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유흥가 견문록 [1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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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본 글에서 등장하는 업소명과 등장인물들,혹은 사이트의 이름은 실제가 아닌 가상으로 꾸며진 것임을
밝힙니다.
14부- 현실과 허구.
사람이란 참 단순한 존재이다. 뭐 그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야 수없이 많은 예시들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우리
가 살면서 쉽게 인정하는 부분은 "아 나는 단순한 놈이구나" 라는 것이다. 또한 확률적으로 볼때, 자신이 단순
하다고 느끼는 빈도는 여자에 비해 남자의 경우가 월등히 높다.
남자는 기본적으로 두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지 못한다.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거다 라는 건 말도 안돼는 이론
이 아닐수 없다. 남자라는 동물은 선천적으로, 어쩌면 태초부터 그렇게 태어난 단순한 종자다. 남과 여가 섹스
를 할때 무엇을 생각하는가 라는 것을 예로 든다면 남자의 단순함이 바로 이해될 것이다.
하여튼, 여자는 남자에 비해 복잡 미묘한 생물이다. 또한 여자는 남자와는 달리 여러가지 일을 한 번에 하는 것
이 가능하다. 그것이 단순하느냐 아니냐를 결정지을 척도는 아닐수도 있겠지만, 여자들은 전화를 하면서 메니큐
어를 바르거나, 혹은 티비를 보며 전화통화를 하는 등 동시에 두 가지일이 가능한 대단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우리회사 경리부의 미스최의 경우만 해도 그랬다. 일전에는 나와 메신져로 대화를 하면서 거래처의 전화를 받는
등 놀라울 정도의 멀티 플레이를 보여줘서 나를 놀라게 한 전적이 있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는 당시 수
시로 엑셀파일을 정리하는 여유로움을 보여주기 까지 했다. 태생적으로 단순하게 태어난 나로서는 달인을 보는
것처럼 경외심을 감추지 못할 법한 일이다.
이토록 단순한 남자라는 동물인 내가 최근 곤란을 겪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낮과 밤, 온라인과 오프
라인이 전혀 다른 박강우로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낮에는 성실한 회사원이어야 했으며, 홀로 자
취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아들이어야 했다. 오프라인에서는 도무지 유흥가의 "유"자도 모를 것만 같은 매너있는
회사원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날이 저물고 저녁이 되면 유흥가에서 꽤 유명해진 탐방회원인 "해바라기"
로 돌변했다. 신규 업소들은 최고의 홍보 시장인 "사공"에서도 해바라기의 마음을 잡는 것에 여력이 없었다.
내 후기가 올라온 업소는 여지없이 연일 예약 풀의 상태가 계속되었고, 반대로 내 후기에 언급되지 못한 업소
들은 그저 평범한 매상을 유지하는 괴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다른 두 개의 삶을 한 사람이 살려니, 단
순한 나로서는 종종 헷갈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 부작용은 빨리 나타났다. 누구보다도 여성의 내면을 봐야할 나이에, 그 여성의 외면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첫번째 부작용이다. 경리부의 유리씨를 봐도, 디자인 부의 주연씨를 봐도 벗은 몸이 어떨까 하는 공상에 쉽게
잠겨 버렸다. 심지어 거래처의 잘생긴 대리에게는 "잘 생기셨어요" 혹은 "호남형이시네요"라는 말 대신에 "와
꾸가 나오시네요"라는 말을 꺼내는 바람에 분위기가 싸해진 전적마저 있었다.
두번째 부작용은 연애에 대해 심각하게 무뎌졌다는 것이었다. 연애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결혼
적령기인 나로서는 노총각으로 늙어가기 딱 좋은 기로에 들어서 있는 거다. 연애는 도대체 뭣하러 한단 말인가?
주말에 만나서 영화를 보고, 같이 식사를 하고, 사소한 일에 다투거나 질투를 하고, 친구들 만나 술한잔 하는것
에 눈치를 보는 그 생활을 왜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요새말로 "초식남"이라
거나 하는게 아니라, 그저 궁하면 유흥가에 가면 되는 거라고 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는 커플이나 혹은 부부에 비해서, 나는 매우 내 성생활에 만족을 하고 있는 편이
었다. 되려 파트너가 있다면 상대방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자신이 원할때 파트
너가 원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는 일이 대부분이 아니던가? 그에 비하면 나는 달랐다. 나는 얽메인 곳
이 없어 자유로웠고, 원할때는 언제든 업소에 가서 욕망을 채울수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만족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훗날 알게된 사실이지만.
모든 것의 발단일 지도 몰랐을 그 일은 금요일 오후, 무던히도 시간이 가지 않던 날 회사에서 일어났다. 늘상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휴게실이 꽉 차 있었고, 나는 꼭 담배를 한대 태우고 싶었던 것이었다.
평소라면 조금 이따가 다시 나오지 뭐...하며 넘어가겠는데, 그날 따라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서 업무를 보아서
인지 담배 한 대 생각이 간절했다. 결국 나는 사람이 꽉 차 있는 휴게실이 아닌, 평상시에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비상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금연 구역이긴 했지만, 어차피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는 곳이었기에 괜찮
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후우..."
철문을 열고 통로로 들어서며 불을 붙인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고 나니 남은 퇴근시간이 더욱 더 아득하게 느
껴지고 있었다. 불이 들어오긴 했지만 조금은 눅눅하고 어두운 계단에 내가 뿜는 담배연기만이 공허하게 채우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흑...흑..."
그것은 분명히 누군가가 울고 있는 소리였다. 내 귀가 이상한 것인가? 라고 생각하며 2~3초간 허공에 귀를 기울
이니 그것은 더 확실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서있는 곳보다 한 층 위에서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였고, 더 확실한 것은 고운 여자의 흐느낌이라는 점이다.
어찌해야 할까. 그 잠깐의 순간동안 많이 망설여졌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조용히 담배를 비벼끄고 그 여자가 혼
자 눈물을 삼킬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겠지만 호기심이라는 녀석이 참으로 무서웠다. 도대체 누가 이
딴 후미진 비상 계단에서 울고 있는 것일까? 반 층 정도에 해당하는 계단만 올라가면 보일 것도 같은데,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흑..하아..."
마지막에 눈물을 삼키려는 듯 크게 심호흡을 하는 그 소리에, 나는 참지 못하고 조금씩 층계를 올라서고 있었
다. 뭐 자리를 비켜준다 하더라도 금세 금연구역에 가득 뿜어진 담배 냄새 때문에 발각될 텐데 뭘..이라는 알량
한 합리화를 내세운 채로 말이다.
"유리...씨?"
아아. 층계를 올라가 몸을 돌리고 몰래 보려던 나는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
었던 것이, 한 층 위의 계단에서 쪼그려 앉아 울고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유리였기 때문이었다. 계단에 앉아
있는 탓에 치마 밑 하얀 다리를 보여준 채로, 그녀는 번져가는 화장을 계속 의식해 가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촉촉히 젖은 동그랗고 큰 눈에 놀람이 담겨 나를 응시한다.
"그냥 가세요."
몇 초간의 정적이 끝나고, 흐느끼는 그녀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되고
나니 그냥 가기도 뭣하고 남아 있기는 더더욱 뻘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욱 더 머뭇 거렸지만 유리는 어서
가라는 재촉을 하지 않았다. 남아 있어 달라는 신호처럼 보였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회사 내 지만, 지금은 둘이 있으니 편하게 말을 놓아도 상관 없을 법 했다. 어차피 사적인 자리에서 오빠 동생
이라는 것을 하기로 한 사이니까 굳이 어려워 할 필요도 없다. 그녀는 내 말에 한참이나 대답을 해주지 않았고,
나는 용기를 내어 몇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다.
"왜그러는데...?"
"으아아앙!"
나는 더욱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내가 말을 걸어주자 마자 진정하기는 커녕, 어린아이가 울음보 터지듯 우는
소리가 더 격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몇 번을 망설이고는, 이윽고 계단에 유리 옆자리에 앉아 그녀를 토닥였
다.
"무슨 일이야? 왜 여기서 울고 있는데? 큰 일이라도 났어?"
여전히 쉬이 돌아오지 않는 대답. 나는 얼른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유리에게 건내었다. 그녀는 내게 건
내 받은 손수건으로 이미 눈물 범벅이 되어 버린 얼굴을 닦아 내었고, 다행히도 우려했던 것처럼 화장이 흉하
게 번지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봐."
무언가 퍼뜩 하고 머리를 스친 나는 벌떡 일어나 출구로 나가, 자판기에 있는 차가운 캔 커피 두 잔을 뽑아 들
었다. 차가운 것이라도 마셔야 진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유리는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부동자
세로 계단에 앉아 있었고, 내가 음료수를 내밀자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오빠."
이럴때는 그냥 진정할 때 까지 말을 걸지 않는게 상책이거니 싶었다. 왜 애들도 넘어졌을때 엄마들이 옆에서
괜찮냐고 극성을 피우면 더 고래고래 울어 젖히지 않던가? 꽤 오랜시간이 흘러 담배 한 가피가 아니라 정말이
지 "땡땡이" 수준의 자리비움이 될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내게 말을 이었다.
"그냥....김 이사한테 한 소리를 들어서 그랬어..."
"뭐...?"
울컥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유리가 또 울음을 터뜨릴 것 만 같아 입을 다물어 버렸다. 유리가 언급한 김이사는
회사에 한 명씩은 있을 법한, 한마디로 "줘 패주고 싶은 상사"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소기업에서 이제 막 중기업으로 가는 주제에 무슨 이사란 말인가. 그 직책명 자체부터 마음에 안드는 녀석이었다.
출근 후 유일한 일과는 인터넷 뉴스 보기, 바둑두기에 외근을 빙자한 사우나 출입도 빈번한 전형적인 꼰대 마인
드의 작자였다. 직책도, 연배도 나보다 훨씬 높으니 직장 내에서는 부딪힐래야 부딪힐 수 없는 상대기도 했다.
그냥 일방적으로 내가 피하는 것이 가장 상책일 뿐.
여튼 그인간의 고질병이 또 도진 모양이었다. 김이사는 늘 만만한 여사원 한 명을 찍어 괴롭히기 일쑤였고, 회
식자리에서 심하게 취한 여직원이 있으면 여지없이 옆자리에 앉아 호시탐탐 더듬을 찬스를 만드는 녀석이었다.
당연스럽게도 회사 내에서 그에 대한 평판은 최악이라 해도 무방했지만, 회사의 오너와 사적인 연이 닿아 있으
니 다들 나처럼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라는 마인드로 무시하곤 했다.
"진짜 미친놈 같아. 그 사람.."
유리의 말을 들어보니, 이번에 김이사가 재고를 가지고 유리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매번 딱딱 들어맞는 재고량
이라 대부분 월말 정산때 실재고량을 체크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데, 경리란 작자가 매일 매일 체크를 하지
않는 다며 운을 띄웠다는 것이다. 결국 유리는 바쁜 업무를 미뤄두고 재고량에 오차가 없음을 직접 증명했지만
"왜 너는 꼭 시켜야만 하냐"라는 말로 20대 아가씨의 속을 벅벅 긁어놓은 거다.
"일어나."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나는 분을 삭히며 진정을 하는 유리의 손목을 잡고 일어났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고, 나 역시 나 조차 예상하지 못한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퇴근하고 나랑 술한잔 하자. 사줄게."
처음에 유리에게 맥주를 사줄 때보다, 확실히 조금 친해지고 나니 말을 꺼내기가 쉬웠던 모양이다. 부서도, 업
무도 다른 우리는 회사가 끝나자 마자 흡사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소란을 피우며 직장 동료들의 시선을 분산
시켜야만 했다. 우리 둘이 아무 관계가 아니라 해도 회사 사람들이 단 둘이서 술 먹는 장면을 목격해야 좋을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번화가도 아니고 그리 후미진 곳도 아닌 호프
집에 들어가 술을 주문했다.
"니가 참아. 어디가나 그런 놈 한 둘은 꼭 있는 법이니까."
소주가 한 두잔 들어가서 인지, 아니면 아까 계단에서 실컷 개워내서 인지는 몰라도 유리는 더이상 울지 않고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과는 달리 맥주가 아닌 소주잔이 몇 번인가 허공에서 부딪혔고, 유리는 아주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 아이처럼 신나게 김이사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
"진짜 재수없어. 왜 그딴 놈을 월급 주면서 데리고 있는지 몰라."
"월급도 높지 않아?"
"당연하지."
"얼마나 받는데?"
뭐...회사의 돈을 운용하는게 유리의 몫이니 당연히 급여 지급 통장으로 돈을 송금하는 것도 유리의 일이다. 자
연히 그녀는 회사 직원들의 연봉 테이블을 외우기 싫어도 훤히 꿰고 있으리라. 평소라면 절대 물어봐선 안되고,
또 물어보기도 쉽지 않은 말이지만 지금 같은 자리에서는 물어봐도 괜찮을 듯 싶었다. 하는 일이 제로에 가까
운 그 기생충 같은 인간이 얼마나 회사돈을 축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오백 좀 넘어."
"휘유...."
자연스럽게 휘파람과 함께 놀란 표정이 나오고 만다. 500이 넘는 다면 연봉 육천을 넘어간다는 거 아닌가? 억
대 연봉인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 회사같은 규모에, 거기다 하는 일이라고는 빈둥거림이 전부인 인간이 받기엔
과분하다 못해 넘치는 처사다.
"열받지? 그런 놈이 그렇게 받는다는게..."
"응. 처음 들었는데 정말 충격이다 야."
"난 오빠 얼마 받는지도 알지롱!"
"야야. 그런 건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려."
허공에 손사레까지 치며 말하는 내 모습에 유리는 쿡쿡 거리며 웃었다. 아까 울어서 얼굴이 조금 부었고, 화장
기도 많이 없어진 모습이지만 예쁘긴 참 예뻤다. 하기사, 유리와 꼭 닮은 오피스텔의 체리라는 아가씨가 매번
"넘버 원 와꾸"라는 평가를 듣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때, 유리는 확실히 일반인 치곤 참 고운 용모를 가지고 있
는 거다.
"근데 그 인간 지가 쓰는 의자 방석이며 간식비까지 다 회사에 청구하는 거 알아? 진짜 안면에 철판 깐 인간이
야. 출장도 안가는 주제에 출장비 명목으로 돈 빼서 업소도 다니더라?"
소주를 목으로 넘기다가, 유리가 말한 "업소"라는 말에 그만 헛기침이 올라오고 말았다. 다행히 초인적인 힘으
로 소주 분사는 막아내었지만, 사레가 들린 듯이 몇 번이고 기침이 나왔다.
"업소라니..? 무슨 업소?"
물을 마셔 목을 달랜 나는 짐짓 점잖을 빼며 넌지시 물었다. 다행히도 유리는 안주로 나온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던 탓에, 누가봐도 "수상하기 그지 없는" 내 표정은 보지 않았다.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던 유리는, 한 손
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대답했다.
"뭐긴 뭐겠어. 여자랑 노는 그런 업소겠지."
"흠...그래? 그럼 영수증에 당당히 업.소 라고 써있는 거야?"
"그런 경우도 있을걸? 무슨 월드컵 노래빠? 그딴 식으로 써있는 경우도 있고, 안흥찐빵으로 써있는 경우도 있더
라? 참 내. 무슨 안흥찐빵을 얼마나 먹으면 120만원이 나온데? 내가 바보도 아니고."
유리의 말에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흘릴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나타난 혐오감 때문
에 유흥가에 관해서라면 그저 모르쇠로 일관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유흥가를 다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김이사 같은 작자와 동급 분류 되는 것은 사절이었다.
"여자들은 역시나 유흥가 가는 거 혐오 스럽겠다."
"아니...뭐 그렇지도 않아."
"응? 진짜?"
"내 남자친구나 남편이 가지만 않으면 되는거 아니야?"
혹시나 했지만 대답은 역시나다. 세상에 유흥가에 종사하는 여자애들 말고, 유흥가를 좋아하는 여자를 어찌 찾
겠는가? 차라리 사람말을 하는 원숭이를 찾는게 더 빠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유흥가가 있으니까 나이 먹은 사람들이 놀 자리가 있는게 아니겠어? 뭐...듣기로는 그게 없으면 성범
죄가 늘어난 다는 소리도 있더라."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니, 유리는 내 빈잔을 소주로 채워주며 대답했다.
"뭐...남자들이야 다 그러니까 할 수 없는 거지. 오빠도 그런데 다녀 설마?"
나올 것이 나온 건가? 그녀의 질문에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 애를 써야만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온라인의 박
강우와 오프라인의 박강우의 다른 삶을 완벽하게 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찰나와도 같은 고민끝에, 나
는 유리에게 조금 잘 보이기로 마음 먹었다.
"별로 관심없어 나는."
"에에이...괜히 이미지 관리하는 거 아니고?"
유리는 귀엽게 웃으며 나를 놀리듯 말했지만, 나는 최대한 어색하지 않은 미소로 응수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김
이사에 대한 뒷담화를 안주삼아 비운 소주병은 벌써 세 병이 넘어가고 있었다. 나야 술이 그렇게 약한 편이 아
니니 괜찮았지만, 유리의 경우에는 술이 세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걱정이 되었다. 화장기가 지워진 얼굴
에 발그스름하게 홍조가 올라오기 시작한 게 그 징조나 다름없었다.
"그럼...오빠는? 오빠는 연애도 안하고, 유흥가도 안가고...그냥 일만 해?"
"무슨 질문이 그러냐? 제발 한 번 가라는 것도 아니고."
"에에이. 그런거 아냐. 그니까...오빠도 외로울 때가 있을거 아니야?"
듣기에 따라서는 단순히 심경을 묻는 말이겠지만, "너 섹스하고 싶을때 어떻게 하니?"라고 들리는 것도 유흥가
의 큰 부작용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조금 긴장과 방어가 풀려 있는 듯한 유리의 얼굴을 보며, 나는 조금 능
글맞게 대처했다.
"넌 있는 모양이구나? 뭐 애인 없고 업소 안간다고 꼭 외로운건 아니잖아."
"치. 뭐야. 당연히 난 외로워. 애인이 없는지 2년이 넘었는데 뭐...."
나는 반 정도 남은 내 잔의 소주를 목으로 털어 넣으며, 그간 참고 있던 담배를 꺼내 들었다. 오늘 하루는 술
을 마시고 운동도 안하니...까짓거 원래 피우던 담배정도 피우면 어떠랴.
"스트레스가 쌓일때야 많긴 하지."
"연애를 안해서?"
"아니...그러니까..."
유리의 되물음에 나는 한동안 뜸을 들였고, 그녀는 아무생각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예전 같았
으면 꺼내기 힘든 말이겠지만, 술을 마셔서 그런지 너무 쉽게 다음 거짓말이 나왔다.
"여자랑 잔 지도 오래 되긴 했지. 확실히."
하지만 예상외로 유리는 부끄러워 하거나 하진 않았다. 뭐 물론 잠시간의 뻘쭘한 정적이 흐르긴 했지만, 직장
동료끼리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유리의 얼굴에는 그 어떤 거부감이나 위화감이 없었다. 하기
사, 다 큰 처녀 총각이 직장 동료관계를 떠나 가지는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못할 법은 또 없지 않는가? 나는
뻘쭘함을 깨기 위해 또 한 번 말을 이었다.
"그럼 넌 2년되었겠네? 헤어진 지 2년이니까."
"뭐가?"
"스킨쉽 말이야."
"...아...음..그렇지 뭐."
어차피 유리와 나는 첫 술자리에서 조금 선을 넘은 대화를 한 전적이 있다. 당시 유리는 "아웃!"이라고 외쳤
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어색한 경리부 미스 최와 영업부 박주임의 술자리가 아닌 것이다.
"풉.."
"왜 웃어?"
"그냥 우습잖아. 오빠랑 이런 이야기를 할 거라고 어찌 알았겠어?"
"너 저번에도 그런말 했었잖아."
"새삼 놀라워서 그래. 회사 주임님을 오빠라고 부르게 된 것도 신기하고..지금은 입에 많이 익었지만.."
"싱겁기는."
우리의 대화는 또 다시 일상적인 대화로 넘어갔지만, 특별히 아쉽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한 번 물을 탔다고
해서 주구장창 야한 이야기만 들춰내는 것도 소위 말하는 "비호감"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 의식
이 개방된 아가씨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전적(?)탓에 한 번 다른 곳으로 이탈한 대화주제를 다시금 야한 대
화로 회귀시키는 내 능력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나 탁월해져 있었다.
"유리는 좋겠다. 몸매가 예뻐서."
"어머? 여자 몸매가 부러운 거야 지금? 그리고 내 몸매 좋은지 오빠가 어찌 아냐?"
"착 보면 알지 뭐. 남자의 직감을 무시하지 마."
"푸핫! 그러는 오빠도 처음에 비해서 엄청 달라졌어. 수트 입은걸 보면...옷걸이가 달라진 거 같아."
"당연하지. 내가 요 근래 얼마나 열심히 운동을 했는지 알어?"
"왜?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나 보지?"
"아니. 아직 그럴나이는 아니잖아."
"그럼 왜 운동을 하는데?"
"그거야 언제 여자 앞에서 옷을 벗게 될지 모르니까 대비하는 거지."
"하하하 뭐야. 꿈 깨세요 아저씨."
나도 즐거웠지만, 유리도 충분히 나와의 대화가 즐거운 듯 보였다. 특히나 몸매 이야기를 할 때엔 은근슬쩍 앉
아있는 유리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노골적인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긴
커녕 응큼하다고 놀려대었다.
"아휴...근데 그러고 보니 우리 꽤 많이 마셨네?"
"꽤 많이가 아냐. 지금 시간을 보라고."
"어머!"
내 말에 슬쩍 손목시계를 바라본 유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퇴근하고 나와서 술을 마시기 시
작했는데 벌써 밤 10를 훌쩍 넘긴 까닭이다. 보통은 술자리를 이동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진득하게 처음 들어
온 술집에서 몇시간을 수다를 떨었던 거였다.
"가자. 바래다 줄게."
사실 나라고 더 마시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괜시리 더 시간을 보내자고 말하면 "오프라인의 박강우"의 이
미지에 치명적 타격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녀가 사적인 자리에서 알게된 인연이라면 모르지만, 오프라인의 내
모습을 아는 여자에게 구태여 내 다른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어 보였다.
"왜 오빠가 계산해?"
"내가 오빠니깐."
"치...그런게 어딨냐? 나도 오빠 사줄 수 있는데."
"다음에 사줘. 내 연봉을 훤히 아는 여자라서 돈 많다는 허세는 못 부리겠다."
내 농담에 몇 번이고 쿡쿡 거리며 웃은 유리는, 걱정과는 달리 흐트러지지 않은 걸음걸이로 나와 함께 술집을
나섰다. 계산을 할 적에 나와 유리를 보며 부러운 듯 바라봤던 젊은 점원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여기서 우리집까지 걸어서 얼마 안걸려. "
"그럼 걸어서 바래다 줄게."
"은근 매너남이네 오빠?"
"매너남은 무슨. 치마를 너무 짧은걸 입었어 너. 밤거리를 배회하기엔 무리가 있다."
"치...그냥 회사에 입고 가는 치만데 뭐가 짧아?"
"이게 안짧아? 무릎위로 올라가잖아."
장난을 치는 김에 그녀의 치마 끝단을 살짝 쥐고는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지만, 유리는 당황하긴 커녕 꺄르르 웃
으며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녀의 말대로 걸어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인지, 우리는 곧 나란히 어깨
를 맞추고 멀리 보이는 그녀의 아파트를 향해 걷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유리 정도 되는 아이와 함께 걷는 것은 생각보다 꽤 기분이 좋은 일이다. 하기사 업소
여자와 함께 나란히 산책을 할 일 따윈 없을 테니까...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뿌듯함이 있었다.
불현듯 페방의 마리가 생각났다. 그녀라면 유리보다 더 노골적이고 야한 대화를 실컷 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
각이 들며, 오프라인의 내 모습은 점점 흔들려 가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유리와 술을 마시면 바로 오피스텔
의 체리를 찾을 텐데...이상하게 마리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맹세컨데, 내가 마리를 보지 않았더라면 오늘
유리를 바래다 주자 마자 오피스텔로 직행해 체리를 안았을 것이다. 마치, 유리와 질펀하게 섹스를 한다고 상
상하면서 말이다.
"오빠....?"
"으..응?"
상념에 젖어 있던 나는 불현 듯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고,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듯한 유리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 뭐야. 내 말 못들었어?"
"아...잠깐 생각좀 하느라. 미안해. 무슨 말 했어?"
"치...됐어."
"미안하다니깐. 사실 딴 생각한게 아니고 술기운이 올라와서 그랬어."
"....그냥...커피 한 잔 하고 갈래? 라고 말한거 뿐이야."
"음...?"
나는 순간 멍한 표정으로 유리를 바라보았지만, 왠일인지 그녀는 살짝 민망해 하며 자신의 구두 끝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유리가 살고 있는 여의도 모처의 아파트에 다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래다 줘서 고마워서 그래. 커피 한 잔 하고 갈꺼야? 그냥 갈꺼야?"
뭔가 뾰로퉁한 표정을 짓는 유리. 그리고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가 사는 아파트의 외관을 바라보았
다. 보통의 아파트와는 달리 조금 작아 보이는 규모의 건물. 나는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 말았다.
그녀가 사는 그 곳은, 독신들을 위한 원룸형 아파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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