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무한상상III-판도라의 상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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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730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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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통해 나를 본다. 긴 생머리를 말아 올리고 가슴을 전부 드러내며 서 있는 모습의 나는 남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몸매의 여자’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자신이 싫었다.


“휴~~”


사각의 타이트한 팬티와 넓게 가슴을 감싸주는 브라자를 차고, 그 위에 두꺼운 티와 활동하기 편한 청바지로 감싸자, 좀 전의 음란한 몸뚱아리가 어느 정도 가려졌다. 남들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미모나 날씬한 몸매 역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의 재능과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여자에게는 그것도 짐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이 여형사라면 더욱...’


인조가족으로 만든 총지갑과 수갑을 허리에 차고, 그 위에 검정 가죽잠바와 낡은 청 야구모자를 썼다. 어느 정도 얼굴과 몸을 가리고 나자 비로소 한명의 형사가 된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오~ 죽이는데..’


‘박음직스럽게 도 생겼네..’


‘엉덩이 터지려고 하네..’


재수 없게 범인 검거 과정에서 차를 받아 수리 들어가고, 어쩔 수 없이 지하철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끈적거리는 눈빛, 힐끗거리는 시선, 북적대는 지하철 안을 핑계 삼아 은근이 비벼는 몸짓이 역겹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욱 싫은 것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그들의 음란한 상상이었다.


“네..과학수사팀 김형사입니다..”


그런 그들이 싫어 오지도 않는 핸드폰을 들고, 신분을 밝히자 움찔 놀라던 남자들이 급격히 멀어지고 복잡한 지하철 한가운데 작은 섬 같은 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추잡스런 행동의 멈춤은 형사인 자기를 밑에 깔아뭉개고 더욱 더러운 행동을 하는 상상으로 이어져 속을 더욱 뒤집어 놓았다.


‘제발...이 미친 자식들아..’


어린 시절,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부모님의 형제들’에게 얹혀살았던 적이 있다. 물론 나에게 삼촌, 이모, 고모가 되는 사람들이지만, 20살이 될 때까지 가까스로 같이 지내며 느낀 감정은 그들은 내 친척이 아니었다.


아무튼 그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면서 나만의 능력이 생겼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홀로 남기고 떠난 아버지, 어머니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능력으로 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정거장은 삼성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거대 공룡 같은 코엑스몰을 지나 강남경철서로 들어간다.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있다. “모든 에너지는 저절로 생성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다만 그 형태만 변할 뿐이다.” 이것은 세상살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니까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으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김형사. 형사지원팀 강 팀장 도와서 서울지검 폭탄테러사건 수사해..”


‘잘난 검사 양반 딱갈이는 여자가 해야지..애구..어떻게 저년 한번 먹을 수 없을까? 가만..이거 괜히 저년 보내서 검사 사모님 되는 거 아냐?’


“네!”


얻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겠고, 잃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 믿음, 사랑 등의 모든 감정이다. 삼촌이 자신의 몸을 탐내고, 사귀던 남자가 만날 때마다 어떻게 여관에 끌고 갈까 고민하고, 다른 여자를 보고 침 흘리는 것을 바로 옆에서 생생히 보고 있으면 미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결국 아무도 사귀지 못하고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는 그냥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생각이 여과 없이 들어오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고통이었다.


“강 팀장님. 이번에 같이 일하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 과학수사팀에서 김 형사가 지원나온거야? 나야말로 잘 부탁해..”


‘아싸~ 재수재수~’


“네..그럼 현장부터 가볼까요?”


“그래..”



이미 현장은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현장, 출입을 통제하는 붉은 선 안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 속에 폭발의 흔적만이 흉물스런 자국으로 남아 있다. 현관에서 안쪽 엘리베이터까지, 위로는 2층 바닥을 허물어뜨려 제법 큰 폭발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다.


“저..사망자가 178명, 중경상자가 421명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응? 그런데?”


“이정도 폭발력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것이 좀...”


“그건...폭탄에 의해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은 10여명 정도야..나머지는...”


말 안 해도 알거 같았다. 계단에 묻어있는 피자국과, 연기가 타고 올라간 것으로 보이는 환풍기, 그리고 안전핀 그대로의 상태로 나둥그러져 있는 소화기..


‘많이 배우는 것과 긴급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관계없는 일이지...’


이런 것들은 배움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되는 것이다. 폭탄의 잔해를 보건데, 상당한 폭음과 진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려버리면, 머리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오로지, 평소에 몸에 배인 훈련만이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다.


“뭐..우리나라 안전 불감증이야..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까..”


강 팀장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동의해왔다.


“CCTV 테이프는 수거해 갔나요? 우선적으로 용의자 신원은 파악 됐나요? 폭파 현장에 있던 시체들을 보고 싶은데..”


“아..그거.. 여기 확인이 끝나는 대로 서로 돌아가 보여 줄게..”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피곤한데...’


“현장이 너무 깨끗하네요. 사진 찍어 둔 것도 보여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하하하. 김 형사 정말 든든하네..어디가 밥이나 먹고 돌아가 검토해 보자고.”


‘애인으로는 좋은데..마누라로는 별로네...’


매번 겪는 반응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지, 외로워진다. 한명의 동료로써, 직업인으로써, 같은 형사로써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번번이 꺾이고, 차라리 여경찰들이 많은 지원과로 옮길까 하는 유혹을 다시 받았다.


‘힘내자. 김지수. 할 수 있다!’


“밥은 됐고요. 서로 돌아가서 자료나 보여주세요.”


강 팀장에게 상한 기분을 풀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에 몰두했다. 대부분 퇴근도 제대로 못하고 여기저기에 쓰러지듯 자고 있는 동료들 사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오늘 하루 모아온 증거들을 분석했다.


[천중원 70세.

주민등록번호 : XXXXXX-XXXXXXX

거주지 :...........................

62년 해병대 하사 임관.

.

.

64년 중사 진급. 제2연대 2대대 1중대 3소대 소대장.


65년 월남 파병.

.

.

68년 귀국


알파 작전. XXX작전. YYY작전. ZZZ전투.

.

72년 중사로 전역.]


폭파 현장도 그렇고, 그 주변에서 나왔다는 시체들도 그렇고, 폭파의 영향으로 시체가 갈가리 찢어지거나 심하게 화상을 입었던 것에 비해, 용의자 천중원과 그 앞에 있었던 순경의 시체는 거의 멀쩡했다. 폭탄이 터지면서 그 중심은 진공을 형성하기 때문이므로, 그 두 명이 폭파의 진원지에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였고, 그것은 우선 용의자로 두기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더욱이 수거한 CCTV 테이프를 확인한 결과 천중원이 들고 온 가방에서 안개 같은 연무가 분사되고, 이어서 불이 붙으면서 1층 로비로 확대되었다.


[산화에틸렌 검출....................기화 폭탄의 일종으로 추정..]


기화 폭탄은 가연성 물질을 지상에 산포해 한순간에 폭파시킴으로써 그 충격파로 지뢰나 건물을 파괴하는 폭탄이었다. 폭발과 동시에 일정지역의 산소를 순식간에 태워 버리기 때문에 근처의 모든 사람을 질식사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폭발력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도 이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역시..군사 전문가 쪽이...’


갓 20대 초반인 순경쪽 보다 월남까지 갔다 온 천중원 쪽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문제는 범행 동기인데...’


대상이 누구였던, 그 장소는 서울지검, 모르긴 몰라도 서울에서 발생하는 모든 원한이 집결한다고 봐도 무방한 곳이었다. 천중원 자신이 전과가 없는 만큼, 피해 고소장 위주로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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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어? 은주..오랜만~”


“결혼하더니 얼굴 너무 좋아졌다~”


“호호호 그래?”


마침 은주에게 볼일이 있었다. 반가운 기분에 휴게실로 가서 예전처럼 커피를 놓고 마주 앉으니, 새삼 그 사이의 변화가 실감난다.


“은주야..”


“언니..”


“먼저 이야기 해..”


“..........응..저기...재석 오빠...그거...조금만 더 주면 안 돼?”


“그거? 뭐? 혹시...혹시..그거?”


“으응...그거...”


“실험 아직 안 끝났어?”


“으응...아직...좀 더 확인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래? 마침 잘됐다..나도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데..”


“뭔데?”


재석씨와 처음 만났던 순간, 마치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꼼짝도 못하고 타올라버렸었다. 그 뒤에 재석씨에 대한 그리움과 연애감정으로, 많은 여자들 속에서 재석씨를 쟁취하기 위해 버둥거리며 잊고 있었는데, 최근에 좀 여유가 생기고 언니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재석씨에게 그런 영향을 받는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


“응...특히 요즘은...”


예전보다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부부로 살면서, 더욱이 8명의 다른 부인들과 함께 한 남편을 섬기면서 불만이나 하고 싶은 말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래서 때때로는 재석씨가 얄미워 동침하고 싶지 않았는데, 같이 있으면, 아니 재석씨와 시선만 마주쳐도 너무나 달아올라 주채하지 못하고 달려들곤 한다.


“어머!! 그래서?”


“그래서..요즘은 그냥 포기하고 사는데..”


“그럼..재석오빠가 싫어 진거야?”


“아니..지금도 사랑해..그리고 이상하게 이렇게 지내는 것이 싫지 않고...그런 문제가 아니라..그냥 궁금해서..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음...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겠다..그건.. 뭔가 가설이라도 있어?”


“응...예전에 재석씨 MRI 찍은 거 있지? 그때 뇌의 전두엽과 후두엽에 상처 같은 공간이 있었거든..”


“응. 나도 보긴 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건..언니나 내 전공이 아니잖아? 신경외과 쪽으로 알아봐야 하나?”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고...”


“으음...알았어..내가 알아볼게..그런데..그거는..”


“그건 가져다줄게..그런데 무슨 실험 할 건데?”


“.............언니...”


“응?”


“그거...중독성 있는 거 알아?”


“........아니....하지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어...”


“응....치료제 만들어 보려고...”


“................”



왜 치료제를 만들까? 치료제가 필요한가? 정말로 중독성이 있고, 또 치료제가 개발 된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재석씨를 떠날까? 떠난다면, 딸 유진이는 어떻게 되나? 아니면, 언니들이나 동생들을 치료해 떠나게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과 계산이 왔다 갔다 한다.


“왜? 왜 만들 생각인데?”


“...언니...나...중독 된 거 같아...”


“어쩌다가...너 혹시...재석씨 만나니?”


“아니! 그건 아냐...실험하다가...”


물론 실험하다가 중독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RI 같은 방사능은 그렇게 피해를 입기도 한다. 바이러스나 미생물 역시 공기 중 오염으로 감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약품, 아니 재석씨의 그것과 같이 신경계를 교란해 중독 시키는 약품은 구강이나 혈액으로 주입해야 한다.


“어쩌다...”


“그게...계속 냄새를 맡고 있으니까...그냥..한번 맛을 보고 싶어서..그런데..한번 먹어보니까..그래서..”


“휴~. 알았어...”


불현듯 얼마 전에 남편의 그것을 먹고 흐뭇하게 웃던 주연이가 떠오른다.


“치료제 만들면...나에게도 줘...”


“응..그럴게...저기 언니..일주일에 50ml 정도 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나도 힘들어...9일에 20ml..”


“..........알았어..미안해..그리고 고마워..”


주긴 줘야 할 거 같은데 속이 편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지는 양도 모자라 항상 재석씨에게 끌려 다니는데, 내 몫에서 20ml을 줄 생각을 하니 자기도 모르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치료제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이용한다면 어쩌면 9명, 아니 주연이까지 10명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절반 정도의 여자들은 정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들었다.


‘그래..투자라고 생각하자..’



“흐흠...오랜만이다..”


“누구?”


심란해 죽겠는데, 어떤 의사가 아는 척을 한다.


“응? 현주...아냐?”


“아...승훈씨? 미안..딴 생각 좀 하느라고...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으응...여기로 옮겨왔어..얼마 전에..여기서 너를 만날 줄은 몰랐네..잘 지내지?”


“응..잘 지내..그런데..나 가봐야 할 거 같은데...미안. 다음에 한번 보자. 선영이랑 셋이..”


“어? 그래..바쁜가 보구나..다음에 한번 보자..이거 내 명함이야..”


“그래..은주야.. 연락할게..”


재석씨에 대해 너무 화가 났다. 화가 나는데, 점점 보고 싶어졌다.


“현주야~”


“어머. 여보..어쩐 일이에요?”


“응..연수원 왔다가 당신이 보고 싶어서...혹시나 아직 있을까 하고 와봤지..”


“정말? 정말로 내가 보고 싶었어요?”


“그럼~”


“아이~ 당신도..참...집에서 보면 되는데...”


너무 좋았다. 팔짱을 낀 팔이 닿는 가슴이 화끈거리고, 가슴 깊은 곳을 채우는 충만감에 몸서리쳐진다.


“이렇게 팔짱 끼니까..당신 가슴이 뭉클뭉클하네..어디 한번 만져보면 안될까?”


“아이~ 밝은 대낮에..할 수 없네요..저기로 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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