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노출, 그 치명적인 매력에 빠지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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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하 3층의 주차장에서 여유롭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계집애들 만나봤자.. 별로 재미도 없는데.. 휴~.’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약속 장소도 와버렸고, 앞으로 몇 초 후면 자신을 약속 장소로 모셔다줄 엘리베이터도 도착을 할 텐데.
‘딩동~’ 소리와 함께 도착한 엘리베이터는 그녀를 환영하듯이 문을 정중하게 열면서 맞아주었다.
그녀가 엘리베이터의 편리함과 부드러움에 몸을 싣고, 편안함을 느끼기도 전인, 지하 2층에서 시시하게도 벌써 멈춰 섰다.
그녀는 이런 일에서 조차 괜히 짜증이 났다. 자신의 목적지인 25층까지 순식간에 올라간다면 얼마나 기분이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름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키가 크고 검은색의 정장을 멋지게 갖춰 입은 남자가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키가 커서 그런 것인지, 원래 스타일이 저런 것인지, 자신을 내리까는 듯한 눈초리로 잠깐 바라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등을 돌려서 입구 쪽으로 향해 섰다.
돌아서는 그 남자에게서 은은한 향수의 냄새가 풍겨왔다.
‘이 향기가 뭐더라? 알마니였나? 불가리였나? 남자 향수를 이제는 기억도 못할 정도가 되었나? 그나저나 표정한번 더럽게 재수도 없게 짓고 있네..’
엘리베이터는 그 후로는 마치 더 이상 태울 사람은 없다는 듯, 남자와 여자만을 태우고 25층까지 신나게 올라갔다.
‘남자 키 한 번 크네.. 한 185 정도는 되지 않을까..? 양복도 피트하니 제법 세련되게 입었고, 향수도 스타일에 잘 어울리고.. 외모도 나쁘지는 않은데.. 그 놈의 표정이 에러네.’
여자는 자신의 앞에 등을 지고 서있는 남자에 대해서 이리저리 품평을 하면서 혼자서 마음 속으로 ‘킥킥~’ 대고 있었다.
상상의 나래 속에 있던 여자가 우연히 눈을 들어서 엘리베이터 입구 쪽을 보자, 스테인리스 재질로 인해서 거울과 같은 반사효과를 보여주는 입구 쪽을 통해, 남자의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일순, 등을 지고 있던 남자와 그 등 뒤에 서있던 여자는 거울과 같은 입구를 통해서 눈이 마주치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그 둘은 순간적이나마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고 있었다.
자신감 넘치게 고개를 살짝 들고 있던 남자는 순간적으로 ‘씨익’하고 미소를 지었다.
여자는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얼굴을 얼른 돌렸다.
‘재수 없게 웃기는.. 뭐, 하지만 아까 표정보다는 훨씬 매력적이기는 하네.’
여자는 그 남자가 왠지 싫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이 순간, ‘딩동~’소리가 울리고 엘리베이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25층에 그 둘을 모셔다 주었다.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면서 여자는 25층의 카페로 향했다. 남자도 역시 그 쪽으로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
그녀는 다른 여자 2명과 함께 모처럼의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오기 전에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언제 있었냐는 듯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너는 다시 방송에는 안 나갈거니? 오래 쉬었잖아?”
친구인 여자가 묻자, 왠지 짜증이 났다. 자신이 방송에 다시 나가든지 말든지 왜 이렇게 신경들을 쓰는지..
“생각 좀 하고 있어. 당장은 그렇지만, 조만간에 나가기는 해야지.”
그녀의 말에 친구 2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쉰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난리들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들한테 잊혀지기 전에 복귀를 하기는 해야 한다.
이 바닥에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치고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관심 밖에 난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자신도 그런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어 자신도 모르게 아까의 그 남자가 어디 있는지 슬쩍 찾아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머리 끝부분만 보일 뿐 그 남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도대체가 찾을 수가 없었다.
왠지 섭섭한 기분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남자를 만약에 찾는다고 하더라도 뭘 어쩌자고?’
스스로에게 왠지 쓴웃음이 났다. 그녀는 열심히 수다에 전념하고 있는 친구들을 놔두고, 화장실로 향했다.
볼일을 보고 간단히 거울을 보면서 매무새를 확인했다.
‘나이가 먹어가기는 하지만, 아직 외모나 스타일은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아직 남자들의 시선을 빼앗을 만은 하지. 그래도 조만간 방송 나갈 것을 대비해서 관리를 더하기는 해야겠어.’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그녀는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나! 깜짝이야.”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아까 그 남자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듯이 서 있음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몸을 움츠렸다.
그 남자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입에 손가락을 대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까와 같이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표정과 눈빛은 여전했다.
그 남자는 그녀의 눈앞에 휴대폰을 조용히 내밀었다.
“뭐.. 뭐에요?”
“제가 팬으로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제가 오늘 밤에 이 휴대폰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지금 화장실로 다시 들어가셔서 변기에 집어넣으시면 됩니다.”
그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의 정장스타일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그녀는 잠시 가졌다.
그리고는 얼떨결에 그가 내민 전화기를 받아서 쥐었다.
자신이 할 말과 행동을 다 했다는 듯, 그 남자는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휑하니 돌아서서 카페 안으로 다시 사라졌다.
그녀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쟤, 뭐냐?’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누가 보기라도 할 듯, 손은 얼른 휴대폰을 자신의 핸드백에 챙겨서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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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있는 덩그러니 넓은 집은 그녀에게 또 다른 고문이었다.
예전에는 홀로 살면서 모든지 홀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즐겁고 스스로가 대단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누군가 자신에게 집안일을 시키고, 이곳에서 그 사람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다 시시했고, 자신을 잡아주지 못했다.
그저 돈이나 써대고 자신이 잘났음을 밝히면서 어떻게든 그녀를 침대로 끌어들일까 하는 생각만 하는 족속들뿐이었다.
그녀의 손에 자신도 모르게 쥐어져 있는 휴대폰의 주인은 무언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고, 5분도 안 되는 만남을 통해서 판단을 하는 것은 위험했다.
단지 주변의 다른 남자들과 틀리게 ‘수컷’의 냄새가 조금 더 난다고 해서 그 남자가 더 잘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벌써 11시가 넘어가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네..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 건가? 아니면 내가 휴대폰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녀가 그 남자의 연락을 기다릴 이유는 없었지만, 왠지 신선한 기대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만일 아니다 싶으면 답을 안 하면 그만이기도 하니까.
“띠리링~.”
휴대폰에서 울리는 소리에 그녀는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다. 시계를 보자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이다.
손에 쥔 휴대폰을 바라보자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을 느끼면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확인했다.
‘제가 설마 화장실 변기에서 죽어가고 있는 휴대폰에 연락을 한 것은 아니겠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킥~’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제법 재치가 있는 첫 문자였다.
일단 그녀는 잠시 기다렸다.
이 기다림은 그녀의 나름대로의 자존심이자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 과정이었다.
시계를 바라보자 한 10분 정도가 이미 지나갔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천천히 자판을 눌러서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비싼 휴대폰을 막 버릴 정도로 제가 경우 없는 여자는 아니었네요.’
일부로 자신이 쉬운 여자가 아님을 강조하고자, 또박또박 글을 쓰고 이모티콘 같은 것도 생략한 채로 깐깐한 느낌으로 답장을 보냈다.
금방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내가 너무 늦게 답장해서 포기해 버린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딱딱하게 써서 느낌이 안 좋았던 건가?’
괜스레 자신이 보낸 메시지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모처럼 자신에게 발생한 재미있는 사건이었는데, 너무 짧은 엔딩은 원치 않았다.
1분, 1분이 이렇게 길었던가? 기다림이라는 것이 나름대로 짜릿함도 가져다주었다.
“띠리링~.”
그녀는 문자가 오자 왠지 눈물이 나게 기뻤고, 너무너무 재미가 있었다.
오늘, 아니 12시가 넘어갔으니 어제 처음 본 남자에게 받은 휴대폰, 그리고 그 휴대폰 주인과의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교류.
모든 것이 자신이 출현했던 영화나 드라마 같았다.
‘제 휴대폰이 살아있다니 기쁘군요. 제 휴대폰의 생명을 구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을 해야 되겠군요.’
재치가 있으면서도 왠지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는 듯한 표현이었다.
‘보답을 해도 되나요?’가 아니라 ‘보답을 해야 되겠군요’라는 것은 마치 남자가 선심을 쓰는 듯한 뉘앙스였다.
여자는 기분이 나쁘기 보다는, 자신이 예상한 것처럼 왠지 ‘수컷’냄새 나는 남자라는 사실이 기뻤다.
자신이 억지로 끌고 가지 않아도 알아서 주도하고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남자라는 것이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무슨 보답을?’
이번에는 조금 빠르게 답장을 했다.
하지만 남자가 너무 앞서가지는 않을 정도로 약간 차갑게 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식사를 하기에는 늦은 시간이니까, 술이라도 마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금요일 밤이기도 하니까..’
웃겼다.
이 늦은 시간에 그 남자를 어떻게 믿고 술자리를 같이 한다는 말인가?
‘제가 댁이랑 왜 술을?’
너무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이 정도의 답장만을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나는 그쪽 분이 마음에 들고, 그쪽 분은 저랑 술을 마시면 재미가 있을 테니까요’
그녀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 남자랑 나가서 술도 마시면서 얘기도 하고 그 남자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쉬고 있다고 하지만, 그녀는 제법 이름 꽤나 날렸던 스타 아니던가?
그냥 남자의 한마디에 냉큼 나가기는 왠지 싫었다.
그렇다고해서 너무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표현해서 그 남자가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다 넣기가 참 힘들었다.
글이라는 것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었던가?
새삼스레 방송국에 ‘널려있던’ 작가라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묘안을 생각해 냈다.
‘그럼 청담동 「SKY」로 오실 수 있어요? 거기라면.. 좋아요’
‘SKY"는 멤버십으로만 운영하는 고급 클럽이었다.
만일 이곳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 정도면 어느 정도 신분 보장은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고, 만일 이곳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이 대화를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 스스로 생각해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괜히 스스로에게 대견하다는 웃음이 나왔다.
“띠리링~.”
메시지 소리만 계속 울려대던 휴대폰에서 처음으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자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그곳을 잘 모르니까, 급한 마음에 전화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제는 여자가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일만 남아있었다.
“여보세요?”
그녀는 최대한 침착하고 도도하게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럼 그곳으로 가면 됩니까? 저는 1시간이면 갈수 있지만, 아무래도 저보다는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리시겠죠? 2시간 후에 뵙겠습니다.”
남자의 거침없는 목소리에 그녀는 내심 당황했다.
“예? 예.. 그렇게 할게요.”
그 남자의 거침없고 당당한 톤 속에 숨어 있는 달콤함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쉽게 대답을 주고 말았다.
남자는 자신의 할 말을 하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여자는 잠시 멍하니 휴대폰만을 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빨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갑자기 서두르기 시작했다.
샤워를 급하게 마치고 대충 화장을 하고는 속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잠시 화장대 앞의 전신거울에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날씬한 허리에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봉긋한 가슴, 몸매에 비해 유난히 큰 엉덩이, 그리고 오랫동안 다듬지 않아서 음란하게 무성한 음모 등이 매력적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아직은 남자들이 환장할 만하기는 해.’
스스로 만족한 미소를 짓고는 속옷을 이것저것 고르다가 가장 무난한 흰색의 레이스로 장식된 브라와 팬티를 입고는, 그 위에 정장을 갖춰서 입었다.
흰색의 타이트한 정장 바지와 가벼운 느낌의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검은색 재킷을 걸쳤다.
얇은 정장 바지는 자신의 큰 엉덩이 탓에 타이트하게 달라붙었고, 그녀의 팬티라인을 제법 티가 나게 드러냈다.
‘흰색 바지가 비치는 것 같은데, 티팬티로 입을까? 그런데 이렇게 비치는 팬티라인도 은근히 섹시하지 않나? 참나, 내가 처음 만나는 남자를 위해서 속옷까지 신경 쓰고 있다니..’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는 아끼는 초미니의 흰색 레이스 티팬티를 챙겨서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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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의 고급스럽게 장식된 별도의 룸 안에서 드디어 그 남자와 마주보고 앉아 있게 되었다.
낮에 보았던 정장에 타이 만을 풀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 거만스런 표정과 자세는 여전했다.
남자와 여자는 각자 양주만을 마시면서 별다른 말이 없었다.
“저를 왜 보자고 하신 거죠?”
기다리다 못해서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마음에 들고, 꼭 같이 하고 싶었으니까요.”
정말 매력적인 목소리라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남자에게 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도도한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왠지 마음은 은근히 가고 있었다.
말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말 많은 사람치고 시시하지 않은 남자가 경험상 없었다.
그래도 나름 물어보는 말은 재치 있게도 받아주고, 그다지 심심하게 하지는 않았다.
어쩌다 한마디씩 하는 것이 의미 있게 공감도 가고, 위트도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이런 분위기가 이상하게 재미가 있었다.
그다지 가볍지도 않으면서도 기싸움을 하는 것도 아닌 이런 자리.
모처럼 마음에 드는 술자리였다.
그녀는 모처럼 마음에 드는 술자리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과음을 하게 되었다.
묘한 두근거림과 마음을 끄는 남자와의 자리, 그녀는 그 남자가 권하는 술을 계속해서 받아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기분 좋은 취기를 느끼고 있었다.
“옷이 예쁘네요. 볼 수 있겠죠?”
남자는 밑도 끝도 없이 말을 했다. 하지만 여자의 복장에 대한 칭찬인데 나쁠 일이 있겠는가?
“감사해요.”
“제대로 보게 일어나 봐요.”
이상한 요구였지만 그 남자의 목소리는 거부하기 힘든 마력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에서 일어나서 넓은 쪽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습을 봐달라는 듯 빙그르 제 자리에서 돌았다.
“옷 예쁘죠?”
그녀는 웃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애교 섞인 톤으로 말했다.
남자는 씨익 웃으면서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재킷 좀 벗어 봐요.”
남자는 한 번도 부탁조로 말하지 않았다.
존댓말을 쓰고는 있지만 강압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것이 싫지가 않으니까, 전혀 신경 쓰이지가 않았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재킷을 벗어서 자신의 자리에 던지고는 흰색 블라우스와 정장바지 차림으로 그 남자의 앞에 섰다.
자신의 매력이 엉덩이에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강조하듯이 그 남자를 등지고 서서는 허리 부분에 양손을 걸치고 은근히 엉덩이를 그의 방향으로 내밀었다.
왜 이렇게 하는지 그녀 자신도 몰랐지만, 이러고 싶었고, 이러는 게 재미가 있었다.
‘팬티라인이 보일 텐데.. 이렇게 내밀고 있으면 팬티의 레이스까지 보일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묘하게도 그렇게 보여진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남자가 봐주었으면 했다.
그 남자가 자신 때문에 흥분에 몸을 떠는 것을 보고 싶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서 그 남자의 얼굴을 봤다.
남자는 뚫어지게 자신의 엉덩이 쪽, 정확하게는 팬티라인 쪽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짜릿함을 느꼈다.
태어나서 자신의 엉덩이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남자에게 보여주기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이런 대담함은 술기운 때문이고 이 룸 안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자위했다.
“팬티라인이 좋네요. 팬티의 뒷모습이 다 비치는 군요. 엉덩이를 반쯤 덥힌 레이스로 장식된 팬티군요.”
그 남자가 봐주기를 원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남자가 말을 하니까 왠지 부끄럽기도 했다.
“어머, 엉큼하게.. 옷을 본다고 했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목소리는 술에 취한 듯한 애교가 넘치고 있었다.
“팬티의 뒷모습은 거의 다 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제 팬티의 앞모습을 보여줘요.”
그녀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서 그 남자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나를 지금 뭐로 보고 그런 말을..!”
표정은 일부러 화난 것처럼 짓고, 목소리도 분노에 떨어야 되는데.. 그리 쉽게 되지는 않았다.
술기운 때문인지, 화난 것도 아니고, 애교부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톤으로 말이 나왔다.
남자는 전혀 표정변화 없이 여전히 거만한 얼굴과 자세로 있었다.
“재미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평범한 것은 재미없지 않나요?”
평범함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두근거림에 이 자리를 나온 여자의 심리를 그대로 꿰뚫어보는 듯한 말이었다.
더 이상 여자는 할 말이 없었다.
“초면인데 서로 너무 나가지는 말죠..”
여자는 최후의 자존심을 간신히 쥐어짜서 말을 했다.
하지만 왠지 그 남자의 말대로 하고 싶은 충동이 없지는 않았다.
여자는 남자 앞에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남자 앞에 놓인 양주잔을 들어서 한 번에 마셨다.
다 마신 잔을 내려놓자, 남자는 양주병을 들어서 그녀의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그렇게 연거푸 석 잔을 그녀는 마셨다.
“그게 그렇게 당신한테는 중요한 일이에요?”
남자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그 말 때문에 우리는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몰라요.”
남자는 또 한 번 ‘씨익’ 웃고는 손가락으로 마치 바지를 내려 보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여자는 술을 한잔 더 한 번에 들이키고는, 그 남자 앞에 잔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의식적으로 당당하게 그 남자 바로 앞에 섰다.
흡사 그 남자가 하는 것처럼 여자는 남자를 내리까는 눈으로 쳐다봤다.
마치 남자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벨트를 풀고는, 일부러 대담하게 보이려는 듯, 지퍼를 순식간에 내리고 바지의 앞쪽을 열고는 손으로 벌려 그 남자에게 자신의 팬티를 보여주었다.
이정도만 바지를 내리면, 문이 열리고 종업원이라도 들어온다고 해도, 지퍼만 올린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녀가 벌리고 있는 바지 틈으로 아까 나름 신경 써서 고른 흰색의 레이스 팬티가 드러났다.
레이스 사이로는 그녀의 무성한 음모가 군데군데 드러나고 비키니라인 옆으로도 털들이 빠져나와 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외모와는 정반대인 이런 음란한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털에 다 비쳐 보일 텐데.. 너무 지저분해보이지 않을까? 제모 좀 할걸 그랬나?’
이런 와중에도 그녀는 이런 여성 본능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됐죠?”
그녀는 계속 도도한 자세와 표정을 지으면서, 남자에게 잘라 말하고는 바지의 지퍼를 올렸다.
이 남자는 이제 흥분감에 정신을 못 차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쓸데없는 우월감도 느꼈다.
“나는 당신이 이제 더 좋아지게 됐는데, 당신은 어때요?”
남자는 약간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말했다.
“속옷 한번 보여줬다고.. 좋아지게 되었다는 거예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패션도 마음에 들고, 마인드도 마음에 들고.. 결정적으로 보지털이 무성해서 정말로 마음에 들었어요.”
남자는 이런 낯부끄러운 말을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내뱉고 있었고,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까지 덤으로 날리고 있었다.
여자는 어이가 없다 못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정도였다.
태어나서 이런 얘기를 직접적으로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처음 만난 남자가 아니던가?
“재미있지 않았나요?”
그녀의 어처구니 없어하는 표정을 뻔히 바라보면서도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했다.
여자는 자신의 앞에 있던 술잔을 들어서 한잔을 더 마셨다.
“나름 흥미로웠어요.”
자신이 말하고도 놀랄 정도의 말이었다.
사실 여자가 말하고자 하던 말은 이런 것이 아니지 않았던가.
이 남자가 그렇게 끌렸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토록 외설스런 여자였다는 말인가?
“사실 팬티가 조금 아쉽기는 했어요. 티팬티였다면 조금 더 완벽 했을 텐데..”
남자의 그 말에 왠지 여자는 울컥하면서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핸드백을 열고는 아까 챙겨두었던 손바닥만 한 티팬티를 들어서 흔들었다.
“이런 것을 말하는 건가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진짜로 기분이 좋은 듯, 처음으로 소리가 나게 ‘껄걸~’ 웃었다.
“하하~, 정말 당신은 멋진 여자에요. 이제 나와의 만남이 더욱 재미있게 될 겁니다.”
“당신의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상관없지만.. 나를 재미있게 해준다면야..”
술기운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여자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말이 마구 쏟아졌다.
하지만 아까 남자의 바로 눈앞에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팬티와 비치는 음모를 보여줄 때의 짜릿함은 아직도 여자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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