏟아 놓는다.
;용구가 며칠 전 교통사고를 당했어! 지금 의식불명 상태인데 어떻게
될지 알수가 없다는구나! 그런데 하필 뺑손이차에…..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머니가 하고자 하는 말의 결론은 성철더러 치료비를 포함한 뒷수습을 맡아 달라는 말이였다. 그
동안 가슴속 깊숙이 잠재우고 있었던 증오와 분노가 폭발하려는듯 부글거리며 끓기 시작한다. 종철이
그 새끼는 뭐하고 자빠졌구요? 라는 고함이 입속에서 뱅뱅돈다. 그러고 보니 사고로 자빠졌다는 용구
라는 새끼는 도대체 나와는 어떻게 되는 사이지? 어머니의 아들이니 나와는 아버지다른 형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동시에 내 작은집 사촌형의 아들이기도 하니 내겐 오촌 조카가 아닌가?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성철은 욕설을 어금니로 씹어 삼키며
;그래서 나보구 어쩌라구요?;
;너 한테는 미안하기는 한데….사정이….;
어쩌구 저쩌구 어머니의 넋두리가 한참 계속된다.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설혹 그것이 자식일지라도
구차한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다. 성철이 아는 어머니는 도도하고 거만한 여자였다. 못가진 사람은
늘 천시했고 눈아래로 깔고 보았다. 자존심 또한 하늘을 찔러 국민학교 시절 성철이 반장이라도
선출이 되지 못하면 자식에게조차 싸늘한 경멸의 눈빛을 보내곤 했었다,
;알았으니 그만하세요! 어느 병원이예요?;
성철은 경숙에게서 사기를 치다시피 하여 얻은 돈이 떠올랐다. 인과는 늘 그렇게 연결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성철은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꼬이고 비틀리기 시작한 것은 모두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부터 기인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치마두른 계집이란 모두 뚫어버리면 한결같이 암캐에 불과하다는
믿음도 어머니를 증오하고 미워하면서 얻은 확신들이다. 전화를 끊은 성철은 스크린에 달리는 말들을
쫒아 먼 옛날 인간에 대한 증오가 뿌려지기 이전에 자신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성철의 고향은 충청도의 어느 조그마한 읍면 소재지안에 있는 시장통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성철의 고향이기에 앞서 어머니인 조선주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더 정확히는 그녀의 아버지,
그러니까 성철의 외할아버지 조칠성의 태가 묻힌 곳이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에 장남이었던 칠성은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몇 년 객지를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떻게 벌었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꽤많은 종자돈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돈을 밑천삼아 마침 읍내에 형성되기 시작한
시장에 눈을 돌린 칠성은 시장의 상가들을 사거나 혹은 지어 시장이 제법 규모가 번듯하게 되었을
즈음에는 시장상가의 삼분의 일정도는 그의 소유로 되어있었다. 좋게 말하면 시장은 조칠성의 왕국
이 되었고 무남독녀 외딸이었던 조선주는 그 왕국의 공주가 되었던 것이다.
성철의 아버지 박일우가 그곳 읍면 소재지의 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한 것이 조선주가 유학같던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부의 뜻이 별로 없어 대학진학은 포기한채 고향으로 내려온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시골구석에 쳐박혀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선주에게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말쑥한 국민학교 선생인 그것도 총각인 박일우가 눈에 띤 것은 필연이었으리라. 사실 조선주는 예쁜
얼굴이 아니었다. 체격도 아버지 칠성을 닮아 백칠십이 훨씬 넘는 장신에 골격이 굵직 굵직 기골이
장대했다. 키가 큰탓에 비만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슴도 엉덩이도 모두 거대했다. 쭉 찢어져 올라간
눈이 거친 성정을 나타냈고 작은 입은 오만하고 독선적인 성격을 표현했다. 대신에 피부는 칠성을
닮지 않고 누굴 닮았는지 백옥같이 하얗다. 어른들은 백설기떡에 눈내린 것 같다고들 감탄했다.
선주네 집근처에서 하숙을 하던 일우는 오가며 자주 선주와 맞딱트렸다. 처음엔 눈인사를 하고, 다음
번엔 고개를 끄덕여 아는체를 하고, 또 다음엔 말을 섞고 그렇게 두 청춘남녀는 가까워졌다, 사실
선주는 일우가 썩 마음에 드는건 아니었다. 자신보다도 작은 키에 비리비리한 체격, 영양이 좋지
않은듯 푸석한 머리칼, 창백한 낯빛. 어느것 하나 선뜻 맘에 드는 구석이 있는건 아니었다. 맘에 드는
건 국민학교 교사라는 직업과 지적으로 보인다는 점뿐이다. 서울 유학시절 뽀얗고 세련된 서울계집애
들이 자신을 언제나 촌스럽고 공부못하는 멍청이라고 따돌리고 손가락질했었다. 선주 자신에게
결여된 것은 먹물이 보여주는 세련됨이었다. 그런데 일우가 그런 점을 충족시켜 줄수 있을 것 처럼
보였다. 일우의 눈에 선주는 골은 비고 엉덩이만 커다란 그리고 그 엉덩이에 뿔마저 난 대책이 없는
천둥벌거숭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공주였다. 대도시에 비한다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부였지만 박봉
을 쪼개 고향집 부모님의 생활비를 보내야 하고 동생들을 돌보아야하는 그로서는 선주의 재력이
아니 더 정확히는 선주 아버지 칠성의 재력이 눈이 돌아버릴 정도에 유혹이 아닐수 없었다. 더구나
그녀는 무남독녀의 금지옥엽이 아닌가?
토요일 오후. 바닥이 좁은 읍내를 피해 제법 먼 시까지 나온 두 남녀는 어느 여관방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왠만한 사내라면 몸집만 봐도 기가 죽을 장대한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선주가
여관 침대위에 벌렁 누어있다. 침침한 여관방이라 더한지 하얀 피부가 더욱 하얗게 어둠속에서 빛
나고 있는 것 같다. 나이답지 않게 유난히 검은 음영이 드리운 사타구니는 너무 흰 피부때문인지도
모른다. 골격이 크고 살집이 많아서 그렇치 전체적인 몸매는 균형잡힌 글레머에 가까웠다.그러나
이런 선주의 몸위에서 애무를 하고 있는 일우는 그녀의 풍만한 몸에 기가 질려 식은 땀을 삐직
거리며 허둥대고 있었다. 더구나 계집애는 처녀가 아닌게 분명하다. 여관방에 들어서자 마자
부끄러움도 없는지 일우보다 먼저 옷을 훌훌 벗어던지더니 팬티 한장만 달랑 남긴채 침대위에
벌렁 눕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일우가 꼬챙이 같은 좆을 세워 숨바꼭질 하듯이 구멍을 찾아
꽂아 넣으니 별 다른 저항도 없이 쑥우욱 구멍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일우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펌푸질을 해 냈다. 선주는 숨소리만 조금 가빠졌을 뿐 밑에 깔린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일우는 금방
그녀의 몸속에 토정을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쪽은 서로가 원했던
기대를 서로에게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같다. 선주는 늘 멸시의 눈으로 남편 일우를 지켜 보았고
일우는 그런 선주를 소 닭보듯 없는 것처럼 지나쳤다. 세월이 흘렀다. 결혼한지 칠년이나 지나
아이가 태어났다. 성철이었다. 그렇게 또 십여년이 흐르고 아버지 박일우는 조그마한 초등학교의
교감으로 승진하여 집을 떠날 구실을 만들었고 징역이 끝난 사람처럼 홀가분하게 부임지로 떠났다.
선주는 그동안 노쇠한 친정아버지대신 상가들을 관리하며 시장통의 암호랑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속병이 생긴 것은 성철이 기억하기론 자신이 중학교를 입학할 즈음이 아니
었나 싶다. 아버지가 부임지에서 새여자를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는 소문이 어머니 귀에 들어간 것이
그때쯤 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소문에도 어머니는 별다른 제스처가 없었다. 쫒아가서 사단을 내도
열번은 더 낼수 있을 성격인데도 이상하게 어머니는 이를 앙다물어 보이다간 별안간 괴이스런
웃음을 입가에 잠깐 띄우고는 그만이었다. 하긴 남편이 타지로 부임을 한지가 오육년이 넘었지만
한번도 부임지를 찾지 않았던 어머니가 새삼 그런일로 달려간다는 것도 그녀의 자존심상 용납이
되지 않았으리라. 그때 이미 나이가 사십중반으로 들어서고 있던 어머니는 중후하고 귀티가 나는
중년부인이었다. 그녀의 커다란 몸짓은 더 이상 흉이 아니라 시장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관록
에 힘을 더해주는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역시 아무렇치 않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자존심
이 상했기때문인지 배신감때문인지 알수는 없었지만 그 이후 어머니에게는 속병이라는 혹자는
울화병이라고 부르는 가슴앓이가 생겼다. 보통 일주일이나 열흘의 한번 꼴로 가슴에 격심한 통증
이 나타나는데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었다. 그럴때면 어머니는 안방 네귀퉁이를 기어다니며 가슴을
후벼 팠다. 의사가 달려오고 혹은 응급차에 실려가도 뽀족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렇게 꼬박 한나절을
통증으로 뒹굴고서야 통증은 저절로 서서히 가라 앉아가는것이다.
그때 종철이 형이 나타났다. 종철은 성철에게는 작은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사촌형이
되는셈이다. 제대를 하고 이내 취직이 되지않아 방구들만 죽이던 종철에게 생각난 것이 제법
많은 상가를 운영한다는 큰집이었다. 그래서 장사라도 배워 볼 요량으로 큰집을 찾은 것이다. 큰
아버지 부부가 어떤 형편인지를 그는 알길이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반응이 성철에게는 의외였다.
원래 시집식구라면 고개부터 외로 꼬는 어머니가 선뜻 종철형에게 본채에 딸린 가게터를 하나
내주고 잡화가게를 시작하게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어머니의 가슴앓이가 시작된
모양이다. 마침 볼일이 있어 본채에 들어와 마당에 있던 종철형이 안방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깜작놀란 종철형이 ‘ 큰 어머니!’를 부르며 안방으로 쫒아들어 갔다. 그리고 삼십여
분뒤 어머니는 언제 아펐냐는듯 한 얼굴로 안방문을 나섰다. 그 일 이후 어머니의 가슴앓이가 시작
되면 종철형은 장사를 하다 말고라도 안방으로 호출이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신음이 차츰 잦아
들고 한시간여가 흐르면 안방문이 열리고 종철형이 얼굴을 벌겋게 상기시킨채 나오고 그 뒤로 앓던
사람답지 않은 환한 혈색의 어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이렇게 종철형은 어머니 가슴앓이의 특효약이
되어갔다. 무슨 비방인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안방에 들어가면 절대 출입금지가 되었다. 안방
방문앞에서 얼쩡거리는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건 자식인 성철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이미 중학교
이학년, 사춘기로 들어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맹렬하던 시절이었던 성철에게는 엄마와 종철형의
모습이 여간 수상스러운게 아니였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두 사람은 전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무뚝뚝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종철형을 대했고 종철형 역시 무섭고 엄한
큰어머니로 엄마를 대할 뿐이었다. 성철은 안방을 엿 볼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철통방비가 되어있는 안방으로에 접근이 쉽지는 않다. 그러다가 다락의 환기창이 떠올랐다.
성철은 만세를 불렀다. 안방에는 아랫목위에 커다란 다락이 딸려 있는데 엄마가 장부따위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어린 시절 성철이 자주 올라가 놀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다락끝쪽에 환기창이 하나
있었다는 기억이 나고 그 환기창은 다락밑에 있는 부엌옆으로 올라가는 장독대 옆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환기창만 미리 손봐 놓으면 될일이었다.
만반에 준비를 끝낸 성철이 엄마가 아플때만을 기다렸다. 토요일 한 낮 오후인데도
날씨가 흐려 사방이 어둡다. 책상앞에 앉져 공상에 빠져 있던 성철에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 문산댁! 문산댁!
; 네에..말씀하세요.;
; 가게에 나가서 종철이 좀 들어오라구 해요.;
;네에!;
;문산댁이 대신 가게좀 봐주구. 안엔 아무도 들이지 말구!
참 성철이는 어디 갔나?;
;아랫채 방에서 공부하는 모양이던데요!;
;알았어.;
식모가 바같채 가게로 종철형을 부르러 나간다. 문틈으로 마당건너를 보니 마루에 서있던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가는게 보인다. 날씨가 흐린날 엄마가 아플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집에 죽치고 있었던
보람이 있다. 성철은 후다닥 장독대로 뛰어 올라갔다. 미리 손보아둔 환기창을 소리나지 않도록 조심
스럽게 밀고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간신히 다락으로 들어선 성철은 낮은 포복으로 살금살금 기어
안방과 연결된 다락문을 향해 전진했다. 종철형이 벌써 도착했는지 두런두런 사람 말소리가 들린다.
밖에 상황을 전혀 알수 없는 성철로서는 선뜻 다락문을 열수가 없어 그저 가만히 숨죽여 엎드려서
기척에 귀를 기우렸다. 무엇인가 소근거리는 말소리들은 들리는데 무슨말인지 알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엄마가 통증이 있을때내는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락문을 조금
열었다. 성철은 자신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사춘기 소년의 관심사인 섹스장면을,
그것도 사촌형과 엄마가 근친상간으로 엉클어져 뒹구는 모습을 보고 싶은건지, 한편으론 근엄하고
무뚝뚝한 엄마가 절대 그럴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문은
열렸다. 성철은 조심스럽게 다락문 틈으로 눈을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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