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유흥가 견문록 [1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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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5,640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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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본 글에서 등장하는 업소명과 등장인물들,혹은 사이트의 이름은 실제가 아닌 가상으로 꾸며진 것임을
밝힙니다.

 


16부- 금기(禁忌)


세상에는 몇 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

흔히들 법이라던가, 혹은 규율이나 규칙, 규범등등의 단어로 표현을 하는 그것은 인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기나 규칙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살벌할까? 있어도 살벌한 마당에 아마 그런
것들이 없다면 하루에 범죄는 만 건도 더 일어날지 모른다. 그런데.

법은 사람이 만든다.

인간은 평등하다고 해놓고, 인간을 규제하는 강령들을 인간이 만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뭐 걔들은
많이 배운 놈들이고, 많이 똑똑한 놈들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사실은 사회 기본 이념에 따르면 그들이 다른
이들을 구속할 법령을 만드는 것은 모순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을 "약속"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
장하여 준수하고 숙지하기를 종용한다.

유흥가에서의 금기는 법이나 규율따위가 아니다. 평등한 사람끼리는 법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처럼, 그 세
계의 규율은 진정한 의미의 "약속"을 추구한다. 아무도 강력한 제재를 가하지는 않지만 사람들끼리의 약속의 하
나로서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다. 해가 져 어두운 세계는 모두가 상상하는 것처럼 무법천지가 아닌, 철저한 불
문율과 약속에 의해 지켜져 나간다.

그것이 바로, 본능이 지배하는 세계가 수많은 위기 속에도 명맥을 이어온 비결이라고나 할까?

 

 

 

한동안 별다른 일이 없던 사공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챈 건,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을
하고 나서였다. 유리와의 썸씽아닌 썸씽이 있었던 뒤로 회사에서 어떻게 보고 지내나 하는 걱정을 했던 나는,의
외로 밝은 모습을 보이며 평소와 같이 메신져로 말장난을 치는 유리를 보며 안심하고 있던 차였다. 페방으로 또
출근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접고 집에 와서 사공에 접속한 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제길...안좋은 일을 당했습니다. 사공 회원님들도 조심하시길...-

딱 봐도 클릭하고 싶게 만드는 저 글을 포스팅한 사람은 다름아닌 문어였다. 일전에 염소와 킬러, 나와 함께
나이트를 갔던 유부남 회원이자, 나보다 서너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국내 굴지의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으
로, 고액 연봉자 답게 잦은 유흥가 기행으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인물이었다. 아무튼 그가 포스팅한 자유
게시판의 글에는 무려 100개가 넘어가는 리플이 달려 있었다. 에이스 아가씨에 대한 정보가 아니면 클릭질할
칼로리조차 아까워 하는 사공 회원들의 성향을 볼 때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나는 샤워를 하자마자 책상에
앉아 문어가 올린글을 꼼꼼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허....?"

글의 중반부까지 읽어 내려간 나는 나도 모르게 놀람과 어이 없음이 섞인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그가 올린
글의 전문은 다름아닌 "성매매 위반법"때문에 경찰 출두 명령을 받았다는 내용이었고, 그제서야 어째서 이토록
시끌시끌한지 실감할수 있었다. 찔리는게 있기 때문인지 괜스레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설마....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하기사 내가 이용하는...아니, 사공에 있는 대다수의 것들이 불법이기 때
문이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돈을 주고 성을 매매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때문에 금지된 것을 공유하는 사
공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 짧은 사공경력 속에서 성매매로 출두 명령을 받았다는 것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나는 재빨리 담배를 꺼내어 물며, 그간 내 밤문화 기행길을 되뇌여 보기 시작했다. 내가 다닌 곳들은 대부분
안마나 오피 같은 업소들이었고 간간히 핸플도 끼어 있다. 당연히 핸플역시 유사성행위로서 단속의 대상이 된
다. 현장에서 안걸렸으니 어때...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 업소에 가기전에 나는 늘 예약을 했고, 그 예약은 내
핸드폰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단속에 걸린 업주의 통화기록을 뽑았다가는, 그리고 내 번호가 주
기적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면 내게도 소환장이나 소환 전화가 날라올 터였다. 뒷머리가 쭈
뼛하고 서는게 느껴졌다. 경찰서라고는 어렸을때 길을 잃어서 들어간 것 빼고는 전혀 경험이 전무한 까닭이다.

댓글을 달까, 아니면 쪽지를 보낼까 망설이다가 나는 급히 유일하게 사용하는 메신져에 접속했다. 사공의 채팅
방은 가끔 렉이 걸리는 현상이 있어, 친한 사람들끼리는 메신져로 대화를 하거나 정보를 공유하거나 했기 때문
이었다.

-어찌된 거에요?-

접속하자마자 보이는 문어의 아이디. 역시나 대화명도 "좆됐다"였다. 인사따위는 생략하고 어찌된 거냐고 물
으니, "메세지 입력중"이라는 문구가 하단에 뜨기 시작했다. 아마도 본인은 말하기 싶지 않은 일을 또 한 번
말하는 것이겠지.

-사공에 글 읽어봤어 동생?-

-네. 그러니까 어찌된 거냐고 묻는 거죠.-

-뭘 어찌돼. 기냥 좆된거지 시벌...-

-자세히좀 들려줘 봐요.-

-아 그게 말이야....-

나는 방금 전 끈 담배를 또 피워물고는 그의 말을 경청...아니 정독하기 시작했다. 와이프와 같이 있지는 않은
모양인지, 그는 술술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역시나 나이가 있다해도 사무직 짬밥이 어디가지는 않는지 타이핑
은 꽤나 빨랐다. 그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문어는 원래 오피스텔에서 주로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말이 오피에서 활동하는 거지, 서울 경기 바닥에 있는
오피란 오피는 다 다녀본 한량중의 한량이었다. 주로 주식으로 와이프 몰래 비상금을 만드는 그는 유부남이면
서도 왠만한 유흥가는 두루 섭렵하고 다니는...한마디로 사공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가 아닐수 없었다. 아마
도 그가 후기를 감칠맛 나게 쓰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해바라기의 네임벨류는 아마 태어나지 않았을 정
도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여튼 핸플이며 오피, 페방, 안마, 휴게텔, 여관바리에 전화방, 짝집등등...세상에 모든 유흥가를 다 정복할
기세로 "기행"을 해대던 그는 어느날 "조건만남"이라는 것에 꽂히고 말았단다.

뭐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마도 밥먹듯이 만난 업소녀들에게는 찾을수 없는 아마츄어의 순수
함이랄까? 문어는 아마 그 것을 높이 샀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건만남이란 간단하다. 2003년이후로 급격히 뜨게 된 단어로서, 말그대로 채팅에서 여자가 돈을 주고 관계를
갖자고 남자에게 제안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회원가입으로 바로 채팅할 수 있는 무료채팅방에 조건녀들은
많이 서식을 하며, 긴 밤, 짧은 밤을 나누어 페이를 달리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유흥가에도, 밤문화에도 불문율이 있듯, 조건녀 그녀들에게도 각각마다의 룰이 존재한다고 한
다. 어떤 여인은 오럴을 해주지 않고, 어떤 여인은 콘돔없이는 절대 안된다고 한다. 어떤 여인은 같이 샤워는
안된다고 하며, 어떤 여인은 이동을 절대 하지 않으니 무조건 남자가 와야 한다는 조건을 걸기도 한단다. 물론
하루밤에 상응하는 페이는 저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 번 싸는데 10~15정도를 부르는 아이들이 대다수란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10에서 15라고? 어이가 없어서 나는 문어의 말을 자르며 재빨리
타이핑을 했다.

 

-아니 형님. 그 돈주면 오피를 가지...뭐하러 조건을 해요? 여관비도 따로 들 꺼 아닙니까?-

-그건 동생이 잘 몰라서 그래. 조건도 가끔 대박이 터질때가 있다니까.-

-대박?-

-그래. 대박이 아니더라도 조건은 몇 가지 좋은점이 있어.-

 

그는 다시금 장황한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조건의 좋은점이라 하면, 우선 업소녀들에게서 느낄수 없는 일반인의 체취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대학
생, 젊은 미시, 백조등등...업소에서 전문적으로 몸을 파는 여자가 아니라서 신선하단다. 아직까지는 내공이 덜
쌓인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아닐수 없다.

두번째로, 조건녀와 친해지는 경우라 한다. 같은 여인과 몇 번 조건을 하다보면 안면이 트이고, 그러다 보면 사
회적 동물인 사람이다 보니 친해져서 연락도 하고, 간혹 술 한잔 기울이는 사이까지 발전한다 했다. 물론 그 조
건녀의 와꾸가 좋을때의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면 간혹 모텔비만 내고 섹스를 하는, 속칭 "섹스 파트
너"로의 발전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사공에서는 이렇게 친해진 조건녀를 공짜녀라고 한다. 조금 우습지만 공짜
로 먹을수 있다는 뜻이다.

문어 역시 유흥가에 때가 찌들 정도로 다니다 보니 일반녀의 풋풋함(?)이 그리워진 모양이었다. 성욕은 왕성한
데 섹스리스 부부로의 삶을 살다보니, 유흥가가 지겹기는 해도 안갈수는 없는 그런 상황에서 조건녀는 문어에게
있어서 꽤나 솔깃한 단어인 모양이었다.

문어는 그날 이후로 온갖 채팅사이트에 가입을 해서 조건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사공에도 조건 만남
녀 후기란이 있어 그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었고, 조건은 처음이더라도 유흥가에서 굵어진 잔뼈가 있으니 금세
문어는 조건의 세계에 완벽히 녹아내리게 된 것이었다.

물론 내상도 있었다. 아무래도 검증된 업소녀가 아닌 일반녀다 보니, 평범한 것 까지는 이해해도 거의 폭탄수
준의 여성이 나온 적도 허다했다고 한다. 하지만 타고난 유부남의 능글거림과 말빨로 문어는 꽤 많은 숫자의
조건녀들과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고, 한동안 업소보다는 친해진 조건녀들과 연락을 해서 용돈을 쥐어주고 욕구
를 푸는 생활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래서 요새 사공에서 안보이셨군요?-

- 그래. 20대 대학생 두 명이랑 20대 후반 백조녀 한 명. 이렇게 세 명을 알고 지내니까 로테이션으로 돌리면
업소 생각 안나더라. 간혹 술만 사주고 같이 자주는 애들도 있으니 돈도 굳고..일석이조 아니겄어?-

-그런데 어쩌다가 걸리신 겁니까? 업소를 안다니는데 성매매 단속에 왜 걸립니까?-

-허 이사람 참...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업소는 오히려 안전해. 단속에 걸려도 나중에 또 장사를 하려면 단골
들을 끌고 가야 하니까 절대 경찰에 불지 않는다 이거야. 내 전화번호가 업주 휴대폰에 있어도 그냥 아는 사람
이라고 얼버무려 준다고. 내가 걸린건 업소에서가 아니라 조건질을 하다가 걸린거야.-

-네에? 여자애를 때리기라도 하셨어요? 보복성으로 신고한거 아닙니까?-

-그런거 아냐. 조건을 할 때의 주의사항들이 몇 개 있는데 내가 그걸 너무 무시하고 있었나봐.-

-주의 사항요?-

-응. 그게 뭐냐면 말이야...-

 


조건을 할 때의 주의사항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실행하기 어렵다. 뭐 이것도 일종의 밤문화 세계에서의 불문율
이자 룰, 혹은 약속이겠지만 아무튼 그 주의사항들을 살펴보자면...

첫번째. 죽순이는 피한다.

말그대로 채팅에 자주 출몰하는 여자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란 뜻이다. 경찰들이 조건만남을 막기 위해 조건녀들
과 위장채팅을 해서 현장검거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조건질을 많이 하는 여자가
어쩌다 한 번뜨는 경찰 단속망에 걸리기 쉬운 법이다.

두번째. 아가씨와 쇼부를 치고 나서 전화번호 교환은 피한다.

문어 말로는 이 두번째 사항이 진리중의 진리란다. 물론 전번교환은 친해지고 나서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어느
정도 검증되기 전까지는 전화번호의 교환은 해서는 안된단다. 혹여나 그 여성이 성매매 위반으로 걸려 들어가면
통화목록에 있는 미등록 번호들은 줄줄이 경찰 소환조사를 당하게 된다. (문어의 경우도 이 경우이다.) 특히,
적발된 여성이 미성년자인 경우는 게임 셋이라고 보면 된다. 조사에서 끝나지 않고 은팔찌 옵션이 추가되는 것
이다.

세번째, 만나기로 한 곳에 자동차는 가지고 가지 않는다.

업소녀들은 업소에 소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일이 없지만, 조건녀의 경우에는 정말 별에별 인간들이 다 있
기 마련이라서 였다. 만약 "이 놈 한번 당해봐라"라는 심산으로 번호판이라도 외우고 이상한 짓이라도 할 경우
에는 역시나 경찰의 소환조사에서 피할길이 없다. 대부분 아니라고 박박 우기면 적당한 조사후 풀려나기는 하
지만, 아무리 경찰서라도 그런 개망신을 당할수는 없는것 아니겠는가?

네번째, 곧 죽어도 콘돔은 착용한다.

사실 노콘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건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 문어의
귀띔이었다. 조건녀의 경우 대부분 생계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가지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서나, 용돈을 벌기
위해 조건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 놈 저 놈 할 것 없이 관계를 가질 것이고, 쭉 노콘으로 활동
한 여성이라면 성병 걸리기 딱 좋은 것이다. 원래 콘돔을 쓰는 여성이라면 잘 구슬려서 노콘을 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쇼부칠때부터 노콘도 가능하다고 광고하는 조건녀들은 피하라는게 문어의 가르침이었다.

 


-알겠지 동생? 내가 왜 좆된건지...아오...-

-한동안 몸 좀 사리셔야 겠어요.-

-휴...모르겠다. 이것들이 갑자기 성매매 단속 하는거 보니까 할 일 존나게 없어진 모양이야. 요새는 업소도
위험하다니까 몸 사려 동생.-

-페방도 위험할까요?-

-마리씨 보러 가려고 그러지? 그냥 한동안 몸사려. 마리씨가 니미 무슨 동생 마누라도 아니고...그냥 당분간
운기조식한다 셈치고 짱박혀 있으면 단속도 곧 수그러 들어. 자네도 알잖아? 단속이라는게 어디 장기간으로 가
는거 봤나? 찔끔 하다가 다시 나몰라라 할거야. 그때 다시 활동하자고. 사공이야 외국 사이트니까 안걸리겠지만,
업소들은 다 한국에 있다는 걸 명심해.-

 

문어는 말을 마치고는 접속을 끊었고, 나 역시 한동안 그의 말을 곱씹다가 컴퓨터를 꺼버렸다. 왠지 모르게 늘
접속하던 사공도 오늘따라 하기 싫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치지지지...

필터까지 불씨가 다가온 담배를 마지막으로 빨아 들이니,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텁텁한 연기가 목구멍으로
넘어왔다가 다시 뿜어져 나왔다. 왠지모를 답답함이 들어온다. 나도 걸리면 어쩌지? 하는 노파심이나 우려가
아닌, 즐거웠던 취미생활에 제동이 걸린것만 같은 종류의 그런 답답함이다. 성매매 단속 기간이라면 대부분의
업소는 이 기간에 영업을 꺼려할 테니까. 마음 한 구석에서 마리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녀는...지금 일을 하고 있을까?

 

 

오랜만이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유흥가를 접하기 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몇 달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은 선인장처럼 무미건조하던 내 일
상이 바뀐 것도 불과 몇 달전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 몇 달전의 모습처럼, 나는 쇼파에 누워 티비 체널을 이
리저리 돌렸다. 운동도 가고 싶지 않아졌으며, 최근 취미를 붙였던 독서역시 잠시 흥미를 잃어 버렸다. 그저
쇼파에 누워, 분주하게 바뀌어가는 브라운관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뭐라고 뭐라고 떠드는 것 같기는 한데,
전혀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잡념이 가득차버린 탓이다.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문어의 말을 듣고 마리가 근무하는 블링의 홈페이지를 들러보니 "리뉴얼중"
이라는 문구가 뜨는게 여간 수상한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업소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봐도 계속 신
호음만 가는 것이 아닌가. 정말 그의 말대로 단속 기간이라 다들 몸을 사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더욱 갈등이 되었다. 지금까지 수차례나 마리만 지명을 했으니, 그녀와 친해져 전화번호도 주고받는 사
이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걸거나 연락을 할 일은 없었고, 이제 처음으로 연락을 하려 하니 갈
등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일반 여자들보다 업소녀가 훨씬 편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전화를 걸려니 쉬이 손이 떨어지질 않는다. 손
님으로 갈 때만 그녀를 만날수 있다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녀를 고정으로 지명한다
고 하더라도, 돈을 지불하고 업소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니 정정당당하지 못하는 기분으로 서있는 것만 같았다.
한참이나 고민한 나는 마리의 전화번호를 눌렀고, 컬러링 음악과 함께 내 가슴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얼마나 지났을까. 전화기 너머에서는 맑고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어라 말할까 잠시 주저하던 나는, 이
윽고 조금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나야."

-누구세요?-

처음 업소를 갔을때를 빼고, 업소녀에게 이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적은 없었지만, 전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그녀의 말에 나는 맥이 탁 하고 풀리고 말았다. 분명 전화번호를 교환했는데, 어째서 내가 누군지 물어보는 걸
까? 나처럼 저장을 했다면 다시 되물어 볼 이유가 없다.

"나...강우 오빤데."

바보같은 내 대답이었다. 며칠전에만 해도 지하철 상황극이라는 것을 한 사인데, 전화번호도 이미 교환한 단골
이자 지명손님인데 나를 못알아봐주다니 하는 종류의 실망보다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맥이 풀린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이 내 머리속에 스쳐 지나갔다.

 

 

 

"지하철 상황극이 뭔데?"

"한번도 안해본 걸 해보자고 했잖아. 오빠가 지하철 치한, 나는 퇴근하는 커리어 우먼. 어때?"

"하지만 나는 그런거에 흥미가 없는데."

"해보면 재밌을거 같지 않아? 우리 가게에 지하철 상황극을 위한 방도 있어."

"정말?"

"그리로 이동하자. 내가 실장님에게 말할게."

나는 호기심이 동해서 그녀를 따라갔고, 그녀는 인터폰을 눌러 실장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고는 내 손을 잡아
끌며 어디론가 향했다. 페방 업소 답게 약간은 어둑어둑한 실내의 끝 방에 간 마리는, 문을 열어주면서 "짠"하
고 귀엽게 말했다.

"우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정말이지 페방은 소수 취향의 사람들을 이끄는 다양한 요소를 두루 갖춘 곳이라
는 생각이 든다. 그 방은 정말 지하철과 똑같이 꾸며져 있었다. 파란색의 긴 의자 하며 삼각형의 손잡이. 그리
고 알미늄으로 되어 있는 손잡이 까지. 규모만 작을뿐 완벽한 지하철의 축소판이다. 마리는 내게 양해를 구하
더니 옷을 갈아입으러 나갔고, 잠시후 그녀는 치마 정장을 입은 모습으로 티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어때? 괜찮아?"

괜찮기만 하겠는가. 나를 보며 살짝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은 남자를 설레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하철에서
누군가를 더듬는 따위의 성적 환타지는 전혀 없던 나도, 빨리 상황극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였다. 내
마음을 잘 아는지, 마리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시작하자. 여긴 퇴근 지하철이야. 알았지 오빠?"

"알았어."

"그럼 시~작!"

햐...그녀도 대단하다. 시작! 이라고 하자마자 종전의 귀여운 표정을 싹 지우고는, 지하철의 손잡이를 살짝
움켜쥐며 출입문 모양이 있는 벽 쪽에 살짝 기대어 섰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은, 누가봐도 고단한 하루 업무
를 끝내고 퇴근하는 오피스걸과 다를바가 없었다. 조금만 더 끼를 살려서 연기를 해도 될 것도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치한짓을 해본놈이나 한다고,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어떤식으로 그녀를 더듬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던 까
닭이다. 하지만 그녀는 살짝 나를 등지며 돌아서 주었고, 마리의 싸인을 이해한 나는 슬금슬금 그녀의 등뒤로
붙어섰다.

상상력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치한들은 보통 이렇게 하반신을 여자에게 밀착하는 것으로 부터 변태 행위를 시작
하지 않던가? 나는 슬쩍 내 바지 앞섬을 그녀의 치마 엉덩이 부분으로 가져다 대었고, 마리는 센스있게 움찔하
며 놀라는 리액션을 취해 주었다.

여기서부터는 즉흥적 시나리오다. 그녀가 소심한 여자가 되어 치한의 손길을 받아주는 것을 택할지, 아니면 거
부 반응을 보이다가 점점 즐기는 컨셉으로 갈지는 순전 우리 둘 만의 애드립으로 진행되는 한 편의 성인영화
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쪽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것이 무색할 정도로 능청스럽게 그녀의 엉덩이에 하반신을
비비기 시작했고, 이윽고 슬쩍 손을 그녀의 허리쪽에 가져다 대었다.

탁!

아무래도 그녀가 고른 시나리오는 후자의 경우인 모양이다. 마리는 손으로 내 손을 찰싹 소리가 나게 쳐내었던
것이다. 나를 보며 슬쩍 눈을 흘길땐 그만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저렇게 나를 즐겁게 해주려고 연기에 몰입한
것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괜히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것에 굴하지 않고 다시
작업(?)에 돌입하는 치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허리에서 머물지 않고 곧바로 가슴을 향했다. 정장 자켓 안으로 손을 넣어 부드러운 실크 브라우스 위
의 가슴을 지긋이 눌렀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저지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이미 치마를 살짝 들추고는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실제 치한들의 세계에서는 절대 있을리 없는 타입의 용자나 다름없는
것이지만, 나는 완벽하게 상황극에 젖어들고 있었다.

"흡..."

반항을 하던 그녀가 조금씩 몸을 꼬기 시작한다. 약속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애드립이 그려낸 시나리오 대로
치한에 당하는 피해자는 슬슬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흡사 야설이나 야동에서나 나올것만 같은 설정이 실제
로 펼쳐지고 있다. 용기를 얻은 치한, 나는 아예 팬티위의 뜨거운 그 부분을 손으로 비벼대기 시작했고, 왼손
으로는 브라우스의 단추를 끌러 반쯤 드러난 가슴의 젖꼭지를 슬며시 꼬집었다.

"흑..."

마리는 지하철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는 여성을 연기했다. 묘한 흥분
속에서 치한을 연기하는 나는 다음 행동 역시 즉흥적으로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대담한 치한은 바지 지퍼
를 열어 거대하게 부푼 자지를 끄집어 내었고, 여지 없이 앞에 있는 아리따운 여성의 허벅지 사이에 파묻어 버
린다.

"이러지 마세요..."

그녀는 조용히 내게 속삭였지만, 나는 그것을 듣지 않았다. 그런 애원을 들어줄 순진한 치한이 세상에 어디있
겠는가? 나는 대답대신 그녀의 손을 이끌어 내 자지를 쥐어 주었고, 그녀는 또 움찔하며 놀라고 만다.

"손으로 딸딸이 쳐봐. 그럼 그냥 갈테니까."

"어떻게 여기서.."

"어서 해봐."

소극적 반항도 잠시, 치한에게 당하는 오피스걸은 체념한듯 천천히 손을 앞 뒤로 흔들며 치한의 육봉을 애무하
기 시작했다. 급작스럽게 당하는 것치고는 너무나 유연한 손목스냅이긴 하지만 너무나 상황극에 열중해도 안되
는 것이라는 걸 마리는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열심히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며 뜨거운 입김을 마리의 목
덜미에 불어 넣었고, 그녀는 벌게진 얼굴로 열심히 오른손을 흔들어 핸플을 해주고 있었다.

"쌀 거 같아. 니 치마속에다가 쌀게."

"아..안돼요."

하지만 역시 불친절한 치한은 그녀의 말을 쉽게 무시하고는, 치마를 슬쩍 들추어 그녀의 팬티 스타킹 위로 시
원하게 발사를 하고 있었다. 상황극이 시작된지 15분만에 일어난 사정이었고, 놀랍게도 섹스를 할때보다 현저
히 줄어든 런닝타임이었다. 그만큼 나는 이 상황극에 몰입을 하고 흥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씨! 오빠 진짜 흥분했나봐. 스타킹 다 젖었잖아."

귀엽게 투덜거린 그녀는 정액들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스타킹을 벗더니, 어디선가 젖은 수건을 가
져와 축 늘어진 내 자지를 정성스레 닦아주기 시작했다. 내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그녀의 하얀 얼굴. 아마 오
랫동안 뇌리에 남을 법한 명장면이었으리라.

 

 


-네? 강우 오빠..요?-

잠시 상념에 빠져있던 나는, 전화기 너머로 마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괜히
전화를 했다는 후회감과 함께, 정체를 알수 없는 상실감이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하하. 제길."

허탈한 마음에 웃음이 나왔다. 그녀와 누구보다 친한 단골이라고 생각했는데, 업소가 아닌 밖에서는 그냥 모르
는 오빠가 되어 버리는 현실이 우습다. 아니, 가장 우스운 것은 유흥가와 현실을 구분 못하고 철없이 군 내 모
습이었다. 창피하고 쪽팔렸다.

그제서야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 들어왔다. 누구보다도 유흥가의 실리를 잘 파악하고, 또 그들이 정한
법칙과 약속을 준수하며 성실하게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단순한 진리를 잊어 버리고 날뛴 바보중에
한 명이 되어 있었다. 온 몸에서 바람이 빠져 나가는 듯한 허무한 느낌. 유흥가를 접한 이래 단 한 번도 느끼
지 못했던 그 감정 때문일까? 나는 혼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법칙을 어기려고 한 거는.....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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