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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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089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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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부>


#1 -마유미의 헌신

 

“하아..하아..”

준은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무기를 움켜쥐었다.상대편도 자신과 똑같은 자세로 단검을 움켜쥐고 서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준과는 달리 그다지 지쳐보이지는 않는 모습이었다.에메랄드 빛이 감도는 머리칼을 뒤로 넘긴 아름다운 용모.하지만 준의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그저 괴물일 뿐이었다.

‘뭐 저런게 다있지...’

준은 자신의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힐러라 불리는 치유자.절대 전력에 넣을수 없는,어찌보면 의료반 같은 존재이라 할수 있겠지만,준은 그런생각을 깔끔하게 수정해야만 했다.그녀의 체술은 상상 이상이었다.물론 그것이 세라 혹은 수아와 겨룰 정도는 절대 아니겠지만,문제는 그녀의 치유력에 있었다.

차르르르르..

준의 뮤즈가 공명하며,수십개의 얼음의 칼날들이 그녀를 덮쳐갔다.유나의 기운을 받은 빙계의 공격,하지만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그녀의 몸은 얼음의 칼날에 찢겨진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힐링의 마법을 자신의 온몸에 걸어논 모양이었다.

‘끝이 없잖아 이래선.’

아까부터 같은 상황만 반복되고 있었다.음공을 이용해서 준이 공격을 하면,그녀는 입었던 데미지를 엄청난 속도로 회복했다.접근전으로 몰고 나가려고 하자니,체술 수준역시 무시할 것이 못되었다.

‘나는 결국 애들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가?’

이쯤되니 준역시 허무함이 밀려 들어왔다.아무리 이 세상에서 가장 늦게 오너가 된 자신이지만,큰 전쟁을 겪고 나서도 역시나 페어리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못내 답답해져 왔다.

타앙!

상념에 젖어 있던 준은 자신에게로 빠르게 날아오는 단검을 가까스로 쳐내었다.준의 앞에 있던 힐러는 다시금 품을 뒤적여 단검을 꺼내들었다.아까부터 쉴새없이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그녀가 들고있는 단검은 아직 여분이 많은 모양이었다.자세를 낮추고 준의 빈틈을 찾아 서서히 접근하는 페어리의 모습. 그녀의 모든 자세는 무인도에서 세라가 체술을 설명할때의 정석자세와 일퍼센트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윌리엄스 지독한놈. 공격형 페어리가 아닌 인물에게도 저런 훈련을 시켰다는 건가.’

새삼 자신의 앞에있는 페어리가 불쌍하게 까지 느껴지는 그였다.그녀는 분명 공격을 위해 태어난 페어리가 아니었다.부대의 부상자를 치료하는 힐링마법 하나 덜렁 갖고 개화한 것이 바로 힐러,즉 치료자 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정식으로 체술을 배운 인물인듯 보이는 것은,그녀가 체술을 타고 났기 때문은 분명 아닐것이다.윌리엄스라는 오너를 만나 여지까지 피나게 연습한 결과물일지 몰랐다.

‘그걸 써야 하나.’

준은 한동안 망설였다.마치 괴물처럼 끊임없이 상처를 치유하며 달려드는 그녀.해결책은 필살기라고 할수 있는 그 기술뿐일지도 몰랐다.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엄청난 집중력을 요할뿐더러, 대자연의 마나와 부딪히는 모험을 감행하는 기술이다 보니 시전후 피로도가 크다는것이 걸렸다.

“큭!”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그녀가 준을 향해 맹렬하게 공세를 퍼부었다.준은 세라의 가르침대로 뮤즈를 회전하며 그녀의 단검이 그리는 궤적을 막아내었지만,그녀는 기이하게 움직이며 준의 빈틈 적재적소에 주먹이나 발을 꽂아넣었다. 안그래도 스피어 마스터 셋을 상대로 한시간가까이 사투를 벌였었던 준은 지친 상태 그대로 그녀의 공격들을 얻어 맞을수 밖에 없었다.

‘젠장.쓰는수밖에 없겠어.이러다가 내가 죽는다.’

준은 벌떡 일어나 필사적인 힘으로 뒤로 빠지며 거리를 벌렸다.

‘이런 제기랄.’

준은 속으로 욕지꺼리를 퍼부었다.어찌된 것인지 그녀가 준을 필사적으로 ㅤㅉㅗㅈ아왔기 때문이었다.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준을 노려보는 그녀는 계속해서 준과 접근전을 시도했다.

‘이래선 그 기술을 쓸수가 없잖아.’

리미가 고안해준 준의 그 기술은,강한 파괴력대신 몇가지 발동요건이 필요했다.첫째는 좌표계산을 위해 적과 어느정도의 거리를 벌려야 한다는 점이었고,두번째는 뮤즈를 땅에 꽂아넣고 마나를 주입할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그녀가 이렇게 맹렬하게 붙어서는 두개의 조건중 어느것도 충족시킬수가 없었다.

딸그랑!

그녀의 몸이 허공에서 빙글 하고 돌더니,이내 준의 얼굴이 돌아갈정도의 킥이 그의 턱에 정확하게 꽂혔다.준은 움켜쥐었던 뮤즈를 놓친채로 뒤로 한참이나 나뒹굴렀다.

“큭...”

그녀는 단검을 움켜쥔채로,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는 준을 바라보았다.모든것이 오너인 윌리엄스의 작전대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는 윌리엄스가 직접 준을 처리하기로 했었지만,그럴 상황까지는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준과 대적할때는 최대한 그의 곁으로 붙어 접근전을 시도하도록-

전투가 시작되기전 하달된 윌리엄스의 명령이었고,그녀는 그것을 잘 이행한 셈이었다.그녀는 천천히 단검을 움켜쥐었다.이제 지칠대로 지친 그의 심장에 이 비수를 꽂기만 하면 모든 상황은 종료되는 것이었다.

화르르르르..

준에게 달려들려던 그녀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화끈한 감촉에 반사적으로 뒤로 빠졌다.그리고 그녀가 몸을 빼는것과 동시에 수십개의 화염의 창들이 자신이 서있던 곳으로 직격하기 시작했다.

‘이건..’

그녀는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상이 생긴 자신의 종아리에 힐링마법을 걸며, 재빨리 자세를 낮춰 앞을 바라보았다. 타는 듯한 적발. 눈동자에 떠올라 있는 희미한 마법진의 모습.백옥의 피부와 어우러져 더욱더 숨막힐듯한 미를 뽐내는 한여인의 준의 앞에 서있었다.

“마유미!”

준은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의 팔에 세겨진 자그마한 불꽃문양의 문신. 이제는 어엿한 여섯명의 페어리의 오너인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알고 있었다.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그리고 평소와는 차원이 다른 마나의 양.

‘멸겁화의 인이 맺힌 적법사가 있었나?’

그녀는 준의 앞을 막아선 마유미를 보고는 급격히 당황했다.저것만큼은 오너인 윌리엄스에게도 듣지 못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덮쳤던 불꽃의 창들.마법이라곤 힐링마법만 쓸줄아는 자신이지만,보통 그런 창을 소환하는 마법이 그렇게 많은 양의 창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는 것쯤은 더 잘아는 그녀기에 긴장의 정도는 더욱 컸다.

우우우웅...

준은 마유미가 내뿜는 화염탓에,주변에 있는 풀들이 흡사 건초마냥 말라비틀어지는 것을 보고는 입을 쩍 하고 벌렸다.평소에 누구보다도 착한 그녀가 오늘만큼은 너무나 달라 보였다.

‘분명 유나도 그랬었어.인이 맺혔을 당시엔 기억조차 할수 없다고.그렇다면..마유미도?’

준이 생각할 틈도 없이,힐러는 맹렬하게 마유미를 향해 달려들었다.준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다 갈비뼈쪽에 엄청난 통증이 옴을 느끼고는 주춤거렸다.아무리 봐도,체술에 특화되지 않은 법사형 페어리 마유미에게 그런식으로 달려들었다간,그녀역시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유미 위험...”

준은 그대로 말문이 막혀 버렸다.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던 힐러에게,마유미의 주변에서 엄청난 숫자의 파이어볼이 쏟아져 나갔기 때문이었다.흡사 노아의 정령력을 보는듯한 엄청난 발동속도. 평소의 마유미라면 20초 이상 소요되었을 마법의 양이 눈깜짝할 사이에 발동되며 힐러의 주변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콰콰콰쾅!

준은 열기때문에 볼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도 잊고는 마유미를 바라보았다.평소처럼 애교와 친절함이 잔뜩 베어있는 표정이 아닌,냉정하게 적을 바라보는 눈.마치 각기 다른 자아를 가진 노아를 보는것처럼 극심한 대립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쏟아지는 불구덩이를 피하는 힐러를 바라보며,마유미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준의 눈에는 그저 보이지 않을정도의 속도.게다가 그것은 꽤나 복잡한 인이었다.

“헬 파이어 (Hell fire)”

준은 아까의 충격으로 갈비뼈에 금이 간것도 잊은채로 나무기둥을 지팡이 삼아 벌떡 일어설수밖에 없었다.마유미의 주변으로 엄청난 불기둥이 소환되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보통의 불처럼 붉은 색깔이 아닌,거무스름한 색이었다. 마법의 이름 그대로 지옥의 화염은 점차 크기가 커지는가 싶더니,이윽고 힐러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뿜어져 나갔다.

“꺄아아아!”

유달리 과묵했던 힐러는 8써클의,그것도 유도탄처럼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발동되는 마법에 직격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땅으로 추락해 버렸다.그녀는 고통에 찬 신음을 하며 나뒹굴렀고,잔인하게도 시커먼 불길은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잠식해갔다.

“마유미!!!”

준은 옆구리가 찢어질듯한 고통도 잊은채 크게 소리 질렀다.마유미가 자신의 마법이 직격한 것을 확인하고는 뒤를 돌아볼 그 찰나, 힐러가 소멸되기 직전에 자신을 향해 혼신의 힘을 짜내어 단검을 집어던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짧은 찰나,마유미의 두 눈망울이 흔들린다.그녀는 망설임없이 준을 보호하듯 뛰어 들었다.

“아...”

순간 그는 보았다.뒤에서 허무하게 소멸해가는 힐러와,그녀가 던진 최후의 발악이 마유미의 등에 꽂혀 있는 것을. 그리고 마치 슬로우모션처럼,마유미는 준의 품으로 천천히 쓰러져 갔다.

준은 마유미의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열기도 잊은채,쓰러지는 그녀를 안아들었다.그녀의 등쪽에 꽂혀 있는 작은 단검. 멸겁화의 인 탓에 눈망울에 맺혀있떤 자그마한 마법진이 희미해 지기 시작했고,힘없는 그녀의 눈망울은 준을 보고 있었다.

“마유미!”

준은 얼른 그녀를 끌어 안은채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마유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준은 다급하게 그녀의 등에 꽂혀있는 단검을 빼어내었다.이윽고 붉게 물드는 그녀의 브라우스.준은 눈물이 울컥 나올뻔한 것을 겨우 참으며 마유미를 불렀다.

“주인님..”

“이 바보야!거기서 날 끌어 안으면 어떡해!그대로 뒀어도 난 죽지 않았을 거라고!”

마유미는 거칠게 숨을 쉬었다.하지만 그런 준을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는..저는..그래도 행복해요.”

“이 바보야!넌 소멸되면 내가 살릴수 없다고 했잖아!”

준은 얼른 그녀를 꽉 끌어 안았다.그의 눈에서는 점점 빛을 일어가는 불꽃문양의 인이 눈에 들어왔다.인이 맺힌뒤 일시적인 폭주 현상이 있어야 했지만,충격으로 인해 인이 다시금 희미해져 가는것만 같았다.

“그래도 좋아요.이게 좋아요.”

조금씩 떨리는 그녀의 입술.준의 눈가에는 금새 눈물이 고였다.착각탓일까?그녀의 몸이 조금씩 차가워지는것만 같았다.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유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시시껄렁한 응급처치를 위해서도, 그녀의 행동에 대한 보상도 아니었다.마치 수영을 배우지 않은자가 살기위해 물속에서 손발을 놀리듯,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고,점점 식어가던 마유미의 주변으로 점점 준의 마나가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효과가..효과가 있다!’

준의 눈에 다시금 빛을 발하는 그녀의 인이 보였다.준은 얼른 더욱더 바싹 그녀를 끌어 안았다.전투로 인해 여기저기 긁혔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그녀.마유미의 촉촉한 입술이 준의 입술에 닿았다.그리고 그와 동시에,식어가던 마유미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본래의 체온을 되찾기 시작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준은 그것이 누구의 전투인지 알수 없었지만,확실한 것은 지금 그가 마유미를 두고서 쉽게 움직일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이 맺힐때는 반드시 오너와 함께 있어야 해요.-

전에는 이해할수 없었던 유나의 말.준은 계속해서 불규칙적이었다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마유미의 마나를 느끼며, 유나가 해줬던 그 말의 뜻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었다.

 

 

#2-전략싸움.

 


“락 스톰!(Rock storm)”

윌리엄스의 시동어가 울림과 동시에,주변에 있던 바위들이 폭풍과 함께 숲을 쓸어나갔다.마치 숲 전체가 폭격을 맞은 듯한 형상이 되는 것에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윌리엄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피해냈군.’

그는 피식하고 웃었다.리미는 계속해서 마나를 숨긴채로 마법을 회피함과 동시에,꾸준히 자신을 향해 무기를 날려왔다.그때마다 번번히 윌리엄스의 실드에 부딪혀 공격들은 무효화 되고 있었지만.

‘대단하군.정말 대단해.’

윌리엄스는 재미있다는 듯 피식하고 웃어버렸다.패턴을 바꿔도,혹은 시간차로 마법을 날려도 리미에게는 큰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다. 비록 리미역시 윌리엄스에게 털끝만한 타격도 입히지 못했지만,윌리엄스는 진심으로 탄복하고 있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는 자신의 주변에 잔뜩 떨어져 있는,리미가 던진 폭탄이나 탄알등을 훑어보았다.

‘무기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윌리엄스가 놀란 진정한 이유였다.리미는 그저 죽어라 도망다닌것이 아니었다.안전한 곳으로 피해,가지고 있는 재료를 이용하거나 혹은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쉴새없이 무언가를 새로 연성해 내었던 것이다.

‘내가 움직이길 바라고 있군.’

윌리엄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적막이 감도는 숲을 둘러보았다.보통사람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겠지만,윌리엄스는 잘 알고 있었다.리미는 회피를 하면서 중간중간에 트랩을 설치해 두었다는 것을. 그리고 윌리엄스가 자신을 ㅤㅉㅗㅈ아 오도록 계속해서 유인하고 있었다.

‘분명,내가 ㅤㅉㅗㅈ아감으로써 트랩에 걸리는 작전을 짰겠지.’

연금술에는 조예가 없는 그이지만,그는 대충 리미의 연금술에 대해 파악을 해둔 상태였다.

연금술.

그것은 오직 현자의 연금술사인 리미만이 할수 있는 과학과 마법의 조합이자,그녀의 두뇌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연성진이라고 하는 일정한 진 위에, 만들고자 하는 재료를 올려두고 일정한 배합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기술. 게다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연금술에서 쓰는 연성진에는 많은 기능이 있다고들 하더군요.”

윌리엄스는 어디선가 숨어있을 리미를 향해 입을 열었다.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지만,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걔중에는 마나를 아예 방출못하게 하거나,숨기게하는 기능을 가진 연성진도 있다죠? 혹시 리미양의 작전은...저를 그 진까지 유인하려는 작전은 아닌가요?”

태연하게 들려오는 그의 말에,리미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작전이 간파된 그녀의 심정을 잘 안다는듯이,윌리엄스의 말은 이어졌다.

“하지만 대단하군요 리미양. 아무리 큰 마법을 쓰려고 해도,맞히지 못하면 아무소용이 없거든요.아무리 저지만 리미양을 상대로 이렇게 애를 먹을 줄은 몰랐습니다. 은폐 엄폐할 장소를 없에려고 마법으로 나무를 제거해도,리미양은 다시금 연성진으로 나무를 구현해서 몸을 숨기는 군요.”

윌리엄스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나무뒤에 숨어있던 리미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내 모든것을 간파하고 있다.’

역시 윌리엄스는 멍청한 인물이 아니었다.무턱대고 마법을 날리는 것도 아니었다.그는 그간의 리미의 전략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곳으로 유인해서,미리 그려둔 마나봉인의 연성진에 그를 가두려는 생각을 했던 리미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침착하자.지원군은 언제 올지 모른다.’

만약 세라와 노아,유나 중에서 둘 정도만 와도,윌리엄스를 상대하는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겠지만,지금의 상황에서는 지원군을 기대할수 없었다.게다가 자신이 어디있는지는 아무도 모를테니까 그 확률은 더더욱 줄어든다 할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작전은 없을까.’

리미는 곰곰히 가지고 있던 무기들을 체크했다.남은것이라고는 섬광탄 몇개뿐,자신의 구상공간에 넣어두었던 대다수의 무기들을 소비한 뒤였다.상황은 아까보다 악화되었으면 악화되었지,절대 호전된 상태가 아니었다.

‘휴우.’

리미는 나즈막히 한숨을 쉬었다.편하게 연구해야할 과학자인 자신이 어째서 이런모험아닌 모험을 해야하는 건지 한숨이 나왔다.

‘어째서 프로센 연금술사들 중에 전략쪽을 담당하는 인물이 없는지 알겠다.’

리미는 골치가 아픈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크룬전쟁때도 그러했지만,보통 연금술사들은 거의 하지 못할 경험들을 자신은 쉴새 없이 하고 있는 듯했다.

‘자..이제 생각해보자.’

리미는 슬쩍 고개를 돌려 윌리엄스를 바라보았다.여유롭게 마나를 보충하듯 숨을 고르는 그. 아마도 큰 마법을 연달아써서 약간은 피로한 모양이었다.하지만 리미는 그가 쉬고 있는 동안에도 자신의 주변에 실드를 쳐놓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빈틈을 노린답시고 어설프게 공격을 해봐야 하등 소용이 없을 뿐더러 자신의 위치한 노출시킬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작전을 세워보자.섬광탄 두개.이걸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전투 초반에만 해도,리미는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원군을 기다릴 생각이었다.분명 세라나 노아처럼 강한 인물은 자신의 앞에 있는 적을 금새 처리하고 다음 적들을 찾아다닐 테니까. 하지만 불통이 된 통신구를 비롯해서,지형적 특성상 서로를 만나기가 꽤나 어렵다는 것을 파악해낸 리미는 작전을 수정하고 있었다.

‘못할것 없어.잘짜여진 전략은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한다.’

리미는 정신을 집중하듯 눈을 감았다.윌리엄스를 꼭 이기고 싶은 것보다는,아까 자신의 전략이 들킨것이 심히 자존심 상하는 그녀였다.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전투를 위해 모두 위로 묶어 올린 그녀의 브릿지 머리는 더욱더 그녀를 귀엽게 보이게 했다.

‘생각해보자.지금 여기서 할수 있는것을.’

리미는 천천히 나무등걸 사이로 고개를 빼었다.희미하게 보이는 윌리엄스의 모습.그는 천천히 수인을 맺고 있었다. 그가 마음만먹는다면 탐지 마법정도는 우습게 발동시킬터였다. 리미는 재빨리 몸을 날렸고,윌리엄스의 주변에는 둥글게 마나의 파동이 일어났다.

“윈드 피스트!(wind fist)”

그의 주변으로 수백개의 구체가 떠오르더니,이윽고 그것은 불규칙적으로 이리저리 발사되기 시작했다.2써클의 매우 초급마법이지만,저만큼의 양이라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리미는 황급히 속력을 내어 자리를 옮겼고,윌리엄스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리미를 겨냥하고는 다시한번 수인을 맺었다.

콰아아앙!

바로 그때,윌리엄스는 순간 눈을 돌릴수 밖에 없었다.그녀쪽에서 섬광탄이 터지며,엄청난 양의 빛무리가 앞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었다.빛무리가 사라졌을때는,리미역시 다시한번 자취를 감춘 후였다.

‘이제 남은건 하나.’

윌리엄스는 절대 방법이 없어서 리미를 처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것,리며역시 잘 알고 있었다.말그대로 윌리엄스는 리미와의 두뇌싸움을 즐기고 있었다.마치 그녀를 마법의 전투력이 아닌 두뇌와 전략으로 이기고 싶다는 것처럼.

하지만 언제 그가 이 게임에 흥미를 잃을지는 리미역시 미지수였다.게다가 남은 섬광탄은 단 하나.이제 새롭게 연성할 무기의 재료조차 없었다.리미는 반대편으로 이동하지 않고,다시 처음 그 자리로 되돌아갔다.자리를 옮겼으리라 생각할 윌리엄스의 허를 찔러 최초 지점에서 이동하지 않은 것이었다.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

리미는 긴장된 표정으로 윌리엄스를 바라보았다.좌표를 계산하는듯 눈을 감고 있는 그.어떤 마법이 발동될지 모른다는 극도의 긴장감속에서,리미의 두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저건..’

그녀의 눈에 띄인것은 윌리엄스의 발치,즉 땅위였다.그의 주변으로 둥글게 땅이 패여 원이 그려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리고 그 원의 중심에는 그가 서있었다.

‘그렇구나.마법이 발동될때 반구형으로 마나의 파동이 일어나서...땅이 패여있어.’

리미가 함정을 설치했던 곳으로 유인당하지 않기위해,윌리엄스는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이었다.때문에 지면은 더욱 견고한 원의 형태로 움푹 패여져 있는것이 리미의 눈에 들어왔다.그것을 본 그녀의 머리가 빠른속도로 회전했다.

‘가능할까?’

리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였다.어찌보면 섬광탄 하나로 충분히 이길수 있는 작전이 떠올랐지만,그것은 그녀역시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인간에게도 적용될까?내 연금술이.’

리미는 연금술을 행햐는 과학자이지만,살아있는 생물을 상대로 실험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그것은 과학윤리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자신의 욕심을 위해 윤리나 도덕따위는 일찌감치 내팽겨친 인물이 바로 자신의 앞에 있었으니까.

‘망설일수 없어.지금은 그 방법밖에 다른것은 없다.’

그와 동시에 윌리엄스의 팔이 앞으로 뻗어졌다.그의 입술이 떨어지는 그 순간,마법이 발동될 절체 절명의 상황이었다.리미는 힘껏 허공을 향해 섬광탄을 던졌다.

번쩍!

윌리엄스는 예상한듯 눈을 살짝 감았다.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리미는 그가 눈을 감은 그 찰나의 순간을 틈타 보안경을 쓴 그대로 윌리엄스를 향해 돌진했다.

‘으응?’

윌리엄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순간 리미가 자살이라도 결심했는지 의심을 할 정도였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며 몇번씩 손을 교차하고 있었다.

‘이정도였나요..끝내 선택한것이 그런 원초적인 방법이라니 아쉽군요.’

윌리엄스는 비웃음을 날리며 천천히 시동어를 외치려고 했다.바로 그때,숲속에서 낭랑하게 리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물 조합 해제!”

윌리엄스의 눈이 크게 흡떠졌다.그는 시동어를 외치지 못한채 황급히 자신의 발밑으로 시선을 돌렸다.마나의 파동탓에 원형으로 깊게 패여있는 그 땅.그리고 그 라인을 중심으로 엄청난 빛무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리미는 반대쪽으로 몸을 날린채 숨을 골랐고,숲속에서는 윌리엄스의 비명이 울려퍼졌다.빛무리 사이로,윌리엄스의 뼈와 살이 천천히 분리되고 있었고,그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한채로 고통에 몸부림쳤다.

“당신이 말한대로,연금술에는 연성진이라는게 필요하지요.”

“으아아아아아!”

빛무리는 더욱더 거세졌고,그와 비례해서 윌리엄스의 비명소리도 더욱더 커졌다.온몸이 성분별로 분리되어 버리는 엄청난 고통.리미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연성진 중에서 원형으로만 발동되는 것이 바로...그 사물조합해제 연성진입니다.”

방금전까지만해도 사람의 형상을 보였던 윌리엄스의 몸은,가루로 변해 분리되었다.

리미는 살짝 주저앉으며 숨을 골랐다.이제는 형태조차 알아볼수 없게 분리되어 가루로 휘날리는 윌리엄스.그리고 그 밑에서는 더이상 아무런 빛무리도 올라오지 않았다.

연금술이란 연성진이 필수였다. 그리고 연금술의 레벨에 따라,그 연성진의 모양은 천차 만별이었다.보통 원위에 도형이 그려져 있는 형태를 띄는 연성진중에,유일하게 아무런 도형없이 원형인 진이 하나가 있었다.그것이 바로 사물을 분자별,원소별,혹은 성분별로 분리시키는 사물조합해제 진이었다.

“하아..하아..”

리미는 자리에 앉아 숨을 골랐다.윌리엄스의 마법을 열심히 피해다니긴 했지만,그가 만들어낸 마법의 후폭풍까지 완벽하게 피해내지 못한탓에,온몸의 여기저기가 찌릿하게 저려왔다.그녀는 앙증맞은 다리를 쭉 펴며 나무등걸에 등을 기대었다.그가 사라지자 마자,주변의 지형지물들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미리 마법으로 걸어둔 진법이 술법자가 죽으면서 해제되는 과정이었지만,리미는 그런것에 신경쓸 여유도 없다는 듯 크게 심호흡을 했다.

‘역시...난 연구할때가 가장 편하다니까.’

 

#3-길고 긴 싸움의 종료.

 


우우우우..

세라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파공음에 고개를 들었다.자신의 발치에서 점점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차우를 보며,그녀는 아름다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었다.

‘진법이 풀리고 있다.’

주변에 무성하게 자리잡혔던 숲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그리 복잡한 진법이 아니기에,풀리는것 역시 순식간이었다.

“유나!”

세라의 눈이 크게 떠졌다.진법이 풀리자마자,자신의 위치에서 불과 30여미터 떨어진 곳에 유나가 쓰러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우의 마나를 바로잡아주느라 꽤나 많은 마나를 소비했던 그녀지만,쓰러져 있는 유나를 보자마자 세라는 엄청난 속도로 몸을 날렸다.

“유나!정신차려!”

먼지를 잔뜩 뒤집어 썼지만,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의 은발머리.그리고 너무나 새하얀 그녀의 양볼이 조금씩 움직이더니,이윽고 그녀의 긴 속눈썹이 스르르 떠졌다.

“세라..?”

“괜찮아?어떻게 된거야?”

“으윽..아퍼...언제 이리로 온거야?”

“아까부터 여기 있었어.작은 진법이 펼쳐져 있던 모양이야.”

“주인님..주인님은?”

유나의 중얼거림에,세라는 대답없이 유나를 부축해 올렸다.

“잘..하신거 같아.우리다 무사하고,진법이 풀린것으로 봐선 윌리엄스도..”

“칫..내가 없에려고 했는데.”

유나는 연신 기침을 콜록거렸고,세라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야.윌리엄스만은 꼭 내가 처리하고 싶었는데.”

“누가 한거야?설마..주인님?아님 노아?”

“나도 모르겠어.”

한쪽에서 쿨럭거리는 차우의 기침소리가 들려오자,세라는 유나를 부축한 채로 발을 옮겼다.어딘가에..어딘가에 있을 자신들의 오너를 향해.

 

 


“언제까지 그러고 계실거에요?”

유희의 투덜거림에도 김노인은 감탄에 마지않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진법이 쳐져 있지 않은곳이라면,관람정도는 문제없는 모양인듯,그는 전장의 상황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개입하지 않으신다고 해놓고선.”

“별로 안했잖아?아...초희가 조금 고생했구나.”

김노인은 자신을 강하게 째려보는 초희의 시선을 느끼고는 얼른 말을 바꾸었고,유희는 못말린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저 리미라는 아이...정말 대단하구나.”

“솔직히 저도 조금 놀랐어요.단지 두뇌 하나로 저런 괴물 마법사를 없에버리다니.”

초희의 말에 유희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만 저는 저 적법사가 더 대단해 보이는데요.인이 정신을 지배하는 상황에서도,자신의 오너는 인식하고 있었어요.”

“음..준이 저자식 꽤 입술을 뜨겁게 들이대던데..”

“.....”

왠지 부럽다는 듯한 김노인의 시선에 초희와 유희의 곱지 않은 시선이 김노인의 얼굴에 무차별로 꽂히기 시작했고,그는 괜시리 딴청을 피웠다.

“뭐..역시. 오너끼리 치고 받는 건 내 시대에서 끝나는게 아니로군.”

늘 진지한 적이 없는 그이지만,그 말에는 왠지 씁쓸함이 들어있는 것 같아 유희도,초희도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유나를 부축하는 세라.그리고 쉬고 있는 노아와 세라, 마유미에게 쉴새없이 생명을 불어넣으려 애를 쓰는 준과, 오늘의 수훈자인 리미까지도.그들의 눈에는 훤히 보이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이 있는한...그리고 오너와 페어리라는 존재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한 이런 악순환은 끊이지 않을테지.’

김노인은 멀리서 마유미를 부둥켜 안고 있는 준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에는 기특함과,씁쓸함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듯했다.

‘진정한 적은...이세계를 먹으려는 이종족이 아니라...바로 오너들의 욕심인 것을.’

김노인은 이제 정신이 돌아와 한쪽에서 오열을 하는 차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물론 다시 부활시킬순 있지만,고통을 겪고 소멸된 샤이와 소소때문임에 틀림없었다. 김노인은 묵묵히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너도 아픈만큼 많이 배웠을테지.’

이제는 단 둘만 남은 제 2세대의 오너 차우와 준. 김노인은 말없이 등을 돌렸고,유희와 초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그를 따랐다.

‘이제는...정말 편히 쉬거라.몸 뿐만 아니라...상처받은 마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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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되었네요;;많이 기대하셨다면 죄송.

세라나 노아,혹은 준이 활약할 것이라고 생각하셨을지는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던 이상향의 케릭터가 바로 리미인지라,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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