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색녀는 존재하는가? 3일천하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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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2,261회 작성일 17-02-1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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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녀는 존재하는가?
2부 1장
[부제 : 3일 천하]

이 소설은 과거의 사실에 기초를 둡니다. 다만 너무 정확한 묘사를 할 경우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신분이 혹 노출될지 몰라 약간의 허구를 가미합니다. 단 일어나는 사건은 진실임을 밝힙니다.
이 소설에는 섹스는 없습니다. 섹스와 관련된 대담한 묘사 또한 없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그 상황에서의 심리묘사와 사건전개를 좀 더 재미있게 묘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노골적인 것도 좋지만 은근한 소설도 즐길만 하다는 것을 이 소설은 통해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제목에서 '색녀' 라는 단어는 그저 색을 밝힌다는 의미보단 좀 일찍 성에 눈을 뜬 그런 여자를 칭합니다. 흔히 생각하는 호색녀는 아닙니다. 이 소설에서 가능하다면 제가 경험한 두 명의 여자에 대해 전개를 하고자 합니다. 한 명은 사촌동생이며, 한 명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하지만 한때 정말로 사랑했던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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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부터는 제가 외국에 있을 때 벌인 애정행각입니다. 부제를 특별히 '3일 천하' 로 정한 이유는 아마도 이 소설이 끝날 무렵에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격려해주시는 분이 계시더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번 시작한 소설이니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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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께선 내 미래에 대해 알고 싶으셨나보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동서양 어디에서나 다 똑같으련만. 어머니는 어린 내 손을 잡아 높은 대나무에 색동 고무공이 달린 집으로 날 데려가셨다. 웬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고 쌀인지 콩인지는 기억이 확실히 나지는 않지만 아주머니는 그것을 한 웅큼 손에 쥐었다가 조그만 상에 뿌려댔다. 그리고는 왈 "이 아이는 커서 외국을 자주 왕래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구만…"


글세. 내가 어렸을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이나 외국에 나간 다는 것은 그만큼 높은 자리에 있거나 돈을 많이 번 사람만이 누리는 일종의 특권이었다. 내가 외국에 자주 나간 다는 점쟁이의 말은 내가 훌륭하게 되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국이 부강해져 국제화되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나가거나 또 원하는 사람은 예전에 비해 훨씬 용이하게 유학을 갈 수 있다는 그런 말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 점쟁이가 한국인의 무리한 과시용 해외여행으로 인해 나라가 'IMF' 라는 고약한 병으로 고생을 한다고 예언했다면 난 아마도 그 점쟁이를 기어이 찾아서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을련지도 모른다).
고로 난 그런 부류에 우연찮게 휩싸인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일뿐이다. 어쨌든 한국의 미래를 제대로 예언한 그 점쟁이의 말이 맞긴 했지만…


지금 그 점쟁이를 만난다면 이런 말을 꼭 물어보고 싶다. 내 반쪽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고?


점쟁이의 말이 맞아 떨어질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 해외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6년 사이에 5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거나 몇 년 간 정착해서 살았으니까…


내가 가본 나라 중에는 한국보다 나은 선진국도 있었고 세계에서 못사는 걸로 꼴찌를 다투는 그런 후진국도 있었다. 난 그런 후진국에서 3년 전에 2년 정도 정착해서 살았다. 물론 그 나라를 밝히지는 못한다. 사정상…


난 그 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다는 대학에서 강사를 했었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에서는 서울대와 같다고나 할까… 물론 후진국인지라 실력은 우리나라의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의 중간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앞으로는 이 대학을 K 대학이라 칭하겠다.


내가 두 번째 얘기 거리의 대상인 색녀 Ⅱ를 만난 건 바로 K 대학에서였다. 그녀는 K 대학의 영문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었다. 대학생이었지만 나이는 17에서 18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한국에서는 고 2, 3 정도나 되나?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내가 있던 나라의 교육체계가 우리나라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 비해 2, 3 년 정도 덜 배우고 대학생이 된다는 소리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마찬가지이겠지만 살기 힘든 나라일수록 그리고 교민의 수가 적은 나라일수록 교민회가 잘 모이고 단결력이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교민의 수가 적은 만큼 조그만 실수를 하면 소문이 쫙 퍼지는 건 순식간이지만…
교민 수가 적기 때문에 교민들이 가지는 정기적인 모임도 가족적이며 그런대로 재미있다. 나나 그 애는 (이름은 가명으로 상희라 하겠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교민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했었다. 그 모임에서 통성명하고 그저 오빠 동생으로 친하게 지냈었다. 물론 처음에는 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난 그 나라에서의 고즈넉함이 좋은 반면 너무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건 처음인 나로서는 외로움이란 더욱 힘든 공포였다.


참! 그 애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해보겠다. 도피성 유학이라고 들어봤을 거다. 물론 도피성 유학은 아직까지도 돈이 너무 많아 주체를 못하는 부모를 두거나, 높은 자리에 앉아 탁상공론을 밥먹듯이 하는 부모를 둔 자녀들의 특권의 탈을 쓴 자기 파괴의 행각일 게다.
상희의 부모님도 돈은 많았다. N 정권 때 국내 건설업계에서 수주율 1위를 차지했던 건설회사 이사의 딸이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상희는 솔직히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지라 상희의 부모는 상희를 내가 있던 그 나라로 유학을 보낸다. 물론 그 나라에서 정착을 먼저 한건 상희였고 난 몇 개월 차이로 그 나라로 입국했다.


상희의 엄마 역시 색녀였던 것 같다. 상희의 엄마는 20살 즉 대학 1년에 상희 아빠와 눈이 맞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고 한다. 놀기 좋아하고 젊은 남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지 않는 그런 타입의 여자였다. 어떻게 보면 개방적인 엄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개방 뒤에는 뭔가 색녀라는 사실을 듣기 좋게 미화한 기분이 드는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난 그 나라에 있으면서 상희, 상희 엄마와 많이 어울렸으며 같이 나이트 클럽에 가서 서로를 붙잡고 흔들어대거나 날을 새가면서 술을 퍼마신 적도 있다.
그런 엄마에게서 태어난 상희… 어쩜 엄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색녀였던 것 같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상희가 영문과 1학년일 때였다. 그러니까 상희 나이가 17세였던 때. 이미 3년 전 일이니까 지금은 20살이 넘은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게다.


'유유상종' 이라는 말이 있듯이 젊은이는 젊은이랑 모이는 것이 자연적이다. 그래서 상희와 나도 자연적으로 친해졌고. 같이 놀러를 가거나 식사를 하러 다니는 건 예사였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어디까지나 어울릴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서로의 필요에 의한 행동이었다. 서로 연인 감정을 가져본 건 아주 우연한 사건이 있은 후였다.


상희와 난 꾸준히 교민 모임에 참여했다. 물론 교민의 수가 워낙 적다보니 젊은 사람이라고는 나와 상희를 제외하면 몇 안 되는 게 사실이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추운 겨울이 시작되기 전이었으리라. 상희가 교민 모임에 나오지 않았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난 모임이 끝난 이후로 상희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물론 그전에는 형식적인 전화를 주고 받을 뿐 그리 친하지 않았던 때였다.


"여보세요? 상희니? 너 교민 모임에는 왜 안 나왔니?"


"응! 오빠구나. 감기 때문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 상희는 그날 몸이 좋질 않아 교민 모임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난 건강관리 잘 하라는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상희에게서 고백을 들어 안 사실이지만 바로 이 한 통의 안부전화 사건 이후로 상희는 날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이 한 통의 안부 전화가 없었다면 이 소설의 부제인 '3일 천하'를 이룰 수 없었으리라.


생각해 보라. 한국같이 사람이 넘쳐나는 나라에서도 위와 같은 안부 전화를 했을 경우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 틀 수 있는 확률은 그러치 않은 경우보다 훨씬 높으리라. 하물며 사람이 그리운 후진국에서는 오죽 하겠는가? 물론 나도 평소에 상희에게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이 차이가 10년이나 나기 때문에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사이라고 나 자신에서 스스로 타일렀기 때문에 상희에 대해서는 동생 이상으로서는 그다지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그 당시 20대 후반이었고 상희는 10대 후반이었으니 일반적인 관념상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상희는 항상 나보고 도둑놈이라고 했다. 나이 어린 자신을 나이 많은 내가 꼬득였다는 이유로…

'계집애! 지도 좋았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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