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유흥가 견문록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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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본 글에서 등장하는 업소명과 등장인물들,혹은 사이트의 이름은 실제가 아닌 가상으로 꾸며진 것임을
밝힙니다.
11부 - 괴리.
휴일의 회사건물 창문 너머로 달빛 어스름이 지기 시작할 때 쯤엔, 난 이미 모든 특근 업무를 마치고 사공 사
이트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중간중간 유리씨가 사내 메신져로 말을 걸거나, 혹은 심심하다고 칭얼대는 등의 놀
라운 사건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평일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박 NF영입! 구로 캔디 오피스로 오세요!-
농사 짓는 사람들에게 단비가 반가운 손님이라면, 사공 사이트의 사내라는 짐승들에게는 NF라는 두 글자가 참
으로 설레는 "단비"가 아닐수 없다. NF란 뉴 페이스의 약자로서, 말 그대로 업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아가씨
라는 뜻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유흥가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아가씨라고는 볼 수 없다. 가령 핸플에서 10년동안 있었던 아
가씨라 할지라도, 오피스로 넘어오면 "뉴페이스"가 되는 것이다. 물론 유흥가 자체에 처음 발을 들이는 엔에프
도 적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사공의 남자들은 NF라는 두 글자에 환장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소들도 신인이 오면 대서특필로 홍보를 한다. 유흥가 아가씨들에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
는 "풋풋함"이라는 단어를 마음껏 남발할 수 있는 때도 바로 이 때 뿐이다. 이미 골수까지 사공인이 되어 있
는 나로서는, 구로 캔디에 뉴페이스가 들어왔다는 사실에 설레일 수 밖에 없었다.
-형님 완전 몸짱 되셨다면서요?ㅋㅋㅋ-
지치지도 않을까. 염소 녀석은 내가 퇴근할때까지 말을 걸며 살갑게 군다. 그래도 태어나 처음 듣는 몸짱이라는
단어가 왠지 싫지는 않았다. 열심히 운동을 하다보니 조금씩 몸의 변화가 오는 것이겠지만, 더듬어 생각해보니
운동을 시작한지 꽤 지나 있었다.
근데 내 운동의 성과를 어떻게 다른 회원이 아느냐고? 간단하다. 사공에는 업소의 아가씨들도 많이 가입이 되
어 있기 때문에, 그녀들이 "해바라기 오빠 몸 좋아졌더라" 라고 하면 소문이 파다하게 난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나랑 놀았던 여자들이 하는 증언이니 백프로 확실하리라. 내 몸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누구 거시기가
크더라 작더라 하는 이야기까지 쉽게 나돌지만, 사공의 그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가지지 않는
다. 이곳은 모두가 평등한 세계니까.
"원래 우리나라는 평등한 사회 아닌가?"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사회의 겉포장지에 깜박 속고 있는 불행한 자이다.
사회는 절대로 평등하지 않다. 금전의 유무와 명예의 유무, 직위와 지위의 유무에 따라 천차만별의 계급과 계
급차가 존재한다. 나같은 월급쟁이와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장은 전혀 다른 계급의 삶을 사는 것이고, 나아가
우리 사장과 대기업 회장의 격차는 또한 만리장성 만큼이나 긴 터울을 가지고 있는 거다. 이토록 계급과 불평
등, 불균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평등해질 때는 오로지 밤에 불이 꺼졌을 때 뿐이다. 성욕에 노출되었
을때의 사내란 지위의 격차와 나이의 격차를 막론하고 똑같아 진다. 밤문화란 유일하게 실현되는 완벽한 평등
이 조율되는 곳이며, 사공은 그런 밤문화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 그러니 모두가 평등하고 부끄러움이 없을 수
밖에.
"아직이에요 주임님?"
"아...전 이미 한참전에 끝났죠."
"어머. 그럼 저 기다리신 건가요?"
얼마나 지났을까. 유리씨가 자기 자리 컴퓨터를 끄고는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피곤함이 조금 섞여 있
는 듯했지만, 불과 몇개월 전만 하더라도 내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미소였다. 예쁜 아가씨가 나를 보며 웃
으니 설레는 것은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그냥 매정하게 갈 수는 없잖아요? 약속도 했고."
"약속 안했으면 매정하게 가시려고 했죠?"
"설마요. 먹고 싶은건 정해 두었나요?"
"음.맥주에 치킨이 먹고 싶네요."
정말이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썰면서 와인을 주문할 줄만 알았던 나는 의외로 간단한 것을 이야기 하
자 맥 빠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주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근사한걸 고르지 그래요?"
"어머? 치킨 많이 시킬 건데요? 아마 지갑이 탈탈 털리실 지도 몰라요."
"하하. 좋아요. 맥주에 치킨이면 저도 환영이죠. 안그래도 목이 탔는데."
"얼른가요."
유리는 살짝 웃으며 사무실내의 전원등을 확인하고는, 특근을 했음을 인증하는 지문 인식기에 손가락을 대고
나서야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지만 키가 있어서 그런지 꽤나 맵시 있어 보인다. 긴
머리를 묶은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목선 위로, 처음 출근할때는 찾아 볼수 없었던 은은한 화장기가 보이자
살짝 미소가 나왔다. 데이트 신청을 받자마자 부랴부랴 화장을 한 모양이다.
또각또각.
유리의 구두소리가 복도에 은은하게 울렸다. 다른 부서들은 아직도 특근의 늪에 허덕이고 있는 건지 환하게 불
이 켜져 있었다. 그녀가 조금 높은 힐을 신어서 인지, 내 키와 어름어름 비슷하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구
부정한 허리를 꼿꼿히 펴며 걸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어휴. 말도 마세요. 각 부서별로 자금 지출 정산을 하는데...오늘에서야 내역서를 제출한 부서가 태반이라 애
먹었어요. "
엘레베이터를 내려갈 때까지 푸념섞인 한숨을 쉬는 유리를 보며 나는 피식 하고 웃어주었다. 경리의 업무라는
것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심으로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상대적
으로 작은 월급 역시 견디기 힘들 것이고, 평생 직장으로 삼을 만큼 경리직이라는 것이 비전이 크지 않아 아
마 그녀는 많이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회사 밖에도 치킨집 많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오늘도 하려나 모르겠네요. 주말이라."
이상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는 도란도란 대화를 하며 걸었다. 평일이라면 업무후 술 한잔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회사 근처에는 많은 숫자의 호프집들이 있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주말에 문을 연 가게
는 그다지 많지 않았고, 한결 시원해진 밤공기를 쐬며 근처를 뺑 돌고 나서야 간판에 불을 밝힌 치킨집을 발
견할 수 있었다. 간판에 그려져 있는 생맥주 그림에 나도 모르게 절로 침이 넘어갔다.
"오백 두잔하고 치킨 한마리요."
배가 많이 고파 보이는 그녀를 위해 나는 빠르게 주문을 하고는 유리와 마주보고 앉았다. 역시나 손님은 거의
없는 편이었고, 우리는 창가쪽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 정말 마음껏 먹어도 되죠?"
"그럼요. 설마 유리씨 같이 날씬한 사람이 네 다섯 마리 먹으려구요."
"칫. 그렇게 말하면 못먹잖아요. 실제로는 네 다섯마리는 먹어요."
"에이. 설마."
일부러 긴장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싱긋 하고 웃었다. 아무리 노출 따윈 없는 옷차림이라지만, 겉보기
에도 유리는 꽤 날씬해 보였기 때문이다. 티셔츠 앞에 봉긋 부풀어 있는 가슴은, 늘씬한 몸에 비해서는 양호
한 크기인 듯하다. 하기사...그거야 뚜껑을 열기 전에는(?)그 누구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주임님은 쉬는 날 주로 뭐하세요?"
"음...저요?"
뭐 내가 쉬는 날 무엇을 하는 지는 오로지 나와 사공 회원들만 아는 문제일 거다. 당연히 유흥가 탐방이니 말
해 뭣하냐만은, 곧이 곧대로 유리에게 "업소가서 떡 칩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나는 피식 웃
으며, 거짓말이 되지 않을 만한 범위 안에서 유흥가 탐방을 포장하여 대답해 주었다.
"운동하러 갑니다."
"어머. 진짜요? 무슨 운동요?"
"전신 운동이죠."
"헬스라도 하세요?"
"뭐 조금요. 유리씨는?"
"음..저는 요새는 그냥 집에서 쉬어요. 주식 공부하려고 책을 많이 사두어서..그거 보기도 하고요."
"돈 모을려구요?"
"시집 가려면 모아야죠. 박봉인 월급 가지고 모아봐야 제자리 걸음일 텐데."
하하. 하기사 유리씨 정도라면 시집갈 나이가 되긴 했다. 게다가 저정도 와꾸...,아, 아니 외모라면 결혼을 하
는데 큰 지장은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돈 많은 남자들이 줄을 설 것도 같았다.
"결혼이라. 남자친구는 있어요?"
"아뇨. 없지요."
"에...거짓말."
"어머? 제가 왜 거짓말을 해요? 주임님이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제 주위에는 유리씨를 커버할 만큼 잘난 사람이 없어요."
내 칭찬이 듣기 싫지는 않은지 그녀가 밝게 웃을 때 즈음에 주문한 맥주가 먼저 나왔다. 나는 잔을 들어 건배
를 청했고, 그녀는 잔을 들고 있던 하얀 손을 들어 내 잔에 부딪혀 주었다. 텁텁해져 있던 목구멍에 맥주를
들이 부으니 조금은 살것만 같다.
"크아..."
"근데 주임님이야 말로 결혼 하셔야 하지 않아요? 독신주의세요?"
"하하하. 그럴리가요. 저 여자 엄청 좋아해요. 독신주의가 아니라 능력이 없어서 여자가 없는 거겠죠."
사실 예전보다 결혼에 대한 욕망이 없어진 것도 한몫하겠지만, 사공의 수많은 유부남들이 유흥가 탐방을 목숨
걸고 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봐서 하기 싫은 부분이 더 컸다. 어떻게 찾은 취미인데 이걸 그만 두겠는가? 한창
팔팔한 남자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쓰는 것이 이것일 텐데.
"에이. 주임님이야 말로 능력있잖아요. 여자분 쉽게 만날수 있으실 텐데."
"능력은요 무슨. 그냥 조급해 하지 않고 기다리다보면 한 명은 오겠지...그런 생각으로 느긋하게 있는거죠."
"핏...근데 맥주 너무 시원하네요."
"그러게요. 한잔씩 더 시키죠 우리."
물처럼 들이킨 맥주잔은 단 몇마디의 대화 만으로 동이 났고, 우리는 썰렁한 가게가 울리도록 다급하게 맥주를
주문해 대었다. 결국 주 목적인 치킨이 나오기도 전에, 우리는 각각 생맥주 세 잔씩을 집어 넣어 물배를 채우고
말았다.
"아...그리고 말이죠. 주식에 대해서 말해주기로 했었잖아요."
"아 맞다! 주임님 잠시만요! 저 메모할거 꺼내구요."
가방안으로 손을 넣어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그녀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지만, 유리는 약간의 홍조를 띈
상태에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그러니까 주식같은걸 할때의 기본은요...."
이윽고 내 입에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정보들이 세어나오기 시작했고, 유리는 열심히 그것을 경청하며 받아적
기 시작했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치킨을 앞에 두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사뭇 진지한 그녀의 귀
여운 표정 때문에 나도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작전주니, 테마주니 하는 주식 용어가 내 입에서 흘러 나왔다. 물론 나도 주식에 대해 잘 모르니, 그냥 사공
회원에게 배운 대로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유리에게는 굉장한 전문가의 소
견으로 들리는 모양인지, 연신 감탄을 하며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순간 한때 자주 갔었던 영등포 핸플 업소의 에이스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도 티 안에서 나보고 주식을 하고 있
다고 밝힌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업소에서 돈을 많이 모아서 유흥가를 뜨고 싶다고 했던 그녀 생각에 중간중간
말이 끊기긴 했지만, 유리는 별다른 낌새는 채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열공 모드였다. 사실 유리씨 정도의 외모
라면 유흥계에 진출하는 편이 주식같은 확률싸움보다 훨씬 벌이가 좋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그 말을 꺼낼수 있을리 없다. 장장 30여분 동안 맥주를 홀짝거리며 강의를 하고 나서야 주식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났고, 우리는 계속해서 맥주를 주문하며 말을 이어갔다. 놀랍게도 대화의 주제는 지극히 사적
인 부분에 관해서 였다.
"사실은 저 있잖아요...주임님 별로 안좋아 했었어요."
"하하. 알고 있어요."
"에? 어떻게요?"
차마 화장실에서 그녀가 나눴던 나에대한 뒷담화 이야기는 꺼낼수 없었다. 놀라서 토끼눈을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눈치란게 있죠. 표정을 보면 다 알지요."
"기분 나빴으면 죄송해요."
"아뇨. 전혀요. 저 별로 안좋아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같이 맥주 마신다는 건 아직까지 싫다는 뜻은
아닌거 같아서 좋은데요?"
내 말에 유리는 베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조금씩 회사에서 주임님이 차지하는 업무 비율이 높아지니까...내가 능력있는 분을 괜히 오해했구나
싶더라구요."
생각했던것보다 솔직한 발언이었다. 하얀 얼굴에 홍조가 조금씩 깊어져 갔고, 유흥가 탐방하는 놈 아니랄까봐
나 역시 유리씨의 체취에 조금씩 정신을 잃어가는 듯했다. 마주보고 하는 대화이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의
거리는 꽤나 짧았다.
"앞으로 다시 미움받지 않게 내가 잘하면 되겠네요."
"이제 안미워할거에요."
술이 약한 것일까? 조금은 허술해진 듯한 그녀의 미소에 나도 모르게 절로 따라 웃었다. 그제서야, 예전 전체
회식을 할때에 술에 취해 남자 직원들에게 부축을 받아 집에 갔던 유리씨의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이거 진
짜 염소 녀석 말대로 되는거 아냐?
아니다. 진정해야 한다. 앞에 있는 유리씨는 나이트에서 취한 골뱅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트에서 취한 여
성이야 땡큐 베리마치를 외치며 "먹튀"를 해도 하룻밤의 행운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유리씨는 다르다. 그녀가
부모 형제 못알아 볼 정도로 취했다고 해서 함부로 건드렸다간 내 인생 자체가 블랙홀에 빠질 위험이 있다.
누군가 그러더라. 먹을거 따로 있고 먹으면 안되는거 따로 있다고. 염소 자식...괜시리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
는 사람 맘을 뒤숭숭하게 하고 있어.
"주임님은 그럼 안 외로우세요? 만나는 여자분도 없으시면.."
"하하. 외롭긴 한데 꾹 참아야죠."
"치..그게 참아 지나요?집에서 압박도 있을 텐데요."
"저는 자취해요. 부모님은 일찌감치 귀농하셔서 시골에 계시구요."
"어머 정말요? 나중에 주임님 방 놀러가야 겠다."
"워워. 참아요. 유리씨 초대하려면 4박 5일은 청소해야 할 걸요."
"어딘지 가르쳐 줘요. 불시에 가보게."
꺄르르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왠지 나와 유리씨가 굉장히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염소 녀석이 예전
에 내게 해주었던 "강의"역시 빠르게 내 뇌리를 스친다.
-형님. 원래 남녀가 같이 술자리를 가지게 되면, 대화의 흐름이 싹 바뀔때가 있어요. 뭐랄까. 점점 허물이 없
어 진다고나 할까? 서로 진짜 싫어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그런 때가 오는데 그때가 기회인 겁니다.-
녀석의 말인즉슨, 남녀 일대일의 술자리에서는 평소에 잘 할 수 없었던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분위기가 조성
되는 시기가 한 번이상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때에 확 몰아 붙여야 원나잇이 되는 거라고 녀석이 열변을 토할
때는 무슨말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 보니 대충 감이 잡혔다. 유리씨는 취기가 올랐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
을, 남자 혼자사는 집에 놀러간다는 이야기를 농담마냥 꺼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염소녀석의 이론이 맞을까?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그러는 유리씨는요? 안 외로워요?"
"음...가끔 외로워요."
"외로울땐 어떻게 해요?"
"음? 어떻게 하다뇨? 그냥 있어야죠.히힛."
"스킨쉽이 그리울 때가 있을수도 있죠."
"주임님 아웃!"
내 말이 노골적인 방향으로 바뀌자, 유리는 양 팔을 교차시켜 엑스 자를 그려 보이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보였다. 하지만 당황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은, 장난끼 까지 여려있는 그 얼굴을 보고 내가 그만둘 리가 없
었다. 오히려 두근두근 설레였다.
"쓰리 아웃까지니까 두번 남았네요. 스킨쉽이 그리울 때는 없어요?"
"어머? 그거 물어보는 거 보니까...주임님은 여자분이랑 스킨쉽이 그리울 때가 많구나?"
"그럼요. 신체 건강한 남자인데."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하는 내 태도 때문인지, 유리는 아웃을 외치지 않고 부끄러운 듯
웃기만 했다. 사공의 여자킬러 염소선생 가라사대, 순진하고 안 그럴것 같은 여자도 침대에서는 남자를 그리
원한다더라.
"아~주 가끔요."
"그럼 애인말고 파트너도 없어요?"
"아씽! 자꾸 주임님 왜그래요. 한 번 더 아웃!"
허둥지둥 말을 하는 유리씨의 모습에 더욱더 재미가 느껴진다. 고수들에 비해 어설프긴 하겠지만 내 예감에 의
하면 그녀도 이런말을 하는게 마냥 싫지만은 않아 보인다. 업소 아가씨들하고는 별에 별 이야기를 다해도, 같
은 사무실에 있는 미인 여직원을 상대로 아슬아슬한 대화를 하니 손끝이 짜릿할 정도였다.
"음....그럼 주임님은요? "
"제가 뭐요?"
"스킨쉽이 그립다거나...할때 있어요....?"
조심스럽게, 약간은 부끄럽게 운을 떼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응수를 해 주
었다. 자고로 상대방이 부끄러워 할때는 당당하게 해주는 것이 최고의 배려인 법이다.
"왜 없겠습니까? 엄연한 대한민국 수컷인데요."
"프하! 수컷이 뭐에요! 하하하하!"
"남자는 밤에는 다 수컷이죠."
"숙녀를 앞에 두고 너무 막말 하시는거 아니에요?"
"에이..그 숙녀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거 같은데요?"
"뭐야...하하하. 저 주임님이 이렇게 재밌는 분인지 몰랐네요."
"어허. 글쎄 지금은 밤이니까 재밌는 수컷이라고 하라니까요."
"아이참..이제 그만해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그녀는 쿡쿡 거리며 몇 번이고 웃었다. 네 다섯마리라도 먹을 수 있다던 치킨은 그대로
인채, 테이블 위에는 빈 맥주잔만 늘어나기 시작했다. 술보다는 음료 취급을 받는 맥주지만 이 정도면 상당한
양이지 싶었다. 그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조금 술이 들어가 용기가 생겼는지 그녀가 묻는다.
"그러면...주임님은 있나요?그....스킨쉽만 하는 파트너."
"없어요. 그럴 능력이 없군요."
아무리 유리가 술을 마셔서 평상시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해도, 내가 들르는 유흥가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야
기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곳에 가는 남자들을 향해 혐오감 비슷한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아
무리 개방적인 사회로 변했다고 해도, 그것은 아직까지 절대 용서받지 못할 남자의 행동으로 여성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마련이다.
"주임님이랑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이야.하하하. 정말 놀랍네요."
"뭐가 놀라워요? 어린애들도 아니고 성인들의 대화인데요 뭐. 유리씨 솔직히 스킨쉽 싫어하진 않잖아요?"
"음...그거야..."
"솔직해 지죠 우리. 남자와의 스킨쉽. 그러니까...음...성인들의 운동이라 치죠."
"프핫!그게 뭐에요."
"암튼 그 운동 좋아하죠?"
내 말에 취기와 더불어 한껏 홍조를 이끌어낸 그녀의 얼굴이 귀엽게 떨구어 졌다. 앞에 있는 맥주를 홀짝이며,
그녀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것봐요. 저도 좋아해요. 그건 숨기고 쉬쉬할 일이 아니죠. 사람이면 당연한 거고..저도 남자니 당연히.."
"남자 아니고 수컷....이람서요?"
"푸하! 맞아요. 유리씨 말대로 수컷이니까 숨기면 안되는 거죠."
주식이라는 건전하고도 훈훈한 주제에서 순식간에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의 대화로 돌변한 우리의 술자리는, 어
느덧 2시간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아랫도리에서 화끈한 기운이 몰려 오는 것이, 나도 맥주에 알딸딸한 기
분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아무튼 그래서 유리씨는 제 자취집에 놀러오면 안되요."
"어머..갑자기 왜요?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생각해 봐요. 놀러온다면 유리씨는 회사 끝나고 올거 아닌가요?"
"음...뭐 그렇겠죠?"
"밤에 남자는 수컷이 되잖아요?"
"주임님 설마..."
"게다가 방 안에는 스킨쉽을 좋아하는 독신 남녀가...."
장난스러운 뉘앙스의 내 말을 듣던 그녀가 갑자기 팔을 양 옆으로 교차한다. 그녀의 모습에 피식 하고 웃어버
리는 내 모습을 보며, 유리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임님 진짜 쓰리아웃!"
탁한 공기가 달빛마져 가린 것일까. 달빛 때문이 아닌 네온 사인 때문에 한층 밝아져 있는 밤거리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또각..또각하는 규칙적인 걸음을 보여 주었던 몇 시간전과는 달리, 유리는 조금은
비틀대는 걸음으로 내 옆에서 걷고 있었다. 놀랍게도 나는 그녀의 허리 쪽에 살짝 손을 대고 그녀를 부축하는
형태를 띄고 있었다. 밥을 먹으러 갔다가 맥주로 배를 채웠으니, 술이 약한 유리씨로서는 비틀거릴수도 있을
법한 양이었다.
"의외로 집이 가깝네요?"
"네. 택시타면 금방이긴 해요."
한사코 괜찮다고 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같은 택시를 잡아 타고 그녀의 동네에 내려 집까지 부축을
해주는 중이었다. 아무리 술을 마셨지만 괜찮다고 하는 그 말을 믿을 정도로 나는 답답한 놈이 아니었다.
"주임님 이제보니까 선수네요? 이거 은근한 스킨쉽인거 알죠?"
"에이. 설마요. 같은 회사 여직원을 부축해 주는 훈훈한 광경인데."
능글스럽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내 손은 그녀의 허리를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티셔츠에 감춰진 허리라인은
예상대로 잘록했고, 군살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만 손을 올려서 가슴 부위도 슬쩍 건드려보고 싶다는 욕
망이 밀려 왔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내었다.
"있잖아요 주임님."
"네."
"주임님이 이렇게 재밌는 분인줄 몰랐어요. 우리 더 친하게 지내봐요."
"오호? 어떻게요?"
"자꾸 야한 상상 할래요?"
"이크! 티났나요."
"아이 참! 그러니까...회사 밖에서는 오빠라고 부를게요. 강우 오빠. 어때요?"
"우와. 그거 술김에 하는 말 아니죠?"
"치. 저 안취했거든요? 전화부도 강우 오빠로 바꿔 놀게요."
"좋아요. 그럼 저는 유리씨라고 저장되어 있으니까...유리 라고 할게요."
"말도 놔야하는거 아니에요?"
"음...그럴까?"
"어머! 역시 오빠 선수야. 금방 말 놓잖아."
"지가 놓자고 해놓구선."
은근슬쩍 그녀를 다그치듯, 청바지위 그녀의 엉덩이를 살짝 때리는 시늉을 했다. 다른 회사 사람이 보면 기겁
할 만한 광경이었지만, 그녀는 조금의 위화감 없이 웃을 뿐이었다. 부축한 상태에서 그녀가 꺄르르 웃으니,
거의 내게 안기다 시피 하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녀가 살고 있다는 아파트 단지 내에 이미 진입한 상태인
데도 불구하고.
"오빠. 나는 자취생이 아니니까 이제 들어갈게. 베란다에서 부모님이 보고 계시면 안되니깐."
"알았어. 진짜 회사 밖에서는 오빠 동생 하는거야?"
"치. 속고만 살았어? 오빠야 말로 회사에서 어색해 하기 없기야. 우리 둘다 안 취했으니까."
"좋아."
취한 것과 기분 좋은 것은 차원이 다르다. 술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회사에서 바로 어색해 할 만큼 취기에 하
는말 같지는 않았다.
"나 들어갈게 오빠."
"그래. 다음에 또 술한잔하자. 그때는 소주로 마시기야!"
"치! 와인 사달라고 할꺼다!"
"그런게 어딨어? 주식 강의비 명목으로 니가 사야지."
"오빠가 동생한테 그 정도는 가르쳐 줘야 하는거야!"
"그래 내가 졌다. 얼른 들어가."
그녀는 몇 번이고 싱긋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고 나서야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유리씨와 오빠 동생
을 한다라....평소라면 상상도 하지 않았을 일이다. 게다가 같은 회사 동료끼리의 것이라고 하기엔 조금 수위
높았던 대화까지.
"휴우...너는 도대체 왜그러냐..?"
바지 앞섬을 볼록하게 부풀인 "또 다른 나"를 보며, 나는 푹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
허공에 뱉어도, 이미 적당히 취기가 오른 내 몸은 "또 다른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그냥 허리만 잡고 걸
었을 뿐인데 그새 흥분한 모양이다.
"체리한테나 가볼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지만 조용히 중얼거렸다. 유리를 많이 닮은 오피스텔 처자. 지금 바로 그 곳에 가면 유
리와 섹스를 하는 대리만족을 200프로 이상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근데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빠! 진짜 오늘 너무 재밌었어! 앞으로 이 관계 계속 유지하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문자를 보낸 그녀의 메세지를 보며, 나는 약간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술자리
에서 정면에 있던 유리의 얼굴이 쉬이 떠나가지 않는 까닭이다. 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어 전화부를 뒤적
거렸고, 수없이 많은 업소 전화 번호 사이에서 체리가 일하는 오피스텔 번호를 찾아 눌렀다.
"여보세요? 실장님 저 사공 회원인데요. 오늘 체리 출근합니까?"
-아....체리 씨는 생리 휴가 중인데..대신 엔에프 하나 들어왔는데 어떠세요? 괜찮으시면 지금 바로 예약...-
"아...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걸게요."
전화를 끊는 그 순간에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빠른 속도로 폴더를 닫아 버렸다. 담배재를 털지
않아 길게 타버린 회색빛 재가 바람에 형편없이 휘날리고 만다. 나는 유리의 문자와, 그녀가 사라진 아파트 건
물 안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너무 유흥가에 물들어 버린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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